전태윤의 경호팀은 프로패셔널하게 그들 부부를 위해 길을 내주었다. 아무도 함부로 두 사람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부부는 부모님을 뒤따라 자신들을 마중 오는 공씨 일가 사람들에게 걸어갔다.다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공씨 일가 사람들의 시선은 결국 하예정에게 돌아갔다.영롱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우아한 기품이 차 넘쳐 어린 신부 같은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전태윤과 하예정은 부부 사이란 걸 진작 공개했지만 함께 상류층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 하예정은 평소에 이모 이경혜를 따라 각종 연회에 참석했고 공씨 사모님은 또 그다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다. 하여 공씨 일가의 많은 사람들도 이제야 전씨 일가 사모님을 뵙게 됐다.관성에서 최근 반년 동안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전씨 일가 사모님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되레 전태윤과 나란히 서 있으니 여러모로 참 잘 어울렸고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하예정이 볼품없고 전태윤에게 가당치도 않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시기, 질투에 눈이 멀어 배 아파서 하는 소리가 틀림없다.“이분은 제 아내 하예정입니다.”전태윤이 그녀를 공씨 일가 사람들에게 소개했다.이어서 공씨 일가 사람들도 일일이 그녀에게 소개해 주었다. 하예정은 온화하게 웃으며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공씨 사모님 안시연이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장소민에게 말했다.“난 참 소민 씨가 부러워요. 며느님이 딱 봐도 복스럽고 착하고 효심 가득할 것 같아요. 소민 씨 이젠 편하게 누릴 일만 남았네요.”장소민이 웃으며 답했다.“맞아요, 우리 예정이가 마음에 쏙 들어요. 이번 생에 딸아이가 없어 며느리를 딸처럼 예뻐해 주고 싶거든요.”안시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런 것 같았어요. 며느님 정말 예뻐하시는 게 눈에 다 보여요.”어르신은 그해 장소민에게 값비싼 주얼리 세트를 몇 개 선물해 주셨다. 장소민은 이미 많은 액세서리를 갖고 있지만 시어머니가 주신 주얼리 몇 세트를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성
안시연은 하예정의 목소리까지 감미롭게 들려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또 한 번 칭찬을 남발했다.사람들의 쏟아지는 칭찬에 하예정은 늘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대응했다. 그녀가 실수하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전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어떤 이는 이경혜가 사람을 참 잘 가르쳤다고 여겼다. 하예정이 그녀 따라 연회에 몇 번 참석하더니 촌뜨기에서 지금처럼 고고한 재벌가 사모님으로 거듭났으니까.하예정네 가족 네 명은 공세호 어르신을 뵈러 갔다.어르신은 하예정을 한참 훑어보다가 칭찬의 말은 없었지만 뭇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푸짐한 선물을 그녀에게 건넸고 옆에 있는 전태윤에게도 이렇게 말했다.“두 사람 잘 지내야 한다. 너희 할머니 사람 보는 안목이 틀림없어.”전태윤은 어르신께 자상하게 말했다.“고맙습니다, 어르신. 아내한테 꼭 더 잘하겠습니다.”어르신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씨 할머니보다 연세도 높으시고 정력도 할머니에게 못 미친다.전태윤같이 높은 신분의 후배만 공세호 어르신을 뵐 자격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그를 방해할 엄두도 못 낸다.몇몇 재벌 가문에서 속속들이 연회장에 도착했다.이경혜 부부는 딸과 함께 조금 늦게 도착했고 성기현 부부는 참석하지 않았다.임신한 유청하가 입덧이 또 심해졌다. 연회장엔 사람이 많아 자칫하면 서로 몸을 부딪칠 수 있다. 성기현은 아내가 참석하는 걸 결사반대했고 본인도 집에서 아내의 옆을 지켰다.성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은 상업계에 종사하지 않아 이런 종류의 행사에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하여 성문철 부부와 성소현만 왔다.그들 세 식구도 공세호 어르신을 뵈러 갔다.어르신은 성기현 부부가 안 보이자 이경혜에게 물었다.“기현이랑 청하네는?”이경혜가 웃으며 답했다.“청하가 아이 가져서 몸이 불편해 못 왔어요. 기현이는 집에서 청하 지켜주고 있고요. 기현이가 어르신께 대신 사과의 말씀 드리래요. 오늘 밤에 어르신이 주최한 연회에 참석하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대요.”공세호가 웃으며 말했다
공씨 일가와 인사를 마친 후 다들 각자 친한 친구를 찾아다니며 담소를 나누거나 사업 얘기로 한창이었다.하예정은 처음에 전태윤과 함께 다녔다. 전태윤은 먼저 누군가를 찾아서 협력을 논할 필요가 없었다. 그와 협력하고 싶은 대표님들이 차고 넘치니까.전태윤은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고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있었다.하예정은 나지막이 남편에게 말했다.“애초에 당신과 어깨를 견주겠다는 자체가 잘못됐어요. 나 자신을 알아야지.”어깨를 견주는 게 아니라 전태윤의 뒤에서 미친 듯이 달려도 따라잡지 못할 수준이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깍지 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눈웃음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우린 지금 나란히 손잡고 어깨를 견주고 있잖아. 여보, 난 항상 우리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없다고 생각해. 정말 차이가 있다면 그건 단지 남녀 차이일 뿐이야.”하예정도 가볍게 웃었다. 이모와 함께 한동안 연회에 참석하며 그녀도 많은 걸 배웠고 생각이 많이 변했다. 전보다 훨씬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었다.전태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운명이라 그녀가 그를 따라잡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이미 그의 아내가 되었고 전태윤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시댁 식구들도 그녀를 반대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데 왜 굳이 괴로움을 자초하겠는가?모든 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그녀는 더 분발할 것이고 본인 사업이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하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전씨 일가 사모님으로서 마주해야 할 모든 것도 태연하게 마주할 자세가 되어있다.칭찬과 비난과 야유, 시기, 질투까지 전부 받아들일 수 있다.이 세상에 살아가려면 모든 이가 날 좋아해 줄 순 없다. 아무리 잘하고 있어도 꼭 트집 잡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본인만 양심에 찔리는 일을 안 하면 된다. 남들에게 달린 입이니 제멋대로 지껄이라고 하지 뭐.하예정은 시집온 순간부터 인생의 절정에 다다라 많은 이의 시기, 질투를 받고 있다.“여보, 나 당신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전태윤이 부드러운 눈길로 그
‘날 방패막이로 한동안 써먹었네. 어쩐지 요즘은 집에 돌아올 때 몸에 좋은 향기가 나더라니.’물론 하예정도 남편이 과음하는 걸 원치 않는다. 전에 위가 나빠 그녀가 정성 들여 건강을 챙겨줬으니 술은 안 마실 수 있으면 최대한 안 마시길 바랐다.그런데 전태윤이 일부러 아내에게 잡혀 사는 이미지를 각인할 줄이야...그는 하예정의 허리를 감싸안고 웃으며 소정남을 나무랐다. 이어서 심효진에게 말했다.“효진 씨 아직 기뻐하긴 일러요. 정남이도 조만간 효진 씨를 방패막이로 삼을 거예요.”심효진이 활짝 미소 지었다.“나는 괜찮아요. 정남 씨 건강만 챙길 수 있다면 날 방패막이로 삼으라고 하죠 뭐. 하여튼 두 사람 똑같다니까요. 나랑 예정이가 엄하게 단속한 적도 없는데, 충분히 자유를 줬는데 한사코 우리한테 ‘남편 엄하게 단속’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주잖아요.”하예정도 웃었다.“남들이 놀릴까 봐 두렵지도 않나 봐요.”“어차피 누구도 감히 내 앞에서 내가 아내에게 잡혀 산다고 비웃을 사람은 없어. 다들 나를 팔불출이라고 하지.”전태윤이 패기 넘치게 말했다.밖에선 종일 굳은 표정에 입도 굳게 다물고 있고 짙은 두 눈과 마주치면 소름이 쫙 돋을 지경인데 이렇게 엄숙하고 차가운 남자 앞에서 누가 감히 죽음을 자초하고 그를 아내에게 잡혀 사는 남자라고 비웃을까?다들 전태윤을 팔불출이고 아내밖에 모르는 사랑꾼이라고 일컫는다.“나랑 태윤이는 절친이라 다들 우리가 끼리끼리 만나는 거래요.”하예정과 심효진은 할 말을 잃었다.둘은 정말 끼리끼리 만난 듯싶었다.“얘기 나누세요. 난 효진이랑 함께 이모한테 인사드리러 가야겠어요.”하예정이 웃으며 심효진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전태윤은 두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정남을 질책했다.“허구한 날 뭣 하러 나한테 달려와? 이것 봐, 내 와이프를 네 와이프에게 뺏겼잖아. 나 예정이랑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함께 연회에 참석한단 말이야.”하예정만 아니면 그는 공세호 어르신께 인사 올리고 진작 연회장을 떠났다.하예정이 인맥을
전태윤은 그와 잔을 부딪쳤지만 술을 마시진 않았다.“부인이 임신했대. 알면서 뭘 물어. 오늘 같은 이런 장소에 너라면 효진 씨 데리고 오겠냐?”소정남은 침을 꼴깍 삼켰다.“깜빡했어. 나한테 중요하지 않은 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거든. 우리 효진 씨가 임신하면 걷지도 못하게 할 거야. 내고 안고 다녀야지.”전태윤은 실소를 터트렸다.“임신이 무슨 병 걸린 것도 아니고,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임산부도 적당히 움직여야 해.”소정남은 입을 삐죽거렸다.“너 지금은 말 잘한다. 나중에 예정 씨 임신하거든 그때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으면 내가 밥 살게.”“너 아니면 밥 먹을 데가 없을까 봐? 나 틈만 나면 우리 예정이 밥해주거든. 요리 실력이 훨씬 좋아졌어.”두 사람은 나지막이 얘기 나누며 인파들 속으로 걸어갔다.“전 대표님, 소 이사님.”적잖은 사람들이 그 둘을 향해 잔을 들고 인사했다.소정남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고 전태윤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름대로 인사치레인 듯싶다.그의 시선은 늘 어떤 한 곳을 향했는데 바로 하예정이 있는 방향이었다.강일구를 비롯한 경호원들은 항상 하던 대로 묵묵히 전태윤의 뒤에서 걸으며 하예정이 없는 틈을 타 도련님께 가까이하려는 젊은 여성분들을 차단했다.도련님은 이미 유부남인데 아직도 넘보는 자가 이렇게 많다니.전태윤도 똑같이 평범한 남자이고 사랑과 욕망에 불타오르는 사람이며 여자를 좋아할 줄도 아는 사람이란 게 공개된 이후로 다들 본인들이 하예정보다 낫다고 생각돼 어떻게 해볼 마음인 듯싶다.하예정은 남편이 줄곧 자신을 지켜보는 걸 전혀 몰랐다. 전태윤의 눈엔 하예정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심효진과 함께 성소현 모녀 옆으로 다가갔다.이경혜는 몇몇 재벌가 사모님들과 얘기를 나눴고 성소현은 엄마 옆에서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웃다가 얼굴에 경련을 일으킬 지경이었다.두 친구가 걸어오자, 그녀는 그제야 해방된 듯싶었다. 엄마가 드디어 시선을 옮길 수 있게 됐으니.하예정과 심효진이
이경혜는 심효진과 자기 막내아들을 이어줄 생각을 한적도 있다. ‘소정남:...태윤아,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아내를 얻게 됐어.’‘전태윤: 정남아, 너 나한테 감사함을 표해야 하지 않겠어?’사모님들의 이야기 자리에서 벗어난 성소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예정과 심효진에게 뒤늦게야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불평했다.그에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언니 과장인데요? 하하하하, 구해줬다고요? 그 정도인가요?”심효진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모님들 다정해 보이시던데요. 눈빛이 아주 부드러워 보였어요.”그러자 성소현은 닭살이 돋는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그건 며느리를 보는 눈빛이에요.”이 말에 하예정과 심효진 모두 깔깔 웃었다.“예정아, 저쪽 봐봐.”성소현은 갑자기 하예정을 툭툭 치더니,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응?”하예정과 심효진인 모두 그녀가 말하는 방향에 눈길이 갔다.노동명이 웬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미 노동명과 손은경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하예정은 담담했다. 그녀가 윤미라가 자기 아들에게 골라준 아내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노 대표 옆에 웬 여자가 있어. 예진 언니한테 생각이 있던 거 아니었어?”하예정은 바로 성소현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그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지 사실이 아니에요. 언니랑 노 대표는 그냥 평범한 친구예요.”그리고 윤미라도 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언니 또한 노동명에 대해 그 방면의 뜻이 없으니 더 이상 누군가가 언니와 노 대표를 연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성소현은 그녀의 뜻을 금방 이해했다.“하긴, 모든 게 우리의 추측이지. 저 여자 알아? 너 아는 얼굴인데.”“한 번 만났 적이 있어요. 노 대표와 함께 우리 언니의 가게에 아침을 먹으러 온적이 있거든요.”“아, 그래?”성소현은 하예정의 팔짱을 끼더니 조용히 말했다.“난 노 대표의 얼굴에 흉터가 있는 게 마음에 안들어. 예진 언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리고 노 대표의 어머니도 예진 언니를 마음
“예정 씨.”몇 걸음 가지 않아 여씨 사모님이 여운초를 데리고 길을 막았다.하예정은 여운초가 여씨 사모님에게 끌려 자칫 넘어지려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운초 씨, 조심해요.”하예정은 여운초를 부축하고 나서야 추미자를 바라보았다.추미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운초를 부축해 주셔서 감사해요. 얘가 눈이 보이지 않아 쉽게 넘어지거든요.”성소현이 옆에서 불쑥 말했다.“눈도 보이지 않는 애를 왜 그렇게 빨리 끌고 다니는 거죠?”추미자의 웃음이 굳어져 버렸다.성소현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비웃는 듯 말했다. “큰딸을 데리고 연회에 온 것이 처음이죠?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에요,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요.”추미자는 성소현의 비꼬는 말에 화가 났지만 얼굴에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우리 운초가 눈이 보이지 않아 연회에 데려오지 않은 거예요. 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줄 수도 없고, 그러다 일이라고 생길까 봐 걱정돼서요. 게다가 운초도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아서요. 다만 이제 운초도 나이가 적지 않고, 이런 자리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여 인사도 나눌 겸 데리고 나왔어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추미자의 말 속 깊은 뜻을 알아들었다.여태 키웠으니 이젠 시집보낼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여운초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한껏 치장한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여운별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눈만 멀지 않았다면... 상류층 사모님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성소현은 여운초가 좋은 시댁에 시집가기 힘들거로 생각했다. 단지 장님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친어머니인 추미자 때문이기도 하다. 누가 추미자와 사돈 관계를 맺으려 할까?추미자가 작은딸을 지나치게 편애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전씨 할머니는 왜 여운초를 전이진에게 골라준 걸까?성소현은 궁금해서 하예정에게 물었지만 그녀도 답을 몰랐고, 심효진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무슨 일 있으신가요?”하예정
하예정은 여운초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재벌 집 도련님에게 소개시켜 주려는 거 맞죠?”여운초는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똑같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는 나를 재벌 집 도련님에게 시집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마도 나를 다른 사람에게 선물로 주겠죠. 엄마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라면, 그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을 거예요.”하예정은 이 말을 듣고 분노가 치밀었다.그녀의 분노를 알아차린 여운초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걱정 마요, 난 내 자신을 지킬 자신이 있어요.”여운초는 언제나 칼을 지니고 다녔다.하예정은 또 뭐라 말하고 싶었지만, 여운초가 손바닥을 쿡쿡 찌르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추미자는 비교적 조용하고 외진 곳을 골라 하예정에게 앉으라고 권했다.“예정 씨, 뭐 드실래요? 내가 먹을 것 좀 가져다드릴게요.”“고맙지만 괜찮아요. 할 말 있으면 하세요.”그러자 추미자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예정 씨가 우리 운초랑 친구인 걸 알고 있어요. 운별이는 운초 동생인데, 예정 씨가 우리 운초를 봐서라도 운별이를 고소하지 말아 줄래요? 나도 운별이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은 알지만, 운별이도 이제 잘못을 깨달았어요. 걔가 아직 어려서 철이 덜 들어서 그래요, 앞으로 내가 꼭 잘 가르쳐서 다시는 예정 씨의 미움 사는 일을 하지 않도록 할게요.”“...”“운별이가 망가뜨린 차는 동일한 거로 두 대 배상해 드릴게요. 그리고 또 다른 요구 사항이 있으시거든 편히 말씀주세요. 내가 만족시킬 수 있는 한, 다 만족시켜 드릴게요. 같은 사교 모임 안에서 앞으로 마주칠 일도 많을 텐데, 너무 어색하면 보기 좋지 않잖아요. 내 마음 받아들이고, 이번 일은 쿨하게 넘어가는 게 어때요?” 추미자는 또 몰래 여운초를 꼬집었다.“추미자 씨, 운초 씨에게 무슨 짓을 한 거예요?”하예정은 여운초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안색이 어두워져서는 관심을 가지고 그녀에게 물었다.“운초 씨 괜찮아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죠?”“하예정 씨! 운초는 내 친딸인데 내가 친딸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