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뼛속부터 하예정의 출신을 깔보고 있다.촌뜨기가 전씨 일가의 어르신을 구해줬다고 전세 역전하다니.전씨 일가의 그 많은 어르신들도 참 무던하시지. 왜 아무도 반박하지 않고 촌뜨기가 사모님이 되도록 내버려뒀을까? 앞으론 안방마님의 자리를 꿰찰 텐데. 하예정이 만에 하나 안방마님의 자리를 제대로 승임하지 못하고 전씨 일가에 먹칠해서 사람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할까 봐 두렵지도 않나 보다.하예정이 만약 전씨 일가의 다른 도련님에게 시집갔다면 이렇게 많은 시기와 질투를 받지 않을 것이다.“맞는 말이에요. 내 생각도 그래요. 하예정 씨는 시야가 좁아 만사에 깊이 고려하지 못할 거예요. 일하는 것도 마냥 서툰데 전태윤 씨 신분, 지위만 믿고 안하무인 격에 제멋대로 남 일에 간섭해서 태윤 씨만 원한을 맺게 생겼어요.”이 말을 한 사람은 바로 추미자였다.“그러게 말이에요, 하예정 씨는 정말 오지랖이 넓다니까요. 그쪽은 여씨 사모님이죠? 지난번 동씨 가문 연회에서 뵈었어요. 하예정 씨가 오지랖을 피우는 바람에 두 모녀와 원한을 맺게 됐잖아요. 내가 좋은 마음으로 전씨 큰 사모님께 전화 드려서 며느리를 잘 관리하라고 말했더니 아니 글쎄 큰 사모님이 된통 혼내고 날 차단했지 뭐에요.”하예정에게 갖은 악의를 품고 핀잔을 두는 사람은 바로 그때 함부로 입을 떠벌렸던 온씨 사모님이다. 그 당시 장소민에게 한바탕 야단맞은 이후로 연락이 끊겼다.본인은 좋은 마음으로 다가간 건데 장소민이 벌컥 화내니 온씨 사모님은 기가 막힐 따름이다.하예정이 만약 온씨 사모님의 며느리였다면 밖에서 감히 오지랖 피우다가 사람들과 시비 붙어 제 아들까지 피해를 보면 당장 아들과 이혼시키고 말 잘 듣는 며느리를 들일 것이다.장소민이 아무리 제 가족을 편들려 해도 상황을 봐가면서 해야지, 그런 사고뭉치 며느리는 지켜주면 줄수록 더 큰 화를 초래할 것이다.전씨 일가는 조만간 하예정의 손에 놀아나 바람 잘 날이 없을 것이다.전씨 일가의 명성도 분명 하예정 때문에 훼손될 테고!“전씨 가문의 큰 사
전태윤의 경호팀은 프로패셔널하게 그들 부부를 위해 길을 내주었다. 아무도 함부로 두 사람을 가까이할 수 없었다.부부는 부모님을 뒤따라 자신들을 마중 오는 공씨 일가 사람들에게 걸어갔다.다들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물었다.공씨 일가 사람들의 시선은 결국 하예정에게 돌아갔다.영롱하고 아름다운 그녀는 우아한 기품이 차 넘쳐 어린 신부 같은 모습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전태윤과 하예정은 부부 사이란 걸 진작 공개했지만 함께 상류층 행사에 참석한 적이 없다. 하예정은 평소에 이모 이경혜를 따라 각종 연회에 참석했고 공씨 사모님은 또 그다지 얼굴을 내비친 적이 없다. 하여 공씨 일가의 많은 사람들도 이제야 전씨 일가 사모님을 뵙게 됐다.관성에서 최근 반년 동안 가장 핫한 인물로 떠오른 전씨 일가 사모님은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사람이 아니었다.되레 전태윤과 나란히 서 있으니 여러모로 참 잘 어울렸고 선남선녀가 따로 없었다.하예정이 볼품없고 전태윤에게 가당치도 않다고 떠벌리는 사람들은 시기, 질투에 눈이 멀어 배 아파서 하는 소리가 틀림없다.“이분은 제 아내 하예정입니다.”전태윤이 그녀를 공씨 일가 사람들에게 소개했다.이어서 공씨 일가 사람들도 일일이 그녀에게 소개해 주었다. 하예정은 온화하게 웃으며 그들과 인사를 주고받았다.공씨 사모님 안시연이 다정하게 미소 지으며 장소민에게 말했다.“난 참 소민 씨가 부러워요. 며느님이 딱 봐도 복스럽고 착하고 효심 가득할 것 같아요. 소민 씨 이젠 편하게 누릴 일만 남았네요.”장소민이 웃으며 답했다.“맞아요, 우리 예정이가 마음에 쏙 들어요. 이번 생에 딸아이가 없어 며느리를 딸처럼 예뻐해 주고 싶거든요.”안시연이 웃으며 말했다.“그런 것 같았어요. 며느님 정말 예뻐하시는 게 눈에 다 보여요.”어르신은 그해 장소민에게 값비싼 주얼리 세트를 몇 개 선물해 주셨다. 장소민은 이미 많은 액세서리를 갖고 있지만 시어머니가 주신 주얼리 몇 세트를 보물처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가 성
안시연은 하예정의 목소리까지 감미롭게 들려 다정하게 그녀의 손을 잡고 또 한 번 칭찬을 남발했다.사람들의 쏟아지는 칭찬에 하예정은 늘 우아하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시원시원하게 대응했다. 그녀가 실수하길 기다리는 사람들은 전부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어떤 이는 이경혜가 사람을 참 잘 가르쳤다고 여겼다. 하예정이 그녀 따라 연회에 몇 번 참석하더니 촌뜨기에서 지금처럼 고고한 재벌가 사모님으로 거듭났으니까.하예정네 가족 네 명은 공세호 어르신을 뵈러 갔다.어르신은 하예정을 한참 훑어보다가 칭찬의 말은 없었지만 뭇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푸짐한 선물을 그녀에게 건넸고 옆에 있는 전태윤에게도 이렇게 말했다.“두 사람 잘 지내야 한다. 너희 할머니 사람 보는 안목이 틀림없어.”전태윤은 어르신께 자상하게 말했다.“고맙습니다, 어르신. 아내한테 꼭 더 잘하겠습니다.”어르신은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 그는 전씨 할머니보다 연세도 높으시고 정력도 할머니에게 못 미친다.전태윤같이 높은 신분의 후배만 공세호 어르신을 뵐 자격이 있다. 보통 사람들은 감히 그를 방해할 엄두도 못 낸다.몇몇 재벌 가문에서 속속들이 연회장에 도착했다.이경혜 부부는 딸과 함께 조금 늦게 도착했고 성기현 부부는 참석하지 않았다.임신한 유청하가 입덧이 또 심해졌다. 연회장엔 사람이 많아 자칫하면 서로 몸을 부딪칠 수 있다. 성기현은 아내가 참석하는 걸 결사반대했고 본인도 집에서 아내의 옆을 지켰다.성씨 일가의 둘째 도련님은 상업계에 종사하지 않아 이런 종류의 행사에 일절 참석하지 않는다.하여 성문철 부부와 성소현만 왔다.그들 세 식구도 공세호 어르신을 뵈러 갔다.어르신은 성기현 부부가 안 보이자 이경혜에게 물었다.“기현이랑 청하네는?”이경혜가 웃으며 답했다.“청하가 아이 가져서 몸이 불편해 못 왔어요. 기현이는 집에서 청하 지켜주고 있고요. 기현이가 어르신께 대신 사과의 말씀 드리래요. 오늘 밤에 어르신이 주최한 연회에 참석하지 못해서 너무 죄송하대요.”공세호가 웃으며 말했다
공씨 일가와 인사를 마친 후 다들 각자 친한 친구를 찾아다니며 담소를 나누거나 사업 얘기로 한창이었다.하예정은 처음에 전태윤과 함께 다녔다. 전태윤은 먼저 누군가를 찾아서 협력을 논할 필요가 없었다. 그와 협력하고 싶은 대표님들이 차고 넘치니까.전태윤은 가는 곳마다 주목을 받고 사람들에게 떠받들려 있었다.하예정은 나지막이 남편에게 말했다.“애초에 당신과 어깨를 견주겠다는 자체가 잘못됐어요. 나 자신을 알아야지.”어깨를 견주는 게 아니라 전태윤의 뒤에서 미친 듯이 달려도 따라잡지 못할 수준이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깍지 낀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눈웃음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우린 지금 나란히 손잡고 어깨를 견주고 있잖아. 여보, 난 항상 우리 사이에 어떠한 차이도 없다고 생각해. 정말 차이가 있다면 그건 단지 남녀 차이일 뿐이야.”하예정도 가볍게 웃었다. 이모와 함께 한동안 연회에 참석하며 그녀도 많은 걸 배웠고 생각이 많이 변했다. 전보다 훨씬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이었다.전태윤은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운명이라 그녀가 그를 따라잡는 건 아예 불가능한 일이다.이미 그의 아내가 되었고 전태윤의 무한한 사랑을 받고 있으며 시댁 식구들도 그녀를 반대하거나 싫어하지 않는데 왜 굳이 괴로움을 자초하겠는가?모든 건 흘러가는 대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된다.그녀는 더 분발할 것이고 본인 사업이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하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전씨 일가 사모님으로서 마주해야 할 모든 것도 태연하게 마주할 자세가 되어있다.칭찬과 비난과 야유, 시기, 질투까지 전부 받아들일 수 있다.이 세상에 살아가려면 모든 이가 날 좋아해 줄 순 없다. 아무리 잘하고 있어도 꼭 트집 잡는 사람들이 있을 테니 본인만 양심에 찔리는 일을 안 하면 된다. 남들에게 달린 입이니 제멋대로 지껄이라고 하지 뭐.하예정은 시집온 순간부터 인생의 절정에 다다라 많은 이의 시기, 질투를 받고 있다.“여보, 나 당신 너무너무 사랑하는 것 같아요.”전태윤이 부드러운 눈길로 그
‘날 방패막이로 한동안 써먹었네. 어쩐지 요즘은 집에 돌아올 때 몸에 좋은 향기가 나더라니.’물론 하예정도 남편이 과음하는 걸 원치 않는다. 전에 위가 나빠 그녀가 정성 들여 건강을 챙겨줬으니 술은 안 마실 수 있으면 최대한 안 마시길 바랐다.그런데 전태윤이 일부러 아내에게 잡혀 사는 이미지를 각인할 줄이야...그는 하예정의 허리를 감싸안고 웃으며 소정남을 나무랐다. 이어서 심효진에게 말했다.“효진 씨 아직 기뻐하긴 일러요. 정남이도 조만간 효진 씨를 방패막이로 삼을 거예요.”심효진이 활짝 미소 지었다.“나는 괜찮아요. 정남 씨 건강만 챙길 수 있다면 날 방패막이로 삼으라고 하죠 뭐. 하여튼 두 사람 똑같다니까요. 나랑 예정이가 엄하게 단속한 적도 없는데, 충분히 자유를 줬는데 한사코 우리한테 ‘남편 엄하게 단속’하는 이미지를 만들어주잖아요.”하예정도 웃었다.“남들이 놀릴까 봐 두렵지도 않나 봐요.”“어차피 누구도 감히 내 앞에서 내가 아내에게 잡혀 산다고 비웃을 사람은 없어. 다들 나를 팔불출이라고 하지.”전태윤이 패기 넘치게 말했다.밖에선 종일 굳은 표정에 입도 굳게 다물고 있고 짙은 두 눈과 마주치면 소름이 쫙 돋을 지경인데 이렇게 엄숙하고 차가운 남자 앞에서 누가 감히 죽음을 자초하고 그를 아내에게 잡혀 사는 남자라고 비웃을까?다들 전태윤을 팔불출이고 아내밖에 모르는 사랑꾼이라고 일컫는다.“나랑 태윤이는 절친이라 다들 우리가 끼리끼리 만나는 거래요.”하예정과 심효진은 할 말을 잃었다.둘은 정말 끼리끼리 만난 듯싶었다.“얘기 나누세요. 난 효진이랑 함께 이모한테 인사드리러 가야겠어요.”하예정이 웃으며 심효진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전태윤은 두 여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정남을 질책했다.“허구한 날 뭣 하러 나한테 달려와? 이것 봐, 내 와이프를 네 와이프에게 뺏겼잖아. 나 예정이랑 결혼하고 나서 처음으로 함께 연회에 참석한단 말이야.”하예정만 아니면 그는 공세호 어르신께 인사 올리고 진작 연회장을 떠났다.하예정이 인맥을
전태윤은 그와 잔을 부딪쳤지만 술을 마시진 않았다.“부인이 임신했대. 알면서 뭘 물어. 오늘 같은 이런 장소에 너라면 효진 씨 데리고 오겠냐?”소정남은 침을 꼴깍 삼켰다.“깜빡했어. 나한테 중요하지 않은 일은 별로 신경 쓰지 않거든. 우리 효진 씨가 임신하면 걷지도 못하게 할 거야. 내고 안고 다녀야지.”전태윤은 실소를 터트렸다.“임신이 무슨 병 걸린 것도 아니고, 너무 긴장할 필요 없어. 임산부도 적당히 움직여야 해.”소정남은 입을 삐죽거렸다.“너 지금은 말 잘한다. 나중에 예정 씨 임신하거든 그때도 똑같이 얘기할 수 있으면 내가 밥 살게.”“너 아니면 밥 먹을 데가 없을까 봐? 나 틈만 나면 우리 예정이 밥해주거든. 요리 실력이 훨씬 좋아졌어.”두 사람은 나지막이 얘기 나누며 인파들 속으로 걸어갔다.“전 대표님, 소 이사님.”적잖은 사람들이 그 둘을 향해 잔을 들고 인사했다.소정남은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고 전태윤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고개를 까딱거렸다. 나름대로 인사치레인 듯싶다.그의 시선은 늘 어떤 한 곳을 향했는데 바로 하예정이 있는 방향이었다.강일구를 비롯한 경호원들은 항상 하던 대로 묵묵히 전태윤의 뒤에서 걸으며 하예정이 없는 틈을 타 도련님께 가까이하려는 젊은 여성분들을 차단했다.도련님은 이미 유부남인데 아직도 넘보는 자가 이렇게 많다니.전태윤도 똑같이 평범한 남자이고 사랑과 욕망에 불타오르는 사람이며 여자를 좋아할 줄도 아는 사람이란 게 공개된 이후로 다들 본인들이 하예정보다 낫다고 생각돼 어떻게 해볼 마음인 듯싶다.하예정은 남편이 줄곧 자신을 지켜보는 걸 전혀 몰랐다. 전태윤의 눈엔 하예정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심효진과 함께 성소현 모녀 옆으로 다가갔다.이경혜는 몇몇 재벌가 사모님들과 얘기를 나눴고 성소현은 엄마 옆에서 단아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렇게 웃다가 얼굴에 경련을 일으킬 지경이었다.두 친구가 걸어오자, 그녀는 그제야 해방된 듯싶었다. 엄마가 드디어 시선을 옮길 수 있게 됐으니.하예정과 심효진이
이경혜는 심효진과 자기 막내아들을 이어줄 생각을 한적도 있다. ‘소정남:...태윤아, 고마워. 네 덕분에 내가 아내를 얻게 됐어.’‘전태윤: 정남아, 너 나한테 감사함을 표해야 하지 않겠어?’사모님들의 이야기 자리에서 벗어난 성소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하예정과 심효진에게 뒤늦게야 자신을 구하러 왔다고 불평했다.그에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언니 과장인데요? 하하하하, 구해줬다고요? 그 정도인가요?”심효진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모님들 다정해 보이시던데요. 눈빛이 아주 부드러워 보였어요.”그러자 성소현은 닭살이 돋는다는 듯 몸을 움츠렸다.“그건 며느리를 보는 눈빛이에요.”이 말에 하예정과 심효진 모두 깔깔 웃었다.“예정아, 저쪽 봐봐.”성소현은 갑자기 하예정을 툭툭 치더니, 한 방향을 가리켰다. “응?”하예정과 심효진인 모두 그녀가 말하는 방향에 눈길이 갔다.노동명이 웬 낯선 여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이미 노동명과 손은경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하예정은 담담했다. 그녀가 윤미라가 자기 아들에게 골라준 아내감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노 대표 옆에 웬 여자가 있어. 예진 언니한테 생각이 있던 거 아니었어?”하예정은 바로 성소현을 잡아당기며 속삭였다.“그건 우리의 추측일 뿐이지 사실이 아니에요. 언니랑 노 대표는 그냥 평범한 친구예요.”그리고 윤미라도 언니를 좋아하지 않는다.언니 또한 노동명에 대해 그 방면의 뜻이 없으니 더 이상 누군가가 언니와 노 대표를 연결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성소현은 그녀의 뜻을 금방 이해했다.“하긴, 모든 게 우리의 추측이지. 저 여자 알아? 너 아는 얼굴인데.”“한 번 만났 적이 있어요. 노 대표와 함께 우리 언니의 가게에 아침을 먹으러 온적이 있거든요.”“아, 그래?”성소현은 하예정의 팔짱을 끼더니 조용히 말했다.“난 노 대표의 얼굴에 흉터가 있는 게 마음에 안들어. 예진 언니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리고 노 대표의 어머니도 예진 언니를 마음
“예정 씨.”몇 걸음 가지 않아 여씨 사모님이 여운초를 데리고 길을 막았다.하예정은 여운초가 여씨 사모님에게 끌려 자칫 넘어지려는 걸 보고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를 부축했다.“운초 씨, 조심해요.”하예정은 여운초를 부축하고 나서야 추미자를 바라보았다.추미자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리 운초를 부축해 주셔서 감사해요. 얘가 눈이 보이지 않아 쉽게 넘어지거든요.”성소현이 옆에서 불쑥 말했다.“눈도 보이지 않는 애를 왜 그렇게 빨리 끌고 다니는 거죠?”추미자의 웃음이 굳어져 버렸다.성소현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비웃는 듯 말했다. “큰딸을 데리고 연회에 온 것이 처음이죠? 정말 보기 드문 일이에요, 내일 해가 서쪽에서 뜨겠어요.”추미자는 성소현의 비꼬는 말에 화가 났지만 얼굴에는 티가 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우리 운초가 눈이 보이지 않아 연회에 데려오지 않은 거예요. 내가 옆에서 계속 지켜줄 수도 없고, 그러다 일이라고 생길까 봐 걱정돼서요. 게다가 운초도 이런 자리를 좋아하지 않아서요. 다만 이제 운초도 나이가 적지 않고, 이런 자리에 익숙해질 때도 되었다고 생각하여 인사도 나눌 겸 데리고 나왔어요.”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추미자의 말 속 깊은 뜻을 알아들었다.여태 키웠으니 이젠 시집보낼 때가 되었다는 뜻이었다.여운초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이었다. 한껏 치장한 그녀는 매우 아름다웠는데, 여운별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눈만 멀지 않았다면... 상류층 사모님들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는 성소현은 여운초가 좋은 시댁에 시집가기 힘들거로 생각했다. 단지 장님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친어머니인 추미자 때문이기도 하다. 누가 추미자와 사돈 관계를 맺으려 할까?추미자가 작은딸을 지나치게 편애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알고 있는 사실이니.전씨 할머니는 왜 여운초를 전이진에게 골라준 걸까?성소현은 궁금해서 하예정에게 물었지만 그녀도 답을 몰랐고, 심효진도 그 이유를 모른다고 했다.“무슨 일 있으신가요?”하예정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