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엄숙하게 말했다.“추미자 씨, 내가 당신 딸더러 형을 선고받도록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이건 당신 딸이 저지른 일이란 걸 알아요. 난 단지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 여운별 씨가 잘못을 깨달았다고요? 앞으로 다시는 나를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고요? 이 말 추미자 씨는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믿지 못하겠네요.”여씨 사모님은 어두운 얼굴로 하예정을 노려보았다.남편도 늘 그녀에게 하예정과 친하게 지내며 딸을 대신해서 사정하라고 했다.그녀도 몇 번이나 딸을 대신해서 사과하고, 사죄하고, 사정하였지만, 이 시골뜨기는 조금도 용서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여운초에게도 대신 사정하라고 시켰지만, 하예정은 여전히 여운별을 고소하겠다고 고집하고 있다,추미자는 이가 근질근질할 정도로 미웠고, 속으로 절대 하예정을 가만두지 않겠다고 별렀다.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예정 씨, 실례했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손을 뻗어 여운초를 잡아당기려 했다. 큰딸이 하예정과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이 큰딸이 아니었다면, 작은딸도 하예정과 원한을 맺지 않았을 테니까.“운초야, 가자.”하지만 여운초는 추미자의 손을 뿌리치고 담담하게 말했다. “난 앞이 보이지 않아 엄마와 함께 주위를 둘러볼 수 없을 것 같으니 여기 앉아서 연회가 끝날 때까지 기다릴게요.”그러자 추미자는 쌀쌀하게 말했다. “그래? 그럼 집에도 돌아가지 마! 다시 한번 묻겠는데, 같이 갈 거야 말 거야?”여운초가 여전히 꿈쩍않자 추미자는 하예정을 힐끗 쳐다보더니 차갑게 말했다. “새로운 백이라도 생겼나 보지?”추미자가 떠나자, 하예정은 걱정스럽게 물었다.“운초 씨, 정말 집에 못 들어가면 어쩌죠?”“그 집, 들어가든 말든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나는 그 집에서 늘 투명인간이었는걸요.”여운초는 비웃는 듯 말하더니 이내 평온한 기색을 되찾고는 하예정에게 부드럽게 말했다.“전씨 사모님.”“예정이라고 불러요.”“예정 씨, 난 상
하예정도 소설이나 TV에서 다른 사람한테 약을 타 먹이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현실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친동생이 친언니에게 약을 먹여 언니의 인생을 망치게 하려 한다니... 여운초는 잠시 묵묵히 있다가 말했다.“운별이가 내게 약을 먹인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그게 무슨 가족이에요? 운초씨, 그냥 따로 나와 살아요.”그런 가족과 같이 살기에는 너무 위험해 보였다.여운초는 또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증오가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그 집, 아빠가 물려준 집인데 내가 왜 이사를 해야 하는 거죠? 이사 가야 할 사람은 그들이에요! 예전에는 내가 어리다고 괴롭혔고, 나중에는 또 장님이라고 괴롭혔어요.”하예정은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겼다.전태윤도 그녀와 말한 적이 있었다. 여운초의 친아빠가 살해당한 것일 수도 있다고. 여운초는 16살쯤에 큰 병에 걸려 죽을 뻔한 적이 있는데 여씨 일가에서는 아무도 그녀를 병원에 보내려 하지 않았다고 한다. 분명히 그녀를 죽게 놔두고 싶었던 것이다.여운초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뭔가를 발견하고 미리 유언을 남겨 재산을 딸에게 물려준 건 아닐까?그래서 여운초가 물려받은 재산을 노리고 그녀를 죽이려 한 건 아닐까?아니면 그녀가 아빠의 진짜 사망원인을 알고 아빠를 대신해서 복수할까 봐 두려워서 죽이려고 한 건가? 그때 마침 멀리 시집간 고모가 친정에 돌아왔다가 여운초가 병이 난 것을 발견하고 병원으로 보내 다행히 목숨을 건지긴 하였지만, 그 뒤로 장님이 되고 말았다.여운초가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건, 장님이 돼서 아무것도 볼 수 없고, 할 수 없기에 그들이 살려둔 건 아닐까?하예정은 여운초의 드라마 같은 스토리에 관심이 끌렸고, 그에 숨겨진 비밀을 알고 싶어 애간장을 태웠다.그녀는 여운초의 손을 잡고 달랬다.“운초 씨, 만약 말 못 할 사정 때문에 버티고 있는 거라면 잠시 더 버텨요. 살아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먼저 눈부터 치료해요.”마음
전이진은 낯이 가렵지도 않은 듯 말했다.“언젠가 내 아내가 될 사람인데요 뭐. 나중에 우리 형처럼 입밖에 꺼내지도 못할까 봐 미리 부르며 연습하는 거예요.”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이진 씨, 형을 반면 소재로 삼은 거예요?”“형이 앞에서 경험을 많이 쌓아 감정에서의 갈등을 많이 피할 수 있을 것 같아요.”하예정은 침묵에 잠겼다.‘태윤 씨가 처음으로 여보라 부른 게 언제였지?’하예정은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그때 별다른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다행히 전태윤은 그때의 하예정의 생각을 몰랐으니 말이지... 아니면 밤새도록 그 생각만 했을지도 모른다.그녀는 자리를 떠나 프로젝트 파트너가 될 사람을 찾아갔다.성소현은 심효진을 데리고 자신의 절친 문가희를 만난 후 그녀의 사촌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었다.하예정이 오자 성소현은 그녀의 팔짱을 끼고 문가희에게 소개했다.“가희야, 내 외사촌 동생 하예정이야. 전태윤 씨의 마음을 가져간 여자.”그녀는 전태윤의 마음을 가질 수 없었지만, 그녀의 사촌 동생이 그의 마음을 얻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문가희는 미소를 띠고 말했다.“사모님의 명성은 이미 자자한걸요. 오늘 밤 보니까 정말 천사 같으시네요. 전 대표의 마음을 얻은 건 당연한 일이죠.”하예정도 웃으며 말했다. “과찬이에요. 가희 씨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로맨틱하지만은 않아요. 누가 누구의 마음을 얻은 일 없어요. 우리 둘은 차차 서로에게 끌린 것뿐이에요.”사람들은 같이 웃었다.성소현의 소개로 하예정과 심효진은 많은 집안의 아가씨들을 알게 되었고 협업 정보도 많이 얻었다.이로써 이후의 야채와 과일을 수출할 길을 열게 되었다.전태윤은 비록 아내가 자유롭게 교제하도록 내버려두었지만, 사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고 있었다.그와 함께 있던 소정남은 하예정을 바라보고 있는 전태윤에게 말했다.“부인분은 태어날 때부터 이런 자리에 잘 어울리는 사람이야. 누구를 상대하든 조금도 겁내지 않아. 이런 자리가 바다라면 꼭 바다에서 자유롭게 헤엄치고 있
“너도 참.”“우리 부부가 너와 효진 씨를 이어줬잖아?”그에 소정남은 응했다.“맞아.”“그러니까 주선해 준 값으로 내 계좌번호를 주는 거야, 무슨 생각하는 거야? 신혼 선물로는 돈 말고 선물을 준비해 줄게. 돈을 주는 건 너무 촌스러워서 말이야. 하지만 주선해 준 값으로는 돈을 받는 게 좋아. 난 속물이라 돈이 좋거든.”소정남은 침묵에 잠겼다.하예정은 전태윤을 그와 따지면서 돈을 요구하는 남자로 만들었다.이 성대한 연회는 깊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다.과거에는 참가해도 기껏해야 10분 정도 있다가 떠나던 전씨 집안 도련님이었는데, 오늘 저녁에는 연회가 끝날 때까지 있다가 사랑하는 아내를 데리고 떠났다. 전태윤은 그의 실제 행동으로 그가 얼마나 아내를 총애하는지 증명했다.연회는 또한 사람들에게 전씨 가문에서 하예정의 흔들리지 않는 지위를 보여주었다. 외부 소문처럼 시어머니와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시댁의 미움을 받는 것도 아니었다.시부모님은 그녀를 딸처럼 여겼고 시동생들은 그녀에게 전태윤을 대하듯 존경했다.하예정이 오늘 밤 몸에 치장한 액세서리들은 시어머니가 준 것인데, 물건을 볼 줄 아는 사람들은 모두 그 보석의 가치가 수억 원에 달한다는 것을 눈치챘다. 장소민이 이 며느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이렇게 귀중한 보석을 줄 수가 없다.오늘밤이 지난 후로부터, 하예정이 시댁에서의 지위가 불안정하고 시어머니와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은 점차 사라졌다.이런 것들에 대해 그녀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생각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별생각 없이 남편과 같이 연회에 참석했을 뿐이다.전태윤의 차에 오른 후, 그녀는 몸을 옆으로 기울더니 남편의 몸에 기대어 중얼거렸다. “나 안 취했어...”그는 그녀의 예쁜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주량이 좋으면 얼마나 좋다고 이 정도로 마신 거야? 처형이 알면 또 내가 당신을 잘 지켜보지 못했다고 나무랄걸.”처형은 그에게 그녀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지 않도록 잘 지켜보라고 했다. 그녀는 술을 좋아하지만 술
전태윤은 사랑스럽다는 듯 웃으며 그녀를 꼭 껴안았다.그녀가 자기 아내라는 것이 매우 좋았다.하예정은 곧 잠에 들었다.잠이 든 것을 본 전태윤은 그녀를 껴안으며 양복 점퍼를 벗어 그녀의 몸에 걸쳐줬다.“피크 별장으로 돌아가요.”전태윤은 낮은 목소리로 운전기사에게 분부했다.기사는 공손히 그에 응했다.전태윤은 아내와 함께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여 눈을 감았다.피크 별장으로 돌아왔을 때 전태윤도 잠이 들었다.기사가 차를 세우고 고개를 돌려보니 그들 부부가 모두 잠들어 있었다. 기사는 옆에 있는 강일구에게 물었다.“일구 씨, 도련님을 깨워야 할까요?”“당연하죠. 도련님과 사모님을 차에서 자게 할 수는 없잖아요? 내일 도련님께서 차 안에서 깨어나면 기사님을 해고할 수도 있어요.”그러자 기사는 웃으며 말했다.“일구 씨가 깨우면 안 될까요.”“당신은 운전기사이고, 저는 경호원일 뿐인데요.”“도련님께서 일구 씨와 사이가 좋잖아요. 사모님도 일구 씨를 좋아하시고요. 일구 씨가 깨우면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실것 같은데... 도련님께서 화낼까 봐 두려워서 그래요.”“그건 제가 도련님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고 사모님에게 잘 보였기 때문인걸요.”그는 하예정의 호감을 사기 위해 큰 노력을 했다.예전에 전씨 가문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은 어르신과 큰 도련님이었지만, 지금은 사모님이니 사모님의 호감을 사게 되면 승진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전태윤의 주변에 경호원이 그렇게 많았지만, 사모님은 강일구의 이름만 기억했다.“형님...”“됐어요, 제가 깨울게요.”그는 지체하지 않고 공손히 불렀다.“도련님, 집에 도착했어요.”전태윤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그러다 또 한 번 부르니 비로소 반응하기 시작했다.기사도 때맞춰 같이 입을 열었다.“도련님, 집에 도착했습니다.”강일구가 자신을 쳐다보자, 기사는 멋쩍은 듯 웃었다.이에 강일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모두 자신의 직업을 위해서니까.전태윤이 깨어나자, 강일구와 운전기사는 급히 차 문을 열
강일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괜찮아요, 사모님이 알아서 도련님을 달래줄 테니. 도련님은 막무가내로 성질을 부릴 때마다 사모님에게 져요. 사모님이 도리를 따지기만 하면 도련님은 질 게 분명해요.”박 집사는 그를 노려보았다.강일구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사실이잖아요. 걱정 마세요, 사모님만 계시면 하늘이 무너져도 버틸 수 있어요. 도련님이 화나실 때 우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어요, 사모님만 찾으면 돼요.”어쨌든 아무리 화를 내도 사모님을 다치게 할 리는 없을 테니.“늦었으니 일찍 쉬세요. 저도 이젠 돌아가서 쉴 거예요.”강일구는 하품하고는 박 집사에게 인사하고 돌아갔다.박 집사는 그가 한 말을 되새기며 웃었다.“어쩐지 저 자식 사모님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쓴다 했더니. 참 볼 줄 알아.”‘강일구: 그래서 내가 가장 빨리 월급이 올라가는 거예요.’한편 관성 호텔.여씨 집안의 세 식구는 거의 마지막으로 호텔을 떠났다.앞이 안 보이는 여운초가 걸음이 너무 느린 탓이었다.사람이 점점 적어지자, 여 씨 사모님은 연기하기도 귀찮은지 아예 여운초를 놔두고 먼저 호텔에서 나갔다.지팡이가 없는 여운초는 밖으로 나가려고 더듬으며 걸었지만, 방향을 잘못 잡고 오히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그녀는 길을 가다가 갑자기 멈춰 섰다.“전이진?”전이진이 낮은 목소리로 응하고는 물었다.“나인 줄 어떻게 알았어?”“뭔가 익숙한 냄새가 나길래.”전이진의 눈에 웃음기가 돌았다.“뭐 빠뜨린 물건이라도 있어? 왜 다시 돌아왔어? 나한테 말해봐, 내가 찾아줄게.”그녀는 얼굴이 조금 빨개졌다. 밖으로 나가기 전, 엄마가 선글라스를 끼지 말라고 분부했었다. 선글라스에 가려지지 않은 얼굴은 표정을 읽기 쉬웠다.“...길을 잘못 집었어. 원래는 나가려고 했거든. 어느쪽으로 가야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있어?”전이진은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고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잡았다.그의 행동에 놀란 여운초는 재빨리 손을 빼고는 두 걸음 뒤로 물러서기까지 했다.“어떻게
전이진은 멀리서 여씨 집안의 경호원 차를 따라갔다.처음에는 그 차가 별로 수상한 곳은 없었다.약 10분 정도 지나자, 여씨 일가의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빠지기 시작했다.전이진은 불안해졌다.대체 여운초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전이진은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지만, 티를 내지 않고 여전히 천천히,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로 따라갔다. 목적지에 도착해야 상대방의 목적을 알 수 있다.여운초는 전이진이 따라오는 것을 몰랐다. 경호원도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녀는 바깥의 기척을 가만히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옆에서 달리는 자동차가 많았는데, 한참 지나니 도로의 자동차 소리가 많이 잦아졌다.그녀는 빌라 구역으로 돌아가는 그 길로 접어들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 길은 빌라 구역으로 가는 길이어서 바깥 도로에 비해 차가 적었다.낮에도 적지만 밤이 되면 거의 차가 다니지 않았다.그녀는 피곤한 표정으로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자고 싶었지만, 감히 잠들지 못했다.익숙한 환경으로 돌아가기 전에는 경호원이 그녀를 도중에 버리기라도 할까 봐 걱정돼 잠도 못 잤다.차가 얼마나 오래 달렸는지는 모르지만, 마침내 멈추었다.경호원은 차를 세운 후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여운초는 경호원이 차에서 내리는 기척을 듣고 서둘러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다.차 문이 열리자, 그녀는 누군가가 그녀에게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낯선 사람이었다.걸음걸이를 들어보니 낯선 걸음이었다. 상대방이 다가오자 그녀는 그의 몸에서 짙은 담배 냄새를 맡았다.“누구세요?”그녀는 경계하면서 물었다.상대방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녀의 앞에 서서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상대방이 그녀를 매우 자세히 보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의 시선에 그녀는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그녀는 뒤로 물러서서 바로 차 문을 닫으려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한발 늦었다. 상대방은 발로 차 문을 막더니 이어 차에 올라탔다.그녀는 몸을 돌려 반대편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했지만, 그 남자는 그
그는 여운초에게 한바탕 두들겨 맞고는 얼른 차에서 뛰어내렸다.여운초도 곧 차에서 내렸다.눈이 보이지 않는 그녀는 당연히 계속해 상대방을 쫓으면서 팰 수는 없었다. 차에서 내리자 다른 한쪽 신발도 벗어 양손에 든 채 뛰었다.그녀도 자신이 어디로 도망가고 있는지 몰랐다.겨우 몇 걸음 뛰고는 온몸이 담배 냄새인 그 남자에게 잡혔다. 그가 거칠게 그녀를 뒤로 잡아당기자, 그녀는 바로 차 앞부분에 부딪혀 넘어졌다. 그는 곧 그녀를 자기 몸으로 덮으려고 다가갔다.여운초는 다시 하이힐로 상대를 패려다가 신발을 빼앗겼다. 하이힐이 손에 없자 그녀는 무릎을 세워 힘껏 찼다.윽 하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몸을 누르는 무게감이 사라졌다.급소를 정곡으로 찌른 듯했다.여운초는 그 틈을 타서 몸을 옆으로 굴리고는 얼른 다시 일어나 쏜살같이 도망쳤다.담배 냄새가 나는 그 남자는 여운초에게 급소를 찔려 한동안 쫓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이곳은 외진 곳이라 눈에 띄지 않도록 일부러 부하들에게 따라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여씨 집안의 경호원도 그가 요구한 대로 지정한 장소까지 여운초를 데려다준 후 조용히 떠났다.그는 여 대표 부부가 몰래 동영상이라도 찍어 앞으로 계속 그들을 위해 일하도록 협박할까 봐 무서웠다.그래서 경호원에게 여운초를 데려온 후 바로 떠나라고 했다.2분 정도 추스른 뒤에야 담배 냄새가 나는 그 남자가 일어났다. 여운초는 이미 100여 미터 도망쳤다. 앞이 안 보이는 그녀는 비틀거리며 뛰었다. 낯선 환경에서 그녀는 앞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때때로 나무에 부딪혔다.그녀는 지금 어느 공원에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그 남자는 그녀를 쫓아갔다.이 장님은 만만치 않았지만 그의 마음에 들었다. 그냥 도망치게 놔둬도 멀리 갈 수 없었고, 게다가 방향을 잘못 잡아서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라 산기슭으로 달려갔다. 그곳은 더욱 조용할 뿐만 아니라, 정자도 하나 보였다.‘저 장님을 제압한 다음 정자에 있는 석탁 위에서...’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그의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