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몸을 돌리자마자 전이진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전이진은 재빨리 그의 주먹을 피했고 그가 휘두른 것과 같이 주먹을 되날렸다. 상대방은 머리를 살짝 비켜 주먹을 피했다.차 안의 공간이 좁은 탓에 행동이 제한받은 남자는 비록 격렬하게 반항하며 전이진과 싸웠지만 열세에 처했다. 또한 그 남자는 앉아있었고 전이진은 서 있었다.분노에 휩싸여있는 전이진은 무자비했다.몇 분 후, 그 남자를 얼굴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아무런 반격도 하지 못할 지경으로 때린 후 그를 차에서 끌어 내려 가로등의 불빛을 빌려 상대방의 모습을 보려 했다.방금 미친 듯이 때리는 데만 집중하느라 상대방의 생김새를 홀시한 데다가 지금은 또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코가 퉁퉁 부을 정도로 패놓아 상대방이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었다. 나이는 대충 40에서 50세 정도인 것 같았다.“감히 운초를 건드려?”전이진은 상대방을 걷어차며 차갑게 말했다.“운초는 내 형수의 친구야, 우리 전씨 가문이 지키는 사람이란 말이야.”상대방은 묵묵부답이었다.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이진은 차 키를 뽑고 문을 닫아 남자가 차를 몰고 도망갈 기회도 주지 않았다.그리고 휴대전화를 꺼내 그 남자의 사진을 찍었다. 이 남자가 혹시라도 도망친다고 해도 사진을 소정남에게 넘겨주면 이 사람의 신원을 말끔히 밝혀낼 수 있다.사진을 찍은 후, 전이진은 다시 한번 상대방을 걷어찬 다음 여운초가 도망친 방향으로 달려갔다.여운초은 필사적으로 달렸다. 자신이 어느 방향으로 뛰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앞에 길이 있으니 달릴 수 있는 한 계속 달렸다.뒤에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 남자가 쫓아오는 줄 알고 더 빨리 뛰다가 또 나무를 들이받고 넘어졌다.그녀는 앞길을 똑똑히 보려고 애써 눈을 부릅떴다.눈앞은 흐릿했고 무엇을 봐도 겹친 실루엣 뿐이어서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억지로 앞길을 똑똑히 보려고 하니 머리가 따끔거리기까지 했다.“운초야.”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일어나서
여운초는 몸부림치는 것을 포기했다. 하지만 감히 전이진을 붙잡지는 못하고 두 손을 어색한 자세로 들고 있었다.전이진은 그녀를 안고 걸으며 말했다.“내 앞에서는 작고 여리여리해 보여서 엄청 가벼운 줄 알았는데 안아보니 꽤 무겁네. 만약 몇 킬로미터를 다시 안고 돌아와야 하는 거였으면 힘들어서 두 팔도 못 들었을 거야.”“...너한테 안아달라고 한 적 없어.”‘혼자 갈 수 있다니까.’신발도 신지 않아 걷는 게 너무 느리다고 하면서 안고 가겠다고 한 건 전이진이였다.“내려줄 테니까 그냥 날 잡고 가는 건 어때?”“그래.”그를 잡고 가는 것이 안겨 가는 것보다 훨씬 나았다.전이진은 바로 그녀를 내려놓았다.몇 분 정도는 안고 갈 수 있지만 오래 안기에는 무리였다. 그녀가 무겁다는 그의 말도 사실이었다.‘여운초: ...난 성인이라고!’성인은 적어도 40, 45킬로는 족히 된다. 그녀는 뚱뚱하지는 않지만, 마른 편은 아니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그녀를 도와 키와 체중을 잰 적이 있는데, 163센티미터에 체중은 41킬로였다.전이진은 그녀를 내려놓고는 양팔을 휘둘렀다.그녀가 볼 수 없는 것이 다행이었다. 만약 볼 수 있었다면 그녀는 언짢았을지도 모른다.따뜻한 손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가자, 아직 몇백 미터 남았어.”그녀는 꽤 멀리 달렸다.“고마워.”“고마워할 필요 없어. 나도 형수님이 부탁해서 따라온 거야. 형수님이 꼭 집에 데려다 주라고 했거든. 네가 거절했다 해도 무사히 집에 갔는지 확인하려고 따라온 거야.”여운초는 마음속으로 하예정에게 감사했다.그녀는 항상 자기가 스스로를 잘 보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 밤의 일을 통해 그녀는 매우 가혹한 현실에 직면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령 그녀가 똑똑하고 눈치가 빠르다고 해도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이다.게다가 그녀는 싸움에 능한 사람도 아니다.몸에 칼을 지니고 다닌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 반격은 못 할망정, 자신을 다치게 할 수도 있다.“너 말이야, 제일 중요한
“걱정 마, 언젠가는 정 의사가 너의 눈을 치료해 줄 거야.”전이진은 그녀를 위로했다.“신의 어르신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어르신은 연세가 많으셔서, 찾았다고 해도 병을 봐주진 않으실 것 같아. 듣자 하니 지금은 모두 정 의사가 병을 본다고 해. 정 의사는 신의의 의술을 아주 잘 물려받았어.”전이진이 보기엔 정 의사를 모셔 여운초의 눈을 치료해 줄 수 있다면 그게 제일 좋은 방법이었다. 감히 신의가 손수 치료하길 바라지도 않았다.전태윤은 정 의사가 매우 대단한 사람이라 했다. 의술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독도 잘 쓴다고 했다. 당연히 독으로 사람을 해칠 리는 없고 그저 독을 잘 쓴다는 사실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를 두려워하게 할 뿐이다.게다가 높은 무술 솜씨로 일찍이 남씨 가문 사모님과 함께 남씨 가문 가주의 목숨을 구한 적이 있다.어쨌든 전이진의 눈에 정 의사는 제2의 신의였다.“너 신의에 대해 잘 알아?”전이진은 솔직히 말했다.“아니, 난 형에게서 들었을 뿐이야. 예씨 집안의 다섯째 도련님이 우리 전씨 그룹과 사업상의 왕래가 있어 깊이 협력하고 있거든.”예준성이 결혼할 때 전태윤이 직접 A시에 가서 결혼식에 참가하기까지 했다.“아, 그래.”여운초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한참을 걷다가 전이진의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그는 차 문을 열고 그녀를 차에 태운 후 다시 그에게 맞아 얼굴이 심하게 부은 그 남자를 보러 갔다. 상대방은 이미 기회를 틈타 도망친 후였다.전이진은 다시 차에 올라타 물었다.“널 해친 그 남자, 아는 사이야?”“낯선 사람이야. 온몸에서 담배 냄새가 났어. 담배 없이는 살 수 없는 남자인 것 같아.”여운초는 그 남자에게서 담배 냄새밖에 맡지 못했다.“내가 그 사람을 때릴 때 누구인지 정확히 보지 못했어. 때리고 나서 보려고 했을 때는 이미 맞아서 얼굴이 부은 후라 알아보지 못했고. 그렇지만 괜찮아. 그 사람의 얼굴을 찍어놨어. 내일 소정남에게 조사를 맡기면 돼. 네 엄마가 너를 그 사람에게 보낼 정도
여 대표는 관심하듯 묻다가 맨발로 있는 낭패한 모습의 여운초를 보고 아내에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여보, 먼저 운초를 부축해 들어가.”그러고 전이진을 향해 말했다.“이진 도련님, 집에 들어오시죠.”전이진은 여운초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떠나려다가 결국 여 대표의 체면을 봐서 여씨 집안의 별장으로 들어갔다.몇 분 후.전이진의 말을 들은 여 대표는 얼굴이 퍼렇게 되어 욕을 퍼부었다.“빌어먹을 놈, 몇 마디 욕을 한 것뿐인데 운초에게 복수하려 하다니...”그러다 연거푸 전이진에게 감사를 표했다.“이진 도련님, 정말 감사해요. 당신이 아니었으면 우리 운초, 그 악랄한 경호원에게 무슨 짓을 당했을지 몰라요.”오해를 받은 경호원:...여씨 가문 사모님은 여운초가 묵고 있는 가정부 방에서 나왔다.마음속은 말할 수 없는 실망으로 가득했다.여운초는 낭패한 모습으로 하이힐을 잃어버린 것 외에는 아무 손실도 없었고, 몸에 멍든 곳 하나 없었다.‘연회에서 약을 먹일 걸 그랬어. 그러면 저항할 힘도 없었을 텐데.’상대방이 의식이 없는 여자는 싫다고 해서 약을 먹이지 않았다. 장님 하나조차 손에 못 넣을 정도로 쓸모없을 줄은 몰랐다.‘그리고 전이진이 어떻게 그곳에 나타난 거지? 마침 저 눈이 먼 년을 구하고 말이야.’그녀의 보배 딸을 또 구할 수 없게 되었다.사모님은 속으로 너무나도 분했지만,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그녀는 다가와 여 대표의 옆에 앉으며 다시 한번 전이진에게 감사를 표했다.여운초는 옷을 갈아입고 실내화를 신고 나왔다.전이진은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그녀를 보고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다가와 조용히 옆에 앉아 친엄마와 계부가 경호원에게 욕설을 퍼붓는 것을 들었다.계부가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엄마는 그녀의 명성에 영향을 미친다며 극구 말렸다.“대표님, 사모님, 시간이 늦어서 이만 돌아갈게요.”전이진은 여 대표 부부가 연기를 참 잘한다고 속으로 한탄하였지만 그들을 까밝히지는 않았다. 이제 여운초에게 손
“우리가 걔를 전씨 일가에 시집보내고 싶다고 말처럼 되는 줄 알아?”여태웅이 말했다.“나도 싫어. 물론 운초가 내 동생 유일한 핏줄이라 평상시에 조금 더 신경 써주긴 했지만 내가 제일 사랑하는 건 그래도 우리 아들, 딸들이야. 어떻게 운초를 갑부 집안에 시집보내고 싶겠어?”“운별이는 전씨 일가에 시집보낼 생각도 하지 마. 턱도 없어. 다른 건 제쳐두고 우리가 전태윤 씨네 부부랑 원한을 맺은 것만으로도 그 집안 다른 도련님들이 운별이를 다 싫어할 거야. 게다가 운별이는 이제 고작 스무 살이라 결혼을 서두를 필요 없어. 급선무는 운별이를 구해내는 거야.”부부가 소파 앞으로 걸어가 앉았다. 추미자가 남편에게 물었다.“어떻게 구해요? 머리 숙여 사과도 했고 할 수 있는 건 다 시도했는데 아무 소용 없잖아요. 이미 사람 찾아서 중재해 주려고도 했는데 전이진 씨가 다 망쳐놨어요. 여보, 이진 씨가 공태민을 알아볼까요? 비록 다 같은 공 씨이지만 너무 먼 친척이라 만약 알아본다면 공씨 일가 사람들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공태민은 공세호 어르신 일대에서 이미 먼 친척이 되었지만 돈이 많다 보니 공씨 일가에서 간신히 말이 서는 편이야. 전이진 씨는 알아보지 못했을 거야. 전씨 일가는 공씨 가문의 직계 친척과만 친하게 지내. 먼 친척은 알지 못할 거야.”“갈팡질팡하지 말고 일단 진정 좀 해. 어차피 그쪽에서 조사해 내도 경호원에게 밀면 돼. 내일 당장 그 경호원 관성에서 떠나보내.”추미자가 대답했다.“알았어요. 전이진 씨한테 들러붙겠다는 건 대체 어떻게 하려고요?”“전이진 씨가 운초를 구했으니 운초를 이진 씨에게 시집보내는 거로 괴롭혀야지. 전씨 일가에서 운초 같은 며느리를 절대 안 받아들일 거야. 그때 가서 상의하는 거지. 우린 오직 운별이만 건져내면 돼. 운별이를 건져내 준다면 우리도 더는 이진 씨한테 집착하지 말자.”“그 천한 년이 절대 안 도와줄 거예요. 걔는 운별이가 형을 선고받길 바라고 있다고요. 게다가 만에 하나 전씨 일가에서 그년 받아들인다
이건 숙취 후의 두통이다.그녀는 두통을 참으며 휴대폰을 가져와 시간을 봤더니 어느덧 오전 열 시였다.“본인은 깨나면 나 홀로 방에 남겨두고 가면서 내가 먼저 깨면 버리느니 어쩌니 투덜대는 거야?”그녀가 혼잣말로 구시렁대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똑똑.”하예정은 도우미인 줄 알고 바로 대답했다.“들어와요.”다만 문을 열고 들어오는 건 그녀의 언니 하예진과 조카 우빈이었다.“언니?”하예정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이 시간대는 언니 가게가 아직 문 닫기 전이었으니까.“여긴 어쩐 일이야?”하예정이 침대에서 내려오려고 했는데 크게 움직이니 머리가 더 깨질 듯이 아팠다.하룻밤 잘 잤는데 왜 아직도 아픈 걸까?고작 몇 잔 더 마셨을 뿐인데.하예진이 다가와 침대 머리맡에 앉아서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봤다.“머리 아파?”“아니, 전혀.”하예정은 웃으며 거짓말을 둘러댔다.“오늘 가게 문을 일찍 닫고 너 보러 왔어. 어제 얼마나 마신 거야?”“얼마 안 마셨어. 모임 있을 땐 술을 면하기 어려워. 그냥 몇 잔 좀 마셨을 뿐이야. 진짜 딱 몇 잔이야.”하예정은 언니가 항상 본인에게 술 단속하는 걸 알고 있다. 전태윤에게도 동생이 주량이 약해서 술을 물 마시듯 퍼마시지 못하게 지켜봐달라고 신신당부했었다.“제부가 너 술 많이 마셨다고 하더라. 집에 돌아와서도 계속 좋은 술이라고 주절거렸다며? 연회 장소에서 술을 면하기 어려워도 정도껏 마셔야지. 내가 몇 번을 말해?”하예진도 결혼 전에 일적으로 술자리에 많이 참석했는데 본인 주량을 알고 절대 과음하지 않았다. 술 마시는 장소에서 그녀는 항상 실수하지 않도록 정신을 다잡고 있었다. 괜히 딴 사람의 꾀에 넘어가면 안 되니까.“태윤 씨가 언니한테 고자질했어?”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하예진이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내리쳤다.하예정은 언니한테 찔린 곳을 어루만지며 나지막이 구시렁댔다.“하여튼 날 고자질하는 건 1등이라니까. 조금만 잘못해도 쪼르르 달려가서 언니한테 일러바치잖아. 난 어머님, 아버님
하예진은 사실 가볍게 잡아당겼을 뿐인데 하예정이 일부러 큰소리로 외치며 언니가 마음 약해지길 바랐다.“우빈아, 얼른 이모 좀 구해줘.”조카에게 구조 요청을 보내자 의젓한 우빈이가 재빨리 침대로 기어올라 이모의 귀를 잡은 엄마 손을 떼어놓았다. 그러고는 이모 앞에 나서서 엄마한테 말했다.“엄마, 이모 아파요.”하예정은 조카를 와락 끌어안고 웃으면서 볼에 뽀뽀해 댔다.“이모가 예뻐한 보람 있네.”하예진은 또다시 동생의 이마를 쿡 찔렀다.“얼른 가서 씻고 옷 갈아입어. 내려가서 밥 먹어야지.”“알겠어요, 언니.”“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내가 나이 들어 보여?”“아니, 그럴 리가 있겠어. 우리 언니 얼마나 젊은데. 18세 소녀 같아.”살아남겠다는 생존 본능, 만 렙은 될 듯싶다.하예진은 실소를 터트렸다.“나도 18세 소녀가 되고 싶은데 아쉽게도 난 관세음보살이 아니라서 영원히 그 나이에 머무를 순 없어. 오후에 차 뽑으러 가는데 시간 되면 같이 갈래? 아 그리고 제부가 우빈이에게 찾아준 선생님이 점심때 올 거야. 제부가 너한테 전하래. 점심 집에 와서 밥 먹고 오후엔 쉰대.”공세호 어르신이 일요일에 연회를 열어서 다음 날 적잖은 기업 대표들이 회사로 출근해야 했다.전태윤 도련님도 업무에 착실한 대표님이라 마찬가지로 출근하러 회사로 갔다.“그 무술 선생님?”“응.”하예정은 우빈이를 내려놓고 말을 이었다.“지금 바로 가서 씻을게. 오후에 나랑 함께 차 뽑으러 가자.”하예진은 아들을 안으며 동생에게 대답했다.“서둘러 그럼. 아래층에서 기다릴게.”“알았어.”하예진은 아들을 안고 동생 방에서 나왔다.이제 막 계단을 내려가려 하는데 마침 노동명이 박스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그녀는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노 대표님도 오늘 회사 안 나가셨나? 왜 예정의 집에 왔지?’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가다듬고 우빈이를 안은 채 계단을 내려갔다. 노동명 앞으로 다가간 하예진이 활짝 웃으며 물었다.“대표님, 우리 제부한테 뭐 보내주러 왔나 봐요? 엄
“안 그래도 태윤이가 나 깍쟁이라고 놀릴까 봐 두려워. 좀 더 비싼 자전거를 사줘야 하는데 고작 이런 것만 해주잖아.”노동명은 우빈이를 제 앞으로 끌어와 박스를 가리키며 말했다.“우빈아, 아저씨가 사준 자전거 어때? 마음에 들어? 우빈이 자전거 타고 싶어?”주우빈은 저녁에 엄마랑 집 아래에서 산책할 때 다른 어린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던 장면이 떠올라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네, 아저씨. 나 자전거 좋아해요.”노동명이 웃으며 말했다.“그럼 아저씨가 지금 바로 조립해 줄게. 다 조립하거든 함께 나가서 자전거 타자. 풍차도 사 왔어. 자전거 앞에 달면 우빈이 자전거 탈 때 바람 따라 풍차도 돌아갈 거야. 엄청 예쁘겠다.”우빈의 얼굴에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신난 마음을 감추려야 감출 수가 없었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자전거가 2만 원 좌우이고 또 본인과 전태윤의 관계까지 들추어내니 더는 돈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내일부터 노동명이 가게로 아침 먹으러 오면 보름 동안 공짜로 토스트를 해줄 생각이었다.노동명은 박스를 뜯고 우빈이를 위해 자전거를 조립하기 시작했다.하예정이 아래로 내려오다 이 광경을 보더니 가볍게 웃었다.“동명 씨, 회사 안 나가도 돼요?”어젯밤 연회에서 노동명은 손은경과 꽤 친해 보였다. 둘은 나중에 함께 춤도 한 곡 췄고 윤미라는 입이 귀에 걸릴 것만 같았다.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은 전부 눈썰미가 좋아 손은경이 윤미라가 찜한 며느릿감이란 걸 바로 알아챘다.그 뒤로 다들 노동명과 손은경을 부추겼다.하예정은 정말 생각 밖이었다. 전태윤이 집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명이 찾아오다니, 게다가 언니와 우빈이가 여기 있다는 걸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어제 너무 달려서 오늘은 집에서 좀 쉬려고요.”노동명은 또다시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우빈이 주려고 어린이용 자전거를 샀는데 태윤이가 우빈이 여기 있다길래 이리로 들고 왔어요.”노동명은 그녀에게 대답하며 함께 따라온 공구 상자에서 설명서와 공구를 꺼내 들고 자전거를 조립했다.우빈이
노동명이 대답했다.“내가 갑자기 강성에 오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우빈은 아직 몰라. 우빈의 친구가 찾아오는 바람에 신나게 놀고 있거든. 내가 누구인지조차 잊을 정도인데 내가 어디로 갔는지 걱정할 겨를도 없어.”하예진이 웃었다.“동명 씨는커녕 엄마인 저조차도 생각하지 않나 봐요.”“우빈이 녀석이 예정 씨와 사이가 좋으면 예진이 네가 자유로워서 좋잖아.”“그건 그래요. 우빈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예정이가 늘 저를 도와 녀석을 봐줬거든요. 우빈이 아빠가 출근해야 해서 제가 산후조리 때부터 예정이가 늘 우리 모자를 돌봐줬죠. 제가 병원에서 아기를 낳을 때야 우빈 아빠가 휴가를 냈거든요. 전 시부모님은 병원에서 우빈을 한 눈만 보고는 행방이 묘연해지고요. 이혼 전에는 심지어 저보고 둘째를 낳으라고 했는데 다행히도 제가 이혼했네요. 아니면 제가 평생 그 집안에 얽매여서 살아야 할지도 몰라요.”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3층으로 올라간 두 사람은 레스토랑으로 들어갔고 하예진은 노동명을 부축해 앉힌 뒤 물어보았다.“뭐 드시고 싶어요?”“네가 주문해. 난 편식하지 않아. 아무거나 먹으면 돼.”하예진은 경호원들을 불러 앉힌 뒤 휴대전화를 꺼내 벽에 붙어 있는 주문 코드를 스캔하여 노동명이 좋아하는 요리 몇 가지를 시켰고 고개를 돌려 경호원들에게 물어보았다.“술 드실래요? 동명 씨는 제가 차로 모시면 되니까 다들 술 마시고 싶으면 한잔해도 돼요. 운전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노동명의 경호원이 대답했다.“우리는 술 안 마셔요. 술을 주문하지 않으셔도 돼요.”노동명도 술 마시지 않았다.“그럼 술 주문하지 말아요.”하예진과 강일구 일행은 식사했지만 지금 또 노동명과 함께 식사하려고 한다.곧 하예진은 주문을 마쳤다.하예진 옆에 앉은 노동명은 그녀에게 가까이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예진아, 사실 난 형인 씨 무식함이 너무 감격스러워.”하예진은 바로 노동명을 노려봤고 그는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가 안목이 뛰어났다면 내가 널 가까
“고마워요. 괜찮습니다.”노동명은 정중하게 감사 인사를 건넸다.사실 노동명은 하루 호텔에 묵은 적 있지만, 횟수가 적은 탓으로 누구도 그가 노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했다.노동명은 말할 것도 없고 전씨 가문의 대표 전태윤이 왔다고 해도 호텔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전씨 그룹의 모든 호텔을 관리하는 사람은 전호영이기 때문에 모든 호텔 직원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전호영이었다.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하러 나오는 길에 마침 안으로 들어가는 노동명을 만났다.“동명이 형.”전호영은 노동명을 보고 조금 놀랐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다.하예진이 오늘 노동명이 올 것이라는 소식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다.노동명은 오후 2시 전에 도착한다고 했기에 전호영은 노동명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줄 알았다.하예진이 방금 밖에서 돌아왔고 아직 노동명을 데리러 가지 않았다.그러나 지금 경호원들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모습을 본 전호영은 좀 의외라는 듯 웃으며 노동명 앞으로 다가서며 인사했다.“형, 혼자 오셨어요?”“응, 내 개인 비행기를 공항에 세웠거든. 강성으로 오기 전에 차를 빌려놨어. 내리면 바로 차를 탈 수 있게 말이야. 다들 바쁜 거 알고 내가 미리 말 안 하고 왔거든.”노동명은 고현을 바라보았다.고현은 노동명의 앞으로 다가가 오른손을 내밀면서 공손히 인사했다.“노 대표님.”노동명은 고현과 악수를 하고 나서 전호영에게 말을 건넸다.“호영아, 먼저 일 봐. 날 신경 쓰지 말고. 예진이가 호텔에 있다고 했어. 날 데리러 내려올 거야.”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걸어오는 하예진을 본 전호영은 노동명에게 웃으며 말했다.“예진 누나 오셨어요. 형,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전호영은 하예진에게 눈썹을 움직이며 개구쟁이 표정을 짓자 하예진이 그를 째려보았다. 전호영은 빙그레 웃으며 고현과 함께 밖으로 향했다.“식사하셨어요?”하예진은 노동명을 보자마자 배고프냐고 물었다.노동명은 배를 더듬으며 가여운 모습을 보였다.“너희들이 어젯밤에
“엄마...”“더 이상 엄마라고 부르지 마. 난 네 엄마가 아니야! 또 엄마라고 부르면 네 혀를 잘라서 밖에 던질 거야! 네 엄마는 촌에서 네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말을 마친 이은화는 다시 병실 문을 닫았다.이윤정은 눈물범벅이 되었지만 더는 소리 내서 울지 못했다.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셈이다.병실 침대에 누워있던 정군호는 이윤정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으면서 가슴이 매우 아팠지만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발걸음 소리를 들려오자 정군호는 재빨리 눈을 감았다.이은화의 눈에 밟힐까 봐 무서웠다.정군호는 자신의 생활과 이윤정의 생활도 이제 끝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그가 지금 이씨 가문에서 쫓겨나지 않았다고 해도 앞으로 이씨 가문에서 지낼 삶은 개만도 못할 것이다.하지만 정씨 집안을 위해 참을 수밖에 없다.정일범이 가주 자리에 오르지 않는 이상 정군호의 삶은 나아질 수 없을 것이다.친딸 이윤미가 가주 자리에 오른다고 해도 정군호의 삶은 변할 것이 하나도 없다.정군호는 마음속으로 자신이 상처가 다 나아서 퇴원하면 정일범을 도와 자리를 가주 차지하여 이씨 가문의 역사를 새로 쓰겠다고 맹세했다.고급 렌터카 한 대가 하루 호텔 입구에 도착했다.차 안에 앉아있던 노동명은 하예진에게 그가 도착했다고 메시지를 보냈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아직 하루 호텔로 오는 중인 줄 알고 서둘러 그에게 전화했다.노동명이 전화를 받자 하예진이 물었다.“동명 씨, 지금 어디예요? 공항이에요? 기다리세요. 제가 지금 바로 떠날게요.”“아니야. 내가 렌터카를 타고 왔어. 지금 하루 호텔 앞인데 네가 지금 호텔에 있다면 지금 대문으로 나오면 나를 볼 수 있을 거야.”“알겠어요. 바로 내려갈게요.”하예진은 방금 밖에서 호텔로 돌아왔다.오늘 노동명이 그녀를 보러 온다는 생각에 일찍 호텔로 돌아왔다.노동명이 오늘 오후 2시쯤 하예진을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호텔로 돌아가지도 않고 회사 설립을 위해 밖에서 뛰어다녔을 것이다.그녀는 고씨 그룹에 가서 고현을
이은화는 한참 동안 이윤미를 올려다보더니 부드럽게 말했다.“엄마는 네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아. 난 네 마음속에도 강한 힘이 있다는 것도 잘 알아. 젊었을 적 날 닮았지. 그런데 넌 좀 착해.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공평함은 없다는 것만은 알아야 해.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상이야.”이윤미는 말을 잇지 않았다.“돌아가.”이은화는 이윤미가 이윤정보다 낫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이윤미가 자신의 말을 전부 듣지 않으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친딸 이윤미는 그녀만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이은화는 어느 땐가 그녀가 애써 얻은 모든 것이 맏언니 이은숙의 후손에게 돌아갈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그렇게 되면 이은화가 수십 년 동안 열심히 일한 것들이 전부 헛수고로 될 테니까.정말 그런 날이 온다면 이은화는 아마 죽어서도 편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이윤미는 이은화에게 스스로를 잘 돌보라고 당부한 뒤 병실을 나섰다.이은화는 딸이 떠나는 것을 지켜본 뒤 다시 병실로 돌아와 침대 옆에 앉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윤미가 돌아갔어.”“네.”정군호가 대답하며 맘속으로 불효녀 이윤미를 욕했다.방문하러 왔으면서 그에게 관심 어린 말도 건네지 않는다고 원망했다.‘내가 몹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나? 그래도 나한테 와서 관심 정도는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니야?’“내가 윤정을 내쫓았어. 앞으로 윤정이는 우리 이씨 가문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내가 윤정이한테 준 모든 것을 전부 되돌려 받을 거야. 그 애는 단지 집사의 딸일 뿐인데 우리 윤미의 자리를 이십여 년 동안 차지하면서 윤정의 몫이 아닌 부귀영화를 누렸지. 그거면 충분해.”앞으로 이윤정은 거지만도 못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이은화는 예전에 이윤정을 아끼던 만큼 지금 그녀를 미워했다.이윤정과 정군호가 남의 음모에 말려들었다 할지라도 이은화는 용서하지 못했다.이은화는 그녀의 분노를 전부 정군호와 이윤정에게 쏟아부었다.정군호는 이은화를 미치광이라고, 수단이 악랄한 여편네라고 욕하고 싶었
“엄마, 저는 밖에서 낳은 딸이 없어요. 만약 밖에서 낳은 딸이 있다면 그 딸을 이씨 가문에서 인정하나요?”“네가 낳은 친자식이라면 당연히 인정하지. 네가 임신하고 아기를 낳을 때 가족 모두가 동행한다면, 그 아이가 태어나면 가문의 사람들도 인정할 거야.”이윤미가 대답했다.“그러면 제가 왜 시집을 가야죠? 시집가지 않으면 그 쓰레기들이 재산을 가져갈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잖아요.”이은화는 말문이 막혔다.이은화는 정신이 나갔는지 갑자기 딸의 이상한 질문에 대답까지 해주었다.정군호의 배신 때문인지, 기분이 나쁜 탓인지 모른다.이윤미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완벽한 대책을 세워도 빈틈이 생길 것 같으면 가장 좋은 방법은 제 딸이 아빠를 두지 않으면 좋잖아요. 제가 결혼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으면 합법적인 부부로 되지 못하니 당연히 부부의 공동 재산이 될 리가 없을 테고 그 남자도 재산을 분할 받고 싶어도 못 받을 거고요.”이은화는 곰곰이 생각해보더니 다시 이윤미를 설득했다.“윤미야, 내가 아무 말도 안 한 거로 생각해. 엄마는 네가 외롭지 않게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제가 딸을 낳고 서로 의지하면서 살 텐데 어떻게 외롭다니요? 가주 자리에 앉으면 스트레스가 심하고 일이 바빠서 매일 발이 땅에 닿지 못할 정도로 바쁠 텐데 외로움을 느낄 여유가 어디 있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남자가 없어요. 그런데 또 딸을 낳아 가주 자리를 물려주려면 예진 리조트의 넷째 사모님을 따라 배우면 되잖아요.”“이윤정은 어떻게 됐어?”이윤미의 생각에 놀란 이은화는 재빨리 화제를 바꾸었다.그녀는 나이가 들었지만 그래도 사상은 여전히 비교적 보수적이었다.“우리 별장 앞에서 밤새 울부짖었어요. 오늘 아침에 윤정이가 형수님 몇 분한테 괴롭힘을 당했는데 또 괴롭힐까 봐 도망쳤어요. 어디로 갔는지는 몰라요. 우리 오빠들이 윤정에게 준 돈과 카드도 전부 형수님들이 빼앗아 갔어요. 엄마가 옷 외에 다른 물건은 전부 가져갈 수 없다고 하셨잖아요. 형수님들도 엄마의 말씀을
이윤미는 더는 정군호를 쳐다보지 않고 이은화를 따라 거실로 나갔다.이윤미는 보온 도시락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도시락 뚜껑을 열어주면서 말했다.“만두 두 개도 포장해 가져왔어요.”이은화는 앉아서 이윤미가 가져온 흰죽과 반찬을 한참 바라보다가 말했다.“너니까 나에게 진짜로 흰죽과 반찬을 가져오는구나.”정일범 형제와 이윤정이라면 흰죽과 반찬들이 이은화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이은화의 요구대로 가져오지 않을 것이다.“엄마, 따뜻할 때 얼른 드세요.”이윤미는 양부모 집에서 자라면서 학대받았을 때 흰죽 한 그릇도 먹지 못했다.어렸을 때, 흰 죽 한 그릇도 그녀에게 사치였다.삶의 고달픔을 일찍 알아버린 이윤미는 커서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어도 함부로 쓰지 않고 여전히 절약하며 살았다.이는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성격으로 지갑이 두꺼워졌다고 해서 바뀌지는 않았다.이은화는 묵묵히 죽을 먹으며 수십 년 전 그날 새벽의 이은숙 가족과 함께 아침을 먹던 기억을 떠올렸다.이은화는 자신의 맏언니와 여동생을 죽이고 가주 자리에 앉았지만, 결코 행복한 삶을 살지 못했다.“엄마, 아버지께서...”이윤미가 조용히 물었다.그녀는 정군호가 얻어맞은 것 같지 않다고 생각했고 아마 이은화에게 칼에 찔렸을지도 모른다고 추측했다.어젯밤 정군호가 병원으로 이송된 후 이은화는 자식들이 자신에게 정군호의 상처에 관해 묻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윤미 또한 정말로 묻지 않았다.어쨌든 이은화는 정군호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테니까.이은화의 수단으로 분석해 보면 그녀는 정군호를 단번에 죽이지 않고 천천히 괴롭힐 것이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죽지는 않아. 단지 내시가 되었을 뿐이야. 감염되지 않고 상처가 다 나으면 퇴원할 수 있대. 네 아버지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은 없을 거야. 앞으로 미녀를 보게 되면 눈으로만 볼 수밖에 없을걸.”이윤미는 잠시 어떻게 말을 이어나가야 할지 몰랐다.“윤미야.”이윤미는 이은화를 바라보았다.이은화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엄마
정군호는 잠깐 고통과 절망한 표정으로 이은화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그는 정말 아팠다.정군호가 이은화를 보지 않아도 이은화는 화를 내지 않았다.그리고 일어나 다시 창가로 걸어가더니 창밖을 바라보았다.이은화의 생각은 이미 멀리 떠났다.만약 그 사람이 이은화와 함께 있었더라면, 그녀를 돕고 그녀와 결혼했다면, 그녀의 인생은 분명 아름답고 행복할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영원히 이은숙에게 충성했다.이은숙이 시집가서 딸을 낳고 세상을 떠났다고 해도 그 사람은 여전히 이은화와 함께하지 않고 오히려 자취를 감췄다.이미 몇십 년이 흘러 이은화가 70세의 노인으로 되었는데, 그 사람은 아마 세상을 떠났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은화는 여전히 걱정하고 있다.따르릉...이은화의 핸드폰이 울렸다.휴대전화를 꺼내 보니 이윤미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이은화는 잠시 휴대전화를 쳐다보다가 전화를 받았다.“엄마.”이윤미는 전화기 너머로 말을 건넸다.“엄마, 괜찮으세요?”그녀는 아버지의 부상이 어떤지 직접 묻지 않고 어머니의 안부부터 물었다.이은화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이미 최악인데 뭐가 괜찮겠어? 너희도 어른이 되고 나도 할머니로 되었는데 네 아빠가 내연녀가 있다고 해도 난 이제 여의치 않아.”앞으로 정군호는 다시는 여자를 만날 수 없을 것이다.걱정할 것 하나도 없다.“엄마, 오늘 밥 안 드셨을 텐데 드실 것 좀 갖다 드릴까요?”“필요 없어.”이은화는 거절하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었다.“그래, 너무 많이 가져오지는 말고. 흰죽에 반찬 조금만 갖다 줘.”이윤미가 대답했다.“엄마가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힘드실 텐데 그렇게 간단하게 드시면 쉽게 배고파요. 쉽게 체력도 떨어져서 안 돼요.”이은화는 한참 동안 침묵하다가 말을 건넸다.“네 큰이모가 세상을 떠나신 날 아침, 큰이모가 이렇게 드셨거든. 산해진미를 많이 먹었다면서 가끔 흰죽에 반찬을 곁들이면 특별한 맛이 난다고 하셨어.”“알았어요. 제가 가져다드릴게요.”이윤미는 더는 아무
“괜찮아요. 누나는 일 보러 나갔어요. 우리 예진 누나를 너무 과소평가하면 안 돼요. 누나는 이미 온갖 피바람을 겪은 사람이거든요. 15살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여의고 사람 잡아먹을 정도의 친척들을 상대하면서 열 살짜리 여동생을 잘 가르치면서 살아오셨어요. 삶의 고초를 겪은 사람의 의지는 엄청나게 강한 법이죠.”전호영은 이경혜가 왜 하예진을 선택하고 강성으로 보내 이윤미와 경쟁하게 했는지 이해하게 되었다.“놀라지 않았다니, 안심이 되네요.”전호영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제 퇴근해도 될까요? 참, 현이 씨에게 선물을 준비했어요.”그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작은 케이스를 꺼내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케이스를 받아 열어 보지도 않고 일어나서 그녀의 책상 앞으로 다가가더니 서랍을 열어 서랍 안에 넣었다.“열어 보지 않을래요?”“볼 필요 없어요. 호영 씨가 준 물건은 모두 최고이기 때문에 제가 한가할 때 천천히 열어보면서 호영 씨의 사랑을 느껴볼게요.”전호영은 고현을 보면서 오늘의 그녀가 좀 부드러워진 것 같다고 느꼈다. 고현은 전호영의 감정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전호영의 이 고된 사랑의 길에서 드디어 또 한 걸음 더 나아간 셈이다.전호영은 너무 뿌듯했다.병원.어느 고급 병실에서 이은화가 창가에 서서 창밖의 고층 빌딩들을 바라보고 있었다.병실 침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정군호였다. 정군호는 얼굴이 창백해 보였고 표정도 고통스러웠다.그는 눈을 감고 있다가 가끔 눈을 뜨고 그러다가 창가에 서 있는 이은화를 보더니 또 재빨리 눈을 감았다.아무도 정군호를 방문하러 오지 않았다.그가 칼을 휘둘러 그런 일을 저지른 소식을 이은화가 억눌러 소문이 퍼지지 않게 했다.그의 체면을 살려준 셈이다.이은화는 정군호가 아들딸 앞에서 그의 유일한 존엄을 잃지는 않도록 했다.시간이 한참 흘러 이은화가 돌아앉아 자는 척하는 정군호를 보며 말을 건넸다.“당신이 잠들지 않았다는 것을 나도 알아.”그녀는 정군호가 아파서 잠을 잘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진통제
고진호도 고현이 여자였기 때문에 며느리가 아닌 사위가 필요했고 따라서 재벌가 딸들에게 희망을 품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곧장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꼭대기 층에 올라가서 엘리베이터를 막 빠져나오자마자 고현이 고객을 배웅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 뒤에는 단정하게 양복을 입은 젊은 여성 몇 명이 따르고 있었는데 아마도 고객의 비서일 것이다.전호영과 고객들은 서로를 잘 몰랐다.고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호영은 말없이 한쪽으로 비켜섰다.고현은 직접 고객을 아래층으로 배웅했다.남 비서가 전호영을 쳐다보자 전호영은 눈빛으로 고현을 따라가라고 신호를 보냈다.전호영은 이미 고현의 사무실에 대해 매우 익숙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 비서가 그에게 예의를 갖출 필요 없었다.고현의 사무실과 휴게실에 관해 전호영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고현 일행이 엘리베이터에 들어간 후, 전호영은 스스로 고현의 사무실로 갔고 바로 문을 밀고 들어갔다.사무실에 들어선 전호영은 먼저 커피 한 잔을 타고 소파에 앉았다. 그때 고현이 돌아왔다.“어젯밤 일은 어떻게 됐어요?”고현은 그에게 다가가 나지막이 물었다.“예진 누나를 대신해서 죽은 경호원 가족들이 와서 뒷일을 처리했어요. 이씨 가문도 가족에게 보상을 해주고 보험회사에서도 가족들에게 보상해 줄 거예요. 이씨 가문의 모든 경호원은 거액 보험에 가입했거든요. 저도 이따가 예진 누나에게 전화해서 오늘 오후에 그 경호원의 가족들을 보러 가자고 해야겠어요. 그 경호원은 비록 이씨 가문의 희생 품이지만 그래도 예의는 갖추어야 하는걸요.”현재, 그 차 사고는 잠시 의외 사고로 단정 지어졌다.이씨 가문의 음모라는 증거가 없어서 이씨 가문은 충분한 연기를 해야 만이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았다.죽은 그 이씨 가문의 경호원은 스스로 재수 없다고 여길 수밖에 없다.이은화의 마음이 그토록 모질 줄을 누가 알았겠는가!하예진을 이씨 가문의 가족 연회에 처음 초대한 당일에 그녀를 죽이려고 했으니 말이다.하예진이 경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