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하예진은 사진을 두어 번 훑어보다가 얼른 윤미라에게 건넸다.윤미라는 사진을 건네받고 가볍게 웃으며 하예진에게 물었다.“이 여자아이 어때요 예진 씨?”그녀는 물으면서 하예진의 표정을 자세히 살폈다.“너무 이쁜데요. 똑똑하고 유능한 여강자일 것 같아요. 기질도 좋고 인상이 아주 환하네요.”윤미라는 태연하게 대답하는 하예진을 보며 미소 지었다.“예진 씨 안목이 있네요. 은경이 여강자 맞아요. 대학교 졸업하고 집에서 경영하는 회사에 들어가 신분을 숨긴 채 밑바닥부터 갈고 닦았어요. 이젠 회사 부대표직에 올랐고 사람들도 그제야 은경이가 회장님 딸이자 대표님의 여동생이란 걸 알게 됐죠. 여러모로 우수한 아이예요. 내 친구 딸이기도 하고요.”윤미라는 손은경의 신분을 밝힌 후 말을 이었다.“은경이랑 우리 동명이를 엮어주려고 하는데 예진 씨가 볼 땐 어때요? 두 사람 어울려요?”하예진은 여전히 태연하게 대답했다.“신분과 지위로 볼 때 이분은 대표님과 아주 잘 어울려요. 집안 조건도 상당하니 강자들의 조합이죠. 외모라면... 대표님이 비록 전에 얼굴을 다쳐서 칼자국이 났지만 일단 흉터를 없애기만 하면 이 여성분과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대표님도 이 여성분을 매우 좋아할 것 같은데요?”노동명은 홀로 기업을 일군 사람이라 분명 독립적인 여성을 좋아할 것이다. 윤미라가 말한 이 부잣집 따님은 노동명의 요구에 완전히 부합된다.하예진은 바로 알아챘다. 사모님께서 지금 이 부잣집 따님과 노 대표님을 엮어주려고 한다는 것을, 꽤 흥미진진한 일인 듯싶다.윤미라는 그녀가 대답할 때 전혀 눈길을 피하거나 부자연스러운 표정이 아닌 아주 태연하고 담담한 기색을 보아냈다. 아무래도 본인만의 솔직한 생각인 것 같았다.하예진은 노동명에게 이성적인 감정이 전혀 없다!윤미라는 하예진을 얕잡아보고 그녀가 며느리가 되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설사 다이어트에 성공해 결혼 전 미모를 되찾는다고 해도, 창업 단계에 장사가 불티나게 잘 되고 조금만 더 견지하면 성공적으로 돈
말을 마친 윤미라는 또다시 하예진에게 물었다.“예진 씨는 평소에 동명이 만날 수 있죠? 걔가 예진 씨 제부랑 절친이니 자주 만날 수 있겠죠. 기회 되면 나 대신 동명이 좀 설득해 줘요. 그래 줄 수 있나요?”하예진이 웃으며 대답했다.“사모님, 저야 당연히 사모님 돕고 싶죠. 대표님은 참 좋은 분이세요. 평소에 자주 만나기도 하고요. 다만 대표님이 제 말을 들어줄지 모르겠네요. 대표님은 매일 아침 우리 가게로 와서 아침을 챙겨 드세요. 제 아들 우빈이랑도 제법 친하고요. 나중에 또 아침 드시러 오면 제가 한 번 사모님 대신 대표님 설득해 볼게요. 무조건 설득할 수 있다는 보장은 못 해요. 저랑 대표님은 단지 건물주와 세입자의 관계니까요. 사모님은 대표님 어머님인데도 설득이 어려우시니 제게 너무 큰 기대는 하지 말아주세요.”윤미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일리 있는 말이에요. 내일도 동명이가 아침 먹으러 이리로 오면 수다 떨 듯이 은경이를 얼핏 언급해 봐요. 걔가 무슨 반응인지 보게. 나 내일 저녁에 은경이 데리고 관성 호텔에서 열리는 공씨 일가 연회에 참석할 예정인데 동명이도 함께 가줬으면 하거든요.”노동명도 실은 공씨 일가의 연회에 참석하지만 여자 파트너 없이, 엄마의 동반도 없이 홀로 참석한다.그는 이미 노씨 일가와 분리되어 홀로 그룹을 운영하고 있으니까.외부인들도 그와 노씨 일가를 갈라놓고 본다.하예진은 윤미라가 아들 혼사를 걱정하는 게 나름 이해됐다. 윤미라는 하예정의 시댁 식구들과 사이가 좋고 또한 이경혜와도 친분이 있으니 노동명에게 한 번쯤 여쭤보라는 것은 그리 힘든 부탁이 아니다.하지만 노동명이 윤미라와 함께 연회에 참석하라는 부탁은 선뜻 들어주지 못했다. 그녀는 노동명에게 어머님과 함께 연회에 참석하라고 말할 능력이 없으니까.그건 오롯이 두 모자지간의 일이다.이때 야간 일을 마친 공인들이 아침 먹으러 가게로 들어왔다. 윤미라도 손은경의 사진을 가방에 다시 넣고 자리를 떴다.“예진 씨, 장사 바쁘네요. 저도 이만 나가볼게요
손은경은 운전하면서 말했다.“말했잖아요. 예진 씨네 두 자매는 다 괜찮은 분들이에요. 예진 씨는 이제 막 이혼한지라 당분간 재혼 생각이 없을 거예요. 창업으로 돈 버는 게 급선무이지 결혼은 아예 신경도 안 쓸걸요.”한 번 실패한 결혼생활을 겪은 사람은 또다시 사랑이 다가올 때 전보다 더 조심스러워질 따름이다.하예진은 지금 창업 단계라 재혼은 아예 생각지도 않는다.윤미라가 말했다.“걔가 동명이한테 조금이라도 사심을 품었다면 당장 가게 문 닫고 꺼지라고 할 참이었는데, 거기서 토스트 가게 못 하게 조치하려고 했는데 그런 거 전혀 없는 거야. 근데 난 또 왜 이렇게 걔랑 동명이가 앞으로 꼭 무슨 일 생길 것만 같지? 경계해서 나쁠 건 없다지만 무례하게 굴 수도 없잖니. 예진이도 이젠 더 이상 아무런 뒷받침 없는 고아가 아니야. 동생 예정이가 전씨 그룹 사모님이고 그 집안사람들은 팔이 안으로 굽기로 소문났어. 장소민은 예정이를 싫어하면서도 엄청 챙겨. 아무도 괴롭히지 못하게 말이야. 전씨 일가랑 우리랑 나름 사이가 좋아서 그 집 체면을 봐서라도 예진이를 내쫓을 순 없어. 걔네 이모 이경혜도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라서 감히 건드리지 못해.”윤미라는 원래 하예진을 아들 상가에서 장사하지 못하게 내쫓을 생각이었다. 그녀가 노동명한테서 멀어지면 두 사람은 만날 일도 적고 윤미라가 걱정하는 일도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다만 하예정은 노동명에게 전혀 이성적인 감정이 없다. 그럼에도 가게를 못 하게 가로막는다면 윤미라만 막무가내인 셈이 된다. 그와 동시와 전씨 일가와 성씨 일가 모두 미움을 사게 될 터이니 무의미한 노릇이다.만약 노동명과 하예진 사이에 무언가가 일어났을 때 손을 쓴다면 또 너무 늦어질 텐데.노동명의 성격은 엄마인 윤미라가 제일 잘 안다.사랑하지 않으면 거들떠보지도 않지만 일단 사랑에 빠지면 평생 간다.손은경이 잠시 침묵하다가 대답했다.“아줌마, 예진 씨 내쫓지 마세요. 이혼하고 창업해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잖아요. 이제 막 장사가 잘되고 돈을 바짝
“그래, 가.”심효진의 시선은 여전히 책에 꽂혀 있었다. 하예정은 그녀가 흥미진진하게 책을 읽는 모습에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효진아, 우리 가게에 몇 안 되는 소설들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봤는데도 그렇게 재미있어? 너 이참에 소설 써봐. 수년간 책 읽은 경험으로 분명 멋진 소설을 써낼 수 있을 거야. 출판해서 대박 터트리면 우리 서점 메인 코트에 보란 듯이 내놓을게. 우리 가게 간판 소설이지!“심효진이 웃으며 말했다.“난 보는 것만 좋지 쓰는 건 싫어. 나처럼 게으른 사람은 음식 앞에서만 몸이 움직이지 책을 쓸 리가 있겠어? 너 소설 쓰는 게 쉬운 일인 줄 알아? 줄거리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야.”하예정은 차 키와 아직 안 바꾼 지갑까지 챙기고 조카의 손을 잡고는 채소 사러 갈 채비를 했다.친구의 말을 들은 그녀는 넌지시 한마디 건넸다.“너랑 정남 씨 러브스토리를 쓰면 무조건 베스트셀러가 되겠는데.”“나랑 정남 씨 이야기는 너무 무미건조해. 어떠한 우여곡절도 없고 라이벌조차 없어서 딱히 쓸 내용이 없다. 너랑 태윤 씨 스토리가 참 괜찮은데 내가 쓸 줄 모르네. 이참에 네가 자서전 낼래?”하예정도 피식 웃었다.“나도 그런 흥취가 없고 지금은 그럴 시간도 없어. 내일 밤엔 또 우리 그이랑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해. 너도 갈 거지?”“물론이지. 정남 씨가 진작 말했어. 아 참, 나랑 정남 씨 약혼식도 곧 다가오는데 너 태윤 씨랑 꼭 함께 와. 우리 결혼식은 5월 1일 전으로 정할 거야. 정남 씨는 뭐가 급하다고 부모님께 결혼 날짜를 5월 이전으로 받아오라고 하셨대.”“그거야 당연히 널 너무 사랑해서 빨리 집에 데려오고 싶어서겠지. 옆에 두면 매일 실컷 예뻐해 줄 수 있잖아.”심효진은 가볍게 웃었다. 소정남이 그녀에게 잘해주는 건 사실이니까.두 사람의 감정은 거창하고 우여곡절이 있는 건 아니지만 늘 안정적이고 담담하게 행복한 나날을 보내왔다.인생은 가늘고 길게 가야 하는 법이니까.“우리 채소 사러 가. 금방 다녀올게.
그런데 아내의 입덧이 너무 심하다고 성기현이 글쎄 아이를 지우겠다고 한다.심효진은 아내 사랑이 지극한 남자를 많이 봐왔지만 성기현처럼 아내를 위해 아이까지 지우려는 사람은 처음이다.“새언니는 당연히 반대하죠. 언니도 설득해 보려 했는데 도통 말이 안 통해요. 오빠가 기어코 아이 지우라는 거 있죠. 임신하고 나서부터 언니가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먹는 족족 토하니까, 심지어 담즙까지 토해내는 경우가 많아요. 얼굴이 다 반쪽이 돼서 오빠가 안쓰러워 죽을 지경이에요. 지금 엄마, 아빠도 집에서 새언니 지키고 있어요. 오빠가 또 불쑥 새언니 데리고 병원 가서 아이를 지울까 봐요.”어쩐지 이경혜가 요즘 잘 안 보이더라니...심효진이 관심 조로 물었다.“그 정도로 심하게 토하면 병원 한 번 가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의사가 먹는 약 처방해 주셨는데 효과가 딱히 없어요. 게다가 새언니는 태아 보호 차원에서 종일 집에 누워있어야 해요. 프로게스테론이 낮다고 하더라고요. 어휴, 엄마 되기 쉽지 않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어요.”엄마는 참 위대하다.심효진이 말했다.“예정이 보통 근처 슈퍼로 가서 채소 사니까 금방 올 거예요. 오는 대로 예정이한테 말하고 우빈이 데려가세요. 그 아이가 총명하고 귀여워서 소현 씨 오빠도 아이를 보면 마음이 바뀌실 거예요.”“네, 나도 같은 생각이에요. 이미 예진 언니한테 전화해서 동의 구했어요. 언니도 우리 오빠가 이런 생각을 한다는 걸 알고는 한바탕 욕하더라고요. 일 마무리하는 대로 새언니 보러 오겠대요.”금방 유청하의 임신 소식을 알았을 때 모두가 기뻐했고 하예진 자매는 영양제까지 사 보냈다. 전씨 일가에서도 하예정의 면을 봐서 영양제를 한가득 사 보냈는데 입덧이 이토록 심할 줄이야.“임신하면 신 음식 좋아한다던데 신 음식 좀 사서 구토를 조금이라도 완화하는 건 어때요?”성소현이 머리를 내저었다.“새언니한테는 아무 소용 없어요. 먹는 족족 토하긴 하지만 먹고 바로 토하는 게 아니라 한참 지나서야 구토가 올라와요. 입맛
하예진과 주형인이 신혼집을 장식할 때 주형인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장식 비용을 하예진이 부담하긴 했지만 그녀도 그 당시 출근해야 해서 시간이 많은 하예정이 언니 대신 신혼집 장식을 지켜보았다.집 장식의 고통을 맛본 그녀는 예준하가 너무 이해됐다. 물론 예준하가 이토록 자주 별장에 찾아와 장식을 지켜보는 건 성소현 때문이란 것도 잘 알고 있다.성소현은 데면데면한 성격이 아닌데 아직 예준하가 자신을 눈여겨보고 있다는 걸 발견하진 못했다.전태윤에게 구애하다가 실패한 이후로 감히 더는 감정 소모를 하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성소현이 직접 운전해서 제집 별장 앞에 도착한 후 경적을 누르며 말했다.“당연하지. 준하가 이 별장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산 거래. 나중에 결혼하고 아내랑 함께 여기서 지낼 생각이라던데.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이토록 별장 인테리어에 신경 쓰는 걸 보면 여자친구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것 같아.”성소현은 부러움 가득한 눈빛으로 말했다.그녀의 주변 사람들은 전부 사랑하는 반쪽을 찾았는데 유독 그녀만 외롭게 혼자이다.그녀가 사랑할 사람, 서로 마음이 통할 그 사람은 대체 어디 있을까? 언제쯤 그녀 앞에 나타날까?“준하 씨는 인제 언니네랑 이웃이 돼서 자주 드나들겠네요? 여자친구가 뉘 집 재벌가의 따님인지 물어보지 않았어요 왜?”하예정이 일부러 떠보듯이 물었다.성씨 일가의 도우미가 밖에 나와 별장 대문을 열어주었고 성소현은 마당으로 차를 몰고 들어갔다.“아무 말 없던데. 예정이 네가 제부한테 물어봐봐. 혹시 알고 있을 수도 있잖아.”“우리 그이는 남 일에 늘 관심 없어요. 준하 씨가 청첩장을 보내면 모를까. 그전까진 절대 사적인 일을 안 물을걸요.”성소현은 전태윤이 변한 것 하나 없다고 생각하며 피식 웃었다.가십거리에 제일 호기심 많은 사람은 그래도 소정남이다.그는 관심이 많을 뿐만 아니라 항상 제일 먼저 최신 소식을 얻곤 한다.“아가씨, 도련님께서 돌아오셨는데 또 큰 사모님 모시고 병원 가서 아이를 지우겠대요. 두 어르신은
“준하 씨 일단 정자에 앉아서 기다리세요.”도우미는 그를 정자로 모시며 미안함 가득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예준하는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괜찮아요, 가서 볼일 보세요.”그는 정자 아래의 석탁 앞에 앉아서 성소현에게 줄 간식거리를 상 위에 올려놓았다.집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도우미에게 묻지도 않았다.예준하는 성씨 일가 옆집 별장을 산 이후로 갖은 핑계를 둘러대며 성씨 일가로 자주 찾아왔다. 하여 성씨 일가의 모든 도우미들이 그의 신분을 알고 깍듯이 모신다. 매번 올 때마다 집안으로 공손하게 모시는데 이번엔 그러지 못했다. 아무래도 외부인에게 알리지 못할 일이 생긴 듯싶다.굳이 그에게 알리지 않았으니 더 캐물을 이유도 없었다.예준하는 아직 성씨 일가의 이웃일 뿐이니까.“준하 씨, 물 한 잔 따라드릴게요.”비록 집안에 들이진 못했지만 문전박대까지 할 순 없다.예준하도 가볍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였다.도우미는 그제야 정자를 벗어나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 시각 집안에서 성문철 부부는 소파에 앉아있었고 성문철이 한창 아내의 등을 두드리며 화난 마음을 다독였다. 그는 다정한 말투로 아내를 위로했다.“기현이도 청하가 안쓰러워서 그러는 거니까 당신이 이해해. 그 자식 상대할 필요 없어.”하예정이 이모에게 온수 한 잔 따라왔다.하예진은 성소현과 함께 가서 유청하를 소파로 데려왔다. 성기현이 병원에 데려가지 못하게 말이다.성기현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아이를 갖고 싶지 않냐고?당연히 갖고 싶지, 청하와 둘만의 아기를 엄청 원했지. 하지만 유청하가 이토록 입덧이 심할 줄 몰랐다. 먹는 족족 토해서 얼굴이 반쪽이 된 게 실로 안쓰러울 따름이었다.성기현의 눈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보다 아내 유청하가 더 중요했다.우빈이는 성기현 옆에 서서 머리 들어 사촌 외삼촌을 쳐다봤다. 반짝이는 아이의 검은 눈동자가 밤하늘의 별을 방불케 했다.“외삼촌.”아이가 나긋나긋하게 부르자 성기현이 고개 숙여 우빈이를 내려다봤다.녀석은 예쁘장
만약 유청하가 임신과 출산의 고통을 안 겪고도 이들 부부에게 아이를 얻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남자가 임신할 수만 있다면 그는 무조건 청하를 위해 이 고통을 감수할 것이다.한 도우미가 안으로 들어와 성소현에게 나지막이 속삭였다.성소현은 도우미에게 낮은 목소리로 분부했고 도우미가 나간 후 아무렇지 않은 듯 새언니에게 말했다.“언니, 화 풀어요. 오빠가 잠시 무언가에 씌운 것 같아요. 엄마도 망할 놈이라고 욕했어요.”유청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성기현과 결혼한 이 몇 년 동안, 그가 일방적으로 그녀를 독차지해 버렸다. 유청하도 결혼 후 마지못해 줄곧 피임 조치를 했고 바로 그 때문에 여태껏 임신 소식이 없었다.밖에서 사람들이 그녀를 불임이라고 쉬쉬거릴 때 드디어 부부가 일심동체로 2세 계획을 가졌다.유청하는 소원대로 임신했고 이 아이에 대한 기대가 매우 크다. 아직 태동은 없지만 배 속에 그녀와 성기현 둘만의 피가 흐르는 예쁜 아기가 있다는 생각에 모성애가 저절로 흘러넘친다.엄마라면 다 그렇듯이 유청하도 배 속의 아이를 제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겼다.그런 아이를 어떻게 지울 수 있을까?성기현은 그런 그녀 마음도 몰라주고 무작정 병원 가서 애를 지우자고 한다. 앞으론 절대 아이 가질 일이 없으니 둘이서만 평생 살자고 한다.게다가 본인은 남동생이 있으니 나중에 동생이 결혼해서 아이를 낳아 성씨 일가의 가업을 물려받으면 된다고 한다.유청하는 기가 막혀 머리를 내저었다.성기현이 그냥 해본 소리인 줄 알았는데 진심일 줄이야.그녀는 마지못해 남편의 생각을 시댁 식구들에게 알렸고 집안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그녀는 아직 감히 친정에는 알릴 엄두가 안 났다. 친정에서 남자 친척들이 달려와 성기현을 한바탕 두들겨 팰까 봐 두려웠다.“기현 씨가 글쎄 의사랑 예약까지 다 잡은 거 있죠. 내가 화 안 나게 생겼어요?”유청하는 시누이에게 남편의 흉을 봤다.성기현은 우빈이를 안고 멀지 않은 곳에 서서 아내를 바라봤다.“당신이 너무 힘들어하니까 차라
고빈은 친누나 고현을 바라보았다.고현은 그녀의 커피 한 잔을 들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더니 우아하게 커피를 음미했다.“누나, 호영 씨가 누나 사무실에 있는데도 왜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어?.”고빈은 작은 소리로 고현에게 속삭였다.고현은 억울한 어조로 대답했다.“네가 들어오자마자 쉴 새 없이 말했잖아. 나에게 말할 기회도 주지 않은 건 너야. 호영 씨가 나와서 내가 계속 눈을 깜빡이는데도 넌 눈치 없이 내 눈에 문제 있는 줄 알고 깨닫지 못하다니. 너에게 귀띔해 주는데도 모르는데 누굴 탓할 수 있겠어?”“내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는 말은 글쎄 걱정은 안 되지만 내가 누나에게 호영 씨를 버리라고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둘까 봐 그러지. 그 자식 평소에는 빙그레 웃으며 마냥 부드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무척 음흉하잖아. 우리 부모님께 그 말을 일러바치면 난 집에 갈 엄두도 내지 못한단 말이야.”고빈은 자신의 수다스러운 입을 원망했다. 고현의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그녀에게 헛소리를 그토록 많이 하다니!이때 고현이 제안했다.“네가 요즘 출장 좀 다녀오는 게 좋을 것 같아. 방금 호영 씨가 휴대전화까지 꺼내서 녹음했어. 네가 한 말 다 녹음한 것 같던데. 분명 우리 부모님께 들려드릴 거야. 그때 가서 엄마 아빠가 너에게 결혼 재촉하지 않으면 내 손바닥에 장을 지지겠어.”고빈도 말을 이었다.“호영 씨가 음흉한 사람이라 우리 엄마 아빠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이야. 누나, 내가 내일 비행기 표를 예약해서 가장 먼 도시로 출장을 갈게. 반달이나 한 달 뒤에 돌아올게.”그러자 고현은 문득 의문을 품었다.“갑자기 생각난 건데, 우리 지사에는 본사 직원이 가서 처리해야 할 큰일이 없어. 네가 출장 가려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데 가서 뭐 하게? 게다가 강성이 바로 너의 집인데 너도 조만간 집으로 돌아와야 할 거 아니야. 난 언젠가 호영 씨에게 시집갈 텐데, 그도 너의 형부로 될 테고. 네가 나랑 혈연관계를 끊지 않는 이상 호영 씨와 연락을 해야 할걸.”“
“호영 씨가 나쁘다는 건 아닌데, 난 왠지 그 자식을 보면 볼수록 눈에 거슬려.”고현은 친누나로서 고빈에게 치마를 입어 보인 적 없지만, 전호영에게 입어 보였고 또 전호영을 위해 모두에게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고빈은 질투가 났다. 비록 고현이 여자 신분을 회복하고 좋은 시댁에 시집가기를 바라고 있지만, 막상 그녀가 시집갈 준비를 하니 고빈은 또 너무 아쉬웠다.“누나, 호영 씨에게 데릴사위가 될 수 있는지 물어보는 건 어때? 난 누나가 멀리 시집가는 것이 정말 아쉬워. 난 누나 한 명뿐이고 우리 부모님도 딸 하나뿐인데 정말 우리를 버리고 멀리 떠나려고? 호영 씨가 데릴사위로 장가오고 싶지 않아 하면 바로 차버려. 누나 같은 조건이라면 달려드는 남자들이 아주 많을걸. 누나, 눈이 왜 그래? 왜 자꾸 눈을 깜빡깜빡해? 눈에 뭐 들어간 거 아니야?”고현이 자신에게 계속 윙크를 하는 것을 본 고빈은 걱정스레 물었다.고현은 고빈을 노려보았다.이 녀석은 평소에는 매우 약삭빠르지만, 오늘은 유난히 둔했다.고현은 아예 일어나 책상을 에둘러 고빈의 팔뚝을 툭툭치고는 전호영의 손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받아 들으며 전호영에게 말했다.“호영 씨, 빈이가 뭐라고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도 빈이 말을 듣지 않을 테니까요.”고현은 갑자기 고개를 홱 돌려 전호영의 어두워진 눈과 마주쳤다.전호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전호영을 등지고 그의 험담을 하며 고현에게 그를 차버리라고 한 사실을 본인에게 들켜버리다니, 이를 어찌한단 말인가!전호영이 다 들은 건 아니겠지?혹시 조금만 들은 건 아닐까?고현도 그에게 귀띔해주지 않았다.맞다! 고현이 주의를 시키었지만, 고빈이 너무 둔해 눈치채지 못했다.고현이 계속 윙크를 보냈지만, 고빈은 그녀의 눈에 병이 난 줄로만 알았다.고빈은 속으로 몇 번이고 울부짖었다.‘난 오늘따라 왜 이리 멍청하지? 으악!’“고빈 씨는 저한테 불만이 많으신가 봐요. 제가 고빈 씨 비위를 맞추지 않았다고 제가 눈에 거슬린
그는 휴게실로 들어갔다.“호영 씨, 따뜻한 물 한 잔 주세요.”고현은 목이 말랐다.그러자 전호영이 대답했다.“알았어요.”곧 전호영은 그녀에게 따뜻한 물 한 잔을 가져다주면서 빙그레 웃으며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고현은 궁금한 듯 물었다.“왜 이렇게 쳐다봐요? 제가 낯설어 보여요?”“저는 현이 씨가 너무 멋있다고 생각해요. 정말 너무 멋있어요.”고현은 어이없다는 듯 그를 노려보고는 다시 앉았다.그리고 우아하게 물을 마셔 목을 축인 후 물잔을 내려놓고 컴퓨터를 켜면서 말했다.“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는 저의 일이지, 그들의 상관할 바는 아니잖아요. 제가 그들의 물음에 대답하기만 하면 수많은 질문이 또 끊임없이 쏟아질걸요.”“그렇죠. 1년 후에 답을 얻게 된다고 했는데 제가 생각하는 그것이 맞나요?”전호영이 웃음을 머금으며 그녀에게 물었다. 그가 생각한 1년 후의 답은 바로 두 사람이 합법적인 부부로 되는 것이다. 두 사람이 노력하여 고현의 뱃속에 작은 전호영이 들어있기만 하면 그녀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모든 오해가 풀릴 것이다.고현은 그의 물음에 직접 대답하지 않고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마음대로 생각하세요.”“헤헤, 제가 생각했던 게 맞는 모양이네요. 그렇게 되면 해명할 필요도 없겠네요. 그럼 가서 커피 내려줄게요.”전호영은 흐뭇한 표정으로 몸을 돌려 그의 사랑스러운 여인에게 커피 내려주러 들어갔다.고현이 중얼거렸다.“매일 바르지 못하기는...”생각해 보니 이 일은 고현 본인이 먼저 전호영에게 귀띔해 준 거나 다름없었기에 그를 원망할 수는 없다.전호영은 평소에 말로만 까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존중하고 그녀의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고현이 먼저 신체접촉을 원한다면 전호영은 절대로 사양하지 않고 그녀의 모든 것을 독차지할 것이다.똑똑.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문밖의 사람은 고현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을 밀고 들어왔다.고빈이었다.고빈은 고현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왔다.“형,너무한 거 아니야?
“여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또 뭐해요? 여자 분장한 걸 알면 또 뭐할건데요? 예전에 제가 치마를 입고 고현 씨를 기분 좋게 하려는 것처럼 고 대표님도 단지 저를 행복하게 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기자들은 전호영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이대로 흩어지는 것도 너무 언짢았다.그들은 단지 답을 원했을 뿐이다.고현이 왜 남자 행세를 하고 다녔는지, 혹은 여자 분장을 한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흩어지지 않으실 생각이라면 얼른 길을 비켜주세요. 제가 들어가고 나서 다시 이곳에서 계속 기다리세요.”“고 대표님께서 아직 오시지 않았습니다. 호영 도련님께서 들어가신다 해도 고 대표님을 볼 수 없으실 겁니다.”“고 대표님 차가 저의 바로 뒤에 있는데 못 보셨어요? 기자님들은 저의 차를 막을 수는 있어도 고 대표님의 차들을 감히 막을 용기가 있기나 하세요?”고개를 돌려보니 고현의 차들이 정말로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기자들은 방금 전호영의 차를 포위한 것처럼 한꺼번에 고현의 차에 몰려들고 싶었다.그러나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전호영은 강성의 사람이 아니다.설령 그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이라 할지라도 조만간 관성으로 돌아가야 할 사람이고 또 친근감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기자들은 전호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그러나 고현은 강성의 사람이고 또 강성에서도 냉담한 성격으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그녀를 건드리게 된다면 아마 강성에서도 무사하게 지내지는 못할 것이다.기자들은 여전히 답을 얻고 싶은 마음에 한꺼번에 몰려들어 고현의 차를 에워싸지는 않았지만, 그녀의 차를 막아 보았다.차창을 내린 고현은 나지막하게 말을 내뱉었다.“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건 1년 후에 여러분들도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란 말뿐입니다.”말을 마친 고현은 바로 차창을 올렸다.1년 후, 고현은 분명 전호영의 아내로 될 것이고 임신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의 배가 많이 나온 모습을 보면 모두에게 답을 준거나 마찬가지였다.고현은 자신의 사적인 일에 대해 기자들에게 자
전태윤은 또 반 시간 동안 하예정의 사무실에 붙어있다가 아내의 독촉으로 사무실을 떠났다.강성.고씨 그룹, 고씨 가문의 저택, 하루 호텔, 그리고 고성 호텔에는 많은 연예 기자들이 지키고 있었다.그들의 목적은 오직 하나, 바로 고현 도련님이 진짜 여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는 것이다.고씨 가문의 저택 대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연예 기자들이 초인종을 눌렀지만 누군가가 나와서 확인만 했을 뿐 여전히 기자들을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기자들이 확인하러 나오는 사람한테 물어보았지만, 아무것도 모른다는 대답만 들었다.고진호 부부의 휴대전화는 여전히 꺼진 상태였고 고빈의 전화는 연결되지만, 그는 똑똑하게도 모르는 전화가 걸려오면 아예 받지 않았다.지금 고현은 회사로 돌아가는 길이다.물론 전호영도 그녀와 함께 있다.차가 고씨 그룹에 거의 도착했을 때, 전호영의 차가 먼저 앞쪽으로 달려갔다.회사 입구에 쭈그리고 앉아 있던 연예 기자들은 익숙한 마이바흐를 보더니 우르르 몰려갔고 전호영은 결국 급정거할 수밖에 없었다.그들은 전호영의 차를 막은 뒤에야 비로소 그 차가 고현의 차가 아님을 깨달았다. 눈앞의 차는 고현 도련님의 차가 아니었다.고현의 차 번호판도 맞지 않거니와 뒤에 고현의 경호원 차들도 따라오지 않았다.이것은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다.이때 전호영이 천천히 차창을 눌렀다.“호영 도련님, 고 대표님이 여자라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호영 도련님, 혹시 고현 도련님이 여자라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까?”“어젯밤 송씨 가문의 연회에 함께 참석하셨을 때 호영 도련님은 고 대표님께서 치마를 입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분이 어떠셨습니까?”아직 당사자를 잡지 못했지만, 전호영을 잡은 기자들은 전부 모여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전호영은 고현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다.두 사람은 친밀한 일을 했을지도 모르는데 전호영은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을까!전호영이 대답했다.“저는 확인하지 못했기 때문에 고 대표님이 여자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지
하예정은 웃으면서 해명했다.“동서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물어본 거 아니에요. 단지 할머니께서 어떤 며느릿감을 고르실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그녀는 이런 가십거리를 매우 좋아했다.동서끼리 사이가 안 좋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씨 할머니의 안목은 무척 좋기 때문에 전씨 할머니께서 고르신 아내감은 분명 인성 좋은 사람일 것이다.설령 인성이 나쁘더라도 하예정과 마음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다.그들은 모두 서원 리조트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별장에 살고 있었다. 함께 살지 않으니 마음이 맞으면 서로 좀 더 잘 만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관계만 잘 유지하면 그뿐이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나도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 아마 비주얼은 좋을 것 같아. 어쨌든 우리 사촌 동생들은 전부 다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할머니께서도 못생긴 여자는 고르시지 않을 거야. 이혁이도 오랫동안 날 찾아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전태윤은 심지어 전이혁의 미래 아내의 성씨도 몰랐다. 그의 여자도 아니었기에 너무 많은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언젠가 동생들도 그들의 여자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올 것이다.“그런데 할머니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저는 못생기지 않게 생겼지만, 우리 집안은 부유하지도 않고 전씨 가문의 재력과는 너무 차이 나는 데다 태윤 씨는 전씨 가문의 장남이잖아요, 왜 태윤 씨와 저를 맞세우려고 하셨는지, 또 왜 우리 두 사람을 결혼시키려고 하셨는지... 태윤 씨도 무척 난처했겠네요.”전태윤은 잠자코 있다가 대답했다.“우리는 아마도 그 점쟁이가 점을 쳐 주신 덕분일 거야.”전씨 할머니는 그 점쟁이를 가장 신임하셨다. 점쟁이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부부 인연이 있다면서 만약 그가 하예정을 놓치게 되면 평생 홀아비로 살 것이라고 귀띔해주셨다.전씨 할머니는 장남 전태윤을 가장 아끼시는데 어떻게 그가 홀아비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하여 전씨 할머니는 몰래 하예정의 인성을 관찰하다가 인품이
사람들에게 하예정의 친정집의 실력도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하예진은 이경혜의 지시에 따라 강성에 와서 이은숙 가족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 것 외에도,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되찾아 하예정의 친정집에도 재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강성 이씨 가문은 점점 몰락하고 있지만, 어쨌든 재벌 가문이기 때문에 지금의 하씨 집안보다는 훨씬 나았다.하씨 집안에도 가족들이 많지만, 고향의 그 “일품” 친척들은 하예정의 발목만 잡는 사람들이라 연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통화를 끝내자 하예정은 휴대전화를 들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전태윤은 부드럽게 물었다.“무슨 생각해?”하예정은 빙그레 웃으며 전태윤의 어깨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당신 그래요? 운명이란 게 참 이상해요. 저는 지금 같은 날은 꿈도 꾸지 못했거든요. 우리 엄마가 원래 부잣집 딸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게다가 제가 태윤 씨와 결혼하게 되다니, 사람 사이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해요. 내일 일어나게 될 일을 누구도 모르잖아요.”전태윤은 하예정의 얼굴에 뽀뽀하고 난 뒤 말을 건넸다.“처형이랑 일상적인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왜 이렇게 감회가 새로워졌어? 먼저 회사로 갈 거야? 아니면 서점으로 가려고? 내가 너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갈게.”“일단 회사로 돌아가야죠. 지금 이 시간이면 학생들도 다 수업하고 있을텐데 가게도 별일 없을 거예요. 서점으로 간다 해도 한가해서 파리만 잡을 텐데.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파리도 없겠네요.”“그래.”“참, 저의 언니가 말씀하시는데 어제 고 대표님이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셨다면서요? 호영 도련님께서 드디어 소원을 이루셨네요.”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호영이가 어젯밤에 기뻐하며 나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더라고. 이진이와 호영이가 결실을 보았으니 이제 이혁이와 전우만 남았네.”지난번에 어떤 여자가 전씨 그룹에 가서 전이혁을 찾으러 갔었다. 전이진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훔친 거 아니냐면서 캐물었
하예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우빈은 말할 것도 없고 나조차도 아침에 이불 속에서 겨우 일어났어. 언니, 강성은 더 춥지? 인스타에서 보니 사람들이 눈 내리는 영상을 찍어 올렸던데. 우리 관성은 눈은 오지 않지만, 강성 쪽에 눈이 오면 우리 여기도 따라서 추워져.”관성 기온은 낮에는 10도가 넘지만, 밤에는 가장 낮아서 8~9도까지 떨어지곤 한다.이런 기온은 강성 사람들에게는 춥지 않지만, 더위에 길들여진 관성 사람들에게는 매우 추운 날씨다.“옷 좀 더 입혀줘. 유치원에서 나누어준 겨울옷은 너무 두껍지 않으니까.”우빈은 겨우 세 살 남짓 된 어린이였기에 하예진이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입혔어. 그런 걱정하지 마. 언니도 강성에서 감기 조심하고. 많이 입고 다녀.”“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 넌 오늘 회사로 출근했어? 요즘 관성도 추울 텐데, 먼저 집에서 쉬는 건 어때? 제부가 돈 잘 벌잖아. 네가 회사로 뛰어다니면서 돈 벌 필요 없어.”하예진은 너무 바빠서 땅에 발을 내디딜 틈이 없으면서도 여동생에게는 집에서 배 속의 아기를 잘 돌보라고 설득했다.“괜찮아. 우리 회사에도 일이 별로 없어서 그냥 와 본 거야. 좀 이따가 서점에 들러야 해. 정남 씨가 이틀을 휴가 내서 나도 효진에게 쉬라고 했어. 두 사람이 함께 편히 쉬라고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소정남은 늘 전태윤에게 그의 아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고 투덜댔다.하예진도 그냥 잔소리 한 번 해봤을 뿐 하예정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더는 말을 설득하지 않았다.하예진은 과거 임신하여 집에서 쉬면서 사회와 단절되었고 출산한 뒤로도 모든 정력을 우빈에게만 쏟아부어 자기 관리에 소홀해 몸매가 많이 무너졌었다.그러나 전태윤은 주형인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예진의 실패한 결혼은 하예정에게 경적을 울릴 것이고 하예정도 최대한 친언니의 과거 생활을 피해 가려
전호영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당연히 습관 되지 않을 거예요. 현이 씨는 평소 너무 엄숙해요. 너무 부끄러우면 방에 혼자 있을 때 연습해도 되는데. 누구도 듣지 못하면 누가 현이 씨를 비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고현은 전호영이 계속 말하는 모습을 보더니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잘라 포크로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따르릉...전호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하예정이 걸어온 전화였다.전호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예진 누나, 무슨 일 있어요?”“없어요. 그냥 호텔 문 앞에 기자들이 많다고 알려주려고요. 혹시 고현 씨가 혹시 외부에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인정하셨어요? 기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아마도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아요. 하루 호텔에 와서 모여있는 거로 보면 아마 맞은편의 고성 호텔에서도 지키고 있을 거예요. 아까 일구 씨가 가봤는데 확실히 기자들이 몰려들어 있대요. 오늘 호텔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호영 씨, 어제 호영 씨와 고현 씨가 무슨 일을 벌인 거 맞죠?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아침에 식사하러 내려왔는데 저도 벌써 그 소문을 듣게 됐다니까요.”전호영은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마치 저와 현이 씨가 어젯밤에 바람을 피우다가 잡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하! 어젯밤에 저와 현이 씨가 송씨 가문 연회에 참석하러 갔거든요. 현이 씨가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을 뿐이에요. 다른 건 아무 일도 없었어요.”하예진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렇군요. 축하드려요. 고현 씨가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다니, 그녀가 드디어 호영 씨를 사랑하게 됐네요. 저는 두 사람의 결혼 축하주를 마시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요.”고현은 전호영에 대한 감정이 매우 더딘 편이었다.전호영이 고현을 쫓아다닌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녀는 이제야 사람들이 전호영을 오해하는 것이 가슴 아팠고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하여 고현은 자발적으로 치마를 입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가 원래 여자이고 전호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