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현 씨, 우린 이제 친구 맞지?”예준하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성소현한테 물었다.성소현도 예준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웃었다.“우리는 친구지, 이웃이기도 하고.”예준하는 조용히 성소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밝고 화려한 이미지의 여자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숨김이 없고 꾸밈이 없는 아름다움이다.“그럼, 프라이버시에 관해 물어봐도 돼?”“물어봐, 준하 씨한테 말할 수 있는 거면 대답할게. 하지만 대답 안 해도 준하 씨가 이해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권리가 있으니까.”“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싶어. 전 대표 같은 유형은 빼고.”성소현이 전태윤을 쫓아다닌 일은 전씨 그룹과 친분이 있고 깊은 협력관계도 있는 예준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게다가 성소현이 처음에 전태윤을 대놓고 쫓아다녀서 예준하가 모를 리 없었다.성소현이 침묵했다.“소현 씨, 미안해, 그냥 궁금해서 물었어, 난 소현 씨가 아주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 전 대표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소현 씨 문제가 아니라, 전 대표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야.”자신이 성소현의 상처를 들춰냈다고 생각한 예준하가 얼른 사과했다. “괜찮아. 전 대표한테는 이미 오래전에 단념했어. 예나 지금이나 태연하게 대할 수 있어. 전 대표도 나에게 미안해할 것 없어. 왜냐하면 나를 좋아한 적도 없고, 내 감정을 받아준 적도 없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와 전 대표 사이는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추구했던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훌륭한 남자는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기 마련이야. 그것은 매우 정상적인 것이지. 좋은 여자도 마찬가지로 많은 추구자가 있는 것처럼. 나는 단지 그 베일을 벗겼을 뿐이고, 다른 여자들이 하고 싶지만,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많이 했을 뿐이지. 비록 결과는 없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성소현이 말하면서 웃었다.“난 많은 사람이 전 대표가 내 사촌 동생을 좋아하고 있는데 성격이 좋지 않은 내가
오빠가 또 관성 호텔에 온 건가?성씨 그룹 산하에도 5성급 호텔이 있어서 성기현은 고객과 비즈니스 상담을 보통 자기 집 호텔에서 한다. 지난번에 중요한 고객이 관성 호텔에 묵는 바람에 성기현이 관성 호텔에 온 적이 있었다.“왜 그러는데?”예준하는 성소현이 옆에 있는 차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관심 조로 물었다.“괜찮아, 오빠 차를 봤어, 이 차가 바로 오빠 차야. 준하 씨, 우리 빨리 커피 마시고 돌아가. 오빠한테 들키지 않게. 오빠는 비즈니스 하러 왔으니 그리 빨리 끝나지 않을 거야.”성소현이 말하며 몸을 돌려 호텔 안으로 걸어갔다.예준하가 성소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물었다.“소현 씨 오빠가 우리 둘이 함께 커피 마시는 것을 볼까 봐 두려워?”“두렵지는 않지만 오해하는 건 싫어.”“그건 그래.”미혼인 그들이 함께 커피를 마시면 누가 봐도 오해할 수 있을 테니.무엇을 두려워하면 무엇이 온다고.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호텔 입구의 회전문 앞에서 성기현 일행과 딱 마주쳤다.성소현은 본능적으로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성소현!”성기현이 낮은 소리로 불렀다.벌써 두 걸음이나 떼였던 성소현이 방글방글 웃으며 다시 돌아섰다. “오빠, 정말 공교롭네.”예준하를 힐끗 바라보던 성기현이 정색을 하고 동생에게 물었다.“여긴 왜 왔어?”오빠 눈에 띄었으니, 성소현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준하 씨가 커피를 사준다고 해서 왔어, 준하 씨가 평소에 다니던 호텔커피숍에.”성기현이 예준하를 바라보자 예준하가 웃으며 말했다.“성 대표님, 우리 집은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데 소현 씨가 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커피 한 잔 사드리러 왔습니다. 악의는 없습니다.”그는 물론 악의는 없습니다, 다만 다른 깊은 뜻이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성기현은 그다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그러나 많은 사람 앞이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여동생에게 말했다,“커피만 마시고 집에 돌아가거라.”그러고는 예준하에게 말했다.“예 도련님
성소현은 큰 오빠가 갔다가 다시 오는 줄 모르고 예준하와 함께 호텔 1층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예준하는 그녀에게 주스 한 잔 시켜주고 본인은 커피로 주문했다.“지금 커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와?”성소현은 디저트 몇 개 더 시켰다.“응,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업무량이 워낙 많다 보니 커피 없인 새벽까지 못 버텨.”그는 업무 일정이 꽉 차서 매일 밤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만약 인생의 중대한 일을 해결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당연히 시간을 짜내서 한가한 대표님으로 되려 할 것이다.“소현아.”두 사람이 막 얘기 나누려던 찰나 성기현이 들어왔다. 그는 창가 쪽에 앉은 두 사람을 향해 걸어오며 여동생을 불렀고 고개 돌려 큰오빠를 본 순간, 성소현은 마치 나쁜 짓 하다가 가족에게 걸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아니지, 방금 호텔 입구에서 마주쳤잖아. 오빠는 나랑 준하가 커피 마시는 걸 알고 있었어. 마음 찔릴 것 없다고.’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대범하게 큰오빠에게 의자를 빼주었고 오빠가 자리에 앉자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오빠, 뭐 마실래?”“대표님.”예준하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했다.성기현은 그를 힐긋 쳐다보다가 여동생에게 말했다.“나 방금 차 많이 마셔서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그냥 앉아있으면 돼.”성소현은 자신이 주문한 디저트를 오빠 앞으로 내밀었다.성기현은 디저트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여기 앉아 둘 사이를 훼방하려는 속셈이었다.예준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 성기현도 그를 좋게 보고 예진 그룹과 협력할 의향도 있다. 하지만 예준하가 전씨 그룹을 선택했고 그 뒤로 성기현도 예준하와 더 깊은 교류가 없었다. 만약 예준하가 관성의 유능한 청년이라면 성기현은 달갑게 여동생과 그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다.다만 아쉽게도 예준하는 A시 사람이고 두 도시는 거리가 매우 멀어 자차로 고속도로를 달려도 무려 일여덟 시간이나 걸린다.하나뿐인 여동생을 그렇게 멀리 시집보내고 싶지는 않았다.하여 두 사람이 아직 감정이 무르익기 전에 자연스럽게
중요한 건 여동생이 예준하와 나름 잘 어울리고 있다.“저는 우리 예진 그룹의 관성 쪽 사업을 책임지고 있어 관성에 장기적으로 머물러요. 여기 정착하는 거나 다름없죠. 가끔 예진 리조트에 돌아가면 손님 같은 기분이 든다니까요. 엄마는 제가 예진 리조트를 호텔로 여기고 두 밤 자면 바로 가버린다고 자주 말씀하시더라고요.”성소현은 손을 테이블 밑에 내리고 큰오빠를 툭툭 찌르더니 오빠 곁에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오빠, 준하 씨한테 왜 자꾸 사적인 질문만 해? 너무 뜬금없잖아, 두 사람 친한 것도 아니면서.”그녀와 예준하도 자주 만나다 보니 조금 익숙해졌을 뿐이다.성기현은 동생을 빤히 쳐다봤다.‘얘가 정말 예준하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나? 내가 지금 미리 염탐해 주는 거잖아.’성소현이 전태윤에게 적극 구애하다가 결국 상처만 남은 채 남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것만 생각하면 성기현은 가슴이 아팠다. 동생이 예준하에게 딴생각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됐다. 괜히 또 짝사랑이 될까 봐 그러겠지.예준하도 딱히 어떠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아무래도 성기현이 너무 앞서간 듯싶었다.생각을 마친 성기현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두 남자 모두 대기업 대표이긴 하지만 예준하가 전씨 그룹과 깊이 협력하고 있어서 성기현은 그와 일적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경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하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떠난 것도 아니다.성기현은 동생이 주스와 디저트를 다 먹을 때까지 줄곧 옆에 있었다.“소현아, 오늘은 예정이랑 함께 투자건 의논하지 않아?”성기현은 동생에게 이젠 갈 때가 되었다고 눈치를 줬다.성소현은 시계를 보더니 오빠에게 대답했다.“오늘 안 가. 내일 다시 예정이랑 효진 씨 찾아갈 거야. 오빠 회사 안 바빠?”“바빠.”‘다 널 지켜주기 위해서잖아.’“오빠 바쁘면 먼저 가서 일 봐. 난 준하 씨 데려다줘야 해.”“네가 데려다준다고?”성기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이때 예준하가 겸연쩍게 웃으며 한마디 끼어들었다.“제가 소현 씨 차 타고 왔거든요.”
관성중학교 교문 앞.세단 몇 대가 바깥의 큰 도로에서 교문 앞 골목길로 굽어 들어오더니 학교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했다.선두의 경호차에서 경호원 한 명이 내려와 뒷좌석 차 문을 열어주며 차갑게 말했다.“아가씨, 관성중학교에 도착했습니다.”여운초는 말없이 옆에 놓인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집어 들고 옆자리에 놓인 몇 가지 선물까지 어루만졌다.선물은 여씨 사모님이 준비한 거라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여운초는 잘 모른다.여씨 사모님이 꽃가게에서 그녀를 데려왔다.두 번째 차는 여씨 사모님 전용차였다. 그녀는 도어를 내리고 방금 그 경호원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운초한테 말해. 차에서 내려 앞으로 3백 미터 가면 왼쪽 첫 번째 가게가 하예정 서점이라고.”경호원은 알겠다며 공손히 말한 후 다시 경호차 앞으로 걸어갔다. 여운초는 이미 몇 가지 선물을 들고 차에서 내렸지만 제자리에 서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그녀는 중학교1, 2학년, 그리고 3학년 첫 학기까지 관성중학교를 다녔는데 졸업을 앞두고 특수 학교로 전학 갔다. 바로 그때 실명했으니까.전학한 이후로 그녀는 십 년 동안 관성중학교에 돌아오지 못했다. 학교를 증축하여 새로운 강의동, 기숙사동 등 건물을 많이 지었고 현재는 관성의 특목중학교 중 하나로 꼽힌다.예전에도 교문 앞에 상가가 꽤 많았는데 학교 앞에서 가게를 열 수 있는 사람은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라고 했다. 배후에 후원자 없이는 아무나 교문 앞에 가게를 열지 못한다.전씨 일가의 사모님이 이곳에서 몇 년 동안 서점을 연 것도 전씨 일가가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아가씨, 여기서부터 서점까지 300미터 떨어져 있어요. 서점은 왼쪽 첫 번째 가게에요.”경호원은 여씨 사모님의 말을 그대로 여운초에게 전달했다.“여운초, 내 말대로 동생 대신 가서 싹싹 빌어. 운별이가 무슨 잘못을 했든 걔는 영원히 네 친여동생이야!”여씨 사모님이 싸늘한 말투로 여운초에게 말했다.그들 부부는 전씨 그룹에 찾아가 전태윤을 만나고 싶었지만 매정하게 거절당
그렇게 겨우 여운초를 살려뒀지만 엄마의 책임을 다하진 못했다. 분명 제가 낳은 아이이면서도 이 딸에게 사랑의 감정이라곤 생겨나지 않았다. 전남편이 죽은 후 여운초는 아직 철도 안 든 어린애라 한창 엄마한테 애착할 때지만 아이가 울면서 안아달라고 해도 듣는 척을 안 할 뿐만 아니라 짜증 나면 발로 걷어차기까지 했다.그 광경에 가정부도 식겁할 따름이었다.하지만 아무리 싫어하고 때리고 욕해도 어린 여운초는 끝까지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엄마, 안아줘요.”전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어 여운초를 안아주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가정부에게 시켜 여운초를 안아가라고, 제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했다. 큰딸 얼굴만 보면 짜증이 밀려왔으니까.여운초는 부모님의 장점만 쏙 빼닮았다. 친아빠 같기도 하고 여씨 사모님도 많이 닮았지만 사모님은 끝까지 이 아이를 싫어했다.가정부는 여운초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 이 아이에게 감정이 생겨났다. 여씨 사모님이 갑자기 화내고 또 여운초를 발로 차버릴까 봐 그 후론 사모님만 집에 계시면 가정부가 갖은 방법으로 운초를 달래 밖에서 놀게 했다. 어떻게든 사모님과 마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안 그러면 여운초는 또 울면서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응석을 부릴 테니까.그렇게 서서히 여운초는 엄마의 품을 갈망하지 않고 종일 함께 있는 가정부와 더 가깝게 지냈다.다만 여씨 사모님은 여운초와 가정부가 모녀처럼 가까워진 걸 보더니 가정부를 바로 해고했다. 여운초는 울며불며 가정부를 해고하지 말라고 빌었고 심지어 무릎까지 꿇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여씨 사모님은 그토록 여운초를 미워했다.왜냐하면 그녀는 여운초의 친아빠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녀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줄곧 현재 남편이지만 부모님이 유독 그녀의 전남편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둘 사이에 태어난 딸 여운초에게도 애정이 생기지 않기 마련이다.여운초는 엄마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 원한과 사악함이
여운초는 예전에 점원에게 부탁해 자신의 보폭을 재어달라고 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보폭이 작아서 1미터를 네 걸음 걸어야 하니 300미터 거리면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최소한 1200보는 걸어야 한다.여운초는 속으로 묵묵히 걸음 수를 세며 아주 느리게 걸어갔다.여씨 사모님은 그녀가 빨리 걷든 늦게 걷든 신경 쓰지 않았다.도어를 올린 후 여씨 사모님은 남편에게 전화했다.“여보, 나 지금 운초 시켜서 예정의 가게로 보냈어요.”여 대표가 알겠다고 대답했다.“운초한테 잘 말해야 운별이를 위해 사정해 줄 거야.”“내가 하라는 일 감히 안 할 리가 있겠어요?”여 대표는 말문이 막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여보, 사람 좀 더 찾아봐서 운별이 일단 꺼낼 수 있을지 알아봐 봐요. 걔가 어릴 때부터 예쁘게 자라서 그 안에서 어떻게 그 고생을 겪겠어요? 안에서 고생할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요. 이게 다 여운초 때문이에요. 그년이 운별이를 해쳐서 하예정과 갈등을 빚게 한 거라고요. 운별이도 억울함을 당해서 하예정 그년에게 복수하려 했는데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다 보니 그년한테 약점 잡힌 거예요. 여운초 이년 진짜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대체 왜 안 죽는 거예요? 이 빌어먹을 년은!”“여보.”여 대표가 전화기 너머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지금은 화풀이할 때가 아니야. 당신이 속상하고 딸 걱정하는 거 나도 이해해. 마음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야. 일단 운초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하예정 그년이 끝까지 기소하겠다고 나오면 그때 다시 방법을 연구해 봐.”여씨 사모님은 마음속 원한을 꾹 짓누르고 알겠다며 대답했다.“일 봐요, 그냥 당신한테 얘기하느라고 전화했어요.”말을 마친 여씨 사모님은 전화를 끊었다.하예정은 여운초가 온 걸 몰랐지만 그녀를 따라다니던 두 명의 경호원은 서점 문 앞에 의자를 두 개 옮겨와 앉아있다가 곧바로 여운초를 발견했다.그리고 암지에서 사모님을 지키고 있던 동료들도 곧장 문자를 보내 여운초의 신분을 확
곧이어 누군가가 재빨리 이리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걸음 소리를 들어보니 여자인 듯싶었다.“운초 씨.”목소리가 조금 익숙한 게 하예정인 것 같았다.“운초 씨.”하예정이 황급히 달려와 허리 숙여 그녀를 부축했다.“괜찮아요 운초 씨?”“네, 괜찮아요.”진짜 하예정이었다.‘경호원 한 말이 틀렸네. 만약 300미터 거리라면 예정 씨가 이렇게 빨리 올 수 없어.’하예정의 서점은 아마 이 근처인 듯싶었다.심효진은 얼른 여운초의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줍고 영양보조제 두 박스와 화장품 기초세트 두 개가 들어있는 선물 봉투까지 챙겨 들었다.하예정은 그녀에게 왜 여기 왔는지 묻지 않고 일단 심효진과 함께 부축해서 서점으로 돌아갔다. 여운초를 의자에 앉힌 후 그녀는 선물 봉투를 보면서 질문을 건넸다.“여 사모님이 오라고 했어요?”“네.”여운초가 나지막이 대답했다.심효진은 그녀에게 온수 한 잔 따라서 손에 쥐여줬다. 여운초는 심효진에게 고맙다고 말했다.“여긴 심효진이고 제 절친이에요.”하예정이 그녀에게 심효진을 소개해줬다.여운초는 심효진이 물을 건넨 방향으로 고개 돌려 활짝 웃었다.“반가워요, 효진 씨.”심효진은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이렇게 예쁜 소녀가 시각장애인이라는 게 참 안타까웠다.여운초가 물을 다 마신 후 하예정이 담담하게 물었다.“사모님이 운초 씨더러 운별 씨 대신 와서 사정하라던가요? 왜 본인이 직접 오지 않았대요?”“전태윤 씨가 저희 부모님을 예정 씨 가게로 못 오게 하셨어요. 전씨 그룹으로 찾아갔는데 만나주지 않으셨고요.”여운초는 숨김없이 다 털어놓았다. 비록 가족이라 해도 굳이 그들 부부를 위해 숨길 필요는 없으니까.“이 일은 나로 인해 벌어진 일이니 반드시 내가 나서서 수습해야 한대요. 예정 씨, 이번 일은 확실히 나 때문에 벌어진 일이에요. 내가 예정 씨를 번거롭게 했어요. 이 사건에 휘말리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여운초는 하예정을 향해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그녀가 줄곧 선글라스를 끼고 있다 보니 하예정은
하예정은 무언가 떠오른 듯 전태윤에게 말했다. “태윤 씨, 우리도 리조트에 이틀 정도 지내러 갈까요? 주말에 출근도 안 하고 서점도 주말에는 문을 안 열잖아요.” 예전에는 서점만 운영할 때 주말에도 문을 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제 사업이 커지면서 서점은 그냥 하예정과 심효진의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돈을 더 벌겠다는 생각보다는 그냥 애정으로 운영하는 곳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말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전태윤은 아직 대답하지 않았는데 친구인 소정남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메시지를 읽고 나서 그는 휴대폰을 하예정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그래, 우리도 리조트에 가서 주말을 보내자.” “어머님, 아버님, 할머니도 오늘 가시니까 소정남 씨와 효진이도 불러서 점심 같이 먹어요. 샤부샤부 어때요? 오랜만에 샤부샤부 먹고 싶어요.” 하예정이 자주 먹고 싶은 음식을 말하는 것에 전현림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아무런 이의도 없이 받아들였다. 하예정이 자신의 어머니와 꽤 닮았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인지 두 사람이 그렇게 친한 것 같았다. 예전에 전씨 할머니가 일부러 하예정을 자신의 은인으로 만들었던 일이 떠올랐다. 그 덕분에 온 가족이 하예정에게 감사하게 되었고 전씨 할머니는 장남인 전태윤에게 하예정과 결혼하라고 했다. 전현림은 속으로 생각했다. ‘어머니의 수법은 정말 대단해. 손자들도 어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 없구나.’ 다행히 전태윤과 하예정은 사이가 좋았으며 지금은 아주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하예정을 아끼는 전태윤은 당연히 아무런 이의도 없었다. 그는 소정남에게 답장을 보냈다. “예정아, 우리 아침 먹고 리조트로 가자. 소정남이랑 효진 씨도 리조트에서 만나자. 샤부샤부는 사람이 많아야 더 맛있잖아. 예준하 씨랑 소현 누나도 불러야겠다.” 전태윤이 제안했다. 하예정은 성소현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성소현은 사양했다. 그녀는 예준하와 A 시로 날아가 예진 리조트에서 며칠 지낼 예정이었다. 예준하를 계속 관
전태윤은 그를 속인 거였다. 하예정은 주우빈에게 답장을 보냈다. [눈이 왔구나. 우빈이 운이 좋네, 갔는데 바로 눈이 와서 진짜 눈을 볼 수 있게 됐구나.] [눈사람도 만들 수 있네. 이모는 지금까지 눈사람을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어.] [아침 맛있게 먹었어? 옷 많이 입고 감기 걸리지 않게 조심해.] [너희 셋째 작은 아버지는 여행 갔는데 열흘에서 보름 정도는 있어야 돌아올 거야. 네가 따라가면 유치원에 못 가잖아.] 다행히 전호영은 빨리 도망친 덕분에 주우빈에게 붙잡히지 않았다. 하예정의 답장을 받은 주우빈은 영상 통화를 걸어왔다. 하예정과 주우빈은 30분 동안 통화를 했다. 통화를 마친 후, 전태윤은 중얼거렸다. “오늘에서야 우빈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줄 알았네. 당신이랑 30분 동안이나 이야기하다니.” 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 “우빈이는 앞으로 수다쟁이가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따뜻한 남자가 될 거예요.” 따뜻한 남자에다 수다쟁이라니... “9시가 넘었네요. 부모님과 할머니도 일어나셨을 거예요. 우리도 얼른 서둘러야죠. 창빈 도련님은 오늘 원림성의 A 시로 가는 거예요?” 전태윤은 먼저 그녀의 옷을 가져오며 말했다. “월요일에 갈 거야. 이틀 정도는 집에서 할머니랑 시간을 보내려고.” 10여 분 후, 부부는 손을 잡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1층 거실 소파에는 전현림 혼자 앉아 신문을 보고 있었다. 전씨 할머니와 장소민, 그리고 어제 형의 집에서 잔 전창빈은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 “아버님.” 부부는 전현림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다. 전현림은 부부를 바라보며 다정하게 말했다. “일어났구나. 아침 식사 준비해 뒀어. 아직 따뜻할 거야. 먹으러 가.” “엄마랑 할머니는 어디 계세요?” 전태윤이 물었다. “창빈이는 아직 안 일어났어요?” “할머니가 엄마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셨는데 창빈이도 같이 갔어.” “이렇게 추운 날씨에 할머니가 산책하러 나가시다니.” 전태윤이 말했다. “할머니 말씀하시길,
“예진아, 늦었어. 얼른 쉬어. 나도 방으로 돌아가서 쉬어야겠어. 내일 아침 같이 먹자.” 노동명의 목소리는 약간 쉰 듯했다. 하예진은 그의 얼굴에 살짝 입을 맞추며 말했다. “동명 씨, 잘 자요.” “잘자.” 하예진은 그를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는 직접 휠체어를 조종해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달콤한 미소였다. 그날 밤은 더 이상의 대화 없이 지나갔다. 주말 아침, 출근할 필요도 없고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평소 일찍 일어나던 전태윤도 침대에서 나오기 싫었다. 그는 침대에 늘어져 아내의 따뜻한 핫팩이 되어 주었다. 관성의 기온이 떨어져 정말 추웠지만 사실 기온은 아직 10도 정도였다. 낮에는 최대로 10도 중반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관성 사람들은 너무 추웠다. 많은 사람들이 서둘러 인터넷으로 두꺼운 옷을 주문했다. 관성 사람들이 옷을 주문하면 판매자들은 재빨리 발송했다. 며칠 후 주문이 취소될까 봐 걱정되기 때문이었다. 관성의 추위는 찬 공기가 남하할 때 며칠 동안 추워지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발송이 늦으면 날씨가 풀리고 나서 두꺼운 옷을 입을 필요가 없어지면서 주문을 취소하게 된다. 방에는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가장 추운 며칠 동안 전태윤은 보일러를 켜지 않았다. 그는 보일러를 켜면 하예정이 더워서 자신의 품에 안기지 않을까 봐 일부러 켜지 않았다. 그가 하예정이 자신의 품에 안기는 걸 얼마나 좋아하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이건 절대 예정이에게 들키면 안 돼. 아니면 또 교활하다고 할 거야.’ ‘카톡!’ 하예정의 카톡에 새로운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녀는 잠에서 깼지만 움직이기 싫어서 전태윤에게 말했다. “여보, 누가 이렇게 이른 아침부터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는지 좀 봐줘요. 너무 시끄러워요.” 전태윤이 말했다. “내 생각엔 우빈일 거야.” “우빈이는 엄마랑 있어서 이렇게 일찍 나한테 메시지를 보내지 않을 거예요. 아직 꿈나라에 있을지도 몰라요.”
시도 때도 없이 간식을 꺼내 그녀에게 먹여줬다. 영화가 끝날 즈음, 하예진은 그가 챙겨준 음식으로 배부르게 먹고는 그를 보고 말했다. “이제 됐네요. 야식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정도예요. 또 산책하면서 소화라도 좀 시켜야겠어요.” 노동명이 일어나자 하예진과 보디가드가 그를 부축하며 밖으로 나갔다. 노동명은 웃으며 말했다. “그럼 나를 밀면서 호텔까지 걸어가. 산책하면서 소화 시키는 거지.” 하예진도 웃으며 말했다. “그러죠 뭐. 그런데 걸어가면 길을 못 찾을지도 몰라요. 길을 잘못 들면 우리 둘 다 강성의 길거리에서 하룻밤을 돌아다녀야 할 거예요. 저 원망하지 마요.” “그럴 리 없어.” 지금은 밤이 더욱 깊어졌다. 영화관을 나오니 거리의 떠들썩함은 사라지고 점점 고요해지고 있었다. 하예진은 노동명을 천천히 밀며 걸었다. 보디가드들은 두 사람 뒤에서 조용히 그들을 보호했다. 걷다 보니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동명 씨, 눈이 오네요. 빨리 차 타고 호텔로 돌아가요.” 어느 정도 걷자 하예진은 더 이상 배가 부르지 않았다. 날씨가 추워지고 눈이 오니 길이 미끄러워 운전하기 어려울까 걱정되었다. “그래.” 노동명은 아무런 이의 없이 그녀의 말을 따랐다. 그에게는 그녀의 말이 곧 정답이었다. 두 사람은 차에 올라탔다. 이내 그들은 이내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주우빈은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강일구는 주우빈과 함께 있었다. 하예진이 돌아오자 강일구는 방으로 돌아갔다. “우빈이 자고 있어?” 노동명은 방에 들어와 주우빈을 보았다. 아이가 깊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불을 살짝 덮어주며 말했다. “보일러 온도는 적당하면 돼, 너무 높일 필요 없어. 우빈이가 땀을 흘리고 있잖아.” 아이는 더우면 이불을 걷어차는 버릇이 있었다. 하예진은 온도를 조금 낮췄다. 노동명은 주우빈의 땀을 닦아주고 이불을 살짝 걷어내 더 덥지 않게 했다. 노동명의 행동을 보며 하예진의 눈에는 애틋함이 가득했다. 그는 주
노동명은 남들이 주의하지 않는 틈을 타 그녀의 손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리고 손등에 한 번, 손바닥에 한번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하예진은 다급하게 손을 뺐다. 그녀의 얼굴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영화관 안은 어두웠고 아무도 그녀를 주시하지 않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볼 수 없었다. “동명 씨, 진지하게 좀 굴어요.”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그를 꾸짖었다. 노동명은 늘 거칠고 대범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비쳤으며 성격도 시원시원했다. 그런 그가 애교를 부리기 시작하면 그녀의 얼굴은 빨개졌다. 그녀는 그의 앞에서 마치 어린 소녀처럼 변했다. 하예정은 언니가 두 번째 사춘기를 맞은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명은 낮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알았어. 진지해질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예진아, 앞으로 네가 휴식을 원할 때, 쇼핑을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여행을 가서 바람을 좀 쐬고 싶다면 나에게 말만 해줘. 아무리 바빠도 내 손에 있는 일을 내려놓고 너와 함께 나갈 수 있어. 일도 중요하지만 너의 행복이 더 중요해. 나는 돈도 충분히 있어. 예전에 번 돈이 너무 많아서 다 쓰지도 못했어. 지금 일을 하는 건 그냥 시간을 보내고 약간의 용돈을 버는 정도야. 나에게는 너와 우빈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 하예진은 그를 꾸짖듯 말했다. “동명 씨가 말하는 약간의 용돈은 다른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도 못 버는 금액이에요. 동명 씨, 일부러 자랑하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이 하예진이 식당을 운영하며 매출이 좋아 월 순이익이 꽤 높다고 하더라도 그가 버는 돈에 비하면 그녀의 이익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에잇, 비교하니까 열 받네.’ 그녀는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늦게까지 일하며 온 힘을 다해야 그 정도 돈을 벌 수 있다. 일반 직장인들은 말할 것도 없다. 물론, 노동명이 그렇게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젊은 시절 고생하며 노력한 결과다. 노동명은 업계에서 십여 년을 뛰어다니며 오늘의 성과를 이루었다. 노
우빈은 새 장난감을 들고 호텔로 돌아가 놀고 싶었다.아직 강성의 밤 구경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하예진이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아, 일구 삼촌과 함께 호텔로 돌아가서 놀아달라고 할래? 엄마랑 아저씨랑 좀 더 돌아다니다가 돌아갈게.”우빈은 생각해 보더니 대답했다.하여 강일구는 우빈을 데리고 호텔로 돌아갔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계속 돌아다녔다. 이는 두 사람만의 데이트나 다름없다.“동명 씨, 우리 영화 보러 갈까요? 이 근처에 큰 영화관이 있거든요. 저는 거의 매일 그 영화관 입구를 지나다녔는데도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 없었어요.”노동명이 간절히 원하던 바였다.그는 즉시 경호원에게 먼저 영화표를 사라고 지시했고 그와 하예진은 천천히 걸어갔다.십여 분 후, 두 사람은 영화관 입구에 도착했다.경호원은 표를 끊고 간식도 사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를 보면서 간식을 먹으면 심심하지 않을 것이다.두 사람은 단지 영화를 보고 싶을 뿐이고 구매한 표도 곧 시작하게 된다.영화관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면 곧 들어갈 수 있었다.노동명은 휠체어를 타지 않고 한 손으로 경호원의 어깨를 잡고 나머지 한 손은 하예진이 부축하여 들어갔다.자리에 앉은 노동명은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그들 주변에는 아직 아무도 없었다.그와 하예진, 그리고 몇 명의 경호원들이 두 사람 주위에 흩어져 있었다. 경호원들은 그들을 중심으로 둘러싸고 보호하고 있었다.“영화관에 와서 영화를 본 게 몇 년 만인지 모르겠어.”노동명은 자리에 앉은 뒤 감개무량하게 한마디 했다.하예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저도 몇 년 됐어요. 결혼하고 나서 한 번도 온 적 없어요.”결혼한 뒤로 영화를 보기는커녕 주형인은 그녀와 함께 쇼핑하는 것조차 점점 더 짜증을 냈다.그는 하예진이 물건을 살 때 항상 물건을 이리저리 비교하여 싼 물건을 고르는 모습을 싫어했다.하예진은 그때 직장을 그만두고 집에서 배속의 태아를 돌봐야 했다. 저축한 돈은 모두 신혼집을 꾸미는 데 썼기에 돈 가방
하예진은 아들의 이마를 톡 쳤다.“뭐라고 한 거야?”우빈은 하예진이 때린 곳을 만지며 노동명에게 말했다.“아저씨, 엄마가 절 아프게 때렸어요. ‘호’ 해주세요.”노동명은 재빨리 불어주고는 다시 어루만져주며 하예진을 나무랐다.“예진아, 우빈 이마를 자꾸 치지 마. 똑똑한 애가 멍청해지면 어떡해.”“똑똑하면 똑똑하고 멍청하면 멍청한 아이인 거예요. 제가 몇 번 쳤다고 멍청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멍청한 건 녀석이 원래 멍청한 아이였기 때문이에요.”“우리 우빈은 똑똑하거든 멍청하지 않는단 말이야.”우빈은 하예진에게 혀를 내밀고는 얼른 노동명의 품으로 쏙 들어갔다.노동명 아저씨가 그를 보호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우빈을 아껴주던 노동명은 결국 우빈을 데리고 장난감 가게에 들어갔다.가게에 들어간 우빈은 노동명 품으로부터 바닥에 미끄러져 내려와 먼저 몇 권의 유아용 스케치북을 가져와서 하예진의 앞에서 귀여운 얼굴을 들고 물었다.“엄마, 이거요. 저 장난감을 더 사도 돼요?”노동명이 녀석에게 장난감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지만, 녀석은 엄마의 뜻을 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만약 하예진이 그에게 새 장난감을 사지 말라고 고집한다면 그도 사지 않을 것이다.하예진이 대답했다.“하나만 사.”우빈이가 대답했다.“네.”우빈은 장난감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하예진이 한 가지만 살 수 있다고 하니 하나만 사는 수밖에!녀석은 얼른 가서 그의 장난감을 고르고 있었다.노동명은 우빈이가 여러 장난감을 어루만지며 전부 가지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더니 고개를 돌려 사랑하는 여인에게 말을 건넸다.“우빈이 좋아하는 건 다 사자. 내가 선물로 사줄게.”“동명 씨, 너무 아이 뜻에만 따르면 안 돼요. 한 가지만 고르게 해요. 장난감도 가지고 왔던데.”그러나 하예진은 아들에게 장난감 하나만 사주겠다고 고집했다.노동명은 어쩔 수 없이 하예진의 뜻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그는 우빈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사서 우빈에게 주고 싶었다.“우빈은 너무 많은 사람이 사랑해주고 아껴
“엄마, 하나만 사줘요. 네?”우빈은 계속해서 졸라댔다.“안 돼. 장난감을 사도 여기저기 쌓여 있을 텐데. 네가 놀다가도 정리하지 않으면 엄마가 대신 치워야 하잖아.”“엄마, 제가 다 치울게요. 앞으로 다 치울게요.”우빈도 스스로 정리하고 있었다. 다만 가끔 치우지 않을 때도 있었을 뿐이다.“장난감을 가지고 왔잖아.”하예진은 우빈에게 장난감을 너무 많이 사주는 것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그 이유는 녀석이 장난감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우빈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댔다.“새 장난감 사고 싶어요. 제가 새것 사 가서 동생에게 줄게요.”“그 동생은 아직 어려서 못 놀아.”“그럼, 스케치북을 사줘요. 글씨를 쓰고 숫자도 적으면서 놀래요. 네?”우빈이는 한발 물러서서 스케치북이라고 사고 싶었다.그 장난감 가게에는 연필들과 책들도 많았다.우빈은 그 가게를 다 돌아본 후에야 엄마를 찾으러 돌아와서 사달라고 졸랐다.강일구는 우빈이가 좋아하는 것을 사준다고 했지만, 녀석은 감히 받지는 못하고 하예진의 뜻을 물어보려고 했다.하예진은 항상 우빈의 장난감이 너무 많아서 두 번째 장난감 방도 가득 찼다고 잔소리했다.우빈은 장난감을 매우 사랑했다. 어떤 장난감은 실수로 망가져도 엄마가 버리겠다고 하면 아까워서 버리지 못했다.하예진이 쓰레기통에 버리면 녀석은 전부 도로 주워왔다.“스케치북은 사줄게.”우빈은 금세 원숭이처럼 노동명의 허벅지에 올라가 자신을 안아달라고 요구했다.그리고 하에진이 그들을 밀고 앞으로 가게 했다.“엄마, 그럼 우리 스케치북 사러 가요.”가게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녀석이 원하는 것을 전부 이룰 수 있었다.우빈은 여러 대의 큰 장난감 차와 강아지 인형이 갖고 싶었다.정말 탐나는 장난감이었다!그는 엄청 좋아했다.“스케치북만 사. 이따가 돌아오면 그림도 그려.”하예진은 그녀의 아들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그녀는 손을 뻗어 아들의 이마를 콕 찔렀다.“엄마가 네 곁에 없었는데 유치원에서 돌아와서
노동명은 다정하게 말했다.“널 위해서 늘 재활을 꾸준히 하고 있어. 회사 일은 특히 중요할 때만 나가서 처리하거든. 우리 형도 도와줘서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노동명은 그윽한 눈빛으로 말을 건넸다.“예진아, 만약 네가 없었다면 난 정말로 재활을 포기하고 자포자기하면서 평생 일어나지 못했을 거야.”“바보.”“아니거든. 난 단지 너와 우빈을 너무너무 사랑했을 뿐이야. 남들은 네가 이혼한 여자라고 말하고 있어. 내가 널 알게 되었을 때에도 넌 뚱뚱하고 못생겼는데 내가 왜 널 좋아하게 되었는지 몰라... 근데 좋아하면 좋아하는 거지 나도 그 이유를 찾고 싶지도 않아. 아마 너의 강인함과 감히 자신을 개변시키는 그 능력에 매료되었을지도 모르지. 난 우빈이가 너무 사랑스러워. 사실 난 아이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져서 안 좋아하거든. 근데 처음으로 우빈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되었다.”“저도 알아요. 저도 제 아들 덕을 봤죠.”노동명은 우빈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빈의 엄마, 즉 하예진에게 조금 더 많은 관심과 포용력을 갖게 되었다.그러다가 접촉 횟수가 많아졌고 함께 지내다 보니 서로 정이 들었다.“우빈이가 우리 두 사람 중매를 선 거나 다름없어.”노동명은 헤벌쭉 웃었다.“태윤이도 마찬가지야. 태윤 때문이 아니었다면 널 알지도 못했을걸. 예진아, 네가 강성에서 일을 마치면 나랑 결혼하는 건 어때?”하예진의 대답이 떨어지기도 전에 노동명이 계속하게 말했다.“내가 정상적으로 걷지 못해도 난 결혼하고 싶어. 난 이미 스스로 설 수 있어. 그리고 몇 걸음 정도는 앞으로 걸을 수 있게 됐고. 1년이란 시간을 더 주면 분명 정상적으로 걸어 다닐 수 있을 거야. 근데 난 그때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아.”노동명은 지금 36세이고, 2년만 더 기다리면 38세까지 될 것이다.곧 있으면 마흔이 된다.하예진은 속으로 흐뭇해하며 대답했다.“좋아요. 저야 지금 당장이라도 동명 씨와 혼인 신고를 할 수 있어요. 근데 동명 씨가 원하지 않잖아요.”노동명은 자신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