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현은 어이가 없었다.“...나를 부적으로 생각하는 거야?”예준하가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뻔뻔하게 대답했다.“내가 부적을 살 돈을 줄게.”성소현이 웃으며 놀림조로 말했다.“예전에는 예씨 가문에 대해 잘 몰랐는데, 준하 씨를 알게 된 후 오빠한테 물어보니, 준하 씨가 형제 중 가장 약해서 항상 경호원을 데리고 다닌다던데?”“맞아, 난 어렸을 때 뚱뚱했어. 너무 뚱뚱한 사람은 운동을 싫어하잖아? 난 무공을 배울 때 항상 게으름을 피웠는데, 결국 형제 중 내가 제일 무공이 약해서 어쩔 수 없이 경호원을 청했어.”그들 형제는 10명인데, 다닐 때 항상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사람은 확실히 다섯째 예준하뿐이고, 다른 형제들은 가끔 경호원 몇 명을 데리고 다니는 시늉만 하고 있다.예준하는 경호원이 곁에 없으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성소현이 차를 운전하면서 말했다.“나처럼 약한 여자도 경호원 없이 외출하는데. 쇼핑하러 갈 때만 물건을 들어달라고 경호원을 데리고 가.”“소현 씨는, 무공을 할 줄 알아?”“우리 같은 가정 출신은 자기관리를 위해 다소 훈련을 해왔지만, 실전 경험은 없어.” 관성에서 성격이 까칠하고 드센 성소현에 대한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다. 게다가 성씨 가문은 관성에서 매우 지위가 높아서 누구도 감히 성소현의 미움을 사려고 하지 않았다. 설사 성소현이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지 않아도, 웬만한 건달들은 성씨 아가씨의 차만 보면 모두 멀찍이 피하고 있다.관성의 상류층 사람 중 가장 요란하게 경호원을 데리고 다니는 건 전태윤이었다. 하지만 전태윤은 주로 경호원을 자기를 따라다니는 여자들을 막는 데 이용한다. “여 협객님, 앞으로 저를 보호해 주세요.”성소현이 피식 웃었다.“실전 경험도 없는데 내가 어떻게 지켜줄 수 있겠어? 게다가 배운 건 거의 다 잊어버렸어, 지금은 동작도 기억이 안 나. 준하 씨는 앞으로 주먹이 센 와이프를 찾으면 되겠어. 특수경찰이 제일 좋겠네. 데이트할 때 위험에 처하면 준하 씨를 보호해 줄 수 있으니.”
“소현 씨, 우린 이제 친구 맞지?”예준하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성소현한테 물었다.성소현도 예준하를 한번 힐끗 쳐다보더니 웃었다.“우리는 친구지, 이웃이기도 하고.”예준하는 조용히 성소현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밝고 화려한 이미지의 여자이다. 그녀의 아름다움은 숨김이 없고 꾸밈이 없는 아름다움이다.“그럼, 프라이버시에 관해 물어봐도 돼?”“물어봐, 준하 씨한테 말할 수 있는 거면 대답할게. 하지만 대답 안 해도 준하 씨가 이해해, 모든 사람은 자신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할 권리가 있으니까.”“어떤 남자를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싶어. 전 대표 같은 유형은 빼고.”성소현이 전태윤을 쫓아다닌 일은 전씨 그룹과 친분이 있고 깊은 협력관계도 있는 예준하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게다가 성소현이 처음에 전태윤을 대놓고 쫓아다녀서 예준하가 모를 리 없었다.성소현이 침묵했다.“소현 씨, 미안해, 그냥 궁금해서 물었어, 난 소현 씨가 아주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 전 대표가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 건 소현 씨 문제가 아니라, 전 대표가 자기가 좋아하는 여자를 만났기 때문이야.”자신이 성소현의 상처를 들춰냈다고 생각한 예준하가 얼른 사과했다. “괜찮아. 전 대표한테는 이미 오래전에 단념했어. 예나 지금이나 태연하게 대할 수 있어. 전 대표도 나에게 미안해할 것 없어. 왜냐하면 나를 좋아한 적도 없고, 내 감정을 받아준 적도 없고, 어떤 약속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나와 전 대표 사이는 나 혼자만의 짝사랑이었어. 하지만 내가 그를 추구했던 것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아. 훌륭한 남자는 많은 여자들이 좋아하기 마련이야. 그것은 매우 정상적인 것이지. 좋은 여자도 마찬가지로 많은 추구자가 있는 것처럼. 나는 단지 그 베일을 벗겼을 뿐이고, 다른 여자들이 하고 싶지만, 감히 하지 못하는 일을 많이 했을 뿐이지. 비록 결과는 없었지만, 후회하지는 않아.”성소현이 말하면서 웃었다.“난 많은 사람이 전 대표가 내 사촌 동생을 좋아하고 있는데 성격이 좋지 않은 내가
오빠가 또 관성 호텔에 온 건가?성씨 그룹 산하에도 5성급 호텔이 있어서 성기현은 고객과 비즈니스 상담을 보통 자기 집 호텔에서 한다. 지난번에 중요한 고객이 관성 호텔에 묵는 바람에 성기현이 관성 호텔에 온 적이 있었다.“왜 그러는데?”예준하는 성소현이 옆에 있는 차를 쳐다보는 것을 보고 관심 조로 물었다.“괜찮아, 오빠 차를 봤어, 이 차가 바로 오빠 차야. 준하 씨, 우리 빨리 커피 마시고 돌아가. 오빠한테 들키지 않게. 오빠는 비즈니스 하러 왔으니 그리 빨리 끝나지 않을 거야.”성소현이 말하며 몸을 돌려 호텔 안으로 걸어갔다.예준하가 성소현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물었다.“소현 씨 오빠가 우리 둘이 함께 커피 마시는 것을 볼까 봐 두려워?”“두렵지는 않지만 오해하는 건 싫어.”“그건 그래.”미혼인 그들이 함께 커피를 마시면 누가 봐도 오해할 수 있을 테니.무엇을 두려워하면 무엇이 온다고.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호텔 입구의 회전문 앞에서 성기현 일행과 딱 마주쳤다.성소현은 본능적으로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성소현!”성기현이 낮은 소리로 불렀다.벌써 두 걸음이나 떼였던 성소현이 방글방글 웃으며 다시 돌아섰다. “오빠, 정말 공교롭네.”예준하를 힐끗 바라보던 성기현이 정색을 하고 동생에게 물었다.“여긴 왜 왔어?”오빠 눈에 띄었으니, 성소현도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준하 씨가 커피를 사준다고 해서 왔어, 준하 씨가 평소에 다니던 호텔커피숍에.”성기현이 예준하를 바라보자 예준하가 웃으며 말했다.“성 대표님, 우리 집은 인테리어를 하고 있는데 소현 씨가 저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에 커피 한 잔 사드리러 왔습니다. 악의는 없습니다.”그는 물론 악의는 없습니다, 다만 다른 깊은 뜻이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성기현은 그다지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그러나 많은 사람 앞이라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여동생에게 말했다,“커피만 마시고 집에 돌아가거라.”그러고는 예준하에게 말했다.“예 도련님
성소현은 큰 오빠가 갔다가 다시 오는 줄 모르고 예준하와 함께 호텔 1층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예준하는 그녀에게 주스 한 잔 시켜주고 본인은 커피로 주문했다.“지금 커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와?”성소현은 디저트 몇 개 더 시켰다.“응, 우리 같은 사람들은 업무량이 워낙 많다 보니 커피 없인 새벽까지 못 버텨.”그는 업무 일정이 꽉 차서 매일 밤늦게까지 일해야 한다.만약 인생의 중대한 일을 해결할 기회가 생긴다면 그는 당연히 시간을 짜내서 한가한 대표님으로 되려 할 것이다.“소현아.”두 사람이 막 얘기 나누려던 찰나 성기현이 들어왔다. 그는 창가 쪽에 앉은 두 사람을 향해 걸어오며 여동생을 불렀고 고개 돌려 큰오빠를 본 순간, 성소현은 마치 나쁜 짓 하다가 가족에게 걸린 듯한 착각이 들었다.‘아니지, 방금 호텔 입구에서 마주쳤잖아. 오빠는 나랑 준하가 커피 마시는 걸 알고 있었어. 마음 찔릴 것 없다고.’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대범하게 큰오빠에게 의자를 빼주었고 오빠가 자리에 앉자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오빠, 뭐 마실래?”“대표님.”예준하가 가볍게 웃으며 인사했다.성기현은 그를 힐긋 쳐다보다가 여동생에게 말했다.“나 방금 차 많이 마셔서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그냥 앉아있으면 돼.”성소현은 자신이 주문한 디저트를 오빠 앞으로 내밀었다.성기현은 디저트를 입에 대지도 않았다. 그는 오직 여기 앉아 둘 사이를 훼방하려는 속셈이었다.예준하는 아주 훌륭한 사람이라 성기현도 그를 좋게 보고 예진 그룹과 협력할 의향도 있다. 하지만 예준하가 전씨 그룹을 선택했고 그 뒤로 성기현도 예준하와 더 깊은 교류가 없었다. 만약 예준하가 관성의 유능한 청년이라면 성기현은 달갑게 여동생과 그를 만나게 해 줄 것이다.다만 아쉽게도 예준하는 A시 사람이고 두 도시는 거리가 매우 멀어 자차로 고속도로를 달려도 무려 일여덟 시간이나 걸린다.하나뿐인 여동생을 그렇게 멀리 시집보내고 싶지는 않았다.하여 두 사람이 아직 감정이 무르익기 전에 자연스럽게
중요한 건 여동생이 예준하와 나름 잘 어울리고 있다.“저는 우리 예진 그룹의 관성 쪽 사업을 책임지고 있어 관성에 장기적으로 머물러요. 여기 정착하는 거나 다름없죠. 가끔 예진 리조트에 돌아가면 손님 같은 기분이 든다니까요. 엄마는 제가 예진 리조트를 호텔로 여기고 두 밤 자면 바로 가버린다고 자주 말씀하시더라고요.”성소현은 손을 테이블 밑에 내리고 큰오빠를 툭툭 찌르더니 오빠 곁에 다가가 나지막이 말했다.“오빠, 준하 씨한테 왜 자꾸 사적인 질문만 해? 너무 뜬금없잖아, 두 사람 친한 것도 아니면서.”그녀와 예준하도 자주 만나다 보니 조금 익숙해졌을 뿐이다.성기현은 동생을 빤히 쳐다봤다.‘얘가 정말 예준하에게 관심이 하나도 없나? 내가 지금 미리 염탐해 주는 거잖아.’성소현이 전태윤에게 적극 구애하다가 결국 상처만 남은 채 남들의 웃음거리로 전락한 것만 생각하면 성기현은 가슴이 아팠다. 동생이 예준하에게 딴생각이 없는 것도 이해가 됐다. 괜히 또 짝사랑이 될까 봐 그러겠지.예준하도 딱히 어떠한 감정을 드러내진 않았다. 아무래도 성기현이 너무 앞서간 듯싶었다.생각을 마친 성기현은 더는 말을 하지 않았다.두 남자 모두 대기업 대표이긴 하지만 예준하가 전씨 그룹과 깊이 협력하고 있어서 성기현은 그와 일적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경계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하지만 그렇다고 자리를 떠난 것도 아니다.성기현은 동생이 주스와 디저트를 다 먹을 때까지 줄곧 옆에 있었다.“소현아, 오늘은 예정이랑 함께 투자건 의논하지 않아?”성기현은 동생에게 이젠 갈 때가 되었다고 눈치를 줬다.성소현은 시계를 보더니 오빠에게 대답했다.“오늘 안 가. 내일 다시 예정이랑 효진 씨 찾아갈 거야. 오빠 회사 안 바빠?”“바빠.”‘다 널 지켜주기 위해서잖아.’“오빠 바쁘면 먼저 가서 일 봐. 난 준하 씨 데려다줘야 해.”“네가 데려다준다고?”성기현은 한심하다는 듯이 물었다.이때 예준하가 겸연쩍게 웃으며 한마디 끼어들었다.“제가 소현 씨 차 타고 왔거든요.”
관성중학교 교문 앞.세단 몇 대가 바깥의 큰 도로에서 교문 앞 골목길로 굽어 들어오더니 학교에서 몇백 미터 떨어진 곳에 주차했다.선두의 경호차에서 경호원 한 명이 내려와 뒷좌석 차 문을 열어주며 차갑게 말했다.“아가씨, 관성중학교에 도착했습니다.”여운초는 말없이 옆에 놓인 시각장애인 지팡이를 집어 들고 옆자리에 놓인 몇 가지 선물까지 어루만졌다.선물은 여씨 사모님이 준비한 거라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여운초는 잘 모른다.여씨 사모님이 꽃가게에서 그녀를 데려왔다.두 번째 차는 여씨 사모님 전용차였다. 그녀는 도어를 내리고 방금 그 경호원에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했다.“운초한테 말해. 차에서 내려 앞으로 3백 미터 가면 왼쪽 첫 번째 가게가 하예정 서점이라고.”경호원은 알겠다며 공손히 말한 후 다시 경호차 앞으로 걸어갔다. 여운초는 이미 몇 가지 선물을 들고 차에서 내렸지만 제자리에 서서 방향을 잡지 못했다.그녀는 중학교1, 2학년, 그리고 3학년 첫 학기까지 관성중학교를 다녔는데 졸업을 앞두고 특수 학교로 전학 갔다. 바로 그때 실명했으니까.전학한 이후로 그녀는 십 년 동안 관성중학교에 돌아오지 못했다. 학교를 증축하여 새로운 강의동, 기숙사동 등 건물을 많이 지었고 현재는 관성의 특목중학교 중 하나로 꼽힌다.예전에도 교문 앞에 상가가 꽤 많았는데 학교 앞에서 가게를 열 수 있는 사람은 호락호락한 자가 아니라고 했다. 배후에 후원자 없이는 아무나 교문 앞에 가게를 열지 못한다.전씨 일가의 사모님이 이곳에서 몇 년 동안 서점을 연 것도 전씨 일가가 뒷받침해 주기 때문이다!“아가씨, 여기서부터 서점까지 300미터 떨어져 있어요. 서점은 왼쪽 첫 번째 가게에요.”경호원은 여씨 사모님의 말을 그대로 여운초에게 전달했다.“여운초, 내 말대로 동생 대신 가서 싹싹 빌어. 운별이가 무슨 잘못을 했든 걔는 영원히 네 친여동생이야!”여씨 사모님이 싸늘한 말투로 여운초에게 말했다.그들 부부는 전씨 그룹에 찾아가 전태윤을 만나고 싶었지만 매정하게 거절당
그렇게 겨우 여운초를 살려뒀지만 엄마의 책임을 다하진 못했다. 분명 제가 낳은 아이이면서도 이 딸에게 사랑의 감정이라곤 생겨나지 않았다. 전남편이 죽은 후 여운초는 아직 철도 안 든 어린애라 한창 엄마한테 애착할 때지만 아이가 울면서 안아달라고 해도 듣는 척을 안 할 뿐만 아니라 짜증 나면 발로 걷어차기까지 했다.그 광경에 가정부도 식겁할 따름이었다.하지만 아무리 싫어하고 때리고 욕해도 어린 여운초는 끝까지 울면서 엄마를 찾았다.“엄마, 안아줘요.”전남편이 죽은 후 그녀는 더 이상 연기할 필요가 없어 여운초를 안아주는 건 더더욱 불가능했다.가정부에게 시켜 여운초를 안아가라고, 제 눈앞에서 사라지라고 했다. 큰딸 얼굴만 보면 짜증이 밀려왔으니까.여운초는 부모님의 장점만 쏙 빼닮았다. 친아빠 같기도 하고 여씨 사모님도 많이 닮았지만 사모님은 끝까지 이 아이를 싫어했다.가정부는 여운초와 함께한 시간이 길어 이 아이에게 감정이 생겨났다. 여씨 사모님이 갑자기 화내고 또 여운초를 발로 차버릴까 봐 그 후론 사모님만 집에 계시면 가정부가 갖은 방법으로 운초를 달래 밖에서 놀게 했다. 어떻게든 사모님과 마주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안 그러면 여운초는 또 울면서 엄마한테 안아달라고 응석을 부릴 테니까.그렇게 서서히 여운초는 엄마의 품을 갈망하지 않고 종일 함께 있는 가정부와 더 가깝게 지냈다.다만 여씨 사모님은 여운초와 가정부가 모녀처럼 가까워진 걸 보더니 가정부를 바로 해고했다. 여운초는 울며불며 가정부를 해고하지 말라고 빌었고 심지어 무릎까지 꿇었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여씨 사모님은 그토록 여운초를 미워했다.왜냐하면 그녀는 여운초의 친아빠를 사랑하지 않으니까. 그녀가 사랑하고 결혼하고 싶은 사람은 줄곧 현재 남편이지만 부모님이 유독 그녀의 전남편을 마음에 들어 하셨다...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와 결혼했으니 둘 사이에 태어난 딸 여운초에게도 애정이 생기지 않기 마련이다.여운초는 엄마의 표정을 볼 수 없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 속에 원한과 사악함이
여운초는 예전에 점원에게 부탁해 자신의 보폭을 재어달라고 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보폭이 작아서 1미터를 네 걸음 걸어야 하니 300미터 거리면 정확한 숫자는 몰라도 최소한 1200보는 걸어야 한다.여운초는 속으로 묵묵히 걸음 수를 세며 아주 느리게 걸어갔다.여씨 사모님은 그녀가 빨리 걷든 늦게 걷든 신경 쓰지 않았다.도어를 올린 후 여씨 사모님은 남편에게 전화했다.“여보, 나 지금 운초 시켜서 예정의 가게로 보냈어요.”여 대표가 알겠다고 대답했다.“운초한테 잘 말해야 운별이를 위해 사정해 줄 거야.”“내가 하라는 일 감히 안 할 리가 있겠어요?”여 대표는 말문이 막혀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여보, 사람 좀 더 찾아봐서 운별이 일단 꺼낼 수 있을지 알아봐 봐요. 걔가 어릴 때부터 예쁘게 자라서 그 안에서 어떻게 그 고생을 겪겠어요? 안에서 고생할 것만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진다고요. 이게 다 여운초 때문이에요. 그년이 운별이를 해쳐서 하예정과 갈등을 빚게 한 거라고요. 운별이도 억울함을 당해서 하예정 그년에게 복수하려 했는데 계획을 제대로 세우지 못하다 보니 그년한테 약점 잡힌 거예요. 여운초 이년 진짜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어요! 대체 왜 안 죽는 거예요? 이 빌어먹을 년은!”“여보.”여 대표가 전화기 너머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지금은 화풀이할 때가 아니야. 당신이 속상하고 딸 걱정하는 거 나도 이해해. 마음 아픈 건 나도 마찬가지야. 일단 운초가 어떻게 하는지 지켜보자. 하예정 그년이 끝까지 기소하겠다고 나오면 그때 다시 방법을 연구해 봐.”여씨 사모님은 마음속 원한을 꾹 짓누르고 알겠다며 대답했다.“일 봐요, 그냥 당신한테 얘기하느라고 전화했어요.”말을 마친 여씨 사모님은 전화를 끊었다.하예정은 여운초가 온 걸 몰랐지만 그녀를 따라다니던 두 명의 경호원은 서점 문 앞에 의자를 두 개 옮겨와 앉아있다가 곧바로 여운초를 발견했다.그리고 암지에서 사모님을 지키고 있던 동료들도 곧장 문자를 보내 여운초의 신분을 확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
“고마워요. 숙모님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연약하지 않다는 사실을 하예진은 진작 알고 있었다.하예진은 이씨 가문의 많은 사람 중 이윤미와 가장 많이 접촉했기에 이윤미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윤미 또한 하예진 앞에서 아무런 숨김도 없이 진정성있게 대했다.“예정 씨, 그럼 우리 먼저 돌아가 볼게요. 나중에 일이 생기면 다시 연락드리죠. 그리고 우리가 도울 일 있으면 얼마든지 말씀하세요.”하예진은 일어나 스위트룸을 빠져나와 엘리베이터 입구까지 데려다주었고 최순자 일행은 다시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착용한 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하예진은 그제야 발길을 돌렸다.그녀는 자신의 룸으로 돌아와 탁자 위를 치우고 나서야 룸 안에서 나왔다.문을 잠근 하예진은 강일구에게 물었다.“아무도 안 올라왔죠?”“네.”하예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도 갑시다.”경호원들도 묵묵히 그녀를 따라나섰다.......연성.연성 번화한 거리에 있는 한 새로운 회사는 28층 높이의 오피스 빌딩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회사는 관성 소씨 가문의 연성 지사이기 때문에 설립된 지 며칠 안 됐지만 이미 꽤 많은 직원이 있었다.대다수는 소지훈이 각지에서 전근하여 온 직원들이다.소지훈은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출장 왔다고 말했지만, 사실 소씨 가문이 연성에서의 사업은 너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소지훈은 정윤하와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즉시 연성에 지사를 설립하고 각지에서 엘리트들을 연성으로로 전근시켜 연성 지사를 신속하게 이 도시에서 정착시키려고 했다.그리고 연성 지사를 연성에서 규모가 가장 큰 회사 중 하나로 만들라는 명령을 내렸다.소지훈은 28층짜리 사무실 빌딩과 여러 곳의 공장 건물을 사들였는데, 이 행동은 연성의 업계에 큰 돌을 내 던져 평온해 보이는 호수를 마구 휘저은 거나 다름없다.모두가 몰래 소씨 회사의 내막을 알아보았는데 소지훈이 관성 소씨 가문에서 왔다는 것을 알고는 그의 회사와 협력하러 온 업계 거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심지어 어
“이씨 가문을 잘 꾸려나가려면 젊은 세대에게 의존해야죠. 우리 가문의 젊은 세대들도 능력만 있으면 모두 중히 여겨야 하는 거죠. 숙모님들, 맞죠?”이씨 가문의 셋째 삼촌 이지후는 야망이 있지만 이제 분투할 정력이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다만 그들의 후손의 앞날일 뿐이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승낙한 거나 다름없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가 하예진 쪽으로 돌아간다면, 가문의 젊은 세대들은 능력만 있다면 모두 적당한 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의미이다.하예진은 자신이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두 사모님이 눈을 마주치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씨 가문의 넷째 숙모 김연희가 입을 열었다.“맞아요. 역시 전임 가주의 후손답네요. 전임 가주가 이씨 가문을 다스릴 때 우리 이씨 가문은 강성에서 그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존재였죠.”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이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전임 가주 이은숙이 여전히 이씨 가문을 운영했을 때 김연희와 최순자는 아직 이씨 가문으로 시집오지 않았다. 당시 그녀들의 나이는 6세에서 12세 사이였고 가문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러나 그녀들의 남편들은 어느 정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적어도 학창시절에 이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도 괴롭히지 못했다.그 후, 가문의 어르신들 이야기를 통해 자주 듣게 되었다.전임 가주 이은숙의 인간 됨됨이나 일 처리 방면에서는 매우 훌륭했지만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 낳은 탓으로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하루가 멀다고 병으로 앓게 되어 이은화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그리고 두 숙모분께서도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씨 가문에서 떠벌리며 다니지 않는 한 강성에서의 안전은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어요.”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무슨 일을 하든 너무 날뛰지 않고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으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만약 그들이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한다면 하예진이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감히 협력하지
몇 분 후, 방에서 하예진을 기다리고 있던 전호영은 예진이 도착하자 바로 나와서 문을 열었다.“예진 누나.”“고마워요, 호영 씨.”“우리 사이에 무슨, 천천히 얘기 나눠요, 저는 일 보러 나가볼게요.”방을 나온 전호영은 하예진을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일구를 포함한 경호원들에게 아무도 못 들어가게 단단히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했다.펜트하우스가 출입이 통제되긴 하나 경각심을 높여서 나쁠 것은 없었다.일구와 다른 경호원들은 전호영의 말에 깍듯이 응했고 전호영은 자리를 떴다.하예진이 방으로 들어가자 두 숙모님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들을 위한 과자와 과일들이 놓여 있었고 따뜻한 물도 준비해져 있었다.“예진 씨.”하예진이 들어오자 두 숙모는 소파에서 일어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인사했다.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했으니 두 사람은 이제 본모습을 보일 때가 된 것이다.두 분은 나이가 있는 분들이셨지만 보양을 잘한 덕분에 겉보기에는 훨씬 젊어 보였다.“두 분 앉아계세요.”하예진은 차를 내와 찻잔에 부으면서 말했다. “차를 마시면 정신도 맑아지고 좋더라고요.”“우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차를 별로 안 마셔요. 차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셋째 숙모가 웃으면서 답했다.하예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간식을 권했지만 두 분은 사양했다.“두 분께서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하예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두 분과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니 다룰 얘깃거리도 별로 없었다.“예진 씨가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우리 그이가 그러더군요. 우리 두 집안이 기꺼이 힘을 합쳐 도와드리겠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셋째 숙모가 입을 열자 넷째 숙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속으로는 하예진 앞에서 이 가주에 대해 불평하고 싶었지만 집을 나설 때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그녀에게 신신당부했기에 꾹 참고 있었다. 그저 두 집안의 의사를 전달하고 다른 말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하예진은 관성의 대표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하루 호텔은 안전 레벨이 아주 높은 곳으로 그곳에 가면 숙모님들이 마음을 좀 더 내려 놓을 수가 있었다.이에 하예진도 동의를 표하였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방을 예약 해놓을게요.”그녀는 뒤돌아서서 휴대폰을 꺼내어 전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루 호텔에서 제일 안전한 방이 어느 방이에요? 누가 엿듣거나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곳으로 빌리려고요.”전호영은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그야 무조건 펜트하우스에 있는 스위트룸이죠. 지금 제가 묵고 있어요, 누나가 필요하다면 제가 빌려드릴게요.”“고마워요, 이씨네 숙모님 두 분이 먼저 가실 거예요, 믿을만한 사람을 시켜서 조용히 두 분을 방까지 모셔드리도록 해줘요.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주의해 주시고요.”전호영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안배할게요. 두 분 호텔로 이동하시게 하세요, 거의 도착할 때 저희 쪽에 연락 주시면 돼요.”그러고는 하예진에게 번호 하나를 알려주었다.“누나, 조금 있다가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돼요, 펜트하우스까지 에스코트해 줄 거예요. 저도 조금 있다가 바로 돌아갈게요.”현재 그 방은 전호영이 지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방문을 열 수가 없었기에 호영이 호텔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부탁드릴게요.”“별말씀을요.”하예진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하던 일 계속 해요, 제가 두 분께 말해놓을게요. 여기서 호텔까지 가려면 약 20분 정도 걸릴거에요. 저는 30분 뒤쯤에 도착할 것 같아요.”“알겠어요.”통화를 마친 예진은 두 숙모한테 다가가 말했다.“제가 이미 말해놓았으니 두 분께서 지금 그쪽으로 출발하시면 되세요. 거의 도착할 즈음 이 번호에 전화하시면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분들이 두 분을 방까지 에스코트해 주실 거예요.”하예진은 전호영이 알려주었던 번호를 셋째 숙모한테 말해주었다.“먼저 가 계시면 돼요. 저는 십 분 뒤에 바로 출발할게요.”“그래요.”두 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지체없이 바로 출발했다.
“그 분들이랑은 어떻게 되는 사이신지?”하예진이 물었다.두 사람은 자신들의 남편 정체를 말한 후 하예진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녀가 침묵하자 두 사람은 하예진이 자신의 남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서둘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넷째 숙모고 이분이 셋째에요.”하예진은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실 때 뒤따르는 사람이 없었나요?”“없어요, 뒤처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예진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하예진은 미소를 지었다. “저야 아무 걱정이 없지만 두 분께서 저를 찾아온 일이 이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 두 분께서 불리해질까 봐 걱정이에요.”하예진은 원래부터 이씨 집안을 노리고 있었으니 이씨 가족 사람들과 접촉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오히려 아무 접촉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씨 집안 사람들이 그녀를 먼저 찾아왔다면 이 가주가 그 사실을 알고 응징할 수도 있기에 그 후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지만 이내 다시 물었다.“예진 씨, 잠깐 따로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좋아요, 저는 아무 때나 괜찮아요. 어디서 얘기할까요? 장소를 알려주시면 제가 곧 갈게요. 함께 이동하면 눈에 뜨일 수 있으니까 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진의 말에 그 두 사람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두 사람은 마음이 놓였다.두 사람의 남편들은 집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이 가주는 그들을 비롯한 직계가 아닌 가족들에게 아주 인색하고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오히려 이 가주의 억압을 받아 두각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두 가족은 몰래 모여 이틀 동안이나 상의를 했고 결국에는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하예진이 이길 것이라고 배팅을 한 것이다. 만약 하예진이 이긴다면 그들이 하예진을 처음부터 지지해 온 사람들로서 앞으로의 발전이 나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