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하면 할수록 배우진은 마음이 아파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배우진은 절절하고 애틋한 사랑 같은 건 믿지 않았다.그뿐만 아니라 돈으로 엮인 사람이 자기를 사랑할 리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항상 자신을 일깨웠다.자기를 잃지 말고 육연희를 사랑하지 말라고, 엄마처럼 사랑하면 안 되는 사람은 사랑하면 안 된다고.결국, 괴로운 건 사랑을 한 사람이니까.그래서 육연희와 만날 때에도 항상 자신을 잃지 말고 냉정함을 유지했다.하지만 배우진은 육연희가 그를 고용했던 건 배우진이 어머니의 병을 치료할 수 있게 돈을 주기 위한 핑계였
배우진은 육연희가 그 자리를 떠나려 하자 뒤쫓아가서 그녀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고 눈물 자국이 가득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했다.“연희야, 내가 어떻게 하면 날 용서할 수 있어?”육연희는 지긋지긋하게 매달리는 배우진을 차가운 눈빛으로 보며 말했다.“내 아이를 다시 돌려줘. 그럼 용서해 줄게.”육연희의 말을 들은 배우진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의아한 듯 물었다.“무슨 아이? 연희야, 누구의 아이를 말하는 거야?”육연희는 싸늘한 눈빛으로 말했다.“다른 사람의 아이를 돌려달라고 하겠어? 배우진, 널 왜 이렇게 원
하지만 육연희가 아이를 지웠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니 배우진은 다시 되돌릴 가능성이 전혀 없을 거 같았다.온몸이 차가워진 배우진은 심장에 칼이 박힌 것처럼 아파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육연희는 마음을 가다듬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배우진, 빨리 손 떼지 않으면 사람을 불러서 여기서 내쫓을 거야.”배우진은 껴안고 있는 손을 놓지 않은 채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마음대로 해. 어차피 난 너 아니면 아무것도 필요 없어.”“배우진, 5년이나 지났는데 좀 철들면 안 돼? 네가 놓치기 싫다고 잡고 있으면 네 것이 될 거
천우의 말에 배우진은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것 같았다.배우진도 천우가 말하는 상황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M 국의 여왕 결혼은 자신이 스스로 상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의회에서 회의를 통해 왕공이나 귀족 중 한 사람을 선택했다.그러니 배우진의 신분은 당연히 그 후보에도 오르지 못할 사람이었다.육연희가 나중에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는 생각을 하니 배우진의 가슴은 찢어지는 듯 아팠다.위층에서 내려오자 한지혜는 배우진에게 달려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연희 언니 만났어요?”어두운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배우진을
허연후는 한지혜를 업고 걸으면서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한지혜는 처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재미있게 들어줬다.하지만 한참 뒤에 허연후는 기억을 잃었었다는 것이 생각났다.‘친구들에 대한 기억이 없는 거 아니었어?”‘어릴 때 그 추억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여기까지 생각한 한지혜는 속이 뜨끔해졌다.한지혜는 허연후한테 업힌 채 귓가에 대고 물었다.“허연후 씨, 기억이 돌아온 거예요?”한지혜의 물음에 허연후는 어리둥절해져 걸음을 멈추고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나도 모르겠어. 이 산을 보니까 그때가 생각나.”“그
오색찬란한 불꽃이 허연후의 얼굴을 환히 비추었다. 불빛 속 그의 또렷한 이목구비는 더욱 빛나 보였고, 짙고 깊은 눈매는 단숨에 시선을 사로잡았다.한지혜는 허연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심장은 거칠게 뛰기 시작했고, 그의 고백과 따뜻한 시선에 마음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그 다정함이 점점 더 욕심나 목소리마저 떨리고 말았다.“연후 씨...”그녀가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허연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내 천천히 다가와 그녀의 입술 위에 입을 맞췄다.그의 목소리에는 묘하게 거칠면서도
한지혜는 웃으며 허연후의 볼을 어루만졌다.“왜 그래요? 배우진 씨가 저에게 딴맘 먹은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경계해요?”허연후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했다.“좋아하지도 않는데 네 주변을 맴돌고 파티까지 따라온다고?”“연후 씨, 진짜 멍청한 거예요? 우리 천우도 눈치챈 걸 왜 연후 씨는 모르냐고요... 다른 사람들 일에는 관심조차 없는 거예요?”한지혜는 가볍게 웃으며 혀를 찼다.허연후는 그녀의 태도에 순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뜻인지 곱씹어 보려는 듯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가 이내 무언가 떠오른 듯 눈
한건우는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 지었다.“그냥 산책도 할 겸 너희를 기다리려고 나온 거다. 오늘 재미있었어?”허연후는 한지혜의 손을 꼭 잡으며 힘주어 고개를 끄덕였다.“재미있었어요. 저희 이제 다시 시작하기로 했습니다.”그 말을 듣자, 한건우와 윤다혜는 동시에 환한 웃음을 터뜨렸다.“정말 잘 됐구나! 조만간 네 할아버지랑 상의해서 빨리 결혼 날짜를 잡아야 하겠구나. 오래 기다리셨잖니.”한지혜는 깜짝 놀라며 손을 들어 황급히 막았다.“아빠, 대체 얼마나 제가 결혼하길 바라신 거예요? 저희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어요. 천천
“예람이가 너 어제 귀국했고 나연이도 너희 집에서 잤다고 하던데. 별일 없었지?”“어떤 방면에서요?”“뻔히 알면서 왜 물어? 만약 너희 둘한테 무슨 일 있었다면 엄마가 이모랑 삼촌한테 말해서 결혼 서둘러야지. 어차피 이 결혼은 정해놓은 건데.”육천우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엄마 실망하실 거잖아요. 아니면 오늘 제가 나연이 데리고 집에 갈까요? 술이라도 먹이면 무슨 일이 생길 것도 같은데. 그럼 그때 가서 이모한테 얘기하시면 되잖아요.”조수아는 화가 나서 욕을 했다.“이놈아. 나연이는 어릴 때부
말을 마친 육천우가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걸려 하자 허나연은 즉시 달려들어 그를 침대에 깔아 눕혔다.옷도 입지 않은 채 다시 껴안게 되자, 허나연의 머릿속에는 어젯밤의 장면이 하나둘 떠올랐고 하얀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다.육천우는 누운 채로 허나연의 허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어젯밤으로 만족을 못 하는 거야? 아침부터 왜 이래?”허나연은 화가 나 있는 힘껏 육천우의 가슴팍을 내리치고 씩씩거리며 말했다.“어젯밤에 우리한테 일어난 일 누구한테도 말하면 안 돼. 특히 네 엄마 아빠와 우리 엄마 아빠.”육천우는
육천우는 지금까지 뭔가를 이렇게 서둘러 본 적이 없었다. 그는 신발을 벗을 틈도 없이 허나연을 문 앞에 있는 신발장 위에 앉힌 뒤 입술을 맞추었다. 차 안에서 계속 자제하던 감정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야릇한 기운이 순식간에 방 안에 퍼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길처럼 두 사람은 이성을 잃은 채 서로를 탐했다.옷가지는 하나씩 바닥에 떨어졌고 방에서는 가슴 뛰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허나연은 마치 긴 꿈을 꾼 것 같았다. 꿈속에서 그녀는 육천우와 말도 안 되는 짓을 했다. 허나연은 눈을 감고 머리를 쥐어박더니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육천우는 큰 손으로 허나연의 머리를 쓰다듬고 부드럽게 말했다.“그래. 오빠 왔어.”육천우의 대답에 코끝이 찡해진 허나연은 그의 목을 끌어안고 억울한 듯 말했다.“천우 오빠, 왜 지금까지 나 보러 안 온 거야? 나연이가 싫어진 거야?”허나연의 안쓰러운 모습에 마음이 아파진 육천우는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날 싫다고 그랬었잖아. 파혼까지 해달라고 소리 지른 건 너야.”허나연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눈물을 글썽인 채 육천우를 바라보았다.“천우 오빠, 삼 년 전에 했던 말을 취소할게. 파혼하는 거 싫어. 결혼하고 싶어. 그러
육예람은 허나연을 끌고 룸으로 들어갔다. 문을 열자마자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 위로 오색 띠가 흩날렸다.친구 중 한 명이 다가오며 말했다.“나연아, 너의 천우 오빠가 돌아온다며? 축하해.”허나연은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육천우 얘기 꺼내지도 마. 속이 갑갑해지려 하니까.”“갑갑할 게 뭐가 있어? 잘생겼지 능력 좋지. 겨우 26살에 M 국 금융계를 휩쓸었잖아. 개인 재산이 이미 네 아버지를 넘었다고 들었는데? 내가 만약 이렇게 좋은 남편이 있으면 자다가도 웃다가 깰 거야.”“그렇게 부러우면 네가 가질래?”“싫어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깬 허나연은 눈을 반쯤 감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너머에서 육예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연아,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는데 어떤 걸 먼저 들을래?”허나연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나쁜 소식.”“너의 약혼자이자 나의 오빠가 곧 돌아온대. 너 앞으로 우리랑 같이 맘 편히 못 놀겠다. 하하하. 어때?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지 않아?”찬물을 끼얹는듯한 소식에 허나연은 순식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육천우가 돌아온다. 사사건건 간섭하며 아무것도 못 하게 구속하는 그가 돌아온다.‘그럼 앞으로 나이트는
“건강하고 멋진 남편으로 네 앞에 서겠다고 했잖아. 서연아, 지난번 청혼은 너무 성급했어. 오늘 양가 부모님 앞에서 다시 한번 정중하게 청혼할게.”말을 마친 뒤 박서준은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더니 안에서 청록색 팔찌를 꺼내 쥐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서연아, 이건 외할아버지께서 장가갈 때 아내에게 주라고 남긴 팔찌야. 이걸 착용하면 너는 이제 박씨 집안 며느리가 되는 거고 박서준의 아내뿐만 아니라 육 씨 집안 둘째 며느리가 되는 거야. 이 모든 신분을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됐어?”정상적으로 걷고 있는 박서준 때문에 놀란 마
곽서연은 근간에 계속 여러 곳을 다니며 무대를 돌았던 터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얼마 지나지 않아 박서준의 어깨에 기댄 채 잠들었다.얼마나 잤는지 누군가 귀를 깨물었고 곧이어 낮고 매혹적인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들려왔다.“잠꾸러기야, 집에 도착했어.”그제야 천천히 눈을 뜬 곽서연은 뜨거워진 얼굴을 박서준의 어깨에 몇 번 문지르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삼촌, 서프라이즈는요?”박서준은 웃으며 곽서연의 이마에 뽀뽀했다.“눈 감아. 같이 어디 가자.”말을 마친 박서준이 넥타이를 풀어 곽서연의 눈을 가리자 그녀의 궁금증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박서준을 밀어낸 곽서연의 눈에는 아직 가시지 않은 욕망으로 일렁였다.“제가 나가서 해장국을 가져다줄게요. 삼촌이 방금 취한 척 했다는 걸 눈치 못 채게 하세요. 안 그러면 정말 오늘 어떻게 될지 몰라요.”박서준은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여보 말 들을게.”박서준은 ‘여보’라는 호칭을 전혀 어색함 없이 불렀지만, 곽서연은 듣는 것만으로도 부끄러워 그의 가슴을 때리며 말했다.“함부로 부르지 말아요. 저 아직 아니거든요.”“조만간 될 거잖아. 하루빨리 박서준의 아내로 살면 누릴 수 있는 것도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