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지혜는 화가 나서 헛웃음이 나왔다.송미진만큼의 연기력을 가진 사람이 연기를 안 하다니 그야말로 재능 낭비였다.한지혜는 송미진을 비웃으며 말했다.“술은 얼마든지 있으니까 마시고 싶은 만큼 마음껏 마셔요. 여기서 미진 씨를 말릴 사람 하나 없어요.”송미진은 아련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바라보며 억울한 연기를 이어 나갔다.“수아 씨가 용서만 해준다면 제가 여기서 죽는대도 여한이 없어요.”그러자 송미진은 또 술 한잔을 들이마셨다.송미진이 계속 술을 들이켜려고 하자 한 어르신이 나타나 호통을 쳤다.“한지혜. 그만해. 사람이 사과
한 어르신이 진지하게 묻자 한지혜는 속으로 송미진을 수천 번이고 욕했다.송미진이 트집을 잡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음흉하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임신 사실을 말할 줄은 몰랐다.한 어르신은 줄곧 여자는 명예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사람들이 가득 모인 곳에서 소란을 피웠으니 당연히 화가 치밀어 올랐다.한씨 가문은 대대로 내려온 부잣집에 한지혜가 하나뿐인 손녀였기에 그녀의 결혼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그런 애지중지 여겨온 손녀가 혼전임신 했다니 그야말로 억장이 무너지는 소식이었다.일이 이미 이렇게 된 마당에 한지혜
송미진은 하늘색 드레스를 몸에 대보았다.조수아와 비슷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송미진은 흐뭇하게 웃었다.송미진이 이 드레스를 입은 채로 조수아와 비슷한 화장을 한다면 술에 취한 육문주가 그녀를 조수아로 착각하기에 충분했다.송미진은 육문주가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그가 더는 조수아를 짝사랑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송미진은 자신의 계략을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왔다.그녀가 천천히 더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하늘색 드레스로 갈아입으려고 하는데 탈의실 전등이 갑자기 꺼졌다.그녀는 깜짝 놀라서 몸이 절로 움츠러들었다.고향에
송학진은 회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긴 다리를 쭉쭉 뻗으며 연회장으로 걸어 들어왔다.줄곧 온화하던 그의 얼굴은 순간 차갑게 변해 있었다.그는 송미진 앞에 다가가 그녀를 바닥에서 끌어 올리고는 차가운 말투로 충고했다.“박씨 가문의 체면을 구겼으면서 감히 엄마의 일을 언급해? 돌아가서 제대로 반성해!”송학진은 말하면서 사정없이 송미진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가만히 듣고 있던 설 여사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그녀의 항상 온화하던 외손자는 송미진한테 더 지극정성이었다.하지만 오늘 그가 송미진을 대하는 태도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그가 망설이고 있을 때 뒤에서 설 여사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학진아. 이게 사실이야?”이 목소리를 듣고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그 순간 설 여사님은 눈물을 흘리며 이쪽을 향해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앞으로 다가와 송학진의 손을 잡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학진아. 설매의 딸이 그 아이가 아니라면 그럼 설매의 딸은 어디 있는 거야?”설 여사님은 눈물을 흘렸다.딸이 죽임을 당하고 심지어 아이까지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자 그녀는 마치 칼이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송학진은 다급하게 부드러운
조수아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문주한테 사실대로 말하면 문주가 날 보내줄까?”“문자가 널 보내줘도 분명 널 보러 갈 거야. 때가 되면 임신한 사실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아?”“아무도 날 찾을 수 없도록 내 흔적을 숨겨줄 사람을 찾고 있어. 그리고 난 너희하고도 다시 연락하지 않을 거야. 아이를 낳을 때까지.”그 말에 한지혜는 순간 깜짝 놀랐다.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조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너 떠나고 나면 나도 너한테 연락할 수 없는 거야? 수아야 이렇게 잔인하게 굴지 마. 네가 보고 싶으면 난 어떻게 해?”조수
그녀가 돌아서 떠나려고 할 때 육문주는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그는 깊은 눈빛을 하고서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뭐 먹고 싶은데? 내가 가져다줄게. 킹크랩도 있어. 내가 살 발라줄까?”그의 목소리는 아주 부드러웠고 그녀에게 하는 아부까지 담겨 있었다.그는 자기가 거칠게 말하면 조수아가 자기를 밀어낼까 봐 두려웠다.조수아는 이런 육문주를 마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그녀는 힘없이 눈을 감으며 부드럽게 말했다.“괜찮아.”“랍스타는? 여기 랍스타가 맛있대. 평소 네가 좋아하는 이탈리안도 저녁에 다 준비되어 있을 거야
이 순간 육문주는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모두 잃은 채 순종적인 강아지처럼 그녀를 불쌍하게 바라보았다.조수아는 심장을 누군가에게 찔린 듯한 느낌이 들었고 계속 쿡쿡 찌르는 통증이 느껴졌다.그녀는 천천히 무릎을 꿇으며 육문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육문주. 내가 데려다줄게.”육문주는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대답해. 떠나지 않겠다고. 그럼 너하고 같이 돌아갈게.”“그래. 대답할게.”그 말을 들은 육문주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휘청휘청 부축을 받으며 걸어갔다.하지만 그는 결코 조수아의 손을 놓치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