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문주의 눈에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픔이 서려 있었다.그는 조수아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은 채 그녀의 등을 계속 쓰다듬었다. 낮은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맘껏 욕해. 그래도 화가 안 풀리면 한 대 때려도 좋아.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그녀는 발버둥 치지 않고 그에게 가만히 안겨있었다.이미 그와 싸울 힘도 없었고 더 이상 그 때문에 상처 받기 싫었다.그녀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오히려 내가 당신한테 고마워해야지 뭐. 연성빈과의 관계가 깊어진 후에 이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면 그게 더 큰 상처였을 거야. 오늘
조수아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뒤로 한 걸음 물러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가까이 오지 마. 우리 두 사람은 이미 끝났어. 더 이상 누구의 잘못인지 따지고 싶지 않고 보상받을 생각도 없어. 다음에 다시 만날 때는 그저 옛 회사 동료 사이였으면 좋겠어. 그 이상은 바라지 않아.”말을 마친 후, 그녀는 외투를 벗어서 그에게 건네주고는 차에 올라탔다.뒤에서 그가 아무리 불러도 그녀는 다시 돌아보지 않았다.그녀는 그렇게 차가운 달빛 아래에서 사라져 버렸다.한편, 일주일이 지나도록 연성빈은 출근을 하지 않았다.소문에 의하면 민우의 엄
조수아가 연성빈을 다시 만났을 때는 허수경이 그녀를 딸로 삼겠다고 한 그날 밤이었다.그는 며칠 사이에 많이 핼쑥해졌다. 눈은 움푹 들어갔고 얼굴도 창백해졌다.그는 복도에 서서 쓸쓸히 혼자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조수아는 그에게 물 한 병을 건네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선배, 민우 엄마를 찾아갔었어요?”연성빈은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그녀를 보고 있었다.“수아야,실망시켜서 미안해.”조수아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자책하지 말이요. 어차피 우리 두 사람은 시작도 안 했으니까.”연성빈은 고통스러운 표정
백시율은 이렇게 진지해 본 적이 없었다.자유분방한 그는 가문의 사업을 물려받을 생각이 전혀 없었다.그러나 조수아의 말 한마디면 그는 물불을 가리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뒤에서 싸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랑 경쟁하고 싶다면 일단 나부터 이기고 봐.”검은 옷을 입은 채 그들의 뒤에 서 있던 육문주는 손가락 사이에 채 타지 않은 담배가 끼고 있었다.준수한 얼굴에는 우울함이 배어있었다. 가뜩이나 깊은 눈은 더 깊게 파여 있었고 눈가의 주름이 선명했다.까만 눈동자 속 깊은 곳에 감출 수 없는 그리움이 가득했
레이싱용 자동차 두 대가 번개처럼 조수아의 눈앞에서 사라졌다.관중석에 앉아 두 사람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을 때 한지혜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 너머로 한지혜의 비명이 들려왔다.“수아야, 내일 양지안의 결혼식에 신랑 들러리로 오는 남자 엄청 잘생겼어. 안경을 쓰면 지적이고 안경을 벗으면 또 엄청 섹시해 보여. 너 그 사람이랑 잘해 볼 생각 없어?”조수아는 피식 웃었다. “그냥 스쳐 지나갈 사람인데 왜 이렇게 흥분해?”“네가 행복하기를 바라니까. 내가 너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 기다려. 이 남자 사진이랑
육문주는 비즈니스의 귀재답게 그의 약점을 찾아내 공격했다.조금 전까지 망설이고 있던 백시율은 그의 말에 바로 결정을 내렸다. “계약하자, 내가 형을 이길 거니까.”그의 말에 육문주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 계약서를 가져와 백시율에게 건네주었다.모든 것이 끝난 뒤 담당자는 백시율에게 웃으며 말했다.“백 대표님, 내일 여기서 중요한 경기가 열리는데 미처 처리하지 못한 문제가 있어서 오늘 밤 수고 좀 해주십시오.”백시율은 순간 심상치 않은 느낌이 들어 차가운 눈빛으로 육문주를 바라보았다.“일부러 이런 거
육문주는 조수아의 어깨뼈 쪽에 매화 반점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매번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을 때마다 그는 저도 모르게 그 매화꽃에 키스를 했었다.그가 키스를 하면 매화꽃에서 은은한 꽃향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았다. 그 꽃향기는 늘 그를 유혹했었다.조수아가 만약 정말 설매 아줌마의 딸이라면 그와 약혼한 여인은 바로 조수아였다. 그 생각을 하면서 그녀를 바라보던 그의 눈빛이 점점 더 짙어졌다. “수아야, 넌 정말 나한테 운명 같은 사람이야.”말을 마치고 그는 다시 차에 시동을 걸었다.이어폰을 끼고 있던 그녀는 육문주
말을 마치고 그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클릭했다.화면을 보고 그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영상 속 두 사람은 바로 그녀와 육문주였다.육문주는 그녀를 안고 침실로 들어가 살금살금 그녀를 침대에 눕히고는 이불을 덮어줬다.그가 막 몸을 일으키려고 하는데 하얀 그녀의 손이 그의 목에 걸렸다.촉촉하고 뜨거운 입술이 그의 가슴에 닿자마자 달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지 마.”육문주는 들끓는 욕망을 꾹 참고 그녀를 다정하게 바라보다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래, 어디 안 가니까 푹 자.”그 말에 조
차유라와 말다툼이 벌어지려는 찰나 지켜보던 경호원이 다가가 제지하며 말했다.“고의로 대표님 약혼자의 헛소문을 퍼뜨리고 헐뜯는 당신들은 육엔 그룹에서 출근할 자격이 없습니다. 당장 이곳에서 나가세요.”쫓겨나는 여자들을 지켜보던 차유라는 그제야 뭔가를 깨달았다.사실 육천우는 그녀를 용서하는척하면서 이 모든 걸 직접 보면서 마음을 접기를 바란 거였다.차유라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문 채 강당 위에서 다정한 눈빛으로 허나연에게 목걸이를 걸어주는 육천우를 노려보았다.간간이 들리는 축복의 소리에 이가 부서지도록 악물고 있는데 차 교수의
내연녀라는 말에도 허나연은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차유라 씨, 이 시점에도 그런 말을 하는 거 보면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요?”“허나연 씨, 저의 아빠가 천우의 스승이라는 걸 잊었어요? 천우가 배은망덕한 사람도 아니고 날 뭐 어떻게 할 거로 생각하는 거예요? 천우야, 안 그래?”차유라는 육천우한테 눈길을 돌렸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육천우는 침대에서 내려오더니 허나연의 곁으로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자기야, 우리 일단 연회에 먼저 참가하고 차유라는 연회
육천우는 손님들 접대하느라 한 바퀴 돌고 나니 머리가 좀 어지러워지자 자리를 찾아 앉아 휴식을 취했다.혼자 앉아 있는 육천우를 발견한 차유라는 바로 앞으로 다가가서 말했다.“천우야, 왜 그래? 술 많이 마신 거야?”육천우는 반쯤 감은 눈을 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머리가 좀 어지럽네.”“내가 부축할게. 위층에 올라가 좀 셔.”차유라는 복무원을 불러 함께 육천우를 부축해 위층 방으로 들어갔다.들어가자마자 육천우는 침대에 쓰러져 꼼짝하지 못했고 차유라는 그런 육천우에게 다가가며 불렀다.“천우야, 천우야.”아무리 불러
허나연은 그들의 말에 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어머니의 명성을 희롱하는 소리를 듣고 더는 억제 할 수 없어서 홧김에 달려 나가 그 여자의 뺨을 후려쳤다.“누가 감히 뒤에서 우리 엄마를 희롱하고 있어?”“허나연, 내가 틀린 말 했어? 차유라 씨랑 육 대표님이 서로 좋아하는 사이인 걸 알면서 매일 대표님 사무실에 드나들더니 내연녀가 아니면 뭔데?”허나연은 그들을 비웃으면서 말했다.“차유라가 당신들한테 그렇게 말한 거야?”“차유라 씨가 말해줄 필요가 있겠어? 회사 사람들 전부 그렇게 알고 있는데. 해외에 있는 3년 동안 차유라
육천우는 대중들의 환호 속에서 허나연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 주고는 몸을 일으켜 허나연을 바라보면서 말했다.“나연아, 나 이제 키스해도 돼?”이 말은 분명 물음형이었지만 허나연이 대답도 하기 전에 커다란 손은 이미 그녀의 머리를 감싸 쥐고 촉촉한 입술로 그녀의 입술에 키스하고 있었다.현장에서는 축하의 환호성이 울려 퍼졌고 허나연은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육천우의 애틋한 마음에 그녀는 거절할 수가 없었다.둘은 얼마 동안 키스를 했는지도 모르고 서아의 목소리가 들릴 때 대서야 키스를 멈췄다.“아빠, 삼촌이랑 이모가 뽀뽀하
육천우의 말을 듣던 허나연은 하염없는 눈물을 흘리며 코를 훌쩍거리며 말했다.“왜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야? 조금이라도 나쁘게 대했어도 내가 이 정도로 슬프진 않았을 거잖아.”육천우는 허나연의 눈물을 닦아주면서 달래며 말했다.“애기야, 울지마. 오빠한테 이거 하나만 대답해 줄래?”허나연은 눈물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오빠가 묻고 싶은 게 뭔지 나도 알아. 천우 오빠, 나 어릴 적부터 오빠랑 붙어 있는 걸 좋아했고 커서도 항상 오빠 옆에만 있었고 후에 사춘기가 되니까 오빠가 너무 간섭해서 자유가 없는 것이 싫
허나연은 의아해하며 고개 들어 까맣고 반짝이는 눈동자로 육천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떤 이벤트길래 이렇게 비밀스럽게 행동하는 거야?”허나연은 겉으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척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도 없이 긴장해 하고 있었고 머릿속에 한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가면서 기대하면서도 긴장한 듯 하였다.육천우는 허나연의 눈을 막고 지하실에 있는 극장 쪽으로 향했고 따라가는 허나연의 궁금증은 점점 커져만 갔다.“육천우, 대체 어딜 데리고 가는 거야?”육천우는 극장의 문을 열고 허나연의 눈을 가린 커다란 손을 내리며 사랑이 가득 담긴 목
“오빠 이제 다신 어딜 안 갈 거야. 알았지?”허나연은 붉어진 눈으로 입을 삐쭉 내밀면서 말했다.“거짓말하지 마. 3년 전에 떠나면서 매일 연락한다고 해놓고 가서는 내 연락도 다 무시해 버렸으면서. 나 밤마다 오빠 전화 기다리다 잠들었단 말이야.”허나연은 술땜에 말투가 흐트러졌지만 육천우는 다 알아들을 수 있었고 듣고 나서 그의 마음은 칼로 베는 듯 아팠다.여태껏 육천우는 허나연이 자신을 귀찮아한다고만 생각했고 서로 성장 공간을 가져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해외에 나간 건데 허나연이 이런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을 줄은
허나연은 입을 쀼죽하게 내밀고 육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뭔 생각했다고 그래. 나 혼자서 얼마나 자유스러웠는데.”허나연은 사실 자유스러웠던 건 맞지만 마음은 많은 공허함을 느꼈다.육천우가 항상 옆에서 이것저것 참견하여 허나연은 귀찮게만 느꼈었지만, 그가 해외로 떠나고 나서야 그의 빈자리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허나연은 사람들이 없을 때면 항상 조용하게 혼자 육천우랑 함께했던 나날들을 회상했었고, 커플들끼리 꽁냥 거리는것을 볼 때면 항상 옆에 있어 줬던 육천우를 생각했다.이 말을 들은 육천우는 웃으면서 허나연의 머리를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