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연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지난번에 한 사람을 구하셨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왜 안 되죠?”“지난번에 그 여자애는 약을 먹고 나서 혼자 버텼어요. 피를 많이 흘린 후에야 나한테 보내졌는데 그때에는 약효가 많이 약해졌어요. 그 사람은 연후씨도 알 거예요. 그때 연후씨가 나한테 판막 수술을 부탁했어요.”허연후는 놀라며 물었다.“조수아?”“맞아요, 바로 그 여자예요. 연성빈쪽에서 그녀를 데리고 왔어요. 상황이 아주 심각하고 피도 많이 흘렸어요. 저는 그 약을 먹고 혼자 버티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이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은
전화벨 소리가 한참 울리고 나서야 그쪽에서 전화를 받았다.조수아의 차가운 소리가 수화기에서 들려왔다.“문주 씨, 무슨 일이야?”육문주는 겨우 정신을 다잡으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네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조수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문주 씨, 재밌어? 지겹다고 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매달려? 도대체 뭐가 더 남은 거야? 날 괴롭히지 않으면 안 돼?”그녀의 말투는 쌀쌀하면서도 약간의 짜증이 섞여 있었다.육문주는 고통스럽게 눈을 감고 한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조 비서,
조수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할머니, 죄송해요. 저는 못 도와줄 것 같아요. 그를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저 말고도 많으니까 제가 하기 싫은 일을 강요하지 마세요.”조수아가 이렇게 말하자 허수경은 화를 발끈 냈다.“예전에 문주가 너한테 그렇게 잘해줬는데 양심을 어디가 버린 거니? 어머니, 우리 그냥 미진이한테 부탁해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요.”허수경의 한마디는 조수아를 배은망덕하고 사람이 죽어도 구하지 않으려는 사람으로 만들었다.연성빈은 조수아를 한 손에 잡아당기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한마디를 내뱉기는 건 육문주에게 너무나도 어려웠다.그는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사과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그는 조수아를 품에 꼭 안고 이 몇 글자를 계속 중얼거리고 있다.몇 번을 더 말하면 조수아가 꼭 용서할 것 같았다.조수아은 그를 보면서 가슴이 너무 아파졌다.그러나 그녀가 받은 상처의 골은 너무 깊어서 몇 마디 미안하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만약 육문주가 조수아에게 믿음이 있었다면, 마음을 더 줬다면 이 정도까지 사이가 틀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조수아는 영원히 자기에 피바다가 되어 누워있을 때 육문주가 그
그러고는 사랑이 가득한 눈으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왜 인제야 왔어, 배고파 죽겠어.”이런 조수아를 두고 육문주는 달아올라 어쩔 줄 몰라 했다.종종 밥을 먹기도 전에 육문주는 조수아를 덮치곤 했다.육문주는 이제야 이런 게 행복이었구나, 자신이 원래 이런 행복을 가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육문주는 자기의 행복을 스스로 망쳤다.이런 옛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그의 가슴은 아파졌다.그는 허리를 구부리고 얼굴이 창백하여 백시율을 쳐다보았다.“형, 왜 아직 안 죽었어?”백시율은 동생다운 모습은 커녕 건방지게 비웃었다.
진영택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니고 진료소에 대표님을 놓고 갔어요.”육문주는 화가 나서 이를 악물었다.진료소에 돌팔이 의사한테 맡겼다고?그는 조수아 그가 이렇게 매몰차게 그를 멀리할지 몰랐다.진영택은 대표님이 화가 나서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것을 보고 마음이 아프기는커녕 속으로 고소해했다.그가 육문주를 여러 번 일깨워 주었지만 늘 그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조수아가 육문주를 멀리하는 건 당연한 결과였다.진영택은 육문주가 애타게 조수아한테 쫓아다니는 모습을 즐기고 있었다.진영택은 위로하는 척 말했다.“대표님, 조비
조수아는 한때 나를 그렇게 사랑했는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바로 이때 조병윤은 접시를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조병윤은 거실을 둘러보면서 말했다.“수아는 안 돌아왔나요? 금방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육문주는 서성거리다가 조병윤의 손에서 물건을 건네받은 뒤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올라가서 옷을 갈아입는다고 했어요. 제가 좀 있다가 부르러 갈게요.”조병윤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아니에요, 둘이 헤어졌으니 직접 수아 방에 가는 건 불편할 거에요.”조병윤은 육문주를 매우 좋아하고 조수아도 육문주에게 깊은 애정을
조병윤과 조수아는 동시에 육문주를 쳐다보았다.육문주는 무심히 찻잔을 들고 차를 마시며 입가에 엷은 미소를 지었고 눈빛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조수아는 그의 사진을 삭제 하고는 미소를 머금고 조병윤을 바라보았다.“아빠, 이 판사가 괜찮은 것 같아, 정말 사귀게 되면 말이 잘 통할 것 같아. 소개팅 할래.”조병윤은 흐뭇하게 머리를 끄덕였다.“그래, 이따 밥 먹고 연락할게, 이 아이는 어렸을 때 봐 왔는데 계속 널 좋아했어.”그러고는 조병윤은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육문주를 바라보았다."육 대표님의 뜻은 이해하지만 둘이 그렇게
강한나가 4년을 기다려 기다려온 것은 송학진이 다른 여자와 결혼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이 허망한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그 소식이 가짜라 생각했고 송학진이 다른 여자를 좋아할 리가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 강한나는 송학진과 다시 시작하고 싶어서 외국에서 돌아왔는데 한차례 모욕을 받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늘 아침에 발생한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뺨이라도 처맞은 것처럼 얼굴이 얼얼했고 가슴이 아파 났다.그녀는 독기를 품은 눈빛으로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내 남자는 영원히 내 것이야. 누구도 빼앗
송학진이 차서윤과 아림을 데리고 행복한 모습으로 레스토랑에 나타난 것을 본 강한나는 치밀어 오르는 질투심을 참을 길이 없었다.오늘 저녁은 친구들이 그녀를 위해 마련해준 자리였다. 그녀의 친구들은 송학진을 알고 있었고 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알고 있었다.너무나도 거북한 장면에 강한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어색한 웃음을 자아냈다.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송학진을 불렀다.“학진아.”강한나의 부름 소리를 들은 송학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무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서윤과 아림을 끌어안고 예약한 자리로 갔다.강한나의 친구들
“그런다고 제가 용서해 줄 것 같아요?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저한테 손대지 마세요.”“여보, 그건 너무했어. 벌써 금욕이라니! 내가 참지 못하고 죽으면 어떡해. 다음에 주의할 테니까 제발 용서해 줘.”두 사람이 차 옆에서 티격태격하고 있을 때 매니저가 아림을 데리고 멀리서부터 다가왔다.아림은 팝콘을 품에 안고 활짝 웃으며 그들을 바라보았다.“아빠, 엄마. 얘기 끝나셨어요?”송학진이 허리를 굽혀 아림을 안아 들고 어린이의 볼에 입을 맞춘 뒤 웃으며 대답했다.“응, 얘기 다 끝났어. 근데 어쩌지? 엄마가 아빠 때문에 많이 화
송학진의 갑작스러운 키스에 놀란 차서윤은 아무런 반응도 못 하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피팅룸에 놓인 커다란 거울에는 흰색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거울 앞에서 남자에게 입술을 약탈당하는 모습이 비쳐있었다.거울 속 두 사람의 모습을 본 차서윤은 너무 부끄러워 토마토처럼 목과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키스가 끝나자 수치스러운 마음에 그녀는 송학진의 어깨에 이빨 자국을 남기고 그를 째려보며 말했다.“이건 너무했어요!”송학진은 어깨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잠깐 미간을 찌푸린 뒤 웃으며 대답했다.“미안해.근데 너 아
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말했다.“요놈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제 보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천우 오빠 때리지 마세요. 쌍둥이한테 뽀뽀도 할 수 있게 하고 날 엄청나게 예뻐한단 말이에요. 아빠,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손도 너무 작고 보들보들해요.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요.”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차서윤의 입술에 뽀뽀하고 그녀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엄마가 허락해야 해. 여보, 우리 오늘 밤에 딸 소원을 들어줄까?”차서윤은 송학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송학
아림은 방긋 웃으며 손뼉을 치고 말했다.“좋아요. 엄마 반지도 사요. 결혼하려면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어야 하잖아요.”송학진은 웃으며 아림의 볼을 꼬집고 말했다.“그래. 겸사겸사 웨딩드레스도 보자. 아림이가 결혼식 때 엄마 아빠의 화동이 되어줄래?”“좋아요. 천우 오빠가 진작에 알려줬어요. 화동하면 돈 봉투도 준다고 그러던데. 아빠, 저한테도 줄 거예요?”“당연하지. 아빠가 돈 봉투를 두둑하게 챙겨줄게. 우리 아림은 어떻게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지?”송학진은 또 차서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
강한나는 가슴이 찢어지듯 슬퍼 애처롭게 울며 진심을 담아 간절하게 말했지만, 송학진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차서윤만 바라보다 강한나를 곁눈질하며 말했다.“너에 대한 지난 내 감정을 부정하는 거 아니야. 네 말대로 널 얻기 위해 노력을 했었지. 하지만 네가 떠나는 순간에 알았어. 너의 인생에서 난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심지어 넌 나보다 사업이 더 중요했잖아. 아무리 내가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야. 굳이 나한테 진심이었던 적도 없던 여자 때문에 내가 슬퍼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차서윤은 달라. 차서
송학진의 말에 차서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솔직히 말해서, 강한나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차서윤은 줄곧 불안했고 자신이 어렵게 얻은 행복이 이제 막 시작되려다가 금세 끝날 것 같았다.강한나와 비교하면 차서윤은 아이가 있다는 것 외에는 비교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차서윤은 강한나처럼 좋은 집안 배경도 없었고 송학진과 함께 지낸 시간도 길지 않았으며 그녀처럼 화려한 직업도 없었다.차서윤은 그냥 평범 하려야 더 평범할 수 없는 비서일 뿐이었다.그리고 송학진과 강한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으니 좋은 추억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차서
차서윤은 물끄러미 송학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앞으로 우리 계속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당연하지. 나랑 이혼하고 싶어?”“너무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래서 자꾸 꿈만 같아요.”송학진은 차서윤의 귓가에 엎드려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 내가 너무 살살했지? 그래서 아직도 꿈같다는 거야? 오늘에는 안 봐줄 테니까 날 탓하지 마.”말을 마친 송학진은 고개를 숙여 차서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어젯밤이 마른 장작불이었다면 지금은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부은 정도였다.이내 방안은 뜨거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