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원이 허탈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렇지 않아도 우리 와이프가 나한테 경고하더라고. 너한테 한 마디라도 잘못 털어놓았다간 나랑 이혼할 거라면서. 내가 들은 건 딱 이 한 마디야. 넌 진실을 알 자격이 없대. 미안하다, 친구야.”육문주가 뭐라고 더 덧붙이기도 전에 곽명원은 아예 전화를 끊어버렸다. 꽉 다문 잇새로 단마디 욕설이 비집고 나왔다.차에 시동을 걸고 떠난지 얼마 안 돼, 조수아는 연성빈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받게 되었다.“선배, 무슨 일이에요?”“진규민이 도망쳤어. 모레 있을 법정에서 유일하게 내놓을 수 있는 증인이
육문주는 심장이 찢겨 나갈 것처럼 아팠다. 윤곽이 분명한 얼굴에 전에 없던 실망감이 떠올랐다. 얇은 입술이 일자로 굳게 다물려 한참을 아무런 소리도 내뱉지 못했다. 한참을 조용히 조수아를 쳐다보던 그에게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조수아, 우리 그냥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거야? 매일 나랑 이렇게 날 세우는 거 피곤하지도 않아?”눈물로 글썽이는 얼굴이 입가에 조소를 그렸다.“그럼 사람 시켜서 나 기억상실증 걸리게 만들던가. 생사의 갈림길에서 아무리 문주 씨를 불러도 당신을 찾을 수 없었던 그때의 고통을 잊게 하고, 3년
검은색 정장을 빼입은 육문주가 서늘한 표정으로 문가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의 뒤에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진규민이 서 있었다. 그윽한 눈빛이 조수아의 몸에 몇 초간 머물렀다. 진규민을 법정에 넘긴 육문주는 비어 있는 방청석을 찾아 자리에 착석했다. 증인석에 이끌려 도착한 진규민은 쇠약해진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판사님, 저는 육엔 그룹 기술부의 진규민이라고 합니다. 그날의 사건을 담은 영상을 제가 지웠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영상을 지우라고 한 건 조수아 씨가 아니라 육엔 그룹의 부대표님이신 안혜원 이사님입니다. 그분께서 저한테
남자의 뜨거운 눈빛이 조수아를 향했다. 낮게 가라앉은 음성이 흘러나왔다.“조수아, 너한테 할 얘기가 있어.”한지혜는 막무가내로 친구를 끌고가려던 남자의 앞을 막아나섰다.“지금 뭐하자는 건데? 이제 진실을 알고 나니까 수아한테 참회라도 하려고? 이제 필요 없네요, 육 대표님. 당신이 송미진에게 헌혈을 시키려고 수아를 병원에 끌고 갔을 때부터 이미 수아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겼어. 수아 그때의 몸 상태가 피를 헌혈할 수가 없는 상태였어. 송미진을 살리려고 수아 거의 죽다 살아난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런데 육문주 당신은? 수
조수아는 그 한 마디를 마지막으로 뒤돌아서 떠났다. 그녀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며 육문주는 주먹을 힘껏 움켜쥐었다. 그때 송미진이 안에서 걸어나왔다가 어둡게 내려앉은 그의 얼굴을 보고는 순식간에 울음을 터뜨렸다.“문주 오빠, 저 일부러 조수아 씨 모함하려 했던 거 아니었어요. 그때 오빠랑 조수아 씨가 사귀고 있다는 걸 들은 순간 저도 모르게 감정이 제어가 안 돼서 커피를 뿌리게 됐던 거였어요. 저 병이 발작하면 머리가 컨트롤이 안 되는 거 알잖아요. 그 일이 있고 나서 오빠가 진실을 알게 되면 저를 멀리하게 될까 봐, 그게 두
깜짝 놀란 진영택은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렸다. 그를 힐끔 노려본 육문주가 딱딱한 음성으로 말했다.“운전에 집중하기나 해.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넵.”“그 여자 어디에 있는지 알아냈어?”“아직이요. 그분 성함이 한영미인데 여태 아무 정보도 알아낸 게 없는 걸로 봐서는 십중팔구 개명을 한 걸로 보여집니다.”“계속 조사해. 조수아한테 절대 접근 못하게 하고.”육문주는 조수아가 1년 여를 실종한 원인에 분명 그 여자와 관련되어 있을 거라 확신했다. 안 그러면 조수아가 그 여자를 그렇게까지 미워할 이유가 없었기
안혜원의 눈밑에 당황한 표정이 떠올랐다가 곧바로 사라졌다. 곧 원래의 표정으로 돌아온 그녀가 대꾸했다.“어떻게 그런 얘기를 하실 수가 있으세요. 그때 설매가 세상을 떠난 것도 아이를 지키려다 그렇게 된 건데, 아무렴 가짜가 있겠어요. 미진이가 얼굴은 몰론이고 혈액형마저 제 아버지랑 똑같은데. 미진이 아버지 앞에서는 절대 그런 얘기를 하지 마세요. 안 그러면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 사람 한 번 성질이 올라오면 친척이고 뭐고 눈에 뵈는 게 없어지는 사람이잖아요.”“뭐가 어째? 누가 그런 사람이랑 친척이야. 그때 우리 문주가 눈도
조수아의 두 손이 주먹을 꼭 쥐고 있었다. 그녀는 송미진이 절대로 자신을 이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잘 알았다. 그날 법정에서 재생한 녹음 파일이 바로 조수아를 자극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무기였다.생각해 보지 않아도 지금 회사 전체에 그녀와 육문주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소문이 쫘악 퍼져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당민석이 조수아의 곁으로 다가오더니 조심스레 그녀의 팔을 터치했다.“조 비서님, 저희는 조 비서님을 믿어요. 분명 무슨 오해가 있었던 거겠죠.”조수아는 쓴웃음을 흘렸다.“아니요. 오해는 없습니다. 이
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말했다.“요놈이 너한테 뭘 가르친 거야. 이제 보면 엉덩이를 때릴 거야.”“천우 오빠 때리지 마세요. 쌍둥이한테 뽀뽀도 할 수 있게 하고 날 엄청나게 예뻐한단 말이에요. 아빠, 쌍둥이들이 너무 귀여웠어요. 손도 너무 작고 보들보들해요. 나도 여동생을 갖고 싶어요.”아림의 말에 송학진은 웃으며 차서윤의 입술에 뽀뽀하고 그녀의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이건 엄마가 허락해야 해. 여보, 우리 오늘 밤에 딸 소원을 들어줄까?”차서윤은 송학진을 흘겨보며 말했다.“애 앞에서 못하는 말이 없어요.”송학
아림은 방긋 웃으며 손뼉을 치고 말했다.“좋아요. 엄마 반지도 사요. 결혼하려면 다이아몬드 반지가 있어야 하잖아요.”송학진은 웃으며 아림의 볼을 꼬집고 말했다.“그래. 겸사겸사 웨딩드레스도 보자. 아림이가 결혼식 때 엄마 아빠의 화동이 되어줄래?”“좋아요. 천우 오빠가 진작에 알려줬어요. 화동하면 돈 봉투도 준다고 그러던데. 아빠, 저한테도 줄 거예요?”“당연하지. 아빠가 돈 봉투를 두둑하게 챙겨줄게. 우리 아림은 어떻게 이렇게 귀엽고 사랑스럽지?”송학진은 또 차서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
강한나는 가슴이 찢어지듯 슬퍼 애처롭게 울며 진심을 담아 간절하게 말했지만, 송학진은 일말의 동정심도 없이 차서윤만 바라보다 강한나를 곁눈질하며 말했다.“너에 대한 지난 내 감정을 부정하는 거 아니야. 네 말대로 널 얻기 위해 노력을 했었지. 하지만 네가 떠나는 순간에 알았어. 너의 인생에서 난 유일한 존재가 아니었구나. 심지어 넌 나보다 사업이 더 중요했잖아. 아무리 내가 감정을 중요시하는 사람이라지만 그렇다고 바보는 아니야. 굳이 나한테 진심이었던 적도 없던 여자 때문에 내가 슬퍼할 필요는 없잖아. 하지만 차서윤은 달라. 차서
송학진의 말에 차서윤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솔직히 말해서, 강한나가 들어오는 순간부터 차서윤은 줄곧 불안했고 자신이 어렵게 얻은 행복이 이제 막 시작되려다가 금세 끝날 것 같았다.강한나와 비교하면 차서윤은 아이가 있다는 것 외에는 비교의 상대조차 되지 않았다.차서윤은 강한나처럼 좋은 집안 배경도 없었고 송학진과 함께 지낸 시간도 길지 않았으며 그녀처럼 화려한 직업도 없었다.차서윤은 그냥 평범 하려야 더 평범할 수 없는 비서일 뿐이었다.그리고 송학진과 강한나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으니 좋은 추억도 많았을 것으로 생각했던 차서
차서윤은 물끄러미 송학진을 바라보며 말했다.“앞으로 우리 계속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요?”“당연하지. 나랑 이혼하고 싶어?”“너무 정신없이 여기까지 왔잖아요. 그래서 자꾸 꿈만 같아요.”송학진은 차서윤의 귓가에 엎드려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고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어젯밤 내가 너무 살살했지? 그래서 아직도 꿈같다는 거야? 오늘에는 안 봐줄 테니까 날 탓하지 마.”말을 마친 송학진은 고개를 숙여 차서윤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어젯밤이 마른 장작불이었다면 지금은 불난 집에 휘발유를 부은 정도였다.이내 방안은 뜨거운
아림이가 집안 어른들과 인사를 마치자 조수아는 겨우 기다렸다는 듯 즉시 허리를 굽혀 아림을 품에 안은 뒤 볼에 입을 맞추고 웃으며 말했다.“아림아, 내가 누군지 알아?”아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천우 오빠의 엄마이자 내 고모예요.”세리도 즉시 다가와 물었다.“아림아, 그럼 나는?”“세리 고모예요. 천우 오빠가 나한테 고모 얘기를 해줬어요.”다들 놀라 아림을 보며 물었다.“그럼 우리가 누군지 다 알아?”“이분은 천우 아빠이자 저의 고모부이고, 저분은 성빈 고모부예요.”조수아는 모든 사람을 정확히 알아본 아림을
송학진은 아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음을 머금고 말했다.“아림이가 좋으면 됐어. 이젠 모두 가족이고 앞으로 함께 크면서 사이좋게 서로 돌보면서 지내야 해.”“네. 그럴 거예요. 앞으로 쌍둥이들도 제도 잘 돌봐줄 거예요.”바로 이때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차서윤은 갑자기 많은 사람을 마주하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비록 예전에 한 번씩은 다 봤던 사람들이지만 그때는 그저 비서로서 봤을 뿐이었고 지금은 완전히 다른 신분으로 마주하게 된 지라 혹시나 실수라도 해 웃음거리가 될까 걱정되었다.송학진은 긴장해하는
조용히 침실에서 나오자 아림은 그제야 격동하며 말했다.“드디어 나도 아침에 깨어나서 아빠를 볼 수 있게 됐어요. 나는 지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예요.”아림의 말에 마음이 뭉클해 난 송학진은 아림의 이마에 뽀뽀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로 아빠가 너와 엄마를 지켜줄게. 우리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거야. 오늘 아빠랑 엄마랑 집에 가서 일가 친척들한테 인사 올리자.”아림은 감격에 겨워 손뼉을 치며 말했다.“할아버지를 뵙는 거예요?”“할아버지뿐 아니라 아빠 집안의 모든 친척을 다 만나야지. 증조할아버지, 증조할머니
송학진의 말에 볼이 뜨겁게 달아오른 차서윤은 감출 수 없는 뜨거운 눈빛으로 낮은 소리로 말했다.“학진 씨.”차서윤의 정서가 느껴지자 송학진은 끝내 마지막 남은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채 고개를 숙여 부드러운 차서윤의 살결을 깨물었다.강렬한 자극이 느껴지자 차서윤은 참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두 손으로 송학진의 머리를 꼭 껴안고 그가 주는 사랑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잠옷이 천천히 그녀의 몸에서 흘러내리자 차서윤은 긴장한 마음에 눈을 감았다. 이미 이성과 자제력을 잃은 송학진은 차서윤의 온몸 구석구석에 입을 맞추었고 그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