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씩 웃으며 양손으로 정유리의 얼굴을 잡고 “이제 넌 내 여자야~ 그런데도 계속 그 찌질한 새끼랑 같이 있을 거야? 조동현의 여자면, 다른 남자들이 손끝도 못 대게 해버릴 거야!”유리는 다급히 말했다. “오빠, 안심해.. 이제 우리가 사귀게 되었으니 나도 그 인간이랑 같이 있는 거 더럽고 싫어! 난 언제나 오빠 하나 밖에 없다고오~ 이제 오빠뿐이야!”“사실, 김도훈이 레스토랑을 오픈하자마자 헤어지려고 했는데,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명이 좀 힘이 있더라고? 그 때 날 좀 도와줬어. 그 쪽 동네에 작대기라고 조폭 무리가 있는데 걔네가 쳐들어온 걸 그 친구가 해결해줬거든. 만약 장사가 좀 안정되면 헤어지자고 하고 거기서 내쫓으려고 해.”조동현은 “작대기? 그 놈이 뭐 되기라도 해? 내 전화 한 통이면 그 놈이 너에게 사과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라고 말했다.유리는 “아이, 역시 오빠 진짜 대단해?! 그 때 상황이 너무 급박해서 오빠에게 전화할 생각도 못했어.. 그리고 김도훈도 같이 있어서 오빠가 그 사람을 만나면 기분 나쁠 것 같길래!”조동현은 정유리의 허리를 살짝 꼬집으며, “오~ 유리! 철 좀 들었는데~?”라며 웃었다.유리는 “오빠, 그래서~ BMW X6 사줄 거야 말 거야~?”라며 팔에 매달려 애교를 부려댔다.조동현은 “오늘은 먼저 돌아가고, 네가 그 새끼랑 헤어지면 내일 내가 BMW X6를 사줄 게!”라며 허허 웃었다.정유리는 “오빠, 진짜야? 내일 진짜 X6 사주는 거야?”라며 방방 뛰었다.“내가 언제 우리 유리를 속인 적이 있었니? 하지만! 먼저 이 오빠를 잘 모셔야지!”라며 끅끅 웃었다.“오빠! 걱정 마! 이따가 집에 도착하면 내가 꼭 잘할게~”라며 눈시울을 붉히는 정유리였다.두 사람은 다정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매장을 나섰다.시후는 개 같은 불륜 남녀를 보고 화가 나서 즉시 휴대폰을 꺼내 김도훈에게 전화를 걸었다.도훈은 전화를 받자마자 “시후야,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나에게 전화도 다하고?”
김도훈은 “유리는 머리 하러 미용실에 갔는데.. 왜 그래?”라며 웃었다.“머리? 미용실에 갔다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던가?”“응!”“넌 유리가 그렇게 말하면 믿어?”김도훈은 “시후야, 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빙빙 돌리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봐.”“후우.. 그럼, 솔직하게 말할 게. 조금 전에 BMW 매장에서 유리 씨를 봤는데, 조동현이라는 남자랑 같이 왔더라고..? 서로 팔짱을 끼고 다정하게 말하면서 그 남자를 자기라고 부르던데.. 너 아마 그 여자한테 당한 거 같아. 그 여자 바람피고 있는 거라고!!”“그럴 리 없어!” 김도훈은 “유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야..! 혹시 사람 잘못 본 거 아니야?”“내가 잘못 본 게 아니야. 분명 그 여자였다고.”“믿지 않아.” 김도훈의 말투가 냉랭해졌다. “시후야. 우리 사이가 좋은 건 알겠는데.. 아무리 그래도 내 아내가 될 사람을 험담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김도훈, 너 정신 차려! 약혼녀가 다른 남자와 같이 다니고 있다고~ 그 조동현인가 뭔가 하는 놈이 그 여자에게 BMW X6 한 대를 사준다고 했단 말이야! 지금 정유리는 그 남자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서 너와 헤어질 계획을 세우고 있어! 내가 너랑 친하고, 오래된 동기라서 말해주는데.. 빨리 손쓰지 않으면 너 후회하게 될 거다!”시후는 김도훈이 대답하기도 전에 “아.. 그래 내가 선물로 줬던 그림부터 먼저 옮기고 숨겨 둬! 그 그림을 팔면 재기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너가 아직도 내 말을 믿지 않는다면, 나도 방법이 없지 뭐.”“시후야! 너 작작 해라! 유리는 내 약혼녀니까, 내가 제일 잘 알아. 절대 날 배신할 사람이 아니라고. 만약 네가 한 번만 더 이런 식으로 내 약혼녀를 모함하면, 너랑 다시는 안 볼 거야!”시후는 얼굴을 찌푸리며 담담하게 말했다. “후.. 친구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다 해줬어, 네가 여기서 믿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럼 잘 해봐.”시후는 곧바로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버렸
점심 식사 후 유나의 아버지 김상곤은 옷차림을 단정히 하고 시후를 재촉했다. “사위, 우리 어서 준비해서 그 인사동 골동품 가게에 다녀오자고~”고 하였다.시후는 “아버님, 또 골동품을 모으기 시작하신 겁니까? 집에 모아 둔 돈도 얼마 없는데, 또 골동품을 사 모으는 건 너무 사치 아닙니까?”김상곤은 능력은 별로 없으면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욕심은 커서 틈만 나면 골동품 거리를 쏘다녔다. 로또에 당첨된 것 마냥 좋은 물건들을 사고 싶었지만, 요 몇 년 동안은 거의 사람들로부터 속기만 했던 그였다.한동안 골동품에 대한 애정이 식은 줄 알았는데, 손을 떼기는커녕 BMW로 인해 허세가 더 심해졌다.김상곤은 감히 자신에게 설교하는 사위를 보고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빨리 가자고!”라며 무시했다.시후는 어쩔 수 없이, 차를 몰아 골동품 거리로 갔다.서울은 역사가 오래 되었기에, 골동품 거리도 유명하다. 규모도 클 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도 유명하기에 전국 각지의 골동품상인들과 타지의 손님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이에 발맞춰 현지 관광업계도 골동품 거리에 계속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관광객 유치를 위한 관광 명소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었다.골동품 거리로 간 김상곤은 자신이 잘 아는 골동품 가게 입구에서 예약 손님이라고 이야기하며 뒤쪽 귀빈실로 들어갔다.시후가 따라 들어가려 하자, 김상곤은 뒤를 돌아보며 “자네는 따라 들어오지 마. 들어가서 봐도 모르니 그냥 이 문 앞에서 기다리게!”라고 말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김상곤은 뒷짐을 지고 안내원을 따라 귀빈실로 들어갔고, 시후는 휴게실에 앉아 있었다. ******“우당탕탕! 쨍그랑!” 몇 분 뒤 시후는 갑자기 귀빈실에서 뭔가 부서지는 소리를 들었다.이윽고 자신의 장인인 김상곤이 당황한 표정으로 그 안에서 뛰쳐나왔다. “망했다, 망했다! 이제 끝이야!” 시후가 급히 다가가 장인 어른이 나온 귀빈실 내부를 바라보니 바닥에는 도자기 병 하나가 두
“그러니까.. 당신 장인이 이런 것 아니오?”시후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십시오. 사장님도 내 장인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사장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이 물건을 깨뜨린 건 내가 아니라 장인 어른입니다. 그런데 지금 누구더러 배상하라고 하시는 겁니까? 문제 일으키는 사람은 따로 있고 똥 치우는 사람은 따로 있는 겁니까? 문제가 생겼으면 당사자를 찾아서 해결하셔야죠.”라며 따졌다.주진운은 화가 났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시후의 말이 맞았다.만약 자신이 아무것도 모르는 그에게 다짜고짜 배상을 요구한다면, 예인방과 관련된 소문이 나빠질 게 뻔하고 재수가 없을 경우에는 이 바닥에서 장사를 접어야 할 지도 모른다.그래서 그는 다급히 몇 사람을 불러 말했다. “당신들 빨리 가서 저 늙은이 좀 잡아와요!”시후는 장인을 쫓는 그들을 보고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사실 그 돈을 지불할 수는 있었다. 자신이 손해를 보고 일을 처리해 줄 수도 있지만, 만약 그렇다면 저 뻔뻔한 장인 어른이 또 다시 골동품 거리를 기웃거리며 오늘과 같은 일을 또 다시 만들게 될 것이 뻔했다.이럴 바에는 차라리 장인어른으로 하여 쓴맛을 한 번 보게 만드는 것이 시후에게는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이후에 또 다시 이곳에서 자신을 괴롭힐 테니..예인방 사람들이 총출동하여 모두 시후의 장인어른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이 팔려 있을 때, 시후는 방 안에서 혼자 여유롭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바닥이 두 동강 난 병 속을 들여다보게 되었다.이 청자의 높이는 50cm정도 되어 보였는데, 지금은 이미 둘로 쪼개져 버렸고 산산조각 났기 때문에 아쉬움이 컸다.그런데, 그 순간 병의 몸통 밑부분에 뭔가 숨겨져 있는 것이 보였다.그는 황급히 손을 뻗어 안에 있는 것을 한 번 끄집어 보았다. 뜻밖에도 손가락에 작은 목갑이 하나 잡히는 것이 아닌가?!이 병 속에 뭔가 들어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이 청자가 깨지지 않았더라면 아마 아무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시후는 너무 기뻐서 즉시 『구현보감』을 소중히 품에 안으려 했다.하지만, 그 순간 이 책은 금세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그렇지만 조금 전 책에 몰입하여 읽었던 시후의 머리 속에는 이미 내용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이때, 도망친 장인어른이 사람들에 둘러싸여 잡혀 들어왔다.그의 양쪽 얼굴이 벌겋게 부어 올라있는 것을 보니, 아마 사람들에게 붙잡혀 여러 대 맞은 모양이었다.사실, 시후는 그런 장인의 모습에 속이 후련했다.문제를 일으킨 건 장인 어른이었으나, 자신에게 이 문제를 덮어씌우려 했으니.. 장인어른은 벌을 받아 마땅했다.김상곤은 이 때 남사스러워 사람들에게 잡히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뛰어다녔기에 피곤해 죽을 지경이었다.차 키는 사위가 가지고 있고, 나이 들어 몸집이 꽤 나가는 터라 빨리 달릴 수도 없는데, 자신을 쫓아오는 젊은이들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기 때문이다.그래서 도망친 지 얼마 되지 않아 잡혀서는 여러 대를 얻어 맞은 그였다.사람들이 김상곤을 잡아오자, 사장 주진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늙은이가, 우리 가게 귀중품을 깨뜨리고 감히 도망을 가려고 해? 내가 누구인줄 알고?!”“하이고~!!! 사장님~ 제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닙니다!!!! 이.. 이 병이 너무 미끄러워서..”주진운은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워! 오후에 시간을 내서 돈을 마련해 오라고. 만약 돈을 마련할 수 없다면, 이 귀중품을 고의로 훼손한 죄로 신고할 거야! 이 물건은 꽤나 비싸니 만약 가져오지 않는다면 차가운 감방으로 들어가기에 충분하겠지?”김상곤은 그 이야기에 놀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시후를 바라보았다.“사위, 우리 사위! 내가 이렇게 꼼짝없이 잡혀 들어가게 된 걸 보고도 구해 주지 않으면 예의가 아니지 않겠나?”“아버님.. 정말 죄송합니다만, 저도 이렇게 많은 돈은 없습니다..”김상곤은 “그럼! 감옥은 네가 대신 가는 게 좋겠다. 내가 너를 이렇게 오랫동안 먹여줬으니, 이번에는 네가 은혜를 갚을 때가 된 것 같구나!”라고
은시후는 말했다. “그럼, 만약 제가 복원해낸다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라며 고개를 들었다.주진운은 콧방귀를 뀌며, “이 업계 전문가들에게 확실히 다 복원되었다는 감정을 받아서, 손해를 대부분 만회할 수 있다면 자네와 장인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지. 하지만 그게 쉬웠으면 내 진작에 복원했겠지. 헛참!”이라고 말했다.“좋습니다!” 은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중에 딴 소리 하지 않으시는 겁니다!”라고 말했다.말을 마치자마자 시후는 작업에 집중했다. 먼저 붓을 들어 화선지에 청자의 윤곽을 그려 넣고, 검지에 달걀흰자를 묻힌 뒤 깨진 조각들에 펴 발랐다. 그리고 흰자가 묻은 조각들을 종이에 그려진 윤곽에 꾹 눌러 붙였다. 화선지는 조금씩 조각들로 모여갔다. 작업을 지켜보는 모두가 시후의 복구 작업에 방해가 될까 작은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순식간에, 30분이 지났다.작업이 끝난 은시후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다시 새로 태어난 듯한 고려청자를 집어 들었다.그는 주진운을 보면서 빙긋 웃었다. “한 번 보시죠! 어디에 흠집이 있는지!”주진운은 청자를 들고 구석구석 몇 번 훑어보았다.“이 자식?! 지금 나를 놀려? 계란 흰자로 이걸 바른다고 고친 거야? 그럼 네 놈 다리를 부러뜨리고 계란 흰자를 한 번 바르면 다 낫는 거야?“그 청자! 함부로 만지지 마세요!!”바로 이때, 갑자기 낭랑한 목소리가 문 앞에서 다급하게 소리치는 것이 들렸다.뒤이어 캐주얼한 흰색 정장을 입은 아름다운 여성이 안으로 들어섰다.그녀는 아름다운 얼굴에 1m 70cm에 가까운 늘씬한 키로 고급스러운 아우라를 풍겼다. 그녀의 아름다운 눈은 서리처럼 차가운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주진운은 이 여성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마자, “아.. 아가씨, 무슨 일로?”라며 얼굴색이 확 바뀌더니 얼른 허리를 숙였다.찾아온 사람은 바로 실소유주로, 갤러리와 미술관을 모두 경영하고 있는 이룸 그룹의 막내 딸 송민정이었다.송민정은 화난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내가 안
주진운은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고작 달걀 흰자로 고친 청자가 더 귀한 물건이 될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그는 다급히 “아가씨, 바로 이 사람이 고친 겁니다...”라며 송민정을 은시후에게 데려다 주었다.송민정은 시후는 한 번 흘끗 보았다. 송민정은 시후가 너무 젊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저 남자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 방법으로 청자를 복원했다고?그녀는 빙긋이 웃으면서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이룸 그룹의 송민정이라고 합니다. 혹시 선생님께서는 어디 출신의 문화재 대가신지요?”라고 물었다.그 때까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시후의 장인 김상곤은 이룸 그룹의 ‘송민정’이라는 세 글자를 듣자마자 깜짝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이룸 그룹이라니?!이룸 그룹은 한창 잘나가는 유명 재벌가에는 조금 못 미쳐도 아무나 따라잡을 수 없는 로얄 패밀리 아닌가?이런 골동품 가게에서 이룸 그룹의 자제를 만나다니?! 생각지도 못했어!은시후는 이룸 그룹의 막내 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송민정에게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의 집안은 수천억 대 자산을 굴리고 있었지만, LCS 그룹과 같은 수십 조 자산의 가문에 비교할 바는 아니었기 때문이다.그러자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음.. 저는 이런 것들에 대해 따로 누구에게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스승이 없습니다.”이윽고 시후는 또 이야기를 이었다. “제 장인어른께서 이 고려청자를 깨뜨리셨습니다. 제가 수습을 하기는 했는데, 혹시 저희가 더 배상해야 하는 건 없을지 감정을 부탁드립니다.” 송민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요. 배상해주실 건 없어요. 오히려 이렇게 복원을 해 주신 덕분에 이 청자는 원래 가치를 훨씬 넘어섰어요. 오히려 예인당이 당신께 신세진 거죠.”은시후는 담담하게 웃었다. “별 말씀을.. 그럼 이 일은 다 처리했으니 저와 제 장인어른은 돌아가겠습니다.”송민정은 큰 눈에 살짝 미소를 지으며 “선생님, 존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이후에도 소통할 수 있도록
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습니다, 아버님.”이라고 말했다.장인은 그제서야 한숨을 돌리며, “자네가 이런 솜씨가 있는 줄 진작에 알았으면 내가 청자를 깨뜨렸을 때 콧방귀를 뀌었을 텐데.. 내 그렇게 도망 다니고 뺨까지 몇 대 얻어 맞았어!! 젠장!”뒤이어 그에게 물었다. “얼굴에 이 얻어 맞은 자국이 보이냐?”시후는 “아직 붉은 기운이 조금 남아 있네요.”장인어른은 “맞아..” 라고 말했다. “집에 도착해서 네 장모가 물어보면 내가 전봇대에 잘못해서 부딪혔다고 말해라.”******집에 돌아온 시후는 시장에서 야채를 사와 밥을 짓느라 바삐 움직였다.아내 유나에게 전화해서 무엇을 먹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저녁에는 이태리와 건축 방안을 고민하느라 엠그란드 그룹에서 식사를 대접한다고 답했다.곧 바로 이태리가 그에게 메시지를 보내주었다. “회장님! 이제 곧 건축 공사가 시작되기 때문에, 아마 요 며칠 간 사모님께서 바쁘실 겁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아. 알겠어요. 아내를 잘 부탁합니다.”어찌 아내가 맡은 중요한 일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그리고는 “가능하면 도시락을 먹지 않도록 잘 해줘요.”라고 회신했다.그러자 이태리는 “걱정 마십시오. 이미 임원 식당을 최고의 요리들로 마련해 놓았습니다.”“네, 잘했어요.”유나가 집에 가서 밥을 먹지 않는 이상, 시후는 일반적인 식재료를 사서 집으로 돌아와 장인 장모에게 한 끼를 대접했다.밥을 다 먹은 후에 노부부가 외출하자 시후는 침대에 누워 조금 전 봤던 『구현보감』의 오묘한 내용을 떠올리고 있었다.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김도훈이었다.시후는 전화를 무시했다. 친한 친구라 호의를 베풀었건만, 결국 나의 말을 듣지 않더니 이제서야?하지만 아무리 다시 생각해봐도 약혼녀가 바람을 피우고 있는 그의 상황이 조금 가엾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야? 문제 있어?”라고 물었다.수화기 너머로 김도훈은 하염없이 흐느끼며 말을 얼버무렸다. “시후야.. 내가
시후 은 웃으며 말했다. “형님,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미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은 어떻게 하시려고요?”“괜찮습니다...” 나훈구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은혜를 알면 반드시 갚아야지. 만약 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아내와 자식들은 제가 실종된 줄 알고 평생 불안에 떨며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헤맸을 겁니다. 결국 제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경찰로부터 자세한 내막까지 듣게 될 테고, 그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비통해 했겠죠...” 이 말을 하며, 나훈구는 시후를 바라보다가 목이 메어 말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건 물론이고, 제 아내와 자식들이 그런 극도의 슬픔을 겪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저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도 구하신 겁니다. 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최선의 결과가 될 테니까요. 생활고야 어찌 되든, 저는 가족들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만 조금 힘들게 살 뿐이죠.”시후는 나훈구의 단단한 표정과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는, 마음속 깊이 감동을 느꼈다.잠시 후, 그는 성도민을 불러 곁으로 오게 하더니 말했다. “성도민 씨, 이 분은 IT 분야의 전문가, 나훈구 씨입니다. 나는 블랙 드래곤에 반드시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그를 데리고 중동으로 돌아가도록 하세요.”성도민은 기쁘게 말했다. “그거 정말 잘 됐습니다! 지금 블랙 드래곤에서는 IT 분야 하드웨어 구축을 강화하려는 참이었는데, 바로 이런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IT 인프라와 미래 로드맵을 같이 설계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거든요!”시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내가 보기엔, 앞으로 블랙 드래곤은 IT 기업들과 협력해서 자체 위성을 제작하고, 상업 위성 발사 기업을 통해 발사하여 자체 위성 통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블랙 드래곤 내부의 통신은 보안 수준이 매우 높아야 하기 때문에, 외부 통신망이나 서비스 업체에 의존하면 100% 보안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시후의 질문을 들은 나훈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무슨 계획이 있겠습니까. 간신히 은 선생님의 은혜로 살아남았으니, 일단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죠...”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이미 멕시코까지 와서 선원 일을 하려 하셨던 걸 보면, 미국으로 돌아가도 마땅한 일을 찾기는 힘들지 않을까요?”시후의 이 말을 들은 나훈구의 표정엔 다소 민망함과 무력감이 함께 떠올랐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괜찮은 일을 못 찾으면, 그냥 허드렛일이라도 해야지 뭐... 우리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하셨는데, 저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형님, 제 생각엔 차라리 이렇게 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제 밖으로 나오셨으니 굳이 그렇게 서둘러 돌아가실 필요는 없잖아요? 형님은 IT 쪽 일을 하셨다면서요. 그렇다면 이후엔 블랙 드래곤에서 일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블랙 드래곤은 현재 중동을 거점으로 해서 해상과 항공 양쪽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분명 IT 분야의 수요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고, 수준도 높아질 겁니다. 형님 같은 인재가 절실히 필요해요.”시후가 이 말을 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 만약 나훈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최상의 결과일 것이었다. 그는 성도민에게 충분한 보상을 준비시키고, 곧바로 중동으로 데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훈구가 거절한다면, 여기서 벌어진 비밀들을 알고 있는 그를 미국으로 그냥 돌려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구출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일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워야 할 것이다.다만 시후는 가능하면 그 두 번째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이고, 이렇게 큰 사건을 겪은 이상 그에 걸맞은 기회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워버리면, 그에겐 이 피비린
때로는, 평생을 바쳐도 이성 무인에서 삼성 무인으로의 도약조차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성 무인이란, 사실 대부분의 무인들이 평생 머무는 한계점과도 같았다. 하물며, 삼성에서 사성, 사성에서 오성, 오성에서 육성으로의 도약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그런데 이번에 시후가 건넨 이 한 잔의 술이, 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단숨에 수련 경계를 뛰어넘게 해주었다는 건, 그들에겐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블랙 드래곤에서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진 성도민은 자신과 함께한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수련 능력이 상승한 것을 발견하고는, 성도민은 가슴 속 깊은 감격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시후를 다시 바라보며, 감격과 동시에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은 뒤 공손히 말했다. “저 성도민은 은 선생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다른 블랙 드래곤의 구성원들도 즉시 정신을 차리고, 성도민을 따라 시후 앞에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소리 높여 외쳤다. “저희들은, 은 선생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 역시도 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들을 하겠습니다!”시후는 눈앞에 있는 100여 명의 블랙 드래곤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시후는 그들의 눈에 맺힌 눈물과 결연한 표정을 보고는 이들이 자신의 확고한 동료가 되어줄 것임을 느꼈다. 만족스러운 마음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은시후는, 앞으로 결코 여러분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블랙 드래곤이든 여러분 각자든, 앞으로 반드시 날개를 펼쳐, 저 넓은 하늘을 훨훨 날게 될 겁니다!”이 말을 들은 대원들은 곧바로 가슴이 뜨거워지며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이때, 지하 수술실을 불태우고 있던 화염은 이미 지상까지 뜨겁게 달궈 놓았고, 불꽃은 땅 위의 건물까지 번지고 있었다. 이에 시후는 성도민에게 말했다. “성도민 씨,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다. 모두 질서 있게 철수하도
시후의 구호가 떨어지자, 그와 함께 모든 대원들이 술잔을 들어 잔 속의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시후에게 있어 이 술에 담긴 영기는 이미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기에, 몸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블랙 드래곤 대원들이 느끼는 기운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애초에 이 술에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가 담겨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원들이 술을 한 번에 들이켰을 때 온몸에 강렬한 온기가 복부에서 시작해 단전으로 몰려들었고, 곧이어 기운은 마치 산을 무너뜨리고 바위를 쪼개는 듯한 맹렬한 기세로 팔맥을 향해 폭발적으로 밀려들었다!무술가들에게 있어 자신의 실력 향상은 두 가지 핵심 요소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첫 번째는, 기경팔맥 중 몇 개의 경맥이 열려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술가들의 경지와 실력을 판단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다. 경맥을 많이 열수록, 무술가의 등급과 전투력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미 열린 경맥이 얼마나 잘 순환되고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무술가들은 몇 개의 경맥 만을 겨우 열 수 있을 뿐, 모든 경맥을 완전히 순환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코에 있는 양쪽 콧구멍과도 같아서, 누가 더 뚫려 있느냐에 따라 들숨의 양이 달라지듯 경맥도 얼마나 원활히 순환되느냐에 따라, 에너지 흡수량이 달라지게 된다. 지금 이 소주 안에 담긴 영기는 그들에게 단순히 경맥을 몇 개 더 열게 해준 것이 아니라, 기존에 뚫려 있던 경맥까지 더 넓고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즉,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무술가들의 실력을 향상시킨 것이다.그래서 이 순간 블랙 드래곤 대원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몸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 엄청난 기운이 자신이 오랫동안 뚫지 못했던 다음 단계의 경맥까지 열도록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잠시 후 누군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 나 네 번째 경맥을 뚫었어! 진짜야! 네 번째 경맥이 열렸어!!”곧이어 또 다른 사람이 외쳤다. “나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시후는 지하 수술실에 있었고, 소이연은 다른 블랙 드래곤 대원들과 함께 들어오긴 했지만, 지상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시후는 이제서야 소이연도 멕시코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이 순간, 소이연은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보며,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은 선생님... 리더가 선생님께서 업무가 있다고 삼성 이상 무인들만 참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딱 맞는 위치라... 바로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시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물었다. “이번엔 본래 신분을 사용하진 않았겠죠?”“아니에요.” 소이연은 다른 블랙 드래곤 대원들에게 등을 돌린 채, 시후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살짝 내밀고는 말했다. “이번엔 완전히 새 신분으로 왔어요~”“좋습니다.” 시후는 미소 지으며 손에 든 소주를 그녀에게 건넸고, 조금 전 다른 대원들에게 했던 것처럼 공손히 말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소이연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은 선생님께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건, 제게는 큰 영광이에요!”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됐어, 자리에 돌아가요.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 더 하는 걸로 하고. 오늘 밤엔 나랑 같이 미국으로 돌아가죠. 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서요.”소이연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은 선생님, 탐정... 아직도 절 추적하고 있잖아요. 제가 미국에 가면 혹시 폐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요...?”시후는 고개를 저으며, 감회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제이크 한은 이제 이연 씨를 추적하지 못해요. 얼마 전 그 친구한테 사고가 있었거든. 그 이후로 그가 맡았던 사건들도 대부분 흐지부지 종결됐죠. 게다가 이연 씨는 이미 새로운 신분으로 바꿨잖아. 문제없을 겁니다.”“그럼 정말 다행이에요! 은 선생님께 폐만 안 된다면 저는 뭐든지 다 좋아요! 은 선생님 말씀만 따를게요!”그제야 소이연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시후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동시에, 경계심과 신중함 또한 한껏 갖추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의 전체 전력은 분명 강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알려진 세상 안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였다. 세상 어딘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더 강대한 존재들은 어쩌면 블랙 드래곤보다 훨씬 더 막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래서 시후는 생각했다. 앞으로는 자신 개인의 실력 향상은 물론, 블랙 드래곤 전체의 실력도 체계적으로,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고... 만일 훗날, 그 미지의 강적들과 정면으로 맞설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적어도, 승산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성도민은 시후의 성격을 잘 알기에, 즉시 몸을 낮춰 공손하게 다짐했다. “은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저는 절대 개인적인 실력이나, 블랙 드래곤의 전력이 강해졌다고 자만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그로 인해 방심하거나 적을 얕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시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나도 블랙 드래곤의 미래에 대해, 한층 더 기대하게 되는군.” 말을 마치고는 손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자, 대원들이 줄을 서서 술을 받도록 하죠!”“예!” 성도민은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가 마당에 모인 100여 명의 정예 부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대원들! 은 선생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귀중한 술이 있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대원들을 위해, 축하와 보상의 의미로 준비하신 것이다! 자 이 술은 천금의 가치가 있고, 너희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다!” 그러면서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전원 주목! 첫 번째 줄부터,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줄지어 입장해 술을 받아라! 단, 절대로 술을 흘리거나 쏟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평생 후회할 거다!”하지만 듣고 있던 대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술이길래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건지,
시후가 막 첫 잔을 따르려던 순간, 지하실 쪽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엄청난 충격과 함께, 땅 전체가 흔들렸다! 지하 수술실 입구가 숨겨진 방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는데, 폭발의 위력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었다.시후는 알고 있었다. 김미희를 포함한 악마들이 이 불꽃 속에서 재로 변해, 그 죄악의 생을 완전히 끝냈음을.그리고 그 순간, 시후는 손에 쥐고 있던 동작을 멈췄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방금 막 따른 술잔을 들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한 잔의 술을 그분들께 바칩니다. 부디 구천에서도 이 원한이 풀렸음을 알아주시길...”그 말과 함께, 그는 두 손으로 잔을 들어, 그 안의 술을 천천히 땅에 부었다. 이 한 잔의 술을 만약 정말 필요한 이에게 팔았다면, 아마 수천만 달러, 아니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후에게 있어, 이 술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한 경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이 술을 땅에 쏟는 이유였고, 결코 낭비라 할 수 없는 행위였다.이후, 시후는 한숨을 내쉬고, 다른 잔들에도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곧, 100여 개의 술잔이 모두 채워졌고, 두 병의 소주도 정확히 사람 수에 맞춰 딱 떨어졌다.그때, 10분이 흘러 성도민이 공손히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은 선생님, 모두 마당에 모였습니다.”시후는 가볍게 답하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예.” 성도민은 대답한 후 문을 열고 들어왔다.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강렬한 술 향기를 느꼈다. 소주는 본래 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코를 찌르는 이 향은 평소에 느끼던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도민은 놀랍게도 술 향 속에서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선선한 가을날, 아무 걱정 없이 꿀잠을 자고 난 후 온몸이 개운하고 상쾌해지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다. 그
몇 분 전.지하 수술실에서 악행으로 가득한 살인범들이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을 때, 시후는 구출된 피해자들을 진정시킨 후, 성도민에게 물었다. “성도민 씨, 내가 미리 준비해달라고 했던 것들, 준비해 놨습니까?”성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은 선생님, 말씀하신 물건들은 모두 제 차량 트렁크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필요하시면 바로 옮기겠습니다.”“좋아요.” 시후가 말했다. “그럼 가져와요.” 그러고는 가까운 빈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으로 옮겨 놓도록 하죠.”“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성도민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곧이어 차 트렁크에서 커다란 종이박스 하나를 꺼내 안고 돌아왔다. 성도민은 두 손으로 종이박스를 안고 오면서, 한 손엔 묵직한 쇼핑백도 들고 있었다.박스에는 소주의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고, 이는 시후가 특별히 부탁해 미리 준비하게 한 축하주였다.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1.8리터짜리 소주가 두 병 들어 있었고, 또 다른 쇼핑백에는 소주잔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성도민이 시후에게 말했다. “은 선생님, 요청하신 물건이 여기 있습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0분 후에 모두 마당에 집합시켜요. 다 함께 축하주를 나눌 거니까.”성도민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은 선생님, 축하주를 마신다 하셨는데, 술이 좀 부족하지 않습니까? 백 명이 넘는데, 고작 이 소주를 나눠 마시면 1인당 양이 얼마 안 될 텐데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우리 블랙 드래곤은 주량도 셉니다. 이 정도 술은 그냥 목만 축이는 정도 아닐까요...”시후는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잠시 후 모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과음은 좋지 않죠. 이 술은 형식일 뿐이고, 진짜로 실컷 마시고 싶다면 미국에 돌아가서 마음껏 마시면 되지 않겠어요.”성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시후는 말했다. “좋아요. 성도민 씨, 그럼 이젠 가서 할 일 보고, 10분 후에 나를 찾아오도록
김미희는 뒤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부하들이 다 죽었는데, 누가 널 구하러 온다는 거야?”후아레스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내 여자친구! 내가 계속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 나를 찾으러 올 거야! 그녀가 올 때까지 살아만 있다면, 구출될 수 있어!”김미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네. 그런 머리로 어떻게 지금까지 보스를 해먹었는지.” 그러고는 위를 가리키며 냉정하게 말했다. “잊지 마. 밖에는 블랙 드래곤의 대원 백 명이 넘게 포진해 있어.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그 자들은 절대 떠나지 않아. 네 여자친구가 오면, 그저 죽으러 오는 거라고!”후아레스는 한순간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어! 불만 붙이지 않으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하루만 더 버텨도 살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 기적은 절망 속에서 일어나는 거잖아? 어쩌면 은시후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멕시코 경찰이 여길 찾아낼 수도 있고, 혹시 그 은시후에게 다른 원수가 있어서, 그 원수가 찾아와 그들을 처치해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어!”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흥분해서, 모두를 설득하려 들었다. “원래 백만 분의 일 확률이라 해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어! 슈퍼 로또처럼 말이야. 백만 분의 일이어도 당첨자는 반드시 나오잖아? 그게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어. 단 조건은 뭐다? 일단 로또를 사야 되는 거지! 살아 있어야 그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그의 말에 김미희를 비롯한 이들이 조금씩 설득되는 듯했다.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회가 희박해도, 아예 끝내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김미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기다려 보자고.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옆에 있던 민영건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다리자! 나도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