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후는 이태리 부회장에게 권여빈의 동향에 주시하고 수상한 움직임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도록 지시했다.이 부회장과 이야기를 나눈 뒤, 시후는 여빈을 마중하러 택시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향했다.인천국제공항 1터미널에 도착한 시후는 택시에서 내려 입국장으로 가려는데 벤츠 S클래스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그의 앞에서 멈춰 섰다.멈춰선 차를 쳐다보자 차의 조수석 쪽 창문이 내려갔다. “네가 왜 여기 있는데?"라며 유나의 사촌오빠인 김혜준은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전 유나 씨의 친구를 데리러 왔는데, 혜준 씨야말로 왜 여기 있는 거죠?"시후도 차 안에 있는 낯익은 얼굴들을 보니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김혜준 말고도 임현우와 김혜빈도 있었다."설마 여빈 씨를 말하는 거야? 여빈 씨를 만나기로 한 건 우리라고, 넌 꺼져.""댁이나 꺼지세요." 시후는 코웃음 치며 말했다.시후는 그들을 무시하고 바로 공항 도착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혜준은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소리 지르려는 걸 여동생 혜빈이 말렸다. "여빈이가 곧 나올 거니까 오빠가 참아. 할머니께서 여빈이한테 좋은 인상 남기라고 신신당부했잖아. 둘이 잘 돼서 결혼하면 집안에서 오빠의 주가가 단번에 오를 거라고! 저런 루저는 그냥 내버려둬."혜빈이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그가 여기에 온 이유를 완전히 잊을 뻔했다.사실 권여빈을 마중 나온 건 둘째고, 그가 오늘 공항까지 나온 이유는 그녀에게 이성으로서 좋은 인상을 남기는 것이었다.권여빈의 부친이 경영 중인 네오플램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중 하나이다. 만약 혜준이 그녀와 결혼한다면 WS 그룹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그래서 일단 그는 시후에게 욕을 퍼붓고 싶은 마음을 꾹 참고, 서둘러 주차한 뒤 입국장으로 달려갔다.그 때 입국장 문이 열렸다. 입국장을 나서는 사람들 사이로 모델처럼 키가 크고 늘씬한 젊은 여성 한 명이 눈에 띄었다. 찰랑거리는 긴 검정 생머리에 스키니 진을 입어 늘씬한 각선미와 얇은 허
혜준도 헤븐 스프링스에 VIP룸으로 예약해 뒀다는 말에 시후는 조금 놀랐다.이런 우연이 다 있나. 이화룡이 분명 헤븐 스프링스를 자기가 소유하고 있다고 했지? 당연히 제일 좋은 자리로 준비해 두었다고 했었지?한편 임현우가 놀라며 말했다. "이야~ 김혜준, 요즘 거기 인기가 많아서 몇 달치 예약이 꽉 차 있다고 들었는데 어떻게 예약한 거야?""솔직히 VVIP룸 예약하는 건 힘들지만 VIP룸 정도는 간단하지." 혜준이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사실 신옥희 회장도 VIP룸으로 예약하기 위해서 지인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여빈은 미국에 있을 때도 헤븐 스프링스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에 당황하며 말했다. "우리 사이에 그렇게 비싼 데 갈 필요 없어!" 혜준은 수줍어하며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여빈이, 네가 온다는데 어떻게 아무 데나 갈 수 있겠어?"그러고 나서 그는 시후를 향해 돌아서서 물었다. "은시후, 그래서 네가 예약한 레스토랑이 어디야?"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것참 우연이네요. 저도 헤븐 스프링스에 예약해 뒀는데.""하하핫!" 혜준이 소리 내서 크게 웃었다. "은시후, 그렇게 생각 없이 떠벌리면 나중에 뒷감당은 어떻게 하려고 그래? 헤븐 스프링스 홀 테이블에도 예약을 못 할 것 같구먼 헛소리 작작해!"시후는 싱긋 웃었다. "내가 어디 레스토랑을 예약하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지? 혜준 씨는 저녁 식사에 초대하지 않았으니까 신경 꺼요."혜준은 "칫! 너 같은 건 평생 헤븐 스프링스 구경도 못 해볼 거니까!"라고 말하며 콧방귀를 뀌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빈은 시후가 무시당하는 걸 차마 더는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여빈은 시후가 유나네 가족들한테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시후의 가정사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그가 이런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했다는 건 비현실적이었다.그녀는 시후가 자존심 때문에 거짓말을 했다고 생각해, 나중에 시후가 망신을 당하지 않길 바랐기에 두 사
여빈은 어색하게 웃으며 물었다. "시후 씨도 여기에 예약했다고 하지 않았나요? 우리 자리는 어디죠?""사실 어떤 자리로 예약되었는지 몰라요. 조금 전에 레스토랑 오너한테 문자로 우리 자리가 어디인지 알려 달라고 물어봤어요. 답장이 왔는지 지금 확인해볼 테니까 잠시만 기다려줘요."혜준이 벌레라도 본듯한 표정으로 "거짓말 좀 작작해. 여기 사장이 누군지 알아? 서울지역을 장악하고 있는 유성파 보스라고! 그런데 그 사람 가게 앞에서 그런 헛소리를 해? 그 사람이 방금 말을 들었으면 넌 쥐도 새도 모르게 끌려가서 죽을 걸?"시후는 혜준이 떠드는 말은 무시하고 메시지를 확인해보았다. "VVIP룸으로 예약되어 있다네요."그의 말을 듣고 혜준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VVIP룸? 진짜 웃기네! 헤븐 스프링스에서 VVIP룸 쓸 수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지 알아? 그런 사람이 한국에서 10명도 안 돼요! 그런데 너 같은 게 가당하기나 해?"여빈은 묵묵히 침묵을 지켰지만, 속으로는 시후가 변변한 직장도 없으면서 자신이 뭔가 대단한 사람인 걸로 착각하는 그런 한심한 인간이 되었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며 혀를 내두르고 있었다. 그녀는 시후가 능력도 돈도 없어서 답이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했지만, 그가 이렇게 허영에 찬 인간일 줄은 몰랐다. 완전히 실망했어. 내가 사람을 잘못 봤구나!시후는 그들의 비난에도 그저 미소 지었다. 그의 눈에는 그들이 속물스러운 바보들이었고, 그들의 수준에 맞춰 자신을 낮출 필요가 없었다.임현우도 혜준의 뒤를 이어 "우리 부모님도 VVIP룸 예약을 못하는 데 무슨 개소리야?""이런 인간은 우리랑 같이 VIP실에서 같이 먹을 자격 없어! 저녁은 혼자 많이 드세요." 뒤이어 혜빈이 말했다. 시후는 임현우를 보곤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겨우 참았다. '등신 새끼, 너네 사촌을 두드려 팬 사람이 누군 줄 알고 여기까지 잘도 기어왔네?'그런 생각이 들면서 슬쩍 물어봤다. "현우 씨, 어제 사촌 분한테 무슨 안
여빈도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의 등장에 적잖게 놀랐다.그녀는 혜준이 조직과도 연줄이 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옆에 있는 시후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믿음직스러웠다. 그녀는 혜준과 친분을 쌓아두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가 일행들을 VVIP 룸으로 안내했다. 그는 계산서를 꺼내 시후에게 건네며 사인을 부탁했다. "선생님, 여기에 사인 부탁드립니다."VVIP는 시후를 위해 특별히 예약되어 있었기에 확인을 위해 그의 서명이 필요했다.시후가 흔쾌히 펜과 계산서를 집어 들었지만, 그가 사인을 하기 전에 혜준이 소리쳤다. "펜 내놔!"그는 시후의 손에 들린 펜과 종이를 빼앗아 들어 재빨리 자신의 이름을 적고는 시후에게 큰소리쳤다. "방을 예약한 게 누군데 네가 사인하고 앉아있어?!"검은 옷을 입은 남자는 혜준의 무례한 행동에 당황했다. 그는 혹시 도움이 필요한 건지 시후를 바라보며 눈짓을 보냈다.시후는 그의 의중을 읽고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저렇게 사인하고 싶어 하는데 그가 사인하게 놔두세요."시후는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여빈이 있는 자리에서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사인을 마친 종이를 건네고 나서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혜준은 여빈에게 테이블 상석에 앉도록 하고, 시후는 혼자 떨어져 앉게 해 여빈이랑만 이따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곧, 웨이터들이 와인과 코스 요리를 하나씩 선보였다.모든 요리들은 최고급 재료들을 엄선해서 사용해서, 캐나다산 랍스터와 캐비어가 애피타이저로 나왔다.심지어 와인은 한 병에 몇 천만 원은 나가는 빈티지 와인이었다.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여빈도 사치스럽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요리들을 보고 놀랐다.임현우가 한숨을 내쉬며 "혜준아, 이거 다 얼마야?""500!" 혜준은 거만하게 대답했다."확실해? 이거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와인만 해도 500이 훌쩍 넘는다고..."혜준은 아무렇지도 않은 척 미소
오늘 VVIP 룸에는 다른 예약이 없었기에 한 팀만을 위한 코스 요리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미 VVIP를 위한 음식이 나가 버려서 그는 바짝 긴장했다. 진짜 VVIP 손님이 오면 어떻게 하지?!혜준은 당황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소리쳤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여기 룸으로 예약했는데 우르르 몰려와서 무슨 행패야?"박복만은 혜준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가 김혜준이야?"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 "그래, 내가 김혜준이다!"박복만은 차가운 목소리로 부하들에게 명령했다. "저 새끼 끌고 나와."두 명의 건장한 사내들이 즉시 혜준을 자리에서 끌어내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뭐 하는 짓이야! 이거 놔!""시발 닥치고 따라와!"한 남자가 혜준의 무릎을 걷어차자 그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며 넘어졌고, 박복만 앞에 무릎 꿇는 모양새가 되었다.박복만은 차가운 눈빛으로 혜준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탁!'그는 사인이 된 계산서를 혜준에게 집어 던졌다."누가 저 룸을 써도 된다고 했지?"혜준은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목을 가다듬고는 입을 열었다.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우리는 미리 VIP룸으로 예약하고 왔다고!" "당신들 뭐 하는 거야? 혜준이가 미리 예약했는데 VIP 손님을 이런 식으로 대접하는 게 어디 있어?"라며 임현우도 옹호하고 나섰다."저기요, VIP 룸이라고? VIP 룸? 너 같은 병신새끼가 쓰라고 있는 VVIP 룸이 아니라고!" 박복만은 혜준의 뺨을 때리며 윽박질렀다.그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방 전체로 울려 퍼졌고, 모두가 우두커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뭐라고...? VVIP 룸?어쩐지 방이 너무 넓고 요리와 와인이 고급스러웠다! 알고 보니 모두가 들어간 룸은 VIP룸이 아니었던 것이다! 임현우의 이마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오빠, 오빠가 유성파 보스랑 아는 사이라고 했잖아! 빨리 그 사람한테 연락 좀 해봐!"혜준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
임현우는 너무 무서워서 몸이 덜덜 떨리고 당장이라도 지릴 것 같았다. "나...나는.... 로이...드 그룹의...."그는 더듬더듬 겨우 말을 했다."로이드 그룹이라고?" 박복만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게 뭐 어쨌는데!" 그는 침을 뱉고는 현우를 넘어트리며 말했다. "보스가 어제 로이드 그룹에서 나온 멍청이 한 명을 제대로 교육시켜서 돌려보냈건만, 아직도 로이드 그룹 운운하는 멍청이가 있을 줄이야!""뭐라고?" 현우는 충격에 뒷걸음질 쳤다.그는 지금껏 강도상해 사건이라고 생각했는데, 범인이 유성파 두목이었다니...!그가 충격과 공포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는 사이, 박복만이 또 한 번 팔을 휘둘렀다.'퍽'현우는 눈앞이 핑글핑글 도는 것 같았다. 귀에는 계속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입과 코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결국 그는 의식을 잃고 고꾸라졌다. "꺄아아아아악! 현우 씨!!"혜빈이 공포에 질려 비명을 질렀다.현우는 그녀의 약혼자였다. 로이드 그룹과 결혼할 수 있는 유일한 찬스였다. 그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끝장이었다!"119! 빨리 119에 전화해!! 빨리!!!!"혜빈은 패닉 상태에 빠져서 소리 질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겨우 휴대폰을 꺼냈지만, 너무 떨려서 아무것도 누르지 못하고 비명만 지르고 있었다.박복만은 눈살을 찌푸리며 "아 시발 미친 년이 시끄럽게! 저 년 좀 어떻게 좀 조용히 시켜!""네, 형님!"남자들은 뭐가 웃긴지 실실 웃으며, 혜빈에게 다가갔다.이런 조폭들은 예쁜 여자, 특히 혜빈처럼 기가 세 보이는 여자를 괴롭히는 걸 좋아했다.그녀는 미친 듯이 뒷걸음질 쳐 도망가려고 했지만, 곧 벽에 부딪혔다."이리 와, 이 쌍년아!"대머리를 한 남자가 혜빈의 머리카락을 낚아채더니 그녀 입에 천 조각을 쑤셔 넣고는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조직에 있는 사람들은 여자라고 봐주는 것도 없이 무자비하게 폭행을 이어갔다.혜빈의 뺨이 시뻘겋게 부어 오르고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흘러내렸다.
이화룡이, 보스가 왔다!이분이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룸으로 성큼성큼 들어온 이화룡은 박복만의 가슴팍을 걷어차 날려 버렸다. "이 병신아, 사람을 몰라봐도 유분수지! 시발 너 이 새끼 죽었어!"이화룡은 미친 듯이 박복만을 걷어차면서 욕을 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서 기세등등하던 박복만이 바닥에 웅크리고 얻어맞고 있다.여빈은 갑자기 전세가 역전된 상황에 황당했다.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이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우리가 사람을 잘못 건드려도, 제대로 잘못 건드렸다. 제 무덤을 판 건 다름 아닌 자기들이었다.!이화룡은 부하들에게 호통쳤다. "이 병신새끼들이 뭘 멀뚱히 서서 보고 있어! 당장 사과 드리지 않고!""선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가 보스의 지인이신 것도 몰라보고, 용서해 주십시오!"남자들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사과를 했다.박복만도 스스로 자신의 뺨을 때리며 사과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제 무례함을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제 불찰로 선생님과 친구분들에게 이런 일을 겪게 해서 정말 면목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이화룡이 허리를 숙여 사과했다.시후는 여빈을 힐끗 보더니 "그냥 아내의 친구한테 식사 대접하고 싶어서 왔어."라며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그러고 나서 혜준과 현우, 혜빈을 가리키며 "그리고 저 사람들은 내 친구가 아니고."라고 냉랭하게 말했다. 여빈은 완전히 충격을 받았다.결국 시후는 허세를 부린 게 아니었다. 그는 몇 달 동안이나 예약이 불가능한 헤븐 스프링스에 무려 VVIP 룸으로 예약을 해두었다.무엇보다도 예약을 한 사람이 유성파 두목인 이화룡이라는 사실이 쇼크였다!한때 자신도 시후를 깔봤던 것을 떠오르자, 그런 자신이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한편 정신을 차린 혜준이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진짜로 은시후 저 루저 새끼가 유성파 보스랑 아는 사이라고? 그게 말이 돼?혜빈도 오빠 못지않게 충격을 받았다. 진짜로 은시후가 이화룡을 알고 있었다니
권여빈과 이태리 부회장이 계약한 입사일이 바로 다음 날로 다가왔다.헤븐 스프링스에서 나온 시후는 여빈을 그녀가 묵고 있는 호텔로 데려다 주고 돌아갔다.권여빈은 저녁 식사 때 있었던 일에 놀라워하면서도, 향후 자신의 방향성에 대해 고민했다.이번에 서울로 온 그녀는, 외부적으로 엠그란드 그룹으로 출근한 것이긴 했지만, 사실 그녀의 어깨에는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었다.서울로 오기 전, 그녀의 아버지는 서울 최고 재벌가인 LCS 그룹과 관련된 극비 정보를 알려줬다. 아버지에 의하면 LCS는 몇 년간 실종되었던 도련님을 드디어 찾았다고 했다. 게다가 집안으로 돌아온 도련님을 위해 엠그란드 그룹을 인수하여 경영을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그렇다면 이 말은.. LCS 그룹의 아들이 서울에 있고, 바로 엠그란드 그룹의 회장이 되었다는 건데..그녀의 집안은 서울에서 유명하긴 했지만, 서울에 숨겨진 재벌가인 LCS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그래서 그녀의 집에서는 엠그란드 그룹 도련님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틈을 타 권여빈이 미리 그와 함께 어울릴 수 있는 기회를 잡길 바랐다. 그래서 딸과 엠그란드의 도련님이 사귀기라도 해서, 양가의 결혼을 성사시킬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될 테니 말이다.권여빈은 비록 이런 방식에 거부감을 느끼긴 했지만, 자신에게 집안을 일으킬 수 있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책임이 자기 어깨에 지워져 있으니 소홀히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외국에서 서울로 와서 엠그란드에 입사를 준비한 것은, 엠그란드의 그 신비로운 회장과 접촉할 기회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일단 접촉한 후에 그의 주의를 끌 방법을 강구할 그녀였다.권여빈의 미모는 서울의 상류사회에서도 단연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로 탑이었다.그녀는 자신의 외모·학식·능력, 그리고 얼음과 옥처럼 깨끗한 피부로 LCS 그룹 도련님의 주의를 끌 수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만약 정말 그와 결혼할 수만 있다면, 그녀의
이중열은 약간 의아했지만, 여전히 정중한 태도로 말했다. "유 회장님, 굳이 저에게 보상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애초부터 당신을 원망한 적도 없고, 저를 놓아주셔서 가족과 재회할 수 있게 해 주신 것만으로도 정말 정말 감사할 따름입니다!"그러자 유가휘는 옆에 있던 방가흔에게 손짓했다. 방가흔은 급히 자신의 에르메스 핸드백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어 유가휘에게 건넸다.유가휘는 그 서류 봉투를 들고, 아부하는 얼굴로 이중열에게 건네며 말했다. "중열 씨, 이건 내 저택 옆에 있는 G7 그룹 저택의 소유권 서류라네. 오늘 오후에 이미 매입을 완료했어. 이제부터 이 저택은 자네 거야. 내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지!"이중열은 얼이 빠진 듯 유가휘를 바라보았다. 이즁열의 머릿속에 떠오른 첫 번째 생각은, 유가휘가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먼저, 유가휘가 자신에게 보상을 해 주고 싶어 할 리가 없었다. 둘째, 설령 보상을 해 주고 싶다 해도, 굳이 자기 집의 옆에 있는 저택을 사서 줄 이유가 없었다.이중열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유가휘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시후의 눈치를 보느라 어쩔 수 없이 자신을 해치지 못할 뿐, 속으로는 여전히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이런 경우에 어떻게 자신의 저택 옆에 있는 빌라를 자발적으로 선물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이것은 절대 유가휘의 뜻이 아닐 것이었다. 이건 분명 시후의 의도일 것이었다. 이중열은 시후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다. 시후의 스타일은 단순히 정신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모두 상대를 압박하는 사람이었다. 유가휘는 시후의 뜻을 거역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시후가 시킨 대로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들자, 이중열에게 첫 번째로 떠오른 생각은 유가휘의 선물을 정중하게 거절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곧바로 다시 생각했다. 시후가 이렇게까지 자신을 배려해 주는데, 굳이 거절할 이유가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앞으로 시후를 위해 최선을 다해 그를 섬기고 싶었다. 이중
이한열은 급히 손을 내저으며 거절했다. "형, 이건 형이 힘들게 번 피 같은 돈이야. 내가 어떻게 받을 수 있겠어? 게다가 지금 나도 수입이 안정적이고, 어머니도 완쾌하셔서 더 이상 비싼 치료비가 들지도 않을 거야. 이 돈은 형이 그냥 가지고 있어!"그러자 이중열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정도 돈은 홍콩에서 차 한 대 정도 사는 정도밖에 안 돼. 이 형이 별 재주가 없는 사람이지만, 지금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야. 그리고 걱정 마 난 지금 혼자인 처지라 돈이 많이 필요 없고, 은시후 도련님께서 날 높게 평가하셔서, 먹여주고 재워 주면 그걸로 충분 할 거야. 만약 시후 도련님이 날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면, 그냥 삼수이포에서 삼겹살 가게를 열면 되고. 그때 가서 장사 밑천이 필요하면, 그때 네가 이 돈을 나 대신 보관한 셈 치고 돌려주면 되는 거야."이때, 이중열의 어머니도 입을 열었다. "한열아, 네 형이 이렇게 말했으니, 그냥 그 돈은 받아 두거라. 네 형이 없을 때는 집안일을 내가 결정했지만, 이제 형이 돌아왔으니 앞으로는 형의 뜻을 따라보자."이한열은 어릴 때부터 형을 몹시 존경해왔다. 그는 형이 능력 있고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어머니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단호하게 말했다. "알겠어요, 어머니. 앞으로 모든 것은 형의 뜻에 따르겠습니다!"이중열의 어머니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네 형이 돌아왔으니, 우리 가족이 드디어 다시 하나가 된 것이나 다름없어. 게다가 유가휘와의 오해도 풀렸으니, 앞으로 홍콩에서 우리 가족을 괴롭힐 사람은 없을 거다. 너희 형제들이 힘을 합친다면, 우리 집안도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게다!"이중열은 가슴이 저릿했다.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과 괴롭힘을 당했을지 생각하니, 그는 더욱 죄책감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데, 그 순간, 밖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집에 계신가요?"이중열의 어머니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아
그 시각, 오래된 저택.이곳은 홍콩 삼수이포에 위치한 오래된 주택으로, 실제 사용 면적으로 환산하면 고작 9평 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땅값이 하늘을 찌르는 홍콩에서 30평방미터의 집을 소유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많은 사람을 능가하는 수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거 홍콩의 구룡성채라는 곳에서는 많은 가족이 다섯 명, 심지어 여덟 명까지 10평방미터도 안 되는 관짝 같이 좁은 집에서 함께 생활해야 했다. 그런 환경과 비교하면, 이중열 가족들이 지내는 삼수이포의 집은 빈민가를 벗어났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이중열은 젊을 때 이 집에서 컸다. 그러다 아버지가 삼겹살 사업으로 큰돈을 벌며, 가족은 홍콩 번화가 중심지로 이사할 수 있었다. 그 후, 이중열은 홍콩의 유명한 전문 경영 매니저가 되었고, 유가휘의 사업을 도우며 많은 부를 창출했다. 자연스럽게 그의 수입도 상당했으며, 집 또한 시내 아파트에서 고급 연립주택으로 바뀌었다.이중열이 홍콩을 떠날 무렵, 가족들이 한국에서 홍콩으로 왔을 때 지낼만한 곳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유가휘의 심기를 거슬렀던 탓에 동생과 여동생들은 홍콩에서 취업조차 하지 못하게 되었으며, 연애와 결혼을 하는 데에도 큰 타격을 입었다. 심지어 가족들이 홍콩에서 운영하던 삼겹살 가게 사업도 급격히 쇠락하고 말았다.그 때문에 이중열은 동생들의 생활비, 부모님의 치료비, 가계 유지비를 마련하기 위해 모든 재산을 처분했고, 결국 돈을 모아 샀던 연립주택마저 팔아야 했다.다행히도, 그의 아버지는 정이 많은 성격이라, 부자가 된 이후에도 삼수이포의 이 오래된 저택을 팔지 않고 남겨두었다. 그 덕분에 가족들은 최소한 머물 곳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이중열의 두 여동생은 모두 홍콩으로 일하러 온 한국인 남성들과 결혼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홍콩의 남성들은 그들의 오빠가 유가휘를 거슬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아무도 감히 결혼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중열의 남동생인 이한열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작별을 고한 후, 배유현은 차를 몰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유미경은 서두르지 않고 휴대전화를 열어 검색 엔진에 한 줄을 입력했다. 곧 검색 엔진은 한국에 있는 모든 대학 목록을 보여주었다.유미경은 대략적으로 리스트를 살펴보았고,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뛰어난 학생들이 진학하는 곳이 바로 서울대학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곧바로 서울대학교 공식 웹사이트를 열어 인재 채용 페이지를 찾아보았다. 그리고 페이지를 하나하나 꼼꼼히 읽어 내려가던 중, 자신에게 딱 맞는 채용 공고를 발견했다.그것은 바로 이라는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두 가지 채용 방식이 있었다. 첫 번째는 세계적으로 저명한 학자들을 영입하는 것으로, 기준이 매우 까다로웠다. 아직 박사 학위를 받지 못한 유미경은 이 요건을 충족할 수 없었다. 하지만 두 번째 방식, 우수 글로벌 인재 영입은 그녀를 놀라게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조건은 국내 및 해외 명문 대학의 박사 학위를 보유하며, 해당 분야에서 일정 수준의 학문적 성과를 거둔 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다.유미경은 곧 박사 학위 취득을 앞두고 있었다. 빠르면 2주, 길어도 한 달 안에 최종 논문 심사를 마치고 박사 학위를 받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녀는 중문학을 전공했기에 과학적 연구라고 할 것은 없었지만, 인문학 분야에서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거두었고, 몇몇 권위 있는 학술 성과도 보유하고 있었다. 이런 조건이라면, 그녀는 충분히 우수 글로벌 인재 영입 프로젝트의 지원 자격을 갖춘 것이었다.유미경은 망설임 없이 해당 프로그램의 지원 이메일 주소를 메모해 두었고, 집에 돌아가자마자 지원서를 작성해 접수할 생각이었다. 그런 뒤 서울대학교에서 근무할 수 있는지 확인할 계획이었다. 유미경은 조금 전 배유현과의 대화에서, 시후가 거주하는 곳이 서울과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즉, 자신이 서울에서 일하게 된다면, 앞으로 시후와 같은 도시에 머물 수
시후가 핸드폰 케이스를 사서 돌아오면서 핸드폰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그는 끝까지 유미경이 왜 그렇게 서럽게 울었는지 알지 못했다.이때, 먹자골목 상인들은 다시 한 번 극도로 친절한 면모를 보이며, 세 사람의 테이블을 온갖 맛있는 음식들로 가득 채웠다. 그렇게 해서 셋은 방금 있었던 일을 암묵적으로 잊어버리고, 음식을 먹으며 가벼운 이야기들을 나누었다.음식을 절반쯤 먹었을 때, 유미경이 시후를 바라보며 물었다. “은시후 씨, 언제 돌아갈 계획이에요?”시후는 무심히 대답했다. “내일 밤쯤이요. 당신 아버지가 옆집의 빌라 문제를 해결했는지 모르겠네요. 만약 해결됐다면, 내일 삼촌이 가족들과 함께 이사하고 나면 나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유미경은 속으로 아쉬움을 느꼈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은시후 씨, 홍콩에서 며칠 더 머물다 가실 생각은 없으세요?”“아니요.” 시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내가 아직 미국에서 기다리고 있어서요. 여기서 너무 오래 머물 수는 없어요.”이미 시후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유미경은 별다른 감정의 기복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은시후 씨는 원래 미국에서 온 거였나요? 저는 한국에서 오신 줄 알았는데요.”시후는 웃으며 대답했다. “원래는 계속 한국에 있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아내가 미국에 연수를 받으러 가서, 나도 같이 따라갔다가 그녀가 연수를 마치면 함께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합니다.”유미경은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다가 다시 물었다. “배 회장님도 은시후 씨와 함께 돌아가시나요?”“네.” 배유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은 선생님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가는 길에 이런저런 이야기라도 나누려고요.”유미경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조금 전까지 고민했던 것을 결심한 듯 미소를 지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미리 두 분의 안전한 여행을 기원할게요. 혹시 나중에 홍콩에 오실 일이 생기면 꼭 저에게 먼저 연락 주세요.”시후와 배유현
배유현은 유미경의 손에 들려 있는 작은 상자를 가리키며 신신당부했다. “미경 씨, 이 약은 너무나도 귀중한 것이니, 최대한 남들에게 알리지 말고 잘 보관하세요.”“네....” 유미경은 고개를 끄덕이며 약을 소중히 품 안에 넣었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생각이 있어 서둘러 물었다. “그런데 배 회장님, 어떻게 그렇게 은시후 씨에 대해 잘 아시는 거예요? 마치 그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 것처럼 보여요.” 배유현은 스스로를 조소하듯 씁쓸하게 웃었다. “전에 한국에 있을 때, 몰래 그의 뒷조사를 했거든요. 거기에 제 나름의 추리를 더하니, 자연스럽게 많은 것들이 연결되더라고요.”유미경은 감탄하며 말했다. “역시 배 회장님은 똑똑하시네요... 저라면 절대 그런 것들을 눈치채지 못했을 거예요.”“똑똑하다라....” 배유현은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똑똑한 건 쓸모가 없어요.” 이렇게 말한 그녀의 표정이 문득 굳어졌다. 사실 배유현은 시후가 자신에게 늘 어느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이유를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처음엔 시후가 자신이 과거에 '제니퍼'라는 가명을 사용해 그를 속였던 것 때문에 불편함을 느끼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새로운 가능성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래도 시후가 자신과 거리를 두는 이유는 자신이 너무 똑똑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시후처럼 여러 개의 신분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자신에 대해 너무 많이 아는 사람이 생기는 걸 원치 않을 터였다. 그런데 배유현은 너무 많은 단서들을 조합해 그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밝혀내 버렸다. 그렇기에 시후가 그녀를 경계하고 일정한 선을 그으려 하는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배유현은 내심 짜증이 밀려 들었다. 사람들은 종종 너무 똑똑한 것이 꼭 좋은 건 아니란 말을 하기도 하는데, 어쩌면 자신은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시후가 자신을 경계하도록 만든 건지도 모른다.그때,
유미경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시후가 가볍게 건넨 생일 선물이 이렇게까지 엄청난 가치가 있을 줄은. 그 가치는 심지어 페이셔스 그룹의 회장조차 시후에게 겨우 반쪽을 얻어낼 정도라니!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녀는 마음 속으로 복잡한 감정이 교차하는 것을 느꼈다. 소녀의 마음 같은 기쁨과, 아무런 대가 없이 거대한 보상을 받은 것에 대한 불안감도 밀려왔다. 그러나 그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배유현의 다음 말이었다.배유현은 잠시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진지한 얼굴로 유미경을 바라보며 물었다. "미경 씨, 혹시 이 거풍환을 팔 생각이 있나요? 만약 그렇다면, 제가 10억 달러를 드릴게요!" 지금 세상에서 배유현보다 회춘단과 거풍환의 가치를 잘 아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었다. 현재 회춘단은 한 알에 16억 달러를 호가하는 기적의 영약이었다. 하지만 거풍환 역시도 백 가지가 넘는 병을 치료할 수 있으며, 중상을 입은 사람도 회복시킬 수 있는 최상급 약이었다. 심지어 죽음에 가까운 사람조차 이 약을 먹으면 3~5년은 더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절박한 상황에 몰린 사람들은 심지어 5년을 더 살기 위해서 얼마라도 내놓으려 할 수도 있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품을 위해 자신의 건강을 해치는 일도 하지만, 피라미드 꼭대기에 있는 사람들, 즉 세계 최고의 부자들과 같은 이들은 단 1년이라도 수명을 연장하기 위해 10억 달러, 아니 수십 억 달러라도 심지어 수천억 달러를 쓸 의향이 있을 것이다.따라서 배유현 역시 이 약을 손에 넣고 싶었다. 만약 훗날 할아버지의 건강이 더 나빠졌을 때 이 약이 있으면 그 위기를 충분히 넘길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에게 10억 달러는 전혀 아깝지 않은 돈이었다. 오히려, 그 가격에 이 약을 살 수 있다면 엄청난 이득이라고 생각했다.유미경은 이 말을 듣고 머리가 띵했다. 하지만 유미경은 그저 시후가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며 건넨 작은 약 한 알이, 배유현의 눈에는 10억 달러의 가치를 지닌 물건으로 보인다는
"아니요." 배유현이 말했다. "우리는 알게 된 지 얼마 안 돼요. 한두 달 정도밖에 안 됐죠."유미경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은시후 씨를 안 지 한두 달 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잘 아는 거예요?!"배유현은 자조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가 괜히 똑똑한 척해서, 은 선생님에 대해 끝까지 파헤치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파고들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배유현은 웃으며 말했다. "가끔은 너무 똑똑한 것도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아요. 나도 은 선생님이 이토 나나코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을 때, 당신처럼 하루 종일 힘들어했거든요."유미경은 더더욱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배 회장님,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배유현이 웃으며 말했다. "추리했죠." 그러면서 그녀는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우선, 내가 알기로 이토 나나코는 한국에서 경기를 치른 뒤 심각한 부상을 입었어요. 당시 언론에서는 그녀가 생명이 위독하다고 했고, 설령 살아남더라도 평생 침대 신세를 질 거라고 했죠. 이게 첫 번째 단서예요. 두 번째, 이토 나나코가 부상당한 후 일본으로 돌아가고 나서 얼마 안 돼서, 은 선생님도 일본으로 떠났어요. 겉으로는 일본의 고바야시 제약을 인수하러 간 것처럼 보였지만, 그 직후 도쿄에서는 심각한 암살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했어요. 일본의 여러 재벌가들이 혈투를 벌였고, 심지어 이토 나나코의 아버지, 이토 유키히코 전 회장도 그 싸움 때문에 목숨을 잃을 뻔했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게 뭔지 알아요?"유미경이 궁금한 듯 물었다. "뭔데요?"배유현이 진지하게 말했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의 몇몇 재벌가들이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어떤 가족은 아예 몰락했다는 거죠. 이토 유키히코 역시 심각한 부상을 입어 결국 두 다리를 잃게 되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중상을 입었던 이토 나나코는 기적적으로 회복했고, 결국 이토 그룹을 상속받게 되었어요. 당신 생각엔 왜 그런 걸까요?"유미경이 고개를 저었다. "잘
배유현의 한마디 농담에 유미경은 깜짝 놀라 허둥지둥하며 급히 손을 내저었다. "저... 저는 못 해요... 제 동생은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어요..."배유현이 웃으며 말했다. "공부한다고 연애를 못 하나요? 당신도 아직 박사 과정 중이잖아요? 아직 졸업도 안 했으면서?"유미경은 급히 말했다. "저... 저는 그런 뜻이 아니라..."배유현은 그녀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동생 이야기는 일단 넘어가고, 하나 더 물어볼게요. 혹시 혜리를 알고 있나요?""한국 연예인 혜리요?!" 유미경은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녀는 요즘 제가 제일 좋아하는 연예인이에요!" 그러면서 문득 뭔가를 떠올린 듯 깜짝 놀라며 물었다. "설마 혜리도... 은시후 씨를 좋아하나요?!"배유현이 눈썹을 살짝 치켜 올리며 미소 지었다. "혜리는 우리랑 다른 존재예요. 그녀는 은 선생님과 약혼을 했거든요. 어릴 적부터 두 집안이 이미 두 사람을 위해 약혼을 해두었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은 선생님을 몇 년 동안 찾아다녔고 얼마 전에 겨우 재회했어요. 그런데도 감정은 예전과 전혀 다름이 없더군요." 그러면서 배유현은 유미경을 바라보며 다시 물었다. "당신은 혜리가 왜 연예계를 은퇴했는지 알고 있나요?"유미경은 계속해서 쏟아지는 충격적인 비밀들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리고 그녀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배유현을 바라보며 물었다. "설마 은시후 씨와 결혼하려고 그런 건가요?"배유현이 웃으며 말했다. "당연하죠. 생각할 필요가 있겠어요?"유미경은 중얼거렸다. "하지만 은시후 씨는 이미 결혼했잖아요..."배유현이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미 20년도 전에 약혼을 했잖아요. 그러니까 당신 생각엔, 은 선생님의 현재 아내와 혜리 중 누가 정말 '불륜녀'일까요?""그건..." 유미경은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기분이었다. 그녀의 뇌에서는 시후와 관련된 생각이 마치 컴퓨터 오류가 난 것처럼 응답 없음 상태가 되어 버렸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고 묵묵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