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시후의 장인도 눈만 껌벅거리며 당황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평생 이런 일은 당해본 적이 없었는데....은시후는 팔찌를 보고도 받지 않고, 웃는 듯 마는 듯 진원호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제가 어르신의 가문을 살릴 수 있다고 어찌 그렇게 확신 아시는지요?”진원호는 “은 선생님께서 못하신다면 아마 이 세상에 아무도 이 일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며 경건한 태도로 말을 이었다.은시후는 담담하게 웃었다. 사실 진원호의 말은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에게는 정말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었다.지난 번 예인당에서 읽었던 『구현보감』에 이러한 살기와 관련된 내용과 이것을 푸는 방법에 대한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다.은시후는 팔찌를 힐끗 쳐다보고는 덥석 받았다.팔찌가 반짝이는 것이 유나의 팔목에 있으면 정말 예쁠 것 같았다.이 진원호라는 사람은.. 솔직히 말하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그저 가문의 후손을 잘 다스리기만 한다면 큰 죄는 아니게 될 것이다.이렇게 부탁하는 이상 그를 도와주어도 무방할 것 같았다. 그러자 은시후는 “자, 어르신께서 이렇게 정성으로 부탁하시니.. 저도 도와드리겠습니다.”라고 답했다.그리고는 팔찌를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시후가 팔찌를 받자 진원호는 기뻐서 어쩔 줄 몰라하며 소리쳤다. “선생님! 이번 생에 선생님의 가문을 대신해 해결할 일이 있다면 저희가 힘을 다해 돕겠습니다!!”그의 큰 목소리는 사방에 서 있던 사람들을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저렇게 필사적으로 돕는다고? 은시후는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금은 이렇게 되긴 했지만,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그러니, 어르신의 집안도 이렇게 쉽게 망하지는 않을 겁니다.”진원호는 “선생님께서 말하시는 대로 저희가 따르겠습니다!”라며 머리를 조아렸다.은시후는 옆 골동품 가게에서, 노란 종이와 붉은 주사(朱砂)를 얻어와서, 주사를 찍은 붓으로 종이에다 용과 봉황이 날고 있는 그림을 몇 장 그렸다. 그리고는 그 그림들을 진
진원호는 “저희는 선생님의 도움을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 오늘은 급하여 준비하지 못했으니 내일이라도 저희 그룹에 한 번 모실 수 있는지요? 크게 대접해 감사를 표하고 싶은데요.”“괜찮습니다. 전 또 볼일이 있어서요.”은시후는 냉정히 고개를 저었다. “오늘 일은 어르신께서 덕을 많이 쌓으신 분인 것 같아 도와드린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이 일에 대해 떠벌리고 다니시는 건 저도 원치 않습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지요?”진원호는 어리둥절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언젠가는 저희 그룹이 도움을 드릴 만한 곳이 있을 테니 그 때가 되면 저희를 찾아오십시오.”그러더니 휴대폰 번호가 적힌 명함을 내밀었다. 은시후는 명함을 보지도 않고 받아 든 뒤 돌아서서 장인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진원호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다 진동오를 매섭게 노려보며 “이후에 저 선생님을 뵙게 되면 무조건 공손히 인사를 하고 절대 사고 치지 말 거라! 알아들었니?”라고 쏘아붙였다.진동오는 풀이 죽은 채로 말했다. “전 그냥 거리에 매대에서 물건 하나 샀을 뿐인데.. 이렇게도 큰 죄가 되는구나....”한편 진설아는 차가운 표정으로 은시후가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은시후의 능력에 감탄하기는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은시후가 자신의 엉덩이를 걷어찬 일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자존심 센 여자에게는 이런 일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진원호는 한숨을 쉬며 그녀를 위로했다. “후우.. 설아야, 복수는 생각도 하지 마라.. 우리 가족의 앞날은 선생님의 손에 달렸어...”“정말 저 사람이 한 말이 효과가 있을까요?”라며 진동오는 투덜거렸다.진원호는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하면, 방금 전에 말한 것처럼 네 다리를 분질러 버리겠다!”라며 욕설을 퍼부었다.진동오는 깜짝 놀라 목을 움츠리며 감히 말을 잇지 못했다.진설아는 치욕스러움에 발을 동동 굴렀다. “알았어, 아빠... 건드리진 않을게요...”하지만, 여전히 쓰라린
잠시 후 은시후의 몸속의 에너지가 폭발하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느꼈다.이..이게 바로 옛 사람들이 말하던 영기라는 건가?!다시 그 돌을 꺼냈을 때, 은시후는 돌이 이미 기운을 거두어 들이고 보통 돌멩이와 같아졌다는 것을 깨달았다.은시후는 『구현보감』에 기록되었던 내용을 머리 속에서 다시 돌려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영물 안에서 영기를 다시 뽑아내는 방법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은시후는 돌멩이를 다시 주머니에 넣을 수밖에 없었다, 직감적으로 그는 이 물건이 평범하지 않다고 느끼긴 했지만, 당시 연구가 부족했기에 영기가 다시 느껴질 때 한 번 더 연구해보기로 했다.온몸에서 끈적끈적함이 느껴지자, 시후는 샤워를 하러 급히 달려갔다. 이미 오후 5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그 때 유나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나는 먼저 지금 엠그란드 그룹에서 사업 내역을 논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사실 그녀가 전화한 요지는 5부제로 자차를 몰고 출근할 수 없었기에, 혹시 장인의 차를 타고 자신을 좀 데리러 올 수 있냐는 것이었다.유나가 부를 때 시후는 거절하기가 어려웠다.그리고는 전화를 끊자마자 즉시 장인어른을 찾아가 차 키를 받은 다음 차를 몰아 엠그란드 그룹의 건물로 갔다.주차장에 도착한 시후는 휴대폰을 꺼내 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유나는 처음엔 받지 않았지만 곧 카톡으로 답장을 보냈다.시후는 유나에게 답장을 보낸 뒤 차 밖에서 잠시 그녀를 기다렸다.그 때 엠그란드 그룹 부회장 이태리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회장님, 혹시 회사에 오셨나요?”은시후가 궁금한 듯 “어떻게 아셨어요?”라고 물었다.이태리는 “제 사무실에 있는데 마침 회장님의 차가 보이더라고요.”은시후는 “혹시 볼 일이 있나요?”라며 웃었다.이태리는 “아마, 사모님께서는 아직 회의 중이셔서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은시후는 자신을 뒤따라오는 발자국 소리에 옆의 유리를 곁눈질로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을 뒤따라오고 있는 권여빈을 발견했다.젠장!권여빈이 여기에 있는 자신을 알아차리게 되면 분명 자신이 엠그란드 그룹의 회장이라는 것을 연상하게 될 것이다.게다가 그녀는 자신이 LCS 그룹의 자제라는 것까지 알아낼 것이다!이건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다.그래서 자신을 쫓아오는 권여빈을 보면서 시후는 발걸음을 재촉해 회장실로 들어간 다음 문을 잠가버렸다.권여빈은 회장이 갑자기 빠른 걸음으로 사무실에 들어갈 줄은 몰랐다. 회장과 말 한마디 나누려고 쫓아갔던 것인데.. 이미 순식간에 사무실로 들어가버린 그였다.그녀는 회장이 이미 사무실로 들어가버린 것을 보고 실망하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뭐야.. 이상하잖아.. 일부러 나를 피하는 것처럼 행동하는 건 뭐야...?”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사무실 문 앞으로 다가가 노크하며, “회장님 안녕하세요? 저는 새로 부임해온 경영 본부장 권여빈이라고 합니다. 제가 보고드릴 내용이 있어서요.”라고 말했다.은시후는 일부러 목소리를 깔며 “이태리 부회장에게는 보고하셨나요? 그런 내용은 당연히 자신의 상사에게 먼저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설마 이런 내용도 모르는 건가요?”“아! 죄송합니다 회장님.. 제가 깜빡하고..”권여빈은 그의 말에 겁에 질려 긴장하며 생각했다. ‘회장님이 너무 까칠한 거 아냐? 대체 왜 화를 내는 거지? 보고를 직속 상사에게 바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이렇게 얼굴도 안 보여주고 화를 내다니..”권여빈은 회장실 앞에 더 이상 머물 엄두가 나지 않아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은시후는 권여빈의 발자국 소리가 멀어지자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마터면 권여빈 씨에게 정체를 탄로날 뻔 했어.. 오늘은 진짜 위험했다!앞으로도 종종 엠그란드 그룹에 들르게 될 터인데.. 권여빈은 현재 경영 본부장으로 자신과 같은 층에서 사무실을 쓰고 있었기에 더더욱 신경이 쓰였
이태리 부회장이 자신에게 볼일이 있다는 말을 들은 권여빈은 즉시 그녀의 사무실로 찾아갔다.이때 은시후는 서둘러 계단을 내려갔다.계단을 막 내려왔을 때, 유나가 지친 얼굴로 회의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유나는 분명 여러 협력사들과의 회의들로 인해 너무 지쳤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지금은 일이 많이 바빠요.. 해결해야 할 게 많아서.. 진짜 너무 바쁘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네요..”라고 말했다.은시후는 그런 유나를 보자 마음이 아파왔다. “그럼 일하는 다른 사람들과 일을 좀 나눠서 하는 게 어때요? 그래도 너무 힘들다면, 그만두는 건요?”“그건 안 돼요.” 유나는 “내가 이사직에 오르게 된 것이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요.. 아직 내 자리가 안정되지도 않았는데.. 제가 노력해야 하지 않겠어요? 만약 내가 이 자리에서 게으름을 피운다면 아마 혜준 오빠처럼 내 자리를 탐내고 날 대신하려는 사람이 달려들 거라고요.”라고 말했다.김혜준을 생각하니, 유나는 저도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김혜준은 특히 유나에게 짜증나는 존재였다. 늘 자신에게 맞서는 존재였고 또 항상 남의 자존심에 금을 가게 만드는 일을 즐기는 인간이었기 때문이다.돌아가는 길, 유나는 차에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고 시후는 운전에 전념한 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다.******같은 시각, 이태리의 사무실.이태리는 권여빈이 새로운 직책을 부여 받았고, 이에 따라 인사 이동을 하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알려주었다.권여빈은 약간 놀랐다.자신이 경영 본부장의 업무를 받은 지 얼마나 지났다고 마케팅 본부장을 맡으라니?? 갑자기 왜?이태리는 “우리는 여빈 씨가 능력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회사에서 경영 업무만 보는 건, 사실 당신의 능력을 썩히는 것이라고 판단했고요. 이력서를 봐도, 당신은 대학에서 기업관리와 마케팅을 전공하지 않았나요? 따라서 여빈 씨는 마케팅 업무와 잘 어울리는 인재이며, 우리 회사에 있어서도 세일즈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아마
액정에 떠 있는 김혜준이란 세 글자를 본 권여빈은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지금까지 김혜준에 대해 별로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다. 아마 조금 친분을 쌓은 뒤 자신을 김혜준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하겠지..하지만, 여빈은 이런 류의 인간들에게는 별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냥 전화를 받지 않았다.그러나 김혜준은 몇 번이고 전화를 계속했다. 그러자 권여빈은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혜준아, 무슨 일이야?” 그녀의 말투는 냉랭했다.김혜준은 “여빈아, 잘 지내? 듣자 하니.. 이번에 마케팅 본부장이 되었다면서??”“소식통이 빠르네?”“엠그란드에 친구가 몇 명 있거든.. 하하.. 그런데 이번에 네가 새로 임명을 받았다고 해서 알려줬다.” 라고 말했다.“응, 맞아. 이제 마케팅 본부장이야.” “키야~~~ 축하한다!” 김혜준은 “이제.. 실세 아냐 실세?? 이제 할 일이 많겠네? 이번에 진짜 운이 좋았다 너?”권여빈은 “고마워.” 라며 담담하게 말했다.“여빈아, 그런데.. 네가 서울에 온 지도 이미 꽤 됐잖아? 내가 지난 번에 너에게 실수 한 것도 있고.. 사과를 좀 하고 싶어.. 내가 식사 한 끼 대접하고 싶은데 어때? 오늘 또 이렇게 마케팅 본부장도 되셨고.”“그런데, 나 오늘 늦게까지 야근해야 할 것 같은데....?” 권여빈은 완곡하게 거절했다.하지만 김혜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야, 여빈아! 이런 좋은 일은 그때그때 축하해야지~ 내일이 되면 또 오늘처럼 기쁘겠냐? 넌 서울에 친구가 별로 없잖아, 내가 보기에 우리 둘이서 축하할 곳을 찾아서 즐겁게 보내면 되는 거야~ 다른 사람들에겐 비밀로 하고.”권여빈은 살짝 마음이 흔들렸다.솔직히 그녀는 오늘을 정말 축하하고 싶었다.하지만, 유나도 올 수 없는 마당에 누구와 함께 축하를 해야 할지 막막하긴 했다.그런데 마침 김혜준이 먼저 전화를 걸어와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를 준 셈이었다.비록 김혜준이란 사람은 좀 위선적이긴 해도 두 사람이 함께 좋은 일을 축
사실 권여빈도 대충 김혜준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오늘 밤은 절대 김혜준과 술을 마시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김혜준은 그녀를 설득하지 못하자 답답했지만 내색하지는 못하고 “아.. 술을 안 마시면 안 마시는 거지 뭐~ 그럼 음료나 하나씩 시키면서 축하하지 뭐!”라고 말했다.권여빈은 “이해해줘서 고마워!”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옆 테이블에 앉은 남성이 조금 전부터 권여빈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권여빈이 식사를 하러 들어온 순간부터 그는 그녀의 용모와 기품에 매료되었다.그가 보기에, 그녀는 아름다우면서도 기품이 있어서, 마치 여신이 내려온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한참을 지켜보던 그는 그녀의 앞에 앉아있는 남자가 남자친구가 아닌 것 같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고 결심했다.잠시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권여빈과 김혜준의 테이블로 다가갔다. “저.. 식사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만.. 당신이 들어서자마자 첫눈에 반해버렸습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연락처라도 남겨 주실 생각이 있으십니까?”권여빈은 갑자기 멍해졌다.여기서 식사를 하다가 고백을 받게 될 줄이야..김혜준은 순간적으로 머리 끝까지 화가 솟구쳤다.어디서 이런 멍청한 새끼가 튀어나온 거야? 지금 내가 여빈이를 꼬시고 있는 거 안 보이나? 감히 누굴 꼬시러 오는 거야? 이건 죽고 싶어 환장한 게 아니면 뭐겠어?그는 권여빈이 입을 떼기도 전에 자신이 먼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누구야? 지금 내가 누군 줄 알고 감히 여기로 달려와 잡소리를 해대는 거야?”그 남자는 “지금 전 이 여성분과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그러는 당신은 무슨 상관이시죠?”라며 대꾸했다.그리고는 권여빈에게 말했다. “제가.. 저 옆 자리에서 오랫동안 지켜보다가, 실례를 무릅쓰고 용기 내어 온 것입니다. 제가 방해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정말 당신을 보자마자 너무 설렜습니다. 오늘 기회를 놓칠까 봐 이렇게 온 것이니 양해해주십
그 사내는 김혜준에게 유리병으로 한 대를 얻어맞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 그 자리에 똑바로 서있기가 어려웠다.주위에서 식사를 하던 사람들도 바닥에 흩어지는 유리 조각으로 인해 깜짝 놀랐다.김혜준은 피투성이가 된 사내를 노려보며 비웃었다. “빨리 꺼져, 내가 너의 다리를 분질러 버리기 전에!”사내는 이를 악물고 머리를 감싸 쥐며 “좋아, 이 새끼가.. 조금만 기다려 봐!”그는 피가 흐르는 이마를 감싸 쥐고 황급히 레스토랑을 뛰쳐나갔다.김혜준은 별거 아니라는 듯 웃으며 “저런 멍청한 자식.. 별것도 아닌 주제에 감히 날 위협해? 맞아야 정신을 차리지.. 내가 감히 누굴 두려워하겠어?”그는 짐짓 거만한 표정으로 권여빈에게 말했다. “여빈아, 어디서 저런 날파리 같은 놈이 꼬였는지 모르겠지만 그냥 식사나 계속할까?”권여빈은 이런 난리통에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아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런 말이 없었다.식사 도중에 김혜준은 몇 번이나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했지만, 여빈은 전혀 반응이 없었다.그녀의 눈에 비친 김혜준은 그저 무능력한 인간일 뿐만 아니라, 행동은 거칠고 경솔하기까지 하기에 도무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김혜준은 자신이 조금 전 그 멍청한 놈을 밟아버린다면, 여빈이 자신의 남자다움에 반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여빈이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고 거부감과 반감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지금 둘 사이의 어색한 분위기는 그를 굉장히 우울하게 만들었다. 권여빈이 힘쓰는 남자를 싫어할 줄이야.. 내 발등을 찍은 꼴이 아닌가?김혜준은 한 끼를 먹는데도 체한 것 마냥 속이 너무 갑갑했다.밥을 먹고 나서, 그는 원래 권여빈과 함께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누며 서로의 감정을 진전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 다르게 권여빈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오늘 식사 고마워!”김혜준은 그녀를 그냥 보내기 아쉬워 “그럼 내가 집까지 바래다 줄게.”라며 그녀를 설득했다.하지만 권여빈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시후 은 웃으며 말했다. “형님, 월급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미국에 있는 아내와 자식들은 어떻게 하시려고요?”“괜찮습니다...” 나훈구는 매우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은 은혜를 알면 반드시 갚아야지. 만약 은 선생님이 아니었다면, 아내와 자식들은 제가 실종된 줄 알고 평생 불안에 떨며 여기저기 정보를 찾아 헤맸을 겁니다. 결국 제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경찰로부터 자세한 내막까지 듣게 될 테고, 그땐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고 비통해 했겠죠...” 이 말을 하며, 나훈구는 시후를 바라보다가 목이 메어 말했다. “제 목숨을 구해주신 건 물론이고, 제 아내와 자식들이 그런 극도의 슬픔을 겪지 않게 해주셨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은 저뿐만 아니라 제 가족들도 구하신 겁니다. 제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는 최선의 결과가 될 테니까요. 생활고야 어찌 되든, 저는 가족들이 충분히 견뎌낼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다만 조금 힘들게 살 뿐이죠.”시후는 나훈구의 단단한 표정과 흔들림 없는 눈빛을 보고는, 마음속 깊이 감동을 느꼈다.잠시 후, 그는 성도민을 불러 곁으로 오게 하더니 말했다. “성도민 씨, 이 분은 IT 분야의 전문가, 나훈구 씨입니다. 나는 블랙 드래곤에 반드시 이런 인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 그를 데리고 중동으로 돌아가도록 하세요.”성도민은 기쁘게 말했다. “그거 정말 잘 됐습니다! 지금 블랙 드래곤에서는 IT 분야 하드웨어 구축을 강화하려는 참이었는데, 바로 이런 인재가 필요했습니다. IT 인프라와 미래 로드맵을 같이 설계해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했거든요!”시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내가 보기엔, 앞으로 블랙 드래곤은 IT 기업들과 협력해서 자체 위성을 제작하고, 상업 위성 발사 기업을 통해 발사하여 자체 위성 통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블랙 드래곤 내부의 통신은 보안 수준이 매우 높아야 하기 때문에, 외부 통신망이나 서비스 업체에 의존하면 100% 보안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시후의 질문을 들은 나훈구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무슨 계획이 있겠습니까. 간신히 은 선생님의 은혜로 살아남았으니, 일단은 미국으로 돌아가서 다른 방법을 생각해봐야죠...”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아주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형님, 이미 멕시코까지 와서 선원 일을 하려 하셨던 걸 보면, 미국으로 돌아가도 마땅한 일을 찾기는 힘들지 않을까요?”시후의 이 말을 들은 나훈구의 표정엔 다소 민망함과 무력감이 함께 떠올랐다. 그는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괜찮은 일을 못 찾으면, 그냥 허드렛일이라도 해야지 뭐... 우리 어머니도 식당에서 일하셨는데, 저라고 못할 이유는 없지 않겠습니까.”시후는 그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형님, 제 생각엔 차라리 이렇게 하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어차피 이제 밖으로 나오셨으니 굳이 그렇게 서둘러 돌아가실 필요는 없잖아요? 형님은 IT 쪽 일을 하셨다면서요. 그렇다면 이후엔 블랙 드래곤에서 일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블랙 드래곤은 현재 중동을 거점으로 해서 해상과 항공 양쪽으로 전 세계에 영향을 뻗어 나가고 있습니다. 분명 IT 분야의 수요는 앞으로 점점 더 많아지게 될 것이고, 수준도 높아질 겁니다. 형님 같은 인재가 절실히 필요해요.”시후가 이 말을 할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었다. 만약 나훈구가 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최상의 결과일 것이었다. 그는 성도민에게 충분한 보상을 준비시키고, 곧바로 중동으로 데려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나훈구가 거절한다면, 여기서 벌어진 비밀들을 알고 있는 그를 미국으로 그냥 돌려보낼 순 없었다. 그렇기에 다른 구출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 일에 대한 기억을 완전히 지워야 할 것이다.다만 시후는 가능하면 그 두 번째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과 인연이 닿은 사람이고, 이렇게 큰 사건을 겪은 이상 그에 걸맞은 기회도 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기억을 지워버리면, 그에겐 이 피비린
때로는, 평생을 바쳐도 이성 무인에서 삼성 무인으로의 도약조차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성 무인이란, 사실 대부분의 무인들이 평생 머무는 한계점과도 같았다. 하물며, 삼성에서 사성, 사성에서 오성, 오성에서 육성으로의 도약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그런데 이번에 시후가 건넨 이 한 잔의 술이, 백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단숨에 수련 경계를 뛰어넘게 해주었다는 건, 그들에겐 말 그대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블랙 드래곤에서 가장 강한 실력을 가진 성도민은 자신과 함께한 대원들을 돌아보았다. 그들 대부분이 수련 능력이 상승한 것을 발견하고는, 성도민은 가슴 속 깊은 감격을 억누르지 못했다. 그러자 그는 시후를 다시 바라보며, 감격과 동시에 경외심 가득한 눈빛으로 무릎을 꿇은 뒤 공손히 말했다. “저 성도민은 은 선생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다른 블랙 드래곤의 구성원들도 즉시 정신을 차리고, 성도민을 따라 시후 앞에 모두 한쪽 무릎을 꿇고 소리 높여 외쳤다. “저희들은, 은 선생님의 하늘과 같은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저희들 역시도 은 선생님을 위해서라면, 그 모든 것들을 하겠습니다!”시후는 눈앞에 있는 100여 명의 블랙 드래곤 대원들을 바라보았다. 시후는 그들의 눈에 맺힌 눈물과 결연한 표정을 보고는 이들이 자신의 확고한 동료가 되어줄 것임을 느꼈다. 만족스러운 마음에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나 은시후는, 앞으로 결코 여러분의 신뢰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블랙 드래곤이든 여러분 각자든, 앞으로 반드시 날개를 펼쳐, 저 넓은 하늘을 훨훨 날게 될 겁니다!”이 말을 들은 대원들은 곧바로 가슴이 뜨거워지며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이때, 지하 수술실을 불태우고 있던 화염은 이미 지상까지 뜨겁게 달궈 놓았고, 불꽃은 땅 위의 건물까지 번지고 있었다. 이에 시후는 성도민에게 말했다. “성도민 씨, 이제 시간이 됐습니다다. 모두 질서 있게 철수하도
시후의 구호가 떨어지자, 그와 함께 모든 대원들이 술잔을 들어 잔 속의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시후에게 있어 이 술에 담긴 영기는 이미 아주 미미한 수준이었기에, 몸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그러나 블랙 드래곤 대원들이 느끼는 기운은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애초에 이 술에 이토록 강력한 에너지가 담겨 있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대원들이 술을 한 번에 들이켰을 때 온몸에 강렬한 온기가 복부에서 시작해 단전으로 몰려들었고, 곧이어 기운은 마치 산을 무너뜨리고 바위를 쪼개는 듯한 맹렬한 기세로 팔맥을 향해 폭발적으로 밀려들었다!무술가들에게 있어 자신의 실력 향상은 두 가지 핵심 요소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첫 번째는, 기경팔맥 중 몇 개의 경맥이 열려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무술가들의 경지와 실력을 판단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다. 경맥을 많이 열수록, 무술가의 등급과 전투력도 함께 높아지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미 열린 경맥이 얼마나 잘 순환되고 있느냐이다. 대부분의 무술가들은 몇 개의 경맥 만을 겨우 열 수 있을 뿐, 모든 경맥을 완전히 순환시킬 수는 없다. 이것은 마치 사람의 코에 있는 양쪽 콧구멍과도 같아서, 누가 더 뚫려 있느냐에 따라 들숨의 양이 달라지듯 경맥도 얼마나 원활히 순환되느냐에 따라, 에너지 흡수량이 달라지게 된다. 지금 이 소주 안에 담긴 영기는 그들에게 단순히 경맥을 몇 개 더 열게 해준 것이 아니라, 기존에 뚫려 있던 경맥까지 더 넓고 강하게 만들어 주었다. 즉, 두 가지 방향에서 동시에 무술가들의 실력을 향상시킨 것이다.그래서 이 순간 블랙 드래곤 대원들은 하나같이 깜짝 놀라며 자신의 몸속에서 터져 나오는 그 엄청난 기운이 자신이 오랫동안 뚫지 못했던 다음 단계의 경맥까지 열도록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에 크나큰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잠시 후 누군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 “나... 나 네 번째 경맥을 뚫었어! 진짜야! 네 번째 경맥이 열렸어!!”곧이어 또 다른 사람이 외쳤다. “나도!
조금 전 까지만 해도 꽤 오랜 시간 동안 시후는 지하 수술실에 있었고, 소이연은 다른 블랙 드래곤 대원들과 함께 들어오긴 했지만, 지상에 남아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서로 마주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시후는 이제서야 소이연도 멕시코에 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었다.이 순간, 소이연은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보며, 수줍게 말문을 열었다. “은 선생님... 리더가 선생님께서 업무가 있다고 삼성 이상 무인들만 참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제가 딱 맞는 위치라... 바로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왔어요.”시후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웃으며 물었다. “이번엔 본래 신분을 사용하진 않았겠죠?”“아니에요.” 소이연은 다른 블랙 드래곤 대원들에게 등을 돌린 채, 시후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살짝 내밀고는 말했다. “이번엔 완전히 새 신분으로 왔어요~”“좋습니다.” 시후는 미소 지으며 손에 든 소주를 그녀에게 건넸고, 조금 전 다른 대원들에게 했던 것처럼 공손히 말했다. “오늘 수고 많았어요.”소이연은 급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은 선생님께 충성을 다할 수 있는 건, 제게는 큰 영광이에요!”시후는 웃으며 말했다. “됐어, 자리에 돌아가요. 돌아가는 길에 이야기 더 하는 걸로 하고. 오늘 밤엔 나랑 같이 미국으로 돌아가죠. 좀 도와줘야 할 일이 있어서요.”소이연은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은 선생님, 탐정... 아직도 절 추적하고 있잖아요. 제가 미국에 가면 혹시 폐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요...?”시후는 고개를 저으며, 감회 어린 어조로 말했다. “제이크 한은 이제 이연 씨를 추적하지 못해요. 얼마 전 그 친구한테 사고가 있었거든. 그 이후로 그가 맡았던 사건들도 대부분 흐지부지 종결됐죠. 게다가 이연 씨는 이미 새로운 신분으로 바꿨잖아. 문제없을 겁니다.”“그럼 정말 다행이에요! 은 선생님께 폐만 안 된다면 저는 뭐든지 다 좋아요! 은 선생님 말씀만 따를게요!”그제야 소이연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시후는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동시에, 경계심과 신중함 또한 한껏 갖추고 있었다. 블랙 드래곤의 전체 전력은 분명 강력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현재 알려진 세상 안에서만 통하는 이야기였다. 세상 어딘가, 어둠 속에 숨어 있는 더 강대한 존재들은 어쩌면 블랙 드래곤보다 훨씬 더 막강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그래서 시후는 생각했다. 앞으로는 자신 개인의 실력 향상은 물론, 블랙 드래곤 전체의 실력도 체계적으로, 꾸준히 끌어올려야 한다고... 만일 훗날, 그 미지의 강적들과 정면으로 맞설 날이 온다면 그때는 적어도, 승산을 조금이라도 더 만들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성도민은 시후의 성격을 잘 알기에, 즉시 몸을 낮춰 공손하게 다짐했다. “은 선생님, 안심하십시오! 저는 절대 개인적인 실력이나, 블랙 드래곤의 전력이 강해졌다고 자만하지 않을 겁니다! 또한 그로 인해 방심하거나 적을 얕보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시후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담담히 말했다. “그런 마음가짐이라면 나도 블랙 드래곤의 미래에 대해, 한층 더 기대하게 되는군.” 말을 마치고는 손을 크게 휘두르며 외쳤다. “자, 대원들이 줄을 서서 술을 받도록 하죠!”“예!” 성도민은 감정을 숨기지 못한 채 흥분된 목소리로 대답하고는, 곧장 밖으로 나가 마당에 모인 100여 명의 정예 부대원들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대원들! 은 선생님께서 특별히 준비하신 이 세상에 둘도 없는 귀중한 술이 있다! 이번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친 대원들을 위해, 축하와 보상의 의미로 준비하신 것이다! 자 이 술은 천금의 가치가 있고, 너희 인생의 전환점이 될 기회다!” 그러면서 다시 힘주어 말했다. “전원 주목! 첫 번째 줄부터, 왼쪽에서 오른쪽 순서로 줄지어 입장해 술을 받아라! 단, 절대로 술을 흘리거나 쏟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단 한 방울이라도 흘리면, 평생 후회할 거다!”하지만 듣고 있던 대원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떤 술이길래 천금의 가치가 있다는 건지,
시후가 막 첫 잔을 따르려던 순간, 지하실 쪽에서 갑자기 폭발음이 들려왔다.엄청난 충격과 함께, 땅 전체가 흔들렸다! 지하 수술실 입구가 숨겨진 방에서는 거대한 불길이 뿜어져 나왔는데, 폭발의 위력을 짐작케 하는 장면이었다.시후는 알고 있었다. 김미희를 포함한 악마들이 이 불꽃 속에서 재로 변해, 그 죄악의 생을 완전히 끝냈음을.그리고 그 순간, 시후는 손에 쥐고 있던 동작을 멈췄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그는, 방금 막 따른 술잔을 들어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무고한 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갔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한 잔의 술을 그분들께 바칩니다. 부디 구천에서도 이 원한이 풀렸음을 알아주시길...”그 말과 함께, 그는 두 손으로 잔을 들어, 그 안의 술을 천천히 땅에 부었다. 이 한 잔의 술을 만약 정말 필요한 이에게 팔았다면, 아마 수천만 달러, 아니 그 이상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후에게 있어, 이 술은 무고한 희생자들을 위한 경의라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의 영혼이 편히 쉴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그것이 이 술을 땅에 쏟는 이유였고, 결코 낭비라 할 수 없는 행위였다.이후, 시후는 한숨을 내쉬고, 다른 잔들에도 술을 따르기 시작했다. 곧, 100여 개의 술잔이 모두 채워졌고, 두 병의 소주도 정확히 사람 수에 맞춰 딱 떨어졌다.그때, 10분이 흘러 성도민이 공손히 문을 두드리며 말했다. “은 선생님, 모두 마당에 모였습니다.”시후는 가볍게 답하며 말했다. “안으로 들어오세요.”“예.” 성도민은 대답한 후 문을 열고 들어왔다.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강렬한 술 향기를 느꼈다. 소주는 본래 향이 강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코를 찌르는 이 향은 평소에 느끼던 그 이상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성도민은 놀랍게도 술 향 속에서 몸과 마음이 개운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은 마치 선선한 가을날, 아무 걱정 없이 꿀잠을 자고 난 후 온몸이 개운하고 상쾌해지는 듯한 형언할 수 없는 편안함이었다. 그
몇 분 전.지하 수술실에서 악행으로 가득한 살인범들이 쉴 새 없이 떠들고 있을 때, 시후는 구출된 피해자들을 진정시킨 후, 성도민에게 물었다. “성도민 씨, 내가 미리 준비해달라고 했던 것들, 준비해 놨습니까?”성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은 선생님, 말씀하신 물건들은 모두 제 차량 트렁크에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필요하시면 바로 옮기겠습니다.”“좋아요.” 시후가 말했다. “그럼 가져와요.” 그러고는 가까운 빈 방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안으로 옮겨 놓도록 하죠.”“알겠습니다, 은 선생님.” 성도민은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 곧이어 차 트렁크에서 커다란 종이박스 하나를 꺼내 안고 돌아왔다. 성도민은 두 손으로 종이박스를 안고 오면서, 한 손엔 묵직한 쇼핑백도 들고 있었다.박스에는 소주의 로고가 선명히 찍혀 있었고, 이는 시후가 특별히 부탁해 미리 준비하게 한 축하주였다.박스를 열어보니, 안에는 1.8리터짜리 소주가 두 병 들어 있었고, 또 다른 쇼핑백에는 소주잔이 가득 들어 있었다. 성도민이 시후에게 말했다. “은 선생님, 요청하신 물건이 여기 있습니다.”시후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10분 후에 모두 마당에 집합시켜요. 다 함께 축하주를 나눌 거니까.”성도민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은 선생님, 축하주를 마신다 하셨는데, 술이 좀 부족하지 않습니까? 백 명이 넘는데, 고작 이 소주를 나눠 마시면 1인당 양이 얼마 안 될 텐데요...” 그러고는 덧붙였다. “우리 블랙 드래곤은 주량도 셉니다. 이 정도 술은 그냥 목만 축이는 정도 아닐까요...”시후는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잠시 후 모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야 하니, 과음은 좋지 않죠. 이 술은 형식일 뿐이고, 진짜로 실컷 마시고 싶다면 미국에 돌아가서 마음껏 마시면 되지 않겠어요.”성도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알겠습니다, 은 선생님.”시후는 말했다. “좋아요. 성도민 씨, 그럼 이젠 가서 할 일 보고, 10분 후에 나를 찾아오도록
김미희는 뒤에 산처럼 쌓인 시체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 부하들이 다 죽었는데, 누가 널 구하러 온다는 거야?”후아레스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내 여자친구! 내가 계속 돌아가지 않으면 분명 나를 찾으러 올 거야! 그녀가 올 때까지 살아만 있다면, 구출될 수 있어!”김미희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말 이해가 안 가네. 그런 머리로 어떻게 지금까지 보스를 해먹었는지.” 그러고는 위를 가리키며 냉정하게 말했다. “잊지 마. 밖에는 블랙 드래곤의 대원 백 명이 넘게 포진해 있어. 우리가 죽지 않는 이상, 그 자들은 절대 떠나지 않아. 네 여자친구가 오면, 그저 죽으러 오는 거라고!”후아레스는 한순간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곧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어! 불만 붙이지 않으면 시간을 벌 수 있을 거야! 하루만 더 버텨도 살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 기적은 절망 속에서 일어나는 거잖아? 어쩌면 은시후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고, 아니면 멕시코 경찰이 여길 찾아낼 수도 있고, 혹시 그 은시후에게 다른 원수가 있어서, 그 원수가 찾아와 그들을 처치해줄 수도 있잖아? 그러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어!”그는 말을 하면 할수록 점점 흥분해서, 모두를 설득하려 들었다. “원래 백만 분의 일 확률이라 해도, 살아 있는 한 희망은 있어! 슈퍼 로또처럼 말이야. 백만 분의 일이어도 당첨자는 반드시 나오잖아? 그게 바로 우리가 될 수도 있어. 단 조건은 뭐다? 일단 로또를 사야 되는 거지! 살아 있어야 그 가능성이 생기는 거야!”그의 말에 김미희를 비롯한 이들이 조금씩 설득되는 듯했다. 살아 있는 한 기적은 있을 수 있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기회가 희박해도, 아예 끝내 버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김미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좋아, 그렇다면 기다려 보자고. 하늘이 우리를 버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어!”옆에 있던 민영건도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기다리자! 나도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