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경찰 쪽에서 재수사 해줄지도 의문이었다.“경찰서 쪽은 제가 가보죠.”차 변호사는 피곤해 보이는 임유진을 향해 말했다.“두 사람 만나고 오느라 수고했어요. 사건 때문에 제대로 잠도 못 잔 것 같은데 오늘 하루 휴가 줄 테니까 집에 돌아가서 쉬도록 해요.”차 변호사가 뭔가 오해를 한 것 같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건 사건 때문이 아니라 강지혁 때문이었으니까.하지만 부하 직원을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보고 어쩌면 앞으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조금 마음이 놓였다.임유진은 기왕 휴가를 얻은 김에 탁유미와 윤이를 보러 가기로 했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두 사람 모두 이 도시를 떠나게 될 테니까.그렇게 로펌을 나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려는데 비싼 차 한 대가 임유진 앞에 멈춰서더니 그 안에서 온몸에 명품을 걸친 여자가 내렸다.배여진이었다.임유진이 조금 의외라는 눈길로 보자 배여진도 그녀를 발견하고 반가운 척 다가왔다.“어머, 유진아, 안 그래도 너 찾으러 가려 했는데, 이렇게 만나네.”배여진은 지난번에 만났던 유승호를 통해 임유진이 이곳에서 변호사 비서 일을 한다는 것을 알았다.임유진은 전에 전도유망한 신인 변호사였지만 지금은 고작 비서 일이나 하고 있다.배여진은 비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걸 억지로 참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시간 좀 내줄 수 있어? 너랑 하고 싶은 얘기가 좀 있는데.”“우리 사이에 할 얘기가 있나?”임유진이 쌀쌀맞게 되물었다.두 사람은 어렸을 때부터 사뭇 다른 성격이었고 임유진이 도시에서 공부하기 시작하고부터는 점점 더 접점이 없어졌다. 그러니 당연히 사촌 간의 정도 없다.“당연히 있지. 일 때문에 바쁜 거면 너희 사무실로 올라가서 얘기해도 되고. 설마 손님한테 차 한잔도 못 내줄 정도로 정 없는 회사는 아니지?”배여진은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너무나도 당당하게 말을 꺼냈다. 계속 강현수의 옆에 있다 보니 마치 자신이 강현수가 된 줄 아는 것 같다.실상은 강현수를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다.임유
웬일로 걱정하나 싶었지만, 아니나 다를까 그녀의 다음 말이 본론이었다.“다만 현수 씨가 전에 네가 나인 줄 알고 헷갈린 적이 있었잖아. 그래서 앞으로는 현수 씨와 거리를 뒀으면 좋겠어. 불필요한 오해를 빚을 필요는 없잖아, 친척끼리, 안 그래?”임유진이 옅게 웃으며 되물었다.“불필요한 오해? 어떤 오해를 말하는 거야?”“저번에 방송국에서 너와 현수 씨가 손을 잡은 바람에 사람들이 좀 오해를 하더라고.”배여진은 조금 쑥스러운 얼굴을 하더니 말을 이었다.“나와 현수 씨 지금은 아직 대외적으로 알리지는 않았지만 조만간...”그녀는 일부러 말끝을 흐려 임유진에게 상상의 여지를 남겨주었다.“나 강현수 씨한테 관심 없어. 그러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돼.”“네 말이 무슨 뜻인지는 알겠는데 그냥 아예 그 사람 눈앞에 띄지 않으면 더 좋잖아. 아니면... 내가 돈 줄 테니까 이곳을 떠나는 건 어때? 다른 지역에서 소소하게 장사하면서 산다던가, 이러면 너도 편할 거 아니야. 나한테 지금 4억 정도 여유자금이 있으니까 그 돈으로 발을 붙여보는 거 어때?”‘4억?’임유진은 강현수의 것이 분명할 돈으로 유세 떠는 그녀가 우스웠다.게다가 가짜인 배여진이 강현수의 돈으로 진짜인 임유진을 S 시에 쫓아내려고 하는데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을까?‘내가 그딴 제안에 넘어갈 정도로 멍청해 보이나? 아니면 욕심에 눈이 멀어 이런 짓을 하는 건가?’“만약 강현수 씨가 언니가 사기 치는 걸 알게 되면 그때는 그 4억을 되돌려 달라고 하는 거 아니야?”그 말에 배여진은 순간 심장이 덜컹 내려앉으며 표정이 점점 더 부자연스러워졌다.“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무슨 사기를 쳐?”“어릴 때 산에서 강현수를 구한 거 정말 언니 맞아?”임유진의 눈빛이 무섭게 그녀를 쫓았다.“당연하지.”“정말 산에서 강현수를 구한 거 언니 맞아?”임유진이 다시 물었다.“너 말이 좀 이상하다? 내가 아니면 누군데!”임유진은 싸늘해진 눈으로 그녀를 비웃듯 말했다.“언니, 내가
“그러니까, 언니, 앞으로 다시는 내 앞에서 그딴 말 하지 마. 언니도 할머니 손녀인 걸 봐서 친절하게 알려주자면 강현수 그 남자 그렇게 쉽게 볼 사람 아니야. 욕심을 너무 부리다가는 모든 걸 다 빼앗길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그 말을 끝으로 임유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이 마친 커피값을 계산한 후 카페를 떠났다.한편 배여진은 아직도 그 자리에 앉아있었고 떨리는 손으로 커피를 마셨다.“대체 언제 기억이 돌아온 거야... 만약 얘가 정말 현수 씨한테 가서 전부 다 말해버리면...”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 임유진의 얘기를 강현수가 믿지 않도록!반드시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한다!...카페에서 나온 임유진은 버스를 타고 탁유미의 현재 거처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탁유미는 짐 정리에 한창이었다.윤이는 임유진을 보더니 신이 나서 뛰어가 안겼다. 그러고는 여름이 지나가면 이제는 유치원도 다닐 수 있다며 즐거워했다.“유치원 찾았어요?”임유진이 탁유미에게 물었다.“네, 찾았어요. 그쪽 원장님 한 분이 윤이 상황을 듣고 영상통화로 얘기까지 나눠 보더니 받아주겠대요.”최근 들어 가장 좋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그럼 G 시로 언제 갈 건지는 정했어요?”“보름 뒤에요. 이삿짐센터에 연락해 보고 구체적인 날짜가 정해지면 알려줄게요.”임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윤이는 G 시로 이사한다는 말을 듣자마자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귀가 축 늘어진 강아지가 보이는 듯했다.“그러면 앞으로 이모 못 보는 거예요? 나는 이모 많이 보고 싶을 것 같은데, 이모는요?”임유진은 아이의 볼에 뽀뽀를 해주며 말했다.“이모도 당연히 윤이가 많이 보고 싶을 거야. 직접 볼 수는 없겠지만 영상통화로 우리는 또 만날 수 있어. 그리고 이모가 시간이 될 때 윤이 찾으러 가면 되지! 그때 또 놀이공원 가자.”놀이공원이라는 말에 아이의 표정이 금세 밝아졌다.“그러면 그때 동현이 아저씨도 같이 가는 거예요?”곽동현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임유진이 뜸을 들이며 난감한
“네, 아저씨가 나 목마도 태워주고 나랑 같이 게임도 해줘서 정말 좋아요.”아이는 손가락을 접어가며 그와 같이 한 어떤 순간이 가장 좋았는지 얘기했다. 들어보니 대부분이 남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어트랙션에 부자가 같이할 수 있는 게임들이 많았다.탹유미는 아이의 말을 들으면서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아버지라는 자리를 메꾸려고 아무리 노력해 봐도 윤이의 마음속 아버지의 자리를 대체할 수는 없었다.매번 아버지 손을 꼭 잡고 가는 친구들을 윤이가 얼마나 부러운 눈으로 보고 있는지 모르는 게 아니다.하지만 이경빈은... 좋은 아버지가 아니다. 그에게 윤이는 태어나지 말아야 할 존재일지도 모른다.임유진은 탁유미의 기분을 알아채고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그렇게 한참을 더 얘기 나누다 떠날 때쯤 임유진이 탁유미에게 물었다.“상처는 좀 어때요?”“이제 괜찮아요. 움직여도 아무 문제 없어요.”탁유미가 걱정하지 말라며 웃었다.“이경빈 씨는 그 뒤로 언니 찾아온 적 있어요?”임유진의 말에 탁유미가 고개를 저었다. 그날 이경빈의 앞에서 자해한 후 그는 더 이상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도움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해요. 내가 도울 수 있는 게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짊어지는 것보다 한 명이라도 같이 짊어지는 게 낫잖아요”“고마워요. 그보다 유진 씨는 요즘 어때요? 아까 윤이가 얘기한 그 아저씨라는 사람과는...”임유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그냥 친구예요. 음, 친구라도 얘기하는 것도 좀 그런가... 이전 직장에서 친했던 동료예요.”“그 사람 유진 씨 좋아하는 거 아니에요?”그게 아니라면 굳이 놀이공원까지 갈 이유가 없다. 그것도 아이를 데리고 말이다.“언니, 나는 지금 누구를 알아가고 연애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지금은 그게 사치 같아서요.”이번 생에 평생을 같이할 사람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버렸다.어릴 적 꿈꿔왔던 로망이 거듭되는 현실로 부서지기 시작할 때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초연한 얼굴의 그녀를 보며 탁유미도 더
그는 배여진이 드레스를 쥐고 있는 걸 보더니 화를 내며 말했다.“누가 너더러 그거 들고 있으래? 당장 내려놔!”갑자기 들리는 차가운 목소리에 배여진이 깜짝 놀랐다.“이... 이 드레스 나 주려고 했던 거 아니에요?”그녀의 말에 강현수가 멈칫하더니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그녀를 주려던 옷이 맞긴 하지만 또 아니다...이 드레스는 그 언젠가 자신을 구해준 소녀를 찾으면 선물로 주려던 것이었다. 예쁜 보라색 치마를 꼭 사주겠다고 약속했으니까.하지만 막상 그 소녀를 찾아내 그게 배여진이라는 걸 알게 됐을 때는 이상하게도 어릴 적 그녀와 배여진을 동일시할 수 없었다.그렇게 찾아 헤맨 여잔데 반갑고 설레는 느낌은 없었고 낯설기만 했다.“드레스가 갖고 싶은 거면 다음에 하나 사줄게.”강현수는 그녀의 손에서 드레스를 빼앗아 들었다.배여진의 얼굴은 삽시에 굳었다가 다시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네, 고마워요. 그런데 오늘 현수 씨 카드로 돈을 좀 찾았는데 괜찮죠...?”“너 쓰라고 준 거니까 마음대로 해.”강현수가 담담하게 얘기했다.“사실 아직 쓰지는 않았어요. 유진이가 강지혁 씨랑 헤어졌다고 해서 도움을 주려고 했는데...”배여진은 서러운 사람처럼 입술을 깨물었다.“유진이한테는 적은 돈이었나 봐요. 안 받더라고요.”“그랬어?”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 배여진은 조금 뜨끔했다.“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해도 가요. 출소하고 강지혁 씨를 만나면서 허영심이 많이 들었을 거예요. 이러다 돈 많은 남자에게 접근해 팔자 피려다가 도리어 사기라도 당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어요...”배여진의 목적은 강현수에게 임유진은 허영심이 많고 사치스러운 여자라는 걸 각인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앞으로 임유진이 혹시나 그에게 무슨 말을 하러 와도 강지혁과 사귀었을 때의 생활을 못 잊어 일부러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게 될 테니까.임유진의 기억이 돌아온 이상 하루빨리 강현수가 임유진의 말을 믿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그렇게 있는 말 없는 말 지어내는데 강현수의
“대체 어딘데 그래?”임유진도 괜히 호기심이 일었다.“이따 가보면 알게 될 거야.”한지영은 마치 느끼한 아저씨처럼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그렇게 한지영을 따라 ‘좋은 곳’에 도착해 보니 거기는 크게 다를 것 없는 클럽이었다.클럽 안에는 온통 20대 초반의 젊은이들뿐이었고 언뜻언뜻 10대 후반의 아이들도 보였다.그리고 그 가운데를 비집고 들어가니 급격한 세대 차이가 느껴졌다.“여기가 뭐가 그렇게 좋다고 온 거야?”임유진이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응? 아아, 이따 보면 알게 될 거야.”한지영은 뭔가를 기다리는 듯 스테이지 쪽을 두리번거렸다.그러다 8시가 되니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고 여성들의 환호 소리와 함께 남자 다섯 명이 스테이지에 올라왔다.잘생긴 얼굴들인 건 맞지만 딱히 특별할 건 없어 보였다.한지영은 어느새 두 눈을 반짝이며 임유진의 팔을 툭툭 쳤다.“왔어, 왔어. 드디어 왔다고!”“저 사람들 보러 온 거야?”“응! 얘네 지금 언더에서 인기가 거의 아이돌급이야. 잘생겨, 몸도 좋아, 노래도 잘해, 게다가 춤까지 잘 춰!”한지영은 잔뜩 흥분해서 남자들의 프로필을 쭉 읊었다.임유진은 잘생긴 남자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그녀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연신 씨는 너 여기 오는 거 알아?”“당연히 모르지.”한지영은 눈을 남자들에게 고정한 채 대답했다.“그리고 나는 단순히 감상하는 것뿐이야. 좋아하는 사람은 당연히 연신 씨지.”그 말에 임유진이 놀란 얼굴을 했다.“너 연신 씨 좋아해?”“응?”한지영은 그제야 아차 한 표정을 짓더니 조금 민망한 얼굴로 말했다.“그게... 얼마 전에 연신 씨랑 사귀기로 했어. 사귀는 척하는 게 아니라 진짜로.”원래는 임유진이 강지혁과 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시간이 조금 더 지나고 적당한 시기에 얘기해 주려고 했는데 아까 너무 흥분한 나머지 그만 말이 뇌를 걸치지 않고 나와버렸다.임유진은 그 마음을 알아챈 듯 한지영의 어깨를 토닥이며 웃었다.“잘됐네. 진심으로 사귄다고
“무슨 일이야?”강지혁이 물었다.“그게... 임유진 씨 관련해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유진이?”강지혁은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유진이가 왜?”“오늘 한지영 씨가 임유진 씨를 찾아와 클럽으로 데리고 가셨습니다.”“클럽? 그래서? 거기서 누구랑 싸웠대?”장소가 클럽이라는 것이 상당히 거슬렸다.하지만 만약 거기서 싸움이 일어났다고 해도 자신이 붙여둔 경호원이 있었기에 임유진은 안전할 것이다. 고작 그 정도 경호도 못 하면 경호원 실격이니까.“싸움은 아니고요, 그 클럽에는 KING이라는 퍼포먼스 팀이 있어요.”“KING?”강지혁이 눈썹을 치켜세웠다.“요즘 언더그라운드에서 아이돌급으로 인기가 많은 팀이 있는데 그 팀의 퍼포먼스가... 젊은 여성들에게 그렇게 인기가 많다고 합니다.”고이준의 목소리는 점점 더 기어들어 갔다.“계속해 봐.”“5명의 남자가 스테이지 위에서 춤을 추고, 그중에는 옷을 벗는 퍼포먼스도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때 여성들의 환호가 압도적으로 많이 쏟아지고요...”고이준은 아까부터 강지혁의 눈치만 보고 있다.방금 옷을 벗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강지혁의 얼굴은 무섭게 일그러졌다.서재에는 싸늘한 공기가 감돌았다.그때 강지혁이 몸을 벌떡 일으키더니 고이준을 향해 물었다.“그래서 그 클럽이 어디라고?”‘설마 직접 가시려는 건가?!’고이준은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한편, 클럽 안에서는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었다.임유진과 한지영의 테이블에는 술병이 잔뜩 쌓여 있었고 두 사람은 지금 술을 마시면서 퍼포먼스를 보고 있었다.주위에는 온통 여자들의 환호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게다가 언더그라운드 팀이라 해도 인기가 많아서 그런지 응원봉도 있었고 지금은 단순 클럽이 아니라 마치 콘서트장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한지영이 말한 대로 확실히 스트레스가 풀리는 공간이다. 이곳에 있으면 현실 속 고민을 잠시 잊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임유진이 분위기에 취해 술을 한 모금 들이켜자 마침 음악이 바뀌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들리는 시끄러운 음악 소리와 여성들의 환호 소리에 강지혁은 인상을 찌푸렸다.고이준은 강지혁의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제가 들어가서 임유진 씨를 데리고 나올까요?”“내가 가.”강지혁이 싸늘하게 답했다.그때 은색 포르쉐 한 대가 또 클럽 입구에 멈춰서더니 잘 빠진 기럭지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그 남자는 강지혁을 보더니 조금 멈칫했고 강지혁도 그 남자를 보고는 마찬가지로 자리에 멈춰 섰다.두 남자는 설마 상대방을 이런 곳에서 볼 줄은 몰랐다는 얼굴로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고이준은 그 옆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이 광경에 어쩐지 웃음이 나기도 했다.“한지영 씨 찾으러 왔나 보죠?”강지혁이 먼저 말을 걸었다.“그러면 강지혁 씨는 임유진 씨 찾으러 온 건가요...?”백연신이 조금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각자 찾으러 온 사람 데리고 가는 거로 하죠.”강지혁의 말에 백연신은 그가 임유진을 찾으러 온 게 맞다는 확신이 들었다.백연신이 이곳으로 온 건 한지영이 인스타에 올린 한 장의 사진 때문이다. 술에 취한 건지 위치까지 태그한 덕에 헤매지 않고 바로 이곳으로 올 수 있었다.오늘 급히 마무리 지어야 하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데이트는 못 한다고 했던 여자가 지금 클럽에서 잘생긴 남자들을 보며 침을 흘리고 있다!아까 사진과 함께 올린 말도 가관이었다.[다섯 명 다 내 스타일이야! 오빠 날 가져~!]그걸 봤을 때 이가 갈린다는 게 어떤 건지 처음 느끼게 되었다.‘다섯 명이 다 자기 스타일이라고? 자기를 가지라고?! 언제는 나만 좋다더니!’이곳으로 오는 길, 이 거짓말쟁이 여자친구를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서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게다가 혼자 몰래 간 줄 알았는데 물귀신처럼 임유진까지 데리고 갔다.물론 가장 의외였던 건 이곳에서 강지혁을 마주친 것이다.“각자요?”백연신이 가볍게 웃었다.“두 사람, 헤어진 거 아니었습니까?”그의 말에 강지혁의 표정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