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을 사랑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떤 일은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그러니까 이번 생에서 누나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강지혁은 말을 마치고 천천히 그녀에게 키스했다. 부드럽게 감싸오는 그의 입술에 그녀는 반항할 의지조차 없었다.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 정말 가능한 걸까?...강지혁과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애는 임유진이 전에 상상도 못 해본 일이지만 불편하거나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셋방에서 그와 지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좋기도 했다. 그리고 마치 ‘혁이’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강지혁에 임유진은 그의 앞에서는 자신의 마음의 짐과 아픔, 상처 이 모든 것들을 다 꺼내 보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탁유미의 통화 소리에 임유진이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침착한 얼굴이던 탁유미였는데 지금은 무슨 일인지 잔뜩 흥분해서는 눈가도 약간 촉촉해진 것 같았다."언니, 무슨 일이에요?"임유진이 묻자 탁유미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이번에 병원에서 가정환경이 어려운 청각장애 아이들을 대상으로 헬프 플랜이라는 걸 기획했대요. 그래서 방금 전화 왔는데 우리 윤이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공와우 전문 의사 선생님은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전에는 예약도 매번 실패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헬프 플랜에서 그 전문가 선생님이 우리 윤이를 봐준대요. 또 윤이가 면제조건에 해당이 되면 저렴한 인공와우를 제일 좋은 거로 바꿔줄 수도 있고요!"탁유미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좋은 일이 자신에게 차려질 줄은 몰랐으니까.임유진은 그 말을 듣고 단번에 강지혁이 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탁유미의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임유진은 윤이는 앞으로 더 좋은 치료를 받게 될 거고 꼭 선천적인 아픔을 이겨내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
강지혁은 빨갛게 달아오른 임유진의 얼굴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맞다. 누나 토요일 오후는 휴식이라고 했지?""응, 왜?"임유진이 대답했다."그럼 토요일 오후 누나 건강검진 받으러 갈 거니까 시간 비워 둬.""건강검진?"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건강검진 안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토요일에 한 번 받으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1년에 한 번씩 계속 받게 될 거야."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로펌에서 근무할 때는 건강검진을 1년에 한 번은 꼭 받았었는데 감옥에 들어간 이후로는 거의 4년 동안 받은 적이 없으니 지금쯤 한 번 받아보는 것도 좋았다.저녁, 임유진이 막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눕자 강지혁이 다가와서는 그녀와 같이 자겠다고 했다. 그에 놀란 임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여, 여기서 같이?""뭐, 문제 있어? 셋방에서 살았을 때는 한 침대에서 잘만 잤었잖아."강지혁은 전혀 문제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같냐고?!’그때의 임유진은 그저 그를 귀여운 동생 정도로만 생각했었고 지금은 동생이 아니라 남자친구잖아!임유진은 볼을 살짝 물들이며 강지혁에게 말했다."나는... 혼자 자는 게 편해.""거짓말. 그때는 내가 옆에 있어 주면 안심되고 좋다며?"임유진의 거짓말은 단번에 들켰고 그녀는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말은 내뱉은 자신의 입을 닫아버리고 싶었다.임유진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또다시 핑계를 댔다."우리... 우리 지금 사귄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역시..."그 말에 강지혁이 못 참고 웃음을 터트렸다."걱정하지마 아무 짓도 안 할 거니까."강지혁은 몸을 숙이고는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댔다. 그에 임유진의 얼굴은 곧 터질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고 목구멍에 뭐가 막힌 듯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강지혁은 손끝으로 천천히 그녀의 볼을 매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임유진은 끝내 거절하지 못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강지혁과 같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짧게 내쉬며 전에도 같이 잔 적이 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강지혁이 옆에 누워있다는 게 의식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고 그녀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에는 아무 화제나 던졌다."그런데 너는 왜 계속 누나라고 부르는 거야?""이렇게 부르는 게 싫어?"강지혁의 반문에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그건 아닌데, 뭐랄까... 음, 연인 사이에 이렇게 부르는 게 좀 이상해."‘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진짜 내가 누나인 줄 알 거 아니야...’하지만 어느샌가 그녀도 이 호칭이 익숙해진 듯 보였다. 강지혁이 처음부터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으니까."그럼, 사람들 앞에서는 유진이라고 부를까? 둘이 있을 때만 누나라고 부를게."누나라는 호칭을 버리지 않으려는 강지혁에 임유진이 말했다."너 누나라고 하는 거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응 맞아."강지혁이 순순히 인정했다."처음이었거든, 누나라고 부르라고 한 사람이."임유진이 강지혁 쪽을 바라보았다."누나라고 부르면 우리가 절대 끊을 수 없는 견고한 무언가에 의해 연결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임유진은 대체 그가 말하는 견고한 무언가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지혁은 그 이상을 설명할 생각은 없었는지 대화를 끝내려고 했다."이제 자."임유진은 알겠다고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는 침대 옆에 켜진 작은 스탠드 불빛을 끌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강지혁은 스탠드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셋방에서 살았을 때도 임유진은 불을 켜야만 잠이 들었고 불이 꺼지면 안 좋은 기억들이 되살아나 무섭다고 했었다.강지혁도 그 안 좋은 기억들이 감옥에서 지내면서 겪었던 일들이라는 걸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하지만 한동안 임유진도 불을 끄고도 잘 수 있었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혁이 네가 옆에 있으니까 무서운 것도 사라졌어’ 라고 대답했었다.
간밤에 임유진은 강지혁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눈을 감은 뒤로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강지혁이 있어서 안심하고 잘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다음 날, 임유진이 일어나보니 강지혁이 흰 셔츠에 손목 단추를 채우며 그녀에게 다가왔다."깼어?""응."임유진은 자신이 아직 씻지도 않는 얼굴에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다는 걸 인지했는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잘 잤어? 난 되게 잘 잤는데."강지혁은 몸을 숙여 양손으로 침대를 짚으며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갔다.공중에서 시선이 얽히자 임유진은 어쩔 줄을 몰라 몸을 뒤로하며 둘 사이의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강지혁이 그녀의 허리를 잡아 다시 앞으로 끌고 왔고 인제 두 사람의 거리는 더 가까이 좁혀졌다."잘 못 잤어?"강지혁은 그녀의 대답을 요구했다."아, 아니."임유진은 버벅대며 대답했다."그럼 됐어."강지혁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의 볼에 뽀뽀하고 말했다."씻고 아침 먹게 내려와.""응."임유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욕실로 들어가 씻은 후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강지혁은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는지 수저에 손도 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강씨 저택 아침은 한식뿐만 아니라 양식도 있었다."뭐 먹을래?"강지혁이 물었다."나는 호박죽."임유진의 말에 사용인이 호박죽과 샌드위치를 그녀의 앞에 대령했다.임유진은 밥을 먹다 잠깐 고개를 들었고 마침 강지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왜?""그냥,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강지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입가에 묻은 호박죽을 쓱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손을 다시 가져가 손가락에 묻은 호박죽을 자신의 입안에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진의 얼굴이 또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고는 요즘 따라 얼굴이 붉어지는 빈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남자의 이러한 행동이 이렇게까지 야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처
이제는 또 다른 남자가 자신에게 넥타이를 매달라고 한다. 이 남자와는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두 사람의 마음이 같다고 해도, 강지혁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자신의 몸을 개의치 않아 해도 임유진은 두 사람 사이의 미래가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아니,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두 사람은 다른 세계 사람이었고 지금은 서로 연인이라고 해도 과연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왜 그래?"강지혁의 말이 그녀를 잡념에서 끄집어냈다."아니야. 좀... 숙여 봐."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은 순순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임유진은 먼저 셔츠의 카라를 세운 후 넥타이를 그의 목에 두르고 매기 시작했다."그거 알아? 나 지금 내 목숨줄을 누나한테 쥐여준 거."강지혁의 낮은 목소리가 임유진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고 그녀는 손을 멈추며 강지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내 목숨을 원한다면 누나는 지금 손에 든 넥타이를 꽉 조이면 돼."강지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내 넥타이를 맬 수 있는 여자는 평생 누나밖에 없어."임유진은 가게로 출근을 해서도 아까 강지혁이 지었던 미소와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자신의 넥타이를 맬 수 있는 여자는 평생 임유진밖에 없다는 말이 진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강지혁은 그녀에게 진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래를 상상조차 못 하는 임유진과 달리 강지혁은 두 사람의 미래를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오후 1시, 가게에 주문이 하나 들어왔는데 20인분이라는 큰 주문이었다. 근처는 아니었고 갔다 왔다 하면 대충 40분 정도가 소요됐다.임유진이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거기는 촬영 현장이었고 20인분은 여기 있는 스태프들이 주문한 듯 보였다. 그리고 마침 촬영팀도 휴식시간이었는지 여기저기서 식사하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 스태프는 적당한 곳에 앉아 밥을 먹었고 배우들은 따로 휴식룸에 들어가 식사했다.임유진이 배달음식을 내려놓고 막 촬영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이 이어서 하는 말이 그녀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저희도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진 않으니까 이 20인분의 음식값은 다시 환불해 주시고 추가로 100만 원을 배상해 주세요. 지금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나머지 도시락에도 벌레가 들어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안 그래요?"그때 자리에 앉아 있던 몇 명이 일어서더니 임유진을 둘러쌌고 그들은 그녀를 머릿수로 압박하려는 듯 보였다.임유진은 빠르게 주위를 스캔했다. 이곳은 제작팀이 촬영을 위해 빌린 반은 뚫려있는 작은 카페였다. 임유진이 서 있는 왼쪽에 CCTV가 있긴 했지만 촬영하는 날까지 켜져 있는지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다.그리고 카페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는 팬들을 제지하려고 만들어둔 펜스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바닥에 앉아 휴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의 연예인이 나오는 순간을 캐치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이렇게 하죠. 이런 건 일개 배달원인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요. 제가 사장님에게 연락해 볼게요."임유진은 탁유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탁유미는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녀에게 말했다."알겠어요. 유진 씨는 일단 돌아오세요. 그쪽에서 내민 요구는 오늘 영업을 마치고 내가 다시 얘기해볼게요."임유진은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게 아니라서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탁유미가 어떤 말을 했는지 들을 수가 없었다."네, 알겠습니다."임유진은 전화를 끊은 후 그들 몰래 핸드폰 녹음 버튼을 켜두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들 쪽을 바라보았다."뭐래요? 돈은 언제쯤 줄 수 있대요?"주동자로 보이는 사람이 물었다. 그러자 임유진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100만 원이면 소액사기를 넘어선 건 아시죠? 재판까지 가면 3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될 수도 있어요."그러자 임유진을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돌변했다."뭐? 내가 지금 사기를 치고 있다는 말이야?""맞는지 아닌지는 증거가 설명해주겠죠. 저기 보이
임유진은 탁유미가 어렵게 차린 이 가게를 이런 사람들이 망치게 두고 싶지 않았다. 또한, 그녀의 몸속 뿌리 깊이 박혀있는 ‘정의감’이 이런 상황을 그냥 지나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애초에 변호사가 된 것도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였으니까.그 말에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이 주위를 둘러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그렇게 일단락된 듯하여 임유진이 그만 자리를 뜨려고 할 때, 갑자기 그중 한 사람이 그녀의 팔을 거세게 잡아당겼고 그로 인해 그녀의 손에 들린 핸드폰이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그때 누군가가 임유진 핸드폰 화면을 보고 말았고 임유진은 녹음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켜버렸다."형님, 이 여자 녹음하고 있었어요!""와, 이 미친X이 우리 몰래 이런 수작질을 하고 있었어?"그중 한 명이 화가 잔뜩 났는지 욕을 해대며 임유진에게 손을 올리려고 했다. 그 남자는 이곳이 다 뚫려있는 곳이고 주위에는 연예인과 그의 팬들이 있다는 걸 까먹은 듯했다.임유진은 눈을 꽉 감은 채 가드를 올려 남자의 공격을 방어하려고 했다. 그때 주위 사람들의 감탄사가 흘러나왔다.임유진이 기다렸던 공격은 들어오지 않았고 대신 한 손이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아 그녀를 조금은 차가운 듯한 품속으로 데려갔다.임유진이 눈을 떠보니 거기에는 한 남자의 잘생긴 얼굴이 있었고 항상 담담했던 그의 얼굴에 지금은 일말의 분노가 서려 있었다."이게 뭐 하는 짓이지?"강현수는 한 손으로 임유진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를 때리려고 했던 남자의 손목을 잡았다. 그의 목소리는 한기를 내뿜고 있었다.임유진을 때리려고 했던 남자는 손목이 끊어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런 고통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눈앞에 있는 강현수라는 남자였다.연예계의 황태자!‘설마... 이 여자 배달원의 편을 들려는 건가?’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나머지 사람들은 얼른 강현수의 옆으로 다가가서 다급하게 해명했다."이 여자가 배달한 음식에 벌레가 있었어요. 그런데 말하다 보니까 감정이
"어떻게 된 일이에요?"강현수는 아까 다른 사람이 얘기했음에도 임유진 말만 믿겠다는 듯이 다정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오늘 이곳에 도시락 배달을 하러 왔어요. 그런데 음식에서 벌레가 나왔다면서 오늘 밥값을 전부 환불해 달라고, 거기에 더해 100만 원까지 배상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일은 경찰에 맡기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아까 몰래 녹음하고 있는 걸 들켜서 이런 사태에 이르게 됐어요."임유진은 침착하게 상황을 서술했다."녹음이요? 괜찮다면 저도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일당은 강현수가 녹음 내용을 듣겠다고 하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스태프 중 몇 명이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일부러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얼굴을 무섭게 굳혔다.강현수 뒤에 있던 감독들도 대충 어떤 상황인지 깨닫고 하나같이 난감한 얼굴을 했다. 만약 이 사실이 인터넷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욕을 먹게 되는 건 전체 제작팀이었다. 감독들은 일단 말썽을 일으킨 장본인들을 이따가 처리하기로 하고 지금은 임유진에게 사과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아가씨, 이건 전적으로 저희 제작팀 실수입니다. 아무리 임시 아르바이트생이라고 해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저희가 제대로 관리했어야 했는데. 제가 제작팀 전체를 대표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원하시면 피해보상도 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아니요. 피해보상은 됐습니다. 다만 혹시나 저 사람들이 앙심을 품고 저희 가게에 보복하는 일은 없게 해주셨으면 좋겠네요."임유진은 사건을 괜히 공론화 해봤자 윤이 식당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하여 이렇게 사건을 마무리하는 것이 서로에게 제일 좋은 선택이었다."그럼요. 당연히 그래야죠!"감독들은 임유진에게 약속하고 이렇게 처리하는 것이 마음에 드나 싶어 강현수의 눈치를 봤다.임유진은 드디어 사건이 해결되자 이곳을 떠나려고 몸을 돌렸다. 너무 오랜 시간을 이곳에 소비했고 지금쯤이면 가게에 그녀가 배달해야 할 주문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