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줄곧 마음속에 있던 어두운 장막이 걷힌 것처럼 좋아했다. 강지혁이 자신을 믿는다는 소리에 이렇게나 기뻐하게 될 줄 몰랐다.강지혁은 그런 임유진을 뚫어지게 쳐다보다 말했다."단, 누나도 나를 믿어줘. 내가 누나를 조금만 더 일찍 만났더라면, 누나를 이렇게나 사랑하게 될 줄 알았더라면 난 절대 누나가 그런 고통을 받게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을 거라고."그의 말에 임유진은 눈을 깜빡였다. 강지혁은 지금 그녀가 도움 하나 받지 못하게 주변에 압박을 넣어 그녀를 감방에 보내버린 일을 말하는 것일까?"응."임유진은 가볍게 대답했다. 과거에 두 사람 사이가 어떻든 강지혁과 잘 지내보려고 결심을 한 이상 그를 향한 공포감과 두려움, 그리고 미움까지도 서서히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했다.식사를 끝마친 후 임유진은 뭔가 떠오른 듯 강지혁을 향해 물었다."너 혹시 인공와우 전문가 중에 아는 사람 있어?""그건 왜?"강지혁이 뜬금없는 임유진의 말에 되물었다."그게 언니 아들인 윤이가 이제 조금만 있으면 인공와우를 착용하게 될지도 모르거든. 그래서 미리 그쪽 전문가를 알아두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그리고... 언니의 수중에 있는 돈으로는 현재 제일 저렴한 모델밖에 구할 수가 없어. 그래서 혹시 가능하면 윤이에게 조금만 더 좋은 모델로 바꿔줄 수 있을까 해서."임유진은 조금은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가 인터넷에서 알아본 바로는 인공와우 좋은 모델과 제일 저렴한 모델의 가격 차이가 꽤 컸다. 그리고 탁유미가 생각하는 가격에 따르면 아마 윤이에게는 일단 한쪽만 착용하게 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왕이면 두 개를 다 착용하는 것이 효과도 더 좋을 것이다."누나가 다른 사람 때문에 나한테 부탁을 다 하네. 자기 일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으면서."강지혁이 웃으며 말했다."윤이한테는 나조차도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신경을 많이 쓰게 돼. 윤이가 지금은 소리 내 말을 못 하지만 인공와우만 착용하게 되면 윤이도 평범한 아이들처럼 자랄 수 있을
강지혁은 강씨 가문을 이어갈 사람이고 앞으로 그의 자식이 그의 뒤를 잇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임유진이 어떻게 자신 하나 때문에 강지혁에게 대를 끊으란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그녀는 이제 이런 중요한 일도 까먹고 덥석 그와 사귀겠다는 말을 한 자신이 후회스러웠다.이런 사이를 얼마나 더 지속할 수 있을까?심지어 그녀가 변호사로 있었을 때 처리했던 사건을 보면 부잣집일수록 자식을 향한 집착이 더 컸었다."그게 무슨 말이야?"강지혁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묻자 임유진이 자신의 배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때... 자... 자궁 쪽을 심하게 맞게 된 적이 있었어. 다행히 빨리 병원에 이송이 됐는데 의사 선생님이 그러더라고. 다친 곳이 심하게 손상을 입어서 앞으로 임신은 어려울 거라고..."이건 임유진이 절대 말하고 싶지 않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그런 일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그것도 강지혁 앞에서 그녀는 이 말을 입에 올렸다.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갔다.심하게 맞았다고? 누가 때렸는데? 언제? 설마 감옥에 있었을 때? 그럼 그때 대체 얼마나 아팠다는 거야?!임유진이 겪었던 고통 하나하나가 강지혁을 무겁게 짓눌렀고 그를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의 모든 고통이 현재 고스란히 강지혁의 후회로 바뀌고 있었다.만약 그때 당시 강지혁이 임유진에게 조금이라도 자비를 베풀었더라면 그녀가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다뤄지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혹시... 혹시 지금이라도 헤어지고 싶은 거면, 나는..."강지혁은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열었다."내가 말했지. 헤어질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말라고."강지혁은 말이 끝나자마자 임유진의 허리를 감싸 안아 그녀를 자신의 품에 끌어안았다."아!"임유진이 깜짝 놀라 고개를 들자 강지혁의 칠흑 같은 어두운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내가 원하는 사람은 누나뿐이고, 제일 사랑하는 사람도 누나뿐이야. 아이를 가질 수 없다 해도 상관없어. 난 누나를 놓치지
임유진을 사랑하고 나서 깨달은 것이 있다면 어떤 일은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임유진은 강지혁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뚫어지게 쳐다보며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그러니까 이번 생에서 누나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은 나뿐이야."강지혁은 말을 마치고 천천히 그녀에게 키스했다. 부드럽게 감싸오는 그의 입술에 그녀는 반항할 의지조차 없었다.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 정말 가능한 걸까?...강지혁과의 진정한 의미에서의 연애는 임유진이 전에 상상도 못 해본 일이지만 불편하거나 싫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은 셋방에서 그와 지냈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 들어 좋기도 했다. 그리고 마치 ‘혁이’때로 돌아간 것만 같은 강지혁에 임유진은 그의 앞에서는 자신의 마음의 짐과 아픔, 상처 이 모든 것들을 다 꺼내 보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정말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탁유미의 통화 소리에 임유진이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침착한 얼굴이던 탁유미였는데 지금은 무슨 일인지 잔뜩 흥분해서는 눈가도 약간 촉촉해진 것 같았다."언니, 무슨 일이에요?"임유진이 묻자 탁유미가 그녀의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다."이번에 병원에서 가정환경이 어려운 청각장애 아이들을 대상으로 헬프 플랜이라는 걸 기획했대요. 그래서 방금 전화 왔는데 우리 윤이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거예요! 그리고 인공와우 전문 의사 선생님은 꼭 한 번 만나 뵙고 싶었는데 전에는 예약도 매번 실패했거든요. 그런데 이번 헬프 플랜에서 그 전문가 선생님이 우리 윤이를 봐준대요. 또 윤이가 면제조건에 해당이 되면 저렴한 인공와우를 제일 좋은 거로 바꿔줄 수도 있고요!"탁유미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좋은 일이 자신에게 차려질 줄은 몰랐으니까.임유진은 그 말을 듣고 단번에 강지혁이 한 일이라는 걸 알았다.탁유미의 즐거워 보이는 모습에 임유진은 윤이는 앞으로 더 좋은 치료를 받게 될 거고 꼭 선천적인 아픔을 이겨내고 잘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
강지혁은 빨갛게 달아오른 임유진의 얼굴을 보며 재밌다는 듯 웃었다."맞다. 누나 토요일 오후는 휴식이라고 했지?""응, 왜?"임유진이 대답했다."그럼 토요일 오후 누나 건강검진 받으러 갈 거니까 시간 비워 둬.""건강검진?"강지혁의 말에 임유진은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건강검진 안 받은 지 몇 년 되지 않았어? 그러니까 토요일에 한 번 받으라고. 그리고 앞으로는 1년에 한 번씩 계속 받게 될 거야."임유진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로펌에서 근무할 때는 건강검진을 1년에 한 번은 꼭 받았었는데 감옥에 들어간 이후로는 거의 4년 동안 받은 적이 없으니 지금쯤 한 번 받아보는 것도 좋았다.저녁, 임유진이 막 잠자리에 들려고 침대에 눕자 강지혁이 다가와서는 그녀와 같이 자겠다고 했다. 그에 놀란 임유진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물었다."여, 여기서 같이?""뭐, 문제 있어? 셋방에서 살았을 때는 한 침대에서 잘만 잤었잖아."강지혁은 전혀 문제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같냐고?!’그때의 임유진은 그저 그를 귀여운 동생 정도로만 생각했었고 지금은 동생이 아니라 남자친구잖아!임유진은 볼을 살짝 물들이며 강지혁에게 말했다."나는... 혼자 자는 게 편해.""거짓말. 그때는 내가 옆에 있어 주면 안심되고 좋다며?"임유진의 거짓말은 단번에 들켰고 그녀는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말은 내뱉은 자신의 입을 닫아버리고 싶었다.임유진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또다시 핑계를 댔다."우리... 우리 지금 사귄 지도 얼마 안 됐고, 그러니까... 그러니까 역시..."그 말에 강지혁이 못 참고 웃음을 터트렸다."걱정하지마 아무 짓도 안 할 거니까."강지혁은 몸을 숙이고는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자신의 얼굴을 갖다 댔다. 그에 임유진의 얼굴은 곧 터질 것처럼 빨갛게 달아올랐고 목구멍에 뭐가 막힌 듯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강지혁은 손끝으로 천천히 그녀의 볼을 매만지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임유진은 끝내 거절하지 못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강지혁과 같은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한숨을 짧게 내쉬며 전에도 같이 잔 적이 있는데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머릿속으로 되뇌었다. 하지만 강지혁이 옆에 누워있다는 게 의식이 되지 않을 리가 없었고 그녀는 한참을 뒤척이다가 결국에는 아무 화제나 던졌다."그런데 너는 왜 계속 누나라고 부르는 거야?""이렇게 부르는 게 싫어?"강지혁의 반문에 그녀는 잠깐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그건 아닌데, 뭐랄까... 음, 연인 사이에 이렇게 부르는 게 좀 이상해."‘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진짜 내가 누나인 줄 알 거 아니야...’하지만 어느샌가 그녀도 이 호칭이 익숙해진 듯 보였다. 강지혁이 처음부터 그녀를 ‘누나’라고 불렀으니까."그럼, 사람들 앞에서는 유진이라고 부를까? 둘이 있을 때만 누나라고 부를게."누나라는 호칭을 버리지 않으려는 강지혁에 임유진이 말했다."너 누나라고 하는 거 되게 좋아하는 것 같아.""응 맞아."강지혁이 순순히 인정했다."처음이었거든, 누나라고 부르라고 한 사람이."임유진이 강지혁 쪽을 바라보았다."누나라고 부르면 우리가 절대 끊을 수 없는 견고한 무언가에 의해 연결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임유진은 대체 그가 말하는 견고한 무언가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지혁은 그 이상을 설명할 생각은 없었는지 대화를 끝내려고 했다."이제 자."임유진은 알겠다고 하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녀는 침대 옆에 켜진 작은 스탠드 불빛을 끌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강지혁은 스탠드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셋방에서 살았을 때도 임유진은 불을 켜야만 잠이 들었고 불이 꺼지면 안 좋은 기억들이 되살아나 무섭다고 했었다.강지혁도 그 안 좋은 기억들이 감옥에서 지내면서 겪었던 일들이라는 걸 어렴풋이 눈치챌 수 있었다.하지만 한동안 임유진도 불을 끄고도 잘 수 있었는데 이유를 물었더니 ‘혁이 네가 옆에 있으니까 무서운 것도 사라졌어’ 라고 대답했었다.
간밤에 임유진은 강지혁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그녀는 눈을 감은 뒤로 금방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마치 강지혁이 있어서 안심하고 잘 수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다음 날, 임유진이 일어나보니 강지혁이 흰 셔츠에 손목 단추를 채우며 그녀에게 다가왔다."깼어?""응."임유진은 자신이 아직 씻지도 않는 얼굴에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있다는 걸 인지했는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잘 잤어? 난 되게 잘 잤는데."강지혁은 몸을 숙여 양손으로 침대를 짚으며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다가갔다.공중에서 시선이 얽히자 임유진은 어쩔 줄을 몰라 몸을 뒤로하며 둘 사이의 거리를 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강지혁이 그녀의 허리를 잡아 다시 앞으로 끌고 왔고 인제 두 사람의 거리는 더 가까이 좁혀졌다."잘 못 잤어?"강지혁은 그녀의 대답을 요구했다."아, 아니."임유진은 버벅대며 대답했다."그럼 됐어."강지혁은 너무 자연스럽게 그녀의 볼에 뽀뽀하고 말했다."씻고 아침 먹게 내려와.""응."임유진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고 욕실로 들어가 씻은 후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강지혁은 그녀가 오기만을 기다렸는지 수저에 손도 대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강씨 저택 아침은 한식뿐만 아니라 양식도 있었다."뭐 먹을래?"강지혁이 물었다."나는 호박죽."임유진의 말에 사용인이 호박죽과 샌드위치를 그녀의 앞에 대령했다.임유진은 밥을 먹다 잠깐 고개를 들었고 마침 강지혁과 눈이 마주쳤다. 그는 뚫어지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왜?""그냥, 먹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강지혁은 손을 들어 그녀의 입가에 묻은 호박죽을 쓱 닦아 주었다. 그러고는 손을 다시 가져가 손가락에 묻은 호박죽을 자신의 입안에 가져갔다.그 모습에 임유진의 얼굴이 또다시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고는 요즘 따라 얼굴이 붉어지는 빈도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남자의 이러한 행동이 이렇게까지 야하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도 처
이제는 또 다른 남자가 자신에게 넥타이를 매달라고 한다. 이 남자와는 얼마나 오래 갈 수 있을까?두 사람의 마음이 같다고 해도, 강지혁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자신의 몸을 개의치 않아 해도 임유진은 두 사람 사이의 미래가 머릿속에서 그려지지 않았다. 아니, 감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두 사람은 다른 세계 사람이었고 지금은 서로 연인이라고 해도 과연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왜 그래?"강지혁의 말이 그녀를 잡념에서 끄집어냈다."아니야. 좀... 숙여 봐."임유진의 말에 강지혁은 순순히 허리를 숙이며 그녀의 얼굴 앞에 자신의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임유진은 먼저 셔츠의 카라를 세운 후 넥타이를 그의 목에 두르고 매기 시작했다."그거 알아? 나 지금 내 목숨줄을 누나한테 쥐여준 거."강지혁의 낮은 목소리가 임유진의 귓가에서 울려 퍼졌고 그녀는 손을 멈추며 강지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내 목숨을 원한다면 누나는 지금 손에 든 넥타이를 꽉 조이면 돼."강지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내 넥타이를 맬 수 있는 여자는 평생 누나밖에 없어."임유진은 가게로 출근을 해서도 아까 강지혁이 지었던 미소와 그가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자신의 넥타이를 맬 수 있는 여자는 평생 임유진밖에 없다는 말이 진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강지혁은 그녀에게 진심이라는 것이다. 또한, 미래를 상상조차 못 하는 임유진과 달리 강지혁은 두 사람의 미래를 머릿속에서 그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했다.오후 1시, 가게에 주문이 하나 들어왔는데 20인분이라는 큰 주문이었다. 근처는 아니었고 갔다 왔다 하면 대충 40분 정도가 소요됐다.임유진이 목적지에 도착해보니 거기는 촬영 현장이었고 20인분은 여기 있는 스태프들이 주문한 듯 보였다. 그리고 마침 촬영팀도 휴식시간이었는지 여기저기서 식사하고 있었다. 물론 대다수 스태프는 적당한 곳에 앉아 밥을 먹었고 배우들은 따로 휴식룸에 들어가 식사했다.임유진이 배달음식을 내려놓고 막 촬영
아니나 다를까, 상대방이 이어서 하는 말이 그녀의 추측을 확신으로 바꿔주었다."저희도 일을 크게 키우고 싶진 않으니까 이 20인분의 음식값은 다시 환불해 주시고 추가로 100만 원을 배상해 주세요. 지금 도시락을 먹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나머지 도시락에도 벌레가 들어 있을지 누가 알겠어요. 안 그래요?"그때 자리에 앉아 있던 몇 명이 일어서더니 임유진을 둘러쌌고 그들은 그녀를 머릿수로 압박하려는 듯 보였다.임유진은 빠르게 주위를 스캔했다. 이곳은 제작팀이 촬영을 위해 빌린 반은 뚫려있는 작은 카페였다. 임유진이 서 있는 왼쪽에 CCTV가 있긴 했지만 촬영하는 날까지 켜져 있는지는 불확실한 상황이었다.그리고 카페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에는 팬들을 제지하려고 만들어둔 펜스가 있었는데 거기에는 바닥에 앉아 휴식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고 자신의 연예인이 나오는 순간을 캐치하려고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이렇게 하죠. 이런 건 일개 배달원인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어서요. 제가 사장님에게 연락해 볼게요."임유진은 탁유미에게 전화를 걸어 이 상황을 대충 설명했다. 탁유미는 빨리 상황을 파악하고는 그녀에게 말했다."알겠어요. 유진 씨는 일단 돌아오세요. 그쪽에서 내민 요구는 오늘 영업을 마치고 내가 다시 얘기해볼게요."임유진은 스피커폰으로 통화한 게 아니라서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탁유미가 어떤 말을 했는지 들을 수가 없었다."네, 알겠습니다."임유진은 전화를 끊은 후 그들 몰래 핸드폰 녹음 버튼을 켜두었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그들 쪽을 바라보았다."뭐래요? 돈은 언제쯤 줄 수 있대요?"주동자로 보이는 사람이 물었다. 그러자 임유진이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100만 원이면 소액사기를 넘어선 건 아시죠? 재판까지 가면 3년 이하의 징역을 살게 될 수도 있어요."그러자 임유진을 둘러싼 사람들의 얼굴이 갑자기 돌변했다."뭐? 내가 지금 사기를 치고 있다는 말이야?""맞는지 아닌지는 증거가 설명해주겠죠. 저기 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