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혁은 품속에 있는 그녀를 바라보며 그녀의 목에 기대었다.그는 자연히 그녀가 말하는 냄새를 알게 되었다.오늘 세령 때문에 오랫동안 쓰레기를 뒤졌다. 하지만…….“누나의 몸에서 냄새가 나도 나를 피할 필요 없어.”“하지만…….”유진은 자신의 냄새 때문인지 아니면 지혁의 포옹 때문인지 어색했다.“우리가 서로 의지하는 이상 피할 게 뭐가 있어? 언젠간 내 몸에서 냄새가 나면 누나도 일부러 날 피할 거야?”지혁이 반문했다.그러자 유진은 잠시 침묵한 뒤 한숨을 쉬었다.“알았어. 다음부터 그러지 않을게.”지혁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더니 그제야 유진의 손을 잡고 좁은 임대주택으로 돌아갔다.지혁은 미리 음식을 차렸다. 비록 음식은 이미 식었지만 유진은 아주 맛있게 먹었다.“오늘 무슨 일 있었어?”지혁이 물었다.유진은 망설이다가 그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오늘 일이 사건으로 되었으니 그녀가 말하지 않더라도 지혁은 인터넷에서 알게 될 것이다.그때 지혁은 조용히 유진의 얘기를 듣더니 말했다.“화나지 않아?”유진는 어쩔 수 없는 듯 웃었다.“화날 것도 없어.”“정말 반지를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단지 트집을 잡으려고 한 것이잖아. 아니야? 왜 누나는 화나지 않아?”“화가 나도 소용없어.”유진이 말했다.“너 강지혁이라는 사람을 알아?”그는 흠칫 놀라며 그녀의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바라보았다.“그는 S시의 신이라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잘 보이려고 해.”그녀가 말을 이었다.“감옥살이를 할 때 내가 교통사고를 내서 그의 약혼녀를 죽게 했다고 판결났어.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감옥에서 날 괴롭혔어. 만약 모든 일에 화를 낸다면 난 화병 때문에 죽은지 오래전일 거야. 그러니까 그냥 무시하면 돼.”유진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지만 지혁의 마음은 너무 아팠다.유진의 짧은 한 마디에 지혁는 그녀가 감옥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유진이 말했 듯이 지혁의 비위를 맞추려는 사람이 너무 많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정말
어떤 아픔을 겪어야 이런 이야기를 할 때 이토록 덤덤할까?“앞으로 누가 누나를 다치게 하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지혁은 마치 맹세하는 것처럼 말했다.그러자 유진은 그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말해했다.“자꾸 그런 말을 하지 말고 밥이나 먹어.”유진는 말을 하며 집중하여 음식을 계속 먹었다.한편 지혁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이와 동시에 일이 커졌지만 세령은 회사 쪽에서 이 실검을 내릴 수 없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다. 지금 인터넷에는 그녀가 반지를 잃어버려 환경미화원이 그녀를 도와 쓰레기통을 뒤졌다는 기사가 퍼져 있다.특히 세령이 화려한 옷을 입고 쓰레기 더미 옆에 서 있고 옆에는 허리를 굽혀 쓰레기 더미를 뒤지는 환경미화원이 있는 사진을 넣었다.이런 대비는 즉시 적지 않은 사람들의 불만을 이끌었고 모두들 그녀의 품성에 문제가 있고 갑질을 한다고 질책했다.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런 댓글을 달았다.“본인이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왜 환경미화원이 찾아야 하나요? 환경미화원들은 하루 종일 힘들게 도로 청소를 하는 것도 모자라 반지까지 찾아줘야 해요? 왜 혼자 쓰레기통을 뒤지지 않고?”“스타가 되면 남보다 더 대단해요?”“왜 도시의 자원을 사용하는 거죠? 진세령이 환경미화원의 임금을 주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반지를 찾아주는 거예요?”비록 세령의 팬들이 열심히 그녀의 편을 들지만 이런 부정적인 댓글을 막을 수 없었다. 특히 당시 현장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그들이 수많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렸다.“왜 실검도 막지 못해?”악플이 많아질수록 세령은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었다.“방법이 없어. 어쩐 일인지 대형 잡지사에서 관련된 내용을 내려주지 않아.”그때 매니저가 멈칫하더니 머뭇거리는 듯 말문을 열었다.“세령아, 혹시 너 누구의 미움을 산거야?”“내가 누구의 미움을 사겠어.”S시에서 진 씨 가문의 신분에 게다가 소 씨 가문의 예비 며느리인 진세령이다. 다른 사람이 그녀의 미움을 살까
심지어 적지 않은 팬들은 탈덕하겠다고 하면서 세령을 미워하겠다고 한다.또 일부 세령의 충실한 팬들은 어느 부분에서 잘못된 게 아니냐면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믿기 힘든 것은 세령도 마찬가지이다. 생각지도 못하게 경찰이 수사보고서를 제출했고 그녀는 다른 네티즌들과 동시에 알았다.세령은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설마 몇 년 동안의 그녀의 노력과 커리어가 하루아침에 무너진 것인가?그러나 더 참혹한 것은 뒤에 있다. GH그룹 강지혁의 개인 비서 이준이 소 씨 가문, 진 씨 가문에게 연락하여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세령은 현재의 부정적인 뉴스를 연상할 수밖에 없었다.유진은 경찰의 수사 보고서를 본 후 오히려 좀 놀랐다. 수사 보고서가 이렇게 빨리 나올 줄은 몰랐다. 게다가 소 씨 가문과 진 씨 가문이 이 기사를 내리지 않았으며 오히려 점점 더 심해지는 추세이다.“진세령, 정말 너무 나쁜 사람이네. 그날 그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반지를 찾아달라고 했으면서 결국 잃어버리지도 않은 거잖아.”환경위생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대해 의론이 분분했다.“인터넷에 진세령을 욕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게 당연해.”“하지만 이상해. 톱스타가 왜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우리한테 찾으라고 해?”한 직원이 의문을 제기했다.“심심해서 그런 거겠지.”그때 미옥이 유진에게 물었다.“유진 씨, 그날 진세령이 유진 씨와 아주 오랫동안 얘기를 나눴잖아. 혹시 아는 사이야?”그때 지나가던 방현주가 조롱하는 어투로 말했다.“서미옥, 무슨 농담을 하는 거야. 임유진이 어떻게 진세령과 아는 사이겠어. 진세령은 부잣집 영애잖아.”“하지만 그날 진세령과 유진 씨가 얘기 나누는 걸 봤어.”“설마 임유진이 진세령의 미움을 사 톱스타가 일부러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한 거 아니야?”방현주는 주범을 찾은 것처럼 말했다.“임유진, 너 때문에 우리가 쓰레기통을 뒤진 거네.”동현이 임유진을 좋아하기에 현주는 유진을 겨냥했다. 미옥은 현주가 이
“아빠도 언니 많이 보고싶죠.”세령이 말했다.“그날 임유진을 만났는데 가소롭게도 임유진은 그 어떤 죄책감도 없었어요.”“이제 그만. 그 여자 말을 꺼내지 마.”진기태가 말했다.말하는 사이에 계단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고개를 들자 강지혁이 계단에서 내려오고 있었다.“저 만나러 왔나요? 무슨 일인가요?”지혁이 담담하게 물으면서 두 사람을 힐끗 보았다.지혁의 차가운 눈빛에 세령은 순간 오싹한 기운이 들었다.그 당시 언니는 이 남자를 사랑했다.세령은 아직도 언니 애령이 사랑에 빠진 눈빛으로 말한 것이 기억난다.“세령아, 난 한평생 강지혁 같은 남자를 얻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그는 아주 차갑고 이성적이야. 그를 안아도 그의 온도를 느낄 수 없어. 그는 아주 정교한 도자기 같고 그의 껍데기를 가진다해도 그의 속내는 알 수 없을 거야.”그렇다. 세령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매번 지혁을 만날 때마다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었다.지혁은 준수한 얼굴에 뒤에 GH그룹까지 있기에 이 도시에서 종횡무진할 수 있지만 세령은 단 한 번도 그와 엮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이 남자는 너무 무섭고 차갑다.비록 언니가 그 당시 지혁을 죽도록 사랑해 지혁이 결혼을 승낙했지만 세령은 지혁이 언니를 사랑한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언니의 장례식에서 지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고 심지어 조금의 슬픔도 없었다.“지혁아, 세령이 철이 없어서 이런 영향이 안 좋은 사고를 쳤어. 내가 이미 잘 타일렀으니 세령이와 소민준의 약혼식에 참석했으면 좋겠어. 세령이는 애령의 유일한 동생이야. 애령이도 네가 약혼식에 참석하길 바랄 거야.”진기태는 간절한 표정으로 말했다.지혁은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진기태를 바라보았다. 진기태는 여러 해 동안 백화점을 운영하며 위세를 떨쳤지만 지금은 사위에게 기세가 눌린 채 자신의 생각이 이미 상대에게 들킨 것 같았다.“네. 철이 없긴 했어요. 반지를 잃어버렸다고 거짓말한 거는 말할 것도 없고 그깟 반지
그는 잠시 멈칫하더니 멍을 때리는 두 사람을 힐끗 보았다.“두 번 다시 내 집에 발 들이지 못하게 할 거야.”진 씨 부녀는 갑자기 소름이 끼쳤다.지혁의 이 한마디는 두 사람이 반지를 찾지 못하고 떠난다면 강 씨 가문과 연을 끊어야 한다는 뜻이다.지혁이 곧바로 떠나려 하자 두 부녀는 눈을 마주쳤다.눈앞의 연못은 비록 물이 깊지 않고 그리 크지 않지만 30평의 크기에 심지어 연못바닥이 진흙투성이라 작은 반지를 찾기 쉬울 리가 없다.세령은 곧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아빠, 어떡해요, 설마 정말 내려가서 찾으라고요? 이렇게 추운 날에 나 혼자 어떻게 반지를 찾을 수 있겠어요!”“네가 저지른 일은 너 스스로 해결해. 만약 강 씨 가문이 정말 진 씨 가문과 연을 끊으면 진 씨 가문이 어떻게 될지 네가 잘 알 거야!”진기태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진 씨 가문의 미래와 관련되니 딸이라 하더라도 그는 용서할 수 없다.세령은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는 진 씨네 가문의 여러 사업이 GH그룹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만약 지혁이 정말 등을 돌리면 진 씨 가문에 절대적인 타격이 있을 것이다.세령은 어쩔 수 없이 한 걸음 한 걸음 연못으로 들어가서 그 작은 반지를 찾기 시작했다.세령는 지혁이 유진의 복수를 해준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고 애초에 유진이 얼마나 처참했으면 지금의 그녀는 더더욱 더 처참하다!지혁이 임대주택으로 돌아오자 유진이 빨래를 하고 있었다.유진의 두 손은 차가운 물에 잠겨 이미 빨갛게 얼었다.“왜 뜨거운 물로 씻지 않는 거야?”지혁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뜨거운 물은 끓여야 하고 전기가 많이 들잖아. 게다가 찬물로 좀 씻으면 손도 뜨거워져.”유진은 말을 하며 옷을 헹구더니 물기를 짰다.그녀의 손을 잡아보니 아주 차가웠다.“다음부터 빨래는 뜨거운 물로 해. 전기세는 내가 벌게.”지혁이 말했다.유진는 웃음을 터뜨리더니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살짝 튕겼다.“아낄 수 있으면 아껴야지. 앞으로 돈 쓸 곳이 많아. 참,
유진은 빗으로 지혁의 앞머리를 가볍게 빗은 다음 그의 앞머리를 조금씩 다듬었다. 유진의 표정은 매우 집중되어 있었다. 모든 주의력은 지혁의 앞머리에 집중했고 심지어 앞머리 아래의 깊은 눈동자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다.지혁은 가까이에 있는 유진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추운 날씨로 인해 조금 발그레했고 초롱초롱한 두 눈, 앙증맞은 코, 붉은 입술 그리고 수려한 볼에 눈을 뗄 수 없었다. 조명아래에서 유진은 온몸으로 따뜻한 기운을 발산하고 있는 것 같다.“됐어.”얼마나 지났는지 지혁의 귓가에 갑자기 유진의 목소리가 울렸다.“됐어?”지혁은 유진과 함께 있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흐르는 것 같았다.“응.”유진은 웃으며 두 걸음 뒤로 물러서서 지혁를 자세히 살펴보았다.“내 솜씨가 괜찮아. 아주 잘 다듬어졌어. 2천원을 아꼈어.”그녀는 웃으며 말하고는 마른 수건으로 지혁의 얼굴과 목에 묻은 머리카락을 털어 주었다.“됐어. 샤워하러 가.”유진이 말했다.지혁은 대답을 하고 갈아입을 옷을 챙겨 좁은 욕실로 들어갔다. 따뜻한 물줄기가 몸을 씻어내자 지혁은 고개를 숙이고 자신의 가슴에 있는 흉터를 바라보았다.시간이 흘러 이 흉터는 이제 아주 연해졌다. 다만 이 흉터를 볼 때마다 그는 그 여자를 생각하게 된다.그와 아버지를 버렸던 그 여자.이 상처는 아마도 그 여자가 남긴 유일한 것일 것이다.그때 지혁은 무릎을 꿇고 그녀에게 떠나지 말라고 그와 아버지를 버리지 말라고 빌었지만 그녀는 그를 매섭게 밀어내고 머리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한쪽에 쌓아있던 송곳이 그의 가슴을 관통했다. 의사가 송곳이 관통한 곳이 심장과 아주 가깝고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 있었으면 생명을 보장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지혁은 그 사람이 더 이상 그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자신에게 말했다.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 지혁은 누구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기대가 없다면 이른바 실망도 없을 것이다.그냥…….지혁은 물을 잠그고 수건을 꺼내
왜 진애령의 차가 자신을 향해 부딪쳤을까.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그 증인들은 왜 모두 자기의 잘못이라고 했을까.유진는 입이 백 개라도 변명할 수 있는데, 당시의 그 증인과 증거들은 모두 그녀야말로 가해자라는 것을 증명하고 있었다.심지어 애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혁과 결혼할 것인데 인생의 전성기에 고의로 차를 들이받아 자살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그래서 누나가 판결을 직접 뒤집으려고?”지혁이 물었다.그러자 유진이 자신을 비웃었다.“그냥 내키지 않는 거야. 판결을 뒤집는 것은 불가능해. 그리고 나도 이미 출소했잖아. 됐어. 이 일은 그만 말하고 머리 말려줄게.”유진은 이 문서들을 거두고 드라이기를 가져와 젖은 머리를 말려주었다.지혁의 눈동자는 점점 깊어졌다…….이튿날, 고이준은 상사의 머리카락이……잘린 것을 눈치 챘다. 하지만 분명 자신이 헤어디자이너를 보낸 적이 없다.“왜?”아마도 그가 너무 오래 쳐다보는 것을 눈치 챘는지 지혁이 물었다.“대표님, 이발을 안 한지 꽤 된 거 같은데 헤어디자이너를 예약해 드릴까요?”이준이 물었다.“아니. 어젯밤에 유진이가 손질해줬어.”‘유진…… 임유진이다!’하지만 이준이 더 의아한 것은 대표님이……유진에게 머리손질을 맡겼다는 점이다. 지혁은 평소 최고의 헤어디자이너에게 관리를 받고 있다.하지만 유진은…… 그냥 도로를 청소하는 사람이다. 설령 그 당시에 변호사였지만 헤이디자이너는 아니다.“괜찮게 다듬었지.”지혁은 앞머리를 만지며 만족스러워 하는 듯했다.이준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지혁은 평소 아주 까다롭다. 심지어 최고급 헤어디자이너조차 트집을 잡았는데 환경미화원이 다듬은 머리를 마음에 들어 한다.도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그날 점심 한지영이 유진을 만나러갔다. 두 사람은 환경위생과 주변에서 작은 국수집을 찾아 국수를 먹었다.“진세령이 그날 일부러 쓰레기를 뒤지게 한 일을 왜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어?”지영은 친구로서 이런 일을 뉴스로 본 것이 너무 짜증이 났다.“별거 아
“진 씨 가문은 내가 진애령을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해.”한참 지나 유진이 입을 뗐다. 감옥에서 세령이 사람을 시켜 그녀의 손톱을 뽑으라고 할 때 그녀는 그제야 사람이 이토록 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내가 보기에 진애령이 죽은 것보다 진세령은 네가 자리를 양보했다는 거에 더 기뻐할 거야.”지영은 화가 가시지 않았다.“애초에 네가 판결 받은지 한 달도 안 되는 시간에 진세령은 이미 소민준과 사귀었잖아. 진세령은 그전부터 소민준에게 관심이 있었어.”“나와 소민준의 사이가 그 정도라는 걸 설명하지. 하지만 이 일로 한 사람을 똑똑히 알아볼 수 있는 것만으로 만족해.”유진이 웃으며 말했다.“맞아. 소민준 같은 남자는 사랑할 가치가 없어.”지영은 말을 하고는 무엇인가 떠올랐다.“참, 너 새로 알게 된 동생이랑은 어떻게 됐어? 설마 그와 계속 살 작정이야?”“응.”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만약 혁이가 계속 나랑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그럴 거야.”“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너희 둘이 연애하고 동거하는 줄 알 거야.”지영이 걱정되어 물었다.“너에게 이상한 행동은 안했지.”“아니.”유진은 말을 하며 머릿속으로 그 이쁜 눈동자가 생각났고 그녀에게 다가왔을 때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빨리 뛰는 것 같았다.“야, 너…….”지영은 친구의 발그레해진 볼을 보더니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너 설마 그에게 마음이 간 거야?”“아니야.”유진이 곧바로 부인했다.“지영아, 너도 알 거야.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심지어 감옥에서……난 누구를 사랑할 생각이 없어.”감옥의 일을 언급하자 지영의 얼굴빛도 어두워졌다.“유진아, 좋은 의사를 찾아보면 아마도……”“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난 한평생 시집갈 생각이 없어. 그럼 굳이 치료해야할 필요도 없고.”유진이 말했다. 애초에 감옥에서 자궁이 파열될 정도로 맞았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앞으로 임신을 하려면 일반인보다 훨씬 더 많은 위험이 있을 것이다. 심지어 의사는 그녀에게 앞으로 임신을 하지 말라고 건의한
임유진은 자신의 양손이 왜 한쪽은 핸들에 묶여있고 또 한쪽은 기어봉에 묶여있는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게 둘 중 하나가 살 수 있게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지금 그녀가 탄 차량의 주위에 얼마만큼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걸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파악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폭탄을 건드리면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다.정말 두 사람 다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임유진은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그때 김재호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진세령이 표독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때? 상황이 엄청 재미있어졌지? 이제 강지혁은 어떻게 할까? 나는 강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널 버릴 거라는 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너는 어때? 혹시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 된 거야? 하하하!”임유진은 진세령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강지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지혁도 그런 그녀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그의 눈동자에 뭔가의 결심이 섰고 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서둘러 크게 외쳤다.“혁아, 하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그런데 강지혁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녹음을 켠 후 휴대폰을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나 강지혁은 죽은 후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전부 아내인 임유진에게 넘겨주겠다. 이건 그 어떤 외부의 강요도 받지 않은 온전한 내 의지임을 밝힌다.”그는 말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렸다.그리고 고이준은 그의 휴대폰을 받고 그대로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지금 자기 목숨을 희생해 유진 씨를 구하려는 건가? 그래서 유언을 남긴 건가...? 하지만 이대로 대표님이 죽어버리면...’고이준은 그 뒤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지혁의 유언에 굳어버린 건 고이준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재호의 얼굴 역시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대표님, 정말 임유진 씨를
김재호가 한 손을 들어 임유진이 타 있는 차량과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가시면 웬 기계 장치가 하나 보일 건데 거기에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지문이 필요합니다.”김재호의 웃음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그리고 강지혁은 김재호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상황이 단지 지문을 찍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만약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 똑바로 끝까지 말해. 너와 여기서 입씨름할 시간 없으니까!”강지혁은 지금 일 초라도 빨리 임유진을 저기서 구해내고 싶었다.“그러죠. 만약 대표님께서 해제 버튼을 누르시게 되면 기계 장치에 설치된 폭탄의 스위치가 자동으로 켜지게 될 겁니다. 즉 임유진 씨를 구하면 대표님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뜻이죠.”김재호는 강지혁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 있는 임유진에게도 이 얘기가 전달되기를 바라서였다.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임유진은 그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어버렸다.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한기에 둘러싸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어 버렸다.자신이 사는 대가로 강지혁이 목숨을 잃게 될 줄은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왜... 대체 저 남자는 뭣 때문에 이런 짓을 계획한 거지? 단순히 내 목숨이 목적인 거면 내가 기절해있을 때 진세령을 통해 나를 죽이면 됐을 텐데...?’그때 임유진의 의문에 대답을 해주듯 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 이 판을 계획한 건 다 대표님이 정신을 차렸으면 해서입니다. 임유진 씨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요. 대표님, 임유진 씨를 대체할 여자는 차고도 넘칩니다. 만약 외모 때문이라면 똑같이 성형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요즘은 의술이 워낙 좋아 완전히 똑같게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임유진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분한 음성으로 진세령에게 말했다.“지금이라도 날 풀어주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줄게. 혁이한테도 널 봐달라고 하고 네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라고도 할게.”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진세령이 혹할 만한 제안을 제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진세령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그걸 기회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그런데 진세령은 마치 임유진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건지 자기 할 말만 이어나갔다.“나는 그냥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강지혁이 널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 언니가 죽었을 때는 눈물은커녕 동정심도 내보이지 않았거든. 솔직히 너도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강지혁이 널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없을지?”진세령의 두 눈은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임유진을 증오했다. 한낱 버러지 같은 여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으니까.진애령의 사고가 있었던 그때 사실 진세령은 임유진의 곁에서 소민준을 빼앗으며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소민준이 임유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을까 봐.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소민준은 아주 손쉽게 임유진을 버렸다. 마치 다 쓴 건전지를 버리듯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버려버렸다.생각해보면 첫사랑의 이미지로 남자들을 홀린 자신이 임유진 따위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진세령은 강지혁도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소민준처럼 임유진을 가차 없이 버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그는 김재호라는 남자에게서 거액의 보수를 건네받은 후 해외로 넘어가 남은 생을 편히 즐기면 된다.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연이어 이곳에 도착했다.임유진은 차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연달아 내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 중에 강지혁의 모습이 보였다.강지혁은 아슬아슬한 상태로 절벽에 걸려있는 차량과 그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임유진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바
강지혁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었다.아무리 강지혁이 강문철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강문철이 강지혁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했다.강문철은 강지혁이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과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면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다는 것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재호에게 실종 놀이를 하게 한 다음 갑자기 나타나게 했다.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야 이미 불안도가 잔뜩 오른 강지혁이 직접 김재호를 심문하려고 저택에서 나올 테니까.강문철은 죽어서도 죽은 게 아니었다.게다가 김재호의 말에 따르면 강문철은 강지혁에게 내기까지 하려고 했다. 임유진과 관련된 내기를 말이다.‘유진아, 제발... 제발 무사해 줘!’...임유진의 눈썹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예쁜 두 눈이 떠졌다.임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깜짝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녀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있었고 한 손은 핸들에 꽉 묶여있고 나머지 한 손은 기어봉에 묶여있었다.그리고 그녀가 탄 차량은 차 앞머리만 간신히 땅을 밟고 있고 뒤쪽은 공중에 떠 있었다. 즉 차량의 절반만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린 상태라는 뜻이었다.만약 이대로 조금만 큰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게 되면 이 차는 말할 것도 없이 절벽 아래의 망망대해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임유진은 상황을 파악한 후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눈앞에 영상 통화가 켜져 있는 휴대폰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화면 속에는 진세령의 얼굴이 보였다.“깼어?”진세령이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솔직히 생각도 못 했어. 내가 짓밟은 한낱 벌레가 오늘날의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거라고는 말이야.”“진세령!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임유진이 물었다.임유진은 아까 그렇게 강지혁을 보낸 후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침실로 돌아온 지 몇 분도 안 돼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졸음이 몰려와 잠시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그리고
경호원은 강지혁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그, 그게 사모님 방으로 가봤는데 사모님은 그 어디에도 없고 채린이와 이모님만이 바닥에 기절해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CCTV가 없어 밖에 있는 CCTV를 돌려봤지만 사모님께서 침실을 나선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는 지금 미약하게나마 약물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찾아! 지금 당장 저택 전부를 뒤져서 유진이를 찾아!”강지혁은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린 후 누구 한 명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김재호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김재호의 머리를 세게 움켜쥐고 벽에 짓눌렀다.“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어! 만약 유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네 사지가 다 찢길 줄 알아!”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재호의 머리가 옆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벽에 세게 부딪혔다.분명히 아플 텐데도 김재호는 오히려 소리 내 웃었다.“지금 당장 저를 죽이셔도 저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까 말했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요.”“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말하라고 했어!”강지혁이 살기를 내뿜으며 김재호의 머리를 수도 없이 벽을 향해 박았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임유진뿐이었다.한편 고이준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강지혁의 눈빛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임유진은 강지혁의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기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만약 임유진을 건드리게 되면 그건 자기 목숨을 끊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김재호를 죽이고 말겠어!’고이준은 이 생각에 얼른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차라리 김재호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분명히 김재호는 사모님께서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은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 손을 멈춰주세요. 이러다 김재호가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묻지 못하잖습니까.”그 말에 강지혁의 눈빛에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차에 실어. 그리고 지금 당장 집으로 간다!”강지혁은 말
“진세령이 탈옥한 걸 몰랐다?”강지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김재호를 빤히 바라보았다.“네, 몰랐습니다.”김재호가 단호하게 답했다.“그래, 그렇다고 쳐. 그럼 내가 올 때까지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는 건 무슨 의도로 한 말이지?”“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만약 임유진 씨가 모든 진실을 알고도 대표님과 헤어지지 않으면 대표님과 내기를 하나 하시겠다고요.”“내기?”“네. 대표님께서 아버님처럼 정말 여자 하나 때문에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강지혁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뜻이지?”강문철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 대체 뭘 지켜보고 무슨 내기를 하겠다는지 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김재호는 강지혁의 의혹 가득한 눈빛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잔뜩 얻어터진 얼굴로 그렇게 웃으니 괜히 섬뜩하게 느껴졌다.“말해!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강지혁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눈빛도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졌다.“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는 단지 대표님께 자명한 사실을 하나 일깨워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여자를 위해 사느니 마느니 하는 건 결국 대표님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그간 노인네 뒤를 따라다녔더니 스스로가 뭐라도 된 것 같아?”강지혁이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가 김재호의 멱살을 잡았다.“네가 지금부터 입을 열고 해야 하는 얘기는 이거 하나야. 노인네가 너한테 무슨 지시를 내렸는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털어놓지 않으면 그때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야.”이건 누가 들어도 협박이었다.하지만 김재호는 그의 협박 따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대답했다.“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을 때부터 회장님 뒤를 따랐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도 회장님이시고 저를 지금껏 살게 해준 사람도 회장님이십니다. 그러니 회장님께서 저한테 맡기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
...강지혁은 방에서 나온 뒤에야 옆에 늘어진 손을 꽉 말아쥐었다.아까 임유진이 그의 팔을 잡고 먼저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얼굴이 가까이했을 때 그는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기대감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맛본 건 또 한 번의 실망감뿐이었다.믿음을 주려고 노력은 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몸은 속일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그렇다는 건 그녀가 그를 진정으로 용서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하지만 뭐가 됐든 임유진은 그에게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고 해줬고 용서하겠다는 말도 해줬다. 닿는 걸 거부하면서도 그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열심히 닿으려고 했다.그러니 그거로 된 거다.어차피 두 사람에게는 아직 시간은 많으니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다 제거하고 아이까지 무사히 출산한 후 다시 차근차근 관계를 쌓아 나아가면 된다.강지혁은 밖에 있는 이모님과 경호원에게 다가와 임유진의 상황에 관해 몇 마디 당부를 건넸다.그런데 그때 고이준이 다급하게 들어오더니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대표님!”강지혁은 그의 다급한 태도에 사람들을 다 물린 후 고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드디어 김재호를 찾았습니다.”고이준의 말에 강지혁의 몸이 흠칫했다.“어디서 찾았지?”“회장님 산소에 있더라고요. 저희 애들을 발견하고 바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잘 잡아뒀습니다. 현재 묘원 옆의 오두막에 있는데 지금 바로 만나러 가시겠습니까?”“그래. 노인네가 대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한번 들어봐야지.”강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사실 김재호를 잡은 건 좋지만 이제껏 꼭꼭 숨어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 영 석연치 않았다. 게다가 진세령의 탈옥 사건도 신경이 쓰이고 말이다.강지혁은 진세령의 탈옥에 김재호가 크게 엮여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지.”강지혁이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고이준도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
임유진의 몸은 마치 로봇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굳어있었고 움직임 하나하나가 뻣뻣하기 그지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그럼에도 뒤꿈치까지 들고 강지혁 쪽으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어느새 무척이나 가까워져 있었고 그 덕에 길게 뻗은 그의 속눈썹과 그의 검은색 눈동자가 바로 코앞에서 보였다.이제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입술이 맞닿게 된다.서로의 입술이 맞닿으면 강지혁도 그녀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것을 믿을 것이다.강지혁은 아마 모르겠지만 임유진은 생각보다 그를 더 사랑하고 있었고 놓치고 싶지 않아 했다.자신을 향한 강지혁의 사랑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애정의 크기가 얼마나 큰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물론 과거의 진실로 마음에 고통이 일고 아주 조금은 그를 원망하기도 했지만 사실 고통받은 거로 따지면 강지혁도 그녀 못지않다는 걸 임유진은 알고 있다.다시 함께 한 뒤로 강지혁은 거의 틈만 나면 그녀에게 자기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용서해달라는 말을 했으니까.아마 강지혁은 그때부터 늘 불안해 왔는지도 모른다.그래서 임유진은 그에게 안정감을 주고 싶었다. 그걸 증명할 방법이 신체적인 접촉밖에 없다고 해도 그녀는 기꺼이 그를 위해 증명해 보이고 싶었다.임유진은 뻣뻣하게 굳은 몸을 조금 더 밀착시키며 서서히 얼굴을 강지혁의 얼굴 가까이 가져갔다.이제 남은 거리는 고작 2cm, 강지혁의 숨결이 전달되어 오며 그의 얼굴이 점점 더 가까이 보였다.임유진은 눈을 질끈 감고 그저 입만 맞추면 된다고, 그러면 괜한 오해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다.심장이 쿵쿵 뛰고 드디어 강지혁의 입술과 맞닿은 순간, 그녀의 몸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뭘 느낄 새도 없이 강지혁의 몸에서 멀리 떨어져 나갔다.임유진은 뒤로 빠르게 한걸음 물러선 후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그대로 화장실로 뛰쳐 갔다.그러고는 변기를 잡고 토하기 시작했다.“웩... 웩!”얼마나 세게 토를 한 건지 그녀는 아침에 먹었던 것을 전부 다 토해버렸다.그렇게 얼마나 토를
“그럼 다른 경호원들을 물려줘. 전처럼 채린 씨만 곁에 있게 해줘. 솔직히 매번 내 뒤에 여러 명이 따라다니는 거, 나 불편해.”임유진은 그 상황이 꼭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안 돼.”강지혁이 단호하게 거절했다.“왜? 왜 안 되는데?”“뭐가 됐든 안 돼. 넌 지금 경호가 필요한 몸이야. 그러니까 사람 물리는 건 안 돼.”강지혁은 김재호 일도 그렇고 진세령이 탈옥한 일도 그렇고 아직 임유진에게는 그 어떤 것도 얘기할 생각이 없었다.불안의 근원 중 어떤 것은 단지 그의 의심과 추측에 불과하니까. 그러니 앞으로 일주일 정도밖에 남지 않은 출산 예정일까지는 그녀가 불안해할 만한 그 어떤 빌미도 만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 마음이 임유진에게는 전달이 되지 않았다.임유진은 강지혁이 이러는 게 결국에는 자신을 향한 불신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우리 사이에 믿음이 고작 그거밖에 안 돼?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떠나지 않겠다는 내 말을 믿어줄래?”그녀의 목소리가 한 톤 높아졌다.강지혁은 마치 임유진의 내면을 꿰뚫어 보기라도 하려는 듯 그녀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럼 나한테 키스해 봐.”“뭐?”갑작스러운 요구에 임유진의 얼굴이 당황으로 물들었다.“나한테 키스하라고. 네가 먼저 나한테 입을 맞추면 그때는 네가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거 믿어줄게.”강지혁은 단지 살과 살이 맞닿는 느낌을 원하는 게 아니라 일종의 마음의 안정감을 원했다. 그녀를 믿어도 된다는, 그녀의 사랑이 진심이라고 확신할만한 안정감을 원했다.그의 사랑은 날이 갈수록 점점 더 커지고 부풀어지기만 하는데 임유진은 꼭 아닌 것 같아서, 임유진은 언제든지 그를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서.실제로 임유진이 결혼을 승낙한 것도 이미 생겨버린 아이들과 병원에 누워있는 한지영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 때문에 임유진은 어쩔 수 없게 그의 곁에 있게 된 것이었다.그래서 강지혁은 마음속으로 늘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그녀가 아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