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혜가 아무리 바보라도 자신이 큰일 쳤다는 걸 알아차렸다.임유진은 도대체 언제 이렇게 잘생기고 돈 많은 남자를 알게 된 걸까? 민혜의 마음속에는 질투가 피어올랐고, 곧이어 민혜는 이 남자의 얼굴이 보면 볼수록 낯익다는 것을 느꼈다.민혜는 어렴풋이 어디에서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순간, 민혜의 눈빛이 밝아지더니 소리 질렀다.“당신은…… 임유진의 그 기생오라비?”이 말이 나오자 옆에 있던 지배인의 얼굴색이 순식간에 변했고, 정 사장은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자신이 민혜와 함께 있다는 것이 한스러웠다.S 시 전체에서 누가 감히 강지혁을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살고 싶지 않은 일이다!지혁은 웃는 듯 마는 듯 민혜를 바라보았지만 눈빛은 차갑기 그지없었다.“민혜야,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이분은 강 씨 그룹의 강지혁 대표님이셔!”정 사장이 황급히 말했다.민혜는 믿을 수 없는 얼굴로 눈을 휘둥그레 떴다.이 남자가…… 강지혁이라니?!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강지혁이 어떻게 유진과 함께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지난날 유진이 차로 치어 죽인 사람은 지혁의 약혼녀인데 말이다.민혜는 갑자기 본인의 집에 큰 변고가 생기기 전에 신정민이 업소에서 유진을 괴롭혔을 때 유진을 구했던 사람이 바로 지혁이었다는 것이 떠올랐다.그때 모든 사람은 정민이 지혁을 시끄럽게 해서 그런 줄 알았다. 사람들은 유진이 운이 좋아서 지혁에게 구조 되였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면…… 그건 우연이 아니었다!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것 같았고, 당장이라도 민혜의 혈관을 뚫고 나올 것만 같았다.“하지만…… 하지만 임유진은…….”민혜는 말을 반쯤 하다가 지혁의 그 쌀쌀한 눈빛을 마주하고 결국 입을 다물었다.공포가 민혜의 마음속에서 솟아올랐고, 계속 말한다면, 민혜는 안 좋은 일을 당할 것이라고 말해주는 듯 싶었다.“민혜야, 빨리 강 대표님과 곁에 있는 이 아가씨에게 사과하지 않고 뭐해!”정 사장이 재촉했다.민혜는 굴욕적인 얼굴로 아무 말이 없는 유진을 바라보았다
애매한 포즈에 옆에 있던 지배인과 정 사장은 마음속으로 살짝 놀랐다.모두 강지혁이 여색과 멀리한다고 했다. 지난날 약혼녀 진애령과도 서로 손님 대하듯 존경하는 모습이었다. 그가 이렇게 한 여자와 친한 모습은 본 적이 없었다.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이렇게 한 여자를 위해 발 벗고 나서다니?조민혜는 무릎을 꿇고 부들부들 떨며 사과했다.“유진아, 다…… 다 내 잘못이야. 내가 너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았어야 했어. 나…… 앞으로 안 그럴게. 나를 용서해 줘!”임유진은 이런 민혜를 보면서 아무런 동정도 느낄 수 없었다. 민혜도 유진을 동정한 적이 없으니 말이다. 유진은 아직 자신을 조롱하고 모욕하는 사람을 동정할 만큼 대단하지 않았다.하지만 유진은 이런 방식을 좋아하지 않았다. 민혜가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고 하더라도 유진의 마음속에는 조금의 통쾌함도 없었다.“누나, 용서해 준다고 했어?”지혁은 마치 유진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처럼 중얼거렸다.“이건 너의 결정이야.”유진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나 배고파, 밥 먹고 싶어.”“그래, 그럼 가자.”지혁은 말을 하고 나서 다시 유진의 손을 잡고 옆에 있는 지배인에게 길을 안내하라고 했다.지배인은 얼른 길을 안내하고 있었고, 민혜는 여전히 멍하니 제자리에 무릎을 꿇은 채 미처 정신 차리지 못했다.방금…… 지혁이 유진을 ‘누나’라고 불렀나?이게 무슨 뜻일까? 유진은 언제 지혁의 누나가 된 걸까? 하지만 문제는…… 방금 지혁이 유진을 대하는 태도가 아무리 봐도 남매 같지 않고 오히려…… 연인 같았다!정 사장은 지혁이 떠나는 것을 보고 한스러워하며 민혜를 향해 말했다.“너 죽고 싶으면 혼자 죽어. 나까지 끌어들이지 말고! 잘 기억해, 내가 너희 가문을 도와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네가 강지혁의 미움을 샀기 때문에 이젠 도울 수 없어.”정 사장은 말을 마치고 나서 곧장 레스토랑 입구로 걸어갔다.민혜는 그제야 갑자기 정신을 차린 듯 얼른 일어나 종종걸음으로 레스토랑 입구에서 정 사장을 따라잡았다.
그때부터 사실 강지혁은 이미 임유진의 뒤를 봐주고 있었다.————유진은 지혁을 따라 룸에 들어갔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은 후 지혁은 지배인에게 먼저 과자 몇 접시를 올리라고 했다.“자, 우선 요기부터 해. 여기 과자는 그런대로 먹을 만 해.”지혁은 말하면서 과자 한 조각을 들고 유진 앞에 건네주었다.유진은 눈앞의 과자를 보고 잠시 망설이다가 받아서 한 입씩 먹었다.지혁은 또 직접 메뉴를 유진 앞에 놓았다.“누나 봐봐, 뭐 먹고 싶은 거 있어?”“아니야, 네가 주문해, 난 먹고 싶은 게 없어.”유진이 말했다. 지금 이 고급 과자를 먹고 있더라도, 유진은 마치 돌을 씹는 것 같아서, 아무런 맛도 느낄 수 없었다.지혁은 눈을 찌푸리고 유진을 바라보았다.갑자기 주위의 공기에 차가운 기운이 스며든 것 같았다.룸에 있던 지배인도 자기도 모르게 숨을 죽이고 가슴을 졸이며 강 대표님이 여기서 화를 내지 않을까 걱정했다.다행히 지혁의 얼굴에는 곧 또 웃음기가 나타났다.“그럼 내가 누나를 도와 주문할게.”지혁은 계속해서 여러 가지 요리를 시켰고 지배인은 일일이 받아적은 후 룸에서 물러났다.룸에서 나온 지배인은 그제야 긴 숨을 내쉬었다.S시의 이 황제가 한 여자를 이렇게 극진히 보살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그러나 이 여자가 하필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지배인님, 그 강 대표님이 정말 한 여자를 데리고 식사를 하러 왔어요?”평소 가십을 좋아하던 한 웨이터가 지배인의 곁으로 다가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그 여자랑 무슨 관계래요?”지배인은 웨이터를 노려보며 경고했다.“묻지 말아야 할 일은 묻지 마. 방금 가게에서 무릎 꿇고 사과한 그 여자가 장난친 줄 알아? 그 여자는 앞으로 S시에서 살아가기 힘들 거야!”웨이터는 자기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지만, 여전히 호기심에 지혁이 있는 룸을 힐끗 보았다.그리고 지금, 룸에서 지혁은 옅은 미소를 지은 채 유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누나는 이 과자가 별로야? 그럼 내가 과자를 바꾸라고 할게
임유진의 몸은 더욱 굳어졌고, 거의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강지혁에게 유진의 지금 표정을 보여주지 않으려 했다.“하지만 내가 강지혁이기 때문에 방금 누나의 그 동창이 그렇게 누나를 모욕했을 때, 내가 그 여자를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할 수 있고, 누나가 앞으로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게 할 수 있어. 내가 강지혁이기 때문에 누나를 업신여기는 사람들은 모두 누나 앞에 비굴하게 무릎을 꿇게 할 수 있다는 걸 누나 생각해 본 적 있어?”지혁은 시큰둥하게 말했다.“그럼 뭐해? 그저 위세를 부리는 것뿐이잖아.”유진이 말했다.“그럼 안 좋아? 내가 내 기세를 누나에게 줄게, 어때?”지혁은 의자 등받이에 나른하게 기대어 유진을 바라보며, 마치 유진과 아주 평범한 일을 상의하는 것 같았다.유진은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지혁을 바라보았다. 유진은 그날 지혁을 찾아가 부탁했을 때 지혁이 그렇게 거절했다. 그래서 유진은 두 사람이 앞으로 서로 각자 자기가 갈 길을 가며 다시는 아무런 교집합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강지혁처럼 교만한 남자가 어떻게 여자에게 거절당하는 것을 허용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유진은 그가 오늘 밤 그렇게 갑자기 오피스텔에 나타날 줄은 몰랐다. 심지어…… 유진을 여기로 데려오기도 했다.그리고 지혁이 방금 일부러 조민혜더러 유진에게 무릎을 꿇게 한 건 유진에게 강지혁이라는 세 글자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기고만장한 조민혜도 지혁의 앞에서는 굴욕적인 얼굴로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너 도대체 무엇을 하려는 거야?”유진은 의심스럽게 지혁을 바라보았다.지혁은 눈동자를 굴리며 생각했다. 뭘 하려는 걸까……, 사실 지혁은 본인도 잘 알지 못했다. 지혁은 그저 유진을 다시 보고 싶었을 뿐일지도 모른다.유진이 지혁에게 한 번 거절당한 후에 다시 지혁을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했다.하지만 유진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설령 지금 지혁이 유진의 앞에 있다 하더라도 유진은 지혁에게 두 번 부탁하지 않았다.“저기, 누나는 이제
이때 누군가 갑자기 노크했다.강지혁은 자연스럽게 말했다.“들어와.”문이 열리자 지배인과 웨이터가 음식을 들고 들어왔다. 임유진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빼려고 했다. 그러나 지혁은 손으로 유진의 손을 감싸며 말했다.“움직이지 마, 아직 추워.”순간 지배인과 웨이터들의 시선이 두 사람의 포개진 손을 바라보았고 유진은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만 같았다.그러나 지혁은 옆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유진의 손을 따뜻하게 해주었다.이 사람이…… 진짜 강 대표님이라고? 일부러 지혁을 유혹한 여자의 옷을 벗겨 길거리에 버린 그 전설의 강 대표님이라고?다들 강 대표님은 여자에게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평범해 보이는 여자에게…… 이토록 자상하다니!그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다행히 지배인이 가장 먼저 반응하여 기침하고 얼른 웨이터들에게 술과 안주를 내려놓으라고 한 후 룸에서 물러나 조심스럽게 룸 문을 닫았다.“지배인님, 방금 잘못 본 거 아니죠?”누군가가 작은 소리로 지배인의 귀에 다가가 말했다.“이 여자, 도대체 누구죠?”지배인은 엄숙한 표정으로 말했다.“이 여자가 나중에 S시의 주인이 될 수도 있겠어.”그랬다. 한 여자가, 만약 정말 지혁의 마음에 든다면 앞으로 S시에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룸이 또 조용해졌다. 지혁이 유진의 손이 마침내 따뜻해졌다고 생각할 때 유진은 자신의 얼굴이 화끈거림을 느꼈다.“자, 밥 먹자. 이 반찬들은 뜨거울 때 먹어야 해.”지혁은 말하면서 유진의 곁에 앉아 자연스럽게 반찬을 집어주었다.유진은 여전히 건성으로 먹으면서 곁눈질로 지혁을 훑어보았다. 한참이 지나자 유진은 다시 용기를 내어 다시 한번 그 일을 언급했다.“저…… 경찰서에 우리 그 친척들을 풀어주라고 얘기해줄 수 있어?”“누나는 내가 그 친척들을 풀어주기를 정말 바라는구나?”지혁이 말했다.유진은 단지 외할머니를 위해서일 뿐이다! 유진은 눈을 똑바로 뜨고 지혁을 응시했다.“그래줄래?”지혁은 칠흑 같은 눈동자로 눈앞의 사람
“내가 만족할 때까지 마셔.”강지혁이 말했다.임유진은 입술을 지그시 깨문 채 눈을 가볍게 드리우고 지혁의 손에 있는 술을 주시하고 있었다. 실내의 불빛이 유진의 얼굴에 떨어져 약간 떨리는 속눈썹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누나가 취한 후 뭔 짓이라도 할까 봐 그래?”지혁은 유진의 생각을 읽은 듯 말했다.“여자를 얻으려면 방법은 많은데 이런 방법을 쓸 정도는 아니야. 내가 지금 여기서 누나를 괴롭힌다고 해도 아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어.”맞는 말이었다. 유진은 마음속으로 자신이 방금 정말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고 스스로를 비웃었다.유진은 술잔을 받고 바로 고개를 들어 마셨다.술이 목구멍에 들어가면서 씁쓸함과 달콤함이 전해졌다.유진은 사실 술을 잘 마시지 못한다. 예전에 일 때문에 접대할 때도 샴페인만 주로 마셨다.그때만 해도 유진은 소민준의 여자친구였기에 아무도 유진에게 술자리를 강요하지 않았다.지혁은 또 유진의 컵에 술을 따랐고 유진은 고개를 치켜들고 두 번째 잔을 마셨다.이렇게 한 잔 한 잔, 유진은 마치 약을 마시듯 끊임없이 술을 마시며 지혁이 만족하기만을 빌었다.그러나 지혁의 얼굴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웃음기가 가득했다. 마치 이렇게 유진이 술을 마시는 것을 보는 것이 큰 기쁨인 것 같았다.결국 유진은 의식이 흐릿해지고 손발이 갈수록 말을 듣지 않았으며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너도 마셔…….”와인이 유진의 술잔을 또 한 번 가득 채워지자 유진은 비틀거리며 술잔을 그의 앞에 건네주고 지혁을 향해 헤벌쭉 웃었다.유진의 이런 모습을 보고, 지혁은 유진이 취하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알았다.이전에 지혁은 유진이 술에 취한 모습을 한 번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엔 그때와는 전혀 다르다.그때 지혁은 단지 누군가가 지혁의 게임 상대를 건드리는 것이 싫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지금은…… 지혁의 눈빛은 오히려 유진의 웃음에 매료되었다. 유진이 취했기에 지금 짓고 있는 유진의 웃음, 그리고 유진이 한 말은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
임유진은 겨우 말을 끝까지 다 했다.“그럴게.”강지혁이 말했다. 자신이 약속한 일이니 당연히 지켜야 한다.유진이 이토록 취했으니 유진이 원하는 대로 사람들을 풀어주어야 한다.지혁은 유진이 들고 있던 술잔을 가져와 다 마셨다.유진은 정말 심하게 취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강지혁을 혁이라고 부르지 않았을 것이다.유진은 지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자신을 혁이라고 부르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를 것이다. 마치 아주 고요한 밤에 자신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말이다.유진은 또 싱긋 웃었다. 아주 달콤하게 웃었으며 마치 미션을 완수하는 것처럼 지혁에게 안겨 지혁의 목을 껴안았다.“혁아, 나…… 나 너무 졸려. 자고 싶어…….”유진은 중얼중얼 말하다가 곧바로 지혁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지혁은 고개를 숙이고 멍하니 품속의 사람을 보고 있다.깨어 있을 때의 유진은 니혁을 매우 경계했지만, 잠든 유진은 오히려 지혁에게 모든 경계를 풀고 있었다.“누나는 취한 모습이 아주 귀여워.”지혁이 나지막하게 말하며 손을 들어 귓가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만졌다.유진의 볼은 술 때문에 발그레했으며 살구 같은 눈동자는 감고 있다. 그래서 유진의 곱슬곱슬한 속눈썹, 앙증맞은 코, 요염한 입술을 더욱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을 설레게 한다.그리고 마치 증명이라도 하는 것처럼 지혁의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지혁은 조심스레 자신의 옆에 놓인 외투를 유진의 몸에 덮어주고 유진을 안아서 곧장 룸을 나섰다.유진은 지혁의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잠들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고이준이 공손하게 차 문을 열었다.지혁은 유진을 안고 차에 올랐다.한편 멀지 않은 곳에서 두 사람이 주차장으로 걸어왔다. 그 장면을 본 강현수는 뜻밖에도 눈썹을 치켜세웠다.보아하니 지혁은 정말 여자가 있는 것 같다. 지혁이 방금 조심스럽게 여자를 안고 차에 오를 때 모습을 보니 지혁이 그 여자를 아주 아끼는 것 같았다.마찬가지로 이 장면을 본 사람은 임유라도 있었다. 다만 유라는
“궁금한 것이 너무 많아도 안 좋아.”강현수는 시선을 거두고 차에 시동을 걸었다.“응, 알았어.”임유라는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말했다.유라는 예전에 알아본 적이 있다. 현수는 말을 잘 듣는 여자를 좋아하고 말을 잘 들을수록 현수의 곁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총애를 이용해 필사적으로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고, 유일하다고 생각하던 여자들은 현수에게 일찌감치 차였다.유라도 비록 예외이고 유일한 여자가 되고 싶지만, 유라는 조급해하지 않을 것이다. 유라는 천천히 그의 마음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현수 씨, 오늘 선물해 준 목걸이 고마워. 아주 마음에 들어. 하지만 이렇게 고급스러운 목걸이를 착용할 기회가 없을까 봐 걱정이야.”유라는 먼저 즐거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아쉬워하는 것 같았다.유라가 스스로 완벽한 연기라고 생각할 때 현수는 가소롭다고 생각했다.현수는 자신의 앞에서 연기하는 수많은 여자를 봐왔다.“헤븐 파티에 참석할 때 착용하면 되잖아.”유라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하지만 난 단지 작은 배우일 뿐이라 헤븐파티의 초청장을 받지 못할 거야.”“거기에 가는 게 무슨 초청장이 필요해? 그냥 날 따라가면 돼.”현수가 말했다.“그때 감독 몇 명을 소개해 줄게.”유라는 재빨리 대답했다.“현수 씨, 너무 좋아!”운전을 하고 있는 현수의 눈빛은 여전히 차갑다.현수는 당연히 유라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기에 유라에게 맞춰준 것이다. 지금 유라는 현수의 여자친구이기 때문이다.현수는 여자에게 조금의 혜택을 주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 단지 유라가 현수에게 약간의 위안을 줄 수만 있으면 된다.차가 유라의 주택단지 앞에 도착하자 유라는 아쉬워했다.“현수 씨, 데려다줘서 고마워. 혹시…… 우리 집에서 좀 놀다가 갈래?”“아니야.”현수는 말을 하며 유라의 얼굴에 천천히 다가갔다.유라는 순간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이 뛰었다. 설마 현수가 유라에게 키스하려고 하는 것일까?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라는 실망
탁유미는 몇 번이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경빈의 모습이 그저 우습게만 느껴졌다.모든 걸 망쳐놓고 이제 와서 미안하다고 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을까?“날 때려도 돼. 욕해도 돼. 벌을 줘도 돼. 네가 주는 벌이라면 달갑게 받을게. 과거의 내 행동과 언행에 대해 제대로 사과하고 싶어. 나한테 그럴 기회를 줘. 그리고 널 곁에서 지켜주줄 수 있는 기회도...”“그만!”탁유미가 이경빈의 말을 끊었다.“이경빈, 네가 인간이면 나한테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공수진을 밀지 않았다고 내가 몇백 번을 말했는데도 너는 결국 내 말을 믿어주지 않았어. 들어주려고 하지도 않았지. 네가 지금 이러는 건 골수를 기증해준 게 공수진이 아닌 나라는 걸 알아서야. 만약 널 구한 게 정말 공수진이었으면 너는 지금도 여전히 나한테 죄가 있다고 생각했을 거잖아. 내 말이 틀려?”이경빈은 그 말에 순간 뭐라고 대꾸해야 할지 몰라 말문이 막혔다.“이경빈, 네가 지금 이러는 건 그저 자기만족일 뿐이야. 나한테 사과라도 해야 네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이러는 거잖아. 내가 모를 것 같아? 난 너 용서 안 해. 네가 날 감옥에 보낸 것도 그 일로 감옥에서 감기에 걸려 어쩔 수 없이 감기약을 먹어 윤이가 청력을 잃은 것도, 나는 용서할 생각이 없어.”탁유미의 말에 이경빈은 휘청이며 옆에 있는 벽을 짚었다.당시 그녀를 감옥에 보낸 건 그에게는 그저 간단한 복수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는 모든 고난의 시작이었다.게다가 그 일 때문에 윤이의 청력이 사라진 거라니...‘대체 나는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보상하겠다고 했지? 아니, 넌 보상 못 해. 네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네가 하는 사과도 나한테는 그저 역겨울 뿐이야!”탁유미는 말을 마친 후 그를 지나쳐 빠르게 걸어갔다.하지만 얼마 못 가 이경빈에게 팔이 잡혀 그대로 그의 품속에 안기고 말았다.탁유미는 그의 냄새가 코를 확 덮치는 순간 마치 그에게 꽁꽁 둘러싸인 기분이 들었다.“뭐 하는 짓이야! 이거 안 놔?!”놓아
지금의 그는 탁유미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받고 싶었지만 어떻게 하면 그녀에게 용서를 받을 수 있을지를 몰랐다....탁유미는 김수영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후 강지혁이 붙여준 경호원 두 명에게 집을 지킬 필요는 없다고, 이만 가봐도 된다고 했다.작은 집이라 건장한 남성 두 명까지 들이게 되면 집이 꽉 찰 테니까.경호원 두 명이 떠난 후 김수영은 창밖을 힐끔 바라보았다.“저거 설마...”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이경빈의 차량에 미간을 찌푸렸다.“저거 이경빈 차 아니야? 기어이 여기까지 따라온 거야?!”“엄마,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여기서 밤을 새우든 말든 우리랑은 상관없는 일이잖아요.”탁유미의 태도는 무척이나 태연했다.“그래, 네 말이 맞아. 그런데 갑자기 왜 저래? 뭐 잘못 먹기라도 한 거야?”김수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공수진이 유산한 게 네 탓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고 해도 사과하려고 이렇게까지 할 인간은 아니잖아.”공수진 일은 비단 인터넷에서만 뜨거운 일이 아니었기에 가십거리에는 일절 관심이 없는 김수영도 공수진과 주원호 일에 대해 아주 잘 알게 되었다.“그것도 그거지만 아마 몇 년 전에 골수를 기증해준 게 나라는 걸 알게 돼서 저러는 걸 거예요.”“뭐?!”김수영은 그 말에 깜짝 놀라더니 이내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이경빈이었어? 네가 골수를 기증해준 사람이?! 너한테서 받을 건 다 받아놓고 간 기증 좀 해달라니까 딱 잘라 거절한 인간이 쟤라고? 뭐 이런 배은망덕한 인간이 다 있어?!”김수영은 화가 머리끝까지 나 이경빈에게 따지려는 듯 현관문 쪽으로 향했다.“엄마!”그러자 탁유미가 서둘러 그녀의 팔을 잡아당겼다.“난 괜찮으니까 그러지 마세요. 기증하겠다고 한 건 나예요.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라고요. 이경빈이 간 기증을 거절했다고 한들 배신감이 들 이유는 아무것도 없어요. 그리고 간이식 수술을 받는다고 해서 꼭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수술을 받고 또다시 재발해 수명이 오히려 단축된 케이스도 많아요.”탁유
이경빈은 이제야 그날 탁유미가 웃으며 고맙다고 했던 말의 의미가 뭔지 알아챘다.아주 조금의 감정마저 남지 않게 만든 그에게 철저하게 실망하고 그로 인해 그를 완전히 내려놓게 된 게 틀림없었다.정말 그는 너무나도 멍청한 사람이었다!차량이 멈춘 후 기사는 이경빈에게 도착했다고 하려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깜짝 놀랐다.“대표님, 입술에 피가...!”이경빈은 그 말에 천천히 눈을 뜨더니 기사의 시선을 따라 손으로 입술을 매만졌다.얼마나 세게 깨물었던 건지 입술에 피가 흥건했다.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손으로 피를 닦아내더니 아무 말 없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입원 병동으로 들어가려는 그때 탁유미와 김수영, 그리고 일전 그녀의 병실을 지켰던 경호원 두 명이 함께 병동에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경호원들의 손에 짐이 들려있는 것으로 보아 퇴원하려는 것 같았다.이경빈은 서둘러 그들 앞으로 다가가 탁유미에게 물었다.“퇴원하려고? 벌써?”탁유미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데 경호원들이 빠르게 그를 제지했다.탁유미는 이경빈의 얼굴을 보고는 금방 미간을 찌푸렸다.‘그날 알아듣게 얘기한 것 같은데 왜 또 여기 있는 거야?’“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비켜.”“하지만 네 몸은 아직 입원해있는 게...!”이경빈은 말을 끝까지 하려다가 멈칫했다.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안색이 갑자기 안 좋아진 것이 이 이상 말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녀가 아프다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으니까.“며칠 더 입원해있는 게 좋지 않을까? 치료도 안 끝났을 것 같은데.”이경빈은 억지로 말을 끝마쳤다.“필요 없어. 내 몸이 어떤지는 내가 제일 잘 아니까.”탁유미는 싸늘하게 말을 내뱉은 후 다시 앞으로 걸어갔다.“잘 안다고? 그런 사람이 이렇게 빨리 퇴원하려고 해? 너 정말 이대로 죽고 싶기라도 한 거야?!”이경빈이 다급하게 그녀의 팔을 잡으려 하자 경호원들이 더 빨리 다가와 그의 어깨를 잡았다.탁유미는 발걸음을 멈추고 조금 의아한 눈으로 이경빈을 바라보더니 이내
철썩.둔탁한 마찰음 소리에 공수진은 휘청거리며 다시 바닥에 쓰러졌다.옆으로 힘껏 돌아간 그녀의 얼굴에는 빨간 손자국이 그대로 나 있었다.하지만 공수진은 아픔을 못 느끼는 건지 빈정거림을 멈추지 않았다.“그 여자 결백을 찾아주고 싶지? 하지만 그럴 시간은 없을 거야. 네가 찾아주기도 전에 저세상으로 가버릴 테니까!”이경빈은 그 말에 눈을 부릅뜨고 공수진을 노려보았다.“유미가 병에 걸린 걸 알고 있었어? 언제부터?”공수진은 이경빈의 얼굴을 보며 미친 듯이 웃어댔다.“하하하하. 이경빈 너 진짜 등신이구나? 너 정말 그 여자 좋아하는 거 맞아? 그런데 어떻게 나보다 더 몰라?”그녀의 말대로 이경빈은 등신이 맞다. 누가 진정한 은인인지도 모르는데 등신이 아니고 뭘까?그래서 지금 벌을 받는 것이다. 멍청했던 대가를 이제야 받고 있는 것이다.“그래, 나 등신 맞아. 하지만 그렇다고 네 죄가 사라지는 건 아니지. 너희 집안은 평생 감옥에서 썩게 될 거야.”이경빈은 말을 마친 후 공수진의 얼굴을 더 보고 싶지 않다는 듯 성큼성큼 차로 다가갔다.공수진은 그의 뒷모습을 보며 마치 미친 사람처럼 외쳐댔다.“이경빈, 탁유미가 죽는 날 네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지 내가 꼭 지켜볼 거야! 네가 어떤 말로는 맞이하는...”탁.이경빈은 평소보다 세게 차 문을 닫으며 공수진의 목소리를 차단했다.그는 천천히 눈을 감은 후 기사에게 지시를 내렸다.“병원으로 가지.”“네, 대표님.”차량에 시동이 걸리자 그는 시트에 등을 기댔다.“간암 3기예요. 현재로서는 간이식 수술을 받는 것밖에 언니 목숨을 살릴 길이 없어요. 만약 언니한테 사죄하고 싶다면 언니한테 이경빈 씨 간 일부를 기증해주세요.”임유진의 목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간 일부를 기증하라고? 탁유미를 위해서라면 그는 간 전부를 기증할 수도 있다.간암 3기가 어떤 상태인지,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경빈은 알고 있다.그간 탁유미가 보였던 고통을 참는 듯한 증상은 모두 간에 암이 퍼지고 있는 신호였다.
공한철은 이경빈의 기에 눌려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경빈 씨, 혹시 아직도 화 나 있는 거예요? 기증 일은 내가 거짓말한 게 맞지만 그건 다 경빈 씨를 사랑해서 그런 거예요. 나는 경빈 씨가 나를 모르고 있을 때부터 쭉 경빈 씨를 좋아하고 있었어요. 아니, 사랑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거짓말도 무릅쓰고 내가 기증해줬다고 한 거예요! 내가 경빈 씨를 속인 건 맞지만... 그게 범법 행위까지는 아니잖아요...”공수진은 자신은 잘못한 게 없다는 얼굴로 당당하게 말을 했다.이에 이경빈은 시선을 돌려 공수진을 빤히 바라보았다.“내가 아닌 우리 집안을 사랑하는 거겠지. 더 정확히는 우리 집 재산을. 공수진, 네 그 욕심 때문에 나는 인생이 망가졌어!”“거짓말한 건 미안하게 생각해요. 사과할게요. 그러니까 우리 다시 시작해요. 네?”공수진은 전과 같은 유약한 얼굴을 하며 그를 붙잡았다.“나 정말 경빈 씨 사랑해요. 경빈 씨 속상하게 만든 거 내가 다 잘못했어요. 탁유미 씨한테 사과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사과할게요. 보상도 할게요! 그러니까 우리 다시 잘해봐요. 나 정말 경빈 씨 없으면 못살아요!”“사랑이라고? 사랑한다는 사람을 그렇게도 감쪽같이 속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까지 주면서? 탁유미를 범죄자로 몰아가 결국 감방에까지 보낸 게 나를 향한 사랑의 표현이야? 탁유미만 사라지면 우리 집 며느리로 들어오는 게 쉬울 것 같았어? 그래?!”이경빈은 공수진을 턱을 으스러질 듯 잡으며 분노를 표출했다.손아귀 힘이 어찌나 센지 공수진은 자신의 턱뼈가 이대로 부서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고통도 고통이지만 이경빈이 그때 당시의 진상을 모두 알아버렸다는 것에 그녀는 심장이 쿵 하고 떨어졌다.‘어떻게 된 거지? 이경빈이 그때 일을 다 알아버렸다고? 증거는 이미 내가 다 소거했는데?! 그래, 그냥 추측일 뿐일 거야. 실질적인 증거는 없는 게 분명해!’“오, 오해예요.”공수진이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나는 탁유미 씨를 범죄자로 몰아간 적 없어요. 나는
네티즌들은 공수진과 주원호에게 각종 비난과 욕을 해댔고 대대적으로 기사가 난 탓에 병원 관계자들도 공수진의 병실을 지나칠 때마다 한심하다는 눈빛을 보냈다.공수진은 그들의 눈빛에 제대로 고개를 들 수 가 없었고 이를 깨물며 하루빨리 퇴원하기만을 기다렸다.하지만 드디어 다가온 퇴원하는 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나섰지만 그녀를 기다리는 건 아침부터 진을 치고 기다린 기자들이었다.“공수진 씨, 현재 인터넷에서 떠돌고 있는 동영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이강 그룹 대표의 약혼녀로 알고 있는데 이경빈 씨는 동영상에 대해 뭐라고 하던가요? 결혼식은 예정대로 진행하시는 겁니까?”“유산한 아이가 이경빈 씨의 아이가 아니라 영상 속 남자분의 아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맞습니까?”“탁유미 씨를 음해하려고 일부러 밀쳐진 척 넘어져 유산했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연이은 날카로운 질문에 공수진의 얼굴은 흙빛이 되어버렸다.“찍지 마세요! 찍지 마시라고요!”공씨 부부는 공수진이 지나갈 수 있게 고용한 경호원들과 함께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기자들을 뚫고 간신히 차에 오른 후 공수진은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탁유미 때문에 이게 뭐야!”만약 탁유미가 아니었으면 자신이 이런 꼴을 당할 일도 없었을 거라며 그녀는 모든 걸 다 탁유미 탓으로 돌렸다.“일단 S 시를 떠나는 게 좋겠다. 며칠 뒤에 사태가 조금 잠잠해지면 그때 다시 경빈이 불러서 얘기하는 거로 해.”공한철의 말에 차량은 고속도로로 향했다.그렇게 20분쯤 달렸을까,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모를 검은 차들이 거리를 바짝 좁혀오며 공수진네 차를 에워싸기 시작했다.끼익.“뭐야, 저것들은!”공한철이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다.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는 정차된 앞차에서 내린 사람을 보고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공씨 일가를 막아선 건 다름 아닌 이경빈이었다.이경빈이 내리자 검은 차에서 내린 부하직원들이 하나둘 공수진 일가를 차에서 끌어내기 시작했다.“경, 경빈 씨, 이게 지금 뭐 하는 거예요?
“하지만...”임유진은 말을 하려다가 순간 깜짝 놀라며 두 손으로 자신의 배를 끌어안았다.“왜 그래?”강지혁이 잔뜩 긴장한 채로 물었다.“방금 아이가 내 배를 찼어!”임유진은 이쯤이면 태동이 느껴질 거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전까지는 거의 착각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태동이 미약했는데 방금 그건 정말 누가 뭐라 해도 확실한 태동이었다.심지어 지금도 계속해서 배를 차고 있다.“아이가 네 배를 찼다고?”강지혁은 시선을 그녀의 배로 옮겨 조금 얼떨떨한 얼굴로 바라보았다.“응! 한번 만져봐.”임유진은 그의 손을 들어 자신의 복부를 만지게 했다.강지혁은 확실하게 느껴지는 태동에 조금 놀랍기도 하고 또 신기하기도 해 그만 몸이 경직되어버렸다.태동이라는 게 무엇이고 언제쯤 느낄 수 있는지에 대해 그도 임유진 못지않게 잘 알고 있다.하지만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으로 실제로 이렇게 태동을 느끼게 되니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이제야 진정으로 이 작은 배속에 생명이 자라고 있다는 것이 확실하게 머리에 박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이 조그마한 아이들은 머지않아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될 거고 크게 울고 또 활짝 웃으며 서서히 커가게 될 것이다.임유진은 강지혁의 넋을 잃은 표정에 피식 웃었다.평소에도 물론 상당히 귀엽지만 지금은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귀여워 보였다.이런 얼굴은 아마 그녀밖에 보지 못했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녀밖에 보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임유진은 소파에 앉아 편한 자세를 취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아이가 차고 있는 곳이 어딘지 그의 손을 이곳저곳 움직이며 알려주기 시작했다.아이들은 큼지막한 아빠의 손길을 느껴서 그런지 그에 보답하듯 더 세게 발길질을 해댔다.덕분에 임유진의 배는 계속해서 꿈틀거렸다.강지혁은 무릎을 꿇고 그녀의 복부를 쓰다듬으며 진지한 얼굴로 태동을 느꼈다.임유진은 그 모습을 보더니 결국 참지 못하고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갑자기 사진은 왜 찍어?”강지혁이 고개를 들며 물었다.“기념하려고. 나중에
강지혁은 꼭 무엇을 무서워하고 있는 것 같았다.대체 뭘?혹시 진기태와 연관이 있는 건가?아까 진기태는 분명...임유진은 순간 뭔가 알아차린 듯 고개를 들며 그에게 물었다.“혁아, 너 혹시 내가 화낼까 봐 무서워서 이러는 거야?”그녀의 말에 강지혁은 몸은 또다시 굳어졌고 호흡도 다시 거칠어졌다.그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 조금 더 그녀를 제 품에 끌어안았다.‘정답인가 보네.’강지혁은 지금 진기태가 마지막에 한 말 때문에 그녀의 눈치를 보고 있다.‘하긴 아까 엄청 세게 화를 내기는 했지.’강지혁은 아까 꼭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모습으로 진기태를 협박했다.꼭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건드려진 것 같은 모습이었다.“걱정하지 마. 화 안 낼 거니까.”강지혁이 떨리는 목소리로 임유진에게 물었다.“정말...? 정말 화 안 내?”“응. 안 내.”임유진은 미소를 지으며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감쌌다.“진 회장이 너 찾아온 거 진가원 프로젝트 때문이지? 네가 내 복수를 해주겠다고 이러는 거, 나 알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고작 그 사람 말 때문에 우리 사이가 흔들릴 일은 없으니까.”강지혁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임유진을 바라보았다.“그 인간이 했던 말, 정말 신경 안 써?”“응. 그때는 너도 내가 누군지 몰랐을 때잖아. 그때의 나는 그저 너한테 네 약혼녀를 차로 죽인 사람일 뿐이었어. 너한테 잘 보이겠다고 사람들이 일부러 나를 더 괴롭히기는 했지만 그게 네 탓은 아니니까. 그러니까 너 원망할 생각 없어.”임유진은 강지혁을 빤히 바라보며 그의 눈가를 부드럽게 매만졌다.“사실 너랑 사귀고 너를 정말 사랑하게 됐던 순간부터 나는 그 일을 이미 내 마음속에서 지웠어. 그리고 너도 그랬잖아. 만약 조금만 더 빨리 나를 알게 됐으면 절대 내가 그런 고통을 겪게 하지 않았을 거라고.”그녀의 말에 강지혁의 눈빛이 더욱 심하게 흔들렸다.그녀는 그가 무서워하는 게 그저 그 이유일 뿐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방관한 것으로 여태 이렇게까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진기태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다만 진기태는 몸을 비스듬히 한 채 앞이 아닌 사무실 안을 바라보고 있어 임유진의 존재를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강지혁, 네가 뭘 잊고 있는 것 같은데 임유진이 그렇게 된 건 네 탓도 있어!”진기태의 분노 어린 말에 임유진은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저도 모르게 앞으로 두어 걸음 걸어갔다.그러자 그때 사무실 안에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거기서 한마디만 더 하면 그때는 진화 그룹과 당신 가문을 완전히 없애버릴 거야.”임유진은 비스듬히 열린 문틈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강지혁은 평소와 달리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을 하고 있었고 심지어 그 예쁜 두 눈에 살기도 어려 있었다.‘살기...? 내가 뭘 잘 못 본 건가?’진기태는 강지혁의 위협에 겁을 먹고는 그의 눈을 피하려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드디어 임유진과 눈이 마주쳤다.그는 임유진의 얼굴을 보더니 금세 험악한 표정을 지었고 곧바로 씩씩거리며 자리를 떠났다.강지혁도 그때쯤 임유진이 밖에 있다는 것을 눈치챘고 그는 그녀를 보더니 그대로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서둘러 분노를 지우고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려고 해봤지만 눈가에 서린 당황함과 초조함은 감춰지지 않았다.진기태와의 대화를 들은 걸까?만약 들었으면 어떡하지?임유진이 이상함을 눈치채고 멀리하려고 들면...강지혁은 그 생각에 순간 호흡하는 것조차 곤란해지며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임유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혁아, 방금 진기태 회장이랑...”“일 얘기 했어. 일 얘기만...”강지혁은 서둘러 대답하며 평정심을 되찾으려고 애썼다.하지만 심장은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빨리 뛰고 호흡은 점점 더 딸리기 시작했다.“너 얼굴이 왜 그래? 괜찮아?!”임유진은 창백한 그의 얼굴이 걱정돼 쓰다듬으려 손을 뻗었다.하지만 얼굴에 닿기도 전에 강지혁에 의해 손이 저지당하고 말았다.“난... 괜찮아.”임유진은 강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