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절 소중하게 대한 건가? 고작 옷 몇 벌에 가방 몇 개? 내가 필요한 게 이거인 것 같아? 신분을 공개한다며 카메라 앞에 적나라하게 혼외딸을 폭로시키고!”이렇게 하는 이유가 모든 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으라는 거 아닌가?진짜 그렇게 소중하게 생각한다면 고 씨네 가족에 어울리게 도와주고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랑 어울리게 도와줘야지!고주영의 표정이 점점 더 안 좋아졌다.“더러운 년. 자기가 일을 망쳐놓고 지금 와서 다른 사람 탓하는 거야?”예전엔 이런 욕을 들으면 화를 내버리는 성신영이였지만 지금은 아랑곳하지 않았다.이미 지옥에 있기 때문에 그저 자기를 밀쳤던 그 사람도 같이 끌어내리고 싶을 뿐이다. “고주영 아가씨. 제가 혼외딸이라 대접받지 못하는건 사실이지만, 우리 고귀하신 고 씨 아가씨도 저따위 혼외 딸보다도 대접을 못 받으시잖아요.”“…”고주영은 입을 꾹 다문 채 화를 억누르고 있고 차한숙도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사모님, 이렇게 오랫동안 저만 건드려온 건 단지 고정남의 혼외 딸이 득을 보지 않게 하기 위해서잖아요? 그런데 그거 아세요? 지금 그 혼외 딸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사모님이 두 손 모아 바친 거일걸요?”“대체 뭘 말하려는 거야?”“아직도 모르겠어요? 강유리잖아요. 고정남의 혼외 딸.”성신영의 말투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병원에 갇힌 며칠 동안 그녀는 이미 모든 걸 다 알아버렸다.고정남의 태도를 보면 그녀를 친 딸로 생각한 적이 없다.엄마말도 틀린 부분이 없다. 고우신이 그녀한테 접근한 이유는 그녀가 친근해 보여서가 아니라 그녀가 갖고 있는 한 물건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일 의심스러웠던 것이 성홍주가 선물해 준 귀걸이다. 하지만 그날 성홍주는 이 귀걸이가 육경원이 그렇게 좋아하는 스타일이라고 칭찬을 너무 해서 성신영도 아무런 의심 없이 그걸 끼고 나간 것이다. 자세히 알아보니 강유리 엄마의 유품인 거였다.차한숙은 멈칫하더니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설마, 지금 내가 널 싫어하는 이유가 단지 네
발표회가 망한 들, 대중들 앞에 그녀를 소개한 건 사실이다. 고 씨네가 그녀를 버리지 않은 이상, 자기는 고 씨네 사람이다.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내쫓는 건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지금 내가 할 일은, 강유리의 신분을 밝히고 차한숙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 게다가 이 자리까지 차지하면서 내 미래를 위해 생각하는 것. 그 늙어빠진 년이 한 말 중에 맞는 말은 있다.“모든 건 자기 손에 쥐어있어야 한다.”고주영이랑 차한숙은 몇분간 침묵을 유지했다 고주영이 먼저 말을 걸었다. “엄마, 걔 말을 믿을 만하다고 생각해? 강유리 진짜…”그녀는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의혹과 불신의 눈빛이었다.“이간질하는 수작이지 뭐.” 차한숙은 결론을 지었다. “하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라. 조사는 해봐야겠어.”“…”고주영은 대답이 없었다.강학도은 퇴원 후에 계속 JL빌라에 살고 있었다. 계약하기 전, 성홍주는 예전 모습과는 달리 이것저것 관심하며 강학도을 돌보려고 JL빌라를 자주 드나들었다. 심지어 강학도을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겠다고 제안까지 해왔다. 손녀 집에 살면 사람들의 구설에 오른다면서…하지만 계약을 끝내니, 갑자기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며 다시는 그들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심지어 전화 한 통도 없었다…“이젠 관심하는 척도 안 하는 거야?”강유리는 소파에 앉아 강학도이랑 얘기하며 불만을 토했다.강학도은 연신 웃으며 대답했다.“목적도 달성했는데 계속 관심하는 척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성홍주는 처음엔 유강그룹만 단단히 붙잡고 있었던 이유는 뒤에 누군가가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지지하는 사람이 없으니, 유강그룹은 그저 빈껍데기일 뿐.어떻게 해야 제일 많은 이익을 볼 수 있는지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전에는 강유리가 회장이 되는 걸 막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지지하고 있는 것이다.강유리가 회사를 운영하는 능력은 잘 알고 있으니 지금 자기가 회장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유강그룹이 망하지 않는 이상 돈
강유리는 자기도 어느 날부터 손주 문제에 골치가 아파야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심지어, 결혼식도 안 올렸는데. 지금 생활이 만족스럽다. 하지만 이미 결혼을 한 상태라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았다. 아직 결혼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송미연이 결혼식 때문에 이것저것 그녀한테 상의하곤 했었는데 그제야 결혼한 실감이 났다. 이제야 겨우 결혼 할 실감이 났는데 벌써 손주 얘기가 나오다니…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근심 마세요. 항상 노력하고 있는데 방해가 된 건 아닙니다.”육시준은 진지하게 해석했다.강유리는 그런 육시준을 노려보았고 강학도은 웃고만 있었다,“그래, 그러면 됐어. 방해가 안 됐다고 해도 너희 신혼집인데 같이 산다는 건 말이 안 되지. 게다가 나이도 들더니 옛집이 좋아.”“…”이렇게까지 굳건하신데 육시준은 더 이상 말리지 않았다. 옛집이 좋다고 하는 걸 보니 근처의 연희동 오피스텔로 모시고 싶다던 생각도 때려치웠다.밤이 깊어졌다.강유리는 침대에 누워 옆에서 아이패드를 보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느껴져서 그런지 육시준은 고개를 돌려 그녀와 눈을 마주쳤다.“피곤하다며? 잠이 안 와?’“자기야, 전에 나한테 거짓말한 거지?”“???”강유리는 생각하다 벌떡 일어나 진지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전에 애 때문에 다퉜잖아. 너도 마지막엔 애를 갖지 않기로 타협하고.”육시준은 생각이 났다.전에 강유리가 생리가 미뤄진 탓에 오해가 있었었다.강유리 마음속엔 유강그룹뿐이고 그의 자리가 없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얘기를 해보고 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난 후엔 애를 갖는 일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았다.“그런데 넌 애를 갖고 싶잖아?”강유리는 갸우뚱거리며 진지하게 물었다.“할아버지한테 한 말 때문에 전에는 내가 거짓말 했다고 생각하는 거야?”“거짓말까지는 아니고… 물러선 거라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지.”“내가 물러설 사람으로 보여?”“…”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강유리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당연히 내 문제는 아니지! 이런 경우는 보통 남자들 탓이거든.”육시준의 안색은 갑자기 안 좋아졌다.“내 능력을 아직도 잘 모르겠어?”“…”갑자기 이러면 반칙이지. “아니면 오늘 밤에 한 번 해봐?”“아니, 아니. 괜찮아.”“…”육시준은 그녀만 뚜렷이 바라보고 있었다. 방 안의 온도도 그 차가운 눈빛 때문에 떨어지는 듯하였고 강유리는 어쩔 줄 몰라 하였다.눈빛을 저도 모르게 돌렸고 중얼거리며 해명했다.“연애만 하기로 협의했잖아. 갑자기 왜 애기 얘기가 나와.”이거야 말로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었다.육시준의 차가운 눈빛은 점점 온기로 따뜻해졌다.“그래. 그러면 먼저 연애만 하는 거로 해.”“???”연애한다면서 왜 만지작거리는데.강학도는 역시 행동파인지 옛 저택으로 이사 가겠다고 말하자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떠날 준비를 모두 끝냈다.토요일 오전.강유리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일찍 기상하여 강 씨네 옛 저택으로 향했다.가는 길 내내, 강유리는 강학도가 달라졌다며 불만을 토했다. 분명 전에는 자기를 그렇게 예뻐했으면서 지금 와서 떨어져 살질 못해서 안달이라고.“그저 빨리 깨난 거에 불만이 있는 거 아니야? 너더러 바라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는데. 시준이가 나랑 같이 가면 되지.”강학도는 그녀의 꼼수를 집어냈다.“걔가 뭘 안다고 그래요? 옛 저택이 이젠 비어있은 지도 얼마나 됐는데, 진짜 들어가 살 수 있는 거 맞아요?”운전석에 있던 남자가 대꾸했다.“류 집사님이 먼저 몇 명 데리고 갔어. 미리 가서 청소해 놓을 거야.”먼저 이것저것 수선하고 청소하고 며칠 뒤에 이사할 계획이었지만 강학도가 이렇게나 빨리 돌아가고 싶어 할 줄은 생각도 못 했다.강유리는 말하고 있는 육시준을 바라보면서 생각했다.은근히 세심한 면이 있네.강학도랑 수다를 떨다보니 점심쯤 되어야 옛 저택에 도착했다.강유리가 상상했던 스산한 모습과 달리 웅장하고 깔끔한 저택이었다. 까만 대문은 반짝거렸고 겨울이지만 마당의 꽃들은
지금 뻔뻔하게 말하고 있는 건 왕소영의 가족들이다 강학도가 아프고 강유리도 해외로 간 후에 왕소영의 가족들이 이 저택에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몇 년 살다 보니, 진짜 자기 집이라고 생각한 모양인 것 같다.경치도 좋고 시설도 완벽하니, 내어주기 싫은 건 당연하다. 예전 같으면 강학도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났다는 걸 알면 바로 도망갔을 사람들이다. 강 씨네 눈치를 보고 살아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은…“유리야, 너도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예의를 잘 모르네. 비록 엄마없이 컸다고 하지만 네 이모한테서도 많이 배웠을 텐데, 날 적어도 아주버니라고 불러야 하는 거 아니겠어?”“참 염치가 없으시네요. 그쪽이 왜 제 아주버니세요?”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뒤바뀌었다.“강유리, 내가 경고하는데 말조심해. 지금 유강그룹이 누구 덕을 보고 있는지 생각해 봐! 소영이가 안 도왔으면 너네 유강그룹은 내일 당장 망해버리는 거야.”강유리는 그의 말에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웃음이 터져버렸다.“유강그룹이 왕소영 돈을 가지고 버티고 있는 거라고 누가 알려준 거에요? 성홍주?”왜 갑자기 이렇게 당당해졌나 했더니 이것 때문이네. 왕기현은 그녀의 태도를 보고 불쾌한 듯 눈썹을 찌푸렸다.바로 대꾸하려고 했는데 연륜이 느껴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왜 이렇게 시끄러운 거야?”별장 대문이 열리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어르신이 걸어 나왔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주위의 모든 사람을 훑어보았다.결국 그의 시선은 강학도한테로 머물렀고 입을 열었다.“시댁이 오셨네. 밖에 있지만 말고 들어오세요.”마치 이 집의 주인인 듯한 말투였다. 자기가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고는 생각도 하지 않는 모양이다.강유리가 반박하려고 했으나 옆에 있던 강학도가 그녀의 손등을 가볍게 토닥이면서 달래주고는 집안으로 들어섰다.육시준은 류 집사님한테 눈치를 주고 강유리의 손을 잡고는 강학도 뒤를 따랐다.객실에는 이미 왕 씨네 가족들이 소파에 앉아있었다.강유리 일행은 그 옆에 서 있었고 누가 봐도 이 집의 손
지금 다들 부자 집안의 질서에 적응을 다 한 모양이다. 남존여비에 장유유서…중간에 앉아서 이 난장판을 지켜보고 있는 노인네는 이미 습관이 된 모양인지 아무 말도 하고 있지 않았다.강유리가 뭔가 말하려던 참에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육시준의 손이 살짝 그녀를 일깨웠다.고개를 돌리니 웃음기 가득한 그의 얼굴과 마주했다. 왜 이러지 싶을 때 육시준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귓가에 대고 가볍게 말했다.“할아버지가 알아서 하실 테니까, 우리는 옆에서 지켜보기만 하자.”“…”육시준의 따가운 기운이 귀에서부터 온몸으로 퍼져 온몸이 간질간질했다.항상 무슨 일이 생기면 앞서서 해결해 온 강유리이기에 누군가의 뒤에 숨어있는 느낌을 거의 까먹을 뻔했다.육 씨네 가족이랑 같이 지낼때만은 달랐다.육지원이랑 송미연은 조그만 일이 있어도 항상 강유리와 육시준대신에 해결해 주기 때문에 강유리는 아무것도 할 필요 없이 사랑을 받기만 하면 됐었다.하지만 이건 육 씨네에 있을 때만 한정된 거라는 걸 강유리도 잘 알고 있다.자기 일에 있어서는 그래도 강유리가 직접 나설 수밖에 없다.“괜찮아?”육시준은 그녀의 의견을 다시 물어왔다.강유리는 순진한 눈망울로 웃으며 육시준한테 대답했다.“응. 할아버지가 계신다는 걸 까먹었어.”왕 씨네는 방 하나 놓고 정신없이 다투기 시작했다. 이걸 본 강학도는 웃으며 그들을 말렸다.“이런 작은 문제가지고 싸우면 뭐가 돼. 다들 가족인데, 이런걸로 감정 상하면 안 되지.”“네가 손해 본 것도 아니니까 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겠지!”그 까탈스러운 중년 여자가 대뇌를 거치지 않고 막 말을 내뱉었다.“왕소윤!”왕순혁이 드디어 소리를 내서 제지했다.하지만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에 위엄함을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어서 더욱더 불만을 털어놓는 여자였다.“맞잖아요! 갑자기 와서 저희 계획을 망쳐버린 게 아니라면 제가 왜 오빠랑 방 하나 가지고 다퉈야 해요?”왕순혁은 경고하는 듯한 눈빛을 날리고 다시 머쓱하게 강학도를 쳐다보았다.
왕소윤의 까칠한 얼굴에는 순간 웃음으로 가득 찼고 연신 고맙다는 인사만 했다. 이 기세를 보면 당장에 강학도를 아버지로 삼을것만 같았다.하지만 이런 왕소윤의 친아버지인 왕순혁의 표정은 심상치 않았다. 강학도의 의도가 의심스러웠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부자들만 살 수 있다는 JL빌라는 너무 유혹적이어서 거절하기 어려웠다.그러기에 머뭇거리면서 다시 확인을 해왔다.“JL빌라의 집은 돈만 있다고 해도 사기 어려운데. 언제 샀습니까? 진짜 저희가 가서 살아도 괜찮습니까?”재미있네. 지금 “저희”라고 말한 거야?육시준은 눈썹을 슬쩍 치켜들었다.“당연하죠. 제가 JL빌라에 집이 두 채 있는데 하나는 제 손녀한테 줄 신혼집이고 하나는 시댁네 손녀한테 줄 신혼집입니다. 시댁네 손녀가 저희 고 씨 가족 사람이 된 다음부터 그 집이 비어있었는데, 지금 시댁 네가 들어가면 딱 맞죠.”이 말에 왕소윤의 표정이 순간 굳었다.성신영 신혼집을 말하는 거네?그 집은 이미 알고 있는지 오라다. 예전부터 그 집으로 가고 싶었지만, 왕소윤이 죽어도 싫다고 하는 탓에 가질 못하고 이 촌구석에서 살게 된 것이다. “지금 놀리시는 거에요? 그 집이 우리 조카네 신혼집이라는 걸 제가 모를 줄 알세요? 갑자기 그게 왜 당신 집이 됐는데?”그녀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질문을 해왔다.강학도는 무덤덤하게 대답했다.“모두 한 가족인데. 내 물건, 네 물건이 어디 있어요.”“걔 물건이 왜 당신 거에요? 진짜 이렇게까지 뻔뻔하다니. 남의 신혼집도 제멋대로 안배하고.”강학도는 웃음기를 거두고 진지하게 대답했다.“뻔뻔하다는 말도 아는 사람이 왜 남의 집에 이렇게 눌러살면서 나가지 않는 건가요?”“난…”“자네가 밟고 있는 이 땅, 우리 강 씨네 재산인데. 지금 우리 강 씨네 가족이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는데 당신들 눈치도 봐야 되는건가?”“…”강학도는 평소에 엄청 온화한 사람이지만 화만 내면 기세가 엄청났다.소파 중간에 앉아있다고 해서 이 집의 주인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는 것이다.
”???”사건의 전개에 당황한 강유리는 떠나가는 트럭을 바라보았다.류 집사님과 문기준은 조용하게 문 앞에 서 있었고 그 옆에는 건장한 경호원 몇 명이 있었다.강유리는 경호원들을 보고 육시준한테 물었다.“네가 경호원 부른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저 사람들이 끝까지 안 갈까 봐.”왕 씨네 한 가족들은 어린애부터 노인까지 모두 뻔뻔하기 그지없어서 무력으로 해결해야 하는 때가 오면 그렇게 하려고 부른 경호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순순히 갈 줄이야…“할아버지, 대체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 하는 걸까요? 왜 저희가 돌아와달라고 빌것으로 생각하는 건가요?”아무리 생각해도 답을 얻어내지 못한 강유리는 강학도한테 물었다.강학도는 잠시 생각하는 척하더니 대답했다.“인터넷에 그런 사람있잖아.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자신감만이 하늘을 찌르는 사람들.”“…”할아버지가 인터넷서핑을 이렇게 즐겨할 줄은 더욱더 몰랐다.빌라 밖으로 나가는 승용차 안에서 왕기현은 옆에 있는 왕순혁을 보고 못 참고 물었다.“아버지, 이렇게 가면 어떡해요! 집을 이렇게 내주면 저희는 어디 가서 살아요!”왕소윤도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그러니까요 아빠. 너무 충동적이잖아요. 식구들도 많은데 호텔이라도 가요?”“소영이 생활비도 입금이 안 됐는데, 호텔에 살면 돈도 많이 나갈 거고.”“인제야 돈이 근심돼? 휘현이랑 해인이 각 방 주겠다며?”“…”다시 말다툼이 붙을 것 같으니 빨리 나와서 말리는 왕순혁이다. “그만해! 꼬락서니라고는. 날마다 이런 시답잖은 일로만 싸우고.”왕순혁의 말에 둘 다 입을 다물었다. 앞으로도 왕순혁한테 빌붙어 살아야 하는데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 “네 매부집가서 살자. 맨날 자기네 집의 위치가 좋다고 자랑하잖아.”왕소윤의 얼굴은 순식간 웃음으로 뒤덮였다.“진짜요? 저희 다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왕기현은 아직도 염려가 가득한 모양이다.“사람도 많은데 진짜 괜찮은 거 맞아요? 대충 산다고 해도 너무 비좁잖아요! 별장
신주리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난 최근에 일이 많지 않아 괜찮지만 다음 달에 곧 새로운 촬영을 시작할 거야.”육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음 달에 돌아가면 촬영 일정을 맞출 수 있어요.”육경서는 그들이 두어 마디 말로 일정안배를 끝내가 다급하게 입장을 밝혔다.“나도 있어! 주리가 돌아가지 않으면 나도 안 돌아갈래!”신주리는 흘겨보며 물었다.“넌 바쁘지 않아?”“마침 이 영화가 촬영을 마감할 예정이야. 기타 활동은 중요한 건 뒤로 미루고 중요하지 않은 건 매니저더러 거절하게 하면 돼.”육경서는 미처 깊게 생각하지도 않고 말했다.강유리는 반대하지 않고 귀띔했다.“강덕준 감독이 널 죽일 수도 있어.”육경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괜찮아. 한 달뿐이잖아. 설마 날 따라 여기까지 오겠어?”강덕준이 그를 죽일지는 둘째치고, 어쨌든 지금 바론 공작은 그를 죽여버리고 싶었다.그는 그저 예의상 딸아이의 친구들을 초대해서 놀게 했을 뿐인데 결국 딸아이가 다음 달 귀국하는 일정을 안배하게 되다니?병원에서 육시준이 비아냥거리던 말을 그는 실행할 계획이었다. 단계마다 다른 이유로 딸을 만류하고 싶었고 시름 놓고 이곳에서 편히 안태하게 하고 싶었다.그러나 사위는...만약 자기 일을 다 처리했다면 남아있어도 괜찮았다. 부양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그러나 지금 덤으로 두 사람이 더 생겼고 또 이 두 사람은 시간 맞춰 돌아가야 했다. 돌아가지 않으면 재촉당할 것이 뻔하다.“두 분이 바쁘면 굳이 남지 않아도 돼. 유리는 지금 손님 접대하는 게 불편하거든.”그는 정색해서 다시 말했다.그러자 여러 가지 눈빛이 삽시에 바론 공작을 향했다......신주리와 강유리는 제작팀과 반나절만 휴가를 냈기 때문에 오후에 돌아가야 했다. 그러나 오전 시간만으로 두 친구가 얘기하기엔 터무니없이 부족해 강유리는 직접 감독에게 전화해 하루 연장했다.점심시간.신주리는 육시준의 자리에 앉아 강유리의 옆에 누워 계속 절친끼리 이야기를 했다.강유리는 이번에 단도직입적
저쪽에서 한참 동안 침묵이 흘렀다.상대방도 자신만큼 놀란 모습을 상상하며 육경서는 다음 이야기가 기대되었다.그러나 생각지도 못하게 송미연은 놀랐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없었다.“유리 찾으러 갔어? 프로그램을 녹화한다며 왜 그들을 찾으러 갔어? 거기는 시간이 아직 이르지 않아? 이맘때면 유리는 잠을 잘 자지도 못했을 건데...”송미연은 육경서가 철이 없이 강유리가 잘 쉬지 못하게 방해한다고 한바탕 야단을 쳤다.그러나 그녀의 말은 한 가지 중요한 소식을 알렸다.“진작 알고 있었어요?”“물론이지!”송미연은 자랑스럽게 말했다.“며느리가 임신했는데 이렇게 큰 소식을 어떻게 바로 나에게 알려주지 않을 수 있겠어? 경고하는데 너무 떠들지 마. 네 형수님을 화나게 하면 안 돼! 그냥 녹화만 잘하면 되는 거 아니야? 주리가 널 용서했어? 왜 돌아다니며 다른 사람의 가십거리를 알아내려고 해! 이번에 돌아와서 주리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면 넌 아예 돌아오지도 마!”...화제가 자신을 욕하는 방향으로 변해버리자 육경서의 열정은 순식간에 식어버렸고 목소리도 누그러들어 어쩔 수 없이 말했다.“알았어요. 알았어요. 제가 원한 줄 아세요? 이것도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잖아요...”“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모두 네가 자초한 거잖아! 쌤통이야!”“...”“섬에서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니 넌 주리를 잘 돌봐야 해. 난 실시간으로 라이브 방송을 살펴보고 있을 테니 넌 주리 괴롭히지 마.”송미연이 또 당부했다.육경서는 머뭇거리다가 정색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마세요.”송미연은 또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전화를 끊었다.육경서는 어두워진 휴대폰 화면을 보며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잘됐어. 아빠 엄마가 다 주리를 좋아하니 나중에 언제든지 주리는 억울함 당하는 일이 없을 거야. 적어도 내가 있는 한 억울함 당하지 않을 거야...”...점심은 빌라의 셰프가 만든 영양식이다. 맛은 좋지만 오래 먹으면 질릴 수 있어 강유리는 이 음식을 보며 저도 모르게 한숨
그러나 앉은 자리가 아직 따뜻해지기도 전에 육경서는 흥분된 듯 바로 일어나 소리쳤다. “뭐? 임신했다고?” 바론 공작은 짜증 섞인 눈길로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목소리 좀 낮춰. 뭘 그렇게 놀라!” 그는 지금까지는 침착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사실 소식을 들었을 땐 당황하고 흥분했던 걸 그가 모를 리 없었다. 육경서는 입을 막으며 어색하게 다시 앉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은 반짝이며 감출 수 없는 흥분이 드러났다. ‘나 이제 삼촌 된다! 삼촌 된다!’ “의사가 말하기를 첫 3개월은 불안정하니까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했다. 아버지도 이 소식을 공개하지 말고 태아가 안정될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셨다.” 바론 공작은 드물게 인내심을 가지고 설명했다. 그는 그 말을 끝내며 신주리를 한번 훑어봤다. “그래서 나는 유리를 위해 사람들을 안배해 가까이서 돌보게 한 거다.” 그의 시선을 느낀 신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는 공작을 한 번 보고 다시 눈을 내리깔며 강유리의 아랫배를 바라봤다.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마치 한번 만져보고 싶은 듯했지만 참았다. 그녀의 눈은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고 육경서와 같이 흥분과 기쁨을 숨길 수가 없었다. 그녀는 강유리의 아랫배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이 안에 작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거야?” “맞아.” 강유리가 그녀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신주리는 표정은 진지했지만 눈 속에 담긴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만져봐도 돼?” 육경서도 순간 정신을 차리며 손을 내밀었다. “나도...” “안 돼!” “안 돼!” 두 명의 목소리가 동시에 차갑게 외쳤다. 그들의 무리한 요구를 바로 거절했다. 강유리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옆에 있던 두 남자를 쳐다봤다. 그녀는 그들에게 체면을 차리지 않았고 대신 신주리에게만 속삭였다. “조금 있다가 방에 들어가면 만져도 돼.” 육시준과 바론 공작은 동시에 얼어붙었다. ‘우리가 안 들릴 거라고 생각하나?’ 육경서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유리를
육경서는 얼굴에 기쁨이 가득한 채 입을 열려던 순간 정원에서 누군가가 다가왔다. 그 사람은 유창한 한국어로 두 사람에게 따뜻하게 인사했다. “이쪽이 둘째 도련님이랑 신주리 씨 맞으시죠? 강유리 아가씨께서 이미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 부탁드려요.” 신주리가 부드럽고 예의 있게 대답했다. 육경서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 왜 이렇게 때맞춰 나타나는 거지? 다른 때는 왜 안 오고, 바로 이때 오냐고!’ “잠깐만요. 저희 형수 말고 일단 먼저 빌라를 둘러보고 싶어요!” 그가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안내하는 집사를 붙잡았다. 집사는 그의 눈을 한 번 쳐다본 뒤 다소 의아해하는 표정으로 멈췄다. 신주리는 미소를 띤 채 침착하게 말했다. “미안해요. 낯을 가려서 그래요.” 육경서는 혼란스러웠다. ‘이게 무슨 말이야? 내가 낯을 가린다고? 왜 그렇게 갑자기...’ 집사는 이해한 듯 웃으며 공작님도 그들의 방문을 매우 기쁘게 생각해 오늘 특별히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전했다. 육경서는 그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았고 눈앞의 신주리를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봤다. ‘주리는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 너무 쉽게 대답해서 다시 부정하려는 건가?’ 그들이 정원으로 들어섰고 이곳은 여전히 고요하고 우아한 분위기였다. 뜨거운 태양 아래 한쪽에서 차와 다과가 준비된 작은 테이블이 보였다. 강유리는 햇볕을 가린 파라솔 아래에 앉아 있었고 그 앞에는 육시준이 전화를 끊고 있었다. 바론 공작이 불만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하루 종일 그 전화기 들고 있으면 안 돼! 그렇게 바빠? 전자기기 방사선이 얼마나 해로운지 알지? 의사 선생님이 말했잖아. 첫 세 달은 불안정하다고, 푹 쉬어야 한다고!” 육시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돌아갔으면 이미 처리했을 일인데요.” 바론 공작은 얼굴에 불편한 기색이 스쳤다. “일이라는 게 끝날 수 있나? 돌아가면 내 딸과 시간을 제대로 보낼 수 있을까 몰라!” 육시준이 말하려던 순간 강유
감독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강하게 반박하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규정에 따르면 녹화 중에는 제작진 팀을 이탈하면 안 됩니다.” 역시나 신주리는 가볍게 되물었다. “녹화 시작할 때 그런 규정은 없었잖아요? 갑자기 추가된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지금 상황이...” “그럼 우리를 일부러 견제하려는 건가요? 그럼 그냥 프로그램 안 하면 되죠?” 감독은 말문이 막혔다. 사실 첫 번째 시즌에서 육경서가 사고를 당한 이후로 그는 이미 이 두 사람에게 꼼짝 못 하고 있었다. 조건을 협상하든 규칙을 정하든 이 둘이 하겠다고 하면 다행이고 안 하겠다고 하면 모든 게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결국 이를 악물고 그는 포기했다. “알겠어요, 알겠어! 두 분 다 제가 졌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든 꼭 행선지를 알려주시고 제작진 팀에서 두 분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걱정 마세요. 너무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점심 먹고 바로 돌아올게요!” 신주리가 대범하게 말했다. ‘점심도 먹고 온다고?’ 하지만 그가 불만을 표현하기도 전에 두 사람은 이미 유유히 그의 앞을 지나쳐 나가버렸다. 호텔 문을 나서자마자 감독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나른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강 대표님, 경서 씨랑 주리 씨가 지금 강 대표님을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프로그램 효과를 위해서 행선지에 대한 건 절대 발설하시면 안 됩니다!” 감독이 진지하게 말했다. 강유리가 태연하게 대답했다. “만약 제가 발설하면요?” 감독은 순간 당황했다. 그는 이런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 이건 우리 회사의 프로그램 아니었나? 이렇게 마음대로 행동해도 되는 거야? 시청률이 안 오르면 강 대표님에게도 손해 아닌가?’ 감독은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어떻게든 이 대형 회사를 설득해야겠다고 결심했지만 강유리는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말했다. “농담이에요. 발설하지 않을 테니 걱정 마세요.” 감독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
비행기에 오를 때 각자 다른 생각을 품고 있었고 내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땐 이미 다음 날 새벽이었다. 제작진 팀은 미리 준비한 차를 타고 그들을 예약된 호텔로 보냈다. 해변가에 위치한 경치가 아름다운 5성급 호텔이었다. 모두들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번에 제작진 팀 정말 큰돈 쓴 거네! 이게 진짜 여행 같아!” “그렇지. 갑작스러운 느낌도 있지만 일정은 꽤 합리적이네!” “응, 또 감사한 건 처음에 우리 주리랑 경서에게 그 사건이 터진 후로 대우가 점점 더 좋아졌다는 거야. 그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얻은 거라니까!” 모두가 웃으며 체크인 절차를 마쳤다. 그때 감독 팀에서 메시지가 왔다. “오늘 밤은 여기서 쉬고 내일은 섬으로 갑니다.” 모두들 당황했다. ‘그래서 목적지는 여기가 아닌가?’ “목적지는 반대편에 있는 작은 관광 섬입니다. 규모는 작지만 최근 몇 년 동안 관광업이 급성장했습니다. 얼마 전 이 섬의 소유자가 바뀌어서 다시 한번 큰 화제를 일으켰죠.” 감독이 그렇게 말하자 신주리는 점점 더 익숙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게 바론 공작이 유리에게 선물한 섬이죠?”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육경서는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우리 형수를 설득했어요?” 감독 팀은 미소를 지으며 답하지 않았다. 실시간 채팅창에서는 감탄이 이어졌다. [유리 언니가 이번 프로그램을 위해 진짜 대규모로 투자한 거네!] [하하하, 유리 언니가 투자한 건 아니야. 그냥 완전 부모님에게 의지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그 덕분에 도련님과 미래의 동서가 혜택을 보는 거고!” “나도 섬 주인 언니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번에 유리 언니 우정 출연할지 궁금하다!” 아침 식사 후 모두 방으로 돌아가 시차를 맞추기 위해 잠을 청했다. 카메라는 잠시 쉬어갔다. 신주리는 비행기에서 잠깐 눈을 붙였기에 이제는 전혀 졸리지 않았다. 그녀는 샤워를 하고 옷을 갈아입은 후 모자와 선글라스를 쓰고 호텔 방을 몰래 빠져나
심지어 원피스까지 캐리어 하나에 다 준비해 놨다. “안 믿을지 몰라도 내가 쇼핑 리스트까지 작성했어. 엄마한테도 참고를 부탁했거든! 원피스는 엄마가 골랐어. 안심해, 눈썰미는 진짜 좋아!” 말을 하면서 그는 정말로 쇼핑 리스트를 꺼내서 신주리에게 보여줬다. 신주리는 그 리스트를 보지 않아도 이미 믿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 놀랐다. “너 그럼 네 짐은 어쩌고? 얼마나 챙겨왔어?” “짐 하나야. 나중에 필요하면 제작진 팀에 부탁할 거야!” 육경서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말했다. 신주리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가 너무 오랫동안 육경서를 바라보고 있었던 탓인지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를 쳐다보던 신주리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육경서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봤다. “왜?” 신주리는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돌려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많아?” 육경서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게 많은 건 아니야. Y 국에 있는 우리 회사 지사에서 몇 가지 더 준비해 줬거든...” 그가 말을 하다 갑자기 멈칫했다. 불필요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했다. 신주리는 그 모습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그녀의 머릿속에 갑자기 대담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번 목적지는 네가 제작진 팀에 요청한 거 아니야?” “무슨 말이야? 내가 그런 사람인 줄 알아?” 육경서는 당황한 듯 대답했다. “네가 그런 사람 아닌가?” 육경서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고백했다. “맞아, 그런 사람일 수도 있어. 하지만 이번에는 정말 아니야! 사실 내가 쓴 목적지는 원래 해변이었어. 이런 건 결국 다 준비해야 할 것들이잖아.” 신주리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는 아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서진태와 소지석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서진태는 진지하게 소지석에게 도씨 가문의 그 양성 계획에 대해 물어보았다. 이 계획은 너무나도 비상식적이어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었다. 완전히 그들
[하하하, 이게 무슨 이상한 조합이야? 어쩐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하고 또 웃기기도 하네!] [처음부터 차 안에서 자리싸움만 아니었어도 이렇게 어색하지는 않았겠지.] [우리 지원 언니 한마디로 모든 흐름이 뒤집혔어!] [강미영은 도대체 무슨 속셈이지? 우리 지석이를 일부러 피하는 거야?] [다시 한번 말하지만 소지석 팬들 너무 이기적이지 마! 누구든 미영 언니에게 다가갈 수 있고 미영 언니는 모두를 거절할 권리가 있어!] 좌석이 정리되고 비행기가 이륙을 준비하자 라이브 방송은 일시적으로 종료되었다. 이런 24시간 라이브 촬영 프로그램에서도 이렇게 잠깐 동안만은 각자가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강미영은 라이브 방송이 종료된 뒤 의아한 표정으로 한지원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왜 한지원이 굳이 자신과 함께 앉으려고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지금 상황에서 누가 자신에게 같이 앉자고 했어도 마다하지는 않았겠지만... “미영 언니, 난 저 커플 팬이야.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얘기해. 그러니까 제발 내 최애 커플 깨지지 않게 도와줘!” 한지원은 진지한 얼굴로 이유를 털어놓았다. 강미영은 살짝 멍해지더니 결국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알겠어, 앞으로 네 최애 커플 잘 지켜주도록 할게.” 한지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밝게 웃었다. “정말 고마워! 덕분에 내 최애 커플이 마음 편히 연애할 수 있게 됐어!” 강미영은 눈가를 약간 찡그리며 물었다. “근데 언제부터 걔네 둘의 팬이 된 거야? 그리고 지금 걔네 둘 관계 꽤 안정적이던데 내가 굳이 뭐 하러 그걸 망치겠어?” 한지원은 고개를 저으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미영 언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중요한 건 이런 카메라 밖에서의 달달한 순간들이지.” 강미영은 순간 뭔가를 깨달은 듯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 “혹시 영감이라도 떠오른 거야?” 한지원은 멍하니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의 작은 호의 하나가 한 명의 유명 만화가를 탄생시킬 수도 있어!” 강
그는 단지 이런 행동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다. 강미영에게 그를 좀 더 이해할 기회를 주고 소지석에게는 그가 혼자서만 밀어붙이지 않도록 눈에 띄게 하려 했다. 그러나 이 행동을 알아본 사람들도 있지만 일부 팬들은 그를 오해하거나 비판하기도 했다. [솔직히 말해서 서진태는 너무 경계가 없지 않나요? 경쟁하고 싶다 해도 이렇게까지 급하게 해야 하나요? 왜 꼭 같이 앉아야만 하는 거죠?] [맞아요! 강미영 언니는 분명히 불편해 보였고 바로 피해서 조수석에 앉았잖아요!] [좋아한다고 해도 좀 경계를 두고 해야죠.] [근데 소지석 팬들 너무 이중잣대 아니에요? 오빠가 같이 앉고 싶으면 직설적으로 다가가도 ‘멋지다, 드디어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서진태가 다가가면 ‘경계가 없다’고 비판하잖아요?] [맞아요. 서진태는 사실 강미영 언니와 앉고 싶은 것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던 거죠.] 댓글창은 점점 떠들썩해졌다. 신주리와 육경서의 강미영에 대한 이해도는 완벽했다. 감정상에서 경쟁이 시작되면 그녀는 주저 없이 피할 것이다. 강미영은 감정을 물건처럼 경쟁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성격의 프로그램에서는 남성들끼리의 경쟁이나 여성들끼리의 경쟁이 감정을 더 순수하지 않게 만들 수 있고 로미오와 줄리엣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결국 그런 외적인 압박이 감정을 더 강화시키는 효과가 생기게 된다. 사실 그들이 정말 사랑하는 건 아닐 수도 있다. 단지 지는 걸 참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그녀와 고정남의 관계도 그랬다. 주위에서 반대할수록 더 진지하게 여겨졌던 그 감정이었지만 결국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 엉망이 된 감정이었음을 깨달았다. “네가 졌으니까 내 선물 잊지 말고 사 와.” 신주리는 자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육경서는 그 결과를 보며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돌아서서 그녀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이번엔 네가 이겼어.” 신주리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 “이번? 그럼 다음에도 나랑 내기할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