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억울한 표정으로 엄숙하게 서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이 순간 진정훈의 얼굴에서 부드러움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그는 코를 훌쩍이는 고은영을 바라보며 흥하고 코웃음을 쳤다.“아직도 안 자요? 내가 침대까지 데려다줘야 해요?”고은영은 위협적인 진정훈의 말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을 돌려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다행히 진정훈이 따라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고 고은영은 조금 안도감을 느꼈다.그녀는 집 안으로 들어아자마자 문을 잠그고 심지어 이동식 캐비닛까지 문 쪽으로 옮겼다.진정훈은 집안에서 방바닥에 가구가 끌리는 소리를 듣고 입가에 경련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저 여자가 지금 날 짐승으로 보는 거야? 뭘 저렇게까지 경계를 해?’안에서 움직임 소리가 사라지고 불이 꺼지는 것을 확인한 진정훈은 그제야 몸을 돌려 정원을 떠났다.하지만 그는 바로 돌아가지 않고 구석에 서서 담배에 불을 붙였다.웅 웅 웅 웅. 그의 핸드폰이 진동했다.핸드폰을 꺼내 확인하니 ‘유경’이라는 두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진정훈은 두통을 느끼며 미간을 문질렀다. 전화를 받는 순간 그의 목소리가 달콤하게 변했다.“유경아.”“오빠, 외할머니 뵈러 가는데 왜 난 안 데려가? 흥.”귓가에서 진유경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유경이 배준우에게 푹 빠져 있다는 것을 배씨 가문 전체가 알고 있었다.진씨 가문의 압력이 없었다면 진유경이 본인의 신분을 깎아내리는 짓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었다.이전에는 이미월과 고은영을 비롯해 배준우의 옆은 너무나 소란스러웠다.진씨 가문에서도 진유경이 아무런 명분도 없이 그들의 사이에 끼어드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비록 진유경은 진씨 가문의 양녀일 뿐이지만 진씨 가문에서는 그녀를 이미 오래전 부터 혈육으로 생각했다. “너무 멀잖아. 갔다 왔다 하는 길이 너무 험할까 봐 걱정돼서 같이 오자고 안 했어.”진정훈이 부드럽게 말하지 진유경이 말을 이었다.“나도 외할머니 보고 싶어.”외할
진정한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다 점검했어요.”그의 외할머니 진경희도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잘했어.”진정훈은 눈살을 찌푸리며 외할머니를 깊은 눈으로 바라보았다.그런 진정훈의 모습에 외할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래?”“할머니 왜 그 여자한테는 그렇게 잘해줘요?”진정훈의 인상 속에서 외할머니는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었지만 유독 진유경에게는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진정훈의 질문에 외할머니는 바로 ‘어휴’하며 입을 열었다.“그게 왜? 난 저 아이가 불쌍해서 그래. 배가 저렇게 불러서는 정설호의 낡은 집에 와서 지내는 걸 보면 분명 무슨 일이 있는 거야.”“할머니도 저 여자가 정 할아버지의 진짜 손녀가 아니라는 거 아시죠?”“당연히 알지. 정설호 그 노인네한테 손자가 몇인지 내가 어떻게 모르겠어? 그리고 정설호한테 손녀는 없어.”고은영의 앞에서 그렇게 말한 것은 고은영이 불편하지 않게 가벼운 마음으로 그녀의 보살핌을 받았으면 해서 한 말이었다.그 말에 진정훈의 마음은 더욱 무거워졌다.“할머니는 남한테는 그렇게 다정하게 잘 챙겨주시면서 왜 그동안 유경이한테는.”진정훈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는 외할머니의 안색이 어두워진 것을 발견했다.하지만 진정훈은 무서워 않고 말을 이었다.“유경이는 계속 할머니를 존경해 왔어요.”“뭘 존경해?”“하지만 할머니 남한테는.”“그래 남에게 중요한 건 예의고 가족에게 중요한 건 사랑이야. 유경이는 남도 아니고 가족도 아닌데 내가 뭘 어떻게 대해야 하니?”할머니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진정훈은 진경희의 말에 순간 말문이 막혔다.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은 더욱더 진지해졌다.“유경이 때문에 너희들 그동안 잃어버린 동생 찾는 일에는 신경도 안 썼지?”진정훈이 말했다.“뭘 신경을 안 써요? 계속 찾고 있어요. 저희가 의심하는 건 그 아이가 그때 이미...”“이미? 허. 진정훈 그 아이가 네 여동생이야. 그렇게 추측만 하면서 그 아이를 찾는 일에 소홀했어?”“할
“할아버지 진씨 할머니의 외손자가 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라는 거 알고 계셨어요?”고은영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은 말을 돌려 물을 시간이 없었다.그녀의 말이 떨어지자 전화 반대편의 공기가 눈에 띄게 조용해졌다.얼마 지나지 않아 정설호가 ‘아이고’ 하며 입을 열었다.“그건 정말 기억이 안 났어. 진씨네 딸이 죽은 지 이렇게 오래됐는데 내가 그걸 어떻게 기억해?”고은영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죽 죽었다고? 그럼 지금 진씨 가문의 사모님은 진 회장님의 원래 부인이 아니라는 거야?’그러나 부잣집에 첫 부인과 계속 사는 회장님들은 별로 없었기에 고은영은 이 문제에서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그녀는 다급하게 물었다.“저 여기서 더 지낼 수 없어요. 진씨 가문 큰 도련님이 날 알아봤어요.”정설호는 그한 마디에 일의 심각성을 깨닫고서는 재빨리 말했다.“그래 더 있을 수 없겠네. 거기서 기다려라. 널 데리러 내가 바로 사람을 보낼 테니. 너 혼자서 움직이지 마.”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 고은영을 알아봤다는 말에 정설호가 가장 걱정한 것은 고은영이 놀라서 바로 도망가는 것이었다.이미 늦은 밤인데 임신까지 한 고은영을 생각하지 정설호는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은영이 말했다.“시간이 되겠어요? 배준우가 이미 만하고성까지 왔어요.”“걱정하지 마. 가능하니까.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배준우가 아이를 뺏어가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거다.”오후에 고은영은 육명호의 옆에서 배준우가 그녀와 육명호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정설호에게 전화를 걸어 그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모두 얘기했다.당연히 그녀는 자기와 량천옥의 관계를 모르고 있었지만 정설호는 이제 알게 되었다.정설호는 마음속으로 배준우가 고인영을 찾아서 다시 데려가면 결국 아이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이에 그는 고은영에게 자기가 알고 있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저 이 기회에 그녀와 배준우가 완전히 헤어지기를 바랄 뿐이었다.지금은 비록 배준우가 아
그들은 배준우를 어떻게 하지는 못했지만 고은영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었다.진경희는 상황의 심각성을 듣고서는 다급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침대 옆 탁자에 놓은 돋보기를 더듬더듬 잡았다.“그래그래 알겠어. 너무 조급해하지 마. 불안해하지 말고.”“난 당연히 불안하지. 네 외손자 외손녀가 전에 배씨 가문과 결혼할 예정이었다며?”“아이고, 그건 내 외손녀가 아니야.”진유경에 대해 진경희는 한 번도 자신의 외손녀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정설호는 지금 진경희와 이 문제로 시간을 끌 여유가 없었다.“맞든 아니든 그 애가 전에 약혼자가 있다고 소문이 파다했는데 그게 바로 우리 은영이 남편이야.”“뭐? 아내가 있는 남자하고 약혼? 진씨 가문 왜 이렇게 뻔뻔해졌어?”“진씨 가문에서 허락까지 했어. 뻔뻔하지 않고 어떻게 그러겠어?”이에 정설호는 매우 화를 냈다.진경희가 말하기도 전에 정설호는 말을 이었다.“진씨 가문에서 주워 온 그 아이를 얼마나 예뻐하는지 너도 알지? 그 아이를 위해 불법적인 일을 해도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야.”진유경을 위해 불법적인 일을 한다는 말에 진경희는 너무 화가 나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이곳에서 아무것도 있는 진정훈은 아까 외할머니에게 꾸중을 듣고 침대에 누워 잠을 이루지 못했다.진유경에 대한 외할머니의 불만 때문만이 아니었다.그는 마음속에 반복적으로 만삭인 고은영의 배가 떠올랐다.알고 싶지 않아도 배 속의 아이가 배준우의 아이임은 틀림없었다. 만약 그렇다면 배준우와 진유경은 정말 완전히 가능성이 없는 걸까?진씨 가문에서도 진유경을 아이가 있는 남자에게 시집을 보낼 수는 없었다.그래서 그는 배준우에게 고은영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자기에게 신세를 지게 만들면 어떨지 생각했다.그렇게 되면 품으면 안 되는 마음을 품고 있는 진유경의 마음도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 것이다.진정훈은 진유경의 마음을 완전히 접게 할 생각에 결국 핸드폰을 꺼내 배준우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배준우는 만하고
진씨 가문에 량천옥과 배항준은 일방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 배준우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들의 앞에 나타나지 않았었다.배준우는 지금 진정훈이 자기에게 전화한 것을 보고 무의식적으로 차가운 비웃음을 날렸다.“왜? 그렇게 못 기다리겠어?”전에 진씨 가문에서 고은영에게 저질렀던 은밀한 행동들을 배준우는 모두 알고 있었다.그가 나서서 복수를 하기도 전에 고은영이 사라졌고 아직 그녀를 찾지도 못했다.하지만 그들은 진유경과 배준우의 일이 이미 성사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진정훈은 이 순간 비록 핸드폰 넘어였지만 배준우의 적의가 얼마나 큰지 느낄 수 있었다.이제 보니 배준우가 계속 얼굴을 비추지 않았던 이유는 진심으로 진씨 가문과의 혼인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진정훈은 조금 불만스러워하며 말했다.“그쪽의 마음속에서 우리 진씨 가문이 그렇게 서둘렀다고 생각해요?”“서두른 것뿐만이 아니라 아예 팔리지 않는 것 같은데?”진정훈은 할 말을 잃었다.‘지금 이놈이 뭐라는 거지? 팔리지 않아? 누가 팔리지 않는다는 거야?”지금 이 순간 배준우가 이토록 분노하며 말할 사람은 진유경 말고는 없었다.‘젠장 지금 감히 우리 유경이한테 팔리지 않는다고 하는 거야? 뭐 팔리지 않는다고?’진정훈은 비즈니스를 하며 선을 넘는 사람을 많이 보았지만 이 정도로 무례한 사람은 처음 봤다.“우리 진씨 가문도 당신 같은 사람 별로 소중하지 않아.”“그럼 이 상황에 왜 전화는 한 거야? 네 여동생이 나 때문에 울며불며 난리 치는 모양이지? 아니면 나 때문에 죽겠대?”“배준우.”진정훈은 바로 화를 냈다.그는 배준우가 지금 고은영을 찾지 못해 얼마나 패닉 상태인지 몰랐다.그저 원래부터 진씨 가문에 이 정도로 적개심을 품고 있다고 생각했다.여러 날 동안 고은영을 찾느라 억누르고 있던 분노가 지금 진정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배준우의 무례하고 비열한 말에 진정훈은 너무 화가 나서 오장육부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내가 미쳤지. 전화해서 그쪽 와이프가 어디 있는지 알려주려고 했는데
그녀의 손자는 바로 고은영의 길을 막아버렸다.그녀는 진정훈과 더 말하고 싶지 않았고 거칠게 그에게 소리를 질렀다.“너 지금 가서 바로 은영이 데리고 떠나.”“네가 이 소식을 누구한테 전했든지 상관없어. 그 사람이 은영이를 찾게 할 수 없어.”진정훈은 입꼬리가 떨려왔다.외할머니의 갑작스러운 요구에 그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진경희가 그를 재촉했다.“빨리 안 일어나?”“아니 할머니 이게 지금.”“일어날 거야 안 일어날 거야?”진정훈은 어이가 없었다.연세가 드셨지만 그의 외할머니는 화를 내지 않고도 위엄있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하지만 그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빨리 안 가?”계속 움직이지 않는 진정훈에 진경희는 화가 나서 앞으로 다가가 그의 팔뚝을 때렸다.팔뚝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진정훈은 할머니가 자기를 때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아니 할머니 왜 그러세요? 그 계집애가 할머니하고 무슨 상관이에요?”‘완전히 남남인 사람한테 왜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시는 거지? 그럼 유경이는...’진정훈의 말에 분명하게 담긴 원망에 진경희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챘다.그녀는 날카롭게 말했다.“지금 너하고 이렇게 얘기할 시간 없어. 너 지금 당장...”삐걱.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옆집의 나무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진경희는 비록 나이가 많았지만 청력은 여전히 좋았다.“너 무슨 소리 못 들었어?”진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당연히 옆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진경희는 다급하게 말했다.“큰일 났네. 은영이가 분명 도망가는 거야. 너 얼른 가 봐. 이 밤에 무슨 일이라도 나면 내가 정설호 얼굴을 어떻게 보니.”진경희는 다급해졌다. 그녀의 머릿속에 만삭인 고은영의 모습이 가득했다.진정훈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진경희는 그의 머리에 손을 휘둘렀다.“내가 가보라고 했지. 이 할미 말이 안 들려?”남들의 눈에는 언제나
한편 정가마을.진정훈이 나왔을 때 고은영은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힘들게 걸어가고 있었다.고은영이 만삭인 배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은 꼭 둔한 곰 같았다.“뭐 하러 가는 거예요?”진정훈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고 처음에 봤던 부드러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게다가 고은영은 진정훈의 싸늘한 목소리를 듣고 너무 놀라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그녀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달렸다.무거운 몸으로 이리저리 휘청이며 달려가는 모습에 진정훈의 얼굴이 완전히 검게 변했다.‘내가 뭐 괴물이라도 돼? 저 계집애가.’고은영이 임신을 한 몸으로 달리는 건 많이 불편했고 결국 단 몇 걸음 만에 그를 진정훈에게 따라잡혔다.“아. 이거 놔요. 이가 놔. 이거 놓으라고.”고은영은 끊임없이 뿌리쳤지만 진정훈은 그녀의 옷깃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녀는 목덜미의 거친 피부에 진정훈의 손이 닿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 눈이 커다래지며 긴장감에 움츠러들었다.진정훈은 마치 흰토끼처럼 발버둥 치는 고은영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소리쳤다.“그만해.”“이거 놔요.”고은영은 가엾은 눈을 치켜떴다.이미 온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정훈의 눈을 그녀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너무 불쌍하게 바라보았다.진정훈은 가슴에 무언가가 와서 충돌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녀의 큰 배를 바라보며 진지하게 경고를 날렸다.“움직이지 마. 사고 나면 난 책임 못 져.”“먼저, 먼저 이것 좀 놔줘요.”옷깃을 잡힌 그녀는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모두 소용이 없었다.진정훈은 고은영이 또 도망치려는 것을 보고 그녀의 몸을 들어 외할머니 집 정원으로 향했다.진경희는 밖에서 들려오는 소란에 다급하게 따라 나왔다.진정훈이 고은영의 옷깃을 잡아 올리는 것을 보가 재빨리 앞으로 달려와 말했다.“이놈이 자식이 얼른 놔줘. 뭐 하는 거야?”현재 고은영의 몸은 금은보화보다 귀한 몸이었다. 만약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긴다면 진경희는 정설호에게 할 말이 없었다.진경희의 꾸중에 진정훈은 그제야 고은영을 놓
이제는 마을에도 도로가 다 통해 있었기에 배준우가 주소를 손에 넣었다면 아마 10여 분 만에 이곳에 도착할 수도 있었다.고은영이 진정훈의 옆을 지나갈 때 방 안의 불빛이 그녀의 목덜미를 비추었고 진정훈의 동공은 다시 한번 커졌다.한편 고은영이 긴박한 만큼 안지영도 지금 이 순간 패닉 상태였다.그녀는 밤새도록 나태웅을 찾았다. 이때 나태웅은 서향 별장에서 금방 샤워를 끝내고 나왔다. 그런 나태웅에게 집사가 다가와서 말했다.“도련님, 안지영 아가씨가 찾아왔는데 도련님을 뵙고 싶어 하십니다.”그의 머리카락에서 뚝뚝 떨어진 물방울이 완벽한 복근 라인을 따라 흘려내려 숨 막힐 듯한 느낌을 주었다.안지영이 자기를 찾아왔다는 말에 나태웅은 전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더 싸늘하게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안지영 혼자 왔어?”“네.”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혼자 왔다고? 하 장선명을 많이 믿고 있는 거 아니었어? 왜? 지금은 장선명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나 보지?”나태웅의 눈에 차갑고도 농후한 조롱의 뜻이 담겨 있었다. 그는 냉정하게 두 글자를 뱉어냈다.“안 봐.”“알겠습니다.”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더니 돌아서서 내려갔다.나태웅 혼자 남았을 때 그의 눈은 전례 없는 차가움으로 빛났다.‘인제야 날 찾아올 생각을 해? 그전에는 뭘 했는데?’안지영은 별장 밖에서 그대로 서 있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그녀에게 들어와서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나태웅에게 물어보겠다는 말만 하고 떠났다.‘날 들어가지도 못하게 하는 거야?’안지영은 너무 화가 나서 마음속으로 나태웅을 욕했고 심지어 나씨 가문의 조상들에게도 욕을 아낌없이 퍼부었다.나태웅에게 물어보겠다며 떠난 집사는 빠르게 달려와 안지영 앞에 서더니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안지영님 아가씨.”안지영이 물었다.“어떻게 됐어요? 이제 들어가면 되나요?”집사는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작은 도련님께서 아가씨를 뵙고 싶지 않다고 하셨습니다.”안지영은 집사의 말에 갑자기 숨이 막혔다.그녀의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