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전에 고은명과 배준우의 결혼 소식이 도시 전체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장선명은 육명호가 그것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안지영은 여전히 안심하지 못했다.“전에 육명호가 배준우와 협력을 논의했었는데 결국 물거품이 돼서 입은 손해가 꽤 클 거예요.”“네 뜻은 육명호가 배준우한테 복수하려고 이런 짓을 했다는 말이야?”장선명이 눈썹을 꿈틀거렸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육명호는 바람둥이일 뿐만 아니라 아주 작은 거라도 복수하기로 유명해요.”이런 이유로 안지영은 고은영이 육명호와 함께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부터 걱정하기 시작했다.장선명의 입꼬리가 떨려왔다.안지영의 말에 그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고 그제야 그도 걱정이 되었다.육명호의 복수 방법이 매우 잔인하다는 소문은 그도 들었었다.고은영 너무 용감한 거 아닌가? 그녀는 육명호의 소문에 대해 모르는 걸까?감히 그런 사람과 함께 있다니.한편 만하고성에서 배준우는 이미 육명호와 만났다.두말하지 않고 배준우는 바로 육명호의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경악했다.육명호는 욕설을 내뱉었다.“젠장.”그 한마디가 도화선이라도 된 듯 그동안 배준우 마음속에 억눌려 있던 분노를 폭발시켰다.이어서 몇 차례의 주먹이 날아갔다.그제야 육명호도 더 이상 봐주지 않고 배준우의 주먹을 잡았다.“배 대표님, 이건 너무 경우가 없다는 생각 안 하세요? 내가 말했지. 난 날 따라오는 여자만 데리고 간다고.”육명호의 말에는 배준우를 조롱하고 도발하려는 뜻이 다분했다.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육명호의 말에 모두 눈을 크게 떴다.진청아는 육명호를 이미 죽은 사람 보듯 바라보며 육명호가 정말 멍청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이런 상황에 배 대표를 더 화나게 하면 육명호에게는 어떠한 좋은 점도 없었다.배준우는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또다시 육명호의 얼굴에 여러 차례 주먹을 꽂았다. 육명호는 입에서 피를 토해냈다.“임신한 여자가 내 손을 잡으면서 제발 데려가 달라고 하던데. 당신이
그녀는 모든 것을 다 계획했던 걸까?만하고성은 원래 정설호의 고향이었다. 정가마을은 여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씁.”육명호는 다시 한번 고은영에게 굴복했다. ‘계집애 진짜 똑똑하네. 예전에 배준우 옆에 있던 멍청한 비서는 어디로 간 거야? 어떻게 앞뒤가 이렇게 다를 수 있지? 고은영은 이미 다 계획이 있었던 거야.’배준우가 만하고성에서 그녀를 찾지 못하고 돌아가면 그녀는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면 된다. 그런 다음 옛날 거리 관리 사무소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그녀의 뜻대로 일이 풀릴 것이다.“계집애, 배준우도 고은영 손바닥 위에 있구나.”육명호는 통쾌한 얼굴로 말했다.그 모습에 김진이 말했다.“그럼 이제 이 소식을 배 대표님에게 알려드릴까요?”“아니, 고은영이 무사하다는 것만 알면 됐어.”‘이 소식을 배준우에게 알려줘? 그럼 방금 그 주먹들을 맞은 건 다 헛수고가 되잖아?’김진은 입꼬리가 떨려왔다.“배 대표님에게 안 알려 주실 거예요?”“당연히 안 알려주지.”“하지만 고은영 씨를 저희 손에서 놓진 거잖아요. 배 대표가 고은영 씨를 계속 찾지 못해서 우리에게 따지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배준우의 와이프가 배준우를 피하는 건데 우리 탓을 할 게 뭐가 있어?”육명호가 코웃음을 쳤다.게다가 배준우가 방금 그를 주먹으로 몇 차례나 때렸기에 이제 그는 누가 뭐라고 해도 이 소식을 배준우에게 알려줄 마음이 없었다.김진은 육명호의 말에 등골에서 식은땀이 흘렸다.그는 방금 육명호가 배준우의 구타를 받아들인 것을 보고 고은영을 잃어버린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제 보니 육명호는 애초에 이길 수 없는 전면전은 할 생각도 없었고 암암리에 덫을 놓았다.김진이 말하기도 전에 육명호가 이어서 말했다.“배준우 같은 놈은 아이가 태어나서 다른 사람을 아빠라고 부르고 평생 혼자서 외롭게 늙어가야 해.”“그렇게 하면 배 대표는 우리를 절대로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 대표님 일단 진정 좀 하세요.”김진은 진땀을 빼며 말했다
현재 사람들의 광기에 비해 고은영은 아주 조용히 정가마을에 도착했다. 낡은 집은 이미 사전에 청소를 해두어 아주 깨끗했다.전화에서 정설호 선생님은 조금 걱정스러워하며 말했다.“진씨 아주머니가 옆집에 있을 거야. 손자하고 최근에 그쪽에서 지내고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진씨 아주머니 불러. 내가 이미 말해뒀으니까. 널 잘 챙겨줄 거다.”“고마워요, 선생님.”고은영이 목에 메어 말하자 정설호가 이어서 말했다.“네가 이런 상황에서 내게 전화했다는 건 그래도 아직 네가 내 말을 잘 듣는다는 거잖니. 은영아 배씨 가문은 좋은 집안이 아니야. 나도 소문을 들었는데 너하고 배가 놈도 더 이상 희망이 없더구나.”어떤 소문을 들었는지 정설호는 고은영에게 말하지 않았다.전에 량천옥은 그녀에게 너무 나쁘게 행동해 그녀를 거의 죽일 뻔했었다.고은영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량천옥의 신분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정설호가 보기에는 배준우와 량천옥의 원한만으로도 고은영은 본인이 량천옥의 딸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고은영은 정설호의 말을 들으면서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무거워졌다.지금까지 그녀는 자기와 배준우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간단히 말해 결혼 계약서는 배준우가 있다고 하면 있는 것이고 없다고 하면 없는 것이었다.모든 주도권은 배준우의 손안에 있었고 그녀에게 결정을 내릴 자격 같은 건 주어지지 않았다.고은영은 이때 정설호가 손문을 들었다는 말에 참지 못하고 물었다.“선생님 무슨 소문을 들으셨어요? 혹시 그 사람이 다른 여자하고 약혼이라도 했나요?”만약 배준우가 다른 여자와 약혼한다면 고은영과 그의 사이는 완전히 끝난 것이었다.그녀가 떠나기 전 그가 그녀에게 이혼 계약서를 쓰라고 한 걸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결국 그는 가지 자신과 비슷한 가문의 여자를 만나려고 그런 짓을 한 것이었다.정설호는 어떤 소문인지 묻는 고은영에 멈칫했다.결국 그는 량천옥의 일을 말하지 않고 대충 둘러댔다.“그냥 받아들여.”정설호의
비록 정설호 선생님은 이곳에 수년간 돌아오시지 않았지만 매년 수리해 주고 관리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덕분에 집 안에 전기와 수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고은영는 몸을 돌려 집 안으로 들어가 먼저 침대를 정리했다.그녀는 안지영이게 전화하고 싶었지만 두려워서 전화를 걸 수가 없었다.지난번 남성에서도 안지영을 많이 힘들게 했다. 고은영은 이번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안지영에게 자기가 있는 곳을 모르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우는 이미 새로운 약혼 상대까지 있으면서 왜 아이를 뺏어가려는 걸까?설마 새로운 약혼녀가 불임인 걸까?고은영은 머릿속이 더 혼란스러웠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지금 도망가는 것 말고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은영의 혼란에 비해 안지영은 지금 정말 미쳐가고 있었다.안지영은 배준우가 만하고성에서 고은영의 단서를 놓쳤다는 소식을 듣고 다급하게 장선명을 바라보았다.“왜 또 못 찾은 거예요?”지금 그녀는 정말 당황스러웠다.특히 장선명이 매일 그녀의 앞에서 고은영이 곧 아이를 낳을 수도 있다는 말로 겁을 줬기에 안지영은 더 걱정하고 있었다.게다가 고은영이 육명호와 함께 있다는 말을 듣고 안지영은 배준우가 자기의 가죽을 벗겨 죽일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안지영은 고은영이 육명호의 옆에서 도망쳤다는 소식을 들으니 더욱 황당했다.‘고은영 혼자 있다가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떻게 하지?’장선명은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피우며 안지영을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너 자신은 걱정되지 않는 거야?”전에 안지영은 고은영이 자기 돈을 썼다는 말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배준우를 화나게 한 것은 아닐지 두려워했다.안지영은 그 말에 멈칫했다.“나한테는 선명 씨가 있잖아요. 선명 씨의 체면을 봐서라도 배준우가 날 어떻게 하겠어요?”장선명은 순간 할 말을 잃고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떨기 시작했다.그런 다음 그는 눈가에 더욱 농염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게 날 믿는 거야?”“선명 씨가 내 약혼자
한참 뒤.안열의 말에 반응한 안지영이 화를 내며 펄쩍 뛰었다.“나태웅, 이 개자식.”‘이 나쁜 놈이 도대체 뭘 하려는 거야? 동지운 손에 있던 주식을 사서 도대체 뭘 하려는 건데? 설마 아직도 하늘그룹을 꿀꺽하고 싶은 거야?’요 며칠 동안 그녀가 마음속으로 가장 두려워한 것은 배준우가 고은영 때문에 자기에게 화를 내는 것이었다.하지만 요 며칠 소리 소문 없던 나태웅이 그녀를 붙잡으려고 이런 짓을 했을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장선명은 어두운 얼굴로 안열을 바라보았다.안열은 질겁하며 고개를 숙이고서는 불안한 마음으로 말했다.“이 전에는 아무런 소식도 듣지 못했어요. 동지운이 나 대표님과 만난다는 소식도 듣지 못했고요.”단지 그들의 통제하에 동지운의 두 사돈이 이미 동씨 가문에서 꽤 오랫동안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동지운이 이를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되면 반드시 주식을 나눠 두 며느리의 손에 쥐여줄 것이라고 그들은 예측했다. 그렇게 되면 안지영은 두 며느리의 손에서 아주 간단하게 주식을 다시 회수할 수 있었다.하지만 동지운 이 늙은 여우가 주식을 바로 천락그룹에 팔았다.그 지분을 한 그룹에 판 사실은 의심할 여지도 없이 하늘그룹에 아주 심각한 위기가 될 것이다이 순간 안지영은 너무 화가 나서 가슴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다.“이 쓰레기 같은 놈.”‘감히 나의 좋은 일을 망치다니.’화가 난 안지영은 가방을 들고 사무실을 나가려고 했다. 장선명의 옆을 지날 때 그가 안지영의 손목을 잡았다.“어디가?”“그 개자식한테 가서 따져야죠.”피그스에서 있었던 일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그녀의 아버지가 아직 병원에 누워계시는데 나태웅이 또 이런 짓을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도대체 내가 나태웅 그 개자식하고 무슨 원수를 졌다고 나한테 이렇게 복수하는 거야?’여기까지 생각한 안지영은 더 이상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장선명이 안열에게 눈짓을 하자 안열은 회의를 하러 내려갔다.사무실에 두 사람이 남았을 때 장선명은 미
결국 안지영은 장선명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일주일 안에 나태웅은 분명 또 다른 액션을 취할 거야.”안지영은 전에 동지운을 따랐던 사람들을 아직 완전히 파악하지 못했다.만약 그 사람들의 손에 흩어져 있던 주식이 나태웅의 손에 들어가면 결과는 더욱 비참해질 것이다.고은영을 걱정하던 안지영은 이제 나태웅에게 휘둘려 남을 돌볼 틈이 없었다.고은지의 삶도 쉽지 않았다.그녀는 고은영의 전화를 지금까지 기다렸지만 아무런 소식도 받지 못했다.조희주는 새로운 학교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새로운 학교에도 조씨 가문 집 주위에 사는 아이들이 다니고 있을 것이라는 건 예상하지 못했다.조희주가 등교한 지 며칠도 되지 않아 고은지와 조영수 사이의 일이 친구들 사이에서 소문이 났다.조희주의 성격도 이 때문에 엄청나게 변했다.매일 집에 오면 조희주는 자기 방에 틀어박혀 있었다.“고 비서, 고 비서?”“네 나 대표님. 절 부르셨나요?”고은지는 순간 정신을 차리고서는 나태현의 차 앞으로 달려갔다.나태현은 심란해 보이는 고은지의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차에 타. 데려다줄게.”“아닙니다. 예약한 택시가 곧 올 거예요.”고은지는 나태현 옆에서 하루종일 일했다. 그토록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와 함께 있으면 계속 숨이 막혔다.마침내 퇴근했으니 그녀는 본능적으로 그와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그녀의 말에 차 안에 있던 남자의 분위기가 바로 가라앉았다.차 밖에 서 있는 고은지도 아주 분명하게 갑자기 가라앉은 그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나태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은지는 심장이 목구멍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결국 그녀는 무언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차에 탔다.“그럼 감사합니다, 나 대표님.”‘아니 차에 안 타려는 게 그렇게 잘못한 거야? 왜 아직도 화가 난 것 같지?’이에 고은지는 너무 억울했다.그린빌로 가는 길에서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차가 멈춘 뒤 고은지는 나태현에게 정중하게 말했다.“나 대표님 데려
“희주야 뭐 먹고 싶어? 엄마가 금방 해줄게.”고은지는 아픈 마음을 억누르며 물었다.조희주는 냉정하게 한마디를 뱉어냈다.“아무거나.”예전에는 고은지가 밥을 할 때 조희주는 해맑게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을 얘기했었다. 그런데 지금은...고은지는 먹먹한 마음을 참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국수 먹을까? 아니면 밥?”“내가 말했잖아. 아무거나라고.”고은지는 조희주의 무거운 말투에 할 말을 잃었다. 조희주는 어린 나이였지만 사람을 압박하는 분위기를 갖고 있었다.예전에 조씨 가문에서 살 때 조희주의 성격은 항상 부드러웠다.환경이 변해서일까? 인생에서 하늘과 땅이 뒤집힐 만한 일을 겪었으니 고은지도 참을 수 없을 때가 있는데 어린 아이의 마음은 얼마나 힘들까?고은지는 더 이상 아픈 마음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그녀는 떨리는 몸으로 조희주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희주야 학교에서 또 무슨 일 있었어?”“없었어.”‘왜 없다고 하는 거지. 내가 다 들었는데.’조희주의 말에 조은지의 마음은 더 아파졌다. 이 순간 조희주에게서 왜 깊은 무력감이 느껴지는 걸까?곧 울 것 같은 고은지의 모습에 조희주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가서 밥 해줘. 나 배고파.”“그래, 엄마가 금방 해줄게.”고은지는 아픈 마음을 참으로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방문을 나가려다 말고 고개를 돌려 다시 숙제하고 있는 조희주를 바라보았다.딸에게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사람을 거부하는 듯한 분위기에 고은지는 상황의 심각성을 더욱 깊게 깨닫게 되었다.그녀가 지금 해결해야 할 문제는 조영수뿐만이 아니었다.그리고 그 사람은...조희주의 상태를 보고 고은지는 갑자기 그 사람을 찾아야 할지 혼란스러웠다.‘그 사람을 찾는다면 희주의 인생을 보상해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또 다른 상처를 주는 건 아닐까?’이런 생각이 들자 고은지는 그 사람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접었다.이 순간 만하고성에서 피곤한 몸으로 고은영을 찾고 있던 배준우는 고은지의 전화를 받고 조금 놀랐다.“누나?”고은지는
하지만 그녀는 그 남자가 나타나면 딸인 희주가 더 큰 고통을 겪게 될까 봐 너무 두렵고 무서웠다.“그 일은 은영이 찾으면 다시 얘기해요. 오늘은 이만 끊겠습니다.”배준우는 고은지가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더 묻지 않았다.“그래.”고은지도 더 말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고서는 서둘러 조희주에게 국수를 끓여줬다.천락그룹에 출근하면서 이 시간에 퇴근하면 겨우 두 사람이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식사를 차릴 수 있었다.식탁 위에서 두 모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희주는 더 이상 예전처럼 밥을 먹으며 재잘재잘 수다를 떨지 않았고 이제는 말없이 국수만 먹었다.고은지는 몇 번이나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도대체 어디서부터 얘기를 꺼내야 할지 몰랐다.‘아빠’라는 두 글자는 현재 두 사람 사이에서 선명하게 금기시되어 있었다.“희주야.”“응?”“학교에서 무슨 일 생기면 꼭 엄마한테 얘기해야 해. 엄마가 다 처리해 줄게.”그 말에 조희주는 드디어 고개를 들고서는 엄마를 바라보았다.“나 학교 안 가면 안 돼?”고은지는 그 말을 듣고 바위가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학교를 가지 않겠다고?’“그럼 너...”“학교는 반드시 가야 하는 거지?”고은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희주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이 순간 고은지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숨 막히는 느낌을 받았다.그녀는 딸이 다시 입을 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녀석은 다시 한마디를 뱉었다.“왜 아빠 없는 아이는 비웃음을 받아야 하는 거야?”고은지는 말문이 막혔다.‘아빠가 없어서 비웃음을 받았다고?’그러나 지금 고은지가 마주한 것은 단지 딸이 조롱당하는 일만이 아니었다.이전에 고은영이 강성에 있을 때는 고은지가 어느 정도 고은영에게 조언을 구할 수 있었지만 이제 고은영이 갑자기 떠났고 고은지는 갑자기 이전보다 아득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딸인 조희주의 일에 관해서는 더 어려웠다.비록 그녀는 변호사였지만 소송은 오랜 시간이 걸렸다.그 긴 시간 동안 그녀와 딸 희주가 얼마나 많
“어머니가 나한테 남긴 건 그대로 넘겨주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고은영은 진성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의 말을 끊었다.싸늘한 고은영의 시선에 진성택의 안색은 순간 창백해졌다.진성택이 무언가를 덧붙이기 전에 고은영이 차갑게 말을 이어갔다.“그렇지 않으면 뭐요?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배준우의 아내예요. 진유경에게 손대는 건 쉬운 일이죠.”“유경이한테 손대지 마. 은영이, 너...”“됐어요! 더 이상 아무 말도 듣고 싶지 않아요!”진유경을 그렇게까지 감싸는 진성택을 바라보며 고은영은 실망감을 넘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도대체 사람이 어떻게 이래?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이길래 이런 일까지 한단 말이야! 아내랑 아이를 도대체 뭐로 보는 거지? 어떻게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나한테 이런 요구를 할 수 있어... 엄마가 남긴 소중한 유품을 진유경 같은 년에게 넘기겠다고? 하...’진유경이 단순히 진씨 가문의 양녀였다면 고은영은 아마 이렇게까지 분노하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진실을 아는 고은영은 지금 상황이 너무 역겹게 느껴졌다.설령 눈앞의 남자가 그녀의 혈육이고 아버지라 할지라도 고은영은 그를 혐오스러워할 수밖에 없었다.진성택은 그녀의 분노에 애처롭게 그녀를 불렀다.“은영아...”고은영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진성택이 말을 이었다.“나한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그게 아니었다면 나도 너한테 와서 이런 부탁 하지 않았을 거야.”“같잖은 호소는 그만 하세요. 저희 사이에 애정이라 칭할 만한 감정도 별로 없잖아요.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아내였던 사람에게 너무하네요. 엄마가 불쌍해요.”그녀는 더욱 화가 났다.비록 한 번도 본 적 없는 어머니와 특별한 애정이라 할 감정은 없었지만 진성택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을 보며 고은영은 걷잡을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밀려왔다.고은영은 어머니를 만난 적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어머니의 깊은 사랑은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진성택은 어떠한가.고은영은 더 이상 그를 보고 싶지 않
고은영이 이렇게나 직설적으로 얘기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듯했다. “저는 이제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해요.” 진성택에게 돌려 말하지 말고 직설적으로 얘기하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감정적으로 접근을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생각했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거고 지금 와서 그것을 지울 수는 없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에 상처를 받은 듯 보였다. 그녀의 불만 섞인 태도에 그의 마음이 조금은 아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는 걸 알았다. “너희 둘째 오빠가 병원에 왔었어.” 고은영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쏘아보았고 그는 그녀의 생각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받을 모든 주식들 있잖아. 할머니와 진호영, 그리고 유경이의 지분까지 너에게 줬다던데, 맞지?” 고은영은 차갑게 한 마디로 대답했다. “맞아요.” 드디어 그의 목적을 직접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더욱 차가운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차가운 시선에 조금 떨린 듯 말을 이어갔다. “그 주식들은 사실 네 어머니가 너에게 남긴 거니까 너에게 돌아가야 맞아.” “그래서 저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부른 거죠?” 고은영은 아무렇지 않게 물었다. 그가 주고자 한다면 왜 이제서야 이리 말하고 있는지 다시 묻고 싶었다. 진성택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고 그의 눈빛에는 죄책감이 떠올랐다. “미안하지만 그 주식은 네게 돌려줄 수 없을 것 같아.” “돌려줄 수 없다고요? 왜요?” 그의 말은 너무도 간단했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이 또다시 진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 같았다. 진유경, 정말 독특한 존재다. 역시나 양딸이 모든 것보다 우선이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그녀는 진짜로 진씨 가문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두 사람의 양부모는 하나같이 그녀를 애지중지하며 키웠다. “너희 둘째 오빠가 그 주식들을 되찾고 나서 진씨 가문의 모든 재정적 지원을 끊어버렸어. 지금 그들은 전부 저축해두었던 돈을 쓰고 있어.” 모든 지원을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