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데 하룻밤 사이에 희주를 찾지 못한다는 게 말이 돼?’안지영은 정말 믿을 수 없었다.장선명이 말했다.“응. 은영 씨한테 전해줘. 너무 호들갑 떨지 말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은영 씨를 위해서 애쓰고 있잖아.”장선명의 뜻은 자기 약혼녀를 괜히 귀찮게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장선명은 고은영이 핸드폰 너머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고은영이 그가 이렇게 말하는 의도를 알아차리길 바랐다.그러나 지금 고은영은 초조한 마음에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장선명의 말에 담긴 뜻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의도를 눈치채고서는 바로 화를 내며 말했다.“그런 쓸데없는 말은 하지 마요. 오늘 밤은 돌아가지 않을 거니까 끊을게요.”안지영은 말을 마친 뒤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러고서는 품에 안긴 고은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착하지. 너도 들었지?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주를 찾고 있으니까 아무 일도 없을 거야.”‘배준우와 진씨 가문 사람들이 고희주를 찾는 건 그렇다 쳐도 나태현은 왜 돕는 거지?’안지영은 생각에 잡겼지만 고은영의 상태가 너무 좋지 않은 걸 보고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핸드폰에서 들려오는 뚜뚜 소리에 장선명은 얼굴이 굳어졌다.‘아니 약혼녀의 전썸남을 경계하는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베프까지 신경 써야 하는 거야?’장선명은 나태웅이 매일 말썽을 부리는 것도 짜증 나는데 이제는 고은영까지 얽혀 정말 성가셨다.나태웅을 생각할 때마다 장선명은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정말 짜증 나네.”장선명은 짜증 나는 마음에 투덜거렸다. 현재 나씨 가문의 어르신인 나태범이 나태웅을 제대로 단속했는지 알 수 없었다.장선명은 제발 나태웅 그 자식이 더는 자신과 안지영의 앞에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매하리에서 돌아온 후 장선명은 안지영에게 끊임없이 질척거리는 나태웅이 너무 짜증 나서 결국 나태범에게 고자질했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다 큰 성인 남자가 어르신에게 고자질했다는 생각
량천옥은 모든 것을 고은영 때문에 잃었다.량천옥은 한동안 고은영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귀하게 여겼다.하지만 지금 고은영은 량천옥이 없어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아껴주고 있다.반면 량천옥은 천의를 잃었고 배씨 가문도 잃었다.평생을 다 바쳐도 손에 넣을 수 없는 것들을 고은영은 너무나 쉽게 손에 넣었다.이런 상황 속에서 량천옥이 어떻게 고은영을 증오하지 않을 수 있을까?량천옥은 고은영을 무너뜨리고 싶었고 고은영을 지키는 사람들까지 파괴하고 싶었다.이제는 진정훈까지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만큼 증오했다.진정훈은 량천옥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함부로 건드렸기 때문이다.그러나 이때 핸드폰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진씨 가문 둘째 도련님께서 감옥에 자기가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사모님이 먼저 들어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량천옥은 이 말을 듣고 핸드폰을 세게 쥐며 거친 호흡을 뱉어냈다.“진정훈의 조건을 말해 봐.”“고은지 씨의 딸을 란완리조트로 돌려보내면 도련님도 무사히 돌려보내겠다고 했습니다.”량천옥은 진정훈의 조건을 듣고 더욱 이를 갈며 분노했다.고희주에게 지금 량천옥이 천의를 되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달려있었다.지금 만약 고희주를 돌려보내면 앞으로는 거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이번 일로 그들은 경계를 더욱 삼엄하게 설 것이다.여기까지 생각한 량천옥은 더욱 고희주를 돌려보내기 싫었다.하지만 배윤이 문제였다.배윤이 진정훈에게 잡혀간 걸 떠올리며 량천옥은 더욱 이를 갈았다.량천옥은 일을 저지르기 전에 머릿속으로 수많은 경우의 수를 계산했지만 결국 자기 아들이 발목을 잡을 줄은 몰랐다.“이 멍청한 녀석.”량천옥은 정말 미칠 것만 같았다.그녀는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전화를 끊었다.량천옥은 고희주를 돌려보낼지 말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깊은 미련이 남았다.하지만 배윤은 량천옥의 친아들이다.지금은 배윤이 량천옥의 유일한 자식이기에 그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진정훈의 방식은 단순하면서도 거칠었다.량천
량천옥은 독하게 말했다.고희주는 량천옥의 말을 듣고 얼굴이 더욱 창백하게 질렸고 온몸에 힘이 빠졌다.그러나 량천옥은 고희주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몸을 돌려 진정훈과 인질을 교환할 장소에 관해 얘기했다.아들을 위해 량천옥은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진정훈이 말했다.“마찬가지로 그 아이에게 손 하나라도 대면 난 바로 배윤에게 똑같이 대가를 치르게 할 거예요.”“흥, 네가 감히. 너희들 지금 모두 고은영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잖아. 고은영이 너희를 실망시키지 않길 바랄 뿐이야.”량천옥은 비웃듯 말했다.두 사람은 계속해서 위험한 경고를 주고 받으며 대화를 이어갔다.량천옥은 날카롭게 말을 뱉어내며 온몸에서 위험한 기운을 뿜어냈다.이런 사람을 보면 일반적인 아이들은 놀라서 울음을 터트릴 것이다.하지만 고희주는 울지 못했다.마침내 량천옥이 더욱 독한 말을 뱉어냈다.“네가 윤이한테 대가를 치르게 한다면 나도 가능해. 진정훈, 난 이미 고은영 때문에 모든 걸 잃었어. 내가 죽더라도 너희 중 두 명은 함께 끌어내릴 거야.”량천옥의 말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뒤에서 쿵 하는 소리가 났다.량천옥이 본능적으로 뒤를 돌아보았지만 거실에는 더 이상 고희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멀리 창문이 열려 있었고 차가운 바람이 계속 안으로 불어오고 있었다.이 광경에 량천옥은 핸드폰을 들고 있던 손을 떨었다.이어서 아래층에서 보안 요원이 소리를 질렀다.“무슨 일이죠? 이 아이는 어느 집의 아인가요?”량천옥은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순간 머릿속이 윙하고 울리더니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고 모든 것이 멈춘 듯했다.‘아니, 이럴 리가 없어.’핸드폰의 화면을 보니 진정훈은 이미 전화를 끊은 상태였다.량천옥은 무의식적으로 창문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뭔가 생각난 듯 또 다급하게 멈춰 섰다.하지만 다음 순간 아래층의 모든 불빛이 켜지더니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누군가는 119에 전화했고 또 다른 사람은 큰 목소리로 외쳤다.“아이의 몸을 움직이지
핸드폰 너머에서 현재 고희주는 의식이 없고 내장이 어느 정도 손상되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추가 검사가 필요하니 가족이 빨리 오라고 했다.고은영은 병원으로 가는 길에서 계속 울고 있었다. 안지영은 그 모습에 물었다.“지금 상태가 도대체 어떤 거야?”“의식이 없고 많은 피를 흘렸대. 내장이 어느 정도 손상됐는지 아직 모른다고 했어.”고은영이 울먹이며 말하자 안지영은 분노했다.“그 량천옥이라는 사람은 정말 인간 맞아? 어떻게 이런 일을 저지를 수 있어?”정말로 다들 량천옥의 잔인함을 과소평가했다.‘아이에게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다니.’량천옥이라는 이름을 듣자 고은영의 마음은 더 조여들었다. 이건 고은영과 량천옥 사이의 문제였지만 고은지까지 휘말리게 되었고 결국 이렇게 피해를 보게 되었다.이제 고은영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 곧 병원에 도착할 거야.”하지만 고은영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어떻게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고은지는 아직도 병원에 있는데 고희주마저 이런 일을 당했다.고은지에게 이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고은영은 너무 막막했다.만약 고은지가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은영아, 내 말 들어 봐. 량천옥은 완전히 미친 여자야. 량천옥이 고은지에게 이 일을 알리지 못하게 하려면 당장 경찰에 신고해야 해.”“아. 신고. 그래, 맞아. 신고해야지.”이제 고희주는 량천옥의 손에 있지 않았다.량천옥이 인질로 잡고 있던 고희주를 이렇게까지 다치게 했으니 당연히 신고해야 한다.그리고 량천옥이라는 여자는 아무리 상대가 그녀를 용서해도 절대 상대를 놓아주지 않을 것이다.어쩌면 안지영의 말처럼 고은영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으면 량천옥이 직접 고은지에게 이 사실을 알리게 될지도 모른다.량천옥이 상황을 이 지경까지 만든 건 고은영에 대한 복수심 때문에 그저 고은지를 분노하게 만들어 몸이라도 망치게 하려는 것일지도 모른다.고은영은 차 안에서 경찰에 신고했다.병원에 도착했을
고은영은 호흡이 가빠졌다.간호사가 말했다.“당연하죠. 가족들은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합니다.”“아니요. 사인하지 않을래요. 저 사인하고 싶지 않아요.”“은영아, 사인을 해야 이분들이 더 신속하게 희주를 치료할 수 있어.”“사인하면 희주의 생명에 위험이 있어도 이 사람들이 희주를 포기하는 거 아니야?”고은영이 안지영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안지영도 앞으로의 상황을 장담할 수 없었기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러나 의료진이 가족에게 이런 문서에 사인을 요구하는 건 완전히 희망이 없을 때 포기를 지시하는 경우가 많았다.고은영이 말했다.“아니야. 꼭 최선을 다해 구해주세요. 전 사인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사인하지 않을 거라고요.”이 순간 고은영의 마음속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고은영은 이런 생과 사의 장면을 마주할 용기가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응급실 안에 있는 고희주가 어떤 상황인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량천옥은 대체 희주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지금 이런 서류까지 필요하게 된 거지?’고은영의 감정이 많이 격해진 것을 보고 간호사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안지영은 펜을 가져가 서류에 재빨리 자신의 이름을 사인했다.이에 고은영은 놀라서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지영아.”“은영아, 괜찮아. 지금은 이런 걸 고민할 때가 아니야. 여기 있는 사람들은 모두 희주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주실 거야.”간호사는 다시 수술실로 들어갔다.고은영은 온몸에 힘이 빠져 배준우가 잡아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진정훈은 고은영의 창백해진 얼굴을 바라보며 손등에 핏줄이 불끈 솟아오를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의 눈은 량천옥에 대한 분노로 차갑게 번뜩였다.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사람을 지치게 했다.고은영은 온몸에 힘이 빠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머릿속에는 계속 나쁜 생각들로 가득 찼다. 고은영은 차마 현실을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오랜 시간이 흐른 뒤 고은영은 입을 열었다.“희주 아빠를 꼭 빨리 찾아야 해요.”이
그동안 고은영은 정말 미칠 듯이 바빴다.고은영은 항상 고은지 때문에 마음을 졸이며 밤새 잠들지 못하는 날들이 이어졌다.배준우가 모든 것을 잘 정리해 주지 않았다면 고은영은 스트레스에 무너졌을 것이다.그리고 지금 고은지에게는 고희주가 마지막 한 가닥 희망이었다.고은영은 차라리 추락한 사람이 자신이었기를 바랐다. 그래서 고희주 대신 자기가 병실에 누워있고 싶은 마음이었다.고은영은 고희주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무기력함을 느꼈다.“미안해, 미안해. 이모가 너를 잘 돌보지 못했어.”고은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창문을 통해 고희주의 머리에 두껍게 감겨 있는 붕대와 팔과 다리의 두꺼운 깁스를 보니 고은영은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다.안지영이 말했다.“은영아.”고은영을 위로하려 했지만 이 순간 안지영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어떤 상황인지 고희주를 보지 못했을 때는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고은영이 말했다.“어떻게 해야 해? 지영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해?”지금 고은영은 매우 혼란스러웠다.안지영이 말했다.“네가 쓰러지면 안 돼. 은지 언니에게는 네가 필요해.”고은지는 아직 수술을 앞두었고 고희주 역시 식물인간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설상가상으로 고은지의 일이 해결되지도 않았는지 고희주까지 이런 일을 겪게 되었다.배준우가 모든 것을 잘 정리했음에도 불구하고 고은영은 마음속으로 큰 압박을 느꼈다.“언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언니는 날 그렇게 믿었는데. 내가 희주를 잘 돌보지 못했어.”“너 때문이 아니라 량천옥이 미친 거야.”안지영이 말했다.량천옥이 어린아이에게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를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지만 숨을 쉴 때마다 가슴이 아팠다.고은영이 경찰에 신고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도착했다. 그녀는 경찰을 통해 고희주가 4층에서 떨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이 순간 고은영은 더욱 마음이 아팠다.“왜 희주가 떨어진 거죠? 량천옥
안지영이 말했다.“은영아.”배준우는 이미 모든 문제를 처리하러 진정훈과 함께 떠났다.이 순간 안지영은 고은영의 곁에서 그녀의 온몸이 점점 차가워져 가는 모습을 보니 더더욱 안타까워 깊은 한숨을 쉬었다.‘아이고. 우리 은영이 불쌍해서 어떻게 해.’지금은 그저 고희주가 식물인간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이건 고은지에게 정말 큰 충격이 될 것이고 어쩌면 고은지는 이 충격을 견뎌내지 못할지도 모른다.고은영의 세상은 이번에 량천옥으로 인해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량천옥은 집으로 돌아와서도 분노에 찬 상태였고 량일은 어두운 얼굴로 량천옥을 바라보며 말했다.“너 어떻게 아이한테 그런 일을 할 수 있어?”비록 량천옥이 이런 방식으로 천의를 되찾는 걸 량일은 지지했지만 고희주가 량천옥의 손에서 다친 건 분명 골칫거리였다.량천옥은 량일의 말에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내가 그 아이에게 뭘 했다고? 내가 뭘 했는데?”“네가 한 거 아니야?”“그 아이는 제정신이 아니야. 그 아이가 직접 뛰어내렸어.”량천옥은 이를 꽉 물었다.량천옥은 당시 아파트 안에서의 상황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철렁했다.‘어린애가 그런 생각을 한다니. 내가 고씨 가문 사람들을 과소평가했어.’량일이 물었다.“뛰어내렸다고?”“그래. 4층이어서 다행이었지. 더 높은 층이었다면 그 계집애가 살아남을 수 있었겠어?”이번에 량천옥은 정말 세상을 다시 보게 되었다.량일이 말했다.“어찌 됐든 그 아이가 너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빨리 이 일을 처리해야 해.”“알겠어.”“고은영은 분명 널 감옥에 보내려고 할 거야.”량일이 말하자 량천옥은 차가운 비웃음을 터뜨렸다.“고은영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데 더 이상 뭘 할 수 있겠어?”‘날 감옥에 보낸다고? 고은영은 감히 생각도 못 할 거야. 그 아이가 죽지 않는 이상 내가 감옥에 갈 일은 없을 거야.’여기까지 생각한 량천옥은 바로 고희주가 입원해 있는 병원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 무슨 일이 있어도 고희주를 살려야 한
나태현이 사무실에 왔을 때 배준우는 막 회의를 마치고 나오는 중이었다.오전에 회사에 오지 못해 몇 개의 회의가 미뤄져 배준우는 연속으로 회의에 참석하고 있었다.배준우는 나태현이 온 것을 보고 말했다.“나씨 가문 쪽 일은 다 처리했어요?”나씨 가문이라는 말에 나태현의 눈빛은 잠시 어두워졌다.나태현은 배준우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다른 질문을 던졌다.“희주 병원에 갔다며? 어떻게 된 일이야?”나태현은 바로 병원에 가지 않았다. 지금 병원에 가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어젯밤에 사고가 있었어요. 희주가 4층에서 떨어졌고 지금 중증 혼수 상태예요.”“중증 혼수 상태라고?”여기까지 들은 나태현의 목소리는 바로 높아졌고 원래도 어두웠던 그의 눈빛은 배준우의 말에 더욱 음산해졌다.배준우가 말했다.“현재 경찰이 조사에 들어갔어요. 이 사건을 조사하긴 할 텐데 량천옥이 너무 교활하다는 거 형도 알잖아요.”“량천옥이 아이를 4층에서 던진 거야?”나태현이 차가운 목소리로 묻자 배준우가 말했다.“그건 확실하지 않아요. 하지만 지금 형에게 말할 수 있는 건 량천옥은 그런 일을 저질렀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라는 거예요.”다른 사람이었다면 배준우는 장담할 수 없었겠지만 량천옥은 충분히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여자였다.나태현은 깊은 한숨을 쉬며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으로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와 배준우의 사무실 분위기를 얼어붙게 했다.배준우도 한숨을 쉬며 물었다.“지금 나씨 가문 상황은 어때요?”방금 나태현이 대답하지 않았던 질문을 배준우는 다시 한번 물었다.아이 문제는 나태현의 책임이었다. 몇 년 전 나태현이 고은지와 관계를 가졌으니 당연히 책임져야 하는 일이었다.현재 고은영은 정말 지칠 대로 지쳐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였기 때문에 나태현이 책임을 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았다.나태현은 결국 대답하지 않고 그저 배준우에게 당부했다.“당분간 네 와이
안지영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이 순간, 하주원을 때리는 것뿐만 아니라 나태웅에게 달려가서 바로 그의 얼굴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장선명은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지영 씨!” 안지영은 분노에 차서 소리쳤다. “저 자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 하는지 봐요!” “일단 지영 씨 먼저 사무실로 가요.” 장선명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분명 위협이 묻어 있었다. 이 순간, 장선명은 나태웅의 행동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나태웅이 여기서 안지영 씨에게 사과하라고 한다고?’ 오늘 이 일은 절대로 안지영의 잘못이 아니었다. 설령 안지영에게 잘못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녀가 사과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저 자식을 찢어버릴 거예요!” 지금 그녀는 이성을 잃었고 진짜로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온 걸 보면 이 순간의 안지영은 행동으로 옮기고 싶다는 마음이 확고해졌다. 장선명은 그녀의 얼굴에 난 상처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 상처는 깊지 않았지만 그의 손이 닿자 안지영은 느껴지는 통증에 소리쳤다. “아, 아파요!” “약 안 바르면 진짜 흉터 남을 거예요.” 장선명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안지영은 더욱 참을 수 없었다. ‘나씨 가문 사람들은 진짜 미쳤어! 확실히 다들 미쳤어!’ 그녀는 아직도 나태웅을 찢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얼굴이 흉지게 될 걸 생각하니 결국 약을 바르러 가기로 했다. “그럼 여기 처리 좀 해줘요.” 안지영은 장선명에게 말했다. 장선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 마요. 지영 씨가 만족하게끔 처리할게요!” 그의 말은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살기에 진이훈은 몸을 움츠렸다. 만약 예전이었다면 안지영은 장선명이 어떤 방법을 쓸지 상상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화가 난 그녀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녀는 문 앞까지 이르렀을 때 갑자기 진이훈이 그녀를 불러 세웠다. “안지영 씨!” “구이준.” 진이훈이 말을 꺼
하지만 나태웅은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하주원의 처참한 모습을 바라봤다. 그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을 느낀 하주원은 바로 눈물을 훔쳤다. 방금 안지영과 싸울 때의 사나운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아주 연약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태웅은 그녀를 한번 쓱 보더니 곧바로 시선을 거두고 안지영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사과해.” 차갑게 뱉은 세 글자가 공기마저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녀의 입가가 떨렸다. ‘사과? 누가 누구한테 사과하라고?’ 안지영은 잠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진이훈은 나태웅의 의도가 무엇인지 금세 눈치챘다. “나 대표님, 설마...” 진이훈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나태웅을 바라봤다. 그러자 나태웅은 더욱 냉랭한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사과하라고.” 안지영이 움직이지 않자 그의 말투는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제는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그의 말의 뜻을 알아챘다. 그는 안지영더러 하주원에게 사과하라는 것이었다. 하주원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안지영을 바라보며 승자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안지영의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는 소매를 걷어 올리며 말했다. “야, 정말 병 걸렸다고 이러기야? 어?” 그녀는 나태웅이 병을 앓고 있는 걸 알기에 이곳에서 일이 더 커지지 않도록 하려는 마음이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라니 나를 더 화나게 만들려고 작정한 걸까?’ 안지영은 참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나태웅을 조각조각 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앞으로 나가려는 순간 진이훈이 한 걸음 나섰다. “안지영 씨, 대표님께서는 그냥 이번 일은 사과하고 지나가길 바라고 계십니다.” “그럼 내가 사과 안 하면? 나를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안지영은 화가 나서 크게 소리쳤다. 그녀는 마음 한구석에서 안도감을 느꼈다. 나태웅의 마음을 깨달은 후에도 자신의 결정을 고수할 수 있는 자신이 대견했다. 그녀는 자신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 그녀와 그의
진이훈은 왕 비서가 장선명에게 극진히 대하는 모습을 보며 나태웅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이제 안지영의 회사는 분명 장선명을 사위로 인정한 모양이다. 나태웅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 너무나도 분명해 보였다. 그 모습에 진이훈은 나태웅이 얼마나 억울할지 마음이 아팠다. 이 기간 동안 나태웅은 무엇을 했던 걸까? 장선명은 비밀스럽게 모두의 인정과 신뢰를 얻었는데 말이다. 두 사람은 한 걸음 한 걸음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안지영과 하주원이 이미 사람들에 의해 떨어져 있었지만 두 사람의 모습만 봐도 그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 알 수 있었다. 하주원은 나태웅이 오자 억울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이제야 왔네, 사촌 오빠! 이 여자가 나를 죽여버릴 뻔했어!” 안지영은 그 말을 듣고 비웃고 싶었다. ‘이 여자가 먼저 고자질이라니!’ 나태웅은 차가운 눈빛으로 안지영을 노려보았다. ‘저 눈빛은 뭐지? 내가 하주원에게 손을 댔다고 저러나? 나태웅은 진짜로 하주원의 말을 믿는 건가?’ 하주원은 여전히 울면서 말했다. 안지영은 장선명을 보자 화가 올라와 자신도 다가가 말했다. “드디어 왔네요. 저 짐승이 갑자기 쳐들어 오더니 날 때리고 할퀴었다니까요.” ‘고자질? 누군 못하는 줄 알고?’ 그녀들은 마치 학교에서 싸운 초등학생 같았다. 싸워서 이기지 못하니 부모님을 불러오는 초등학생 말이다. 나태웅은 안지영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장선명에게 고자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표정이 굳어졌다. 하주원은 계속해서 울며 얘기했다. “정말 너무 잔인했어! 내 머리카락까지 다 뽑아갔어!” 안지영도 대꾸했다. “제 얼굴도 할퀴어서 흉터 생긴 것 같아요!” 진이훈은 무슨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장선명의 비서 역시 아무 말 없이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다. 이 두 명의 아가씨들이 이렇게 서로 고발하는 걸 보니 혹시 두 대표가 직접 손을 쓰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나태웅의 기운은 점점 더 차가워지고 위험해
안열은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녀는 매우 참을성이 강한 사람이다. 이전에 안지영의 아버지 안진섭이 의식을 잃었을 때 회사는 안팎으로 위기였다.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싶었겠는가. 게다가 안진섭의 결혼식 때는 하늘 그룹을 삼키려 했다. 그때도 그녀는 참을성을 가지고 침착하게 상황을 관리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는데 왜 갑자기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것일까?’ 왕 비서가 말했다. “하주원이라는 여자와 싸웠습니다.” “하주원, 그게 누구예요?” 안열은 이마를 찡그리며 물었다. 안지영과 함께한 시간 동안 한 번도 하주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다. 왕 비서는 조금 급하게 말을 이었다. “나 대표님의 사촌 여동생이에요!” 듣고 보니 그 여자가 바로 나태웅의 사촌 여동생이라니, 안열은 순간 모든 상황을 이해했다. 그녀는 다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안 대표님 다치지 않게 해요. 제가 바로 돌아갈게요.” “알겠습니다.” 안열은 전화를 끊었다. 그때, 나태웅이 하주원이라는 이름을 듣고 얼굴색이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안열이 돌아보았을 때 나태웅은 얼굴이 굳어 있었다. 원래는 나태웅이 안열에게 해명을 요구하려던 차였는데 상황은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안열이 날카롭게 물었다. “나 대표님, 이제 당신은 제게 합리적인 설명을 해주셔야겠죠? 왜 당신의 사촌 여동생이 안 대표님에게 손을 댔죠?” 그런데 나태웅은 병상에서 일어나더니 아무 말 없이 병원복을 입은 채로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 안열은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그가 자신을 무시하고 떠나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이 사람, 정말 나를 무시하는 건가? 설명을 해준다고 하지 않았나? 그럼 이제는 해명을 해줘야 할 차례 아닐까? 그런데 딱 이 시점에 가서 얼굴을 찌푸리며 떠나버리다니. 대체 이 사람 지금 이게 무슨 태도지?’ 그때 진이훈이 뒤따라 나섰다. 안열이
두 여자가 마치 맹수처럼 서로 얽혀 싸우고 있었다.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 “내가 네 얼굴을 찢어버려야지! 도대체 누가 너더러 감히 나한테 와서 이러라고 했어!” 그녀가 나태웅에게 정신적인 피해를 요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인데 그의 사람들이 자신에게 귀찮게 다가온 것에 분노하고 있었다. 하주원은 기가 막힌 듯 대답했다. “너 같은 년, 너는 양심도 없잖아! 나는 경고하는 거야, 내 사촌한테 가까이 가지 마! 그 사람는 네가 손댈 사람이 아니야!” “그럼 네가 사람을 멀리 데려가던지! 그 병을 나한테 옮기지 말고!” “너 같은 년은 정말로!” “너야말로, 너희 가족 전부가 다 미쳤어!” 안지영은 거침없이 맞받아쳤다. 하주원은 하늘 그룹의 계승자가 이렇게 무례하고 난폭한 여자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원래 안지영에게 경고만 하려 했고 안지영이 어떻게든 체면을 차리고 자신에게 이제부터는 나태웅과 연락하지 않겠다며 사라질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지영은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회사에서 이렇게 자신과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모습에 그녀는 당황했다. “아, 너 그만 놔!” 하주원은 머리가 당겨져서 아팠다. 안지영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 “너 방금 나 때리겠다고 하지 않았어? 때려 봐! 나 때려봐!” 하주원은 말없이 그녀를 노려보았고 비서도 말없이 이 광경을 보고는 급히 사람들을 데려와서 둘을 떼어놓으려고 했다. 한편, 그녀는 급히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 안열은 여전히 병원에 있었다. 병실 안의 분위기는 너무나도 이상하고 긴장감이 감돌았다. 진이훈은 나태웅을 한번 보고 다시 안열을 바라보았다. 그는 안열이 이곳에 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으며 더 놀라운 건 그녀가 보스에게 손을 대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뜻으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 나태웅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의 눈빛은 안열을 마치 찢어버릴 듯이 차갑고 위험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막 손을 댄 안열은 점차 차
한편, 하늘 그룹에서는 안지영이 진이훈을 차단한 후 더 이상 아무도 찾아오지 않아 안지영의 세계는 조금 조용해졌다. 그런데 회의실에서 나오자 비서부의 작은 비서가 다가왔다. “안 대표님, 접대실에 하주원 씨라는 분이 오셨습니다.” “하주원?” “네.” 비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안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게 누구지?” 머릿속에서 그녀와 관련된 사람을 검색했지만 그 이름은 낯설었다. 그녀는 그 사람을 전혀 알지 못했다. 비서가 말했다. “나 회장님의 여동생의 딸입니다.” “나태웅의 사촌?” “네, 맞습니다.” ‘이런!’ 그제야 그녀는 고은영이 왜 배준우와 함께 있을 때 그렇게 힘들었는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문제는 언제나 따라왔다. 안지영은 머리가 아팠지만 어쩔 수 없이 접대실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녀는 금발의 긴 파마머리로 화려하게 꾸민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지나치게 짙은 화장과 화려한 옷차림으로 본래의 단아함을 가리고 풍만한 매력을 풍기며 섹시한 기운을 뽐냈다. 특히 짧은 청바지와 상의가 안지영의 머릿속에 두 글자를 떠오르게 했다. ‘불량소녀!’ 안지영은 쉽게 다른 사람의 외모나 스타일을 평가하지 않지만 그 순간 하주원의 화려한 화장은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특히 그린 아이섀도와 은색이 박힌 네일이 그녀에게서 여유보다는 떠도는 느낌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 하주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안지영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에는 불꽃이 튀었다. “당신이 안지영 씨?” 하주원은 적대적인 어조로 물었다. 안지영은 그녀가 왜 왔는지 감을 잡았다. 그녀는 차갑게 말했다. “저를 찾으러 오셨으면서 제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나요?” 하주원은 여전히 적대적이었고 대화는 금세 불쾌한 기운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몇 마디를 주고받는 사이에 이미 공기 속에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하주원은 커피를 내려놓고 일어나서 안지영에게 다가갔다.
“안지영 씨가 오면 분명히 대표님을 때릴 거예요!” ‘때린다’는 말을 진이훈은 아주 세게 강조했다. 나태웅은 다시 침묵했다. 진이훈은 그의 이런 모습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 보스가 정말 아픈 거였다. 병이 심각해 보였고 이런 상태로 가면 안지영까지 미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자신이 아파서 안지영 씨까지 미치게 만들려고 하는 걸까? 정신이 온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결혼을 한다고?’ 진이훈은 그런 생각을 하며 나태웅이 정말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느꼈다. “아리 박사님이 이미 왔어요. 큰 도련님께서 의사와 협력해서 치료를 받으라고 하셨어요.” 나태웅은 그 말을 듣고 차가운 눈빛으로 진이훈을 노려보았다. 진이훈은 그 눈빛에 조금 겁을 먹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맞을 위험을 감수하며 말했다. “몸이 중요하잖아요. 그렇죠?” 진이훈도 답답했다. 나태웅 옆에서 열심히 일만 했을 뿐인데 결국 나태웅과 함께 병원에서 그의 병수발을 들고 있다니. 나태웅은 차갑게 한 마디를 내뱉었다. “꺼져!” 그는 마음속으로 더 괴로워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태웅이 얼굴이 더 안 좋아 보이는 걸 보며 진이훈은 다시 물었다. “그럼 안지영 씨가 여전히 안 오면 어떻게 하죠?” “그럼 유골함을 열어 그녀에게 보여주면 돼.” ‘유골함을 열다니! 안지영 씨에게 유골함을 보여준다고?’ 나태웅이 그런 말을 하자 진이훈은 급히 인터넷에서 유골함을 열어본 사진을 찾았다. 그가 캠퍼스를 떠나 처음 일했을 때는 열정이 넘쳤지만 지금은 이런 유치한 일을 해야 하다니. 안지영을 빨리 오게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다. 그는 서둘러 그 사진을 안지영에게 보냈다. 하지만 메시지를 보낼 수 없다고 떴을 때 그는 온몸이 얼어붙었다. “그, 안지영 씨가 저를 차단했어요. 이제 귀찮아서 오지 않을 거예요.” 진이훈은 힘없이 말했다. 나태웅은 책을 넘기던 손이 잠시 멈췄고 그의 눈빛에 얼음처럼 차가운 기운
안열은 처음엔 초조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보며 의심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안지영은 계속해서 말했다. “나태웅이 말하길 제가 아침에 음식을 가져가지 않으면 화장 증명서를 받게 될 거라던데 지금 아침 시간이 겨우 한 시간 정도 지났잖아요?” ‘한 시간 만에 죽었다고? 화장 증명서까지 나왔다고?’ 안지영은 결국 상황을 완전히 이해했다. ‘이 나태웅, 진짜 못돼 먹었네. 이런 상황에서도 날 도덕적으로 옭아매려고 하다니.’ 안지영은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안열은 뒤늦게 납득하며 말했다. “맞아요! 그럼 결국 장난친 거잖아요?” “화장 증명서가 그렇게 빨리 나올 리가 없어요.” “설령 진짜 죽었다고 해도 병원에서 절차를 다 마쳐야 화장터로 갈 수 있잖아요.” 안지영은 얼굴이 굳었다. 조금 전까지 충격에 휩싸여 허둥대던 그녀는 이제 머리끝까지 화가 나 있었다. “지금 바로 나태웅을 정말 죽여버려도 돼요?” 안열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말했다. “나태웅 이 자식, 미친 거 아니에요?” 안지영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네, 이미 정신과 의사도 예약했어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나태웅이 진심으로 죽으려 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안지영은 안열의 손목을 잡고 그녀의 눈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근데 아까 왜 그렇게 초조해했죠?” “아니에요, 잘못 보셨어요.” ‘그걸 내가 잘못 볼 리가 있냐고?’ 아까 안열이 보였던 반응은 분명 초조함이었다. 안열은 더 이상 안지영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단지 나태웅을 찾아가 따질 생각뿐이었다. 안열은 안지영의 손목을 뿌리치며 말했다. “회의하러 가세요.” “그럼 안열 씨는요?” “저는 마음을 좀 진정시킬 시간이 필요해요!” 안지영은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마음을 진정시킨다니, 그 말을 내가 믿을 것 같아?’ 그러나 지금 나태웅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이미 너무 지쳤다. 회의실로 올라간 안지영은 이제 겨우
‘진짜 너무 악랄해.’ 진이훈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우리 보스가 안지영 씨에게 얼마나 진심인데 그 마음을 완전히 짓밟아버렸어.’ 그는 나태웅의 손을 꼭 붙잡으며 혹시라도 그가 창문에서 뛰어내릴까 봐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진이훈의 끝없는 잔소리에 나태웅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결국 그는 손을 확 뿌리쳤다. 그러나 진이훈은 더 꽉 붙들며 간절하게 말했다. “우린 안지영 씨 생각하지 말자고요, 네?” 심지어 말 끝에 ‘말 잘 들어요’같은 말을 덧붙이고 싶을 정도였다. 나태웅의 눈빛이 점점 더 위험해지더니 낮게 물었다. “우리?” ‘뭐지? 방금 내가 무슨 말을 했지?’ 잠시 멍해 있다가 서둘러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요! 우리가 아니라 대표님이 안지영 씨를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진이훈은 속으로 생각했다. ‘이 여자에게 받은 상처가 얼마나 깊으면 말조차도 안지영 씨와 관련되면 불편한 거야?’ “손 놔.” 진이훈은 여전히 손을 놓지 않으며 강하게 말했다. “안지영 씨는 별로예요. 게다가 지금은 장선명 씨와 이미 사귄다는 소문도 있잖아요. 그런 여자를 정말 원하시겠어요?” “내가 손 놓으라고 했지.” 나태웅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힘을 주어 손을 뿌리쳤다. 그의 눈빛은 마치 진이훈을 잡아먹을 듯이 날카로웠다. 진이훈은 나태웅의 그 눈빛에 움찔하며 한발 물러섰다. 나태웅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시 한번 안지영을 헐뜯어봐.” ‘이제 안지영 씨에 대해 나쁜 말도 못 하게 해?’ 그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정말 이 여자한테 얼마나 깊이 빠진 거야... 병이 이렇게 심한데도 안지영 씨를 지키려 하다니.’ 한편, 안지영은 진이훈에게서 온 메시지를 확인한 뒤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곧바로 메시지 창에서 영상 통화를 걸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계속 시도했지만 나태웅 쪽에서 받지 않았다. 그녀는 점점 숨이 가빠지며 제대로 숨도 못 쉴 지경이 되었다. 옆에서 지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