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36화

Author: 목련청
“서유라 씨가 저보고 개래요. 대표님은 말리지도 않고 오히려 저를 때리려고 했어요.”

천기준은 말할수록 억울함이 북받쳤다.

명문대 출신에 수년간 배서준을 따라 일해 왔건만 돌아오는 건 모욕뿐이라니, 그것도 제대로 된 사과나 공정한 대우조차 받을 수 없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일하는 사람도 사람인데, 감정도 있고, 자존심도 있는데!’

“뭐요?”

남설아는 그 말을 듣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설마 이런 이유였단 말이야? 진짜로 이 일 때문이었어?’

배서준은 지금 서유라한테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였다.

이젠 이성이 마비됐는지 자기 옆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을 모욕하는 걸 그냥 두고 보질 않나?

진짜 머리에 뭐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아니, 분명 어딘가 고장이 난 게 틀림없었다.

“걱정 마요. 이번 일은 내가 기억해둘게요. 언젠가 꼭 되갚아줄 겁니다.”

“지금 당장 회사 최근 5년간의 핵심 자료가 필요해요. 구할 수 있어요?”

이미 서로 손을 잡기로 한 이상 남설아는 더는 멋쩍게 굴 필요가 없었다.

이젠 파트너이니 필요한 건 당연히 요구할 수 있었다.

천기준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구할 수 있어요.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한데 내일 밤까지 드릴게요.”

이렇게 말하고 일어선 천기준은 망설이다가 남설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 이제부터 설아 씨 편이에요. 그 말은 곧 배 대표님을 배신하겠단 뜻이죠. 모두가 배신자를 어떻게 보는지 저도 잘 알아요. 그리고 설아 씨도 목적 달성하면 절 옆에 두지 않을 거란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전 돈이 필요해요. 멀리 떠나서 새 인생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요.”

사실 남설아는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더 좋았다.

뒤에서 어정쩡하게 기회만 노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나았다.

결국 남설아가 웃으며 말했다.

“200억. 일 끝나면 200억 줄게요. 멀리 떠나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예요.”

“감사합니다, 남 대표님!”

천기준은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솔직히 처음엔 남설아 성격상 많아야 몇억을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Related chapters

  • 굿바이 쓰레기   제1화

    “남설아 씨, 모르셨어요? 아이의 병은 유전성 골암이에요. 남은 시간이 길면 두 달입니다. 제가 기억하기론 설아 씨 어머님도 이 병으로 돌아가셨죠. 제 생각엔 설아 씨도 정밀 검사를 받으시는 게 좋겠네요...”남설아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듯싶었다. 의사의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고 몸이 멈출 수 없이 떨려왔다.“엄마, 왜 그래요?” 배나은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남설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제가 사과할까요?”남설아는 병상 위 배나은의 깡마른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자신의 전부인 아이의 남은 시간이 겨우 두 달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그녀는 부모도 가족도 없었고 결혼 생활은 허울뿐이었다. 나은이는 그녀가 살아갈 유일한 이유였다.남설아는 눈물을 억지로 삼켰다. “엄마는 슬프지 않아. 너무 행복해. 나은이가 곧 나을 테니까.”배나은의 눈이 빛났다. “정말이요? 너무 좋아요. 아빠는... 오늘 저 보러 올까요?”맑고 까만 눈에 살짝 기대가 스쳤지만 아이는 금세 고개를 떨궜다. 또 실망할까 봐 기대하는 것조차 두려웠다. 그 말은 남설아의 가슴을 더 무겁게 짓눌러 고통스럽게 했다.남설아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억누르고 말했다. “올 거야. 엄마가 약속해. 오늘 아빠가 나은이 만나러 꼭 올 거야.”“정말이에요...?” 아이의 목소리는 불안했고 확신이 없이 되물었다. 남설아는 그 이유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나은이를 낳아준 엄마인 자신이 나은이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네 살짜리 아이는 어른들 사이의 복잡한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평범한 가족의 온기와 아주 조금의 아버지 사랑을 바랐을 뿐이다.그런데 아이의 시간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이가 원하는 걸 줄 수 없었다.“나은아, 엄마가 약속해.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 꼭 아빠 데려올게. 생일 축하해.” 남설아는 아이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췄다.배나은은 환하게 웃었다.남설아는

  • 굿바이 쓰레기   제2화

    배서준은 서유라의 손을 바라보며 점점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그럼 딱 한 달이야. 남설아, 쓸데없는 수작 부리지 마. 네가 다른 속셈이라도 품으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할 거야.”남설아는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좋아요. 당신이 나은이랑 함께 있어 주기만 한다면, 전 뭐든지 협조할게요. 아버지로서, 최소한 생일 선물은 챙겨야 하지 않나요?”배나은은 남설아의 품에 안겨 있었고 차는 천천히 배 씨 저택을 향해 달렸다.“엄마, 아빠 정말 오는 거예요...?”배나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눈에 비친 간절함은 숨길 수 없었다.남설아는 아이의 등을 토닥이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당연하지.”배나은의 눈동자가 반짝였다. “그럼 엄마, 아빠한테 제가 아픈 거 말하지 마요. 아빠가 속상해할까 봐요.”그 말을 들은 순간 남설아는 눈시울이 붉어졌고 가슴이 미어졌다. 그녀는 조용히 아이의 잔머리를 쓰다듬었다.“알았어. 엄마가 약속할게.”배나은은 새끼손가락을 내밀었고 남설아는 이해했다는 듯 손가락을 걸었다.“엄마가 우리 나은이랑 손가락을 걸고 약속할게.”배나은은 해맑게 웃었지만, 남설아의 시야는 점차 흐릿해졌다.그녀의 아이,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그녀와 혈연으로 이어진 소중한 존재가 곧 떠날 것이다.아이가 떠나기 전에 아이에게 마지막으로 행복한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었다.배 씨 저택에 도착하자, 집사는 두 사람의 짐을 받았다.“대표님은 안에 계시는가요?”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안에 계십니다.”그 말을 듣고 남설아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결혼 후, 배서준이 이 집에 머문 횟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나은이가 아빠를 본 건, 대부분 TV 화면 속에서였다.남설아는 배나은의 손을 잡고 별장 안으로 들어갔다.멀리 소파에 앉아 있는 배서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배나은의 눈빛이 반짝였다. 남설아는 살며시 아이의 손을 놓으며 어깨를 두드렸다.“얼른 아빠한테 가.”배나은은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다가갔다.

  • 굿바이 쓰레기   제3화

    나은이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엄마가 아빠를 정말 좋아하니까요. 아빠가 나은이를 안 좋아해도 괜찮아요. 그런데 엄마를 조금 더 좋아해 줄 수는 없나요? 앞으로 엄마한테 좀 더 잘해주실 수 있나요...?”아이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작고 가벼웠다. 크고 또렷한 눈망울이 배서준을 바라보고 있었다.배서준의 눈빛이 흔들렸다.‘역시.’그는 남설아의 의도가 순수하게 아이 때문일 리 없다고 예상했었다.“그 말 네 엄마가 시킨 거야?”배서준의 목소리는 차갑고 그 속엔 냉기가 섞여 있었다.“아니에요!” 배나은은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하지만 배서준은 쉽게 믿지 않았다. 그의 눈빛은 점점 더 차가워졌다.배나은은 자신이 아빠를 화나게 한 것 같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지만 사실 아이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인어공주처럼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것을 말이다. 엄마는 병이 나았다고 했지만, 나은이는 스스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은 분명 심각하게 아팠다.그런데도 아이는 만약 자신이 거품이 되어 바다로 돌아가야 한다면 그 후에도 엄마가 사랑받기를 바랐다.배나은은 일어나 푹신한 카펫을 밟으며 작은 책장으로 갔다. 그리고 오래된 가죽 노트 하나를 꺼내 배서준에게 건넸다.“아빠, 엄마가 아빠를 정말 좋아해요. 여기 안에 그게 다 적혀 있어요.”배서준은 멈칫하며 나은이의 간절한 눈빛을 바라봤다. 그는 마지못해 그 오래된 노트를 받았다.“꼭 읽어보세요.” 나은은 해맑게 웃었다.배서준은 남설아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굳이 글로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노트를 펼칠 마음이 없었다.그저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그날 밤, 남설아가 따뜻한 우유를 가지고 오는 동안, 나은은 곧장 잠이 들었다.남설아는 조심스럽게 배서준을 방 밖으로 이끌었다. 문을 닫고 멀리 떨어지자 그녀가 말했다.“내일 아침에 직접 나은이를 유치원에 데려다주세요. 손님방은 안 쓰셔도 돼요. 제가 잘 테니까요.”배서준은 그 말을 듣고 냉소를 지었다.“왜? 또 밤에 내

  • 굿바이 쓰레기   제4화

    이 피드는 그녀를 차단하는 걸 잊은 게 분명했다.그녀의 눈빛이 살짝 어두워졌지만, 그 어떤 감정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어제 보낸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오늘은 서유라의 손에 쥐어진 걸 보니 그 빠른 처리 속도가 감탄스러울 정도였다.그럴 만도 했다. 어차피 서유라는 배서준이 마음속에 가장 아끼는 사람이니까.남설아는 희미하게 웃었다. 막 휴대폰을 끄려던 찰나, 한 통의 메시지가 도착했다.[설아야, 나 열흘 후에 귀국해.]프로필 사진은 새까맸고 이니셜 ‘kyc'가 적혀있었다..오랫동안 연락처 목록에 잠들어 있던 사람, 계산해보면 둘이 연락하지 않은 지도 벌써 6년이 흘렀다.남설아는 가라앉은 숨을 내쉬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오후 4시 20분, 배서준은 무거운 회의에서 막 빠져나온 참이었다. 장우진의 알림이 없었더라면 배나은을 데리러 가야 한다는 걸 잊을 뻔했다.곧장 차량에 올라타 유치원으로 향했다.배서준은 피곤한 이마를 문지르며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빨리 가.”운전기사는 그 눈빛을 보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대표님.”배서준은 아이를 데려다 남설아에게 맡긴 후 서유라의 집으로 갈 계획이었다.하지만 그 순간, 침묵을 깨고 휴대폰이 울렸다. 화면에는 선명하게 ‘서유라'라는 세 글자가 떠 있었다.배서준은 눈빛이 살짝 흔들렸지만 망설임 없이 전화를 받았다.전화기 너머,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유라는 울먹이며 말했다.“서준아, 짱아가 너무 아파. 지금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졌는데, 의사 선생님이 이번엔 정말 힘들 수 있다고...”짱아는 서유라가 키우는 강아지로 한때 배서준이 생일 선물로 준 아이였다.둘이 헤어진 뒤로도 짱아는 줄곧 서유라의 곁을 지키며 그녀가 우울증에서 벗어나는 데 큰 위안이 되어줬다.서유라에게 짱아는 둘 사이의 아이 같은 존재였다.배서준의 눈빛이 어두워졌지만 목소리는 평온했다.“걱정하지 마. 이따가 금방 갈게.”“아니야... 지금 빨리 와줘...”서유라의 목소리는 이미 완전히 무너져 있

  • 굿바이 쓰레기   제5화

    “콜록, 콜록...” 배나은은 다시 한번 심하게 기침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기침이 멈추지 않아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했다. 조그마한 몸이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피를 한입 가득 토해냈다.“나은아!” 남설아의 목소리가 떨려왔고 그녀는 황급히 아이에게 다가갔다.배나은의 얼굴은 열기로 새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입술은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엄마, 괜찮아요...”남설아는 서둘러 아이를 품에 안았다. “엄마가 병원에 데려갈게.”배나은은 작은 손으로 남설아의 옷자락을 꼭 잡았다. 이미 눈가가 새빨갛게 부어올라 있었다.병원에 도착해 혈액 검사를 마친 후, 두 사람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배나은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엄마, 아빠는 저를 싫어하는 거예요...?”그 말을 듣는 순간, 남설아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진실을 말하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었다.‘나은아, 아빠는 너를 싫어하는 게 아니야. 아빠가 싫어하는 건... 나야. 만약 네가 서유라의 아이로 태어났다면 지금쯤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행복했을 거야.’남설아는 눈물을 머금은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은아. 아빠는 널 싫어하지 않아. 그냥 너무 바빠서 그래...”배나은은 힘겹게 미소를 지었다. 창백한 얼굴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작은 손으로 엄마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엄마가 행복하면 돼요.”그 말에 남설아는 눈물이 무너질 뻔했다. 하지만 참아야 했다. 눈물을 삼키고 오히려 웃음을 지어 보였다.그 순간, 날카롭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의사 선생님!”남설아는 온몸이 굳었다. 두 모녀는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그리고 그곳에는 여기 있을 리 없는 배서준이 서 있었다.그의 두 팔에는 또 다른 여자가 안겨 있었다. 서유라였다.배나은은 무의식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빠.”그 한마디에 배서준의 눈길이 순간 흔들렸다. 그는 남설아와 배나은을 보며 잠시 멈칫했다.그 순간, 배서준의 품 안에 있던 서유라가 그의 소매를 꼭 잡았다.

  • 굿바이 쓰레기   제6화

    “서준아, 설아 씨가 너랑 얘기하고 싶다니까 천천히 이야기해. 아이 앞에서는 싸우지 마.”서유라는 배서준의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당기며 억울함을 꾹 눌러 담은 눈빛을 보냈지만, 여전히 이해심 많은 사람처럼 행동하려 애썼다.그 모습을 본 배서준은 살짝 불만스러워했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옆으로 물러섰다.얼마나 오래된 일인지도 모를 만큼, 둘만의 시간이 이렇게 주어진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그래서인지 남설아는 한동안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하지만 배서준의 눈빛은 차가웠다. 그에게는 이미 남설아에게 쏟을 인내심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대체 뭘 말하고 싶은데? 애를 데리고 이런 데까지 와서 소란을 피우다니, 엄마라는 사람이 이래도 돼?”그녀가 과거에 자신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서슴지 않았다는 생각에 심지어 그 수단으로 자기 아이까지 이용한다고 느껴져서 배서준은 속이 뒤집힐 지경이었다.“당신이 나은이랑 한 달만 함께하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 한 달 동안, 제발 서유라 씨는 나은이 앞에 나타나지 않게 해주세요.”남설아는 이제 배서준이 자신을 어떻게 보든 상관없었다.그녀는 그저 딸이 남은 시간을 행복하게 보내길 바랄 뿐이었다.“난 나은이랑 한 달 같이 있겠다고 했지, 네가 뭘 요구하든 더 들어줄 생각은 없어. 넌 참 한결같다. 예전에도 더럽고 비열한 수법으로 내 침대에 기어들더니... 너만 아니었어도 난 누구의 아빠도 되지 않았을 거야!”배서준의 눈빛이 점점 얼음처럼 차가워졌다.그는 나은을 아주 싫어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가 태어나는 과정만 떠올려도 견딜 수 없이 화가 났다.역시나 몇 년이 흘러도 그는 끝내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그날 밤은 정말 의도치 않은 사고였고 남설아조차 왜 그 방에 있었는지, 왜 그의 침대에 누워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그런데 그렇게 하루 만에 나은을 품에 안게 되었을 때, 남설아는 그저 하늘이 자신에게 준 선물이라 여겼다.하지만 지금...나은의 병약한 모습을 떠올리면 그녀는 가슴이 무너

  • 굿바이 쓰레기   제7화

    온 병원이 배나은 때문에 소란스러웠다.그런데 남설아는 마치 머릿속이 텅 빈 듯했다.들리는 건 발소리와 사람들의 외침뿐, 눈앞에 보이는 것도 들리는 것도 아무것도 없었다.“남설아 씨? 괜찮으세요?”의사가 그녀의 눈앞에서 손을 흔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그제야 정신이 조금 돌아온 듯 남설아는 멍하니 의사를 바라봤다.순간적으로 정신이 번쩍 들며 모든 이성이 한꺼번에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제 딸... 어떻게 됐나요?”“일단 상태는 안정시켰습니다. 그런데 병세가 급격히 악화해서 지금 상황이 많이 안 좋습니다. 우선은 ICU에 입원시켜서 안정될 때까지 지켜보고 그 이후에 수술할 수 있는지 확인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남설아 씨, 지금 아이의 상태로 봐서는 수술은...”의사는 말을 흐렸다.굳이 끝까지 말하지 않아도, 남설아는 이해했다.수술은 의미가 없을 가능성이 컸다. 그저 아이의 몸을 더 고통스럽게 만들 뿐이었다.그런데도,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자신의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어떤 희망도 놓고 싶지 않았다.“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사에게 고개 숙여 인사하고 돌아서는 순간, 눈물이 예고도 없이 터졌다.그녀는 다급히 손으로 눈물을 닦았지만 닦을수록 더 쏟아졌다.결국 복도에 주저앉아, 온몸을 웅크리고 자신을 꼭 끌어안았다.이 순간, 그녀는 절망이라는 감정이 얼마나 깊고 아픈지 뼛속까지 깨달았다.위생복을 입고 중환자실에 들어간 남설아는 나은이의 침대 옆에 앉았다.나은이의 얼굴은 창백했고 온몸에는 수많은 튜브와 기계들이 연결돼 있었다.그런데도 느껴졌다. 그녀의 소중한 딸의 생명이 손끝에서 조용히 흘러나가는 듯했다.“나은아, 미안해. 다 엄마가 잘못했어. 엄마가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남설아는 고개를 숙이고 아이의 작은 손을 조심스럽게 쥐었다.지난 일들이 스쳐 갔다. 만약 자신이 배서준을 사랑하지 않았다면, 나은이는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태어나지 않았을까?이렇게 착하고

  • 굿바이 쓰레기   제8화

    “나은아!”남설아는 비명을 지르며 아이의 이름을 불렀다.눈물이 멈출 수 없이 쏟아졌고 가슴이 뭔가에 꽉 막힌 듯 답답해져 숨쉬기조차 힘들었다.그녀는 알았다.나은이가 떠났다.세상에 잠시 왔다가 이 세상을 보고 결국 실망한 채 하늘로 돌아갔다.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곳으로 돌아갔다.“나은아,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남설아는 아이의 작은 몸을 꼭 끌어안았다.차가워진 나은의 얼굴을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싸고 떨리는 입술로 수없이 입을 맞추며 사죄했다.모든 게 자기 잘못이었다.무리하게 배서준에게 매달린 것도 아이에게 이런 고통을 준 것도 모두 다 자신 때문이었다. 그런 자신이 나은의 엄마가 될 자격이 없었다.나은이는 이제 돌아오지 않는다.하지만 그녀는 마음을 추슬렀다. 직접 아이의 몸을 씻기고 나은이 가장 좋아하던 분홍색 공주 드레스로 갈아입혔다.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게 보내주고 싶었다.병원 의사와 간호사들은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모두가 작은 천사 같던 나은을 정말 아꼈기에 이 갑작스러운 이별이 믿기지 않았다.그런데 정작 남설아는 더 이상 울지도 않았다.눈물조차 말라버린 듯한 얼굴로 울고 있는 간호사들을 오히려 다독였다.“그동안 나은이를 잘 돌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그녀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고개 숙여 인사했다.“설아 씨... 괜찮으신 거예요?”간호사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어떤 엄마가 아이를 잃고도 이렇게 담담하게 웃을 수 있을까.그 모습이 오히려 더 가슴을 아프게 했다.그 후, 남설아는 남은 마지막 현금 400만 원으로 분홍색 유골함을 샀다. 나은이 가장 좋아했던 색이었다. 이게 그녀가 나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었다. 그렇게 나은의 유골함을 품에 안고 그녀는 온기가 사라진 집으로 돌아왔다.아이의 물건을 정리하고 모든 걸 정리한 뒤 조용히 이곳을 떠날 생각이었다.그런데 집 앞에서 예상치 못한 사람을 마주쳤다.남설아의 인생을 불행으로 몰아넣은 모든 비극의 시작점인 사

Latest chapter

  • 굿바이 쓰레기   제236화

    “서유라 씨가 저보고 개래요. 대표님은 말리지도 않고 오히려 저를 때리려고 했어요.”천기준은 말할수록 억울함이 북받쳤다.명문대 출신에 수년간 배서준을 따라 일해 왔건만 돌아오는 건 모욕뿐이라니, 그것도 제대로 된 사과나 공정한 대우조차 받을 수 없다니.‘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일하는 사람도 사람인데, 감정도 있고, 자존심도 있는데!’“뭐요?”남설아는 그 말을 듣고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설마 이런 이유였단 말이야? 진짜로 이 일 때문이었어?’배서준은 지금 서유라한테 완전히 미쳐버린 상태였다.이젠 이성이 마비됐는지 자기 옆에서 가장 오래 함께한 사람을 모욕하는 걸 그냥 두고 보질 않나?진짜 머리에 뭐라도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아니, 분명 어딘가 고장이 난 게 틀림없었다.“걱정 마요. 이번 일은 내가 기억해둘게요. 언젠가 꼭 되갚아줄 겁니다.”“지금 당장 회사 최근 5년간의 핵심 자료가 필요해요. 구할 수 있어요?”이미 서로 손을 잡기로 한 이상 남설아는 더는 멋쩍게 굴 필요가 없었다.이젠 파트너이니 필요한 건 당연히 요구할 수 있었다.천기준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구할 수 있어요. 시간이 조금 필요하긴 한데 내일 밤까지 드릴게요.”이렇게 말하고 일어선 천기준은 망설이다가 남설아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저 이제부터 설아 씨 편이에요. 그 말은 곧 배 대표님을 배신하겠단 뜻이죠. 모두가 배신자를 어떻게 보는지 저도 잘 알아요. 그리고 설아 씨도 목적 달성하면 절 옆에 두지 않을 거란 거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전 돈이 필요해요. 멀리 떠나서 새 인생 시작할 수 있을 만큼의 돈이요.”사실 남설아는 이런 식으로 솔직하게 말하는 사람이 더 좋았다.뒤에서 어정쩡하게 기회만 노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나았다.결국 남설아가 웃으며 말했다.“200억. 일 끝나면 200억 줄게요. 멀리 떠나서 걱정 없이 살 수 있을 거예요.”“감사합니다, 남 대표님!”천기준은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솔직히 처음엔 남설아 성격상 많아야 몇억을

  • 굿바이 쓰레기   제235화

    바보도 아닌데 서유라가 천기준의 말에 담긴 냉소와 비아냥을 못 알아챌 리 없었다.그녀는 벌떡 일어나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천 비서님은 그냥 서준이 옆에 붙어 다니는 개일 뿐이잖아요! 근데 감히 나한테 이빨을 드러내요? 일하기 싫어진 모양이죠?”그러자 천기준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무표정하게 대꾸했다.“죄송합니다, 서유라 씨. 저는 배 대표님의 개가 아니라 비서거든요. 개가 좋으시면 대표님께 새로 한 마리 사달라고 하시죠.”서유라는 천기준이 이렇게까지 대들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라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대로 뺨을 올려쳤다.하지만 천기준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그는 그녀의 손목을 단번에 붙잡고 차갑게 말했다.“서유라 씨, 선은 지키시죠.”그 순간 병실에 들어선 배서준이 이 장면을 보자마자 성큼 다가와 천기준을 가로막았다.그러고는 불쾌한 얼굴로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대표님, 서유라 씨가 제 뺨을 때리려 했습니다.”천기준은 침착하게 상황을 설명했고 곧 그녀의 손목을 놓으며 덧붙였다.“전 단지 제 몸을 방어했을 뿐입니다. 공격할 생각은 없었습니다.”서유라는 억울함과 분노에 눈이 뒤집힌 채로 배서준에게 안기며 울음을 터뜨렸다.“서준아, 난 진짜 때리려던 게 아니었어... 하지만 저 사람이 계속 날 모욕했어. 내가 도대체 뭘 그렇게 잘못했길래 왜 모두가 나한테 이래?”천기준은 이런 ‘울고 떼쓰고 매달리는’ 전형적인 서유라의 방식에 익숙했기에 담담하게 받아치듯 말했다.“병원 CCTV는 음성까지 녹음됩니다. 정말 억울하시다면 언제든지 확인하시면 됩니다.”이 말에 서유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배서준 품에 안긴 채 흐느끼는 것 외엔 더 할 말이 없었다.배서준도 바보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굳이 깊이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한 명은 자신이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여자, 한 명은 오랜 시간 곁을 지켜온 비서.두 사람 모두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배서준은 천기준의 이마를 살짝 손가락으로

  • 굿바이 쓰레기   제234화

    “비켜!”배서준은 고함을 내질렀고 눈빛은 이미 싸늘하게 돌아서 있었다.하지만 간병인 안경희는 배서준이 누군지도 몰랐기에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이봐요, 전 제 환자를 지켜야 할 의무가 있어요. 나가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아주머니, 괜찮아요. 나가 계세요. 이 사람 제 남편이에요.”‘남편’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릴 때 남설아의 말투에선 명백한 비웃음이 묻어났다.그 말을 들은 안경희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남설아를 돌보며 봐왔던 남자는 언제나 강연찬이었고 이 무서운 얼굴의 남자가 남편이었다는 건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이렇게 험악하게 구는 남편이라니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걱정스러운 얼굴로 남설아에게 물었다.“정말 경찰 안 불러도 괜찮아요?”“괜찮아요, 나가 계세요.”남설아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안경희의 손등을 살며시 눌렀다. 진정시키려는 듯한 동작이었다.안경희는 코웃음을 치고 배서준을 노려보았다.“나 문 앞에 서 있을 거니까 손끝 하나라도 대 봐요, 바로 신고할 테니까! 멀쩡하게 생겨선 아내 때리는 놈이라니, 에잇!”그러고는 어깨로 배서준을 밀치며 씩씩하게 병실 밖으로 나갔다.안경희에게 호되게 당한 배서준의 얼굴은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그런 모습을 보며 남설아는 참지 못하고 속으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배서준 같은 사람한테 저런 대접은 평생 처음일 게 분명했다.“서준 씨, 지금 당신 꼴 좀 봐요. 진짜 미친 사람 같아요.”남설아는 몸을 조금 옆으로 틀어 가능한 한 그와 거리를 뒀다.“도대체 뭐 하려는 거예요?”“딱 하나만 묻겠어. 송우민이랑 아는 사이야?”배서준은 이를 악물고 남설아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봤다.표정 하나하나를 다 읽어내려는 듯 의심과 긴장이 얽혀 있는 눈빛이었다.결혼 후 이렇게까지 그녀를 바라본 건 처음이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시선 안에서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남설아는 그 눈빛을 마주하며 역겨움을 느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모르는

  • 굿바이 쓰레기   제233화

    “설아가 서도현이 한 짓이라고 했지. 너랑은 무슨 상관이야? 네 동생은 원래 하는 일 없이 빈둥대던 애였잖아. 엇나간 짓 좀 했다고 이상할 것도 없지.”배서준은 최대한 이성적으로 상황을 정리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옆에 있던 서유라는 그 말만으로도 분명히 알 수 있었다.이젠 자신이 배서준 마음속에서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걸.예전이라면 자신과 관련된 일에 이성이니 판단이니 그런 말이 나올 리가 없었다.‘언제나 감정대로 움직였던 사람인데 지금은 이렇게까지 차분하다고? 이제는 날 신경도 안 쓰는구나.’“서준아, 설마... 날 사랑하지 않게 된 거야?”서유라는 억울함에 목소리가 떨렸고 눈물이 뚝 떨어졌다.“나도 내가 요즘 어떤지 알아. 진짜 미안해. 그런데도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너무 사랑해서 그래. 너 없이는 안 돼. 진짜 난 너 없으면 안 돼.”말을 하면서 그녀는 조수석에 몸을 웅크렸고 온몸이 바들바들 떨리고 있었다.그런 서유라의 모습에 한순간 마음이 약해진 배서준은 말투도 한결 누그러졌다.“너한테 화내려는 건 아니었어. 그리고 너 떠날 생각도 없어. 걱정하지 마.”“정말... 정말 믿어도 돼? 정말 날 떠나지 않을 거야?”서유라는 눈가가 촉촉히 젖은 채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그 눈을 마주한 순간, 배서준은 다시 마음이 무너져 내려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하지, 바보야. 내가 어떻게 널 떠나.”어릴 때부터 줄곧 함께해온 사이였고 수십 년 동안 마음속에 그녀를 품어온 사람인데 그렇게 쉽게 끊어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둘은 말없이 차를 타고 해변가 별장까지 도착했다.현관문이 열리자마자 서유라는 비명을 지르더니 바로 배서준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다.배서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천장에 매달린 서도현을 바라봤다. 피범벅이 된 몸을 본 순간, 속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당장 내려!”그의 명령에 별장 안의 도우미가 덜덜 떨며 서도현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사람이 바닥에 닿는 순간, 서유라는 비로소 그게 자기

  • 굿바이 쓰레기   제232화

    고통이 클수록 남설아는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배서준은 병실을 나서자마자 서유라의 팔을 거칠게 붙잡더니 그대로 그녀를 끌고 자신의 차까지 갔다. 그러고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서도현한테 전화해.”“서준아?”서유라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배서준을 바라봤다.“너 정말 설아 씨 말 믿는 거야? 진짜 도현이가 그랬다고 생각해?”“전화하라고.”배서준은 그녀의 말을 무시한 채 다시 한번 똑같은 말을 반복했다. 이번엔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명령이었다.서유라는 감히 반항할 수 없었다. 억울함에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지만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들고 서도현에게 전화를 걸었다.그 시각, 서도현은 손이 묶인 채 허공에 매달려 모진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아아아아악!!”비명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간 돼지 멱따는 소리처럼 이어졌고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소용없었다. 그때 울려 퍼진 핸드폰 벨소리는 그에게 마치 천상의 소리처럼 들렸다.“형님! 형님! 저 돈 있어요! 전화 좀 받게 해주세요, 제발요!”서도현은 연신 울먹이며 애원했다. 이제는 정말 더는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전기태는 매질하느라 저린 손을 털며 짜증스럽게 말했다.“남자라는 놈이 여자나 패고 다니더니 이제 와선 우리한테 사정이나 하고 있어? 퉤! 네 그 몇 푼 더러운 돈 누가 신경이나 쓴대?”말을 마치자마자 다시 힘껏 채찍을 내리쳤다.이제 진짜로 더 못 견딜 것 같았던 서도현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었다.“형님, 진짜 돈 있어요! 제발요! 제 몸에 260억짜리 수표 있어요! 다 드릴게요, 살려만 주세요. 제발요!”그 말에 전기태는 순간 멍해졌다.‘이런 놈이 260억짜리 수표를 들고 있었다고?’전기태는 곧장 그의 몸을 샅샅이 뒤졌고 정말로 그 수표를 꺼냈다. 한참을 확인한 뒤, 그는 곧바로 자기 부하에게 넘겼다.“야, 내가 널 완전 우습게 봤구나. 너 좀 있네?”“보아하니 그 여자한테서 꽤 많이도 뜯어냈구먼. 진짜 찌질함의 끝판왕이네.

  • 굿바이 쓰레기   제231화

    “남설아, 나 정말 너랑 싸우기 싫어. 도대체 어떻게 하고 싶은 건데? 그냥 솔직히 말해.”배서준은 피곤한 듯 미간을 주물렀다. 지금 회사는 전환의 중요한 시점에 있었고 하필이면 집안도 조용할 날이 없었다. 앞뒤가 다 막혀 있는 상황에 그는 정말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그런 배서준의 지친 모습을 바라보다가 남설아는 피식 웃음을 흘리더니 고개를 숙인 채 담담하게 말했다.“서준 씨, 나 당신이랑 이혼하고 싶어요. 공평하게, 내가 받아야 할 건 전부 다 받는 조건으로요.”“뭐라고?”배서준은 수많은 가능성을 생각해봤다. 심지어 다시 아이를 가지는 것도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그렇게 바라던 게 결국 돈 챙겨서 떠나는 거였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다.그 순간 지금껏 참고 있던 인내심과 온화함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배서준은 성큼성큼 다가가 남설아의 목을 움켜잡았다.“이렇게까지 이혼을 서두르는 이유가 내 재산 나눠 가져서 결국 강씨 가문 그놈 도와주려는 거였어? 나쁜년... 대체 두 사람 언제부터 붙어먹은 거야!”분노로 가득 찬 남자의 얼굴이 코앞에 다가오자 남설아는 비웃음을 터뜨리며 냉소적으로 말했다.“결혼을 우습게 여긴 쪽은 당신이잖아요. 그런데도 이제 와서 나한테 뒤집어씌우겠다고요?”“남설아, 내 인내심 시험하지 마.”배서준의 손이 점점 더 힘을 주기 시작했다.숨이 막히기 시작하며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남설아는 몸부림치다 상처가 당겨지는 고통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그 눈물이 배서준의 손등 위로 뚝뚝 떨어졌다. 분명 차가운 물방울인데 배서준은 마치 데인 듯한 느낌이 들어 손을 홱 빼버렸다.그는 천천히 몸을 세우고 눈물에 엉망이 된 여자를 바라보았다. 마음이 복잡했다.오랜 세월 부부로 지내면서 온갖 모습을 봤다.교활하고 눈치 빠르고 요령 있게 사람을 다루는 모습들을 말이다.그가 제일 싫어하던 모습들이었는데 지금은 전혀 다른 사람이 서 있었다. 이렇게 무너진 모습은 처음이었다.왜인지 모르게 남설아의 눈물이 똑 떨어질 때마다 마음 한구

  • 굿바이 쓰레기   제230화

    남설아는 눈을 내리깔고 있었고 그 모습이 어찌나 억울하고 안쓰러운지 배서준의 마음이 한순간 흔들렸다.서유라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제 대놓고 유혹하는 작전까지 쓰네?’배서준의 표정이 눈에 띄게 누그러지는 걸 보자 서유라의 머릿속엔 경고등이 켜졌다.“서준아, 도현이는 절대 그런 짓 안 했어. 남 팀장이 거짓말하는 거야. 이건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맞아, 맞아, 다 내 잘못이야. 유라 씨 말이 다 맞지.”남설아는 병아리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동의했다.그 말투, 그 표정에 또다시 화가 치밀어오른 서유라는 씩씩대며 성큼 다가와 이를 악물고 말했다.“설아 씨가 서준이 때문에 예전부터 나 싫어한 거 알아. 근데 날 싫어하면 날 미워하면 되지, 왜 하필 우리 동생이야? 걔가 뭘 그렇게 잘못했어? 잘못한 거 하나도 없다고! 설아 씨가 그렇게 대할 이유 없어!”“내가 걔한테 뭘 했다고 그래? 내가 때렸어? 욕이라도 했어?”남설아는 억울하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그리고 갈비뼈 쪽을 손으로 짚으며 배서준을 바라봤다.“당신은 당신 와이프한테 다른 여자가 소리 지르고 삿대질하는 걸 그냥 보고만 있어? 세상에 이런 남편이 또 있을까?”그가 ‘남편’이라는 신분으로 자기를 구속하려는 거라면 자신도 그대로 받아치면 되는 일이었다.‘남편’이라는 자리를 원한다면 거기에 따르는 책임도 함께 감당해야 하는 게 아닐까?“유라야, 진정해. 나 혼자 얘기 좀 할게. 잠깐 나가 있어.”배서준은 서유라의 팔을 살짝 잡아끌며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서유라는 여전히 미련이 가득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이를 갈며 남설아를 날카롭게 노려보고는 병실을 나섰다.서유라가 나가고 나자 병실엔 남설아와 배서준, 단둘만 남았다. 공기는 잠시 얼어붙은 듯 무거웠다.“치료비는 회사 보험으로 처리하면 돼.”배서준이 한참을 말없이 있다가 겨우 내뱉은 말이었다.비록 법적으로는 부부고 아이도 있지만 이 둘은 서로를 잘 모른다. 대화도, 감정도, 공통의 언어도 거의 없었다.그 말을 들은 남설

  • 굿바이 쓰레기   제229화

    배서준은 콧방귀를 뀌며 자기 정체부터 내세웠다. 아무리 봐도 이 상황에서 화낼 자격은 자신 쪽이 더 있다는 태도였다.그런 그의 모습에 강연찬은 더 말해봤자 시간 낭비라는 걸 직감했고 입꼬리만 살짝 비웃듯 올리며 말했다.“자기 위치 정확히 인식하고 있다니 다행이네요. 그러니까 더 이상 자리만 차지하고 일도 안 하는 짓은 하지 마세요.”“강연찬 씨. 남의 가정 사이에 끼어들어 놓고 그렇게 떳떳합니까? 우리 집안 어른들이 알면 그쪽은 끝이에요.”배서준은 비웃듯 말하며 경고를 날렸다.“배건 그룹 대표란 인간이 고작 하는 짓이 어른한테 일러바치는 거라고요? 진짜 웃기네요. 유치하게.”강연찬은 한마디 남기고 남설아를 한 번 바라보더니 그대로 병실을 나갔다.남설아는 조용히 앉아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여러 번 호흡을 가다듬고 나서야 몸의 통증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리고 눈을 들자마자 마주친 건 배서준의 날선 눈빛이었다.“내가 몇 번을 말했어? 넌 내 아내야. 배씨 가문 사모님이라고! 남자들이랑 밖에서 얽히지 말라고 했잖아! 창피하게 굴지 마!”“너랑 강연찬, 두 사람 도대체 무슨 사이야?”배서준은 이를 꽉 물고 남설아를 노려봤다. 당장이라도 덮쳐 물어뜯을 기세였다.“맞아, 남 팀장. 이건 너무한 거 아니야? 아침부터 사람 기죽이는 것도 정도가 있지. 설마 남편인 서준이를 이 정도로 무시할 줄은 몰랐네.”서유라까지 거들고 나섰는데 말끝엔 마치 남설아가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사람이라도 되는 양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통증도 심한 데다 두 사람의 짜증 나는 공세까지 들으니 남설아의 얼굴빛이 더 창백해졌다.그녀는 갈비뼈 부근을 감싸 쥐고 차분하지만 날이 선 눈빛으로 배서준을 바라봤다.“어젯밤에 왜 안 왔어요? 나 한참 기다렸다고요. 거기서 진짜 죽을 뻔했고요. 그건 알고 있어요?”“난...”배서준은 본능적으로 변명을 꺼내려 했지만 곧 그녀의 말뜻을 눈치채고는 찌푸린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소리야?”“당신이 준 주소로 가서 문을 열었더니 거기엔 서

  • 굿바이 쓰레기   제228화

    송우민은 강연찬의 매서운 눈빛을 마주하자 본능적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지금까지는 늘 신사적인 인상만 남아 있었는데 이런 야성적인 기운은 처음 느껴졌다.하지만 곧 침착함을 되찾은 송우민은 아무렇지 않은 듯 강연찬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걱정 마. 난 남의 아내한테 관심 없어.”배건 그룹 며느리가 아니었으면 처음부터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사람이다.강연찬은 복잡한 눈빛으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선배 왔구나. 밥은?”병실에서 남설아는 침대에 누운 채 꼼짝도 못 하고 있었다. 눈만 감으면 온몸이 욱신거리고 하루하루가 고통이었다. 유일한 위안은 강연찬의 도시락이었다.그녀의 먹을 것만 밝히는 모습에 강연찬은 부드럽게 웃으며 도시락을 테이블에 놓았다.“넌 참, 오직 먹을 생각뿐이지? 다 네가 좋아하는 거로 해왔어. 옥수수 수프도 끓였고.”“선배는 진짜 너무 좋아! 나 선배 사랑해!”“나중에 돈 많이 벌면 선배 내가 책임질게.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매일 밥만 해줘. 그럼 돼.”남설아는 신난 얼굴로 젓가락을 집어 들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그런 천진한 모습에 잠시 말을 망설이던 강연찬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송우민, 그 사람 너 보러 온 거야? 두 사람... 친한 거야?”“친하진 않아. 전에 나 납치했던 사람이야. 나중엔 살기 위해 서로 손잡은 거고.”남설아는 담담하게 말하고 나서 궁금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근데 왜 다들 그 사람 얘기만 나오면 그렇게 꺼리더라? 그냥 애 같기만 하구만. 뭐가 그렇게 무서운 거야?”주변 사람들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지만 그를 모두 두려워하는 게 느껴졌다.그 말에 강연찬은 조급해졌다.“너 제발 그 사람 얼굴만 보고 착한 척하는 거에 속지 마. 겉보기엔 순둥이처럼 생겼지만 속은 냉혈한이야. 완전 미친놈이라고!”“미친놈이든 바보든 날 도와주면 내 친구야.”남설아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진지한 눈빛으로 강연찬을 바라봤다.“그 사람은 내 목숨 구해준 은인이야. 그 사람 없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