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 죄송합니다. 지금 나갈게요.”진숙영은 연신 사과하며 손가을을 밖으로 이끌었다.“엄마, 가지 말아요!”손가을은 정색한 표정으로 그 직원에게 말했다.“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이게 맞아요? 만지지도 않고 재질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어떻게 알아요? 우리가 안 살 거라고 말한 것도 아니잖아요!”“하! 참나!”여직원은 가소롭다는 듯이 손가을을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사실 거면 당연히 만져도 보고 입어도 봐야죠! 하지만 고객님께서 그럴만한 소비력이 있는지는 증명해 주셔야겠군요! 일부 사람들은 SNS에 자랑할 사진만 찍기 위해 사치품 매장에 자주 오거든요! 그런 사람 많이 봤어요!”손가을은 이유 없이 사람 무시하는 여직원을 보자 분노가 치솟았다.“가을아, 그만해. 다른 곳에 가보자.”진숙영은 딸의 팔목을 잡으며 부드럽게 타일렀다. 딱 봐도 성깔 있어 보이는 이 직원이랑 다투기 싫었다.“우리 다른 곳으로 가보자. 굳이 여기가 아니라도 되잖아.”여직원이 한술 더 떠서 그들을 비웃었다.“여기가 아니라도 되는 게 아니라 살 능력도 없잖아요!”손가을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그녀는 욕설이 나오려 하는 것을 억지로 참으며 애써 담담하게 말했다.“여긴 서비스 태도가 정말 엉망이네요. 백화점 측에 민원 넣을 거예요!”“민원이요? 무슨 근거로?”여직원은 따발총 쏘듯이 비아냥거렸다.“돈도 없으면서 왜 재벌 사모님인 척을 해요? 내가 살면서 가장 하찮은 사람들이 당신 같은 사람들이야! 그렇게 잘났으면 어디 한번 증명해 봐요! 이 가게 전부 인수할 능력 있어요? 그게 아니라면 당장 내 앞에서 꺼지세요!”손가을은 너무 화가 나서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진숙영도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며 이 어린 여직원을 노려보았다. 서비스직을 하면서 어떻게 이 정도로 사람을 무시할 수 있을까?그런데 이때!“가게에 있는 옷 전부 포장해! 전부 살 테니까.”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매장 입구에서 들려왔다.염구준이었다.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온 그는 손가을과 진숙영에게 안심하라
하지만 여직원은 전혀 창피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까지 대령하며 극진히 대접했다. 이 바닥에 돈 많은 놈이 왕이라고 지금 당장 무릎을 꿇고 신발을 핥으라고 해도 할 기세였다.“사장님, 포장은 다 끝났고요 총 3억7천만 원 나왔습니다. 이쪽으로 오셔서 카드로 결제하시면 됩니다.”금전이 가져다 준 원동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고작 십여 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매장 안은 텅 비었고 옷들은 전부 정교하게 포장되어 있었다. 여직원은 땀범벅에 화장이 흘러내리는데도 여전히 가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염구준을 바라보았다.젊고 잘생긴 갑부가 와서 매장을 싹쓸이 해가는데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아, 나 생각이 바뀌었어. 미안.”염구준은 카드를 손에 들고 담담히 말했다.밖에서 구경하던 사람들, 심지어 손가을과 진숙영까지 전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기분이 천국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여직원은 분을 참지 못해 씩씩거렸다.이미 다 포장까지 다 했는데 갑자기 마음이 바뀌었다니. 일부러 작정하고 사람을 놀린 건가?하지만 잠재적 대고객의 심기를 거스를 수는 없었기에 염구준이 손에 든 카드를 보고 침을 꿀꺽 삼키고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하… 하지만 전부 사가신다고 아까 분명히 말씀하셨잖아요?”“그런 게 어딨어? 내가 안 산다면 안 사는 거지!”말을 마친 그는 카드를 다시 품에 넣고 손가을의 손을 잡으며 싸늘하게 말했다.“당신이 관리하는 이 매장에 있는 옷들이 너무 싸구려라 우리 장모님 품위와 맞지 않아.”“장모님, 가시죠. 저기 밍크코트 가게가 괜찮은 곳이 있더라고요!”여직원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이건 분명한 도발이고 모욕이었다. 하지만 먼저 사람을 무시한 건 그녀였다.“영업 방해로 경찰에 고발하겠어요!”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 여직원이 염구준을 향해 이를 갈며 소리쳤다.염구준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손가을 모녀를 이끌고 맞은편에 있는 밍크코트 가게로 갔다.고품질 밍크 소재라 당연히 가격은 어마어마했다.“장모님 드릴
손가을이 눈을 반짝이며 감탄했다.평소에도 몸매관리가 잘 되어 있었기에 옷차림만 조금 바꾸고 조금만 꾸미니 본래의 기품이 살아났다.“정말 예뻐요. 우리 장인어른이 괜히 한눈에 반해서 결혼한 게 아니네요.”염구준도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진심으로 찬사를 보냈다.진숙영도 기분이 좋아졌는지 얼굴에서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만족스러운 쇼핑이 끝나고 그들은 백화점을 나와 은빛 아파트로 돌아왔다.한편, 제왕클럽.들것에 실려서 돌아온 표범은 의식은 없고 숨만 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의 부하들은 다급히 담당의사에게 연락하고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장장 한 시간이나 되는 수술 끝에 그는 겨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그러나 한쪽 팔과 하반신이 마비되어 침대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 신세가 되었다.머리도 붕대로 칭칭 감고 있는데다가 두 다리 모두 깁스를 한 표점은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사치였다. 극심한 고통에 사내인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베개를 적셨다.그와 같이 조폭 세계에 몸담은 사람이 이런 사고를 당하면 가진 걸 모두 잃는 것과 다름이 없다. 앞으로 청해시 조폭계에 더 이상 그가 설 자리는 없어진 것이다.“망할! 도대체 어떤 자식이 감히 나 설호의 동생을 건드려!”표범의 병상 앞에는 잔뜩 뿔이 난 대머리 한 명이 씩씩거리고 있었다. 외모는 표범과 흡사한데 풍기는 기세와 눈빛은 표범보다 훨씬 압도적이었다.표범의 부하에게서 연락을 전해들은 설호는 부랴부랴 지방에서 차를 타고 올라왔다.청해시 같은 소도시에서 감히 자신의 동생을 이 지경으로 만든 인간이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형님, 상대는 용 대표 쪽 사람입니다.”사실 표범이 청해에서 세력을 넓힐 수 있었던 것은 성도에서 세력을 쥐고 있는 친형 덕분이었다. 설호는 성도 어둠의 세력 중에서도 독보적인 권력을 장악하는 인물로 청해 세력들과는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 존재였다.“뭐라고? 용준영이?”상황을 보고받은 설호는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험악하게 인상을 찡그렸다.“일개 장사치가 감히 내 동생을
잔인무도하기로 악명 높은 청해의 저승사자가 동생의 복수를 하러 돌아왔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사람들은 용준영이 주제를 모르고 설친다고 생각했다. 물론 용운그룹이 일류 기업이고 어둠의 세계에서도 일정한 입지를 가지고 있지만 기업이 강대하다고 그 사람이 강하다고 말할 수 없었다. 설호를 건드린 이상 그가 살아남을 길은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감히 설호의 동생을 건드렸으니 죽음을 자초한 거지!청해시의 지하 세력들이 은밀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혹시라도 엮이지 않기 위해 설호에게 로비로 적지 않은 금액을 건넸다. 일부는 관망의 태도를 취했다. 용준영이 어떻게 죽는지 지켜보겠다는 의미였다. 물론 그가 200억이라는 돈을 준비하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겠지만 설호는 돈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돈도 주고 팔다리 하나 정도는 내줘야 이 싸움이 끝날 것으로 보았다.“형님, 설호가… 돌아왔습니다.”용준영은 직접 우린 차를 염구준에게 건네며 공손히 말했다.“형님 200억이라는 돈은 저에게 큰돈이 아닙니다. 하지만 설호의 기를 살려주고 싶지는 않아요.”“설호? 종이호랑이가 뭐 그리 대단하다고.”염구준은 느긋하게 차를 마시며 한마디 했다.용준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설호를 종이호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이 세상에 염 전주가 유일할 것이다. 염구준의 실력을 못 믿는 건 아니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설호도 만만치 않은 상대였으니까!염구준이 현역 때 날아다녔다고는 하지만 이미 은퇴한 사람이고 설호는 극악무도하기로 소문난 인물이었기에 누가 이길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차를 다 마신 뒤, 염구준은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용준영에게 물었다.“용 대표,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아니면 내가 못미더워?”식은땀이 용준영의 이마를 타고 흘렀다.그는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고개를 들고 염구준을 바라보았다.무서운 생각이 그의 뇌리를 스쳤다.며칠 전, 염구준은 청해시를 새로 물갈이하겠다고 말했다. 그런 사람의
“용준영 녀석이 돈이 궁하긴 궁한가 보구나. 손에 쥔 황금거위까지 다 처분하는 걸 보면.”설호는 모델의 몸을 주물럭거리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용준영, 별거 아니잖아? 결국 내 앞에서 설설 길 거면서!’“용준영도 두렵겠죠. 아마 설호 형님에게 줄 돈을 마련하는 것 같아요!”“당연히 두렵지, 그럼 안 두렵겠어? 설호 그 녀석 우리 나라 국적도 아니잖아. 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다고! 용준영이 최근 들어 세력을 넓히기는 했지만 설호를 건드리면 못 살아남지!”“200억! 아마 용준영도 피똥 좀 싸겠어! 그러게 하필이면 설호 동생을 건드려서는!”청해시 지하세력들은 모두가 용준영의 몰락을 기대하고 있었다. 표범을 쓰러뜨릴 때는 좀 멋져 보였지만 이제 진짜가 나타났으니 당연히 두려울 것이다!200억을 설호에게 주는 건 기본이고 자신이 두들겨 팬 표범 앞에 무릎 꿇고 사과하게 생겼으니 이 얼마나 망신인가!예전에 용준영의 압박에 시달리던 중소기업 사장들이나 조폭 두목들은 이 기회에 용준영을 완전히 제거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만 노리고 있었다.용준영의 경쟁사가 이 사건을 주시한 건 당연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을 제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으니 언제든 뿔뿔이 흩어질 그의 산업을 인수하려고 기회만 엿보고 있었다.“형님, 용준영 그 녀석 요즘 업소 사업은 거의 다 정리했으니 아마 오늘쯤 형님을 찾아올 것 같네요!”표범의 부하가 아양을 떨며 말했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형님, 용준영이 오면 절대 놈을 살려서 내보내지 마세요! 표범 형님 복수를 해야죠!”설호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그건 당연한 거고! 돈도 내 거고 그놈 목숨도 내 거야!”성도 지하세력에 몸담은 몇 년 동안 그가 싸움기술만 연마한 건 아니었다.그가 보건대 용준영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2백억이라는 배상금을 물고 나면 아마 자금 운영이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그러면 용준영은 산하의 사업을 하나씩 정리할 수밖에 없을 테고 점점 입지를 잃어가는 건 당연지사!설호의 얼굴에
그들은 증오에 찬 눈빛으로 염구준을 노려봤다.표범을 중환자실로 보낸 것도 모자라 감히 제왕클럽에 찾아와 설호에게 시비를 걸다니!그들은 클럽 안팎만 봉쇄하면 나머지는 설호가 알아서 처리해 줄 거라 굳게 믿었다.염구준은 그들을 무시하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그래, 나야. 네가 동생 교육을 똑바로 안 하니까 귀찮게 내가 나섰잖아.”설호가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그러니까 용준영 그 자식은 혼자 살려고 너 혼자 이곳으로 보낸 거야?”염구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이 세상에 나한테 명령할 수 있는 인간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 너,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내 말 좀 들어볼래?”설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배를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제 목숨 하나 부지 못할 인간이 누굴 훈계하는 거지?“그래. 젊은 놈이 아주 패기 넘치는군!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설호는 손목을 우드득 소리 나게 비틀더니 다짜고짜 염구준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분노에 이성을 잃은 그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격투기 현역 선수가 와도 이 정도의 위력이 주먹에 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이걸 정통으로 맞았다면 아마 염구준은 두개골이 박살났을지도 모른다.“하, 이것 봐라!”염구준은 고개도 들지 않고 손을 뻗어 그의 주먹을 쳐냈다.설호의 온 힘을 실은 공격은 그렇게 허무하게 상대에게 잡혀 주먹을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주변에서 지켜보던 조직원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설호였다!과거 청해를 평정했던 인물인데 그 주먹을 저렇게 가볍게 잡는다고? 염구준 그는 도대체….“난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넌 아닌가 봐.”담담히 말하던 염구준이 갑자기 손에 힘을 주었다.우지끈!“악!”자지러지는 비명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설호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달려들어 염구준의 팔뚝을 물려고 했으나 염구준은 가볍게 그를 쳐내더니 다리를 들어 명치를 걷어찼다.
살기를 느낀 설호는 그제야 두려움을 느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가오지 마… 너, 청해 사람 아니구나!”설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뒤로 뒷걸음질쳤다.염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발 한발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한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저승사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겁에 질린 설호가 고함을 질렀다.“아… 안 돼! 죽고 싶지 않아! 너희들 빨리 와서 안 도와주고 뭐 하는 거야?”하지만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설호는 깊은 절망을 느꼈다.염구준이 벌써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우드득!발차기 한번에 설호의 오른팔이 부러졌다.“악!”설호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리고 바닥을 굴렀다. 그의 두 눈에 극한의 두려움이 가득했다.“너 같은 인간도 두려운 걸 아는구나.”염구준은 차갑게 비웃으며 다시 발길질을 했다.이번에는 설호의 두 다리가 부러졌다.밖에 있던 부하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솜털이 곤두섰다.도대체 이게 사람인가 싶었다. 표범을 반신불수로 만든 것도 부족해서 설호까지 거의 빈사상태로 만들다니….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설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그냥 나 죽여! 차라리 죽이라고!”“내 손에 죽고 싶어? 미안하지만 너한텐 그럴 자격이 없어.”“네가 쌓아놓은 업보가 있으니 지금 네 몸 상태를 알면 자연히 사람들이 알아서 널 없애버리려 하겠지.”말을 마친 염구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뒤돌아섰다.푸흡!설호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사지가 부러지고 하얀 셔츠에는 그가 흘린 피가 가득했다. 그는 완전히 무너졌다.어둠의 세계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놈들은 대부분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오늘, 염구준은 그가 몇 년을 걸쳐 쌓아 올린 위신을 한 순간에 박살내 버렸다.복수하겠다고 날뛰다가 오히려 상대에게 당했으니 설호는 수치심에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었다. 그는 곧 청해에서 모든 발언권을 잃게 될 것이다. 만약 지금 그의 손에 칼이 있다면
거물급 인사들은 용준영에게 설호에게 사과하라고 설득하고 있었다.물론 그들이 의도하는 바는 명확했다. 용준영만 고개를 숙이면 앞으로 그는 지하 세계에서의 위신을 잃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가 이뤄낸 세력들을 흡수하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용준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설호 그 인간 뭐라도 된대요?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을!”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설호한테 종이호랑이라니!누군가가 조용히 호주머니에서 녹음펜을 더듬었다. 그는 이걸 설호에게 전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이 말 한마디로 용준영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용 대표, 사태가 아직 최악은 아니니까 지금 마음을 돌려도 늦지 않아요.”또 다른 조직 두목은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용 대표 도움을 받은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당연히 이런 일에서는 우리가 나서서 도와야지요. 물론 용 대표는 관대한 분이니 우리의 은정을 저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어차피 이 바닥에서 서로 자주 부딪치게 될 텐데 용 대표가 성의만 보이면 설호도 사람을 건드리지는 않을 거예요.”용준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냉소를 지었다.이 가식적인 인간들은 하나같이 이득만 챙길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설호에게 고개를 숙이고 기반이 약해진 그의 사업체를 흡수하는 게 그들이 바라는 결과인 것이다.“지금 바쁜 사람 불러서 설호한테 사과하라고 설득하시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여기서 시간 낭비할 필요 없겠네요. 전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용준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비웃음을 머금고 그들에게 말했다.“그렇게 다들 한가하시면 나가서 활동 좀 해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꾸 시대 뒤처지는 얘기만 하지 말고!”말을 마친 그는 쿨하게 자리를 떴다.“용준영 저 건방진 자식!”“죽을 날을 받아놓고도 어쩜 저렇게 당당하지?”“우리가 옛정을 생각해서 업소들을 사들이지 않았으면 자기가 무슨 수로 200억을 마련했겠어요?”
“저기요. 뭐 좀…”“아는 척하지 마세요. 차림새를 봐.”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젊은 승무원에게 무시를 당했다.‘작전을 위해서 참자.’현무는 억지로 웃으면서 물었다.“9527호실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그들 일행은 일련번호가 찍힌 티켓을 들고 있어 방 한 칸만 찾으면 되었다.“몰라요.”승무원은 눈을 흘기며 으리으리하게 차려 입은 남자에게 달려갔다.“고객님, 천랑성호에 탑승한 것을 환영합니다. 원하는 서비스가 있을까요?”고급진 장소일수록 인간의 본성이 드러났다.그 모습을 지켜본 현무는 열 자리 이상 숫자인 통장 잔고를 승무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무시당하는 기분이 정말 불쾌했다.“한 사람 한 층씩 찾아.”염구준은 이어폰으로 객실을 찾으라고 명령을 내렸다.이번 작전에서 첫 명령이었다.“네. 알겠습니다.”일행은 작전 명령이라 여기고 빠른 걸음으로 객실을 찾으러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찾았어요. 3층 중간 방입니다.”객실에 도착한 후, 염구준은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짧은 회의를 열었다.“이번 작전은 아주 위험해. 내가 반천인 경지 개조 로봇을 봤어. 그러니까 방심하지 말고 불필요한 상황에서 절대 나서지 마. 만약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면 주작을 찾아서 분장한 다음에 나가. 알겠지?”엄숙한 표정으로 짧게 설명하던 염구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이번 여행을 즐기자. 유람선에서 비용은 내가 다 쏜다.”그 말에 다들 눈을 반짝였다.“형님 만세! 벌써 신나요.”세계 유람이라도 다들 비용을 낼 형편은 되었다.하지만 다른 사람이 비용을 낸다면 기분이 달랐다.똑똑!다들 기뻐할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음식을 주문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유람선에서 누가 찾아왔는지 어리둥절했다.염구준이 일어서 문을 열자 낯선 모녀가 밖에 서 있었다.“무슨 일입니까?”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휴, 당신들 우리 열쇠를 훔치고 우리가 예약한 방에 들어왔는데 무슨 일이라니요?”아주머니의 눈길을 보니 당장이라도
“하하, 이겼다.”얼마나 많은 수를 무르고서야 할아버지는 이겼다고 아이처럼 기뻐하셨다.이렇게 특이한 방식으로 진 적은 없지만 번마다 이길 때면 엄청 좋아하셨다.단지내에서 염구준만 이 할아버지와 장기를 두었다.“대단하세요.”염구준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렸다.자신의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인들은 모두 좋은 대우를 받길 바랐다.지잉-전신전에서 연락이 오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어르신,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얼른 가. 일이 중요하지.”할아버지는 장기판을 보며 기쁨을 만끽했다.염구준은 자료를 보면서 집으로 달려갔다.“국주님, 놈들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지금 남극 빙원에 있어요. 구체적인 위치는 아직 모르겠고 놈들의 수법이 은밀해서 빼앗은 로봇을 모두 여러 갈래로 운반하고 있어요.”남극 빙원은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기후가 악랄하고 환경이 복잡한 데다 수많은 세력들이 잠복해 있었다.아직까지 통제할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몇 년 전만 해도 그곳의 기후가 매우 낮아 누구도 살지 않았었다.그런데 최근,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방한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수많은 조직과 세력들이 그곳에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하지만 아직까지 치안이 혼란스럽고 주먹이 센 사람이 통치는 바람에 곳곳에 위험이 도사렸다.염구준은 자료를 살펴보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정영팀은 신속하게 청해로 온다. 위장을 잘하고 절대 행적이 드러나면 안 된다.]이번 작전에 대해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 후, 집에 돌아와 손가을에게 말하고 그날 저녁에 청해 부두로 향했다.장모님인 진숙영에게 은밀히 고수들을 붙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신비한 클럽은 인간 세상에서 증발할 것처럼 사라져서 골치가 아팠다.하지만 국정이 급선무인 지금 청목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염구준이 부두에 도착했을 때 백호, 주작, 현무 그리고 세 명의 전왕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들 모두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주… 염 선생님!”여섯 사람은 염구준에게 다가와 깍듯하
“주작. 천목 시스템을 가동해. 내가 구체적인 좌표를 보내줄 테니까 그 해역의 화물선을 주시해.”“백호. 7인 정예팀을 선발해서 잠시 내 명을 대기하고 있어.”“현무, 한 달 사용할 최첨단 무기를 준비해.”“청룡, 넌 전신전을 지키고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염구준이 지시를 내릴 때 누구도 농담하지 않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다.“네.”임무를 내린 후, 염구준은 한마디를 남기고 청해로 돌아갔다.“송 가주와 국주가 상의하는 동안 누가 방해를 한다면 바로 죽이러 올 것이다.”염구준의 말에 외부인들은 바로 속셈을 거두었다.이어서 송씨 가문은 절반 주식을 국주에게 담보로 내놓고 보호를 받았다.국주가 내세운 조건은 송씨 가문이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생길 때 다시 주식을 돌려주는 것이었다.중요한 임무를 맡은 송현우는 지금 상황에서 반천인 경지와 싸울 수 있는 유력한 후계자였다.송명호 일가는 더는 송 가주를 방해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족보에서 쫓겨났다.그를 지지했던 세력들은 자발적으로 돈으로 배상하고 평화를 유지했다.송씨 가문의 세력이 대폭 하락하니 이러는 수밖에 없었다.청해로 돌아온 염구준은 손가을이 잘 관리한 덕에 편히 지낼 수 있었다.“구준이 왔어?”그를 제일 먼저 맞이한 사람은 방금 기도를 마친 진숙영이었다.최근 신비한 클럽이 감쪽같이 사라진 바람에 그녀는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었다.“장모님.”염구준이 뭐라고 하기 전에 진숙영은 또 속으로 중얼거리며 기도했다.“아빠.”인기척을 듣고 나온 염희주가 활짝 웃으면서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갔다.“그래.”‘귀여운 녀석, 어쩜 이리 애교가 많을까. 며칠을 못 봤더니 또 키가 컸네.’염구준은 대답하면서 딸을 뻔쩍 들어올렸다.딸을 보는 그의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저러다 신선이 되겠어요.”염희주는 진숙영을 힐끔 보면서 염구준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그런 말하면 못 써.”염구준이 바로 말렸다.어른들의 일에 아이가 끼어드는 것과 함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아빠
송씨 가문의 절반 재산은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다니 생신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이 당황했다.“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염 선생이 말씀해 주시죠.”송 가주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국주한테 가서 얘기하면 아마 기꺼이 도와줄 겁니다.”염구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송 가주는 그제야 깨달은 듯 허벅지를 탁 쳤다.솔직히 말해서 염구준도 절반 재산을 갖고 싶었다.하지만 손씨 그룹에 비해 용하에서 더 필요할 것 같아서 거절한 것이다.이 정도 대의는 갖추고 있었다.“가주님, 큰일 났습니다.”두 사람 대화할 때 한 남자가 허겁지겁 달려왔다.“얼른 말해. 이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 있냐?”송 가주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과감하게 말했다.“저희가 해외에 수출한 로봇 화물선이 습격당했어요. 거기에 나무 표식이 있었습니다.”그 사람은 재빨리 다가가 태블릿을 보여줬다.확인하던 송 가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염 선생. 이거 진짜 큰일 났습니다.”송 가주는 태블릿을 빼앗아 염구준에게 걸어갔다.이번에야말로 진짜 큰일이 벌어졌다.염구준은 힐끗 쳐다보려 했으나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았다.“젠장. 이건 노골적으로 도발하는 겁니다.”옆 사람들은 방금 싸울 때도 이렇게 화내지 않았는데 반천인 고수가 화난 모습을 보니 등골이 오싹했다.태블릿에 뜬 메시지에 몇 글자과 사진 2장만 보였다.내용은 이랬다.[먼저 송씨 가문을 도륙하고 용하국을 주살한다.]사진 한 장에 검정색 나뭇잎이 찍혀 있고 다른 한 장에는 청색 나뭇잎이 찍혀 있었다.그것은 분명히 떠돌이 7인조에서 흑풍과 청목을 가리키고, 두 사람이 송씨 가문과 용하를 상대하겠다는 뜻이었다.용하국에서 송씨 가문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염구준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용하를 건드린다면 상의할 여지없이 싸워야 했다.“염 선생,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요?”송 가주는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지금 폐인이 되어서 아무리 훌륭한 계략을 짜도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이제 좀 재미있네.”그는 두 손으로 검을 잡고 공격할 태세를 잡았다.송현우의 검의가 얼마나 강한지 엄청 기대되었다.승부는 금방 갈리고 구경군들은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필경 마지막 공격으로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매화검법. 쇄산!”먼저 기운을 축적한 염구준이 검을 들고 공격했다.송현우의 검의는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게다가 고씨 선조들이 남긴 시구를 본 이후로 염구준이 초식을 조금 바꾸었는데도 무궁무진한 힘을 발산했다.“죽어라!”그때 맞은편에서 송명호도 패왕창을 들고 공격했다.염구준의 기운을 감지하고 본인이 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면서 공격한 것이다.예를 들면 갑자기 염구준이 심장병이 발작한다든가.쿵!칼끝과 창끝이 부딪치면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폭발했다.강력한 위력에 송명호는 저항하지 못하고 패왕창을 든 채로 뒤로 튕겼다.한마디로 말해서 한 초식도 감당해지 못하는 패배자였다.싸움이 드디어 끝났다.이 결과는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조금은 어느 정도 싸우다 체력이 소모되었을 때 주변에서 습격하려고 했는데 이젠 망상이 되어버렸다.염구준은 검과 주변의 검기를 거두었다.“4할 전력이 남았어요. 도전할 분 계신가요?”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패기 있게 말했다.“…”송명호 일가는 도전해도 볼품없이 패배할 텐데, 도전은 개뿔이라고 속으로 욕했다.“투항하겠습니다.”그때 누가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한 사람이 시작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잇달아 투항했다.우두머리인 송명호가 죽은 이상 계속 대항할 이유가 없었다.투항하면 적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지 않은가.상황이 전환되어 송 가주 일가가 승리했다.“할아버지, 아버지.”송청연이 외치며 앞으로 달려갔다.“난 괜찮다.”송 가주는 부축임을 받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역전승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염구준의 앞에 다가간 그는 무릎을 꿇었다.“염 선생, 살려줘서 고맙습니다.”“염 선생, 감사합니다.”송 가주 일가 모두 무릎을 꿇고
염구준은 손에 든 검을 몇 바퀴 돌리고 과감하게 맞섰다.공격하자마자 상황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쉽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었다.다들 이것이 6할 전력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버티자. 저놈의 체력을 소모시켜야 해.’송명호는 공격을 피하며 가까스로 버텼다.독연기로 염구준의 기운을 전부 소모시킨 후에 본격적으로 공격할 생각이었다.하지만 한참이나 싸웠는데도 공격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염구준은 지치지도 않는지 싸울수록 힘이 뻗쳤다.“거기서 뭐해? 송청연을 잡아와!”방금까지 비열한 수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상황이 불리해지니 어쩔 수 없이 송청연을 잡아서 염구준을 협박해야 했다.“빨리 잡아!”송대용이 몇몇 사람들을 이끌고 송청연에게 돌진했다.그중에 전신 경지 고수도 있어서 십중팔구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수상한 낌새를 느낀 염구준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뒤돌아보았다.그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송명호가 패왕창으로 머리를 내리쳤다.“나랑 싸우면서 한눈을 팔다니 죽고 싶어?”염구준이 왼손으로 창대를 꽉 잡더니 오른 손에 든 검으로 검기 광풍을 일으켜 송대용에게 발사했다.“위험해. 도망쳐!”광풍에서 치명적인 기운을 느낀 송명호가 포효했지만 이미 늦었다.검기가 송대용 일행에게 몰아쳐 가더니 무자비하게 살갗을 찢어버렸다.“아아아악!”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검기 광풍은 에너지가 소모된 후 바로 사라졌다.송대용 일행은 죽고 전신 경지 고수만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저러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았다.“송청연 남매를 납치하면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염구준의 말이 송씨 저택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송명호 측근에 서 있던 사람들은 식겁해서 뒤로 물러섰다.방금 검기 광풍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염구준! 내 유일한 핏줄인 손자를 죽이다니 네 목숨으로 갚아라.”이성을 잃은 송명호는 대노하며 소리질렀다.“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당신 손자를 죽이지
“6할 전력이야. 기운을 많이 쓸수록 빨리 소진된다!”송명호는 또 이길 확률이 높아졌다고 기뻐했다.이 독은 잠시 전력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치명상까지 줄 수 있다.“뭘 그렇게 좋아하세요? 당신을 상대하는 데 6할 전력이면 충분하거든요.”염구준은 본원 검의를 시험하려고 나섰는데 상대방 실력이 약해서 흥이 나지 않았다.그가 얕잡아 보자 송명호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반천인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부했다.“마지막으로 말할게. 청연을 남길 거야 아님 네 목숨을 남길 거냐?”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자 송명호는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염구준은 대꾸하지도 않고 하품을 했다.“하음, 싸우고 싶으면 빨리 시작해요. 꾸물거리지 말고.”솔직이 두 사람은 서로 할 이야기는 없었다. 송명호가 일방적으로 염구준이 물러설 거라고 착각했을 뿐이다.“그럼 죽어!”송명호는 창을 들고 염구준에게 무섭게 돌진했다.모두 반천인 경지에 도달했고 상대방이 6할 전력만 남아 있다면 패배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했다.“검래!”염구준이 손을 뻗자 강력한 흡인력으로 송현우의 등에 있는 검을 뽑았다.검이 손에 잡힌 순간 온화한 기운이 온몸을 채우며 가벼운 소리를 냈다.‘좋은 검이군.’그래도 구자검에 비하면 조금 부족했다.웡웡.그때 검신이 흔들거리며 그에게 잡히지 않겠다고 몸부림을 쳤다.“흥.”염구준은 콧방귀를 끼며 순식간에 검의로 제압해버렸다.검에 대한 깨달음이 풍부해서 아무리 오만한 검이라도 모두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그 모습을 본 송명호가 기회를 잡은 듯 비아냥거렸다.“하하하. 돌을 들어서 자기 발등을 찧는 격이군.”말하는 동시에 창을 들고 염구준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일격에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촤아악!곧 창이 닿을 무렵, 염구준이 검을 휘두르며 막았다.검신을 감싼 검기가 창을 두 동강으로 잘라버리고 신속하게 송명호를 공격했다.‘검의다.’엄청난 기운을 감지한 송명호는 창을 버리고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자고로 검이라면 모두 검의를 깨달을 수 있지만 이
송청연은 두 눈을 꼭 감고 애써 진정했다.외부 요소에 영향받지 않고 이해관계를 따졌다.한참을 생각하고 깨달은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단호한 눈빛에서 상사가 갖추어야 할 모습이 어느 정도 보였다.“어르신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있는 한 송씨 가문은 망하지 않을 겁니다.”그녀는 말을 마치고 큰절을 세 번했다.그 모습을 본 송 가주는 크게 기뻐하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하하하. 내게 후계자가 생겼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송청연의 결단에 적지 않은 노인들이 할 말을 잃었다.그녀의 욕심은 그들보다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몇 년만 더 성장하면 상업계의 여걸이 될 것이다.“이젠 갑시다.”송청연은 정신을 잃은 송현우를 업고 돌아섰다.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않았다.오히려 무능한 자신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에 화났다.“그럽시다.”염구준은 대답하며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그곳에서 막고 있던 사람들은 무서운 기운을 감지하고 뿔뿔이 흩어졌다.“멈춰, 청연은 남거라!”뒤에서 송명호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리자 염구준은 홱 돌아서서 경멸하듯 노려봤다.“싫다면 어쩌실 건데요?”이제 반천인 경지에 도달한 풋내기에 원소의 힘도 사용할 줄 모르는 실력이라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송명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송 가주를 발로 차버렸다.“너도 독연기를 많이 마셔서 기운이 많이 소모됐을 거야. 7할 전력밖에 남지 않았을 텐데 나랑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어? 눈치 있다면 사람을 남기고 넌 떠나라.”이해 관계를 따지는 것 같지만 실은 협박하고 있었다.“안목은 있네요. 독연기 덕에 확실히 7할 투력밖에 사용할 수 없어요.”염구준이 솔직하게 인정했다.그 말에 주변에서 깜짝 놀라 속으로 어리석다고 나무랐다.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겁을 먹은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우매한 놈. 목숨을 내놓거라!”양씨 가문의 노복들은 그가 7할 투력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더는 가만있지 않았다.반천인 경지와 조금 차이가
싸움에 외부인이 개입하여 송 가주만 가까스로 버틸 뿐, 다른 사람은 이미 죽거나 체포되었다.가족 내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이제 다 끝난 거 같은데 그만 패배를 인정하시지?”송명호는 이미 승자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같이 죽자!”송 가주가 고함을 지르며 미친듯이 그에게 달려들었다.그와 함께 자폭할 생각이었다.“미친 영감탱이!”당황한 송명호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반천인 고수의 자폭은 위력이 어마어마해서 감히 맞서지 못했다.‘아니야.’바로 그때, 구경꾼들은 송 가주의 기운이 빠르게 소진되는 것을 감지했다.몇 호흡만에 단진 무성 경지까지 하락한 것이다.수련 후 주화입마에 빠진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났다.“하하하하. 하늘이 날 도왔군. 영감 몸이 정말 고장이 났나 봐.”송명호는 다시 미치광이처럼 웃으며 한 주먹으로 송 가주의 단전을 부숴버렸다.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막을 여력도 없었다.단전이 망가지면 기운이 밖으로 빠져서 자폭할 수도 없다.송 가주는 그렇게 폐인이 되었다.가주 쟁탈전에서 송명호가 드디어 승리를 거두었다.“가주님, 축하드립니다.”송대용이 제일 먼저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예전부터 자신의 친할아버지가 가주가 된 모습을 상상했었다.전에 송대강에게 억눌리고 또 송청연에게 억눌려서 마음에 깊은 원한이 생긴 것이다.“가주님 축하합니다.”“송 가주님, 축하드립니다.”송명호 측 일가, 그를 따르던 세력들이 나서서 인사를 올렸다.본인도 가주라는 칭호가 마음에 드는지 흐뭇하게 웃었다.“하하하. 이제 승복해.”그는 발로 송 가주의 가슴을 밟고 질문했다.“퉷!”송 가주는 침을 뱉고는 염구준에게 비참한 미소를 보냈다.“염 선생. 내 손자들을 잘 부탁하네.”염구준이 아무런 감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부탁을 받았으니 세 사람 안전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할아버지!”“명호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를 제발 살려주세요.”맞설 능력이 없는 송청연과 송대강은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다.실력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