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증오에 찬 눈빛으로 염구준을 노려봤다.표범을 중환자실로 보낸 것도 모자라 감히 제왕클럽에 찾아와 설호에게 시비를 걸다니!그들은 클럽 안팎만 봉쇄하면 나머지는 설호가 알아서 처리해 줄 거라 굳게 믿었다.염구준은 그들을 무시하고 담담히 입을 열었다.“그래, 나야. 네가 동생 교육을 똑바로 안 하니까 귀찮게 내가 나섰잖아.”설호가 이를 갈며 으르렁거렸다.“그러니까 용준영 그 자식은 혼자 살려고 너 혼자 이곳으로 보낸 거야?”염구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이 세상에 나한테 명령할 수 있는 인간은 아직 태어나지 않았어. 너, 죽고 싶지 않으면 닥치고 내 말 좀 들어볼래?”설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배를 끌어안고 웃음을 터뜨렸다. 지금 제 목숨 하나 부지 못할 인간이 누굴 훈계하는 거지?“그래. 젊은 놈이 아주 패기 넘치는군!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뭐야?”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설호는 손목을 우드득 소리 나게 비틀더니 다짜고짜 염구준의 머리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분노에 이성을 잃은 그는 눈에 뵈는 게 없었다.격투기 현역 선수가 와도 이 정도의 위력이 주먹에 실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이걸 정통으로 맞았다면 아마 염구준은 두개골이 박살났을지도 모른다.“하, 이것 봐라!”염구준은 고개도 들지 않고 손을 뻗어 그의 주먹을 쳐냈다.설호의 온 힘을 실은 공격은 그렇게 허무하게 상대에게 잡혀 주먹을 옴짝달싹 못하게 되었다.주변에서 지켜보던 조직원들이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설호였다!과거 청해를 평정했던 인물인데 그 주먹을 저렇게 가볍게 잡는다고? 염구준 그는 도대체….“난 기회를 주려고 했는데 넌 아닌가 봐.”담담히 말하던 염구준이 갑자기 손에 힘을 주었다.우지끈!“악!”자지러지는 비명과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설호는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달려들어 염구준의 팔뚝을 물려고 했으나 염구준은 가볍게 그를 쳐내더니 다리를 들어 명치를 걷어찼다.
살기를 느낀 설호는 그제야 두려움을 느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다가오지 마… 너, 청해 사람 아니구나!”설호는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뒤로 뒷걸음질쳤다.염구준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발 한발 천천히 다가갔다. 그가 한발자국 내디딜 때마다 저승사자가 보이는 것 같았다. 겁에 질린 설호가 고함을 질렀다.“아… 안 돼! 죽고 싶지 않아! 너희들 빨리 와서 안 도와주고 뭐 하는 거야?”하지만 조직원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숙이고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설호는 깊은 절망을 느꼈다.염구준이 벌써 그의 코앞까지 다가왔다.우드득!발차기 한번에 설호의 오른팔이 부러졌다.“악!”설호는 자지러지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웅크리고 바닥을 굴렀다. 그의 두 눈에 극한의 두려움이 가득했다.“너 같은 인간도 두려운 걸 아는구나.”염구준은 차갑게 비웃으며 다시 발길질을 했다.이번에는 설호의 두 다리가 부러졌다.밖에 있던 부하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솜털이 곤두섰다.도대체 이게 사람인가 싶었다. 표범을 반신불수로 만든 것도 부족해서 설호까지 거의 빈사상태로 만들다니…. 저승사자가 따로 없었다.설호는 입에서 피를 토하면서도 절대 자존심을 굽히지 않았다.“그냥 나 죽여! 차라리 죽이라고!”“내 손에 죽고 싶어? 미안하지만 너한텐 그럴 자격이 없어.”“네가 쌓아놓은 업보가 있으니 지금 네 몸 상태를 알면 자연히 사람들이 알아서 널 없애버리려 하겠지.”말을 마친 염구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뒤돌아섰다.푸흡!설호의 입에서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사지가 부러지고 하얀 셔츠에는 그가 흘린 피가 가득했다. 그는 완전히 무너졌다.어둠의 세계에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간 놈들은 대부분 체면과 위신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오늘, 염구준은 그가 몇 년을 걸쳐 쌓아 올린 위신을 한 순간에 박살내 버렸다.복수하겠다고 날뛰다가 오히려 상대에게 당했으니 설호는 수치심에 얼굴을 들고 살 수 없었다. 그는 곧 청해에서 모든 발언권을 잃게 될 것이다. 만약 지금 그의 손에 칼이 있다면
거물급 인사들은 용준영에게 설호에게 사과하라고 설득하고 있었다.물론 그들이 의도하는 바는 명확했다. 용준영만 고개를 숙이면 앞으로 그는 지하 세계에서의 위신을 잃게 될 것이고 그때가 되면 그가 이뤄낸 세력들을 흡수하려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었다.용준영은 덤덤한 표정으로 대꾸했다.“설호 그 인간 뭐라도 된대요?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을!”사람들은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번갈아 보았다. 설호한테 종이호랑이라니!누군가가 조용히 호주머니에서 녹음펜을 더듬었다. 그는 이걸 설호에게 전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다. 이 말 한마디로 용준영은 되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다.“용 대표, 사태가 아직 최악은 아니니까 지금 마음을 돌려도 늦지 않아요.”또 다른 조직 두목은 이렇게 말했다.“우리가 용 대표 도움을 받은 게 한두 번도 아니고 당연히 이런 일에서는 우리가 나서서 도와야지요. 물론 용 대표는 관대한 분이니 우리의 은정을 저버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사람들이 맞장구를 쳤다.“그래요. 어차피 이 바닥에서 서로 자주 부딪치게 될 텐데 용 대표가 성의만 보이면 설호도 사람을 건드리지는 않을 거예요.”용준영은 눈을 가늘게 뜨고 냉소를 지었다.이 가식적인 인간들은 하나같이 이득만 챙길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가 설호에게 고개를 숙이고 기반이 약해진 그의 사업체를 흡수하는 게 그들이 바라는 결과인 것이다.“지금 바쁜 사람 불러서 설호한테 사과하라고 설득하시는 겁니까? 그런 거라면 여기서 시간 낭비할 필요 없겠네요. 전 바빠서 이만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용준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비웃음을 머금고 그들에게 말했다.“그렇게 다들 한가하시면 나가서 활동 좀 해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자꾸 시대 뒤처지는 얘기만 하지 말고!”말을 마친 그는 쿨하게 자리를 떴다.“용준영 저 건방진 자식!”“죽을 날을 받아놓고도 어쩜 저렇게 당당하지?”“우리가 옛정을 생각해서 업소들을 사들이지 않았으면 자기가 무슨 수로 200억을 마련했겠어요?”
상대는 설호였다! 돌아온지 며칠이나 됐다고 반 병신을 만들어 버리다니!도대체 이 도시에 그런 실력을 가진 자가 누가 있지?혼자의 힘으로 표범과 설호 형제를 지옥으로 보낸 자라면 섬뜩할 정도로 무서웠다.설마….“용준영?”각 조직의 수장들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조금 전까지 설호를 종이호랑이라고 비웃었던 용준영이었다.설호가 당한 건 무조건 용준영이랑 연관이 있다고 봐야 한다.“용준영의 부하 중에 저런 고수가 있다니! 정말 잘도 숨겼군요!”한 조직 수장이 갑자기 인상을 쓰며 말했다.“아니, 용준영이 이런 실력을 가졌으면 왜 돈 버는 업체들을 다 우리한테 넘긴 거지?”그 말에 아무도 해답을 찾을 수 없었다.용준영은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조직 폭력배들과의 전쟁을 불사했다. 최근에는 경찰 쪽에서도 별도의 움직임이 없는데 그가 갑자기 검은 사업을 그만뒀다는 건 이 바닥에서 손 털고 성실한 기업인으로 살아가겠다는 의미란 말인가? 그들은 믿기 어려웠다.이때, 차로 이동 중인 용준영에게 문자가 왔다.사실 이미 예측하고 있던 결과이긴 하지만 심장이 벌렁거렸다.너무도 충격적이었다.염 전주는 역시 설호와 동일 선상에서 놓고 얘기할 레벨이 아니었다. 이렇게 빨리 문제를 해결하다니!경외심, 감탄… 이라는 단어밖에는 형용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이사회를 소집할 거야! 바로 준비시켜!”잠시 고민을 끝낸 용준영은 결연한 표정으로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중대 발표가 있으니 전원 참석하라고 해!”그는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용운그룹을 손가을에게 넘기기로 했다.인생은 도박이라고 했다.이런 결정을 내리기까지 불과 1분도 걸리지 않았지만 그는 전혀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확신했다.염구준은 그에게 다른 일을 맡길 것이다. 염구준에게만 충성한다면 나중에 용운그룹이 아니라 더 큰 업적도 세울 수 있을 것 같았다.한편, 손태진은 사무실에서 이를 갈고 있었다.시공현장의 작업 진행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 초기 준비 단계는 곧 마무리 될 것이고 그전에 손가을을 손
“내 일은 내가 해결해야지!”손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회사 임원급 인사들 소집하고 이사회 준비해. 이번에는 손가을 그년을 그룹에서 완전히 쫓아버려야겠어!”시공현장의 어느 창고.손가을은 작업팀 담당자와 함께 현장을 참관하고 있었다. 시설 점검을 마친 뒤, 그녀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시공 일정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2주나 빨랐고 시간을 단축하면서 예산도 절약할 수 있었다. 공장은 현재 마지막 점검을 진행 중이었고 외부에서 생산기계를 대량 구입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이거 진행하는 내내 긴장했는데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손가을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감탄하듯 말했다. 최근 몇 달 사이, 그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했다.“그렇게 힘들었어? 혹시 일할 때 누가 괴롭혔어? 그게 누군데? 내가 가서 야근비까지 다 받아낼 거야.”염구준이 정색하며 손가을에게 말했다.손가을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눈치 없이 전화기가 울렸다.회사 비서실의 연락이었다.“손가을 씨, 긴급 이사회를 소집할 예정이니 아홉 시에 늦지 않게 도착하시길 바랍니다.”상재는 용건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손가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꺼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손태석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아직 이사회에 참석할 레벨이 아니었다. 예전에 이사회를 소집하면서도 한 번도 그녀를 부른 적 없었다.옆에서 통화내용을 다 들은 염구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난 손태진이 무언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전체 임원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을에게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 보였다.“가자.”염구준은 두말하지 않고 손가을을 이끌고 차에 올랐다. 그들은 그 길로 곧장 손영그룹으로 향했다.손영그룹 본사 맨 위층의 회의실.손태진이 상석에 앉아 있었고 임원들도 하나둘씩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허, 참. 이사회에 지각을 하다니!”“여덟 시 30분에 회의 시작이라고 똑
회의실 문이 열리고 손가을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룹 관계자가 아닌 놈은 나가!”손태진은 손가을 뒤를 따라오는 염구준을 보자 차갑게 호통쳤다.저놈이 아들 손호민에게 두 번이나 폭력을 행사한 것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눈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그렇다면 우리 그냥 가자.”염구준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을을 이끌고 뒤돌아섰다.손태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이사회를 소집한 목적이 손가을을 모두의 앞에서 망신 주고 회사에서 쫓아내려는 것인데 주인공이 퇴장하다니!손태진은 염구준을 힘껏 노려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성질하고는! 됐다, 그냥 앉아!”염구준은 손가을의 손을 잡고 빈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힌 뒤, 자신은 뒤로 가서 섰다.한 임원이 입을 삐죽이며 비아냥거렸다.“하루종일 마누라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거 말고 할 일이 그렇게 없나 봐?”말을 마친 그는 염구준을 향해 도발적인 미소를 보냈다.염구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짝!그리고 상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바닥으로 상대의 귀뺨을 후려쳤다.“당신이 뭔데 입을 함부로 놀려?”말을 마친 그는 다짜고짜 상대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당당하게 앉았다.그 임원은 부은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 전 자신을 노려보던 염구준의 섬뜩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너… 이 무례한….”손태진은 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억지로 분노를 추슬렀다. 오늘의 주요 목적은 손가을을 그룹에서 내치는 것이었다. 어차피 염구준 같은 무능하고 무식하게 힘만 센 데릴사위는 나중에 제거하면 그만이었다.“손가을, 우리가 널 왜 불렀는지 무척 궁금할 거야.”손태진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불쾌한 미소를 지었다.“최근 네가 회사에서 꽤 괜찮은 업적을 냈어. 우리도 그걸 지켜봤고. 회사와 가문을 위해 헌신한 네 공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해. 그래서 회사도 시름 놓고 너한테 대형 프로젝트를 맡겼지.”염구준은 손
손태진은 그녀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몰아쳤다.“증거가 빼박인데 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오늘 부로 손가을을 회사에서 제명한다! 넌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될 거야!”그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태진을 지지했다.“전 사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입니다!”“손가을은 그룹에 암 같은 존재가 틀림없어요!”“암덩어리는 당연히 제거하는 게 맞죠.”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손가을을 비웃듯 쳐다보았다. 손가을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이런 쓰레기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그는 손영그룹의 불공정한 처사에 깊이 실망했다.“하! 웃기지도 않는군!”차가운 웃음소리가 현장의 정적을 깨뜨렸다.염구준이었다.“연기 잘 봤습니다!”그는 손태진을 향해 박수를 치며 핸드폰을 꺼냈다.“손 사장님, 오늘 하신 그 발언, 핸드폰으로 전부 녹취해 두었습니다. 그 연기실력이면 오스카 주연상을 노려봐도 괜찮겠군요!”손태진은 음침한 얼굴로 으르렁거렸다.“염구준, 방해할 생각하지 마. 난 팩트만 말했어.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고!”“맞아요!”다른 임원들도 염구준을 비웃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손가을 씨 월급은 한 달에 200도 안 돼요. 월급 정산 기록만 봐도 알 수 있지요.”“월 이백으로 네 명이나 먹고 살아야 하는데 무슨 돈으로 외제차를 사겠습니까? 게다가 진숙영 여사가 이번에 밍크코트까지 구매했더군요. 이게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염구준은 가증스럽다는 듯이 임원들을 쏘아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겉옷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그 모습을 본 손태진이 긴장한 얼굴로 다급히 소리쳤다.“염구준, 여긴 회사야. 밖에 경비원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 허튼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 경비! 경비 뭐해?”손태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가진 게 많은 자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염구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탁!그는 호주머니에서 구매 명세서를 꺼내 책상에 던졌다.“잘 봐둬요.”그
“당연하죠.”손가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이게 다 저들이 염구준을 무시해서 초래한 결과였다. 염구준은 한 번도 돈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그녀는 손태진을 빤히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제가 뇌물을 받은 게 아니라 많이 실망하셨겠네요.”손태진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누구 돈이든 상관없어! 네가 용운그룹이랑 짜고 회사를 장악하려고 한 행동이 잘못이란 거야! 우린 너한테 크게 실망했고 오늘 부로 널 해고할 거야!”손가을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없는 죄명까지 만들어 내서 조카를 끌어내리려는 큰아버지라니!“다른 건 얘기하고 싶지 않아.”손태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굴렸다. 오늘 이 프로젝트의 권한을 빼앗아 오지 못하면 앞으로 손가을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 분명했다.“손 사장님은 농담하는 센스도 영 없네요.”염구준은 아내의 손을 부드럽게 다독이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어쩔 수 없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가을이는 오늘 이사회에 오기 전부터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손가을 본인마저 놀란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절대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저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이 상황에 직장을 잃으면 무슨 수로 생활비를 충당하지? 물론 염구준은 돈이 많지만 그게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걱정하지 마.”염구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좌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당신들 어떻게든 가을이 회사에서 내보내려고 했잖아요? 알았어요. 당신들 뜻대로 해드리죠!”“능력은 없는 주제에 다른 사람 모함하고 짓밟는 당신들 같은 인간들이랑 가을이가 같이 일할 이유가 없어!”분이 치밀대로 치민 손태진은 염구준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염구준, 닥쳐!”“닥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염구준은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가을이가 추진하던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
그의 말을 들은 뒤, 양청화의 두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는 눈가가 붉어진 채로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 날 찾으러 다녔었어?”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이 버려졌다고 생각했었고,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았다고 원망해왔다.하지만 오늘에서야, 그녀는 모든 진실을 알게 되었다.염구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에효. 그때 널 찾다가 주운 은팔찌는 네 부모님을 돌려드렸어. 그분들도 널 무척이나 그리워하셔.”그때의 일은 누구의 잘못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었다.그녀를 찾지 못한 것이 염구준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날 상처받고 도망친 게 그녀의 잘못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모든 것이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진 일이라 준비할 시간이 없었던 것 뿐이었다.“내 잘못, 내 잘못이야! 왜 그때, 멋대로 캠프를 떠나서는..”그녀는 후회하며 눈물을 흘렸다.지금은 한 나라의 왕후로서 군림하고 있지만, 그동안 그녀가 겪은 고통과 외로움은 아무도 몰랐다.“후, 다 지나간 일이야. 내가 그때 너무 단호하게 거절했던 잘못도 있어.”염구준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는 난감한 얼굴로 휴지 한 장을 건넸다.이런 감정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건 그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었다.하지만 피할 수도 없었다.양청화는 눈물을 닦으면서 옛 기억을 되새기며 입을 열었다.“그때 어두운 보라색의 오피스룩을 입고 오빠 팔짱을 끼고 있던 여자가 오빠가 계속 말하던 아내분이지?”“미인이시더라.”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대답했는데, 목소리에는 전과는 달리 감정이 담겨 있었다.“맞아. 손가을이라고 해. 사이가 무척 좋지.”“축하해.”“솔직히 질투가 나긴 해. 내가 먼저 오빠를 알았으면 좋았을 텐데.”양청화의 눈에는 다시 눈물이 고였지만 그녀는 눈물을 삼키고 웃어보였다.불교에서 말하는 팔고 중, 가장 견디기 힘든 고통은 바로 구지부득이었다.“그건 모르는 일이지. 낯선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거는 사람은 보기 드무니까 말이야.”그는 불길 속에 있던 아내
이때, 시녀가 조용히 다가와 속삭였다.“왕후 폐하, 손님이 도착하셨습니다. 후원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이에 양청화는 목욕을 마치고 서둘러 일어나며 조금 조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조금만 기다리라고 해. 금방 나갈 테니.”물에서 일어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물에서 갓 나온 연꽃처럼, 아름다우면서도 생동감이 넘쳤다.한편, 후원의 석탁 옆.염구준은 차를 홀짝이며 평온하게 정원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그때의 일은 단순한 사고였다.마땅히 해야 할 일은 다 했으니 그는 후회하지 않았지만 조금 안타까울 뿐이었다.하지만 이제 양청화가 무사히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한 이상, 그조차도 모두 떨쳐버릴 수 있었다.이때, 양청화가 후원에 들어오며 위엄있게 모든 시종들을 내쫓았다.“모두 나가. 내 명령 없이는 절대 들어오지 마.”왕후가 낯선 남자와 단둘이 만난다는 소문이 퍼지면 좋을 게 없었다.즉, 염구준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그녀에겐 위험하고 이성적이지 않은 행동이라는 거다. 하지만 그녀는 참을 수가 없었다.‘왔네.’염구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사람이 보이기도 전에 풍기는 옅은 향기에 그는 쓰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오랜만에 만나는데 나한테 이런 수작을 부릴 심산인가?”또각또각.리듬감 있는 발자국 소리와 함께 황실 예복을 입은 양청화가 염구준의 시야에 들어왔다.다른 건 일단 신경 쓰지 않고 말하자면 그녀는 정말 아름다웠다. 아니, 단순히 이쁜 것 뿐만 아니라 고귀한 아우라도 느껴졌다.“안 본지가 몇 년인데, 하나도 안 변했네.”무공을 연마한 사람들은 노화를 늦출 수 있었는데, 특히 염구준처럼 강한 무인들은 그 효과가 더욱 강했다.그러니 외모가 크게 변하지 않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염구준은 예의있는 미소를 지으며 한층 직설적인 태도로 말했다. “너도 관리 잘했네. 오늘 날 불러낸 이유가 단순히 옛정을 나누기 위해서야, 아니면, 그날의 진실을 듣고 싶어서야?”이에 양청화는 쓴웃음을 지으며 석탁에 앉았다.
오는 길에 이미 현장 사진과 여러 정보를 검토한 덕분에 염구준은 속으로 대략적인 윤곽을 잡을 수 있었다.“현장에 아무런 저항의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에드로는 한 방에 깔끔하게 처리된 걸 거야.”“전신 위의 실력을 가진 그가 그렇게 당했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야. 하나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배신했거나, 다른 하나는 더 강한 반보천인을 만났거나.”“반보천인의 수법은 다양하니, 우선 에드로의 주변 인물부터 조사해 보는 게 좋겠어.”염구준의 분석에 따라 현장에서 가장 의심되는 인물은 그와 벨, 두 명뿐이었다.그러나 이 사건은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았다. 그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용의자였다. 누구든 범인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염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머릿속이 확 트이는군요! 조사 방향을 명확하게 알 것 같아요.”벨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과하게 아부했다. 그는 염구준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조사를 맡긴 이상, 그는 염구준을 무조건 믿을 생각이었다.“됐어, 단서가 많지 않으니 내부 인물부터 조사해 보자.”염구준은 손을 휘저으며 벨의 아첨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에겐 아첨 같은 게 통하지 않았다. 또 다른 단서는 메이슨 집사였으나, 너무 노골적으로 행동하는 걸 보면 그는 그냥 연막일 가능성이 높았다.“알겠습니다. 바로 명령을 내리겠습니다.”벨은 공손하게 대답한 뒤, 옆에서 몸을 떨고 있는 부하에게 지시를 내렸다.“네카일에게 지금 하던 일을 멈추고, 세 개 부대를 이끌고 오라고 전해.”세 개의 부대에는 총 3만 명이있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쓴 걸 보아 이번 조사가 단순히 묻기만 하는 것이 아닌 전면적인 색출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는 아버지인 에드로와는 달리 네카일을 철저히 신뢰하고 있었다.1단계 계획을 실행하고 잠시동안은 할 일이 없었다. 다음 계획은 조사가 끝나고 상황을 보고 결정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염구준은 명탐정이 아니었다. 다만 철저한 논리적 사고와 예리한 관찰력으로 타겟을 좁혀가는 것 뿐이었다.“염 선생님,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굳이 밀고나갈 필요도 없겠지. 다들 물러나라.”만약 이 상황에서 계속 공격하려고 든다면, 벨의 말이 사실임을 입증하는 셈이 되기 때문에 그는 결국 병사들에게 물러나도록 지시했다.하지만 안드리 친왕과 그를 따르는 귀족들은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 없어 계속 시비를 걸었다.“염구준, 우리 오스타국의 중요 인물 두 명이 죽은 게 모두 너와 연관이 있는데, 뭐라고 할 말이 없는 거냐?”이름까지 부르면서 따지고 묻는 상대방의 태도에도 염구준은 겁 먹지 않고 오히려 비웃으며 대답했다. “니체르는 강제로 사람을 감금하고 연구성과를 빼앗았다. 죽어 마땅하지. 하지만 에드로 친왕의 죽음은 나와 무관해.”“이 대답에 만족해?”“참고로, 나는 지금 너희를 도와주고 있는 거니까 죄인을 심문하듯이 굴지마.”더없이 무례하게 느껴지는 그의 태도에 귀족들은 다시 화가 치밀어 올랐다.“너...!”안드리 친왕이 다시 말을 하려는 순간, 양청화의 위엄이 담긴 목소리가 대전 안을 울렸다. “그만. 니체르가 저지른 만행은 다들 알 거라고 믿습니다. 죽어 마땅하죠. 그리고 에드로 친왕의 죽음에는 의심스러운 점이 많으니 우선 제대로 조사하고 결정을 내리죠.”“오스타국 왕실을 대표하여, 염 선생님께 감사를 표합니다.”그녀가 말을 마치자 대전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그녀가 공식적으로 염구준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었다. 아래에 있는 귀족들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했지만 왕후의 말에 감히 토를 달 수는 없어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오스타국의 정치는 조금 특이했는데, 전의 국왕이 늙어서 수명을 다한 탓에 합법적인 후계자인 어린 국왕이 자리를 물려받기는 했으나, 아직 나이가 어려서 왕세자에 불과했다. 즉, 그의 어머니인 양청화가 실권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과분한 말씀이십니다. 이곳에 남기로 한 이상, 저를 모함한 범인을 반드시 잡아내고 말 테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과거의 인연이 있어서인지, 그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처럼 강한 태도
“염구준을 데려왔습니다!”궁전 바깥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왕궁 안에 있던 귀족들은 긴장한 채로 일제히 문쪽을 바라보았다.그들은 염구준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진 못했지만, 전에 용하국이 그를 위해 항공모함 전투단을 보냈다는 걸 들은 적이 있어 그가 쉽게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건 알고있었다. 한편, 왕궁 밖.염구준은 지금 어이가 없었다. 그냥 자신을 친왕이 살해된 현장으로 데려가면 되는 걸, 굳이 이런 번거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하니까 말이다. ‘시간 아깝게.’하지만 이미 진실을 밝혀내겠다고 한 이상, 더 이상 불평할 수도 없었다.그는 벨과 함께 궁 안으로 들어섰다.많은 귀족들의 적대적인 시선과 왕좌에 앉은 어린 국왕이 한눈에 들어왔으나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그의 시선을 사로잡은 건 따로 있었다. 바로 국왕을 안고 있는 왕후였다. 그녀는 눈처럼 희고, 아름다웠는데,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으며, 나이가 서른도 채 되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과부였다.‘양청화.’그는 단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과거, 그녀와 깊은 인연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서로 연락을 끊고 지냈었다.양청화 역시 복잡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예전 생각이 나서였다.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오직 두 사람만이 알고있었다. “벨이 국왕 폐하와 왕후 폐하께 문안드립니다.”이때, 벨이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며 말했다. 오스타국에서 황실 성원은 한쪽 무릎만 꿇고 인사를 올리면 되지만 외부인은 양쪽 무릎을 전부 꿇고 인사를 올려야 했다.그러나 염구준은 단지 가볍게 주먹을 쥐고 예를 표했다.“국왕 폐하와 왕후 폐하를 뵙습니다.”솔직히 이것도 그가 충분히 오스타국의 체면을 세워준 거였다. 평소라면 작은 나라의 왕에게 굳이 인사도 하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그러나 귀족들은 염구준이 자신들의 왕을 존중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화가 나 질책하기 시작했다.“무례하다! 국왕 폐하 앞에서 무릎을 꿇지 않다니!”“여기는
벨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손가을을 습격한 이의 목이 가차없이 날아갔다.그는 이 일이 자신과 무관하다는 것을 확실히 전달하기 위해 명령을 내릴 때 일부러 염구준이 들을 수 있도록 엄청 큰 소리로 외쳤다.“네 사람들 단속 잘해. 또 한 번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그땐 나도 참지 않을 거니까.”염구준은 물론 이 모든 것이 배후 세력의 계략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따끔한 충고는 필요했기 때문에 차갑게 경고했다.“알겠어, 알겠어.”네카일은 식은땀을 닦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염구준이 폭발하지만 않는다면 아직 협상의 여지는 있기 때문이었다.비교적 평화로운 분위기의 그들과는 반면, 멀리서 이를 지켜보던 흑풍 존주는 분노로 몸을 떨면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겁쟁이 새끼들! 불을 그렇게 붙여놨는데도 싸움이 안 나다니! 전생에 거북이었나.”방법을 있는대로 다 썼음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이뤄지지 않자 그는 이를 악물고 자리를 떠났다.그러나 질 수록 더욱 달려드는 그의 성격상으로서 이대로 쉽게 포기할 리가 없었다.‘옥패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 해.’오해가 풀리자 네카일은 즉시 대형 버스를 준비했다. 손가을 일행을 공항으로 데려가 전용기로 귀국시키기 위해서였다.손가을 일행은 걱정 가득한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보면서 작별인사를 나누었다.“구준 씨, 딸이랑 같이 청해시에서 기다릴테니끼 빨리 돌아와야 해.”“삼촌, 고마워요. 저 때문에... 부디 몸 조심하세요.”“주... 아니, 오빠, 귀국하면 청룡과 연락해서 언제든지 지원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을게요.”걱정 가득한 사람들과는 달리 염구준은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괜찮으니까 걱정 말고 돌아가도 돼. 나도 바로 갈게.”사람들이 없으면 그도 걱정할 필요가 없어진다. 가고 싶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다는 말이다. 버스가 천천히 멀어지자, 염구준도 한숨을 돌렸다. 두 명의 반보천인이 있는 한, 사고가 날 걱정도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현장에는 여전히 각국 대표팀들이 서 있었다. 벨의 명령 없이는 함부로
회장 주위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나오며 고함을 질렀다.“염구준을 죽여서 친왕님의 복수를 하자!”이에 염구준은 즉시 진기를 끌어올려 보호막을 형성하며 날카롭게 외쳤다.“네카일, 이게 무슨 짓이야?”“나도 몰라!”네카일은 잠시 당황하다가 곧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고는 최대로 큰 목소리로 소리쳤다. “모든 황실호위대는 전투를 금지한다! 명령을 어기는 자는 참수할 거야!”벨 역시 당황하며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다.“모두 움직이지 마! 움직이는 놈은 그 집 식구들까지 전부 죽여버릴 거니까!”이 갑작스러운 난입자들이 어디서 온 것인지 그들조차도 알 수 없었다. 이미 협상이 끝난 상황에서 굳이 싸움을 벌일 필요는 없었다. “흥, 누구든 움직이는 놈이 있으면 바로 죽여버릴 거야.”염구준은 단호하게 말한 뒤 검을 뽑아들고 적진으로 뛰어들었는데, 흉신이 강림한 것마냥 기세가 엄청나서 누구도 막지 못했다.그가 한 번 검을 휘두를 때마다 열 명 이상의 적이 쓰러졌다. 한 번도 막지 못하고 말이다.난입자들은 고작 이백여 명 남짓으로, 염구준에게는 하찮은 숫자에 불과했다. 그들은 실력이 약했는데, 모두 그저 혼란을 일으켜 양측이 싸우도록 유도하는 역할에 불과했다.이를 지켜보던 벨은 문득 네카일이 될 수록이면 싸우지 말라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렇게 압도적인 실력이라니.’‘만약 정말로 싸웠다면 제일 먼저 죽는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어.’그는 속으로 생각하며 감탄했다.“X발, 숫자 채우기만 하면 된다더니! 튀어!”난입자들은 예상과 다른 상황에 공포를 느끼며 급히 후퇴하기 시작했다.그들은 겨우 20만원씩 받기로 하고 온 사람들이었다. 겨우 그 정도의 돈 때문에 목숨을 내놓을 필요는 없었다.염구준은 재빨리 한 명을 붙잡고 캐물었다.“누가 시켰지? 말해!”“모... 모르겠습니다! 만능 전당포에서 받은 의뢰일 뿐입니다…”이에 붙잡힌 사람은 혼이 반쯤 나간 채로 벌벌 떨며 목소리를 간신히 내뱉었다. ‘만능 전당포라고?’상대방의 대답을 듣자마자
네카일은 벨 앞에 다가가 몇 마디 속삭인 뒤, 염구준을 향해 걸어갔다.“염 선생, 에드로 친왕께서는 확실히 돌아가셨어. 벨 왕자님도 상심이 크셔서...”염구준은 상대방이 벨을 변호하려고 한다는 걸 알아차리고는 손을 들어 말을 끊었다.“시간이 부족하니 핵심만 말해.”“그러지.”네카일은 대답하고는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사실을 털어놓았다. “오늘 아침 7시에 에드로 친왕께서 평소처럼 아침 운동을 하지 않는 걸 이상하게 여긴 하인이 방에 들어가 확인해봤더니 목이 잘린 채로 침대에 놓여있는 친왕의 시체를 발견했어.”“왕실 의사는 친왕의 사망 시간을 새벽 3시쯤으로 추정했고, 돌아가시기 전에 극심한 고문을 당했다는 판단을 내렸지.”“그리고 현장에 이런 게 있었어.”말을 마친 네카일은 휴대폰을 꺼내 사진 한 장을 염구준에게 보여주었다.사진 속의 하얀 벽에는 붉은 피로 쓴 큰 글씨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염구준이 살인범이라는 거였다.이 글이 바로 그들이 염구준을 잡으려는 이유였고, 그들이 주장하는 증거였다.“허, 너라면 니가 남의 개를 훔치고 니가 도둑이라고 말할 거야?” 염구준은 고개를 저으며 반문했다.이 말에 모두가 누군가가 염구준에게 죄를 덮어씌우기 위해 이런 글을 남겼다는 걸 깨달았으나 이건 현장에 유일하게 남겨진 증거였기에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래, 그건 나도 알고 있어. 벨 왕자님도 의심하고 있고. 하지만 적지 않은 귀족들이 염 선생이 죽였다고 의심을 하는 바람에 처리하기가 힘들어.” 네카일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처리하기가 어렵다고 해도 그게 날 잡을 이유는 아닐 텐데?”“그리고 너희들의 친왕이 죽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이지?”염구준은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록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범인을 잡지 못해 모든 걸 자신에게 덮어씌우려는 것처럼 느껴져서였다.풀썩.이때, 네카일이 갑자기 무릎을 꿇더니 충혈된 두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애원하기 시작했다. “이 일이 완전히 밝혀질 때까지 머물러 줄래? 안 그러면 수
호위대를 지휘한 사람은 바로 네카일이었다.차림새를 보아 직위를 회복한 것 같았다.“염구준, 에휴.”그는 진심으로 염구준과 적이 되고 싶지 않았다.염구준도 말뜻을 알아차리고 나지막하게 물었다.“날 잡으러 왔어? 니체르 대신 복수할 거야?”그는 말을 끝내자마자 작은 소리로 지시했다.“주작은 제이든, 호찬은 손중석을 보호해. 기회를 찾아 인파를 뚫고 나가.”상대는 병기로 무장한 수만 명의 황실 호위대다.그들과 치열한 싸움을 벌이기 전에 뒤에 있는 사람부터 보호해야 했다.“알겠습니다.”두 사람은 고개를 끄덕이고 보호 대상을 찾아갔다.지금 상황에서 염구준은 누굴 돌볼 겨를이 없었다.그때 손가을이 그의 팔을 잡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구준 씨, 당신이 도망칠 확률이 더 커. 우리 딸과 부모님을 잘 챙겨줘.”그녀는 전력이 약하지만 위급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고 싶었다.“바보야, 그런 말 하지 마. 내가 곁에 있으면 누구도 당신을 해치지 못해.”염구준은 기운을 끌어내 두 사람을 감쌌다.한편, 구경하던 각 나라 대표들은 눈치 빠르게 옆으로 달려가며 외쳤다.“우린 염구준을 모르고 친하지도 않아요. 복수하려면 염구준을 찾아가세요!”현장에 긴장감이 상승하고 한 쪽이 움직여도 바로 맞붙을 기세였다.일단 상대방이 움직이면 염구준은 일행을 데리고 호위대를 뚫고 나갈 생각이었다.그런데 황실 호위대는 공격하지 않고 양쪽으로 갈라서며 길을 내는 것이었다.가운데로 체격이 건장한 중년 남자가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염구준, 내 아버지 에드로 친왕은 당신을 존경했는데 왜 잔인하게 살해했어?”이 남자의 이름은 알렉스 벨, 친왕의 첫 번째 계승자였다.‘이건 모함이야.”염구준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이었다.니체르는 그의 손으로 참살했지만 뒤에 흑풍 존주가 숨어 있었다.“난 죽이지 않았어.”염구준은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게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내 아버지는 오늘 새벽 3시에 죽었다. 네가 아니란 걸 증명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