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은 내가 해결해야지!”손태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싸늘한 음성으로 말했다.“회사 임원급 인사들 소집하고 이사회 준비해. 이번에는 손가을 그년을 그룹에서 완전히 쫓아버려야겠어!”시공현장의 어느 창고.손가을은 작업팀 담당자와 함께 현장을 참관하고 있었다. 시설 점검을 마친 뒤, 그녀는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시공 일정은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2주나 빨랐고 시간을 단축하면서 예산도 절약할 수 있었다. 공장은 현재 마지막 점검을 진행 중이었고 외부에서 생산기계를 대량 구입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이거 진행하는 내내 긴장했는데 이제 좀 마음이 놓이네.”손가을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감탄하듯 말했다. 최근 몇 달 사이, 그녀는 이 프로젝트를 위해 밤낮 가리지 않고 동분서주했다.“그렇게 힘들었어? 혹시 일할 때 누가 괴롭혔어? 그게 누군데? 내가 가서 야근비까지 다 받아낼 거야.”염구준이 정색하며 손가을에게 말했다.손가을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 눈치 없이 전화기가 울렸다.회사 비서실의 연락이었다.“손가을 씨, 긴급 이사회를 소집할 예정이니 아홉 시에 늦지 않게 도착하시길 바랍니다.”상재는 용건만 말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손가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꺼진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았다. 손태석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아직 이사회에 참석할 레벨이 아니었다. 예전에 이사회를 소집하면서도 한 번도 그녀를 부른 적 없었다.옆에서 통화내용을 다 들은 염구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었다.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조바심이 난 손태진이 무언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전체 임원들이 보는 앞에서 손가을에게 망신을 주려는 속셈이 보였다.“가자.”염구준은 두말하지 않고 손가을을 이끌고 차에 올랐다. 그들은 그 길로 곧장 손영그룹으로 향했다.손영그룹 본사 맨 위층의 회의실.손태진이 상석에 앉아 있었고 임원들도 하나둘씩 들어와서 자리에 앉았다.“허, 참. 이사회에 지각을 하다니!”“여덟 시 30분에 회의 시작이라고 똑
회의실 문이 열리고 손가을이 안으로 들어왔다.“그룹 관계자가 아닌 놈은 나가!”손태진은 손가을 뒤를 따라오는 염구준을 보자 차갑게 호통쳤다.저놈이 아들 손호민에게 두 번이나 폭력을 행사한 것만 생각하면 이가 갈리고 눈에서 분노가 치솟았다. “그렇다면 우리 그냥 가자.”염구준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을을 이끌고 뒤돌아섰다.손태진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이사회를 소집한 목적이 손가을을 모두의 앞에서 망신 주고 회사에서 쫓아내려는 것인데 주인공이 퇴장하다니!손태진은 염구준을 힘껏 노려보고는 싸늘하게 말했다.“성질하고는! 됐다, 그냥 앉아!”염구준은 손가을의 손을 잡고 빈 자리를 찾아 자리에 앉힌 뒤, 자신은 뒤로 가서 섰다.한 임원이 입을 삐죽이며 비아냥거렸다.“하루종일 마누라 뒤꽁무니 쫓아다니는 거 말고 할 일이 그렇게 없나 봐?”말을 마친 그는 염구준을 향해 도발적인 미소를 보냈다.염구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성큼성큼 그에게 다가갔다.짝!그리고 상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손바닥으로 상대의 귀뺨을 후려쳤다.“당신이 뭔데 입을 함부로 놀려?”말을 마친 그는 다짜고짜 상대의 멱살을 잡고 바닥에 패대기쳤다. 그리고는 그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 당당하게 앉았다.그 임원은 부은 얼굴을 부여잡고 바닥에서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금 전 자신을 노려보던 염구준의 섬뜩한 눈빛이 잊혀지지 않았다.“너… 이 무례한….”손태진은 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다가 억지로 분노를 추슬렀다. 오늘의 주요 목적은 손가을을 그룹에서 내치는 것이었다. 어차피 염구준 같은 무능하고 무식하게 힘만 센 데릴사위는 나중에 제거하면 그만이었다.“손가을, 우리가 널 왜 불렀는지 무척 궁금할 거야.”손태진은 여유롭게 차를 마시며 불쾌한 미소를 지었다.“최근 네가 회사에서 꽤 괜찮은 업적을 냈어. 우리도 그걸 지켜봤고. 회사와 가문을 위해 헌신한 네 공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해. 그래서 회사도 시름 놓고 너한테 대형 프로젝트를 맡겼지.”염구준은 손
손태진은 그녀에게 변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몰아쳤다.“증거가 빼박인데 넌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 오늘 부로 손가을을 회사에서 제명한다! 넌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게 될 거야!”그 말이 끝나자 사람들은 너도나도 손태진을 지지했다.“전 사장님 의견에 전적으로 찬성입니다!”“손가을은 그룹에 암 같은 존재가 틀림없어요!”“암덩어리는 당연히 제거하는 게 맞죠.”너도나도 한마디씩 하며 손가을을 비웃듯 쳐다보았다. 손가을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고개를 숙였다.이런 쓰레기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았다.그는 손영그룹의 불공정한 처사에 깊이 실망했다.“하! 웃기지도 않는군!”차가운 웃음소리가 현장의 정적을 깨뜨렸다.염구준이었다.“연기 잘 봤습니다!”그는 손태진을 향해 박수를 치며 핸드폰을 꺼냈다.“손 사장님, 오늘 하신 그 발언, 핸드폰으로 전부 녹취해 두었습니다. 그 연기실력이면 오스카 주연상을 노려봐도 괜찮겠군요!”손태진은 음침한 얼굴로 으르렁거렸다.“염구준, 방해할 생각하지 마. 난 팩트만 말했어. 연기 따위가 아니었다고!”“맞아요!”다른 임원들도 염구준을 비웃으며 한마디씩 거들었다.“손가을 씨 월급은 한 달에 200도 안 돼요. 월급 정산 기록만 봐도 알 수 있지요.”“월 이백으로 네 명이나 먹고 살아야 하는데 무슨 돈으로 외제차를 사겠습니까? 게다가 진숙영 여사가 이번에 밍크코트까지 구매했더군요. 이게 뇌물을 받았다는 증거입니다!”염구준은 가증스럽다는 듯이 임원들을 쏘아보며 냉소를 지었다. 그는 천천히 손을 들어 겉옷 호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그 모습을 본 손태진이 긴장한 얼굴로 다급히 소리쳤다.“염구준, 여긴 회사야. 밖에 경비원들이 상시 대기하고 있어! 허튼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 경비! 경비 뭐해?”손태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가진 게 많은 자일수록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염구준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탁!그는 호주머니에서 구매 명세서를 꺼내 책상에 던졌다.“잘 봐둬요.”그
“당연하죠.”손가을이 단호하게 대답했다.이게 다 저들이 염구준을 무시해서 초래한 결과였다. 염구준은 한 번도 돈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그녀는 손태진을 빤히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했다.“제가 뇌물을 받은 게 아니라 많이 실망하셨겠네요.”손태진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는 중요하지 않아! 누구 돈이든 상관없어! 네가 용운그룹이랑 짜고 회사를 장악하려고 한 행동이 잘못이란 거야! 우린 너한테 크게 실망했고 오늘 부로 널 해고할 거야!”손가을은 화가 나서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없는 죄명까지 만들어 내서 조카를 끌어내리려는 큰아버지라니!“다른 건 얘기하고 싶지 않아.”손태진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머리를 굴렸다. 오늘 이 프로젝트의 권한을 빼앗아 오지 못하면 앞으로 손가을은 날개를 펴고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 분명했다.“손 사장님은 농담하는 센스도 영 없네요.”염구준은 아내의 손을 부드럽게 다독이고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어쩔 수 없네요. 솔직히 말씀드리죠. 가을이는 오늘 이사회에 오기 전부터 퇴사를 고민하고 있었습니다.”회의실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손가을 본인마저 놀란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절대 해본 적 없는 말이었다.저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이 상황에 직장을 잃으면 무슨 수로 생활비를 충당하지? 물론 염구준은 돈이 많지만 그게 자신의 돈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걱정하지 마.”염구준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싸늘한 눈빛으로 좌중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당신들 어떻게든 가을이 회사에서 내보내려고 했잖아요? 알았어요. 당신들 뜻대로 해드리죠!”“능력은 없는 주제에 다른 사람 모함하고 짓밟는 당신들 같은 인간들이랑 가을이가 같이 일할 이유가 없어!”분이 치밀대로 치민 손태진은 염구준을 손가락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염구준, 닥쳐!”“닥칠 사람은 내가 아니라 당신이야!”염구준은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가을이가 추진하던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
그룹은 이번 기회에 기업 확장을 꿈꾸며 모든 재원을 쏟아부었다. 그런데 모든 노력이 손가을의 손으로 들어가다니!법무부는 계약서를 제대로 검토도 하지 않고 통과시킨 거지?손태진은 물론이고 법무팀장의 안색도 하얗게 질렸다.“사장님, 믿어주세요. 제가 검토할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단 말입니다!”고위 임원도 떨리는 목소리로 변명했다.“분명히 누가 계약서를 바꿔치기했어요! 틀림없어요!”손태진은 말없이 상대를 노려보았다.염구준이 이 계약서를 공개했다는 건 이미 만반의 준비를 끝마쳤다는 것을 의미했다.계약을 무를 수도 없으니 분해도 받아들여야 했다.그는 긴 한숨을 토해내고는 손가을을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가을아, 내가 널 너무 과소평가했어! 네가 이렇게 악랄한 아이였을 줄은 몰랐다!”손가을도 싸늘한 표정으로 당당하게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어떻게 된 건지는 몰라도 분명히 염구준과 연관이 있었다. 손태진이 분해서 부들부들 떠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웠다.“우리 그룹에서 조용히 수그리고 일만 하더니 다 오늘을 위해서였어?”손태진은 광기 어린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프로젝트 하나 가로챈다고 우리 손영이 무너질 것 같아? 꿈깨!”“네가 빼앗은 모든 걸 훗날 넌 두 배로 쳐서 돌려놓게 될 거야!”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더니 손가을의 멱살을 잡으려 다가갔다.탁!염구준이 그의 손을 쳐내며 싸늘하게 말했다.“당신들이 가을이랑 가을이 가족들 괴롭힌 건 생각 안 해? 우린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준 것뿐이야. 그리고 빚을 갚는 쪽도 당신들 손영이 되겠지!”말을 마친 그는 손가을의 손을 잡고 밖으로 향했다.손태진은 아픈 손목을 잡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임원들은 서로 눈치만 보며 아무도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염구준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 고개를 돌리고 담담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참, 가을이는 여기서 사직하고 내일 새로운 손씨 그룹을 창립할 겁니다. 시간 나시면 참관하러 오세요.”말을 마친 그는 한시도 더 있기 싫다는
손태진 일가는 갖은 방법을 써서 그들을 무너뜨리려고 했다. 그가 먼저 시작했으니 봐줄 이유도 없었다.이 프로젝트는 절대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손가에서 그녀에게 진 빚을 돌려받을 순간이다!“왜 또 감사하다고 그래?”염구준이 웃으며 말했다.“우린 부부야. 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고.”손가을은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구준 씨, 새 그룹을 창설한다는 거 그냥 해본 소리였지?”염구준은 당혹스러운 아내의 표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유명한 점쟁이 찾아가서 날짜도 받아놨어. 내일이 최근 몇 달 사이에서 가장 길한 날이래.”“당신을 놀라게 해주고 싶었어.”그는 사랑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손가을을 바라보았다.손가을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쩔 바를 몰라했다.‘농담이 아니었어? 이건 나만을 위한 이벤트?’염구준이 돈이 많은 줄은 진작에 알았지만 그룹 하나를 통째로 자신에게 선물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사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너무 과했다.이 선물을 받는다면 그녀는 염구준에게 돌려줄 수 없는 빚을 지게 된다.염구준은 충격에 빠진 손가을을 바라보고 말없이 차를 몰아 아파트로 돌아왔다.진숙영은 지난번에 청해 은행장에게 받은 카드로는 채소를 사는 용도로만 아껴서 사용했다.집에 들어서자마자 향긋한 반찬 냄새가 풍겨왔다. 전부 염구준의 입맛에 맞춘 밥상이었다.“둘 다 어서 씻고 밥 먹으러 와!”진숙영은 손에 묻은 물기를 앞치마에 닦으며 안방을 향해 소리쳤다.“당신도 빨리 밥 먹으러 와. 하루종일 책 보고 있었어?”지난번에 본가에서 돌아온 뒤로 손태석은 투자공부에 몰두했다.손가을은 갑갑해하는 진숙영을 보고 안방에 다가가서 웃으며 아빠를 불렀다.“아빠, 엄마가 부르잖아요. 빨리 나와서 식사해요!”손태석은 그제야 안경을 벗고 일어서다가 살짝 수심이 드리운 손가을의 표정을 보고 걱정스럽게 물었다.“가을아, 뭔 고민 있어?”“아빠, 저….”손가을은 머뭇거리다가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저 퇴사했어요. 앞으로
그녀도 상황을 잘 모르니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장인어른, 가을이 능력으로 6개월 안에 우리 회사를 청해시 일류 기업으로 성장시킬 겁니다.”염구준이 웃으며 말했다.손가을은 입술을 질끈 깨물며 새침하게 콧방귀를 뀌었다. 무슨 회사 운영이 동네 구멍가게처럼 쉬운 줄 아나?손태석은 떨리는 손으로 수저를 내려놓고 한참을 멍하니 사위를 바라보았다.가슴에서 뜨거운 용암이 솟구치고 있었다.한번 실패한 뒤로 손영에서는 더 이상 그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기를 쓰고 손 회장 앞에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했지만 돌아오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오히려 아부에 능한 손태진이 더 큰 관심을 받았으니 실망은 차곡차곡 쌓여만 갔다.그런데 한때는 가장 무시했던 데릴사위가 회사 하나를 통째로 그에게 안겨줄 줄이야!손태석은 눈시울이 뜨거워져서 감격한 표정으로 염구준을 바라봤다.“장인어른, 저한테 고마워하실 필요는 없어요.”염구준은 감격을 금치 못하는 손태석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저는 가을이 남편이고 장인어른의 사위잖아요. 장인어른 능력으로 회사를 최강으로 이끌어 주실 거라 믿습니다!”그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진숙영이 반찬을 들고 주방에서 나왔다.염구준을 위해 준비한 밥상이었다.“아까 무슨 회사 얘기가 나오는 것 같던데?”진숙영이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네.”손가을은 상황을 진숙영에게 설명했다.진숙영도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식사가 끝난 뒤, 진숙영은 설거지하러 가는 김에 손가을을 따로 불러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을아, 예전에는 몰랐는데 구준이 걔 정말 괜찮은 사람 같아.”“네?”손가을은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다.“엄마,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는 거예요….”“이상한 소리하려는 거 아니야.”진숙영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염구준이 이 집으로 처음 왔을 때, 쌀쌀맞게 대했는데 지금은 오히려 손가을이 그에 비하면 부족해 보였다.지금까지 보인 염구준의 행보를 봤을 때, 그는 엄청난 신분을 가진 게 틀림없었다. 왜 굳이 데릴
손중천은 화들짝 놀라며 아들의 손을 잡고 물었다.“그만! 무슨 일인지 똑바로 설명해!”말은 그렇게 해도 벌써 불길한 예감부터 들었다.손태진이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그룹에 큰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아버지, 용운그룹과 진행하던 프로젝트를 손가을이 중간에서 가로챘어요!”손태진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감싸며 손 회장의 눈길을 피했다. 과거에 그는 다른 사람을 짓밟을 줄만 알았지 이렇게 누구한테 짓밟힌 적은 처음이었다!창피해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뭐라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지?”손중천이 흠칫하며 추궁하듯 물었다.분명히 손영에서 추진하던 프로젝트를 손가을 혼자 힘으로 어떻게 가로챈단 말인가!“저도 오늘에야 알았어요. 계약서에 손을 썼어요. 계약서에 손가을 혼자의 사인밖에 없어요! 이 프로젝트는 이미 그룹의 것이 아니에요!”손태진은 가슴을 부여잡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넋이 나간 사람처럼 주절주절 떠들었다.“우리가 그룹의 모든 자원을 쏟아 부었더니 손가을을 위한 밥상이었어요. 파렴치한 년!”손중천은 그 말을 듣고 넋이 나간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들고 있던 찻잔을 내던졌다.“이런 천하에 후레자식!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가문에 저런 늑대 새끼가 태어났을고!”그는 테이블을 쾅쾅 두드리며 손태진에게 물었다.“손태석 어디 있어? 딸이 이런 짓을 할 때까지 걔는 뭐했대?”“아비라는 자가 몰랐을 리 있겠어요? 태석이가 시켰을 수도 있죠! 태석이 걔 정말 무서운 애예요. 우리가 걔를 잘못 본 거예요!”손중천은 치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비틀거렸다.손태진은 다급히 다가가서 그를 부축해 소파로 데려가고 어깨를 주물러 주며 말했다.“아버지, 나이도 있으신데 너무 화내지 마세요. 이러다가 화병 나겠어요!”손중천은 씩씩거리며 좀처럼 분을 삭이지 못했다. 손태석이 이런 사고를 칠 줄 알았다면 애초에 살려두는 게 아니었다.‘그래! 자기네는 조그만 집에서 힘들게 사는데 나랑 태석이만 부유하게 살았으니 질투 날만도 하지.
계획대로 주작이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염구준이 나타나자 그녀가 앞으로 다가갔다.“주상, 일이 잘 풀렸나 보네요.”“그래, 녀석을 청룡에게 맡겨서 잘 돌보라고 해.”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마린을 내려놓고 얼굴에 물을 뿌렸다.차가운 기운에 화들짝 놀란 마린은 낯선 사람을 보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모든 것이 낯설고 두려워서 그만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우아아앙~! 집에 갈래요. 아빠 찾으러 갈래요.”“울지 마. 나야.”염구준은 인피가면을 벗고 원래 얼굴을 보여줬다.몇 년 전에 마씨 일가를 구해줬을 때 본 적이 있었다.“천신 아저씨!”그제야 마린은 활짝 웃으면서 와락 안겼다.아저씨라는 말에 조금은 억울해도 녀석에게 따지지 않았다.나이 차이가 얼마되지 않았지만 본인이 원하는 대로 부르게 내버려두었다.“마린, 네 아빠가 잠시 할 일이 생겨서 나랑 같이 다른 곳에서 지내다가 며칠 뒤에 돌아오자.”염구준이 타일렀다.“알았어요. 아저씨 말 들을게요.”마린은 어린 아이처럼 얌전하게 말을 잘 들었다.“그럼 이 누나랑 같이 가. 너를 보살펴줄 거야.”염구준이 앞을 가리켰다.“같이 가죠. 이모.”마린은 말하자마자 주작의 기분을 망쳐놓았다.“누나라고 불러!”주작은 이마를 찌푸리며 예민하게 굴었다.그녀의 모습에 마린은 몸을 움츠리고 더는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주작은 마린을 데리고 떠났다.그렇게 오늘 저녁 작전은 순조롭게 마무리되었다.“휴.”염구준은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마린이 그의 말을 잘 따라주어서 다행이었다.하지만 마린의 성격으로 상황을 자세히 말하지 않으면 청룡이 꽤 애를 먹을 것 같았다.일을 마쳤으니 염구준은 호텔에 돌아가 쉬었다.나머지는 거록 존주가 알아서 지지든 볶든 내버려두었다.그의 추측이 맞다면 거록 존주는 바로 소식을 차단하고 마거봉에 대한 통제를 더 강화할 것이다.마거봉이 어떻게 할지는 가기 전에 했던 말이 있으니 정확한 선택을 했으리라 믿는다.소식은 예상대로 빨리 퍼졌다
“시끄러워 죽겠네. 위에서 명령하지 않았다면 지금 널 죽였어.”남자는 악독하게 말하며 옆에 있는 그릇을 들어 바닥에 냅다 던졌다.언행을 보면 평소 사람을 죽이고 불을 지르는 등 나쁜 짓을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그런데 이런 놈을 조식 코너에 안배하다니 호텔에서 직원을 뽑는 기준이 상당히 의심스러웠다.깜짝 놀란 마린은 숨을 죽여 흐느꼈다.타닥타닥!문 밖에서 일행의 걸음소리가 들렸다.바로 미행하던 사람들이었다.그들은 주방으로 들어오더니 바로 문을 잠갔다.“빨리 저놈을 납치하고 철수한다.”매니저가 재촉했다.거록 존주의 태도를 보면 혹시나 죽게 될까 봐 1초도 지체할 수 없었다.쿵!그때 염구준이 갑자기 나타나 한 줄기 기운으로 일행을 물리쳤다.목표를 확정했으니 더는 연기할 필요가 없었다.“넌 뭐야? 왜 너를 본 기억이 없지?”그제야 매니저가 눈치를 채고 나지막하게 물었다.“어차피 죽을 놈들이 내가 누군지 알 필요 없어.”염구준은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어떤 정보는 숨길수록 상대방에게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이봐, 우리 일에 끼어들지 말고 그냥 가. 내가 못 본 걸로 할게.”매니저는 시간이 촉박하여 사람만 데려가고 싶었다.“그런 농담은 하나도 재미없어. 재주껏 덤벼 봐.”어렵게 녀석을 찾았는데 저들에게 타협할 가치도 없었다.“좋아. 괜히 끼어들다가 죽어도 날 탓하지 마.”매니저는 더는 설득하지 않고 몸에서 기운을 폭발시켰다.전신 경지에 도달한 고수였다.“내가 저놈을 잡고 있을 테니까 너희들은 저 녀석을 데려가.”“조심하세요!”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누군가가 소리를 질렀다.쿵!위험을 감지한 매니저는 고개를 돌리자마자 주먹을 맞고 미끄러져 떨어졌다.주먹 한 방에 기절한 것이었다.“싸움하는데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콜록콜록! 개 자식, 습격했어? 비열한 새끼.”매니저는 연신 기침을 하더니 겨우 일어서서 염구준을 노려봤다.“이제부터 공격할 테니까 조심해.”염구준은 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일합권법으로 상대
한편, 같은 시각에 호텔 밖에 있는 거록 조직의 감시원들은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포커를 치고 있었다. 염구준이 호텔에 들어간 뒤로 다시 나오지 않는 걸 본 그들은 오늘내로는 상대방이 움직이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폭탄 카드 낼래?”“젠장, 한 게임에 폭탄 카드가 네 개나 나와? 너 꼼수 부렸지?”“재수 없네. 난 안 놀래!”바로 이때, 갑자기 이어폰에서 긴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모든 팀 주의! 몇 사람이 엄청난 속도로 호텔에서 뛰어나왔다. 추적해.”감시원들은 이 소식을 듣고 급히 일어났지만, 이미 타겟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염구준의 작전에 참여한 사람들은 최소 전신 위 경지의 강자들이었기에, 감시원들은 그들을 쫓아갈 재간이 없었다.“1팀, 타겟 놓침.”“2팀, 타겟 같은 인물 발견.”...각 팀에서 들려오는 보고는 하나같이 상황이 좋지 않았다.“쫓아!”현장의 총책임자는 화를 내며 소리 질렀으나 그도 사실 누구를 뒤쫓아야하는지는 몰랐다. 다만 가만히 서 있기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이에 감시원들은 인파 속으로 뛰어들어 무작정 타겟들을 찾아다녔지만,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와 다를 바가 없었다.그러나 호텔에서 뛰어나온 이들은 ‘친절하게’ 도 이따금씩 모습을 드러내 감시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그 다음 곧장 성 한 바퀴를 달린다는 게 문제지만 말이다.30분 후, 거록 조직의 감시원들이 완전히 지쳐버린 뒤에야 염구준은 호텔에서 느긋하게 걸어나왔다. 주변에는 이제 감시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는데, 이는 그의 계획이 정식으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했다. 이미 다른 모습으로 변장한 염구준은 재빠르게 호텔 입구에서 모습을 감추었다.“젠장, 또 사라졌네!”“그러니까. 어떻게 사람이 귀신처럼 나타났다 사라질 수가 있어?”조용한 골목 한쪽에서는 감시팀 한 무리가 앉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담배를 피우면서 불만을 터뜨렸다. 슥.검은 그림자가 지나가며 한 명이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피곤에 찌든 감시원들은 이를 눈치채지 못
예전에 전신전에서 염구준은 굉장히 엄격한 리더였다.부하들이 실수하면 반드시 벌하고, 잘해도 더 높은 기준을 요구하군 했으니까 말이다.‘야수의 군대’ 는 바로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었다.“며칠 전에 전주님께서 남기신 옥패의 무학 필사본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어서 돌파한 겁니다.”현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고된지는 염구준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으나 잔소리하는 걸 잊지 않았다. “같은 반보천인이라도 그 실력이 천차만별이니까 이 경지에 올랐다고 해서 나태해져서는 안 돼.”특히 고대영이 전에 그에게 알려준 극한 반보천인에 대한 이야기는 그에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천인경은 그가 여러 번 도전했지만, 여전히 넘지 못한 벽이었다.이렇게 되면 현재 네 명의 전존들 중, 오직 주작만이 전신 위의 경지에 머물러 있는 셈이 되었다.그러나 이건 어쩔 수 없는 거였다. 그녀에겐 잡념이 너무 많았다. 오자마자 붉은 장미와 말다툼을 하는 걸 보면 알 수 있었다. “염치도 없지. 말해, 일부러 주상께 접근한 의도가 뭐야?”“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니거든? 그리고 무엇보다 난 이미 약혼자가 있어!”붉은 장미는 지지 않고 손가락의 반지를 자랑스럽게 내보였다.그 반지는 꽤나 큰 다이아몬드로 장식되어 있었다.“흥, 나도 있어!”주작은 목걸이를 꺼내 보여주었는데, 그 위에 박힌 다이아몬드는 붉은 장미의 것보다 열 배는 컸다.“그래서? 넌 여전히 솔로잖아.”붉은 장미는 비웃으며 말했다.“나... 나는 내가 솔로인 게 자랑스러워! 그리고 내가 솔로든, 아니든 네가 무슨 상관이야!”이에 주작은 화가 나서 얼굴이 붉어진 채로 반박했다.‘머리 아파.’방 안의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보며 쓴웃음을 지었다.두 사람은 전생에 원수였는지 계속 서로를 못마땅하게 여겨, 매번 만날 때마다 말싸움을 하기 때문이었다. 전신 위의 강자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도, 두 사람은 평범한 여자처럼 사사건건
마거봉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억지로 태연하게 말했다. “존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다 했으니, 이제 그만 놓아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 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구는 걸 보면 약점이 잡힌 게 틀림없었다. “걱정 마. 네가 내 말만 잘 듣는다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니까.” 그러나 거록 존주는 인질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하지만...”이에 마거봉이 다시 말하려고 하자, 거록 존주가 바로 말을 끊었다. “그쯤해. 넌 네 일만 잘 하면 돼.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체 마씨 가문을 없애버릴 거니까, 명심하고.”보통 사람들은 누군가를 시켜먹을 때, 협박과 회유를 섞어 쓰지만, 거록 존주는 오직 협박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예.”마거봉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바로 물러났지만 속으로는 염구준이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을 돌이켜보았다.한편 염구준은 이미 전에 전세 낸 호텔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호텔 주변에는 그가 배치한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뒤를 밟던 사람들도 더 이상 그를 감시하지 못했다.조용한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붉은 장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이 추측한 걸 전부 털어놓았다. “마거봉이 이상해요. 그 주변 경호원들도 뭔가 수상하고요. 당신도 눈치챘죠?”그러나 염구준은 느긋하게 차를 우려내고 자리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은 거록 존주의 부하들입니다. 다만 거록 존주가 직접 왔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바위성에 오자마자 실세부터 잡은 걸 보면, 뭔가 큰일을 벌이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아...”붉은 장미는 그의 말을 듣고나서 어느정도 깨달았으나 궁금한 점이 더 많아졌다.“그렇다면, 아까 우리가 그 경호원 넷을 처치하고 마거봉을 도와줬으면 됐잖아요?”언뜻 보기엔 그녀의 말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확한 결정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염
“맞습니다. 거록 존주는 위험한 인물이죠. 하지만 제가 있는 한 그 사람은 당신의 털끝 하나도 다치지 못 할 겁니다.” 이에 염구준이 약속했다.이번 계획은 빈틈이 없이 완벽했기 때문에 마씨 가문을 지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염 선생님을 믿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가주로서 가문의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습니다.”마거봉은 진심 어린 태도로 말했지만, 그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가주라는 위치에 있으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기에 무슨 일을 할 때도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다.“이 나쁜새끼야, 예전에 내가 아니었다면 너네집 식구들 전부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는 거 알아?”염구준은 갑자기 크게 소리치며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음?’그리고 그는 그와 동시에 방 안에 있던 네 명의 경호원들도 각각 자신의 기운을 뿜어내는 걸 느꼈는데, 그 중 세 명은 무성이었고, 한 명은 전신의 경지였다.평범한 사업가 가문에 불과한 마씨 가문에 이 정도의 전력이 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염구준이 일부러 화를 낸 것도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그가 갑자기 분노하자 마거봉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도를 꺼냈다.“염 선생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전 아무 도움도 드리지 못해 너무 부끄럽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다.그러나 단도의 끝이 옷감에 닿자마자 보이지 않는 힘에 제지당해 더 이상 찌를 수가 없었다.“염 선생님...”염구준이 자신을 막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마거봉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툭.염구준은 살짝 힘을 주어 단도를 떨어뜨린 다음 한숨을 쉬며 말했다.“에휴, 됐습니다. 마 가주님께도 사정이 있으실 테니 더 이상 강요하지 않겠습니다.”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이 때문에 피를 볼 필요는 더더욱 없고 말이다. 계획은 이 지역의 실세의 협조 없이도 진행할 수 있도록 바꾸면 될 일이었다.“염 선
마거봉이 바위성에서 어떤 사람인가? 그가 행인 따위와 친분이 있을 리가 없다고 여긴 사람들은 전부 염구준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 들어가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쓰네. 부끄럽지도 않나?”이때, 방금 전에 담배를 권하던 관광객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염구준은 그런 자질구레한 비난 따위에 반응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저... 손님, 그건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초대장이 필요합니다.”보안요원이 난감해하며 말했다.“제가 염 씨라고 전달 좀 해주실래요?”염구준은 성씨만 알려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염 씨라고?’성씨를 들은 뒤, 보안요원들은 깜짝 놀라다가 곧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 바로 전달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마거봉이 하루 건너 한 번씩은 말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성씨를 외울 정도였다.물론 오늘 아침에도 역시 염 씨 성을 가진 이가 있으면 바로 보고하라는 말을 들었었다.방금 전까지 비웃던 관광객은 이 모습을 보고 난처해서 얼굴이 굳었지만, 곧 체면을 세우기 위해 핑계를 찾았다. “아마 성이 같을 뿐이지, 마거봉이 찾는 사람이 아닐 거야.”그도 반응이 꽤 빠른 축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을 바로 하는 걸 보면 말이다.“그럼 두고 보자고.”염구준은 경멸 어린 미소를 띤 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황급히 걸어나왔는데, 맨 앞에는 환한 미소를 짓고있는 마거봉이 서 있었다.“왜 말도 안 하고 이리 먼길을 오셨어요?”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마거봉의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바위성의 실세가 직접 맞이하는 것을 보면 염구준 또한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대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른 겁니다.”염구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남의 지역에서까지 윗사람 행세를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하하하, 염 선생님, 어서
“맞아요. 적당히 하시죠? 훗날에 또 만나면 어쩌려고, 그냥 좋게 넘어가요.”만약 방금 전에 진 게 염구준이었다면, 사람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그더러 내기대로 하라며 압박했을 것이 뻔했다.그들은 늘 이렇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그쪽들이랑은 상관없잖아요.”염구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살기를 뿜어내면서 차갑게 말했다.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타깃이 된 것만 같아 추워져서 몸을 떨었다.로브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꼼짝하지 않자, 염구준은 그에게 압박을 가했다.“당신이 직접 할래요, 아니면 제가 도와줄까요?”이 상황은 로브에게 정말 난처했다. 약속을 지키면 체면을 잃게 되고, 지키지 않으면 인품이 의심받게 될 테니까 말이다.“아... 아버지...”오랜 침묵 끝에 로브는 억지로 말을 내뱉었다.염구준은 손을 저으며 경고했다.“저한테는 당신같이 큰 아들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좀 자중하세요. 특히 용하국에서는 까불지 마세요.”말을 한 뒤, 로브는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로브가 떠나자, 일부 관중들은 염구준을 향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냈다.“다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겁니까? 제 얼굴에 뭐가 묻은 것도 아니고. 얼른 쫓아가 보기나 하시죠.”염구준은 손을 들어 멀리 사라져가는 로브를 가리켰다.“로브 씨!”그러자 일부는 소리치며 그를 따라갔고, 또 다른 일부는 로브에게 실망하며 안티팬이 되어버렸다. 반면, 염구준은 현재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모두가 그의 마술 실력이 최고봉에 도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들 흩어지세요. 길 막지 마시고요.”염구준은 손을 젓고는 사람들 속에서 사라졌다.잠시후, 그가 조용한 골목에 도착했을 때,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공손하게 말했다. “염 선생님, 아까 나타나셨을 때, 수상한 인물이 여덟 명 확인되었고, 사람들을 보내 뒤를 밟게 했습니다.”“하지만 방금 전에 연락해보니, 네 명이 연락이 되지 않아요.”보고를 들은 염구준은 머리가 ‘땡’ 하고 울리
이때, 새로운 상자가 올라왔는데, 사람이 들어가면 철편으로 몸과 머리를 가를 수 있는 신체분리 마술에 쓰이는 도구였다.그러나 염구준은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단 하나의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걸 할 필요도 없이 관건적인 순간에 또 진기를 쓰면 이 라운드도 이길 수 있었다.‘응?’그러나 이때, 진기의 파동과 더불어 근처 지붕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염구준은 고개를 돌아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역시 내 느낌이 맞았네. 바위성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누군가 날 감시하고 있어.’하지만 그는 섣불리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을 잡지 않았다. 괜히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가 단서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다 들킨 마당에 이제 그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내가 따로 배치 해둔 게 있으니 만약 거록 존주가 바위성에 있다면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기는 힘들 거야.’“로브 씨, 정말 멋져요!”갑작스러운 팬들의 환호성이 염구준의 생각을 끊었다.고개를 돌려보니, 로브는 이미 그가 생각할 동안 마술을 끝낸 상태였다.‘방심했네.’“그럼 이제 해보시죠.”로브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염구준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이 마술을 정말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보여줄 수가 없어 망설임없이 바로 패스했다.“다음으로 넘어가죠. 3번째 라운드로 승부를 정합시다.”만약 누군가가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번 라운드는 누구도 완성해내지 못한 것으로 무승부를 봤을 것이었다.물론 이것 또한 그의 전략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마술로 붙자고 하든지 모두 진기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눌러서 앞 두 판을 무승부로 만들고 세 번째 판에서 이기는 것 말이다.비록 변수가 생기긴 했으나 아직까진 컨트롤이 가능했다.“세 번째 대결은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이때, 로브가 물었다. 이런 방식의 대결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였다.“간단합니다. 행인분들더러 저희를 때려보라고 한 다음, 먼저 쓰러지는 쪽이 지는 겁니다. 이런 게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