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응보네.”염구준은 그들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고 옆에서 가만히 구경하면서 혼자 중얼거렸다. 황계웅이 죽었으니 그의 목적도 이루어진 셈이었다.어려운 싸움이 될 줄 알았으나 중간에 변수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서 그의 생각보다 피비린내 나는 싸움은 아니었다.이번 싸움에서 네 명의 반보천인들 중 둘은 도망쳤고, 한 명은 죽었으며, 나머지 한 명은 중상을 입었다.“염 선생님, 정말 감사드립니다.”우호법은 옷이 피로 물들 때까지 분풀이를 다 한 뒤, 염구준의 앞에 무릎 꿇었다.오늘 만일 염구준이 찾아오지 않았다면 복수는 꿈도 못 꿨을 것이다.“고맙단 말은 필요 없어. 나도 널 위해서 온 건 아니니까. 게다가 우리 사이의 일은 다 끝나지 않았어.”염구준은 이 일을 그냥 이대로 끝낼 생각이 없어 진기를 거두지 않고 우호법을 바라보았다. 상대방이 황계웅을 죽이고, 두 사람 모두 같은 적이 있다지만, 같은 길의 사람이 아니었기에 방심할 수는 없었다. 방금 전만 해도 우호법은 염구준을 망설임 없이 공격했었다.염구준이 조금만 약했더라면, 넷이 합심한 그 공격에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네, 저도 제가 악행을 많이 저질렀다는 거 압니다. 이때까지 복수를 하기 위해 황계웅의 믿음이 필요해 별의별 짓을 다 했으니까요.”“이제는 끝내야죠.”우호법의 얼굴엔 마치 해방된 듯한 미소가 떠올랐다.그는 말을 마친 후, 단검을 거꾸로 쥐고 자신의 심장을 향해 찔렀다.복수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에게 원한을 다 갚은 이후의 삶은 의미도, 희망도 없는 법이었다.이로써 이 싸움은 다 끝났으나 전장에는 적지 않은 시체들이 쌓여있었다.황계웅이 내걸었던 현상금인 황금으로 쌓은 거대한 금산만이 한쪽에서 빛을 받아 찬란하게 반짝였다.오늘 밤에 일어난 일은 저와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것처럼 고귀한 자태를 뽐내면서 말이다.염구준은 검을 땅에 꽂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숨을 고르기 시작했다.이번 싸움에서 이기긴 했지만 그 또한 멀쩡한 상태는 아니었다.황계웅이 비열하게 수백 명의
“나한텐 뭐라 해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주지 마.”아타의 말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비록 그는 늙어서 성과를 이룰 희망도 없었고, 가문도 밋밋해서 높은 신분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지만 이 바라해에서의 명망만큼은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하지만 텍서는 이미 인내심이 바닥이 나 아타를 협박하기 시작했다. “닥쳐, 늙은이. 더 떠들면 당신도 같이 죽여버릴 거니까!”“텍서, 태도가 그게 뭐야?”이때, 보다 못한 또 다른 반보천인이 나서서 그를 강하게 꾸짖으며 기운을 풀기 시작했다. 언뜻 보기엔, 정말 싸움이라도 벌일 기세였다.“흥, 너희 마음대로 해. 하지만 내 앞길은 막지 마.”상대방의 제지에 텍서는 더 이상 싸우지 않고 대신 높은 목소리로 주변 사람들을 향해 외쳤다.“부자 되고 싶은 놈들만 따라와!”그 말에 약 열 명 가량이 텍서의 편에 섰고, 나머지는 아타의 말을 듣고 얌전히 대기했다.그들 눈엔 염구준이 이미 중상을 입었기에 대충 아무렇게나 공격을 해도 죽을 것 같아 보였다.텍서는 단검을 들고 염구준의 앞으로 걸어가 방금 전에 깎인 체면을 되찾기 위해 상대방을 비웃기 시작했다. “아까는 잘난 척했잖아? 일어나 보시지?”말을 함과 동시에 텍서는 날카로운 단검을 염구준의 머리 위에 내리꽂으려고 했다.강한 반보천인을 직접 죽였다는 이야기는 그가 남은 인생동안 허세를 부리기에 충분했다.우웅.그러나 갑자기, 검명이 울리더니, 염구준이 눈을 번쩍 뜨고는 순식간에 검을 움켜쥐고 위로 휘둘렀다.이 일격은 번개처럼 빠르고, 갑작스러웠다.곧 텍서의 팔은 어깨에서부터 잘려서 허공에서 높은 포물선을 그리며 바닥에 떨어졌다.“끄아아악!!!”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한 텍서는 급히 혈자리를 눌러 출혈을 막으며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그는 겉으로 보기엔 무력해 보이는 사람이 이런 검술을 펼칠 줄은 상상도 못 했다.자만한 것이다.염구준은 천천히 일어서며 검을 텍서에게 겨누었다.“금이 탐났다면 그냥 가져가면 되지, 왜 굳이 죽으
“염 선생님, 오해 마십시오. 저희는 악의가 없습니다!”“텍서는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죽은 것이니, 선생님 탓이 아닙니다.”아타는 다급히 휠체어를 밀며 앞으로 나와 더 깊은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서둘러 설명했다.이렇게 강한 반보천인을 건드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다.“그 말 진짜인 게 좋을 겁니다. 괜히 또 오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마시고요.”염구준은 검을 거두고 검집을 등에 매고는 아무 미련도 없이 비휴산장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산처럼 쌓인 황금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이다.그 앞에 서 있던 10대 세력 대표자들은 염구준이 나오는 걸 보고 재빨리 양옆으로 길을 비켰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 공포감이 어려있었다. 염구준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그들의 탐욕스러운 본성이 드러났다.“아타 장로, 저 금산은 어떻게 나눌 겁니까?”‘나눈다고?’이 말을 듣자마자 아타의 흐려있던 눈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는 위엄 있게 말했다. “저 금산은 염 선생님의 전리품이야. 죽기 싫으면 아무도 손 대지 마.”“나는 저 금산을 현금으로 환전한 뒤, 전부 염 선생님께 전달할 거야.”바로 눈앞에 놓여있는 금산을 가지지 못한다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얼굴이 굳어졌다.바로 이때, 유일하게 남은 반보천인이 아타를 지지하며 나섰다.“저도 아타 장로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사람이 너무 탐욕스러우면 화를 부르는 법이죠.”...그의 지지에 분위기는 단번에 가라앉았다. 텍서가 죽은 지금,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염구준은 손씨 그룹의 지사로 돌아가 모든 직원들에게 잠시 나오지 말라고 한 뒤, 손가을에게 후속 인력을 보내도록 했다.제임스의 배신 때문에 이곳의 직원들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서 전면적으로 조사할 생각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통화를 하며 그는 아내와 긴 대화를 나누었고, 다음 날이면 집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알렸다.남편이 무사하다는 말에 손가을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의 돈벌이 수단일 뿐입니다. 저도 이름만 장로지, 그들이 기르는 개에 불과하고요.”아타의 고백을 듣다 못한 그레이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아버지!”염구준은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가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됐고, 요점만 말하세요.”이에 아타는 굳건한 눈빛으로 간절히 부탁했다.“염 선생님, 저희가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제발 스텔라성을 없애 주세요.”“만일 그들이 사람답지 않게 굴고 당신들을 억압했다면 소탕 당해도 쌉니다.”염구준은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모호하게 말했지만 아타의 부탁이 무리하다고는 느끼지 않았다.염구준의 대답에 아타와 그레이는 기뻐하며 고개를 숙였다.“정의를 위해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염 선생님.”그러나 염구준은 손을 저으며 덤덤하게 말했다.“하지만 그건 당신들의 일입니다. 저와는 상관없죠.”이곳은 국외이기 때문에 이 땅의 정의가 어떻든, 그가 나설 이유는 없었다.“당신...”그레이는 조롱당한 것만 같아 화가 치밀어서 반박하려 했으나 아타는 그를 제지하며 허탈하게 말했다.“그만 가자. 도와주든 안 도와주든 그건 부탁을 받은 이의 자유니까.”“폐를 끼쳤습니다.”“어젯밤 당신과 싸우던 중 도망친 루카와 슈카 형제도 스텔라성에서 온 사람들입니다.”아타는 마지막 정보를 남긴 뒤, 조용히 인사하고 휠체어를 밀며 나갔다.염구준의 힘을 빌리고 싶긴 했지만, 죽어라 매달리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염구준은 식탁 위의 은행카드를 흘끗 보고는 빚지는 게 싫어 약속을 건넸다.“만약 박해를 받게 되면, 청해시로 오세요. 지켜드릴 테니까요.”작은 도움으로 이런 약속을 얻었으니 이건 나쁘지 않은 장사였다.“감사합니다.”그러나 아타의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어차피 죽어가는 몸이라 지키고 싶은 게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황계웅이 죽었으니 이제 모든 일이 끝난 셈이었다.염구준이 짐을 챙기고 지사 업무를 마무리하자 어느덧 오후가 되어버렸
“기회를 줬는데도 굳이 죽으려고 드는 이유가 뭐야?”염구준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본래는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멍청한 놈들이 덤비고 드니 안 싸우고 끝낼 수가 없었다.휙.그는 빠르게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반보천인을 무시하고 그레이를 공격하려는 전신위 사람들에게 달려갔다.이렇게 허접한 계략으로 그를 상대하겠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빠르다니!’염구준의 모습을 본 우두머리는 경악했다. 조금 전까지 막고 있겠다고 했지만, 상대방의 속도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데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계획 취소한다! 빨리 피해!”그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경고하는 것 뿐이었다.“합심 방어해!”전신위 경지의 사람들은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정면으로 맞붙기 위해 힘을 합쳤으나 속으로는 이미 절망에 빠졌다.“칠상권종극오의, 칠권합일!”쾅!염구준은 처음부터 최강의 권법으로 그들의 합동 방어를 뚫고, 전부 죽였다.이곳에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당신, 제 뒤에 어떤 세력이 있는지 알고는 있습니까?”우두머리는 더 이상 무력으로 붙을 담력이 없어 말싸움을 하기를 선택했다.“흥, 내가 알 필요가 있나? 누구 뒤에는 세력이 없는 것처럼 구네.”염구준은 이런 협박성 발언에 이미 면역이 된 상태였다. 약한 놈일수록 늘 뒤에 누가 있다는 말을 꺼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우두머리는 포기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저는 스텔라성에서 왔습니다. 이 작은 바라해는 물론, 근방의 열 개가 넘는 해역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죠.”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해도, 염구준은 계속 짜증을 내며 그의 말을 끊었다.“꺼질 거야 말 거야?”“당신, 이건...”우웅.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염구준이 오른손으로 검결을 만들어 짙은 살기가 담긴 검기를 날렸다.‘떠드는 시간이면 이미 싸움 한판을 끝냈겠다.’염구준이 속으로 생각했다.쿵!우두머리는 전력을 다해 방어하며 반동력을 이용해 밖으로 나간 뒤, 허겁지겁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자신을 속이는 행위였다.한편, 바라해, 아타의 고성.평소 가족들이 휴식하며 웃음이 넘치던 고성의 정원이 오늘은 지옥이었다.아타의 가족 전원이 결박당한 채 정원 한가운데 내던져졌다.“영감, 황계웅의 물건 내놔. 우리도 영감한테 이러고 싶지 않으니까.”루카는 벽에 기대앉아, 칼끝으로 손톱을 다듬으며 태연하게 요구했다.그러나 아타는 고개를 저으며, 난처한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물건 말입니까? 전 모르는데요.”그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했으나 괜한 오해를 살까봐 언급하지 않았다.물건이 그의 손에 없다는 걸 설명할 길이 없었다.“옥패지. 더 설명이 필요해?”루카는 침착하면서도 느긋하게 말했다.이에 아타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연기하며 말했다.“옥패라면, 여기 제 목에 걸려 있지요.”루카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 임무가 생각외로 너무 순조롭게 풀렸기 때문이다.“하하, 그래, 이럼 좋잖아. 시간도 아끼고, 응?”하지만 옥패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웃음은 얼어붙었고, 곧 분노가 대신했다.아타는 따라 웃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대대로 내려온 얼음빛 자수정 옥입니다. 루카 님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그냥 가져가셔도 됩니다.”옥의 품질은 뛰어났다. 이 정도 크기라면 값도 꽤 나갈 게 분명했다.하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하하...”루카는 상대방을 보며 웃었지만, 그 웃음은 너무 싸늘하고, 음산했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해지게 만들었다. 푸욱!그는 웃음을 그치고 손에 든 단검을 아무렇게나 던져 옆에 있던 사람의 심장을 꿰뚫었다. “빗나가지 않아서 다행이네. 아니면 지금 죽은 게 하인이 아니라 영감 가족이었을 테니까 말이야.”이 갑작스러운 살인에 사람들은 그가 이때까지 헛소리를 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정원의 분위기는 금세 얼어붙었다.목숨이 위협을 받자 사람들은 루카 대신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냥 가지고 계신 거 주세요! 저희는
“그래 나야. 이만 꺼져도 돼.”염구준은 패배자에게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하게 대했다.지금 그는 옥패에 대한 정보만 알고 싶을 뿐, 아타와 스텔라성 사이에 끼여서 괜한 참여하기 싫었다.… 루카는 난처했다.염구준은 이기지 못하겠고 임무도 포기할 수 없었다.그레이가 도망갈 줄 알았다면 미리 아타를 데리고 가라 했을 것이다.스스슥!루카는 먼저 선공격을 하려고 비밀 무기를 연거푸 던진 후 아타를 안고 담장으로 뛰었다.윙!“그런 뜻이라면 곱게 못 보내겠네.”염구준은 뒤쫓으며 한 줄기 검기로 루카의 앞길을 막고는 아타를 놓아주도록 그의 등에 검을 휘둘렀다.도망칠 길이 없고 근거리 싸움에서 사람을 안고 있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염 선생, 멈춰. 바로 갈게.”루카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말을 바꾸었다.“늦었어.”그렇다고 사정을 봐줄 염구준이 아니었다.방금보다 더 매섭게 검을 휘둘러 상대방의 방어를 뚫었다.상대방이 겁도 없이 자신의 실력을 떠보았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루카는 최강 반보천인 무술인이지만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수십 번의 초식으로 부상을 입고 백 번의 초식 내에 생포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을.탁!그때 염구준은 손가락으로 루카의 단전을 막아 잠시 폐인으로 만들었다.“내게 무슨 짓을 했어?”이런 수법을 처음 보는 루카는 기운을 감지할 수 없게 되자 당황했다.탁!염구준은 시끄러워서 인상을 쓰며 손으로 그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구조된 아타의 일가는 기쁜 나머지 서로 부둥켜 안으며 보듬어주었다.그들은 마치 구사일생을 겪은 것 같았다.“염 선생님, 고맙습니다.”아타는 가족들을 데리고 염구준의 앞에 오더니 깍듯하게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그럼 옥패에 대해 말씀해 보세요.”염구준은 바로 용건을 말했다.그는 좋은 마음으로 아타를 구해준 것은 절대 아니었다.그레이를 슬쩍 보던 아타는 그가 폭로한 것을 알아챘다.이제 숨길 수도 없으니 옆 사람들을 물리치고 모든 것을 토로하려 했다.“고대 옥
“시끄러워.”루카는 악마 같은 염구준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하루아침에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으니 자업자득이나 마찬가지였다.염구준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너희들은 왜 아타가 옥패를 가졌다고 우기는 거지?”루카가 그를 힐끗 쳐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황계웅의 손에 옥패 하나가 있었어. 마지막에 아타 장로가 장례를 치러줬으니 당연히 갖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그 말에 아타는 당황하기 그지없었다.지금까지 큰 소동을 일으킨 것이 오직 의심 때문이라니, 옥패가 이토록 중요한 물건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황계웅이 정말 이런 옥패를 갖고 있단 말이야?”염구준은 호주머니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상대방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괜히 일을 크게 벌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옥패야!’모든 사람들의 눈이 염구준의 손에 쏠렸다.그들도 옥패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스텔라성에서도 염구준의 손에 옥패가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감히 빼앗지 못했다.전신전의 실력이 그들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염구준이 옥패를 거두며 말했다.“잘 봤으면 내 질문에 대답해.”옥패를 보여줘도 감히 빼앗을 사람은 없을 거라 자신했다.황계웅이 그의 옥패를 탐한 대가로 지금 한 줌의 유골이 된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루카는 망설이지 않고 전부 말했다.“우리는 옥패를 본 적이 없어. 황계웅이 자기한테 옥패 하나가 있다고만 말했지. 며칠 전에 스텔라성에 와서 사람을 빌려주면 나중에 자기 옥패를 주겠다고 했거든. 근데 지금 죽고 없어서 우린 옥패를 찾으러 왔을 뿐이야. 그러니까 염 선생과 적이 될 생각이 없어.”그의 말투는 점점 누그러 들면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염구준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금까지 상대방의 입에서 믿을 만한 정보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그냥 황계웅의 손에 옥패가 있다는 말만 했을 뿐, 아무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이 사람 가두고 비휴산장으로
“그건...”노신기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아무리 그래도 모든 책임을 염구준에게 떠넘길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게다가 표면적으로 보면 캐틀린 가문은 그들을 도와주러 온 셈이기 때문에 상대방은 정당한 명분이 있었다.“그 사람은 제가 폐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불만 있어요?”염구준은 천기문을 난처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나서서 말했다. 이미 책임지겠다고 말했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 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유동심연에 관한 항해 지도 때문에 캐틀린 가문과 좋은 사이를 유지할 수 없을 거라는 걸 알기에 그는 포스와 사이가 틀어져도 상관이 없었다.염구준이 불쑥 나서자 상대방이 이렇게 쿨하게 나설 줄은 몰랐던 포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그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체 저희 아들이 뭘 잘못했길래 그렇게까지 한 거죠?”전에 집사에게 염구준이 매우 강하다는 걸 들었기 때문에 그는 함부로 화를 낼 수 없었다.솔직히 말하자면, 그도 누가 그랬는지는 알지만, 염구준과 엮이고 싶지 않았기에 그저 이걸 핑계 삼아 천기문을 삼키려고 했다.“그쪽 아들이 손버릇이 안 좋더군요. 그리고 제 물건을 훔친 것도 모자라 저를 죽이겠다고 협박까지 했습니다.”“제가 당신을 대신해 교육까지 해줬는데, 싫습니까?”염구준은 간단하게 설명하며 상대방에게 다시 되물었다. 이건 포스의 체면을 깎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오만하다고?’천기문의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며 속으로 감탄했다. 포스에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봐서였다.‘남의 자식을 폐인으로 만들어 놓고, 불만있냐고 묻다니. 대단해.’그들이 생각했다.“너, 너무 오만하게 굴지마! 여긴 스텔라성의 영향권이니까!”완전히 화가 나버린 포스는 그동안의 가식은 전부 벗어던지고, 등 뒤의 거대한 권력을 앞세워 염구준을 압박하려 했다.이 지역에서, 스텔라성은 절대적인 왕이었다. 아무도 그곳을 거스를 수가 없다는 거다.그는 그의 협박이 통해서 상대방이 더 이상 끼어들지 않기를 바랐다.하지만 그는 염구준이 스텔라성 따위는
마크를 놀래킨 타이밍이 완벽했으니까 말이다.“다 선생님 덕분입니다.”노대영은 자리로 돌아가 염구준을 향해 주먹을 모아 공손히 인사했다.“그나마 눈치는 있네.”상대방이 그의 뜻을 바로 알아차리고 망설임 없이 행동한 것에 대해 염구준은 조금 만족스러웠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포스는 부들부들 떨며 이를 갈았다. 그는 염구준이 너무 얄미웠다.“가주님, 제가 진 건 다 저놈들이 계략을 써서 그런 겁니다! 제대로 따지셔야 합니다!”싸움에서 패배한 마크는 벌이라도 받을까 봐 얼른 책임을 떠넘겼다.“멍청한 놈, 이런 거에 넘어가?”포스는 이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아 분노에 찬 목소리로 꾸짖었다. 첫 싸움부터 졌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그것도 경지가 한 단계 더 낮은 적과의 싸움에서 말이다.반면, 천기문 측은 환호성을 터뜨리며 노대영이 첫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것을 축하해주었다.그와 동시에 그들은 마음 한편으로 염구준에 대한 존경심이 더욱 늘어났다. 천기문이 우세를 차지하자 노신기는 득의양양한 웃음을 지으며 나와서 상대방을 비웃었다. “포스 가주, 이번 공연에 만족하십니까?”“3판 2선승제로 계속합시다. 박아, 네가 나가.”체면을 차릴 수 없었던 포스는 인상을 쓰며 옆에 있던 미모의 여인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녀는 역시 전신 경지의 초기에 발을 디딘 수준이었다. 노신기는 규칙엔 반대하지 않고 곧바로 비슷한 수준의 상대를 내보냈다.싸움이 반쯤 진행됐을 때, 염구준이 다시 나서서 천기문의 제자를 일깨워주었다.“저쪽에서 초반에 힘을 너무 많이 썼기 때문에 시간만 끌면 이길 거야.”그가 한 조언들은 전부 제일 실용적인 전략으로, 실제 싸움에서 바로 쓸 수 있는 방식이었다.그 말을 들은 천기문의 사람들은 안정을 되찾고, 이 싸움의 승자가 누구일지 기대했다.반면 포스는 불안한 느낌이 자꾸 들어 미간을 찌푸렸다. 염구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예 느낌도 오지 않는 그와는 달리, 상대방은 자신을 너무 잘 안다는 게 그는 너무 불안했다.한편, 싸움
“다들 계속 식사하시죠!”노신기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말했다.상대가 먼저 시비 걸지 않는 이상, 굳이 먼저 얼굴 붉힐 이유는 없었다.괜히 강적을 한 명 더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말이다.반면, 포스와는 달리, 염구준은 힐끗 쳐다본 것만으로 자리에 있는 이들의 실력을 전부 파악했다.‘반보천인이 하나도 없다니. 별거 아니네.’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염 선생님, 저놈들을 그냥 쫓아낼까요?”그레이는 포스 일행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필요 없어. 별거 아닌 것들이라 위협이 되지 않으니까.”염구준은 비웃는 표정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다시 식사에 집중했다. 쪼잔한 수작질로는 아무것도 해내지 못할 게 뻔해서였다.“알겠습니다.”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염구준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도 나설 생각이 없었다. 그러나 노신기가 앉자마자 포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노문주, 천기문에 경사인 날에 빈 손으로 온 게 좀 미안하네요.”“대신 자리에 앉아 계시는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작은 공연 하나 보여줘도 되겠습니까?”이에 연회장에 있는 대부분이 그가 이제 본격적으로 일을 벌일 거라는 걸 알아차렸다.그가 말한 공연이란 게, 절대 평범할 리가 없으니까 말이다.“포스 가주의 성의, 깊이 감사드립니다.”노신기는 두 손을 모아 예를 표했다.여긴 천기문이었다. 외부인이 시비를 걸어도 가주로서 두려움에 떨며 조심스럽게 행동할 필요 없다는 거다.“여긴 제 제자 마크입니다. 무공이 제법 괜찮아요. 다만, 늘 실전하고 싶어 해서 문제입니다.”“천기문의 젊은이들도 실력이 괜찮다 들었는데, 노문주께서 제 제자가 실전 경험을 쌓도록 도울 수 있으신가요?”포스가 손짓하자, 그의 뒤에서 전신 경지의 중기에 처해있는 사람이 걸어나왔다.“노대영, 네가 나서 보도록.”노신기는 옆 테이블에 앉아있는 남자를 보며 입을 열었다. 마크와는 달리, 노대영은 겨우 전신 경지의 초기에 발을 디딘 수준이었다.상대보다 한 단계 더 낮단 말
일이 마무리되고, 몇 사람이 서재를 나서려던 찰나, 노신기가 끝내 참지 못하고 염구준에게 물었다.“염 선생님, 혹시 그 천기 폭쇄함을 어디서 얻으신 건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황계웅 겁니다.”염구준은 그냥 일반적인 전리품일 뿐이라 별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해 담담하게 말했으나 노신기는 듣고 나서 얼굴이 굳어졌다.황계웅이 조용하게 살긴 했지만 전성기에는 스텔라성과 맞설 수 있는 존재라는 걸 이 근방 사람들은 전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염씨?’“당신이 비로 황계웅을 죽인 독하기로 소문난 염씨입니까?”노신기는 말을 하며 거의 제자리에서 펄쩍 뛸 뻔 했다. 그의 얼굴엔 놀라움과 공포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이 정도 실력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우리 따위는 손쉽게 쓸어버릴 수 있을 거야.’그가 생각했다. “겨우 절정 반보천인인데요, 뭐. 별 것 아닙니다.”염구준은 이건 자랑스러워할 바가 없다고 생각했다. 경지를 뛰어넘은 싸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에 육신이 한계까지 강화된 강자도 이겼었는데, 겨우 황계웅을 이긴 게 자랑거리일 리가 없었다. 그러나 그 말을 들은 노희연은 입을 동그랗게 벌린 채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평범한 반보천인이라면 그녀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겠지만, 황계웅을 참살한 사람이라면 이제 더 이상 함부로 비웃을 수가 없었다.황계웅이라는 악마를 죽인 사람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부터 그녀는 얼굴도 모르는 그를 동경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염 선생님, 저희 딸이…!”노신기는 허둥지둥하며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사죄하려 했다.그 말투 속엔 놀라움과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하지만 염구준은 내공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됐습니다. 신경도 안 썼어요.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전이었다면 노희연은 이 말을 듣고 잘난척 한다며 비웃었을 테지만, 엄청난 업적이 있다는 걸 안 지금은 오히려 대범하고 아량이 넓은 사람처럼 느껴졌다. 잠시 후, 장치가 작동하며 서재 문이 열렸고, 네 사람은 천기문의 연회장으로 향했다.
“총 몇 장입니까?”염구준은 너덜너덜한 항해 지도를 살펴보며 결정적인 질문을 던졌다.말투로 보아, 완전한 지도가 없이는 유동심연에 도달할 수 없을 것이고 그럼 정보를 알아도 헛수고란 걸 알 수 있었다.“전부 여섯 장입니다. 저도 한 장 가지고 있으니까요.”노신기는 말하면서 품에서 한 장을 꺼내 염구준에게 내밀었다.이 낡은 항해 지도는 조상 대대로 내려온 것으로, 쓸모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가보처럼 소중히 간직해왔었다.염구준은 노신기의 손에서 지도를 건네받은 후, 두 장의 지도를 맞춰보았지만, 도무지 맞춰지지가 않았다. 즉, 지금 당장은 이 두 장 모두 쓸모없다는 거다.“하아... 나머지 네 장은요? 단서 있습니까?”염구준은 할 수 없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혹시나 쓸만한 정보가 있을까하는 바람으로 물어보았다.유동심연에 관해서는 그도 오늘 처음 들은 것이라 아무것도 짐작할 수 있는 게 없었다.노신기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옛 일을 회상하면서 입을 열었다. “있습니다. 누가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거든요. 캐틀린 가문, 레온 가문, 대어당, 그리고 안설홍이 각각 한 장씩 가지고 있습니다.”“여섯 장의 항해 지도의 출처는 같았습니다. 몇 세대 전까지만 해도 저희 여섯 세력은 동맹이었거든요. 하지만 나중엔... 후.”예전의 말을 하다가 노신기는 가슴 아픈 일이 생각나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그 동맹이 유지되었더라면, 지금처럼 스텔라성의 성장도 없었을 테고, 오늘 같은 초라한 꼴도 보지 않았을 것이다.염구준은 점점 더 의문이 커졌다.“그럼 지도가 어디 있는지 다 알면서 왜 아무도 옥패를 찾으러 가지 않은 겁니까?”옥패의 큰 유혹력이라면 그들같이 작은 세력으로는 지키지 못했을 것이 뻔했다.“갔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백 년 동안 수십 번이나 갔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고, 살아 돌아온 사람도 적었다고 해요.”“그리고 저희는 가라앉은 배에 있는 보물을 찾으러 간다고 들었습니다. 유동심연의 밑에 옥패가 있다는 걸 몰랐어요.”그들
노신기는 인사를 건넨 후 딸에게 엄숙하게 말했다.“이따가 조용히 있어. 특히 윗사람들에게 무례하게 굴면 안 돼.”이번만큼은 농담이 아니었다.그는 사랑하는 딸이 염구준에게 찍힐까 봐 걱정되었다.방금 밖에서 발생한 일들을 장로들 통해서 들었는데, 지금도 충격에서 가시지 못했다.한 줄기 검기로 반보천인을 죽인 것도 모자라 캐틀린 가문의 후계자를 폐인으로 만들다니, 두 사건 모두 상상도 못할 전적이었다.“알겠어요. 아타 할아버지, 염 아저씨.”노희연의 태도는 전보다 친절했지만 염구준을 부르는 호칭이 조금은 늙어 보였다.“가자.”염구준은 그녀와 말다툼하는 것보다 유동심연에 대해 알고 싶었다.옥패에 관련된 일이라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그렇게 네 사람은 서재에 들어왔다.책상 앞으로 다가가던 노신기가 황금 개구리의 머리를 잡더니 안으로 쑥 밀었다.끼익!그러자 바닥에서 수많은 금속이 튀어나오면서 공기도 통하지 못하게 주변을 차단하는 것이었다.다행히 방안의 전등이 켜져서 그다지 어둡지는 않았다.일분도 안 되는 사이에 서재가 밀실로 변했다.이것만 봐도 천기문은 기관술에 일가견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대단하죠? 이런 거 처음 보죠?”노희연은 집안 대대로 물려받은 기관술이 자랑스러워 뽐내고 싶었다.천기술은 노씨 가문의 자부심이었다.그때 노신기가 불쾌해하며 또 훈계했다.“한마디 더 하면 밖으로 내보낼 거야.”아버지가 화내자 노희연은 아까 맞은 뺨이 아직도 얼얼했는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염구준은 부녀의 대화가 끝난 후, 책상 위에 책을 펼치고 말하기 시작했다.“여기 정보를 보면 유동심연 밑에 옥패 하나가 있다고 해요. 가짜는 아닌 것 같은데 좌표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어요. 두 분이 여기를 알고 있다면 길을 안내해 주세요. 그럼 도의에 어긋나지 않는 일을 제외하고 무엇이든 들어 줄게요.”조건을 내세웠으니 두 사람의 답변을 기다리면 되었다.옥패에 관한 정보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그…”아타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자기 요구
염구준은 앞으로 다가가 상자 뚜껑을 열고는 안에 물건을 뒤졌다.나머지 사람들은 고개를 한쪽으로 돌렸다.어떤 물건들은 그들이 봐서는 안 되기에 괜히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왜냐면 중요한 물건일수록 아는 것이 적은 게 안전했다.염구준이 연 상자에 금은보화나 현금은 없고 누렇게 변색된 책들만 들어있었다.‘옥패는 없어.’세 번이나 뒤졌는데도 상자에는 책 외에 아무것도 없었다.왠지 황계웅 능구렁이가 옥패는 없으면서 스텔라성을 속여 저들의 옥패를 빼앗으려는 속셈인 것 같았다.그렇게 되면 옥패 4개를 갖게 되니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된다.수법은 대단했지만 실현하지 못해서 안타까울 지경이었다.이번에 책을 펼쳐보았다.‘꽁꽁 숨긴 것을 보면 폐지는 아니겠지.’염구준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이 책에서 옥패에 관한 기록이라도 기록되어 있길 바랐다.그러다 새것으로 보이는 책에 시선이 멈추었다.아타 일행은 염구준의 표정이 불쾌한 것을 보고 말없이 옆에서 기다렸다.그때 책을 뒤적거리던 염구준이 동작을 멈추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는 것이었다.“아타 장로, 노 문주님. 여기 와서 보세요.”아타와 노신기는 서로 눈을 마주친 후,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하지만 감히 책의 내용을 보지 못했다.염구준의 앞에서 못 볼 것을 봤다가 죽을까 봐 겁이 났다.“이 해역을 알고 있어요?”두 사람의 생각을 읽은 염구준은 책을 돌려서 보여주었다.“여기를 말씀하는 겁니까?”아타와 노신기는 거의 동시에 눈알이 튀어나올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종이에 쓰인 굵은 글씨체가 유난히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유동심연.’이름만 봐도 평범하지 않은 곳이었다.게다가 상자에 넣은 종이에 지역 이름만 있고 항해 지도에 아무런 표시도 없었다.“알고 계신다면 말씀해 주세요.”염구준은 강요하지 않고 다정하게 물었다.필경 그들은 협력 관계지 상사와 부하는 아니니까.그가 이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책에 옥패에 관해 언급했고 그 장소는 유동심연의 바닥이기 때문이었다.[석양이 비추고 밀
다만 천기문의 영역에서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았을 뿐, 상대방이 불복하고 한 무리가 쓸어온다면 함께 처리할 것이다.“전부 병원으로 이동해!”집사는 안간힘을 써서 일어서고는 부하들에게 분부했다.캐틀린 가문은 결국 꼬리를 내리고 떠났다.싸움이 드디어 끝났다.천기문 사람들은 마음이 후련했지만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캐틀린 가문에서 자꾸 정약결혼을 구실로 천기문을 삼키는 것은 언젠가 벌어질 일이었다.그동안 온갖 핑계를 대면서 미루었는데 이제 모든 게 끝났다.코니가 천기문에서 폐인이 되었으니 상대방에게 복수할 핑계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가장 먼저 나서서 질타한 사람은 노희연이었다.“당신, 천기문을 멸망시킬 셈이야?”코니가 가고 그녀를 압박하는 사람도 없으니 또다시 거만해지기 시작했다.“내가 하는 일에 네가 이래라저래라할 자격 없어. 만약 오늘 일로 그 가문에서 복수하러 온다면 내가 멸망시켜줄게.”염구준은 고개를 홱 돌려 그녀를 노려보며 우렁차게 말했다.그는 지금까지 충동적으로 일을 저지른 적이 없었다.매사마다 나중에 발생할 일까지 생각해서 만단의 준비를 했었다.그러니 이번도 마찬가지였다.날카로운 눈빛에 노희연은 마치 맹수가 노려보는 것 같아 등골이 오싹했다.한 바탕 화풀이하려고 했는데 전부 삼켜버리고 말았다.그녀는 제멋대로 굴어도 생각이 있고 목숨을 아낄 줄도 알았다.천기문의 사람들은 말은 하지 않았지만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구두 약속은 아무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염구준은 이 사람들에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서 믿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바로 그때 치료를 마친 그레이가 시큰둥하게 말했다.“흥. 염 선생이 당신들 도와 벨을 죽이고 천기문을 살렸는데, 그게 무슨 태도입니까?”염구준은 천기문의 도움이 필요했기에 진작에 사례금을 치른 셈이었다.다만 천기문의 사람들의 무공이 약해서 그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었다.“그레이, 그게 정말입니까?”한 장로가 엄숙하게 물었다.전에 싸울 때 염구준이 나서는 걸 보지 못했으니 어떻게 벨을
퍽! 퍽! 퍽!하지만 염구준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간격을 좁히며 일련의 공격을 퍼부었다.강력한 주먹 앞에서 허둥지둥하던 집사는 결국 허점만 드러내고 일방적으로 얻어맞았다.그 장면을 본 천기문의 일행은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지금까지 무적이라 생각했던 반보천인이 맥없이 당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반보천인을 구타할 정도면 어떤 실력일까?”“세상에,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저, 저 사람 그레이보다 더 강해. 너무 강해서 소름이 돋아.”두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그중에서 노희연은 충격을 먹었는지 안색이 창백해졌다.아무리 교만해도 자신이 어떤 인물을 건드렸는지 깨달은 모양이었다.염구준은 그녀에게 따지지 않았을 뿐, 이제야 후회가 밀려왔다.두 사람의 싸움은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집사는 여전히 무방어 상태로 염구준에게 얻어맞았다.“푸악!”결국 집사는 피를 토하며 피바다에 쓰러졌다.몇 번이나 몸부림을 치며 일어나려고 했지만 꼼짝할 수가 없었다.이번 싸움에서 한 번도 반격하지 못했지만 이미 최선을 다했다.싸움이 시작해서부터 10분도 걸리지 않고 패배했다.아무리 반보천인이라도 실력이 강한 무술인 앞에서 학대를 받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염구준은 정말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강했다.관전하던 사람들은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하고 멍하니 쳐다만 보았다.“당, 당신은 절정 반보천인입니까?”집사는 입에 피를 머금고 의심스럽게 물었다.이렇게 될 줄 알았다면 처음부터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캐틀린 가문은 공포스러운 무술인을 건드렸으니 어쩌면 큰 화를 초래할지도 모른다.염구준은 대답하지 않고 코니에게 다가갔다.“원래 따지지 않으려고 했는데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서 곱게 넘어갈 수가 없네.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퍽!그가 한 줄기 기운으로 코니를 날려버리자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아니, 안 돼. 날 죽이지 마. 난 캐틀린 가문의 도련님이란 말이야!”코니는 겨우 일어서서 마치 악마를 본 것처럼 뒷걸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