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 패거리는 회의를 끝내고 각자 치료하러 갔다.각종 치료를 받으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만약 손중석의 곁에 붙어 있는 에빈이라는 여자가 그의 아내이자 반보천인 고수라는 것을 안다면 지금보다 더 불안해할 것이다.이튿날 점심, 염구준 부부는 점심을 먹고 사무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가을아, 곧 주말인데 어디 가서 놀지 생각해 봤어?”“원재료도 확정되지 않았는데 놀러갈 기분이 아니야. 걱정돼 죽겠어. 당신이 도와줘서 다행이야.”“잘 해결될 거야. 걱정 마. 내가 있잖아.”…두 사람은 업무와 일상에 관한 자질구레한 얘기들을 하면서 긴장을 풀었다.아내의 긴장을 풀어주는데 염구준의 공이 더 컸다.최근 원재료 때문에 손가을이 극도로 스트레스를 받아 밤에 잘 때도 잠꼬대를 했었다.그때 두 사람이 급히 사무실로 들어왔다.바로 손중석과 에빈이었다.“방금 공원에서 누가 우리를 습격했어.”손중석이 들어오자마자 방금 겪었던 상황을 말했다.“괜찮아요?”손가을이 벌떡 일어서서 물었다.그녀는 팔자가 사나운 부부를 엄청 걱정하고 있었다.그러고 보니 아직 에빈이 반보천인 고수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괜찮아. 다들 애송이들이라 에빈이 다 쫓아냈어. 그런데 벌건 대낮에 사람을 습격하다니 이거 보통 일이 아니야.”손중석은 용하의 치안을 굳게 믿었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여 몹시 화가 났다.“무사하면 됐어요.”손가을은 그제야 진정이 되었다.그러다 문뜩 뭔가 떠올라 에빈을 쳐다보았다.“혹시 에빈 씨도 무술인이에요?”한 여자가 맨주먹으로 패거리를 쫓아냈다는 것은 무술인만 가능했다.“네. 예전에 조금 배웠어요.”에빈이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겸손하게 대답했다.그 모습은 전혀 반보천인 고수 같지 않았다.“그렇군요.”손가을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지었다.왠지 앞으로 에빈과 할 얘기가 많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너무 기뻤다.남편 외에 적합한 반보천인 무술인인 친구가 없어서 가끔 주작과 얘기를 나누기도 했었다.그녀의 표정과 대비되게
“가을 씨, 내가 도와줄게요.”에빈이 컴퓨터 앞에 앉으며 말했다.그녀는 경영에 대해 배우면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싶었다.그렇게 사무실에서 두 여자가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염구준은 차용증을 챙기고 용필과 함께 천맹그룹으로 향했다.청해 지사의 빌딩은 7층짜리 건물이면서 개업식 규모가 작지 않았다.천맹이라는 간판 덕분에 꽃바구니와 현수막이 거리에 쫙 걸려 있었다.최근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갑자기 부상한 그룹 때문에 용하의 사업계가 떠들썩했다.그래서 일반 중소기업은 방대한 세력을 갖춘 천맹그룹을 건드리지 못했다.오늘 지사가 개업하는 날, 적지 않은 사람들이 선물을 들고 아부하러 온 것이었다.무대 위에 조훈 패거리가 헐렁한 정장으로 붕대를 감추고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이런 몰골로 개업 행사에 참가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미 정해진 날짜를 바꿀 수도 없었다.“빨리 시작하세요. 12시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요.”조훈이 짜증을 부리며 사회자를 독촉했다.사회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가운데로 가더니 개업식을 주최하기 시작했다.“오늘…”그런데 무대 아래에서 조훈의 이름을 언급하며 소란을 피우는 일행이 나타났다.“조훈, 이 나쁜 새끼야. 돈도 갚지 못했으면서 회사를 차렸어?”“퉷! 겉만 반지르르하고 인피가면을 쓴 짐승 같은 새끼. 우리를 속였어?”…빚을 독촉하러 온 일행의 깔끔한 차림새를 보아 다들 사업하는 사람들 같았다.개업식에서 이런 구경거리를 하게 된 주변 사람들은 흥미진진했다.“저 사람을 쫓아내세요!”조훈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일어나서 주먹을 날릴 뻔했지만 보는 사람들이 많아 꾹 참았다.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였는데 이런 일까지 발생해서 뚜껑이 열릴 지경이었다.지시를 받은 경호원은 고무 막대기를 들고 소란을 피운 채권자들을 폭행하기 시작했다.돈이 없어도 주먹만 살아 있다면 무엇도 두렵지 않았다.촤아악!그가 뻔뻔한 면상을 쳐들고 기고만장해 있을 때 갑자기 뺨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염구준이 나타난 것이었다.“조 사장, 너
자고로 하나의 산에 호랑이 두 마리를 용납하지 않는다고 했다.그러니 손씨 그룹이라는 막강한 세력이 있는 한 천맹그룹과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조훈은 아직도 무대 위에 앉아 다른 사람들의 인사도 받을 겨를이 없이 억지로 웃었다.“제가 음식들 다 준비했어요. 이따가 직원들이 안내할 거예요. 난 몸이 불편해서 이만 갈게요.”그는 옆에 있는 직원들을 쳐다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뭐 하고 있어? 빨리 휠체어 밀라고.”염구준이든 채권자들이든 한 시도 같이 있고 싶지 않았다.그러니 빨리 도망치는 것이 상책이었다.“잠깐만.”그때 염구준의 말에 현장이 조용해지고 모든 사람들이 그를 쳐다보았다.‘손씨 그룹에서 텃세를 부리기 시작하네.’다들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지만 절반만 맞췄다.염구준이 정말 텃세를 부린다면 적처럼 대하지 않을 것이다.어차피 조훈은 바지사장이라 손씨 그룹의 상업적 지위에 위협이 되지 못하지만 행동이 자꾸 선을 넘어서 눈에 거슬렸다.“염… 선생님?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조훈은 이를 악물며 물었다.“내 돈을 받으러 왔어.”염구준은 차용증의 첫 페이지에 쓰인 금액을 보여줬다.“천억!”눈썰미가 좋은 사장들은 천문학적인 숫자를 보고 경악했다.그리고 경사스러운 날을 골라서 찾아왔다는 것은 전혀 살길을 주지 않겠다는 뜻이란 것도 알고 있었다.“염구준 씨, 그건 당신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작성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줄 수 없어요.”조훈은 딱 잡아떼며 본성을 드러냈다.억지를 부리는 데는 정말 일가견이 있었다.지금 상황은 염구준이 예상했던 것과 똑같았다.솔직히 애초부터 조훈에게서 돈을 받을 생각은 없었다.그런데 염구준이 따지기 전에 채권자들이 뛰쳐나와 조훈에게 욕설을 퍼부었다.“헛소리하지 마. 돈을 빌리고 갚지도 않으면서 누가 협박했다는 거야?”“우리 피 같은 돈을 돌려줘. 직원들이 월급을 기다리고 있단 말이야!”“억지 부리지 마! 그러다 너 벼락에 맞아 죽을 거야!”그들은 말할수록 점점 더 격분했다.앞에
“무식하긴, 저렇게 깔려 있는데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감당하지 못해.”조훈은 자신의 작전이 신의 한수라 여기면서 이미 이긴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다.이 작전은 원래 용필에게 사용하려 했는데 먼저 염구준에게 사용하고 말았다.그가 스스로 감탄하고 있을 때 갑자기 변고가 일어났다.쿵!폭발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염구준을 짓누르던 경호원들이 사방으로 튕기며 주변 시설에 부딪치고 말았다.솔직히 이 사람들로 염구준을 짓누르기는 어림도 없었다.만약 그가 기운을 사용했다면 경호원들은 진작에 피투성이가 되었을 것이다.“뭐야? 무술인이었어?”조훈의 웃던 얼굴은 흉할 정도로 일그러졌다.그제야 어떤 사람을 상대하고 있고 왜 자신에게 맞서서 싸우지 않고 무시했는지 납득이 갔다.애초부터 염구준에 대해 확실히 조사하지 않은 것과 대표가 한마디 언급하지 않은 것이 몹시 원망스러웠다.“저런 놈은 끝까지 생떼를 부릴 거예요. 당장 잡아요.”염구준은 구경하고 있는 용필에게 주의를 주었다.“알았어.”용필은 정신을 가다듬고 앞으로 다가가 조훈을 덥석 잡았다.촤아악!가까이 다가갔을 때 용필은 또 다정하게 뺨을 갈겼다.“아주 그냥 매를 벌어라. 왜 그렇게 못 됐어?”조훈은 머릿속이 윙윙거리고 전에 다친 상처가 재발하여 너무 괴로웠다.이틀 사이에 뺨을 몇 대나 맞았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근육… 형님, 우리 좋게 말로 해결합시다. 우리 다 문명인이라 폭력은 쓰지 맙시다.”조훈은 꼼짝없이 또 맞게 되니 패배를 인정했다.촤아악!그런데 말을 하자마자 또 용필이 뺨을 날리며 꾸짖었다.“형님은 무슨, 친한 척하지 마. 난 너 같은 동생은 없어!”용필처럼 정직한 사람 앞에서 헛소리를 지껄여도 통하지 않았다.그 장면을 본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천맹그룹의 청해 지사 개업식에서 100명 가까이 되는 경호원들이 두 사람에게 전부 당하고 말았다.왠지 손씨 그룹이라는 존재가 무섭기도 하고 탄복하기도 했다.염구준이 입꼬리를 올리면서 앞으로 다가갔다.“꼴을 보니까 갚을 돈
조훈은 또다시 충격을 먹었다.“이거 거짓말이야.”대표가 지원한 비장의 카드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실력을 가졌음에도 염구준을 제거하지 못했다.“반보천인이야!”무술인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그는 철벽에 부딪친 것을 알고 속으로 임무를 맡긴 사람을 원망했다.임무를 받았을 때 아무도 상대방이 반보천인 고수라는 것을 일깨워주지 않았다.‘도망치자!’그는 싸울 의지를 상실하고 재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이미 늦었다.쿵!염구준이 강력한 기운을 폭발하더니 상대방의 체내에 에너지를 주입시켜 기절시켰다.그의 앞에서 습격하고 도망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었다.“아직 또 뭐가 남았어? 기회를 줄 때 다 써먹어.”염구준은 도발적인 말로 조훈을 조롱했다.“에휴.”조훈은 김빠진 공처럼 한숨을 푹 쉬었다.이제는 더 이상 돌이킬 방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때 염구준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시작하세요.”그가 미리 연락한 검사와 청해상회 담당자가 앞으로 다가왔다.“조훈 씨는 수백 개 기업에게 빚을 졌으니 모든 산업을 압류합니다.”법원 검사의 지시가 떨어지자 한 무리가 우르르 건물로 들어가 압류 스티커를 붙이고 관련 서류를 몰수했다.그리고 청해상회 담당자로 일행을 거느리고 한마디 했다.“이 산업들은 매각한 후 전부 손씨 그룹에 배상할 겁니다.”하지만 천맹그룹의 청해 지사 산업은 천억 가치가 되지 않았다.그때 염구준이 두 사람에게 새로운 방안을 내세웠다.“저희 돈은 급하지 않습니다. 산업을 매각한 돈으로 다른 채권자들에게 먼저 갚아주세요.”수백 개 기업에 빚을 졌으니 해당 기업과 직원들은 생활고에 시달릴 것이다.염구준의 말에 채권자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돈을 드디어 받았어.”“하늘이 무심하지 않군요. 의인이 나서서 정의를 구현했습니다.”“흑흑, 몇 년 만에 받는 돈이야.”그동안 빚을 독촉하면서 온갖 고초를 겪었으니 오늘 의인에게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했다.“다들 일어나세요.”솔직히 염구준은 이렇게 무릎
한 시간 뒤, 손씨 그룹의 경호원들이 대형 버스에 조훈 패거리를 태우고 청해밖으로 보냈다.천맹그룹에서 그들에게 어떤 처벌을 내릴지는 손씨 그룹에서 알 바가 아니었다.그 외에도 염구준은 부하들에게 조훈의 행방을 주시하라고 지시했다.오늘 청해에서 발생한 일은 상업계에 큰 타격을 주었다.천맹그룹이 강세로 청해에 지사를 차리려 했지만 발도 붙이지 못하고 손씨 그룹에 의해 쫓겨났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그러든 말든 염구준은 차용증을 챙기고 현장을 떠났다.청해 지사는 무너졌지만 천맹그룹은 아직 살아 있기 때문이었다.“구준 씨, 당신이 조훈을 청해에서 쫓아냈어? 방금 사장님들이 전화가 왔었어.”천맹과 손씨는 이미 적대 관계가 되어서 눈엣가시인 조훈이 사라졌으니 그녀도 마음이 편한 것은 사실이었다.그런데 염구준이 이렇게 빨리 해결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당신이 그놈들 싫어하는 거 같아서 빨리 쫓아냈어.”염구준이 헛웃음을 치며 대답했다.혹시나 아내에게 불똥이 튀지 않을까 걱정되어 혼자 해결하려고 상세한 과정은 설명하지 않았다.손가을이 애교가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역시 당신밖에 없어. 그럼 무슨 상을 줄까나?”그녀의 말속에 살짝 야한 느낌이 들어있었다.“일 끝났으면 일찍 집에 가. 주말에 아버지 보러 가자. 원재료에 관한 일은 내게 맡겨. 5일 내에 해결할게.”염구준은 장난치지 않고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솔직히 신에너지 프로젝트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고 그보다 천맹그룹이 갑자기 나타난 것이 너무 수상하게 느껴졌다.“알았어. 당신 말 들을게.”손가을은 배시시 웃을 뿐, 더는 묻지 않았다.모든 일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것이다.통화를 마친 후, 염구준은 집으로 돌아가 아내가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한편, 청해를 떠난 조훈은 천맹그룹 본부에 들렀다 몰래 해외로 빠져나갔다.염구준의 지시를 받고 뒤를 미행하던 부하들은 능력에 한계가 있어 멀리서 떠나는 조훈을 지켜보기만 했다.황폐한 산장에 도착한 조훈 패거리는 상처를 돌볼
흑풍이 회의실 가운데로 오더니 포권을 취하며 명령에 따르는 척했다.지금 남에게 얹혀살면서 도움을 받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황계웅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되물었다.“네 상처는 다 나았어?”흑풍은 잠시 황계웅의 질문에 무슨 의도가 있는지 몰라 대답하지 않았다.속이 깊은 사람 앞에서 상대방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으려면 항상 조심해야 했다.회의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황계웅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식물의 잎을 닦으면서 흑풍이 대답하길 기다렸다.“걱정해줘서 고마워. 조금만 더 요양하면 다 나을 거야.”흑풍은 애매모호하게 대답하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두 사람은 손을 잡은 것 같지만 솔직히 서로를 경계하고 있었다.“그래. 너한테 시킬 일이 있어. 용하에 가서 요양하면서 처리해.”황계웅은 걱정하는 것처럼 하면서 자신의 목적을 말했다.“용하?”그 말에 흑풍은 얼떨떨했다.용하에 그의 숙적인 염구준이 있어서 일단 잡히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게 될 것이다.“왜, 무슨 문제 있어?”그의 표정을 본 황계웅이 불쾌하게 물었다.“셋째 형의 지시인데 당연히 가야지.”흑풍은 더는 의심하지 않고 대답했다.지금 황계웅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에서 가지 않으면 경계적으로 도움을 받아 염구준을 상대할 수 없게 된다.부귀도 위험을 피하지 못한다는 말이 이런 상황을 설명하는 것 같았다.“그럼 수고해. 임무에 대한 정보는 이따가 보내 줄게.”황계웅은 그제야 만족스러운지 손동작을 멈추고 그를 쳐다보았다.초강력 반보천인을 부려먹을 수 있는데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다.흑풍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질문했다.“근데 궁금한 게 있어.”“말해. 형제 사이에 사양하지 말고 물어봐.”황계웅은 기분이 좋은지 태도가 전보다 좋아졌다.앞의 사람이 자신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다는데 계속 인상을 찌푸릴 수가 없었다.흑풍이 서슴없이 말했다.“조훈 일당은 일은 성사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계획을 망쳤는데 왜 살려줬어?”“그놈들은 무식하고 두려움이 없어. 게다가 저놈들의
아들과 며느리 식구들을 본 염진은 얼마나 기쁜지 몰랐다.이 나이가 되고 보니 다른 것들은 부질없고 가족들 모임이 기다려졌다.전에도 염구준이 몇 번이나 은퇴하고 청해에서 함께 살자고 했는데, 염진은 아직 10년, 20년 일해도 문제없다면서 염씨 가문의 산업을 지키고 있었다.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하자 염구준은 어쩔 수 없이 자주 보러 오는 수밖에 없었다.“다들 서 있지 말고 앉으세요.”그때 한설이 거실에 나오더니 염희주를 빼앗아 안으며 싱글벙글 웃었다.염구준은 그동안 친아버지를 보살핀 계모를 인정하고 있었다.“이모, 아버지 성격을 맞추느라 그동안 고생했어요.”“가족끼리 무슨 소리야. 점심은 먹었어?”한설이 다정하게 물었다.“아직이요. 공항에서 곧바로 오는 길이에요.”어차피 한 가족이니 손가을도 어려워하지 않았다.“먼저 다과라도 먹어. 내가 만들어 올게.”한설은 염희주를 안은 채로 방으로 들어갔다.온 집안에서 손녀가 하나뿐이니 아무리 큰 손녀라도 기꺼이 안아주고 싶었다.한참 후, 한설과 손가을, 진숙영이 주방에서 음식을 만들고 염희주는 조용한 곳에서 숙제를 하고 남자들끼리 거실에 앉아 얘기를 나누었다.집안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밥 먹읍시다.”얼마되지 않아 향기 좋은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졌다.가족들이 식탁에 도란도란 모여 앉아서 행복한 시간이 짧아도 즐겁게 보냈다.한창 술을 마시다가 염구준이 버티지 못하고 중도에 가버렸다.왜냐면 손태석이 거하게 마신 것을 보고 자칫하다 또 자신과 형제를 맺자고 할까 봐 미리 피한 것이었다.방에 돌아와 보니, 생모가 생전에 꾸며줬던 인테리어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다.염구준은 기운으로 알코올을 삭이지 않고 취기를 즐겼다.“적당히 마셔. 또 많이 마시면 그땐 상관하지 않을 거야.”그때 손가을이 입으로만 경고를 주면서 따뜻한 차 한 잔을 건넸다.오늘따라 창밖에서 비추는 달빛이 밝고 별들이 반짝거리는 것이 염씨 저택에 은빛 옷을 덮어놓은 것 같았다.그날 저녁, 염구준은 아주 편한 밤을 보냈
오랫동안 남북을 뒤져서 겨우 친엄마를 찾았는데, 같이 산지 2년도 안 되어 다시 생이별을 해야 하니 슬프지 않을 수가 없었다.180센치가 넘는 건장한 남성인 장대선도 이 소식을 듣고 결국 눈물을 흘렸다.소식을 들은 염진 역시 얼굴이 빠르게 굳어졌다. 장천수에게 진 빚이 있기 때문에 그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을 돕고 싶었다.“구준아, 너 신의 이제마 씨랑 친하잖니. 도와달라고 하면 안 될까?”염구준과 이제마의 친분이라면 한마디면 되는 일이었지만, 그는 망설였다. 염진은 아들의 속내를 알아차리고는 당시의 일을 얘기해주기 위해 아들을 한쪽으로 불러냈다.아들이 자기와 성격이 똑같기 때문에 강제로 명령해서는 아무 소용도 없다는 걸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상대방을 설득할 제일 좋은 방법은 전부 털어놓고 혼자 생각하게 하는 거라는 것도 말이다. 시간이 긴박하기 때문에 염진은 길게 이야기 하지 않고 당시 장천수와 있었던 일만 짧게 설명해주었다.염구준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조금 놀라더니 바로 승낙했다. “천수 아저씨를 봐서 이제마 씨한테 도와달라고 할게.”빚을 계속 지고 있어선 안 되었다.“고마워, 형!”장씨 삼형제는 어머니를 구할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 계속 감사인사를 했다.“됐어. 별일 없으면 난 먼저 들어가서 쉴게.”염구준이 방으로 돌아갈 때쯤, 하늘은 희미하게 밝아오고 있었다.아침 여섯시라 잠시 누웠다가 곧 다시 일어나야 했지만 그래도 이불 속을 따끈따끈하게 덥히고 있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라고 염구준은 생각했다. 휴식을 취한 후, 염구준은 직접 블렌과 백리를 심문했으나 유용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영의 존재조차도 모르고 있는 그들이 배후에 누가 있는지 알 가능성은 더욱 없었다. 결국 현상금 사냥꾼인 두 사람은 여러 인명 사건에 연루되어 전신전으로 넘겨졌고, 조사 끝에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되었다.한편, 장씨 삼형제는 병원에 도착한 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어머니의 곁을 지켰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마가 타이밍 좋
북방 변경의 한적한 별장.서재에서 누군가 벽에 걸린 초상화를 멍하니 응시하다 갑자기 손길을 뻗어 갈기갈기 찢어버렸다.초상화에 그려진 건 다름아닌 염구준이었다.이정도로 그를 증오하는 건 오직 흑풍존주밖에 없었다.“존주님, 보고드릴 게 있습니다.”꽉 닫힌 문 밖에서 힘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해.”흑풍존주는 문을 열지 않고 제자리에 서서 차갑게 대답했다. 상대방이 대충 뭘 보고하려는 건지 감이 왔기 때문에 그는 상대방을 방에 들여 자세하게 말할 생각이 없었다.“작전이 실패했습니다. 영은 죽었고 의뢰를 맡긴 블렌은 잡혔어요.”문 밖의 사람은 계속 말을 이어갔으나 혹여나 흑풍존주가 화를 내기라도 할까 봐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영은 황계웅이 만들어낸 암, 영, 쌍, 생 4대 고수 중의 한 명으로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네 명이 손을 잡고 싸워 초입 반보천인의 강자도 죽여본 적이 있으니까 말이다.“알았다. 가봐.”그러나 흑풍존주는 아무일도 없는 것처럼 담담하게 대답했다. “네!”보고를 한 사람은 그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차마 더 묻지 못하고 눈치있게 자리를 비켰다.한편, 서재 안.작전이 실패했다는 걸 알게 된 흑풍존주는 별로 실망하지 않고 자리에 돌아가 와인 한 병을 땄다.이때까지 너무 많이 실패한 탓에 익숙해졌기 때문이었다. 이번 작전을 계획할 때부터 그는 성공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았었지만 그럼에도 실행한 건 황계웅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그는 언제나 염구준을 상대하는 데 진심이었다.“이번에는 마주치지 말자, 염구준.”흑풍존주는 아무도 없는 창밖을 향해 잔을 들어올리며 중얼거렸다. 같은 시각에 염구준은 이미 염씨 가문의 저택에 도착한 상태였다. 염구준은 한밤의 습격 사태가 누군가 염진을 노리고 벌인 거라는 걸 알았으나 단서가 부족한 탓에 흑풍존주가 범인이라는 건 눈치채지 못했다. 염씨 가문 저택의 앞에 있는 빈 공터에 장씨 가문의 삼형제는 무릎을 꿇고 앉아 머리를 숙이고 어제밤에 벌인 일에 대해 사과했다.그
그는 조금 전에 방에 들어가 아내에게 늦을 것 같다고 말을 한 뒤, 그들의 뒤를 따라왔었다.부자지간에 말다툼 하는 게 얼마나 정상인가. 겨우 이런 일로 서로 신경을 쓰지 않을 리가 없었다. “구준아, 너...”방금 전에 자신이 말을 좀 심하게 했다는 생각에 염진은 미안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염구준은 신경 쓰지 않고 대충 손을 저었다. “다른 건 이따 돌아가서 말해요. 전 일단 저 녀석부터 처리할게요.”“그래. 이번엔 네 말 들을게.”조금 전에 함부로 말을 한 것에 사죄하기 위해 염진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는 아들에게 미안하단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염구준은 한 걸음씩 내딛으면서 마음껏 기운을 풀며 엄숙한 목소리로 물었다.“만능 전당포에 현상금을 건 것도 너지? 양동작전을 하려 했던 거겠지.”염구준은 한마디로 상대방의 계획을 간추렸다.장씨 가문의 삼형제와 블렌, 그리고 백리가 거의 동시에 덤벼든 게 우연일 리가 없었다.유일하게 합리한 추리는 영이 이 모든 걸 계획했다는 거였다. 일이 들통나지 않기 위해 그는 모두를 각자 다른 방법으로 모은 것이었다.“그래, 맞아.”“하지만 날 놓아주는 게 좋을 거야. 내 뒤에 있는 세력이 좀 크거든. 너 따위는 건드리지도 못할 만큼.”영은 자신의 실력으로는 상대방을 이기지 못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허세를 부려 상대방이 놀라서 물러나게 하려고 했다.하지만 이건 모두 염구준을 잘 알지 못해 그런 거였다. 만약 알았다면 이렇게 함부로 행동할 수 없을 테니까 말이다. “오?”“어디 세력인데? 리아성전? 천맹그룹? 아님 흑풍조직?”염구준은 상대방의 협박을 무시하고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이렇게 큰 세력들도 신경 쓰지 않는 그가 영의 배후에 있는 세력을 신경 쓸 리가 없었다.“뭐해? 죽여!”영은 옆으로 빠르게 이동하며 두 명의 부하에게 명령했다. 그는 아직도 자신이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영의 명령에 두 부하는 자신이 적수가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목숨을 걸고 염구준을
“죽든지, 말든지.”염구준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 평소 같으면 수십 명은 죽여버렸을 테지만, 아버지 앞에서는 속으로만 삭여야 했다. 염진이 떠난 후, 그는 심문할 마음이 사라져 아랫사람에게 블렌과 백리를 데려가라고 명령하고 혼자 조용히 밀실 밖으로 나섰다. 염구준은 밖을 밝게 비추는 달빛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한편, 북룡강 변두리.강물이 세차게 몰아치며 물보라가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염진은 장씨 가문의 삼형제와 차로 한 시간을 달려서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북룡강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강변에 서 있는 검은 그림자를 발견했다. 모습을 보아하니 상대방은 꽤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영, 우리 어머니는 어디 계시지?”상대방을 보자마자 장대선은 재빨리 걸어가 물었고 자리에 남겨진 둘째와 셋째는 염진의 옆에 서서 주변을 경계했다. 오기 전에 그들은 어머니만 만나면 바로 염씨 가문의 저택으로 돌아가기로 협상을 했었었다.“염구준은 같이 안 왔지?”조금 전에 염구준이 북방의 염씨 가문의 저택에 머물러 있다는 소식을 들은 영은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 염구준이 너무 강해서 무서워하는 것도 있었지만, 만능 전당포에서 의뢰한 강자가 연락이 끊긴 상황에 미끼들이 정말 염진을 데리고 왔으니 무서워하는 거였다.“아니, 부자끼리 한 번 싸워서 안 따라올 거야.”“좋네. 데리고 와.”장대선이 사실대로 말하자 영은 만족스럽게 옆에 있는 승합차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분부했다.이윽고 차에서 두 사람이 내리며 어깨에 둘러업고 있던 포대를 쓰레기 버리듯이 멋대로 내팽개쳤다.“어머니!”장대선이 소리 지르며 달려가 포대를 풀자 안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의식불명인 상태로 옅게 숨을 쉬고 있었다.“어머니를 완치시켜준다 했잖아?”장삼우가 분노하며 외쳤다. “하하. 바보야? 도구 따위를 내가 왜 치료해줘야 해?”“오늘은 기분이 좋으니까 알려줄게. 이 아줌마 이미 병이 심각해져서 이제 치료 못해.”영은 그들
“찾아서 다행이야. 너희들과 함께 가마.”염진은 삼형제를 위해 기뻐하며, 오래전 진 목숨빚을 갚을 각오를 다졌다.“전 반대에요.”이때, 오랫동안 침묵하던 염구준이 입을 열었다.염구준의 반대로 인해 방 안은 묵직한 적막에 휩싸였다. 염진이 절반정도 양아버지가 된다지만, 피는 물보다 진한 법이기에 장씨 가문의 삼형제는 매우 난처해했다.전엔 어머니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너무 정신이 팔린 나머지 염진이 위험에 처할 거란 생각을 못했지만, 지금은 그들도 반보천인이 뒤를 쫓고 있는 일이 단순하게 만나는 것 뿐일 리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염진의 한 마디가 적막을 깨뜨렸다. “괜찮아. 애들이 한 번 만나기만 하면 된다고 했잖니.”“앞으로 가문 좀 부탁한다. 그리고 가는 김에 한설이도 청해시에 데려가 살아.”이 말은 흡사 유언을 남기는 것처럼 들렸다. “아버지, 왜 이런 말을 하세요. 안 가시면 되잖아요.”아버지가 너무 나쁘게 생각한다고 생각한 염구준이 상대방을 말리기 시작했다. 염진이 한 번도 말하지 않은 탓에 그는 염진과 장천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알지 못했다.“아니, 가야만 해. 이래야 천수 형에게도 할 말이 있지.” 염진의 단호한 태도에, 염구준은 상대방이 말려도 듣지 않고 어떻게든 가고야 말 것이라는 걸 눈치챘다.‘하여간 고집불통이라니까.’염구준은 자신의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기 때문에 합리적인 방안을 제시했다. “제가 대신 갈게요. 할 말 있으시면 얼마든지 하세요.”장씨 가문의 형제들의 납치 시도에 그는 매우 화가 났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을 죽이지 않은 건 옛 정을 생각해서였다. 즉, 이제 도움 따위는 줄 생각도 없다는 거다.“안 돼. 내가 직접 가야만 해.”그러나 염진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수 십 년동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어마어마한 은혜를 그는 오늘 반드시 직접 갚을 생각이었다. “왜 이렇게 고집 부리세요? 제 말 한 번만이라도 들으시면 안 돼요? 잘 처리해드리겠다니까요.”염구준은 염진이 아버지이기 때문에 대
우웅.백리는 내뿜던 기운이 갑자기 강해지더니 순식간에 반보초인의 초입 실력에 도달했다.블렌의 기운도 강해지긴 했으나, 여전히 최상급 반보천인의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재밌네.”염구준은 그들의 전투 진형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나중에 아내와 함께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나중에 가을이가 조금 더 강해진다면 합동 공격을 할 수 있을 수도.’“죽어라!!”블렌이 포효하며 엄청난 살기를 내뿜으면서 백리와 동시에 염구준에게 돌진했다.그는 염구준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두 명의 반보천인을 상대로는 버티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다.쾅!!그러나 염구준은 제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그들의 합동 공격을 가볍게 받아내었다.최상급 반보천인도 되지 못한 사람들은 그의 상대가 될 자격조차 없었다. 붙어도 일방적으로 얻어맞기만 할 뿐이었다.“이렇게 강한 진형을 너희 같은 녀석들이 쓰는게 아까워.”염구준은 말을 마치고 갑자기 대량의 기운을 내뿜어 두 사람을 밀쳐낸 뒤, 빠르게 다가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주먹을 연이어 휘둘렀다. 그의 주먹은 매 한 번 내려칠 때마다 전보다 한층 더 강력했다.콰아앙!달빛 아래에 주먹의 잔상이 번뜩였다.그렇게 얼마 지나지 않아, 연속되는 강렬한 타격 속에서, 백리와 블렌은 결국 바닥에 쓰러진 채로 꼼짝도 하지 못했다.염구준은 담담하게 걸어가 그들이 더 이상 진기를 쓸 수 없도록 단전을 봉인했다.“너... 너 정말 반보천인 맞아?”블렌은 경악하며 물었다. 수년간 여러명의 사람들을 만나왔지만 이렇게 강한 고수와 붙어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냥 괴물 그 자체잖아!’그는 생각했다.“쓸데없는 소리 말고, 어떻게 살아남을지나 생각해.”염구준은 대답하기 귀찮아 앞에 있는 저택을 가리키면서 가라고 명령했다. 새벽, 염씨 가문 저택의 비밀 밀실.방에는 염구준과 숙취에서 깨어난 염진이 앉아있었고, 그 앞에는 블렌 부부와, 장씨 가문의 삼형제가 무릎을 꿇고있었다.“너희 셋은 먼저 일어나. 꿇고 있는 거 보기 안 좋으니까.”
“죽어!”그 순간, 염구준이 도착했다.그는 아버지를 납치한 범인을 죽이기 위해 분노하며 상대방을 향해 돌진했다. “백리야, 조심해! 어서 피해!”이를 본 블렌은 초조해하며 급히 소리쳤다.그조차도 염구준을 막아내지 못하는데, 겨우 전신위의 경지인 백리가 버텨낼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커헉...”그러나 그녀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염구준은 그녀의 목을 꽉 쥐고 허공으로 들어올렸다.‘기운도, 속도도 미쳤어.’그녀가 생각했다.염구준은 다른 손으로 염진을 받아낸 뒤, 먼저 상대방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염진이 술에 취해 못 깨어난 것 빼고는 큰 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옆에 서 있던 경호원에게 넘겨주면서 엄숙하게 분부했다.“아버지를 집으로 모시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경계를 강화해.”아직 두 사람을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염구준은 바로 따라갈 수 없었다.오늘 밤의 사건은 수상한 점이 많았기에 그는 직접 확인하는 편이 나을 거라고 생각했다. “염구준, 당장 그 손 놔!”블렌은 걸음을 멈추고 큰 소리로 외쳤다.“지금 나한테 명령하는 거야?”이에 염구준은 되물으면서 손에 힘을 더 주며 블렌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보통 반보천인에 전신위 치고는 은신술이 조금 강하긴 했지만 그것 빼고는 특별한 게 없었다.“저 여자 대신 차라리 날 잡아. 저 여자는 내가 시켜서 억지로 한 것 뿐이니까.”블렌은 한층 누그러진 말투로 다시 입을 열었다. 태도를 보아 모든 일을 다 떠맡으려는 것 같았다. 모든 걸 책임지기 위해 그는 미친듯이 머리를 굴렸다.“도망쳐...”백리는 간신히 입을 열었지만, 얼굴이 창백해져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만약 염구준이 조금이라도 힘을 더 준다면, 자신은 그대로 목이 부러져 죽을 거라는 걸 똑똑히 알아버려서였다.그러나 염구준은 누가 그들을 보냈는지에만 관심이 있었지, 그들의 감정적인 대화에는 관심이 없었다.“누가 보냈어?”배후를 밝혀내지 않는다면, 그들을 잡는다고 해도 다른 이들이
달빛 아래, 두 명의 은백색 장포를 걸친 사람들이 사람을 둘러업은 채로 주변의 환경과 하나가 되어 빠르게 이동했다. “염구준이 그렇게 까다롭다고 하더니, 의외로 쉽잖아?”“집 안에서 움직였는데도 눈치 못 채다니, 멍청한 놈. 그런 놈은 무서워할 필요 없어.”두 사람은 자랑스럽게 한마디씩 주고받으며 우쭐거렸다.그들이 납치한 사람은 바로 술에 취한 염진이었다.만약 장씨 가문의 세 사람이 몰래 숨어들어 염구준의 시선을 끌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이렇게 쉽게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자랑을 한지 1분도 채 되지 않아, 두 사람은 모두 얼굴이 굳어진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블렌, 강한 기운이 쫓아오고 있어. 우리와 비슷한 수준이야.”“나도 느꼈어, 염구준이겠지. 네가 인질을 데리고 먼저 가.”그들은 들키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기운이 점점 더 가까이에서 느껴지는 걸 보면 행적이 들킨 게 분명하니까 말이다.“조심해!”백리는 염진을 넘겨받아 어깨에 짊어지고 먼 곳을 향해 뛰어갔다.오랜 시간 합을 맞춰온 것처럼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고 깔끔했다.“멈춰!”염씨 가문의 저택에서부터 달려온 염구준은 두 사람을 발견하자마자 크게 소리 질렀고, 이 소리에 주위에 있던 경호원들은 깜짝 놀라 포위하기 시작했다. 블렌은 자신을 뒤쫓아온 염구준을 보며 강렬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기운의 흐름으로 보아 반보천인인 게 확인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바로 백리를 향해 돌진했다.그녀의 어깨에 업혀있는 게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흥! 네 상대는 나다!”블렌은 염구준에게 무시당하자 분노하며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반보천인의 경지에 오른 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블렌은 상대방과 맞선다면 어느정도는 비슷한 수준일 거라고 생각했다. 설사 비슷하지 않다 해도 시간을 끄는데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여겼다.비록 염구준이 강하다는 소문은 있었지만, 직접 맞서보지 않았기에 그는 크게 믿지 않았다.반보천인들
“구준이 형! 흑흑…”그때 한 사람이 염구준의 이름을 부르다가 옆 사람에게 입을 틀어 막히고 말았다.‘나를 알아?’염구준이 눈썹을 찌푸렸다.상대방의 말투로 보아 거짓말 같지 않았지만 이런 목소리를 들어본 기억이 없었다.“미안해.”우두머리가 포권을 취하더니 기운을 발사하며 염구준에게 돌진했다.‘정진왕자야.’생각보다 상대방의 실력은 약했다.하지만 염씨 저택을 잘 아는 사람이라면 여기까지 오는 것이 놀랍지 않았다.윙!염구준은 제 자리에 서서 기운으로 일행을 포위했다.그러자 세 사람은 천금 같은 기운에 억눌려서 그만 무릎을 꿇고 말았다.벌써 온몸은 식은땀으로 흥건히 젖었다.“너희들 정체와 여기 온 이유를 말해. 아니면 살아서 돌아갈 수 없어.”염구준은 적군인지 아군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한밤중에 몰래 들어온 사람들 중에 아군을 본 적이 없었다.“나야. 삼우.”누군가 참지 못하고 복면을 내렸다.“난 장이우야!”“난 장대선이야!”세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복면을 내리고 익숙하기도 하고 낯선 얼굴을 드러냈다.이제 보니 염씨 가문의 집사였던 장천수의 세 쌍둥이 아들이었다.한 차례 전쟁에서 장천수가 전사한 바람에 염진이 세 쌍둥이를 입양했었다.염구준이 어렸을 때 몇 살 어린 세 쌍둥이와 놀면서 자라다가, 세상을 떠돌아다니면서부터 만나지 못했다.그런데 오늘 이렇게 상봉할 줄은 생각도 못했었다.“진짜 오랜만이야. 근데 정문으로 당당하게 들어와도 우린 언제나 환영할 텐데, 왜 쥐 새끼들처럼 몰래 들어왔어?”세 사람을 알아본 염구준은 그제야 기운을 거두도 차갑게 말했다.사람은 언제든 변할 수 있으니 지금 그들이 어떤 속셈인지 간파하지 못해 경계하고 있었다.“구준이 형, 악의는 없어. 그냥 지인의 부탁으로 아저씨한테 만나달라고 부탁하러 왔어. 절대 위험한 일은 아니야.”장대선은 기운에 눌려 힘들었는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설명했다.“멍청한 거야 아니면 날 속이는 거야?”염구준의 목소리가 싸늘해지더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