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승들에게 전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사람이 착하면 오히려 당하기 마련이니 염구준은 거만하게 대답했다.“하지만 당신은 틀렸어요. 늑대를 남겨야 여기 사람들이 위험에 처했을 때 우리가 나설 수 있어요. 그래야 우리 가치를 보여줄 수 있거든요.”족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목소리만 들렸다.그래도 염구준은 신경 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여기서 위험한 금지 구역이 어딘지 아십니까?”“전주님, 여전히 성급하시네요.”족장은 말하는 동시에 요염한 자태를 드러냈다.“붉은 장미?”염구준은 바로 그녀를 알아봤다.몇 년 전에 동양국 해전에서 적들의 함대를 거의 전멸시켰을 때 붉은 장미는 상대방의 사령관이었다.그때 패배한 적들이 작은 배를 타고 도망쳤는데 이곳에 왔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맞아요. 전주님이 저를 기억하실 줄이야.”붉은 장미의 말에 가시가 섞여 있었다.“실력이 형편없어서 조금 인상이 깊었어요.”그때 붉은 장미의 싸움 실력은 마치 소꿉놀이하는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의 상처가 드러나자 웃음을 거두고 싸늘하게 말했다.“잘난 척하지 마세요. 그동안 무술에 몰두했고 이곳의 약재를 복용하여 이미 전신지상에 도달했어요. 한때 적이었지만 일면식이 있는 사이니 내 남총이 되어준다면 평생 지켜줄게요.”마음이 여린 것 같지만 평생 그에게 복수하려고 노예를 하라는 말이었다.함선이 파괴되고 이런 곳에 갇혀서 살았으니 분노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일단 내 질문에 대답하세요.”염구준은 담담하게 말했다.남총이고 뭐고 변태 같은 짓거리는 절대 사양이었다.“흥, 좋게 말을 해도 듣지를 않다니 무력을 써야 말을 듣겠네.”화난 붉은 장미는 바로 손을 들어 공격했다.스스슥!예고도 없이 두 암기를 발사했지만 염구준은 들어올 때부터 미리 경계하고 있었다.그는 가볍게 옆으로 물러서며 공격을 피했다.이어서 붉은 장미가 한 손에 뼈다귀를 들고 힘껏 아래로 내리쳤다.환경 때문에 이곳 사람들은 생존하기 위해서 처음부터 전력으로 싸웠다.윙!염구준은
“아주 좋아요. 짐을 챙기고 내일 출발합시다.”염구준은 말을 마치고 돌아서 밖으로 나갔다.그녀가 도망칠 걱정은 1도 하지 않았다.반천인 실력을 보여줬으니 오히려 그에게 빌붙을 것이다.실력이 강한 사람이 여기서 탈출할 기회가 더 많으니까.“전주님, 저녁에 내 처소에 쉬러 오시겠어요?”붉은 장미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애처롭게 물었다.“쓸데없는 생각은 집어치우고 할 일이나 하세요.”그의 마음속에 이미 손가을이 있어서 미인계는 아예 통하지 않았다.“휴.”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붉은 장미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제야 옷이 식은 땀에 흠뻑 젖은 걸 발견했다.염구준을 봤을 때 복수하고 정복하고 싶었다.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녀가 정복당한 것 같았다.세상 일은 정말 알 수 없었다.“언젠가 내 손아귀에 넣을 거야.”붉은 장미는 한참을 불평을 늘어놓다가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지금 그녀의 심정은 매우 복잡했다.염구준을 죽이고 싶으면서도 그가 이곳에서 데리고 나가주길 바랬다.홍분 마을은 원시 사회 같아서 한 시도 있고 싶지 않았다.염구준은 케빈을 앞장세워 필요한 물건을 보충하러 갔다.이번 행차는 갑자기 오는 바람에 구자검 외에 아무도 챙기지 않았다.두 장의 늑대 가죽으로 생각보다 많은 물건을 바꿀 수 있었다.“이걸 당신한테 줄게요. 내일 여기서 떠납니다.”염구준은 일부분을 케빈에게 주었다.“부디 성공하길 바라요.”케빈은 물건을 받고 떠났다.그는 이곳에 40년을 살면서 이미 환경에 적응되었기에 떠나고 싶지 않았다.아침에 두 사람이 마을을 떠날 때 마을은 떠들썩했다.강자의 도움 없이 이 숲에서 생존하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른 사람이 결정한 일에 그들은 간섭할 수 없었다.“빨리 오세요. 밥을 안 먹었어요?”앞장선 염구준이 재촉했다.“갑니다.”붉은 장미는 빠른 걸음으로 뒤를 따르면서 속으로 그를 욕했다.그녀는 작고 큰 가방들을 잔뜩 챙겼다.그중에는 보름 정도 먹을 식량도 있었다.전신지상의 실력이 아니라면 이
이미 들켰는데도 공격을 하다니 염구준은 헛웃음이 나왔다.윙!두 사람은 기운을 밖으로 발사하며 화살을 막아냈다.“숨어 있지 말고 나와.”염구준은 숲에 대고 고함을 지르며 어마어마한 기운으로 상대방의 고막을 자극했다.곧 열 명 넘는 그림자가 석궁을 들고 나타났다.“장미 아가씨, 짐을 바리바리 싸 들고 여기서 도망치려는 거야?”덩치가 건장한 사내가 비아냥거렸다.“똥개, 냄새 나는 주둥아리 닥쳐!”붉은 장미가 버럭 화를 냈다.두 사람의 말투를 보니 서로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똥개는 다른 마을의 족장으로 서로 왕래하는 사이였다.염구준이 고개를 돌려 그녀를 쏘아보았다.“그쪽이 정보를 흘렸어요? 감히 매복해서 나를 습격했어요?”덜컥 겁을 먹은 붉은 장미는 풀썩 주저 앉으며 다급히 설명했다.“전주님, 아니에요. 저놈이 왜 여기 있는지조차 몰라요.”그 모습을 보니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말로 해서 누가 믿어요. 행동으로 증명하세요.”염구준은 주변 나무에서 과일을 따더니 옆에 있는 돌 위에 털썩 자리 잡고 앉았다.증명하는 방법은 상대방과 싸우거나 죽이는 것이다.그녀는 정말 욕을 퍼붓고 싶었다.“장미, 저 녀석 네 남자야? 그렇게 무서워? 성격이 영 별로인 거 같은데 이 오빠를 따라와. 하하하.”그 장면을 보던 똥개가 조소를 날렸다.그동안 화풀이를 못해서 답답했는데 똥개의 말을 듣는 순간 붉은 장미는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폭발해버렸다.“이 자식, 그냥 죽어!”그녀는 뼈다귀를 쳐들고 똥개를 향해 공격했다.관련 없는 사람들은 끼어들 수 없다는 것을 눈치채고 멀리 피해 있었다.두 사람은 처음으로 대결하는 것이 아니어서 서로 어떤 무공을 깨달았는지 잘 알고 있었다.실력은 엇비슷했다.염구준은 어설픈 대결을 보고 충고했다.“상대방 하체가 불안정하니까 하체를 공격하세요. 그리고 저놈이 공격하기 전에 잠시 멈추는 습관이 있어요.”몇 가지 초식만 봐도 염구준은 상대방의 약점을 발견했다.붉은 장미는 깜짝 놀랐다.그녀는 몇 번이나 싸
“일단 믿을게요. 하지만 개수작을 부리면 바로 죽일 겁니다.”염구준은 충분히 경고를 줬으니 더는 따지지 않았다.두 사람이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진작에 알고 있었고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것이다.“저놈을 죽이고 바로 출발하시죠.”붉은 장미는 수중에 뼈다귀를 휘두르며 똥개에게 천천히 다가가 마지막 필살기를 날렸다.다른 사람의 목숨으로 염구준의 신임을 산다면 기꺼이 할 것이다.“아직도 구경하고 있어? 나와서 저놈 죽여!”바닥에 쓰러진 똥개는 뒤로 물러서며 고함을 질렀다.“아직도 누가 있어?”붉은 장미는 발걸음을 멈추고 주변을 경계했다.주변에 아직 사람이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스스슥!숲에서 스무 명이 넘는 그림자가 나타났다.그런데 차림새를 보아 다른 패거리 같았다.두 명의 전신지상 고수가 앞장을 선 것을 보니 다른 마을의 족장 같았다.“끝까지 숨어 있을 줄 알았어.”염구준이 일행을 훑어봤지만 그런 실력으로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았다.“이제 막 여기에 들어온 것 같은데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면 알려줄 수 있어? 사람 많으면 도움이 되잖아.”일행 중에서 한 전신지상 고수가 나서서 말했다.붉은 장미가 가방을 들고 마을을 떠나는 것을 봤을 때, 염구준이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았을 거라 생각하고 여기서 기다린 것이다.“나랑 손을 잡고 싶어?”염구준은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그렇다. 서로 도우면 나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질 거야.”남자는 염구준이 동의한 줄 알았다.그런데 이어서 하는 말에 찬물을 맞은 듯 안색이 싸늘해졌다.“손을 잡아도 실력이 비슷해야 가능해. 너희들은 너무 약해서 안 돼.”사방에 위험이 도사리는 숲에서 염구준은 발목을 잡는 팀원 따위 필요 없고 오직 한 사람만 길을 안내해도 충분했다.만약 그도 해결할 수 없는 위험이라면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대놓고 약하다는 소리를 들은 일행은 마음이 불쾌했다.그때 전신지상의 고수 한 명이 앞으로 나오며 나지막하게
이토록 강한 기운과 공포스러운 압박감은 절대 틀리지 않았다.“철수한다!”누가 고함을 지르며 중간에 있던 똥개를 방패로 삼아 염구준에게 확 밀어 던졌다.이렇게 능숙한 수법은 사전에 미리 상의했기 때문이다.“비열한 놈!”“컥!”똥개는 대노하며 소리쳤지만 꼼짝도 못하고 염구준의 검에 찔려 죽었다.염구준은 여기서 끝내지 않고 앞으로 돌진하며 일행을 쫓았다.“죽어라 도망치자!”두 사람은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결심을 내렸다.그들은 공포스러운 기운을 폭발한 후, 동시에 뒤로 돌아 도망쳤다.살아남겠다고 저군을 함정에 빠트리려 한 것이다.하지만 여기서 그만둘 염구준이 아니었다.살의를 느낀 이상 무슨 일이 있어도 상대방을 물리치려 했다.염구준은 검을 두 번 휘둘러 한 사람을 죽이고 이내 뒤를 쫓아서 나머지 한 사람까지 살해했다.세 명의 전신지상 고수가 전부 죽었다.“저희가 그런 게 아니에요. 제발 용서해 주세요.”남은 부하들은 석궁을 던져버리고 무릎을 꿇으면서 애원했다.“꺼져!”염구준은 검에 묻은 피를 털어버리고 계속 길을 떠났다.천지와 본연의 일을 함에 있어 만물에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는 속담이 있다.이곳에 살아남은 사람들은 고된 환경에, 먼저 다가가 건드리지 않는다면 그도 상대방을 죽이지 않았다.“전주님, 방금 그자들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어요.”붉은 장미는 여광으로 뒤의 상황을 보고했다.“내버려두세요. 죽음을 자초하는 놈들은 약이 없어요.”염구준은 진작부터 알았지만 그들이 공격하지 않아서 살려둔 것이다.“전주님, 동굴에 도착하면 정말 밖으로 나갈 수 있어요?”“누가 밖에 간다고 했어요? 내가 가려는 곳은 바깥세상보다 더 유혹적이에요.”염구준은 숨기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말했다.붉은 장미는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더는 묻지 않았다.“바로 여기예요.”그녀는 발걸음을 멈추고 전방에 있는 동굴을 가리켰다.그곳에 종아리만 한 덩굴이 빼곡하게 뻗어올라 동굴 입구를 절반이나 가렸다.식물은 무성하지만 살아 있는 생물은 아니었다.“더
스스슥!생물이 접근하자 덩굴은 반응하며 염구준과 붉은 장미에게 마찰소리를 내며 다가갔다.윙!염구준은 이내 주변에 기운을 발사하며 두 사람을 보호하자 덩굴이 튕겨 나갔다.덩굴의 힘으로 그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전주님, 이제 시작이에요.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공격이 세질 거예요.”붉은 장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말했다.지금 그들은 한 배를 타고 있어서 아무리 미워도 죽일 수 없었다.“고작 덩굴 때문에 두려워할 거 없어요.”염구준은 이미 어떤 식물인지 알아챘다.전에 이런 식물과 열대우림에서 싸워본 적이 있었다.다른 점을 말하자면 여기 있는 덩굴처럼 굵지 않았다.덩굴은 이름처럼 피를 먹고 살고 또 토양에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서 참 특이한 식물이다.피를 먹는 식물이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펑! 펑!앞으로 다가가자 덩굴이 미친듯이 방어 기운을 공격했다.지금 덩굴은 식물이 아니라 굶주린 늑대처럼 공격을 퍼부었다.붉은 장미는 방패가 버티지 못하여 잡혀 먹힐까 봐 두려워 덜덜 떨었다.이 구역의 덩굴은 그녀 힘으로 제어하지 못했다.안으로 들어갈수록 덩굴은 더 많아지고 이내 염구준이 만든 기운 방패를 전부 감쌌다.이곳의 덩굴은 오랫동안 존재한 덕에 이 구역의 지배자나 마찬가지여서 어떤 생물도 감히 맞서지 못했다.뒤를 따라온 사람들은 멀리서 보기만 할 뿐, 계속 한숨만 쉬었다.“에휴, 이렇게 강한 사람도 건너가지 못하나?”“저렇게 실력이 강해도 여기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네.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들어가지 못하겠어.”“가자. 이제 다 끝났어.”무엇이 금지 구역인가?바로 들어갈 수 있어도 살아나오지 못하는 곳을 가리킨다.일행이 떠나려고 할 때 변고가 발생했다.다들 무술인이니 주변에 일어나는 기운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어딘가 전해지는 강력한 기운에 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쿵!그때 방패가 폭발하자 덩굴들이 잘려서 사방에 떨어졌다.순간 검기가 기승을 부리며 계속 뻗어오는 덩굴을 잘라버
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한 번 보고는, 다시 동굴로 걸어갔다.전에 바로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최대한의 자비를 베푼 것이었기에 그가 그들을 구할 이유는 없었다.무엇보다 어떤 길을 가느냐는 각자의 선택이 아니겠나?“형님, 살려만 주시면 시키시는 것 뭐든 다 하겠습니다!”“싫어, 난 죽기 싫다고!”제일 앞에서 달려가던 사람이 잔뜩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지만 불과 몇 분 만에 피를 다 빼앗겨 미라가 되어버렸다.이 모습을 본 뒤따라오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동굴의 유혹이 아무리 크다 해도, 목숨이 붙어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실력이 부족하면 케빈처럼 헛된 환상을 품지 않고 마을에 그저 얌전히 있는 게 정확한 행동이었다.한편, 이미 동굴 안으로 들어간 염구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속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전주님, 지금 도대체 얼마나 강하신 거예요?” 붉은 장미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몇 년간 저를 이긴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염구준은 앞장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투엔 그 어떤 자만도 섞여 있지 않았다.그에게 있어서 이런 전적은 그저 평범하고 대단할 것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꿀꺽.이 말을 듣고 놀란 붉은 장미는 등골이 오싹해져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녀는 이미 염구준의 전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실력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압도적일 줄이야.’“여기에 뭐가 있는지는 이 방에 달려있는 것 같네요.”염구준이 몇 가닥의 불꽃을 튕겨내어 공간을 밝힌 덕분에 두 사람은 주위를 볼 수 있었는데, 내부는 30평 정도 밖에 안 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곳이었다.“꺄아악, 누가 있어요!”이때, 붉은 장미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다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이런 위험한 금지구역에 나타난 사람이 평범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이미 죽었습니다.”염구준은 깔보는 말투로 대답하고는 앞으로 걸어갔다.그 사
비록 동양 문자이긴 했지만 염구준은 알아볼 수 있었다.[난세 속에서, 나는 아내와 자식, 가족들을 데리고 재난을 피하고자 이곳에 은거했다.][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곳에 이미 고수가 머물고 있었던 거다. 한바탕 격전을 벌인 끝에 그를 죽이는 것에 성공했지만 나 또한 목숨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한 가지 세상에 경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혼란의 뿌리는 옥패에 있으며, 흥망성쇠 또한 옥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여덟 개의 옥패를 전부 모으면...]마지막 문장은 중간에서 끊겨 있었는데, 아마 글을 새기던 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 같았다. ‘말하다 말고 끝내다니, 사람 속 한 번 참 잘 태우네.’문제는 이 철학적이고도 애매모호한 문장을 보고서 여덟 개의 옥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다만, 옥패를 모으는 것이 재앙과 축복이 얽힌 운명을 가져올 거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펑.그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에 불을 붙여 깔끔하게 태워버렸다.“여기 적힌 일은...”염구준이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붉은 장미가 얼른 입을 열고 맹세했다. “오늘 이 일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겁니다. 하늘을 걸고 맹세할게요. 만약 제가 맹세를 어긴다면, 벼락 맞고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늦게 입을 열기라도 했다가는 염구준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서였다.그녀는 문장의 뜻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글에서 전해지는 심오한 분위기만으로도 이 일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그 맹세 지키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지구끝까지 도망치더라도 제가 쫓아갈 테니까요.”염구준은 일상처럼 그녀를 위협했다.“알겠습니다!”붉은 장미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미 그녀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염구준과 함께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았지만, 협박을 수차례 받은 탓에 그녀는 심장이 조금 많이 아파왔다.그 후, 둘은 동굴 안을 계속 수색했지만, 특이한 돌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돌이 특이한
“후... 네게 방법은 하나뿐이니 알아서 해 봐.”염구준은 길게 숨을 내쉬며 백호의 요청을 허락했다.이런 일은 억지로 막을 수 없었다. 지금은 백호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감사합니다!”백호는 머리를 숙여 인사한 뒤 일어서며 주작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주작아, 앞으로는 명령 제대로 따르고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해, 알겠지?”4대 전존 중 백호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존재는 주작이었다. 즉흥적인 성격으로 일을 처리하다가는 언젠가 사고가 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주작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흥, 잔소리하고 싶으면 살아남고 나서 해!”그녀의 말을 들은 백호는 합금으로 된 전투도를 뽑아 들고 광마에게 다가갔다.현재 그에게서는 전신 위 경지의 극치에 다다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 싸움은 이 두 사람의 전장이 될 운명이었다. “웃기지 마! 겨우 전신 위의 경지로 나를 죽이겠다고?”광마는 화를 내며 땅을 한 번 세게 내리쳤고,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일으켰다.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영광스럽게 전사하는 편이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죽어라!”두 사람은 동시에 외치며 전력을 다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이렇게 목숨을 건 싸움은 승패가 금방 갈리기 마련이었다.쾅!무기끼리 부딪히는 순간, 백호는 피를 토하며 신속하게 뒤로 밀려났다.압도적인 힘 차이 때문이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주작은 애가 탔지만, 이는 백호가 먼저 요구한 공정한 대결이었기 때문에 그녀도, 그리고 염구준도 끼어들 수 없었다.만약 누군가 개입한다면 백호의 고집스러운 성격으로는 정말 자결을 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끝났네.”백호의 기운이 변한 것을 느낀 염구준은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쿵!그와 동시에 밀려온 진기에 반등한 백호가 몸을 떨더니 갑자기 전대미문의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광마를 뒤로 밀었다.그러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다가가 도를 휘둘렀고, 광마의 머리는 그렇게 바닥에 떨어졌다.한계를 돌파해 반보천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주상! 해냈
“그저 훼이크일 뿐이었는데, 그리 겁을 먹어서야.”그는 주작을 내려놓으며 비웃었다.광마와 한 번 싸울 생각이 있는 건 맞지만 그전에 주작이 싸움에 휘말려 다치지 않도록 그녀를 구해내야만 했다.파팍!염구준이 그녀의 혈자리를 누르자 단숨에 단전의 봉인이 풀렸다.“으아아! 네 목숨을 가져가겠다!”자신이 조롱 당했음을 깨달은 광마는 크게 화를 내며 커다란 곤봉을 휘두르면서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무거운 몸무게 때문에 그가 한걸음 뗄 때마다 바닥이 울리며 깊은 균열이 생겼다.주변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광마의 움직임에 열광하며 환호를 보냈는데, 누군가는 아첨하며 떠들었고, 누군가는 진심으로 그를 응원했다.“광마 님! 저 비열한 놈을 찢어버리세요!”“광마 님, 위엄 넘치십니다! 천하무적이세요!”“어디서 굴러온 놈인진 몰라도, 감히 광마 님께 덤비다니, 제 명을 재촉하는구나!”하지만 그들은 단순히 구경하는 것일 뿐, 조금 전 염구준이 보여준 강렬한 검술의 위력을 전혀 알지 못했다.오직 광마만이 굳은 얼굴로 긴장감을 드러냈다.곧이어 두 사람은 격렬하게 충돌하며 싸움을 벌였다.광마는 50킬로가 넘는 방망이를 휘두르며 거칠게 공격했지만, 실제로는 빈틈이 너무 많아 염구준의 옷자락조차 건드리지 못했다.두 사람의 실력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헉, 헉...”10분이 지나자 전력을 다해 공격한 광마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고, 그의 손놀림도 점점 느려졌다.우웅.이때, 검명이 울렸다. 염구준이 더 이상 봐주지 않고, 본격적으로 반격을 시작한 것이다.몇 번의 검격만으로 염구준은 이미 주도권을 장악했다.사실 그는 초반부터 전력을 다하지 않았었다. 상대방의 기술을 관찰하며 배울 점이 있는지 살피기 위해서였다.그러나 광마의 기술은 그저 무질서한 동작의 반복일 뿐, 배울만한 것이 없었다.푸욱.상대방의 허점을 간파한 염구준은 연속으로 검을 휘둘렀고, 그에 의해 광마는 방망이와 함께 뒤로 날아갔다. 이렇게 한 차례의 공격만으로도 광마는 이미 중상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광장에는 천 여명의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들이 모여 지역 특산 음식을 즐기고 있었다. 광장 중앙의 정자 안에는 산같이 거대한 체구의 뚱뚱한 남자가 앉아 있었는데, 그 옆에는 붉은 혼례복을 입은 주작이 앉아 있었다.“함께 이 잔을 마시지.”광마는 술잔을 들어올리며 웃으면서 말했다. “퉷, 역겨워!”그러자 그녀는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눈을 감았다.광마에게 잡힌 주작은 자폭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상대가 기묘한 기술로 단전을 봉인한 터라 할 수 없었다.“헤헤, 그 도망친 녀석이 너를 구하러 올 거라 생각하나?”광마는 술을 단숨에 들이키고는 기분 나쁜 미소를 지었다.그가 말하는 사람은 바로 백호였다.“아니, 도망친 게 아니라, 내가 보낸 거야.”주작은 말하며 며칠 전의 일을 떠올렸다.그날, 두 사람은 힘을 합쳐 광마와 맞섰지만 패배했고, 그 뒤에 철수할 때 부상이 심각했기에 그녀가 목숨으로 협박하면서 백호더러 먼저 가서 지원군을 데리고 오라고 한 거였다.지금 주작의 유일한 바람은 백호가 무사히 살아가는 것이었다.4대 전존들의 우정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었다. 때때로 의견 충돌이 있긴 하지만, 그건 그저 서로의 견해 차이일 뿐이었다.그들은 서로를 위해서라면 주저없이 생명을 바칠 수 있었다.“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아무도 너를 구하지 못한다는 거야.”광마는 주작의 매혹적인 자태를 바라보며 군침을 삼켰다.‘아름다워, 너무 아름다워.’쾅!그러나 이때 갑자기 거대한 폭발음이 울리며 누군가가 광장에 나타났고, 동시에 그가 서 있는 자리의 바닥도 산산조각 나버렸다.염구준이 온 것이다.“주상, 오셨군요.”주작은 그를 알아보고 얼굴에 빛을 띠며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눈앞의 이가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커헉, 주작, 미안하다.”백호가 격렬하게 기침하며 말했다.그날의 상황은 복잡했다. 백호는 떠난 후 내내 죄책감에 시달렸지만, 두 사람이 모두 살아남으려면 염구준을 찾는데에 희망을
상대방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남자는 바로 도망치려고 했지만, 염구준의 검이 더 빨랐다.그는 몸을 돌리자마자 날아온 검기에 몸이 관통이 되어 그 자리에서 죽어버렸다.이 장면을 본 주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몰려들었다.죽은 이는 외곽에서 악명이 자자한 강자였으니까 말이다. 실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대부분이 못 건드렸던 사람이 이렇게 쉽게 죽은 걸 보고 그들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 너희도 한 번 붙어보고 싶어?”주변의 적대적인 시선을 느낀 염구준이 싸늘하게 물었다.골칫거리는 한꺼번에 처리해버리는 게 나았다. 이따금씩 한두 명씩 나타나 귀찮게 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주변의 구경꾼들은 몸을 움츠리며, 서둘러 시선을 피했다. 눈앞의 이 무서운 존재와 차마 눈을 마주칠 용기가 없어서였다.전신 위에 있는 강자도 순식간에 베어버렸는데, 그들같이 약한 사람들은 오죽하겠나?더 이상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을 본 염구준 일행은 다시 제 갈길을 갔고, 곧바로 중앙 구역의 입구에 도착했다. “주인님께서 붉은 장미 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으로 드시죠.”그들의 모습을 본 입구에 있던 경비가 공손하게 말했다. “안내해. 너희 주인님과 상의할 일이 좀 있으니까.”붉은 장미가 대답했다.“그런데, 이 두 사람은 누구입니까? 저 사람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데요?”경비는 염구준과 백호를 훑어보더니, 시선을 백호에게 고정하며 물었다.분명 백호를 알아본 것 같았지만, 붉은 장미의 체면 때문에 입 밖에 내지 않은 듯했다.“이 사람들은 내 친구야.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마.”이에 붉은 장미는 싸늘하게 말하며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제가 실례했습니다. 따라오시죠!”그녀의 반응에 경비는 서둘러 문을 열고 앞장섰다.그는 단순한 문지기일 뿐이기 때문에 그녀를 뭐라고 할 자격이 없었다. 이럴 땐 윗사람에게 문제를 떠넘기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안에 들어선 염구준은 주위의 환경을 보며 감탄했다.안쪽엔 고풍스러운 정자와 누각들
광마 마을은, 우두머리의 이름이 광마라 불리는 자였기에 그렇게 불리게 된 것이었다. 그는 토착민으로, 잔인하고 폭력적이며 살인을 즐기는 자였지만 실력이 강한 탓에 권세 있는 사람에게 기대어 덕을 보는 게 낫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르기를 원했다.마을은 산을 따라 지어졌으며, 사방이 깎아지른 절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오직 한쪽만 정글로 통하는 구조라 방어하기 쉬운 곳이었는데, 규모로 보아도 적어도 2만 명은 되는 듯했다.“홍분 마을의 붉은 장미가 광마 님을 뵙고싶습니다.”세 사람은 광마 마을 입구에 도착했지만, 바로 정면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주작의 구체적인 상황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무모하게 나설 생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간 괜히 상황만 악화시킬 것이 뻔했다.잠시 후, 광마 마을 안에서 대답이 들려왔고, 거대한 문이 천천히 열렸다.“붉은 장미 님, 주인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대답을 들은 붉은 장미는 앞장서서 다른 두 사람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공기에 피냄새가 진하게 섞여있군.’마을 안으로 들어선 뒤 주위를 둘러보던 염구준은 이곳이 마치 아수라 지옥과 같다고 생각했다.곳곳에 시체가 널브러져 있고, 파리떼가 윙윙거리며 날아다녔으며,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잔혹하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말이다.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곳은 ‘혼돈’ 그 자체였다.“아무도 이걸 통제하지 않는 건가요?”염구준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이토록 무질서한 곳은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발전할 가망이 없기 때문이었다.이곳의 통치자가 이런 상태를 방치하고 있다는 것이 그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물론 있죠. 다만 광마 마을은 외부 구역과 내부 구역으로 나뉘어 있답니다. 외부 구역에서는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지만, 내부 구역에서는 오직 광마만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어요.”붉은 장미는 차분히 설명하며 염구준의 의문을 풀어주었다.세 사람이 걸음을 옮긴지 얼마 안 됐을 무렵, 그들은 또다시 길이 막혔다.“오, 신참들인가? 여기 들어오려면 한 사람마다
백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할 만큼 했어. 이제부터는 하나라도 더 죽이면 남는 장사야.’ 라고 말이다.펑! 펑!양측은 몇 번 더 격렬하게 부딪혔고, 백호는 밀리는 상황에서도 두 명을 더 쓰러뜨린 후 덩굴 숲 속으로 나가떨어졌다.피를 흡수한 덩굴은 활기를 띠더니, 백호의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꺼져!”백호는 남은 힘을 다해 덩굴을 잡아 찢었으나 하나를 찢으면 새로운 덩굴이 달려들어 지쳐만 갔다.멀리서 이를 지켜보는 황지열의 부하들은 비웃음을 터뜨리며 잔혹한 표정을 지었다.상대방이 곧 어떻게 될지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얼른 그가 덩굴에게 피를 전부 빨려 말라죽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스윽, 스윽.하지만 상황은 그들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덩굴이 갑자기 겁을 먹은 듯 땅 속으로 빠르게 도망치더니,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마치 무언가에 겁을 먹기라도 한 것 같았다.“백호, 젠장!”이때, 동굴 입구에서 염구준의 모습이 보였는데, 눈 앞의 상황을 보자마자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그는 지금 매우 화가 나 있었다.“주상... 다시는 뵙지 못하는 줄 알았습니다.”백호는 쓰러질 듯한 몸을 겨우 일으키며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말하지 마. 원래는 너희들이 모두 수련을 마친 후에 만나러 가려고 했었는데, 이 꼴이 될 줄은 몰랐어.”염구준은 백호 곁으로 다가가 주머니에서 약물을 꺼내 백호의 가슴에 꽂았다.그 약물은 전신전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특수 약물로, 효과가 매우 좋았기에 주입과 동시에 백호는 상태가 조금 안정되었다.“거기 서. 누가 너희들더러 그냥 가라고 했지?”염구준은 차갑게 외치며 황지열의 부하들을 노려보았다.자신의 부하를 이렇게 만든 주제에 그냥 떠나겠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이 어디 있겠나?“염... 염구준! 우리가 너 무서워하는 것 같아? 조심해, 이러다 같이 죽는 수가 있으니까!”상대방의 우두머리는 억지로 침착한 척하면서 자폭을 하려고 미친듯이 진기를 모았다.자신들의 실력으로는 반
비록 동양 문자이긴 했지만 염구준은 알아볼 수 있었다.[난세 속에서, 나는 아내와 자식, 가족들을 데리고 재난을 피하고자 이곳에 은거했다.][그러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곳에 이미 고수가 머물고 있었던 거다. 한바탕 격전을 벌인 끝에 그를 죽이는 것에 성공했지만 나 또한 목숨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한 가지 세상에 경고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혼란의 뿌리는 옥패에 있으며, 흥망성쇠 또한 옥패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여덟 개의 옥패를 전부 모으면...]마지막 문장은 중간에서 끊겨 있었는데, 아마 글을 새기던 이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 같았다. ‘말하다 말고 끝내다니, 사람 속 한 번 참 잘 태우네.’문제는 이 철학적이고도 애매모호한 문장을 보고서 여덟 개의 옥패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다만, 옥패를 모으는 것이 재앙과 축복이 얽힌 운명을 가져올 거라는 점은 알 수 있었다.펑.그는 손에 들고 있던 종이에 불을 붙여 깔끔하게 태워버렸다.“여기 적힌 일은...”염구준이 말을 채 맺기도 전에 붉은 장미가 얼른 입을 열고 맹세했다. “오늘 이 일을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을 겁니다. 하늘을 걸고 맹세할게요. 만약 제가 맹세를 어긴다면, 벼락 맞고 죽어도 할 말이 없습니다.”늦게 입을 열기라도 했다가는 염구준이 자신을 죽일까 봐 두려워서였다.그녀는 문장의 뜻은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글에서 전해지는 심오한 분위기만으로도 이 일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그 맹세 지키는 게 좋을 겁니다. 아니면 지구끝까지 도망치더라도 제가 쫓아갈 테니까요.”염구준은 일상처럼 그녀를 위협했다.“알겠습니다!”붉은 장미는 고개를 끄덕였는데, 이미 그녀의 등 뒤에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염구준과 함께한 지 이틀도 되지 않았지만, 협박을 수차례 받은 탓에 그녀는 심장이 조금 많이 아파왔다.그 후, 둘은 동굴 안을 계속 수색했지만, 특이한 돌 몇 개 외에는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다.돌이 특이한
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한 번 보고는, 다시 동굴로 걸어갔다.전에 바로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이미 최대한의 자비를 베푼 것이었기에 그가 그들을 구할 이유는 없었다.무엇보다 어떤 길을 가느냐는 각자의 선택이 아니겠나?“형님, 살려만 주시면 시키시는 것 뭐든 다 하겠습니다!”“싫어, 난 죽기 싫다고!”제일 앞에서 달려가던 사람이 잔뜩 겁에 질려 비명을 질렀지만 불과 몇 분 만에 피를 다 빼앗겨 미라가 되어버렸다.이 모습을 본 뒤따라오던 사람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동굴의 유혹이 아무리 크다 해도, 목숨이 붙어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실력이 부족하면 케빈처럼 헛된 환상을 품지 않고 마을에 그저 얌전히 있는 게 정확한 행동이었다.한편, 이미 동굴 안으로 들어간 염구준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계속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전주님, 지금 도대체 얼마나 강하신 거예요?” 붉은 장미가 호기심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말하기는 어렵지만, 이 몇 년간 저를 이긴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염구준은 앞장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그의 말투엔 그 어떤 자만도 섞여 있지 않았다.그에게 있어서 이런 전적은 그저 평범하고 대단할 것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꿀꺽.이 말을 듣고 놀란 붉은 장미는 등골이 오싹해져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그녀는 이미 염구준의 전투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 실력이 내 예상보다 훨씬 더 압도적일 줄이야.’“여기에 뭐가 있는지는 이 방에 달려있는 것 같네요.”염구준이 몇 가닥의 불꽃을 튕겨내어 공간을 밝힌 덕분에 두 사람은 주위를 볼 수 있었는데, 내부는 30평 정도 밖에 안 되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곳이었다.“꺄아악, 누가 있어요!”이때, 붉은 장미가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쳤다. 그녀의 다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이런 위험한 금지구역에 나타난 사람이 평범할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이미 죽었습니다.”염구준은 깔보는 말투로 대답하고는 앞으로 걸어갔다.그 사
스스슥!생물이 접근하자 덩굴은 반응하며 염구준과 붉은 장미에게 마찰소리를 내며 다가갔다.윙!염구준은 이내 주변에 기운을 발사하며 두 사람을 보호하자 덩굴이 튕겨 나갔다.덩굴의 힘으로 그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전주님, 이제 시작이에요. 안으로 깊이 들어갈수록 공격이 세질 거예요.”붉은 장미는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전부 말했다.지금 그들은 한 배를 타고 있어서 아무리 미워도 죽일 수 없었다.“고작 덩굴 때문에 두려워할 거 없어요.”염구준은 이미 어떤 식물인지 알아챘다.전에 이런 식물과 열대우림에서 싸워본 적이 있었다.다른 점을 말하자면 여기 있는 덩굴처럼 굵지 않았다.덩굴은 이름처럼 피를 먹고 살고 또 토양에서 영양분을 흡수할 수 있어서 참 특이한 식물이다.피를 먹는 식물이라니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펑! 펑!앞으로 다가가자 덩굴이 미친듯이 방어 기운을 공격했다.지금 덩굴은 식물이 아니라 굶주린 늑대처럼 공격을 퍼부었다.붉은 장미는 방패가 버티지 못하여 잡혀 먹힐까 봐 두려워 덜덜 떨었다.이 구역의 덩굴은 그녀 힘으로 제어하지 못했다.안으로 들어갈수록 덩굴은 더 많아지고 이내 염구준이 만든 기운 방패를 전부 감쌌다.이곳의 덩굴은 오랫동안 존재한 덕에 이 구역의 지배자나 마찬가지여서 어떤 생물도 감히 맞서지 못했다.뒤를 따라온 사람들은 멀리서 보기만 할 뿐, 계속 한숨만 쉬었다.“에휴, 이렇게 강한 사람도 건너가지 못하나?”“저렇게 실력이 강해도 여기서 죽음을 맞이해야 하네. 그렇다면 우리는 더욱 들어가지 못하겠어.”“가자. 이제 다 끝났어.”무엇이 금지 구역인가?바로 들어갈 수 있어도 살아나오지 못하는 곳을 가리킨다.일행이 떠나려고 할 때 변고가 발생했다.다들 무술인이니 주변에 일어나는 기운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어딘가 전해지는 강력한 기운에 그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쿵!그때 방패가 폭발하자 덩굴들이 잘려서 사방에 떨어졌다.순간 검기가 기승을 부리며 계속 뻗어오는 덩굴을 잘라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