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생각하던 염구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돌아가 엘 족장에게 전해라. 멸족 당하고 싶지 않다면 봉황국에서 발을 들이지도, 가까이하지도 말라고. 만약 다시 봉황국에 나타난다면, 죽으러 온 것으로 간주하고 끝장 낼 것이다.”덤덤한 목소리였으나, 몸이 오싹해질 정도로 강력한 살기가 흩뿌려졌다. 폴은 심장이 덜컹하고 내려앉으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가, 감사합니다.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폴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무릎을 꿇은 채 염구준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반드시 그렇게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반드시!”그 말을 끝으로 폴은 지체없이 자리를 허겁지겁 떠났다. “염….”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앨리스가 입을 잠깐 달싹거렸지만, 이내 체념한 듯 조용해졌다. ‘염구준은… 왜 폴을 놓아준 것일까? 그는 앨리스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데!’“제가 왜 이렇게 행동했는지, 궁금하실 거예요.”염구준이 앨리스를 쓱 바라보더니, 천천히 회의실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다른 사람이 알아서 죽여줄 겁니다. 제가 죽이지 않아도 폴은 오늘 밤을 넘기지 못할 거예요. 제가 장담하죠!”그날 밤, 엘 족장의 청석 고성.가파른 돌계단 끝자락에 위치한 무겁고 두터운 고성 대문. 폴은 외투를 걸친 채,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벌벌 떨고 있었다.그는 족장에게 지원요청을 하기 위해 봉황국을 떠나 한순간도 쉬지 않고 여기까지 달려왔다. 압도적인 분위기. 600년, 아주 길고도 깊은 역사를 가진 이 거대한 성은 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겁고도 어두운 분위기를 뿜었다. “들어오세요.”하얀 베일에 긴 원피를 입은 한 여인이 천천히 대문을 열며 폴을 고성 깊숙이 있는 중앙 홀로 안내했다. 거기엔 검은 로브를 입은 여자가 딱딱히 굳은 자세로 벽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족장님!”폴은 얼굴조차 들 수 없어 깊숙이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 된 채, 말했다. “짐 삼촌을 포함해 세 철위들도 죽었습니다. 계획은 차질없이 진
족장은 처참히 찢긴 폴의 시신을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바라보다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가져가 꽃 키우는 비료로 써.”그러자 긴 원피스를 입은 한 여인이 스르륵 모습을 드러내더니 폴의 시체를 수거해 어딘가로 떠났다. 그리고 5분 뒤, 다시 깔끔한 모습으로 족장에게 돌아왔다. “족장님.”여인이 허리를 굽히며 청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엔 알 수 없는 냉기가 묻어 있었다.“괜찮으시다면 제가 직접 가서 짐과 폴을 위해 복수할까요?”복수? 짐과 폴에게 과연 그럴 자격이 있는가?“멍청한 개 두 마리쯤, 죽어도 그만이다. 봉황국 지부는….”족장이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버려 둬. 일단 염구준이라는 작자가 지리를 지키고 있으니… 당분간은 그냥 두자. 우리에겐 아직 다른 할 일들이 많이 남아 있잖아.”“하지만….”“하지만은 없다!”족장이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그 사람이 오기 전에 준비를 철저하게 해, 이 고성을 철옹성으로 만드는 것이다!”그 사람은… 정말로 너무나도 강했다. 지난번 그 사람과의 싸움 후로 그녀는 심한 부상을 입어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완벽한 치유는 기대하기 어려웠다. 염구준보다는 그 사람과의 전투를 대비하는 것이 더 급선무였다. “그 사람이라… 날 말하는 건가?”어디선가 은은하게 울려 퍼지는 나지막한 목소리. “엘로자. 내 일격을 맞고도 죽지 않다니, 운이 좋구나.”목소리를 듣는 순간, 엘로자는 얼굴이 딱딱하게 경직되며 반사적으로 문 쪽을 바라봤다. 검은 망토에 인피 가면을 쓴, 가슴에 칠흑 단풍이 수놓아져 있는 사람… 흑풍 존주!엘로자가 살기가 가득 담긴 눈빛으로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와 동시에 옆에 있던 긴 원피스 여인도 긴장한 채 소매에서 차가운 빛을 뿜는 단도를 꺼냈다. “겨우 너희들만으로 내 상대가 될 것 같아?”흑풍 존주가 전혀 두려움이 없는 눈빛으로 전투태세에 들어간 두 여인을 바라보며 말했다.
날아오는 공격을 전통으로 맞아버린 엘로자가 피를 토하며 허공을 날았다. 마찬가지로 단도를 들었던 여인도 전신 초급 실력에도 무기력하게 벽에 부딪히며 힘없이 늘어졌다. 하지만 족장과 달리 단도 여인의 몸에선 일말의 생명의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 일격만에 목숨을 다한 것이다.“사사….”엘로자가 싸늘하게 식어가기 시작한 여인의 시체를 슬픔이 담긴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흑풍 존주를 향해 나지막이 웃었다.“흑풍, 나도 똑같이 죽일 수 있었을 텐데, 왜 살려둔 거지? 설마 늙었다고 봐주는 것이냐?”‘봐줬다고?’ 흑풍 존주가 냉소를 지으며 한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옥패, 어디 있어? 옥패를 내놓는다면, 네 시체는 온전히 남겨주마!”엘로자가 헛웃음을 지었다.“흑풍, 아무리 찾아봐라 그 옥패를 얻을 수 있나.”그녀가 입가에 묻은 피를 닦으며 기이하게 웃었다.“네가 날 살려준다고 해도 옥패의 위치는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날 죽인다면, 더더욱 알 수 없을 것이고.”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다니!흑풍 존주는 더 이상 자비를 베풀지 않고 허공에 손을 내리쳤다.“엘로자, 날 너무 과소평가하지 말라. 네가 말하지 않아도 난 옥패를 찾을 수 있다.”손이 쾅하고 엘로자의 몸 위로 내리쳐졌다. 동시에 거대한 손바닥 자국이 생기며 엘로자의 눈빛이 흐려졌다. 그녀도 마지막 목숨을 다한 것이었다.“존주님!”약 30분이 흘렀을까, 가면을 쓴 남자 십여명이 고성 홀에 들어와 한쪽 무릎을 꿇었다.“모든 곳을 수색해봤지만, 신무 옥패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역시 없군….’“상관없다.”흑풍 존주가 뒷짐을 진 채 서늘하게 눈을 빛냈다.“오늘부터 이 고성의 우리 흑풍 조직의 본부가 될 것이다. 침입자가 있다면, 모두 사살해라!”그 뒤, 흑풍 존주는 무언가를 찾는지 엘로자의 시체를 뒤적거렸다.부하들은 예상치 못한 그의 행동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죽은 여자의 몸에서 무엇을 찾는 것일까? 설마 존주님께 이상한 취미라도 있는 것일까?그들은 이 상황
그는 혹시라도 놓친 것이 있을까 세번이나 살펴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옥패에 관한 그 무엇도 적혀 있지 않았다.“망할 늙은이!”흑풍 존주가 분노에 가득 찬 표정으로 엘로자의 시체를 찢어발겼다.그런 다음 컴퓨터 속 자료들을 보며 다른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블랙, 엘 가문 내부 통신망을 이용해 모든 지부에게 손씨 그룹을 공격하도록 연락해라. 엘 가문이 반격하지 않으면 손씨 그룹에 본부가 멸문 당할 수도 있다고 알려라.”본부가 당하면 엘 가문을 사용하는 모든 지부도 큰 타격을 받게 된다. 그들은 압박 받는 것을 싫어하나, 본부의 보호는 필수였기에 지금까지 엘 가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블랙은 고개를 끄덕이며 흑풍 존주의 말 대로 상황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곧 이메일들이 본부에서부터 세계 곳곳으로 퍼져갔다. 남미, 작은 강변에서 낚시를 하던 서양 노인의 핸드폰에서 메일이 도착했다는 알림이 울렸다. “엘 가문을 멸문시키려 한다고? 죽고 싶구나!”비슷한 일이 블랙호크국, 동양, 고려 등 여러 지역에 발생했다. 청해, 환해도로.염구준은 손가을과 함께 포르쉐를 타고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앨리스 씨, 정말 괜찮을까?”손가을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염구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비록 경쟁대상이긴 하지만, 한때 잘 나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이렇게 되자 마음이 쓰였다. “괜찮을 거야. 요양병원도 좋은데 찾아줬고, 전담 간호사도 배치해 뒀으니, 조만간 회복할 거야.”염구준이 전혀 걱정하는 기색 없이 덤덤히 말했다. 앨리스의 아버지가 살해당한 뒤, 여러 원로 임원들이 반역을 일으키며 폴까지 합세해 앨리스는 연속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가 살해당한 것도 모자라, 가문 원들이 반역, 폴에게 능욕당할 뻔하기까지, 충격적인 상황의 연속이었다. 아무리 강한 여자라고 해도 쉽사리 감당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긴급 연락, 긴급 연락!”이때 갑자기 연속으로 울리기 시작한 손가을의 핸드폰, 모두 손씨 그룹 해외 지부
간호사는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앨리스가 자꾸만 반항하며 밥 먹는 것조차 협조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호사는 억지로라도 앨리스에게 음식을 먹이기 위해 숟가락을 입에 쑤셔 넣었다. 잇몸이 찢어지며 피가 살짝 배어 나왔다. “떠먹여주기까지 하는데, 이래도 안 먹어? 자꾸 이렇게 비협조적으로 나오면 나도 험하게 나가는 수가 있어.”하지만 간호사는 앨리스의 입가에 묻은 피를 보고도 전혀 개의치 않고 더 숟가락을 들이밀었다. 이건 거의 고문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런 간호사의 모습에도 그 주변 누구도 말리려고 끼어들지 않았다. 그럴수록 그녀의 행동은 더 과격해졌다.간호사가 손에 들고 있던 음식을 거의 앨리스에게 들이붓듯 기울려던 순간이었다. 갑자기 무언가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염구준이 전신의 힘을 개방한 것이었다. 일반인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간호사는 돌이 된 듯 몸이 뻣뻣이 굳었다.염구준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지나쳐! 당신 같은 사람이 간호사라니, 자격이 없어. 당장 여기서 사직하고 떠나.”“그쪽은 뭔데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간호사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입만은 살아있었다. “꺼져!”염구준은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그녀의 뒷덜미를 잡아 옆으로 내던졌다. 그 때문에 손에 들고 있던 뜨거운 음식이 앨리스가 아니라 간호사 쪽으로 쏟아졌다. “악!”돼지 멱따는 듯한 듣기 싫은 비명이 울려 퍼졌다. 간호사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뜨겁게 달궈진 얼굴을 부여잡았다. “작업자득이야!”염구준은 이런 몰상식한 사람들과 말싸움 자체를 하기 싫어했다. 이런 사람한테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다. “드디어 오셨네요.”앨리스가 고개를 들며 서글픈 미소를 지었다. 이틀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그녀의 얼굴은 전보다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이틀이나 지났으니, 충분히 정리되셨을 거라 생각해요. 이제 저랑 같이 갑시다. 당신에게 모두가 부러워하는 엘 가문을 안겨 줄게요
“그럼 나도 농담 좀 칠게.”염구준의 몸에서 무형의 힘이 두개 피어올랐다. 그러자 뚜둑하고 뼈가 부러지는 듯한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대머리 남자의 팔이 부러졌다.“더, 더 이상 붙잡지 않을 테니, 꺼져.”대머리 남자가 극심한 고통에 이를 악문 채 말했다.“아니, 꺼져야 하는 건 너다. 여긴 너 같은 쓰레기 필요 없어.”염구준이 단호히 말했다. “뭐해! 얼른 원장님한테 전화해!”대머리 남자가 얼굴에 물집이 잡힌 간호사에게 소리쳤다. “그래, 어디 한번 연락해봐.”염구준이 주변을 훑어보며 여유로운 미소를 지었다. 주변 사람들 모두 대머리 남자가 당한 것에 통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보나마나 남자는 여기서 꽤 많이 미움 받는 존재인 것 같았다.잠시 후,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원장이 도착했다.“원장님, 도와주세요. 이 자가….”“염 선생님, 뵙게 되어서 영광입니다.”원장이 대머리 남자의 말을 자르고 염구준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염 선생님? 설마 손씨 그룹의 그 염구준을 말하는 것일까?’대머리 남자는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청해시에서 제일가는 재벌이라 알려진, 글로벌 그룹이자, 이 요양원의 투자자.“원장님, 저희 그룹은 봉사하는 마음으로 이 요양원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활보하도록 그냥 두다니, 솔직히 많이 실망했습니다.”염구준이 책임을 묻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관리에 소홀했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원장이 책임을 지고 벌을 내리겠다고 약속했다. “당신들, 당장 짐 싸고 여기 나가!”원장의 태도가 나쁘지 않았기에, 염구준은 그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한편, 염구준이 넘겨준 반디엘의 영상을 모두 시청한 앨리스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엘 가문을 망하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마지막 당부, 그녀는 속으로 강한 결심을 했다. “당신과 함께 갈게요.”그런 다음, 앨리스는 자신을 괴롭힌 간호사에게 다가가 강하게 뺨을 두어 차례 때렸다. “이건 나한테 진 빚.
염구준이 고개를 끄덕이며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경비원들을 만족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봤다. 실력은 아직 부족했지만, 충성심만큼은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것 같았다. 거기에 질 것을 알면서도 맞서는 용기와 기백,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수 있었다. 엘 가문 강자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염구준 쪽에서는 딱히 아무런 반응도 해오지 않았다. 이들은 염구준 쪽 사람들이 겁을 먹은 것이라 확신했다. “사람이 많다고 해서 뭐라도 될 것 같아?”염구준의 신형이 살짝 흔들렸다. 그러자 그의 몸에서 무색의 기운이 넘실넘실 뿜어져 나오더니, 순식간에 공격해오는 사람들을 향해 쏟아졌다. 전신의 영역! 그 순간 이들은 마치 얼어붙은 사람처럼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잠시 후, 모두 피를 토하며 허공을 나르더니 벽에 부딪혔다. 홀엔 온통 이들의 혈흔으로 비릿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단 한 번의 공격으로 엘 가문의 강자 모드를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다. 염구준의 눈엔 이들 정도 실력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승리를 확신했던 엘 가문 강자들은 모두 침묵에 휩싸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경호원이 가지고 온 의자에 앉은 채 턱을 치켜들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모두 자신의 처지를 알았을 테니, 손씨 그룹이 입은 손해를 어떻게 배상할지 논의해볼까요?”그 말을 들은 엘 가문 가람들은 그제야 자신들이 왜 이곳에 잡혀왔는지 깨닫게 되었다. 큰일이었다! 너무나도 압도적인 무력에 이들은 모두 전의를 잃은 상태였다. 하나 둘 배치된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전액 배상해드리겠습니다.”먼저 굴복하고 입을 연 것은 아까 제일 먼저 염구준이 올 때 소리쳤던 남자였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그를 따라 수그리기 시작했다.“저희가 빼앗았던 거 다시 돌려줄게요.”하지만 염구준은 쉽사리 이 상황을 끝낼 마음이 없었다. 힘들게 전국에서 사람을 끌어 모은만큼 대가를 받고 싶었다. “염 선생님이 원하시는 대로 하겠습니다.”이때, 눈치 빠르게
그들은 정말 두려웠다. 여기서 복종하지 않으면 정말 목숨을 잃을 것 같았다. 그렇게 결국 앨리스는 엘 가문의 진정한 족장이 되었다.“엘 가문을 통합시킨다면, 저희는 더 강해질 겁니다.”앨리스가 말을 마치고 옆에 있는 염구준을 지긋이 바라봤다.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여기에 실질적 결정권자가 염구준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다 봤으면, 이만 내려오지 그래?”염구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모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큰일이다. 들켜버렸다!홀 천장에서 그림자 하나가 빠르게 입구 쪽으로 움직였다. 그의 몸은 마치 주변과 동화된 듯,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쉽사리 분별도 못했을 것이다.인술이었다!“날 발견하면 어쩔 건데, 잡지도 못할 거.”닌자는 자신만만했다. 그의 은신 기술은 조직내에서도 최고였기 때문이다. “웃기는군!”염구준이 손을 공중에 살짝 휘두르자 무형의 힘이 검은 그림자를 잡아당겼다.말도 안 돼!닌자는 믿을 수 없었다. 그는 제대로 된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잡혀 버렸다. 눈 앞에 있는 이 남자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강했다. 그는 흑풍 존주가 자신을 속였음을 깨달았다.“흑풍 조직의 사람이지? 뭐, 남길 유언이라도 있나?”염구준이 남자의 가슴에 그려진 표식을 보며 말했다. “잠깐, 할 말이 있어. 엘 가문에 관한 거야.”남자는 흑풍 조직에 가입한지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조직에 대한 깊은 충성심이 없었다.“그럼 말해.”염구준이 차갑게 대답했다. 어쩌면 남자의 입에서 옥패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할 테니까, 일단 이거 좀 풀어줘.”남자는 협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고 생각했다. 퍽! 하지만 염구준은 말없이 바닥에 눌려 있는 남자의 팔을 부러뜨렸다. 도마 위에 생선, 남자는 그제야 자신의 처지를 깨달았다.“마, 말할게.”그는 염구준이 이렇게 곧바로 폭력을 행사할 거라 예상치 못했다.“엘로자는 진작에 흑풍 존주의 손에 죽었어. 손씨 그룹을 공격하게 한 것도 모두 존주의 짓이야.”
“제일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개방의 대방주입니다. 전신 위 경지의 강자이고, 도가 매우 빠릅니다.”이면인은 대방주가 등장하자 황급히 염구준에게 알고 있는 전부의 정보를 제공해주었다.지금 그들은 같은 배에 탄 상황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았다.“네.”염구준은 대방주를 힐끗 쳐다보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전신 위의 실력 따위로는 그의 눈에 들지 못했다. 손 한 번 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내 동생을 다치게 한 게 바로 너냐?”대방주가 오만하게 물었다.염구준의 힘이 깊이 숨겨져 있던 터라 한참 동안 관찰했어도 그는 상대방이 강한지, 약한지 보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위협적인 기운도 감지되지 않았기에 그는 상대방이 단지 전신 정도에 불과하다고 단정 지었다.“그렇다면 어쩔래? 네 동생이 먼저 덤벼든 거야.”염구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네 스스로 두 팔을 자르면 목숨만은 살려주마.”대방주는 날 선 눈빛으로 말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지금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위를 입증하고,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네가 개방의 모든 산업을 넘기고 이 귀울진에서 사라진다면, 나도 너를 살려줄 수 있어.”염구준은 같은 말투로 대답했지만 농담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미 진씨 가문을 개방 대신 3대 세력 중 하나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만약 개방이 순순히 물러난다면 굳이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염구준의 말에 이면인은 안절부절 못했다.그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진씨 가문의 복수는 물거품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차마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하하하!”“죽어라!”대방주는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다가 표정을 굳히더니 도를 들고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전신 위의 기운을 전부 내뿜으면서 말이다.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할 뿐만 아니라 개방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화려하게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기에 이면인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그는 이렇게 큰 일을 하는데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네, 아니면 내일까지 기다리자는 건가요? 전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염구준은 이미 확실하게 말했다. 별 일도 아니고, 빨리 해결해야 진씨 가문의 가보에 대한 정보를 얻어 빨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이면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이 동급 무수자들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개방의 대방주는 전신 위 경지의 실력자입니다.”“갈 겁니까, 말 겁니까?”이미 문 앞까지 도착한 염구준은 짧게 물었다. “가겠습니다. 바로 사람들을 모으겠습니다.”이에 이면인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뿐더러, 진씨 가문은 이미 개방에게 심하게 몰려 있는 상태라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한 번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면인은 진씨 가문의 사람들을 이끌고 개방의 본거지인 ‘개소굴’ 로 향했다.이들의 움직임은 귀울진의 여러 세력들의 주목을 받았고, 길거리에 있던 이들도 수군거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저거 이면인 아니야? 평소에는 그렇게도 비굴하던 놈이 지금 뭐하는 거야?”“뭔지는 몰라도 지금 저 기세를 보아선 무슨 큰일을 꾸미려는 게 틀림없어.”진씨 가문은 자신들의 실력을 철저히 숨겨왔기에, 3대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한 힘을 전혀 알지 못했다.행진하는 진씨 가문의 사람들의 뒤에는 구경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개방한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형님, 제 팔을 끊어버린 놈을 반드시 처단해 주세요.”부상 치료를 받던 이방주가 힘겹게 말했다.과다출혈로 인해 그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는데,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말하는 목소리는 매우 허약했다.강력한 전신의 경지라 하더라도
이면인은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사람들에게 주변을 정리하게 하고 염구준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두 잔의 차를 내오며 거록 존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거록 존주의 본명은 진통신이라고 합니다. 저보다 몇 살 어리죠.”“진통신은 그 배에서 꽤나 뛰어난 몇 사람 중 하나로 손꼽혔습니다. 특히 망기술에 대한 이해와 수련은 그를 능가할 자가 없었죠.”“하지만, 그는 진씨 가문의 가보에 탐욕을 품고 비열한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결국엔 발각되어 가문에서 추방되었지만요.”“몇 년 후, 그는 다른 은세집안들과 힘을 합쳐 진씨 가문을 공격했고, 그로 인해 저희 가문은 큰 손실을 입고 사분오열되고 말았습니다.”...이면인은 거록 존주의 생애를 거의 다 이야기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염구준이 얻은 유용한 정보는 단 하나 뿐이었다. 거록 존주가 진씨 가문의 배신자이고, 가문의 가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그 외의 이야기는 대부분 쓸모없는 것이었다.“진씨 가문의 가보라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거록 존주가 그것을 손에 넣었나요?”염구준이 담담하게 물었다.당연히 그 가보가 탐나서 이렇게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것을 미끼로 사용해 거록 존주를 유인하려는 목적일 뿐이었다.“가지지 못했습니다.”이면인은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의 정보는 말하지 않았다.염구준은 말을 하다가 만 그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뭘 원하시는 겁니까? 돈을 더 주면 되나요?”염구준은 한 가문의 수령이 정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몰락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 가보라는 것이 현재 그들의 상황을 바꿀 수 없거나 애초에 그들의 손에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거래를 하나 합시다. 당신이 저희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해 주신다면, 가문의 가보가 있는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이때, 이면인이 제안을 했다.늘 괴롭힘을 당하는 그들에게 돈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가져도 어차피 빼앗길 것이 뻔했기에 그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말해보세요. 하지만 너
곧이어 그가 팔을 살짝 떨며 힘을 모으자 거대한 기운이 주먹 끝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으윽!”이에 이방주는 버티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몇 걸음 물러났다. 저릿한 팔을 보면서 그는 상대방이 전신의 경지에 불과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그가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건 염구준이 같은 경지의 적수를 만났을 때 한 번도 진적이 없다는 것이다.염구준이 반보천인의 힘을 사용하지 않은 건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서였다.“내가 대충 날린 한 방도 못 막는 걸 보면 넌 겨우 그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네.”염구준은 조소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가 만약 칠권합일까지 사용했다면, 이방주는 이미 중상을 입고 쓰러졌을 것이다.“오만하게 굴지마라.”염구준의 비웃음에 화가 치밀어 오른 이방주는 허리춤에서 연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사실 그는 방금 전의 전투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비장의 카드를 남겨두고 있었다.“검을 쓰려고?”이 모습을 지켜보던 염구준은 흥미롭다는 듯이 감탄하며 더욱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그의 앞에서 검을 휘든다는 건 마치 관우 앞에서 대도를 휘두르는 격이었다.쉭!그의 연검은 매우 유연했다. 이방주는 검을 몇 번 흔들고는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그러나 염구준의 눈에 비친 상대방의 검술은 초보자가 선보이는 것처럼 서투르기 짝이 없는, 아니 심지어는 검술에 대한 모욕이다 싶을 정도로 가관이었다.염구준은 곧바로 오른손으로 검결을 만들며 검의를 불러일으켜 검기를 먼들었다. 검 없이 기운만으로 만들어진 검기라 크게 힘을 내진 못했지만, 이방주를 상대하기에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푹!검기는 곧 이방주의 검과 팔을 관통했고, 구멍이 뚫린 팔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더 볼 것도 없이 이건 이방주의 패배였다.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각자의 진영으로 물러났다.승패가 이미 결정된 이상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할 필요가 없어서였다.“말도 안 돼! 어떻게 전신의 경지가 이렇게까지 강
상황을 정리한 염구준은 계속 지켜봤다.개방의 이방주가 이면인을 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가주가 왔으니 우리 시비를 따져보자고. 오늘 아침에 그쪽 사람이 우리 애들을 때렸어. 그래서 치료비라도 챙기려고 왔는데 이게 과분한 처사 아니지?”수백 명이 되는 개방 무리가 돈을 갈취하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 누굴 때렸어?”이면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몰라. 때렸으니 치료비를 줘.”이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돈을 뜯어내겠다는 뜻이다.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퍽!이면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가방을 던져주면서 물러났다.“이 돈이면 충분해?”“부족해. 여기 땅을 줘.”이방주는 쳐다보지 않고 낡은 별장 구역을 가리켰다.가방에 고작 몇 백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땅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그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집이란 말이다.”이면인은 궁지에 몰리자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뒤에 있던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차서 씩씩거렸다.용하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왔는데 땅을 내준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렇다면 상의할 필요도 없겠네.”이방주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서 진씨 가문을 공격했다.이 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죽기 살기로 싸우자!”이면인도 악을 쓰면서 기운을 발사했다.전신 경지였다.“진씨 가문이 정말 몰락했네.”멀리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혀를 찼다.은세가문에서 아무리 약해도 반보천인 가주가 있어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문이란 그랬다.일어서면 몰락하는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겪었다.천 년을 이어온 가문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하기 때문이다.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벌써 한쪽 실력이 기울어졌다.진씨 가문은 개방의 상대가 아니었다.가장 실력이 있는 이면인이 같은 경지인 개방의 이방주에게 눌려서 얻어맞고 있었다.망기술은 독특한 술법이지만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이면인이 곧 죽을 것 같았다.하지만 염구준은 아
“사람 찾는 건 일도 아닙니다. 용하 화폐로 200만 원입니다.”귀울진은 용하와 접해 있기에 용하 화폐를 사용했다.“용하에서 건너온 진씨 가문을 찾아주세요. 돈은 얼마든지 드릴게요.”염구준이 통쾌하게 대답했다.지금은 사람을 찾는 것이 중요하니 돈은 얼마를 써도 상관없었다.“은세가문인가?”이면인의 안색이 굳어졌다.그 표정을 보니 진씨 가문의 소재를 아는 것 같았다.염구준이 그것을 눈치챘다.“알고 있으면 말씀하세요. 아니면 우려하는 거라도 있습니까?”“진씨 가문에서 돈을 주면서 그들의 정보를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요.”이면인이 간사한 웃음을 지으며 염구준의 눈치를 살폈다.“그럼 얼마나 원합니까?”염구준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1000만 원이요.”이면인은 열 손가락을 내밀며 말했다.“그렇게 많지 않아요. 갖고 온 돈은 전부 여기 있어요. 말하기 싫으면 그만두죠.”염구준은 가방을 앞으로 던져버렸다.그 말에 이면인은 가방을 들어 대충 훑어보았다.적어도 몇 백만 원은 들어 있는 것 같았다.“두 블록 가면 진씨네 국수집이 있는데 거기가 주둔지예요.”“거짓말은 아니겠죠?”염구준이 한마디 더 했다.“절대 거짓말이 아니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신용을 잘 지킨다고 소문이 났어요.”이면인은 가방을 챙기고 싱글벙글 웃더니 엄숙하게 대답했다.이 돈이면 3년을 문을 닫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알았어요. 돈은 받으세요.”염구준은 돌아서 잡화점에서 나갔다.10분 뒤, 이면인은 도둑처럼 가방을 들고 잡화점을 나오더니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빠르게 한 방향으로 달려갔다.이 사람 역시 문제가 있었다.염구준은 숨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입꼬리를 올렸다.이렇게 쉽게 돈을 떼먹다니, 세상에 그렇게 좋은 일은 없다.옆에 진씨네 국수집은 이미 오기 전에 들러서 알고 있었다.모두 평범한 사람으로서 진씨 가문이 누군지조차 몰랐다.“마을 호텔에서 기다리세요. 처리하고 찾으러 갈게요.”염구준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는 마을이라 현지 정부에서 아예 관리하지 않아 자치 행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그래서 죄를 지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피난하기 좋았다.점점 많은 범죄자들이 몰려들어 귀울진을 발전시킨 덕분에 마을 규모는 중등 도시 못지 않았다.하지만 법이 존재하지 않아 치안이 엉망이었다.“젊은이, 이곳에 별의별 놈들이 살아서 아주 위험한 곳이야. 백가, 개방, 목숨파를 조심해.”“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일 뿐, 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진씨 가문도 은세가문인데 어떻게 이곳으로 쫓겨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한 가지 가능성은 진씨 가문에서 몰래 잠복해 있다면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그는 과일 가게를 지나갈 때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사장님, 여쭤볼 게 있는데요.”“과일을 안 사면 아무것도 묻지 마.”사장님은 염구준을 쳐다보지도 않고 시큰둥하게 말했다.어쩔 수 없이 돈을 써야 했다.지폐 한 장을 건넸더니 사장님은 금세 미소를 지으며 공손하게 말했다.“손님, 저는 이 지역에서 유명한 소식통이에요.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얼마든지 물어보세요.”“진씨 가문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염구준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몰라요. 하지만 저기 구두가게 사장이 진씨입니다.”과일 가게 사장은 솔직하게 말했지만 쓸모 있는 정보는 하나도 없었다.“알겠습니다.”염구준은 머리가 아팠다.이곳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돈만 밝히고 허풍만 떨어서 믿을 만한 사람이 없었다.전에도 몇몇 사람에게 물었지만 모두 돈만 받고 아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그에 비하면 안내자 노인은 성실한 편이었다.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고대영이 조사한 정보가 이것밖에 안 되니까.진씨 가문이 귀울진에만 있다는 것만 알아내서 나머지는 염구준이 발품을 팔아야 했다.그때 노인이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젊은이, 내가 귀울진의 정보왕을 알고 있는데 원하는 가격이 너무 사악하고 별로 좋은 사람은 아니야.”만약 염구준이 빨리 처리한다면 다른 일에 연루되지 않고 빨리 돌아갈 수 있다.귀울진
노인은 당황해하며 현금 몇 장을 더 놓았다.“전부 여기 두었어. 그러니까 보내줘.”오늘 변고가 생겨 톡톡히 손해를 보아 속으로 산적들에게 욕을 퍼부었다.하지만 산적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수레에 누운 염구준을 가리켰다.“저놈을 남기고 영감은 가면 돼. 소는 우리 형제들이 먹게 넘겨.”“안 돼. 우리도 소 덕에 먹고 사는데 넘기면 굶어 죽어.”노인은 애지중지하는 소를 끌고 되돌아가려고 했다.이 산적들은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피 말려 죽이려는 셈이다.예전에 길을 막던 산적들은 이 정도로 선을 넘지 않았다.그냥 돈만 조금 주면 알아서들 떠났다.만약 안내자를 전부 소멸하면 누구도 이 길을 지날 수 없고 그들은 산에서 굶어 죽어야 했다.“거기서. 죽고 싶어?”그들은 무기를 쳐들고 노인에게 돌진했다.우두머리는 손에 총까지 들고 있었다.‘젠장.’노인은 걸음을 멈추고 의기소침한 얼굴로 뒤를 힐끔 돌아보았다.오늘 여기서 도망치지 못하고 죽게 생겼다.“여기 개판이네. 벌건 대낮에 길을 막고 강탈하냐?”그때 염구준이 수레에서 내리며 바닥에 있는 자갈들을 발로 차서 뿌렸다.파팟!자갈은 빠른 속도로 튕겨 달려오는 무리들에게 하나씩 명중했다.그리고 핏방울을 튕기며 전부 바닥에 쓰러트렸다.순식간에 발생하여 상대방은 준비할 시간도 없이 전멸한 것이다.그래도 산적들은 죽어 마땅했다.“어르신, 뭐 하세요? 갑시다.”염구준은 얼떨떨해 서 있는 노인을 향해 소리쳤다.가는 길에 도운 것뿐이니 별일도 아니었다.“어, 그래.”그제야 노인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방금 일어난 일은 정말로 충격적이었다.바로 그때 노인이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조심해.”우두머리 산적이 죽지 않고 총을 들고 염구준을 향해 미친듯이 돌진하는 것이다.“개자식, 죽어라!”펑펑펑!산적은 방아쇠를 힘껏 당겨 총을 몇 발이나 쏘았다.노인은 너무 놀라 두 눈을 찔끔 감고 죽지 않기를 기도했다.그런데 모든 탄알을 사용했지만 염구준은 여전히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서커스단 일 때문이야?”손가을이 눈살을 찌푸렸다.청해에서 최고 여성 사업가 신분으로 며칠 전에 있었던 서커스단의 사건에 대해 꽤 많은 정보를 알고 있었다.“맞아. 서커스단과 연관이 있어. 제때에 처리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험에 빠질 거야.”염구준이 인정했다.“그럼 빨리 다녀와. 난 희주를 지키면서 집에서 기다릴게.”손가을은 서운했지만 억지로 웃었다.남편이 하려는 일에 그만큼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아내로서 가정과 손씨 그룹을 지켜서 남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지지나 다름없었다.하지만 다른 방면으로 말하면 아직 실력이 부족해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했다.“가을아, 넌 정말 최고야.”염구준은 다가가 아내를 와락 끌어안았다.손가을은 마음이 너그러워서 염구준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다들 보고 있어. 집에 가서 안아줘.”손가을이 얼굴을 붉히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누가 보는데?”염구준이 뒤돌아보았더니 들어올 때 문을 닫지 않아서 직원들이 목을 길게 빼고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다들 깨알 쏟아지는 장면을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흠흠.”염구준이 헛기침을 하자 다들 아무것도 못 본 것처럼 눈길을 돌려버렸다.문을 닫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았다.염구준은 아내를 풀어주고 또 구경하러 몰려들까 봐 사무실 문을 닫으러 갔다.손가을은 이어서 업무를 보고 염구준은 옆에서 가끔 서류를 건네며 퇴근 시간까지 함께 있었다.부부는 학교에 들러 딸을 데리고 밖에서 저녁까지 먹고 집에 돌아왔다.이튿날 아침, 염구준은 미리 아침밥을 준비해 놓고 귀울진으로 향했다.빨리 처리하고 일찍 돌아올 생각이었다.용하와 접한 국경 도로에 소 수레 한 대가 여유 있게 가고 있다.수레에 앉은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귀울진은 외진 곳에 있어 도로는커녕 사람이 지날 수 있는 길조차 없었다.그는 안내원을 찾아 원시적인 교통 수단으로 이동하기로 했다.길에서 노인이 이곳의 풍습을 소개했다.하지만 진씨 가문을 들어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