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세영은 말도 안 된다는 얼굴로 그쪽을 바라보았다.그러다 은설아 옆에서 같이 웃으며 나오는 소채은과 윤구주를 보고는 머리가 멍해졌다.“정말 소채은이잖아? 아니 쟤가 왜 저기 있어?!”주세영은 입을 떡하니 벌린 채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와, 저 언니 진짜 대박인데? 은설아랑 친분도 있고 같이 밥도 먹어? 미쳤다 진짜.”천해윤은 눈을 반짝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그녀에게 은설아란 단순히 연예인이 아닌 신과 같은 존재였다.그런데 오늘 본 사촌 언니가 그런 존재와 함께 웃으며 밥까지 먹었는데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을까!“큰일이네... 엄마!”천혜윤은 갑자기 주세영을 불렀다.“왜? 또 뭔데?”“저 언니가 은설아랑 함께 밥까지 먹은 걸 보면 오늘 우리한테 준 그 영지버섯 정말 귀한 게 맞나 본데요...?”그 말에 주세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천해윤의 말대로 연예인과 겸상까지 하는 걸 보면 분명히 평범한 신분은 아닌 게 분명했다.몇십억이 넘는 영지버섯이 고작 강아지 뱃속으로 들어갔다는 것이 떠오르자 주세영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뺨을 몇 대 후려치며 탄식했다.“다 나 때문이야. 내가 멍청했어. 그걸 바닥에 버리지만 않았어도 강아지 뱃속에 들어갈 일은 없었을 건데, 아이고!!”천해윤도 속상하긴 마찬가지였다.그녀는 사실 방금까지만 해도 소채은이 가지고 온 영지버섯이 가짜라고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렇게 은설아와 함께 있는 것을 보니 그 영지버섯은 높은 확률로 진짜가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한편, 미향각에서 나온 윤구주는 은설아에게 물었다.“은설아 씨, 혹시 지금 묵고 계시는 곳이 어딘지 여쭤봐도 될까요?”“호텔에 있어요.”그녀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윤구주는 은설아가 혼자 묵고 있다는 것을 듣더니 잘됐다는 얼굴로 제안했다.“그러면 저희와 함께 백화궁에서 지내는 건 어떨까요?”오늘 그런 일을 겪었는데 트라우마가 남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리고 윤구주는 처음부터 이대로 손을 털 생각이 없었다. 천음 엔터 사장을 죽였으니 남
백화궁.은설아가 이곳으로 온다는 소식에 백화궁의 미녀들은 하나둘 입구로 나와 구경했다. 그중에는 연규비도 있었다.백화궁이 서남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유명 연예인을 보게 되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윤구주 일행이 차에서 내리자 입구 쪽에 있던 사람들은 잔뜩 흥분한 상태로 발을 동동 굴렀다.“어떡해. 정말 은설아잖아!”“‘세기말의 사랑’의 여자주인공 맞지?”“그래. 그 은설아!”“내 두 눈으로 직접 보는 날이 오다니. 그런데 어떻게 은설아는 화면보다 실물이 더 예뻐?”이 말을 하는 그들도 쭉 뻗은 다리에 하나같이 예쁘장한 얼굴이었지만 절세미녀라 불리는 연예인 앞에서는 감히 명함도 내밀지 못했다.연규비도 은설아를 보고는 속으로 감탄을 금치 못했다.“은설아 씨, 이따 사인 좀 부탁해도 될까요?”“함께 사진 찍어주시면 안 돼요?”“팬이에요!”곧 있으면 눈에서 하트가 튀어나올 듯한 그들을 보며 연규비는 못 말리다며 고개를 저었다.“이제 그만해. 이곳까지 찾아와 주신 손님한테 이게 무슨 무례야. 너희들 때문에 더 피곤하시겠다.”“어머, 그러면 안 되죠! 궁주님 말대로 이곳의 손님인데 저희가 편히 모셔야죠!”그때 윤구주가 은설아를 데리고 다가왔다.“은설아 씨, 먼저 소개부터 하죠. 이쪽은 백화궁의 주인, 연규비 궁주입니다.”윤구주의 소개에 은설아는 속으로 멈칫했다.눈앞에 있는 여인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 때문이다.연규비는 예쁜 것에 더해 그녀 특유의 아우라가 있었다. 게다가 몸매 역시 시선을 뗄 수 없었고 말 그대로 완벽한 여자 그 자체였다.“안녕하세요. 은설아라고 해요. 갑자기 찾아와서 실례가 아닌지 모르겠어요.”“실례라니요. 이곳 백화궁에 와줘서 너무 기뻐요.”두 사람은 서로가 마음에 드는 듯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나눴다.“그렇게 말해줘서 저야말로 너무 기뻐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얘기해주세요.”“네, 그럴게요.”인사를 마친 후 윤구주는 은설아를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은설아는 백화궁과 윤구주의
은설아는 이틀 동안 줄곧 백화궁에 머물렀다.연예인이라 그런지 소채은과 연규비는 그녀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이틀 동안 두 사람은 은설아의 옆을 벗어나려고 하지 않았다. 모든 관심이 은설아에게 쏠려 윤구주는 관심 밖이었다.한편, 환을 제조하는 것에 여념이 없던 윤구주의 방에 정태웅이 들어왔다.“저하, 천음 엔터에 대해 알아 왔습니다.”그 말에 윤구주는 손동작을 멈추고 서서히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얘기해 봐.”“이것 참, 조사해 보니 천음 엔터가 국내 최고가는 엔터테인먼트 기업이었더라고요.”“계속해봐.”“천음 엔터 회장의 이름은 탁천수라고 합니다. 몸값만 해도 몇십조는 된다고 해요. 탁천수는 엔터 회사 말고도 영화 산업에도 투자를 많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연예계 쪽에서는 탁천수를 모르면 간첩이라는 소리까지 나온답니다. 유명 연예인이든 감독이든 이 사람에게 찍히면 그날로 바로 매장된다는 소리도 있습니다.”“그리고 탁천수는 향문과 대헌 쪽 거물들과도 사이가 긴밀하고 해외의 비밀 조직과도 이런저런 연관이 있다고 합니다. 돈도 있고 권력도 있는 사람인 거죠. 게다가 아들 바보로 유명하고 저하가 죽인 탁시현이 탁천수의 유일한 아들이라고 합니다.”정태웅은 조사한 내용을 하나도 빠짐없이 읊었다.윤구주는 그의 말이 끝나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대단한 아버지가 뒤를 봐주고 있어 탁시현이 그렇게 겁 없이 날뛰었던 거군.”“저하, 탁천수 쉽게 볼 놈은 아닌듯합니다. 그리고 지금쯤 제 아들이 서남에서 죽었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거고요.”정태웅의 말에 윤구주는 피식 웃었다.“잘됐네. 어디 탁천수가 얼마나 대단한 거물인지 한번 볼까?”“저하, 이 일은 저한테 맡겨주세요. 저하의 명령이 떨어지는 즉시 형과 천현수에게 전화를 걸어 행동을 개시하겠습니다. 그 둘이라면 아마 24시간도 안 돼 탁천수의 목을 저하 앞에 바칠 수 있을 겁니다.”윤구주는 고개를 저었다.“일반인 상대로 굳이 암부원들이 나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화진 암부는 화진의 비밀 병기 같은
당시 그 소식을 전해 들은 윤구주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홀로 부성국으로 쳐들어갔다.윤구주는 부성국의 순찰함 세 대를 박살 냈을 뿐만이 아니라 부성국 군대를 단번에 쓰러트렸다.전투가 끝이 난 후 그는 부성국 땅을 밟고서 부성국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말했다.“지금, 이 순간부터 화진 어선은 그 어떤 제약 없이 자유롭게 이 근방을 항해할 거다. 의의 있으면 나를 찾아오도록!”그 사건 이후 남경 연해의 백성들은 윤구주를 신으로 모셨다.특히 어민들은 자신들을 지켜준 윤구주를 사랑해 마지않았다.갑자기 연해 포격 사건을 들먹이는 정태웅을 향해 윤구주가 의문 섞인 눈길을 보냈다.“그런데 갑자기 그 일은 왜 꺼내는 건데?”정태웅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은설아 씨의 본가가 남경 연해 쪽이랍니다.”“호오?”윤구주는 꽤 놀란 듯 흥미로운 얼굴을 했다.“그리고 5년 전에는 아직 학생이었다고 하네요.”“그런데 그 일이 나를 좋아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지?”“조사에 따르면 은설아 씨 아버지가 부성국 쪽의 압박을 받았던 어민 중 한 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 와중에 저하가 연해의 백성들을 구제해줬으니 얼마나 감사했겠어요. 은설아 씨도 그 사건을 기점으로 저하를 몰래 숭배하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아직 학생이던 시절 머리맡에 ‘구주왕’이라고 써 붙여두기까지 했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그 사모해 마지않는 남자가 저하라는 것은 모르고 있다고 합니다.”정태웅은 연애 얘기에 잔뜩 흥분한 사춘기 남자애처럼 키득거렸다.윤구주는 은설아가 그때의 그 어민 중 한 명의 딸일 줄은 몰랐다.“저하, 사람 인연이라는 게 참 기묘하지 않습니까? 학창시절부터 좋아했던 저하를 갑자기 이렇게 만나게 된 것 말입니다. 이건 하늘도 돕는 겁니다. 그러니까 얼른 저하의 여자로 만드세요. 매일매일 저하만 생각하는 여인이 가엽지도 않으세요?”정태웅의 말이 끝나자마자 윤구주는 옆에 있던 책으로 그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한 번만 더 그딴 헛소리 하면 그때는 꼬맹이한테 너 손봐주라고 할 거야.”
“은설아 씨, 사인 해주세요.”“저와는 같이 셀카 찍어주시면 안 될까요? 가족들한테 은설아 씨 봤다고 자랑하게요.”“저는 셀카가 아니어도 돼요. 가까이에서 사진만 찍게 해주세요.”이른 아침, 은설아가 방에서 나가자마자 백화궁의 여자들이 몰려와 사진과 셀카를 부탁하기 시작했다.요 며칠 크게 바쁜 일도 없었기에 은설아는 예쁜 미소를 지으며 그들에게 사인도 해주고 같이 셀카도 찍어주었다.“은설아 씨는 어쩜 예쁜 데다가 착하기까지 해요? 나는 연예인들이 모두 도도하고 차가울 줄 알았어요.”“그러니까요. 역시 톱스타는 다른가 봐요.”“그보다 은설아 씨 솔직히 한번 말해봐요. 연예계 쪽에서 대시 많이 받죠? 어떤 남자 연예인들이 들이댔는지 얘기해줘 봐봐요, 네?”가십거리에 눈이 초롱초롱해진 그들을 보며 은설아는 미소를 지었다.“그렇지도 않아요.”“에이, 솔직히 이런 미모를 어떤 남자가 가만히 놔둬요. 연상은 물론이고 연하들도 잔뜩 노리고 있을 것 같은데.”“그런데 아무나 만날 수는 없지. 들이대는 사람은 많아도 마음에 드는 사람은 없을 수도 있잖아.”“하긴 그것도 그래. 겉만 멀쩡하지 속은 썩어버린 인간들이 많으니까. 그래도 다들 비밀리에 잘만 사귀던데?”은설아는 여전히 웃으며 그들의 대화를 듣기만 했다.하지만 확실히 그들의 말처럼 연예계에는 겉만 멀쩡한 사람들이 많고 힘든 순간에 은밀하게 스며드는 유혹도 많다. 그런 유혹들은 다 뿌리치고 고결한 상태를 유지한다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은설아는 달랐다. 그녀는 데뷔하고 나서 지금까지 그 흔한 스캔들 하나 없었다.본디 그런 유혹에 잘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고 제일 큰 이유는 그녀에게는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은설아 씨는 지금 남자친구 있어요?”“남자친구는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은 있어요.”“대박, 누군데요?”“말해봐요. 대체 어떤 남자가 우리 은설아 씨 마음을 홀라당 가져가 버렸는지 알고 싶어요!”은설아는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바라보았다.“제가
은설아는 이 사진의 존재를 알게 된 후 1억이라는 거금을 들여 사진을 사들였고 그 뒤로는 줄곧 몸에 지니고 다녔다.사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에서 애정이 가득 쏟아져나왔다.은설아는 소파에 앉아 한참이나 사진을 바라본 뒤 천천히 자신의 심장 쪽에 가져다 댔다.그 누구도 톱스타인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하는 남자가 구주왕이라는 사실을 모른다. 또한, 그 누구도 그녀가 그 남자를 위해 여태 순결의 몸을 간직했다는 사실을 모른다.오직 그 남자를 만나기 위해 다른 남자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하지만 그녀가 마음속에 품은 남자는 이미 죽어버렸다.그녀가 감상에 젖어 있던 그때, 휴대폰 알림음이 들려왔다.휴대폰을 집어 들고 알림을 확인해보니 회사에서 수십 통의 메시지가 날아왔다.메시지들의 내용은 모두 은설아의 대외 활동 정지에 관한 것이었다.그것들을 하나하나 체크하던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서남에서 일어난 일을 천음에서 알았나 보네. 활동 정지라... 뭐 상관없어. 연예인 못하게 되면 다른 살길을 알아보면 될 일이니까.”은설아는 마지막 메시지까지 확인한 뒤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때,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그녀는 노크한 사람이 사인이나 셀카를 원하는 여성 팬인 줄 알고 문을 열었다.끼익.하지만 방문이 열리고 눈에 들어온 사람은 팬들이 아닌 윤구주였다.“어머... 안녕하세요.”은설아는 조금 놀란 얼굴로 일단 인사를 건넸다.“안으로 잠시 들어가도 될까요?”“네? 네네, 그럼요. 들어오세요.”은설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서둘러 그를 방안으로 모셨다.윤구주는 그녀의 걸음을 따라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방이 좀 어지럽죠? 하하... 참, 커피로 드릴까요, 아니면 차로 드릴까요?”윤구주는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제가 이곳으로 온 건 은설아 씨와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예요.”“그러시구나. 앉으세요.”은설아는 예쁘게 웃으며 소파를 가리켰다.소파에 앉은 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힐끔 바라보았다.조막만 한 얼굴
“그러다 부성국 순찰함이 공격을 해왔죠.”은설아는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런데 그 사건은 갑자기 왜 묻는 거예요?”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확인할 게 있어서요.”“확인할 거요? 그게 뭔데요?”은설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혹시 구주왕이라고 아세요?”구주왕.이 세글자가 들려오자 은설아는 몸을 흠칫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데요?”윤구주는 여전히 미소만 지은 채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별건 아니고 그냥 궁금할 뿐이에요.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못 들은 거로 해요.”은설아는 잠깐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분의 명성은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전 그분을 숭배하고 또 존경해요.”“그래요? 실제로 만난 적은 없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존경하게 된 거예요?”“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어요. 존경하게 된 계기는 그분이 저희 부모님을 구해주셨거든요. 우리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남경 연해의 모든 어민들과 백성들에게 그분은 구세주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남자로 태어나면 군에 입대해 화진을 지키는 삶을 살며 여자로 태어나면 구주왕에게 시집 가 은혜를 갚는다는 말도 있을 정도예요.”은설아의 진지한 말에 윤구주는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해댔다.세상에, 이건 또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진짜예요. 저희 쪽 사람들은 그분께 정말 많이 감사하고 있어요. 물로 저도 그중 하나고요.”구주왕의 얘기를 하는 은설아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마 마음속 깊이 존경심을 품고 있기에 가능한 모습일 것이다.“그리고 저는 그분 사진도 간직하고 있어요. 지금도 지니고 있고요. 혹시 보실래요?”자신은 진심이라는 것을 어필하듯 은설아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윤구주는 그녀의 말에 조금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구주왕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요?”“네!”“하지만 제가 알기론 그분은 사진 같은 거 안 찍는 거로 아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사진이 있을 수 있죠?”
그녀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조금 신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작 이 사진 하나 갖겠다고 그런 거액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은설아는 사진을 바라보며 감성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이 사진을 손에 넣고 난 뒤로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윤구주는 씩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녀는 지금 사진의 주인공을 바로 앞에 두고 사진 속 남자만 그리워하고 있다.게다가 얼굴이 나온 사진도 아니고 고작 뒷모습만으로도 이렇게나 애틋해 하고 있다.물론 그는 자신이 바로 구주왕이라는 사실을 밝힐 생각은 없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은설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자신을 좋아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측은지심이 들었다.“그분의 얘기를 꺼내시는 건 혹시 은인님도 저처럼 그분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인가요?”은설아는 예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이에 윤구주는 소리 내 웃었다.“뭐 그렇죠.”“역시 은인님처럼 좋은 분이라면 그분을 존경하실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은인님도 그분 못지않은 히어로세요.”윤구주는 그 말에 또다시 하하 웃었다.“저기 은인님...”은설아가 뭐라 얘기하려는 그때 윤구주가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었다.“은인님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저는 윤구주예요.”“그럼 앞으로 구주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네.”그는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때 은설아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은설아의 얼굴이 금세 굳어버렸다.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가 속해있는 매니지먼트 회사 사장인 장철민이었다.“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은설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네, 사장님.”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설아, 너 미쳤어? 좀 뜨고 나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거야? 어떻게 감히 천음 엔터와 척을 질 수 있어?! 게다가 사람까지 고용해서 탁시현 사장을 죽였다며?! 빌어먹을, 너 때문에 우
말을 마친 천희수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소채은에게 전화했지만, 소채은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얘가 왜 휴대폰은 끈 거야?”몇 번 전화를 더 해봐도 휴대폰은 여전히 꺼져있었다.천희수가 답답해하자, 그녀 옆에 있던 소청하가 상황 수습에 나섰다.“구주야, 걱정하지 마. 채은이 네가 너무 그리워서 산책하러 나갔나 보다. 아마 곧 돌아올 거야.”소채은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본 윤구주는 조금 서운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강성의 스카이가든, 이곳은 소채은이 소씨 가문에서 쫓겨 난 후 소채은과 윤구주가 함께 살았던 곳이었다.소채은과 그녀의 곁에 고분고분하게 누워있는 까망이가 지금 이곳에 있었다.윤구주가 혼자서 설국을 상대로 싸워 설국 전체를 화진의 속국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박창용한테서 들은 후부터 그녀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쓸쓸하기도 했다.기뻤던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이 세상의 위대한 영웅이라는 사실이었고, 쓸쓸했던 것은 자신이 윤구주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우두커니 소파에 앉아 있던 그녀는 하얀 다리를 껴안은 채 옆에 있던 까망이에게 물었다.“까망아, 그가 이제는 돌아오지 않겠지? 하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천하를 뒤흔든 구주왕의 배필로 전혀 어울리지 않긴 해. 사실, 나도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평생 그와 함께 할 수 있을 텐데…”말하다 말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소채은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부귀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녀의 바람은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오손도손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그러나 윤구주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지라 당연히 그녀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그녀가 혼자서 흐느끼며 울고 있을 때 갑자기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소채은은 어리둥절했다.그녀의 옆에 있던 까망이도 극도로 흥분하여 문을 향해 멍멍 짖었다.“누구세요?”소채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 스카이가든은 그녀만의 사적인 공간이어서 부모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그런
고함과 함께 살기 가득한 눈빛을 한 백경재는 즉시 공격 태세를 갖췄다.“백 선생, 날 죽이려고?”익숙한 목소리가 백경재의 귓가에 들려옴과 동시에 윤구주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이 늙은이가 꿈꾸고 있는 건가? 저하?”갑자기 나타난 예구주를 보더니 백경재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윤구주가 미소를 지으며 백경재에게 다가갔다.“뭐야? 고작 반년 못 봤는데 날 잊은 거야?”“제가 어찌 저하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백경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저하가 정말로 강성으로 돌아왔다고요?”백경재는 여전히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당연하지. 나 윤구주 맞아.”윤구주가 싱긋 웃자, 백경재는 자기 얼굴을 꼬집었다.통증이 느껴지고서야 그는 비로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맙소사! 저하가 돌아오다니! 저하가 정말로 돌아왔네요!”용인 빌리지의 내부를 향해 백경재는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주 회장님, 채은 씨, 규비 여신님, 어서 나와들 보세요. 저하가 돌아왔어요!”백경재의 말에 서둘러 뛰쳐나온 주세호, 연규비, 소청하 부부, 그리고 박창용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저하!”“내 사위가 정말로 돌아왔다고?”“저하가 돌아왔어!”익숙한 사람들을 바라보던 윤구주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그래. 나야. 이 윤구주가 왔어.”윤구주가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우리 사위가 드디어 돌아왔네.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윤구주를 보자마자 소청하는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천희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물론 다른 사람들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잠깐, 천후 맞지? 수천도 있네. 너희들이 왜 저하 옆에 있어?”윤구주 뒤에 박천후와 염수천이 있는 것을 박창용은 발견했다.“하하하! 당연히 저하와 함께 창용 씨를 뵈러 왔죠. 그나저나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저하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았으면서도 왜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어요?”박
박창용이 말했다.“저도 잘 몰라요. 북방군과 황성 금위군이 흑여산맥에서 철수했다는 사실 외에 저하에 대해서 저도 아는 것이 없어요. 지금까지 감가 무소식이에요.”대청마루에 있던 모든 사람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다.모두 윤구주를 만나고 싶었지만, 박창용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조차도 윤구주의 행방을 모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어휴. 언제면 저하를 만날 수 있을는지.”백경재가 탄식했다.다른 사람들도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허탈한 표정만큼은 감추지 못했다.…이때, 강성의 숨겨진 공항에 군용 헬기가 천천히 착륙하더니 군인들이 공항 외곽을 철저히 봉쇄하기 시작했다.그리고 공항 활주로에는 수십 명의 중무장한 군인들로 채워졌다.헬기의 문이 열리자, 3명의 영웅인 박천후, 염수천, 그리고 윤구주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박 총사령관님! 염 통령님!”소령으로 보이는 한 장교가 박천후와 염수천이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보더니 즉시 차려 자세를 취했다.하지만, 이 장교는 윤구주를 알아보지 못했다.박천후가 이 장교를 힐끗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너희들은 이만 가봐.”“네!”그러자 두 줄의 군인들이 물러났다.“저하, 강성에 도착했어요.”윤구주를 향해 고개를 돌린 박천후가 공손하게 말했다.윤구주는 자리에 멈춰선 후, 강성의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 번 했다.“드디어 그녀를 만나게 되는가? 용인 빌리지로 갈 테니 차 준비해.”“네!”차를 준비하라고 박천후가 서둘러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박천후와 염수천을 데리고 용인 빌리지로 향하는 도중에 윤구주는 소채은과의 기이한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와 강성에서 보냈던 날들을 두 사람에게 말했다.그러자 박천후가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저하의 얘기를 들어보니 채은 씨는 엄청 착하신 분이네. 그녀를 만난다면 감사 인사를 제대로 드려야겠어.”“그래.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염수천도 찬성했다.윤구주는 창밖의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며 소채은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박창용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설국의 선대 국주가 갑자기 붕어한 탓에 다른 새 국주를 임명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새 국주가 여성이라던데.”주세호가 말했다.“주 회장의 말이 맞아. 그렇다면 설국의 젊은 국주가 왜 갑자기 붕어했는지는 알고 있나?”박창용이 또 묻자, 주세호가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주세호는 사업가인지라 국정에 대해 알 리 없었다.“참수당했어!”박창용은 큰 소리로 말했다.“네? 설국의 선대 국주가 참수당했다고요?”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네. 10국의 성원이었던 설국의 야심은 하늘을 찔렀어요. 특히 요 몇 년 동안에 우리 화진의 국경을 밥 먹듯이 침범한 탓에 그 대가를 치른 셈이죠. 이뿐만이 아니에요. 설국은 군신, 광명 신전 등 거물급 인사들까지 잃었어요. 당연히 이 모든 것은 한 화진 사람의 소행이고요.”이 말을 내뱉는 박창용의 목소리는 격앙된 상태였다.“그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요?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소행이에요?”소청하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화진 사람 한 명이 설국을 상대로 싸워 설국의 국주를 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소청하의 질문에 박창용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사람들에게 되물었다.“하하! 누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췄는지 여러분은 짐작이 가시나요?”“박 사령관님, 혹시 구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총명한 연규비가 물었다.“네? 저하라고요?”백경재가 외치자, 소채은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주세호와 다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박창용을 바라보았다.“저하를 잘 아는 사람은 역시 규비 여신님밖에 없네요. 맞아요. 설국의 국주를 참수하고 설국을 백 년 동안 우리 화진에게 굴복시키게 한 인물이 바로 저하에요.”박창용이 진실을 말하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홀로 한 나라와 맞선 데다 설국 국주의 목까지 베었다니!”“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설국을 백 년 동안 우리 화진의
박창용이 용인 빌리지에 온다는 소식이 퍼지자, 그가 윤구주의 소식을 가지고 왔을 것으로 생각한 백경재, 주세호, 그리고 소청하 부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모두가 앉아 있는 대청마루에 연규비가 들어왔다.“규비 여신님, 박 사령관이 무슨 소식을 가지고 온대요? 저하에 관한 소식인가요?”백경재가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연규비에게 묻자, 연규비가 답했다.“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박 사령관의 말투로 보아 그런 것 같아요.”“하하!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을까. 우리 저하의 소식이라니요.”감격에 겨운 듯 백경재의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물론 다른 사람들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서울로 떠난 반년이란 시간 동안에 윤구주는 문벌과 세가와 싸우느라 강성에 있는 식구들을 신경 쓰지 못했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이들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저하가 저희를 버리지 않았다고 제가 말했잖아요.”주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모두가 대청마루에서 창용 부대의 총사령관인 박창용을 기다리고 있었다.한 시간이 흐른 뒤, 용인 빌리지의 아래에 3대의 지프 군용차가 나타났다.차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실탄 장착한 총을 지니고 있던 경비병들이었다.그러고 나서 우람한 체구를 갖춘 박창용이 차에서 내렸다.“사령관님, 도착했습니다.”경비병의 말에 박창용이 고개 들어 용인 빌리지를 올려다보았다.“저하가 떠난 이후로 한 번도 오지 않았으니 꽤 오랜만이네. 다들 저하를 그리워하고 있겠지?”말을 마친 후, 박창용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이제 올라가 보자꾸나.”그는 경비병 몇 명과 함께 용인 빌리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박창용과 경비병들이 용인 빌리지의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입구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백경재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박 사령관님, 이제야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말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백경재를 바라보던 박창용은 하하거리며 웃었다.“백 대사님, 오랜만입니다.”“제가 얼마나 눈이 빠지게
“얘야, 이 어미도 네 아빠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서울이 우리 화진의 수도란 사실을 너도 잘 알잖아. 그런 대도시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길가에 즐비했어. 다른 여자들이 구주를 채가지 않게 신경 좀 써야 할 거야.”천희수도 입을 열었다.이들의 재촉에도 소채은은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아빠, 엄마, 너무 멀리 갔어요. 저와 인연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너무 연연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구주와 저 사이의 문제를 두 분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부모로서 어떻게 자식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를 바다에서 구해준 사람은 너야. 어찌 이리도 배은망덕할 수 있단 말이냐.”소청하가 말했다.“네 아빠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버리면 안 되지.”부모의 말에 소채은은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회사 갈 거니까 저와 구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소채은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채은아!”“채은아!”소청하와 천희수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소채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방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머리는 여전히 윙윙거렸다.사실 그녀도 윤구주를 원했지만, 명성이 자자한 윤구주가 강성과 같은 소도시에 자리를 잡을 리 만무하다고 소채은은 생각했다.“내가 그의 배필로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소채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이때, 갑자기 그녀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채은 씨, 오늘에 일찍 퇴근하셨네요.”그녀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우아한 각선미와 옥 같은 얼굴을 한 연규비가 보였다.길고 몸에 착 감긴 듯한 치마는 그녀의 S라인 몸매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연규비의 목소리에 소채은은 재빨리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렸다.“일이 바쁘지 않아 일찍 돌아왔어요.”“아. 정말요?”연규비는 소채은의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발견했다.소채은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채은 씨, 또 구주를 생각한 거예요?”연규비는 소채은에게 다가가
따르릉!이때, 소채은의 가방 안쪽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수신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너머에서는 천희수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은아, 너 어디야?”“밖에 있는데 무슨 일이세요?”소채은이 물었다.“네 아빠가 조금 전 쓰러져서 빨리 집으로 와야겠다.”“뭐라고요? 아빠가 쓰러지셨다고? 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화를 끊은 후, 소채은은 까망이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떴다.“까망아, 어서 집에 가자.”…용인 빌리지, 회사에서 돌아온 소채은이 잰걸음으로 정원에 있던 천희수에게 다가가 물었다.“아빠가 쓰러졌다면서요? 지금 어디 있나요?”소청하가 쓰러졌다고 말했던 것은 소채은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이들 부부가 꾸민 자작극이었다.딸의 물음에 천희수가 답했다.“점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글쎄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심각한가요? 아빠는 지금 어디 있는데요?”소채은은 다급히 물었다.“지금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얼른 가보자꾸나.”그녀들이 소청하를 보러 안방에 갔더니 소청하는 꾀병을 부리며 침대에 누워있었다.“아빠! 괜찮으세요?”누워 있는 소청하를 본 소채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채은이 왔구나. 난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돼.”소청하가 말했다.“쓰러졌는데 괜찮다니요. 제가 부축할 테니 지금 당장 병원 가요.”소채은은 소청하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나 정말로 괜찮아.”아프지 않으니 당연히 병원 갈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쓰러지셨다면서요?”소채은이 말했다.“얘도 참, 내가 쓰러진 이유는 구주와 네 일 때문이야.”소청하는 한숨을 내쉬었다.“저랑 구주요?”소채은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래. 이 바보야. 생각 좀 해 봐. 구주가 서울에 간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네 아비인 내가 어찌 걱정 안 할 수가 있냐?”소청하의 말에 소채은은 그제야 그가 꾀병 부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채은아, 네 생각을 아빠한테 말해줄 수 있어?”소청하가 소채은
“뭐가 아니라는 거야? 잘 생각해 봐. 구주는 화진의 왕이지만 우리는 무명 가문이야. 뭐가 부족하다고 우리랑 엮이려 들겠어. 게다가 구주 주변의 사람들도 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 연씨 성을 가진 여자도 TV에 나오는 톱스타보다 예쁘잖아. 구주가 구주왕이라는 신분을 등에 업고 있으니, 여자들이 줄을 선거지.”소청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천희수는 걱정이 앞섰다.‘천하무적 화진의 구주왕과 강성의 무명 가문이라… 천지 차이네.’이런 생각 하며 천희수가 입을 열었다.“그러면 이제 어떡하면 될까요?”소청하가 잠시 생각한 뒤 말을 꺼냈다.“이 일은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해. 우리 딸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야.”“채은이가요?”천희수는 어리둥절했다.“그래. 구주를 구한 건 우리 딸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딸을 버리면 안 되지. 그나저나 지금 당장 채은에게 전화해서 오라 해!”“하지만 채은이 회사 일 때문에 바쁘잖아요?”“당신 바보야? 회사 일보다 구주의 일이 더 중요해. 그가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자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구주가 우리 소씨 가문의 사위가 된다면 우리 가문을 빛내는 일인데 뭔 얼어 죽을 회사야!”천희수는 소청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알았어요. 그러면 지금 채은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할게요.”천희수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전화해서 당장 오라 해. 만약 오지 못하겠다면 서울로 가서 구주를 찾으라고 하고. 하늘이 두 쪽 나도 구주가 우리 딸을 버리면 안 돼.”소청하가 말했다.…강성의 해변, 한 여자가 해변에 홀로 앉아 있었다.바닷바람이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스치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그 여자는 바로 이른 아침에 회의를 마치고 홀로 해변에 온 소채은이었다.이 해변은 그녀와 윤구주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다.그 당시 그녀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해변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발견했던 것이었다.그때의 생각에 눈시울이 약간 붉어
주세호가 경호원들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자, 소청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주 회장님이 오셨네요. 어서 안으로 드세요.”주세호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마침 이 앞을 지나다가 들른 거야.”주세호가 말하면서 손을 휘젓자, 그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선물 박스와 고급 영양제들을 꺼냈다.“뭘 또 이런 걸. 지난번에 보내주신 것들도 아직 남았는데.”말은 그렇게 해도 소청하는 주세호가 준 비싼 물품들을 챙기기에 급급했다.“제 사위가 서울로 떠난 이후로 우리 가족을 돌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주 회장님.”소청하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그는 윤구주를 외부인 취급하지 않고 사위라 불렀다.“별말을 다 하고 그래. 난 그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주세호가 말했다.“어쨌든 감사합니다. 아! 맞다. 주 회장님, 최근에 제 사위에 대한 소식은 없나요?”소청하가 물었다.윤구주가 서울로 간 후부터 소청하는 윤구주의 소식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윤구주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었다.‘윤구주는 화진의 구주왕이야. 이렇게 좋은 신분을 가진 그를 소씨 가문의 사위로 삼는다면 우리 가문에 날개를 단 셈이지. 게다가 몇 대에 걸쳐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을 거야.’소청하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윤구주의 소식을 묻는 그의 질문에 주세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미안해. 나도 통 연락이 안 되네.”“그럴 리가요. 주 회장님, 구주가 서울에 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왜 여태 안 돌아오는 걸까요? 주 회장님은 친구도 많고 인맥도 넓으니까 제 사위가 서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사업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봐 줄 수 있나요?”“조급해하지 마. 난 저하를 믿어. 그가 일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너희들을 보러 올 거야.”소청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주세호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회사 쪽에 일이 있으니 먼저 갈게.”주세호가 핑계를 대고 떠난 후,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