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다른 이들을 두려워한 적은 없었다.고시연은 윤구주의 정체를 전혀 알지 못했다.그녀가 말했다.“윤구주 씨, 너무 거만하네요. 이 세상의 모든 일이 당신 마음대로 될 것 같나요? 당신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그래. 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윤구주는 오만하게 말했다.“당... 당신...”고시연은 윤구주처럼 건방진 사람은 난생처음 보았다.혼자서 800년 된 고씨 일가를 점령하고, 심지어 지금은 남궁 가문도, 이 세상도 그의 안중에 없다고 한다.고시연은 너무 화가 나서 몸을 떨었다.그녀는 윤구주가 죽지 않기를 바랐기에 그를 설득해 빨리 고씨 일가를 떠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윤구주는 그녀의 말을 전혀 듣지 않았다.고시연이 씩씩대고 있을 때 윤구주가 말했다.“당신처럼 이기적이고 제멋대로인 여자가 내 걱정을 해줄 줄은 몰랐어. 설마 날 좋아하는 거야?”“뭐라고요? 당신을 좋아하냐고요?”고시연은 그 말을 듣자 얼굴을 붉혔다.윤구주가 말했다.“아니야?”“당... 당신... 헛소리하지 말아요! 제가 왜 당신을 좋아해요? 당신은 우리 고씨 일가의 원수예요. 전... 전... 당신을 미워하기도 바쁜데 왜 당신을 좋아하겠어요?”고시연은 얼굴을 붉히면서 말했다.“그렇다면 왜 내 걱정을 하면서 나더러 고씨 일가를 떠나라는 거야?”윤구주가 물었다.“그건... 그건...”고시연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그렇다.그녀가 정말로 윤구주를 미워했다면 이 모든 것을 얘기하지 않았을 것이다.그녀는 그저 서울에서 남궁 가문이나 할아버지가 돌아와서 윤구주를 죽이기를 기다리면 됐다.고시연 본인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지금 그녀는 심장이 두근대고 얼굴이 화끈거렸다.얼굴이 빨개진 고시연을 본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됐어, 장난은 그만 칠게. 피곤하니까 와서 내 어깨 좀 주물러 봐!”고시연은 어이가 없었다.또 어깨를 주무르라니, 정말 그녀를 종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윤구주가 눈을 감으라고 하자 고시연은 긴장됐다.윤구주는 뭘 하려는 걸까?설마 그녀에게... 그런 짓을 하려는 걸까?그녀는 지금까지 순결을 지켰는데 어떻게 감히 그런단 말인가?고시연은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심지어 몸이 살짝 뜨거워지기 시작했다.비록 생각은 그렇게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의 기다란 눈매는 윤구주의 명령에 따라 감겼다.고시연은 호흡이 빨라졌다.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고시연은 두려웠다. 혹시라도 윤구주가 그녀에게 폭력을 휘두른다면 어찌한단 말인가?그렇게 고시연이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갑자기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미간을 톡 쳤다.빛 한 줄기가 고시연의 미간을 뚫고 들어갔고, 곧 고시연의 몸은 감전된 것처럼 심하게 떨렸다.이루 형언할 수 없는 무한한 현기가 그녀의 기경팔맥 속으로 들어갔고 곧 그녀의 미간에 언뜻언뜻 보였던 화련금안 낙인이 서서히 흐릿해지기 시작했다.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녀의 미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됐어. 이제 눈을 떠도 돼.”윤구주는 일을 마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고시연은 흠칫하며 눈을 떴다.그녀는 윤구주가 자신에게 그렇고 그런 짓을 할 거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윤구주는 그녀의 미간을 살짝 건드렸을 뿐이다.그리고 몸에서 느껴지던 작열감이 갑자기 사라지기까지 했다.고시연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윤구주가 말했다.“난 이미 너의 화련금안술을 풀어줬어. 넌 이제 자유야.”‘뭐라고?’“제게 걸었던 화련금안술을 풀었다고요?”고시연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그래.”고시연은 화련금안 낙인이 있었던 미간을 만지작거렸다. 몸속의 작열감도 사라진 걸 발견한 고시연은 당황했다. 그녀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왜... 왜 제게 자유를 돌려준 거예요? 절 통제해서 우리 고씨 일가를 위협하여 봉안보리구슬을 내놓게 할 생각 아니었나요?”윤구주는 피식 웃었다.“난 내가 원하는 걸 남을 위협해서 얻어내지 않아. 넌 인제 그만 가봐도 돼.”윤구주의 말을 들은
“지휘사님, 부성국 놈들이 실토했습니다. 부성국의 스파이들이 맞다고 합니다.”한 암부 구성원이 부성국 사람들을 추궁한 뒤 뚱뚱한 남자에게 보고했다.그 남자는 다름 아닌 암부의 둘째 정태웅이었다.그의 통통한 손에는 이쑤시개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는 이를 쑤시면서 말했다.“알아냈으면 됐어.”“그, 그러면 저놈들은 어떻게 처리할까요?”암부 구성원이 계속해 물었다.“제기랄, 당연히 저 자식들 전부 죽여야지! 이렇게 당연한 일을 나한테 묻는 거야?”정태웅은 욕하면서 말했다.정태웅의 부하들은 정태웅의 스타일을 잘 알고 있었기에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알겠다고 대답한 뒤 스파이들을 처리하러 갔다.정태웅은 부성국의 스파이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몸을 돌린 뒤 밀실 밖으로 향했다.밖으로 나온 정태웅은 크게 기지개를 켠 뒤 자신의 사무실로 차를 마시러 갔다.이때 암부 구성원이 갑자기 건물 안에서 달려 나왔다.“정 지휘사님, 조금 전에 누군가 정태웅 지휘사님을 찾는다고 사무실로 연락이 왔습니다.”그 말을 들은 정태웅은 바로 말했다.“날 찾는다고? 내가 무슨 시간이 있다고.”“알겠습니다. 그러면 전화 끊겠습니다.”부하는 곧바로 말을 마친 뒤 전화를 끊으러 가려고 했다.“잠깐...”정태웅이 그를 갑자기 불러 세웠다.“지휘사님, 왜 그러십니까?”부하가 멈춰 섰다.“그 사람 왜 날 찾는대?”부하가 대답했다.“이유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지휘사님을 찾는다고만 하셨어요. 그리고 자기 성이 윤씨라고...”‘뭐라고?’윤씨라는 말에 정태웅은 그 자리에서 펄쩍 뛰어오를 뻔했다.“세상에, 설마 저하인가?”말을 마친 뒤 그는 곧바로 부하의 팔을 잡았다.“전화는? 끊었어?”“아뇨... 사무실에 있어요.”부하가 말을 끝맺자마자 정태웅은 쏜살같이 자신의 사무실로 달려갔다.널따란 사무실 안, 정태웅은 안으로 들어간 뒤 아직 끊기지 않은 전화를 보고 빠르게 달려가서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저하! 저하 맞으세요?”“바보 같긴, 나 아니면 누구겠
“저하! 군형 쪽 일이 다 처리되었으면 언제 서울로 돌아오셔서 저희랑 모이실 겁니까?”정태웅이 기대로 가득 차서 물었다.윤구주가 대답했다.“당분간은 돌아가지 않을 거야.”“왜요?”정태웅은 조금 실망했다.“채은이 때문에.”“아, 그렇군요.”“태웅아,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는데 네가 나랑 같이 가줘야겠다.”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분부하십시오.”정태웅이 말했다.“화진의 4대 가문 중 하나인 남궁 가문으로 가서 꼬맹이를 찾아.”‘뭐라고?’꼬맹이라는 말에 정태웅은 꽥 비명을 질렀다. 독 있는 뱀에게 물리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암부의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정태웅이 그 이름을 듣고 이렇게 큰 반응을 보일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저하? 왜 갑자기 남궁 가문의 그 꼬맹이를 찾는 겁니까?”정태웅이 놀란 목소리로 물었다.“걔를 좀 보고 싶거든.”윤구주는 고씨 일가에서 있었던 일들에 관해서는 얘기하지 않았다.“하지만 저하, 지금까지도 남궁 가문의 어르신들이 협력해서 그 자식을 검의 감옥에 가두고 있는걸요.”정태웅이 말했다.“뭐? 누가 감히 걔를 가둔단 말이야? 뭐 때문에?”윤구주는 그 말을 듣자 버럭 화를 냈다.“당연히 저하 때문이죠!”정태웅이 말했다.“나 때문이라고?”“네, 저하! 잊으셨어요? 저하는 이미 사람들 마음속에서 저물었어요. 꼬맹이도 그렇죠. 저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저하가 죽음의 바다에서 죽었다는 걸 안 뒤로 꼬맹이는 홀로 창현국으로 쳐들어가서 병사들과 시민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전부 죽였어요. 그래서 창현국에서는 한때 피가 강을 이루고 시체가 즐비했었죠.” “그래서 창현국에서는 군대를 보내 꼬맹이를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실패했어요. 제가 들은 바에 의하면 창현국의 주인은 도저히 방법이 없어서 직접 화진으로 찾아와서 무릎 꿇고 애원했대요. 그래서 우리 군주가 남궁 가문을 보내 꼬맹이를 다시 데려왔대요.”“꼬맹이는 돌아온 뒤에도 여전히 불만이 가득해 설국과 부성국, 그리고 다른
남궁 가문의 검도 천재는 보기 드문 귀재이자 기린아라고 불렸다.같은 시각 차 한 대가 남궁 가문이 숨어 사는 골짜기에 도착했다.그 골짜기는 안개가 자욱하여 밖에서는 뿌옇게 보여 안이 잘 보이지 않았다.차는 골짜기에 멈춰 섰고 공처럼 굴러갈 듯한 뚱뚱한 정태웅이 차에서 내렸다.정태웅이 차에서 내렸고 그의 뒤로 두 명의 부하가 그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지휘사님, 여깁니까?”한 부하가 물었다.“맞아! 됐어, 넌 이제 가봐.”두 부하는 알겠다고 대답한 뒤 차를 타고 떠났다.고요한 산골짜기에서는 벌레 우는 소리도, 새가 지저귀는 소리도 없었다.그곳에 있는 것이라고는 손을 뻗으면 손가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자욱하고 기괴한 안개뿐이었다.정태웅은 안개 앞에 서서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갑자기 짙은 안개를 향해 소리쳤다.“암부의 정태웅이 남궁 가문을 방문하러 왔습니다.”그 고함에 기괴한 안개들이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곧 연한 노란색의 옷을 입은 두 무인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그 두 사람은 장검을 등에 지고 있었고 분위기가 남달랐다.그들의 내공은 대무사 절정 경지였다.두 사람은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곧바로 정태웅을 향해 예를 갖췄다.“암부의 정태웅 지휘사님이셨군요. 오랜만입니다.”“하하! 남궁 가문에 절 아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정태웅은 두 명의 남궁 가문 사람이 그렇게 말하자 호탕하게 웃었다.“당연히 알죠. 당시 10개국 간의 전쟁에서 저희 남궁 가문에서는 암부와 여러 차례 협력했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문의 도련님은 과거 구주왕과 의형제를 맺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저희가 어떻게 정태웅 지휘사님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검을 등에 진 남자가 말했다.정태웅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오늘 지휘사님께서는 갑자기 무슨 일로 저희 남궁 가문을 찾으신 겁니까?”얼굴이 긴 편이 남자가 물었다.“전 명령을 받고 남궁 가문 작은 괴물을 데리러 온 겁니다.”정태웅이 말했다.작은 괴물이란 바로 남궁 가문의 귀재 남궁서준이었다
“정태웅 지휘사님, 우선 저희를 따라 정양전으로 가서 어르신부터 뵙죠.”얼굴이 긴 편인 제자가 입을 열었다.정태웅은 그 말을 듣자 서둘러 손을 저었다.“이뇨, 아뇨. 우선 작은 괴물부터 보고 싶군요.”“네? 저희 도련님을 먼저 만나시겠다고요?”얼굴이 긴 제자는 당황했다.“맞아요. 아주 급한 일이거든요. 심지어 군주님의 명령이라서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합니다.”정태웅이 그들을 구슬렸다.얼굴이 긴 남자는 정태웅의 신분을 알고 있었고, 암부가 화진에서 얼마나 큰 권력을 지니고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그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정 지휘사님께서 군주님의 명령을 받고 오셨다고 하니, 그러면 저희도 명령에 따르겠습니다.”말을 마친 뒤 두 제자는 정태웅을 데리고 남궁 가문의 뒷산으로 향했다.곧 큰 산 하나와 거대한 검 한 자루가 정태웅의 시야에 들어왔다.그 거대한 검은 큰 바위로 조각된 것으로 길이가 12척이 넘었다.그것은 산꼭대기에 꽂혀서 하늘 높이 우뚝 솟아 있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이것이 남궁 가문의 유명한 검옥이었다.소문에 따르면 검옥 안에는 보기 드문 검기가 있었다.그 검기들은 형태가 없지만 신급 강자라도 무턱대고 들어가면 검기에 심하게 다쳐서 죽을 수도 있었다.눈앞의 검옥은 남궁 가문의 천재가 갇혀 있는 곳이었다.곧 남궁 가문의 보초병 두 명이 정태웅을 데리고 검옥으로 왔다.이곳은 남궁 가문의 요충지지만, 검기가 너무 강해서 일반인들은 그곳에 감히 있을 수가 없었다.“정 지휘사님, 도착했습니다.”한 보초병은 감히 검옥의 거대한 석문 앞에 다가가지 못하고 멀찍이 서 있었다.정태웅은 눈을 가늘게 떴다. 눈앞에 있는 검옥의 문을 바라보는 순간, 보이지 않는 서늘한 검기가 그를 향해 돌진했다.검기가 가까워지는 순간, 정태웅의 옷소매가 바람도 없이 펄럭였고 곧 포악한 현기 한 줄기가 정태웅의 몸에서 흘러나와 검기가 가까워지는 걸 막았다.“젠장, 남궁 가문의 검옥은 아주 험악한 곳이라고 하던데 오늘 보니 확실히 남다르네. 밖에
정태웅에게는 당연히 증거가 없었다.그는 윤구주의 명령을 받자마자 곧바로 남궁 가문으로 향했기에 화진 군주의 명령이라는 증거가 있을 리가 없었다.조금 전에 두 보초병을 속인 이유는 괜히 남궁 가문의 어르신들을 마주쳐서 성가신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그래서 두 보초병을 속인 것이었다.그리고 이젠 검옥에 도착했다.검옥에 들어가서 남궁서준을 데리고 나오면 곧장 남릉 고씨 일가로 가서 윤구주를 만날 수 있었다.그래서 다른 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남궁 가문의 보초병 두 명을 기절시킨 뒤 정태웅은 눈알을 굴려 눈앞의 검옥 문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꼬맹아, 태웅이 형이 왔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검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쿠궁!천천히 검옥의 문을 열자 엄청나게 싸늘한 검기가 문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왔다.검옥은 남궁 세가의 검총만큼이나 유명한 곳이었다.그곳에 있는 검기는 보통의 신급 경지 고수라고 해도 얕볼 수 없었다.정태웅은 당연히 멍청하지 않았다.검옥 안으로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 정태웅은 순간 몸이 긴장으로 뻣뻣이 굳었다.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검붉은색의 강기가 퍼졌다. 강기로 인해 그의 옷소매가 펄럭거리면서 소리를 냈다.이것은 정태웅의 가장 유명한 칠살공이었다.정태웅은 칠살공을 시전하면서 조심스럽게 검옥 안으로 들어갔다.커다란 검옥은 원형 모양이었다.안으로 들어가자 아래로 향하는 돌계단이 굽이굽이 있었다.차갑고 캄캄한 돌벽에 반짝이는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그 야명주들은 하나하나가 가격이 엄청났고 아주 환했다.벽에 박힌 야명주는 마치 조명 같았다.엄청난 검기가 검옥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게다가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검기가 더욱 짙었다.심지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미친 듯이 날뛰는 검기는 단단한 화강암에 깊은 흔적들을 남겼다.정태웅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검옥 밑부분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제기랄, 남궁 가문은 왜 이런 괴상한 곳을 지었지? 휴, 저하를 위해서 오늘 이
정태웅이 5층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주변에 있는 검붉은색의 강기 보호막이 검기를 견디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보호막 중간에는 무시무시한 검기로 인해 균열이 생기기도 했는데, 정태웅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해 내려갔다.아래로 내려갈수록 검기가 더욱 짙었다.틱. 틱.잠시 뒤, 그의 보호막은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하지만 다행히도 정태웅은 5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이제 마지막 한 층만 남았다.정태웅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헐떡대고 있었으며 입고 있는 옷도 전부 다 젖었다.그는 마지막 층을 힐끗 본 뒤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서 욕을 해댔다.“젠장, 안 해! 더 내려갔다가는 이 검기 때문에 죽고 말 거야!”그렇게 정태웅은 큰 목청으로 욕하다가 아래층을 향해 외쳤다.“꼬맹아! 꼬맹아! 태웅이 형이 왔으니까 얼른 나와 봐!”6층에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는 마치 바닷속에 가라앉은 바위처럼 이내 고요해졌고,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마치 검옥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제기랄, 꼬맹아. 형 말이 안 들리는 거야? 미리 말해두는데 난 급한 일로 널 찾아온 거야. 그러니까 얼른 나와!”정태웅은 계속해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6층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검옥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정태웅은 화가 났다.“꼬맹아, 귀가 먹었어?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야? 난 오늘 너한테 아주 중요한 일을 얘기해주려고 온 거야. 이거 안 들으면 후회할걸?”여전히 잠잠했다.쥐 죽은 듯 고요한 적막이었다.마치 정태웅이 아무리 소리쳐도 아래에 산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단단히 화가 난 정태웅은 당장 6층으로 뛰어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검기를 떠올린 그는 끝내 참았다.정태웅은 눈알을 굴리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그래!”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정태웅은 6층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꼬맹아! 화진에 검도 고수가 또 한 명 생겼다. 게다가 너보다 더 강하다고 하더라. 너 계속 이 검옥에 숨어서 지낼 거야? 얘기 들어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