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얘기했잖아. 너보다 검도가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너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말이야.”정태웅은 거짓말을 했다.쇠사슬에 묶여 있던 남궁서준은 시선조차 들지 않고 코웃음 쳤다.“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 난 그 검도 고수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어. 난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정말 대단했다고!”정태웅은 남궁서준의 반응을 보고 서둘러 거짓말을 보탰다.정태웅이 계속해 호들갑을 떨 때 남궁서준이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화진에는 돌아가신 구주 형을 제외하고는 검도에서 절 이길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제 화를 돋우려고 거짓말할 필요는 없어요.”“얘 좀 봐라? 너 큰소리치는 거야? 이 세상에 검도에서 널 이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정태웅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해요. 한번 해보고 싶다면 제 검을 막아보든가요!”흰옷을 입은 소년은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곧 엄청난 검의를 내뿜으며 정태웅을 향해 달려들었다.정태웅은 남궁서준이 화를 내자 덜컥 겁이 났다.“아니, 아니. 서준아, 우리 말로 하자. 왜 싸우려고 그래? 내가 싸움을 잘 못한다는 걸 알면서 왜 나랑 싸우려는 거야?”정태웅이 뻔뻔하게 말했다.흰옷을 입은 소년은 정태웅의 뻔뻔한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듣고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검기를 거두어들였다. 더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남궁서준이 검기를 거두어들이자 정태웅은 웃으며 말했다.“서준아, 아까는 형이 장난친 거야. 마음에 두지 마. 내 마음속에서 화진의 검도 일인자는 너니까. 다른 사람들은 내 눈에 아무것도 아니야.”정태웅이 비위를 맞추려고 하자 남궁서준은 아예 그를 무시했다.“서준아, 우리 대화도 좀 했으니까 이젠 본론을 얘기할게. 형이랑 같이 남릉에 가자.”정태웅이 엉덩이를 털면서 6층에 있는, 네 개의 쇠사슬에 손발이 묶인 남궁서준을 향해 말했다.“안 가요.”남궁서준이 대답했다.“젠장, 안 갈 거라고? 너
“너도 참 멍청하구나. 내가 남릉에 가자는 건 저하를 위해서야!”정태웅은 남궁서준이 고집을 부리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지금 날 욕하는 거예요?”남궁서준은 정태웅이 욕을 하자 표정이 굳어졌다.정태웅도 화가 났다.“널 욕하는 게 뭐 어때서? 너 이 자식, 저하 곁에 있을 때 내가 줄곧 널 돌봤어. 그런데 나한테 고마워하지도 않고 말이야!”정태웅에게 혼난 화진의 소년후는 눈동자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정태웅을 죽어라 노려보았다.정태웅이 한 마디라도 더 하면 그를 죽일 듯했다.하지만 정태웅이 누구인가?정태웅은 두려운 게 없었다.그는 계속해 화가 나서 몸까지 떨고 있는 소년후를 욕했다.“뭘 그렇게 노려봐?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괴물 같은 놈, 빌어먹을 꼬맹이. 형이 널 데리고 저하를 만나러 가겠다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네가 그렇게 잘났어? 그러면 어디 한번 날 공격해 봐. 내가 널 두려워할 것 같아?”정태웅은 두 손을 펼치면서 남궁서준과 싸울 듯이 굴었다.그러나 남궁서준은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당연한 일이었다.그들은 형제였기 때문이다.그는 그저 차가운 표정으로 눈앞의 정태웅을 바라보았다.“조금 전에... 저하를 만나러 간다고 한 거예요?”“그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이 빌어먹을 남궁 일가에 왔겠어? 암부에서 편히 지냈겠지.”정태웅이 노기 등등하게 말했다.“말도 안 돼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구주 형은 죽음의 바다에서 죽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구주 형을 만나러 간단 말이에요?”남궁서준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온몸에서 검기를 뿜어댔다.“멍청하긴, 내가 왜 널 속이겠어? 솔직히 얘기할게. 우리 저하는 죽지 않았어!”정태웅은 마침내 사실을 얘기했다.그 말에 손발이 전부 쇠사슬로 묶인 소년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덜덜 떨면서 정태웅을 바라보았다.“절... 절 속일 생각은 하지 말아요. 구주 형이 정말 죽지 않았다고요?”“그래! 생각해 봐. 겨우 10국 따위가 어떻게 우리 저하를
“진짜 형의 목소리네요. 진짜 구주 형이에요!”쇠사슬에 사지가 묶인 소년후는 갑자기 아이처럼 울먹이기 시작했다.“하하, 서준아. 형은 널 속이지 않았다니까!”정태웅은 녹음펜을 거두어들인 뒤 기쁜 얼굴로 말했다.“얘기해줘요. 구주 형 지금 어디 있어요?”남궁서준은 갑자기 고개를 들면서 흥분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정태웅을 향해 물었다.“얘기했잖아. 나랑 같이 남릉 고씨 일가로 향하면 저하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넌 지금 검옥에 갇혀 있고 너희 집안 어르신들이 쇠사슬로 네 사지를 묶어놓았지. 이걸 어떡하지?”정태웅은 중얼거리면서 아래쪽에 있는, 쇠사슬에 사지가 묶인 흰옷을 입은 소년을 바라보았다.남궁서준은 차갑게 웃었다.“겨우 쇠사슬일 뿐이에요. 절 묶어둘 순 없죠.”남궁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엄청난 검기를 뿜어댔다.그 검기는 마치 용과 같았다. 그것은 곧바로 검옥 안의 모든 검기를 제압했다.마치 그가 검 중의 왕인 것처럼 말이다.무시무시한 검기가 움직이면서 철컥철컥 소리가 났다.남궁서준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의 사지를 묶었던 쇠사슬이 순식간에 부서졌다.“세상에! 서준아, 너 그사이 실력이 또 는 거야?”그 광경에 정태웅의 눈이 빛났다.“역시 괴물답네! 이 정도 재능이면 곧 저하를 따라잡을 수 있겠는데?”흰옷을 입은 소년은 자신의 사지를 묶었던 쇠사슬을 부순 뒤 오른손을 들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와!”챙 소리와 함께 금빛의 검이 지면을 뚫고 지하에서 올라왔다.금빛의 검은 그 길이가 아주 길었고 검날은 보통 검보다 조금 더 넓었다.칼자루에는 빛나는 야명주들이 박혀 있었다. 그 검은 남궁 가문의 명검 유용검으로 남궁서준의 독특한 무기였다.유용검을 손에 넣게 되자 화진 소년후의 기세가 다시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마치 그와 그가 들고 있는 금빛의 검이 한 몸이 된 듯 말이다.금빛의 검을 든 흰옷을 입은 소년은 위로 올라가서 정태웅의 앞에 섰다.엄청난 검기가 그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는 정
두 사람은 검옥 위쪽으로 향한 뒤 문 앞에 정태웅이 기절시킨 두 명의 부하를 보게 되었다.그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았다.정태웅이 말했다.“우선 이 둘에게 물어볼까?”남궁서준은 짧게 그러자고 대답했다.정태웅은 손가락을 들었고, 곧 현기 두 줄기가 기절한 두 명의 남궁 제자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정신을 차렸다.“헤헤, 일어났네요!”정태웅은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자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정 지휘사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어떻게 저희를 기습할 수 있죠? 지휘사님...”두 사람이 검을 뽑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고 곧 옆에 서 있는 흰옷을 입은 소년을 보았다.‘응?’“도련님...”“도련님을 뵙습니다!”두 사람은 남궁서준을 보자 두 다리가 후들거려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남궁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없이 두 제자를 힐끗 보았다.“도련님, 어... 어... 어떻게 나오신 겁니까?”한 제자가 전전긍긍해서 남궁서준에게 물었다.“내가 나오고 싶으면 나오는 거지. 누가 날 막을 수 있겠어?”남궁서준이 말했다.그 말에 두 제자는 말문이 턱 막혔다.확실히 남궁 가문의 천재이자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귀재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너희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반드시 솔직히 대답해야 해. 알겠어?”남궁서준이 갑자기 말했다.“네, 네. 물으세요!”두 사람이 말했다.“남궁 가문의 젊은 세대 중 절름발이가 있어?”남궁서준은 정태웅이 했던 질문을 똑같이 했다.‘뭐라고?’“절름발이요?”두 제자는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맞아. 그 절름발이가 남릉 고씨 일가 딸과 약혼했다던데, 알고 있어?”정태웅이 말을 더 보탰다.그 말을 들은 두 제자는 한참을 생각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얼굴이 긴 편이 제자가 갑자기 이마를 ‘탁’ 치면서 말했다.“혹시 남궁 가문의 방계인 남궁혁 말씀이세요?”“남궁혁?”남궁서준은 그 이름이 낯선 듯했다.
남릉 고씨 일가.윤구주가 고씨 일가의 장원을 점령한 뒤로 고씨 일가는 아주 초라했다.특히 대문 쪽은 윤구주의 검에 의해 30m에 달하는 길이의 흔적이 남겨졌다. 그로 인해 한때 휘황찬란했던 고씨 일가는 아주 황폐해졌다.현재 고씨 일가 사람들은 전부 장원을 떠났다.누가 감히 그곳에 남아있겠는가?고씨 일가 가주인 고준형도 사람들을 데리고 고씨 일가 장원을 떠났다.현재 고씨 일가 장원에는 윤구주와 시괴 거인 동산을 제외하면 다른 이는 없었다.널따란 고씨 일가 대전 안, 윤구주는 휴대전화를 들고 정태웅이 보낸 문자를 보고 있었다.정태웅은 남궁서준을 데리고 남릉으로 오고 있고, 남궁혁의 신분도 알아냈다고 했다.고씨 일가는 남궁 일가 쪽에 줄 서기 위해 자기 딸을 남궁 일가 방계에 시집 보내려고 했다. 윤구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어쩐지 남궁 일가의 젊은 세대 중에서 남궁혁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 싶었는데 방계에 불과한 쓰레기였군.”윤구주는 문자를 다 본 뒤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휴대전화를 넣어두고 계속해 수련했다.이제 그는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고씨 일가 어르신이 돌아오기를 말이다.천년초 하나와 엇비슷한 수준의 봉안보리구슬 팔찌가 그에게 있었다.윤구주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수련하고 있을 때 끼익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고, 곧 아름다운 여자가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그녀는 고씨 일가 셋째 딸 고시연이었다.레이스가 달린 긴 치마를 입은 고시연은 종처럼 차를 들고 와서 내려놓은 뒤 묵묵히 윤구주의 뒤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마치 정말로 윤구주의 종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네 몸에 남겼던 화련금안은 이미 풀었는데 왜 가지 않는 거야?”윤구주는 갑자기 눈을 살짝 떴다. 횃불과도 같은 시선이 고시연에게 닿았다.고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침묵했다가 대답했다.“전... 당신이 저희 할아버지와 싸우기를 바라지 않아요.”“하! 날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네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거야?”윤구주가 물었다.고시연은
그러나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앞의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에게 정복당했다. 심지어 저도 모르게 눈앞의 마귀 같은 남자가 점점 더 좋아졌다.하지만 그를 좋아해도 될까?아니, 절대 그래서는 안 됐다.그는 고씨 일가의 원수고 고씨 일가를 점령했다. 게다가 이젠 고씨 일가의 보물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었다.이런 남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그는 화진의 4대 가문 중 하나인 고씨 일가 아들과 결혼 약속을 했다.그래서 고시연은 이 마귀를 빨리 보내버리고 싶었다.그가 이 남릉에서 떠나길 바랐다.그러나 윤구주가 떠날 리 없었다.화진의 왕이자 과거 10개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최강자였다. 그의 영예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그러니 일개 고씨 일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어쨌든 호의는 고마워. 하지만 넌 이만 돌아가도록 해. 이제 이곳은 곧 폐허가 될 테니 말이야.”윤구주가 갑자기 고시연을 향해 말했다.고시연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온몸을 흠칫 떨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힐끗 말했다.“그래요, 갈게요! 그렇게 죽고 싶다고 하니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말을 마친 뒤 고시연은 단호히 떠났다.그녀가 방문을 나서려는 순간,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잠깐!”고시연은 고개를 돌렸다.“또 무슨 일이에요?”“묻는 걸 잊었네. 너랑 남궁 일가의 결혼은 네가 선택한 거야? 아니면 고씨 일가를 위해서야?”윤구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시연은 흠칫했다.그녀는 그곳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리고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저랑 남궁 가문의 그 사람은 겨우 한 번 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 사람이랑 결혼하겠다고 할 리가 있겠어요?”그 말에 윤구주는 짧게 대답했다.“알겠어. 네 가문에서 강요한 건가 보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희 가문에서는 몰랐나 봐. 모든 남궁 가문의 사람이 4대 가문의 직계는 아냐.”“그 말 무슨 뜻이에요?”고시연은 의아한 얼굴로 윤구주에게 물었다.윤구주가 말했다.“별 뜻 없어. 그냥 좋은 마음
“고 가주님, 어떤 빌어먹을 놈이 제 사제를 이렇게 다치게 한 겁니까?”질문을 한 사람은 용호산의 기성윤이었다.그는 흐려진 안색으로 사람을 죽일 듯이 짙은 영기를 내뿜었다.“맞습니다, 고 가주님. 홍 대사님께서는 무려 태허 경지인데 누가 그를 다치게 할 수 있단 말입니까?”기성윤의 뒤에 있던 십여 명의 도포를 입은 제자들도 의문을 표했다.질문을 받은 고준형은 탄식했다.“기성윤 대사님, 홍 대사님을 다치게 한 사람은 바로 우리 고씨 일가를 점령한 놈입니다!”“젠장! 고 가주님, 그놈 지금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겠습니까? 전 그 자식의 살갗을 벗기고 사지를 분질러 제 사제의 복수를 할 겁니다!”기성윤이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그 자식은 지금 저희 고씨 일가 장원에 있습니다!”고준형이 대답했다.“좋아요! 오늘 그 자식이 얼마나 배짱이 두둑하길래 감히 우리 용호산과 척지려 하는 건지 한 번 지켜봐야겠어요!”기성윤은 그렇게 말한 뒤 윤구주를 찾으러 가려고 했다.“기성윤 대사님, 잠시만요!”이때 고준형이 기성윤을 불러 세웠다.“왜요? 설마 제가 그 자식을 이기지 못할 거로 생각하는 겁니까?”기성윤이 고개를 돌려 어두운 얼굴로 물었다.“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전 그저 홍 대사님이 저희 고씨 일가 때문에 심하게 다쳤으니 저희 고씨 가문도 당연히 복수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뿐입니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제 두 아들이 조금 전 저한테 연락을 했습니다. 예상대로라면 아마 30분쯤 뒤에 저희 집안 어르신께서 올 겁니다.”고씨 집안 어르신이 곧 돌아올 것이다.그 말을 들은 기성윤은 멈칫했다.“고씨 집안 어르신께서 오신다고요?”그가 물었다.“네.”“그래요. 고씨 집안 어르신이 돌아오신다니 제가 나설 필요는 없겠네요. 아무래도 고씨 집안 어르신이 저보다 더 강하니 말이에요.”기성윤이 말했다.고진용은 고씨 집안 어르신으로 무도 천방 7위인 사람이었다.그가 드디어 출관해서 돌아온다니!시간은 일분일초 흘렀다.고씨 일가 사람들, 무
무시무시한 추락으로 인해 무도 연맹 지면이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심하게 진동했다.더욱 두려운 점은 그의 발밑에 백 미터 반경으로 단단한 지면에 거미줄 같은 균열이 생겼다.그는 회색 옷에 머리가 하얗게 센 노인이었다.그의 나이 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지만 그의 무시무시한 현기는 숨겨지지 않았다.그가 바로 고씨 일가의 어르신 고진용이었다.고진용이 천 미터 고공에서 뛰어내리자 현장에 있던 사람들, 용호산의 기성윤까지 눈이 휘둥그레져서 80대 고령인 고진용을 바라보았다.“아버지, 오랜만입니다. 출관을 축하드립니다!”첫 번째로 무릎을 꿇은 것은 고씨 일가 가주 고준형이었다.“안녕하십니까, 어르신. 출관을 축하드립니다!”곧이어 현장에 있는 수백 명의 무도 연맹 사람들이 일제히 노인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수많은 사람들이 무릎을 꿇자 고진용은 무덤덤하게 손을 휘저었다.“이렇게 예의 차릴 필요는 없어. 난 그저 이해가 가지 않을 뿐이야. 내 팔순 잔치가 곧 열리는데 그 직전에 갑자기 우리 고씨 일가에서 소동을 벌이는 사람이 있다니 말이야.”고진용이 차갑게 말하자 고준형이 서둘러 나섰다.“아버지! 제가 고씨 일가를 지키지 못한 탓입니다. 절 벌하여 주십시오!”고진용은 코웃음 친 뒤 말했다.“벌은 일단 차치하고 질문 하나 하겠다. 우리 손녀는 어디 있어?“그가 말한 손녀는 당연하게도 고시연이었다.“아버지, 시연이는… 아직도 그놈에게 붙잡혀 있습니다!”고준형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진용이 바럭 소리를 질렀다.“젠장!”우레와도 같은 소리였다.심지어 그 무시무시한 서리에 내공이 약한 무도 연맹 사람들은 혈기가 날뛰어서 피를 토할 뻔하기도 했다.“나 고진용의 손녀를 누가 감히 감금해?”무적의 육신이라 불리는 고진용의 얼굴 위로 무시무시한 살기가 드러났다.“고준형, 내가 물을게. 너 아버지로서 자격이 있니? 네 딸이 남에게 감금당했는데 넌 여기 한가하게 있는 거야?”고진용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고준형을 바라보았다.“용서해 주십시오, 아
“나 정도 실력이면 상대가 구오 지존이 아닌 이상 무적이야. 구주왕, 죽을 각오나 해! 당신을 죽이는 건 시작에 불과해. 난 세상 사람들에게 우리 천도궁이야말로 화진의 주인이라는 걸 증명해 보이겠어! 화진 사람들은 모두 우리 천도궁을 진짜 신으로 모셔야 해!”우렛소리가 울리며 핏빛의 벼락으로 이루어진 핏빛 용이 구름을 뚫고 윤구주를 향해 덮쳐 들었다.“흥, 악령이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자가 감히 신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고 해? 겨우 반폭 구오 지존이면서 감히 내 앞에서 스스로를 신이라고 칭하는 거야?”윤구주가 다시 한 걸음 내밀었다. 그가 손을 들자 멈추었던 빗방울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시작했다.하늘로 올라가는 빗방울들은 예리한 검들이 되었다. 빗방울에서 엄청난 검의 위력이 느껴졌다.솩, 솩!눈 깜짝할 사이에 핏빛 용은 빗방울에 꿰뚫려서 만신창이가 되었다.“뭐야? 구주왕! 이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니야. 이건 금지술이라고. 내가 백 년 동안 수련해서 겨우 시전한 것인데 그렇게 쉽게 막을 수 없을 거야!”추현송은 크게 외치면서 두 손으로 수인을 맺었다.“응집하라!”핏빛 용이 다시 만들어졌고 그것의 혈기는 전보다 더 강해졌다.붉은색 빛이 산 전체를 환히 밝혔고 붉게 물들어진 하늘은 충격적이었다.“약하면 약한 건지, 쓸데없는 말이 많네.”쿠구궁!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더니 손바닥이 핏빛 용과 붉은색의 구름을 내리쳐서 흩어지게 했다.곧 세계가 다시 조용해졌고 추현송은 넋이 나갔다.그의 금지술이 이렇게 사라지다니.이것이 바로 구주왕의 실력인 걸까?“하하하, 역시 구주왕은 남달라. 하지만 난 서울로 올 때 이미 너와 싸울 거라는 걸 알았어. 나는 너 때문에 서울로 온 거야.”추현송은 이를 악물고 법기를 하나 꺼내며 수인을 맺었고, 이내 핏빛 안개가 법기에서 뿜어져 나왔다.“이건 천도궁 서울 분문에서 추출한 정혈이야. 서남 재벌의 목숨을 연장하는 데 쓰려고 했던 것이지. 이 정혈은 무려 20조에 달하는 거래였다고. 하지만 내 상대가 구주왕이니
온 세상이 고요해졌다.시간이 멈춘 것처럼 빗방울들이 허공에 멈춰 있었다.추현송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인간의 수준을 벗어난 신의 경지였다.“당신이 진짜 배후였네. 견배영이 목숨을 걸고 싸운 이유가 있었어. 말해! 너 정체가 뭐야?”추현송은 쓰레기를 버리듯 견배영을 내팽개친 뒤 온 신경을 갑자기 나타난 그에게 집중했다.쿵!그 사람이 움직였다. 그는 구름 위를 거니는 듯했고 동시에 걸음걸음마다 하늘과 땅이 뒤흔들리는 것 같았다.강렬한 압박감 때문에 추현송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기가 힘들었다.눈 깜짝할 사이에 그가 가까워졌고 그의 그림자는 마치 하늘까지 닿을 듯했다.엄청난 압박감 때문에 추현송은 저도 모르게 몸이 떨렸고 두 다리에 힘이 풀려서 무릎을 꿇을 뻔했다.콱!추현송은 혀를 꽉 깨물었다. 그는 고통으로 정신을 붙잡으려고 했다.다시 상대방을 마주하게 된 추현송은 순간 표정이 심각해졌다.“저 자식 온몸에서 치명적인 기운을 내뿜고 있어. 운이 좋지 않다면 오늘 이곳이 내 무덤이 될지도 모르겠어. 너 이 자식! 네 정체가 뭐든 상관없어. 천도궁은 네가 상대할 수 있는 곳이 아냐. 내 배후에 있는 종문 동맹이 널 처참히 죽일 거다!”윙!그러나 상대방은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살기가 더욱 강해졌다.그의 목적은 아주 간단했다. 바로 추현송을 죽이는 것이었다.협박해도 소용없자 추현송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느꼈다.더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을 것이다. 상대방은 그를 죽이러 온 것이기 때문이다.“젠장, 날 죽이는 건 쉽지 않을 거야. 난 팔부 동천 절정이니까! 구오와는 겨우 한 걸음 차이라고. 난 이미 천인합일의 도리를 깨쳤어. 천도술 뇌연, 천벌행주!”추현송은 정혈을 토했고 이마에는 핏발이 섰다. 그의 얼굴은 사정없이 일그러졌고 핏자국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핏자국에서 빛이 번쩍이자 하늘에 핏빛 구름이 모여들었다. 구름 사이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면서 우렛소리가 들렸다.바닥에 쓰러진 견배영은 문득 머리털이 쭈뼛 서
상대를 죽이기는커녕 오히려 본인이 상처투성이가 되어서 겨우 버티고 있었다.“견배영, 넌 은용위 지휘사이자 임정설 휘하의 유능한 부하라지? 사람들은 너의 현공을 따라갈 사람이 없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힘을 못 쓰는 거야? 나랑 두 시간 넘게 싸웠으면서 내 옷자락도 건드리지 못했잖아.”맞은편의 노인이 웃으면서 비아냥댔다.“쳇!”견배영은 이를 꽉 깨물었다. 천도궁의 부궁주가 서울 분문에 왔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추현송은 백 년을 산 팔부 절정 강자였다.견배영은 이제 막 팔부 경지에 다다랐기에 추현송과 싸운다는 것은 그에게 죽음을 자초하는 일이었다. 평소라면 두 사람의 엄청난 실력 차이 때문에 빠르게 물러났을 것이다.그러나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국방부 사람들이 아래서 구경하고 있으니 말이다.은용위는 이젠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다. 국주는 그들의 충성심을 생각해서 그들이 한 짓을 못본 척해주었지만 구주왕은 달랐다. 그가 알고 있는 구주왕이라면 은용위가 저질렀던 짓 때문에 그들을 산 채로 찢어발길지 몰랐다.살고 싶다면 반드시 구주왕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야 했다.“이 악물고 싸울 수밖에 없겠어. 싸우다가 죽으면 적어도 명성은 챙길 수 있잖아. 만약 실력 차이 때문에 도망친다면 구주왕에게 바로 살해당할 거야!”구주왕의 수단을 떠올린 견배영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화진의 백성이 보기에 구주왕은 백성의 편이 되어주는 좋은 사람이자 화진의 평화를 지켜주는 영웅이었지만 일부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마귀나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였다.“하하! 겁이 나서 그렇게 덜덜 떠는 거야? 싸우지 않는 건 어때? 이젠 임정설에게 충성하지 말라고. 대단한 분의 곁에 있으면 언제든 죽을 수 있는 법이야. 임정설에게 충성해 봤자 좋은 꼴을 보지 못할 거야. 차라리 우리 천도궁에 가입해. 실컷 즐기면서 살라고. 얼마나 좋아?”추현송이 웃으면서 말했다.그건 그냥 해본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견배영을 영입하고 싶었다.은용위는 화진의 권세가들의
사람들을 구했다는 말에 윤구주는 뭔가를 떠올렸다.소문에 따르면 천도궁은 대외적으로 선인이 될 수 있다며 홍보했지만 사실은 사람들의 정혈을 빨아먹었다. 소녀의 정혈을 먹고 살았기에 천도궁 사람들은 모두 동안으로 실제 나이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게다가 그들은 그 점을 이용하여 사람들에게 도를 닦고 도술을 배우면 불로장생할 수 있다고 속이며 돈을 뜯어냈다.“구출한 사람들은 어디 있어? 그곳으로 안내해 줘.”윤구주가 말했다.민규현이 윤구주를 데리고 조금 전 은용위에 구출된 소녀들을 찾으러 갔다.임시로 설치된 텐트 안에서는 치료가 이루어지고 있었고 소녀들은 그곳에 모여 있었다.그들 모두 눈빛이 공허하고 몸이 여위었으며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했다. 다들 심각하게 학대를 당했는지 꼴이 말이 아니었다.“피가 심각하게 부족해요. 그래서 조금 전에 군의관이 수혈해 주었어요.”민규현이 소개했다.그들을 치료하던 군의관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검사해 봤는데 다들 몸 곳곳에 멍을 달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으로 할퀴거나 물어뜯은 것 같아요. 특히 하반신 상태가 심각해서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을 받는다고 해도 평생 소변 주머니를 사용해야 하고 다른 사람의 돌봄 없이는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사실 몸의 상처는 그나마 나은 편이에요. 가장 중요한 건 다들 엄청난 충격으로 정신이 많이 망가졌다는 거예요.”텐트 안에 있던 군의관들은 고개를 저었고 간호사들은 소녀들의 안타까운 사정에 안타까워하면서 눈물을 흘렸다.윤구주는 침묵했다. 그는 종문을 너무 얕보았다.화진을 분열시키려고 한 것만으로도 죽을죄인데 그들의 악행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이때 정태웅이 마침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정태웅은 무섭게 생긴 편이었기에 소녀들은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 어떤 소녀들은 본능적으로 입고 있던 옷을 벗으면서 온순하게 굴었다. 장기간 학대를 당한 탓인 듯했다.“어?”짝!정태웅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윤구주에게 뺨을 맞았다.“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민규현, 네 사람들
“우리 서요산이 지우를 불러들인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우리 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었거든.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속수무책이었어. 문씨 일가는 네가 이럴 것이라는 걸 미리 알았던 것 같아. 그래서 종문 동맹에 우선 서요산을 공격하라고 했겠지. 그래야 우리에게 여력이 없을 테니까 말이야. 구주야. 우리 서요산은 이번에 윤씨 일가를 돕지 못할 것 같다. 홀로 종문 동맹과 싸울 각오를 하는 게 좋을 거야.”서요산의 거자가 공격을 당했다니!그 소식에 서요산 분문의 제자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충격도 잠시, 이내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서요산 거자는 다음 검종 종주가 될 사람으로 아주 중요했다. 그런데 누군가 서요산의 거자를 공격했다니, 서요산의 명맥을 끊으려는 의도가 분명했다.“종문 동맹! 이 자식들 정말 극악무도하네요!”분문의 제자가 화를 내면서 욕을 했다.갑작스러운 얘기에 윤구주도 더는 책을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그는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요? 서요산 스스로 해결할 수 있나요? 서요산의 거자는 이미 죽었으니 함지우까지 죽게 할 수는 없죠. 정 어려우면 저한테 보내요.”“아주 심각해. 너도 알다시피 서요산 검탑에는 마귀가 봉인되어 있어. 만약 그 사람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면 화진에는 엄청난 재앙이 찾아올 거야. 그 때문에 나도 예정보다 일찍 출관했어. 곤륜 쪽도 평화롭지는 않아. 됐다. 너는 일단 종문 동맹을 평정해. 우리도 최대한 너의 발목을 붙잡지 않게 노력할게. 너는 마음 놓고 싸워. 종문 동맹은 화진의 질서를 삼천 년간 어지럽혔어. 이제는 뿌리를 뽑아야지.”푸른 빛이 서서히 사라졌다. 마지막 장면은 노인이 산에서 벗어나며 산이 뒤흔들리는 광경이었다.“문씨 일가는 대체 얼마나 일을 더 크게 키울 생각인 거지? 내가 손을 쓴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가만히 있지 못하다니. 벌써 위협을 느낀 건가? 천도궁은? 꽤 오래됐는데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거야? 내가 직접 가봐야겠군.”윤구주는
피가 칼날을 적셨다. 국방부가 종문을 공격할 줄은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각 종문의 서울에 있는 분문도 은용위의 공격을 받았다.은용위에게 내려진 명령은 한 명도 살려두지 말라는 것이었다.자운각과 칠수방 분문은 겨우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었는데 칠수방의 분문 밖에는 윤구주 휘하의 한 장수가 수문장처럼 칠수방을 지키고 있었다.평화로운 칠수방과 달리 거리 너머 맞은편에 있는 자운각 분문의 상황은 처참했다.그곳에서는 학살이 일어나고 있었고 핏물이 빗물과 섞여 거리로 쓸려 나갔다.“은용위? 왕실에서 우리 종문을 공격하는 건가?”차비연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거리 너머 자운각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을 들으면서 말했다.다른 칠수방의 제자들도 안색이 좋지 않았다. 다행히 그들은 구주왕과 사이가 좋았고 그 덕분에 구주왕의 사람이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칠수방 또한 자운각과 같은 처지가 됐을 것이다.칠수방 사람들이 왕실이 왜 갑자기 이러는 것인지 그 의도를 짐작해 보고 있을 때 자운각 쪽이 조용해졌다.벼락은 계속 쳤고 비도 여전히 쏟아졌다.자운각 위로 벼락이 떨어졌을 때 그 불빛 때문에 자운각 마당의 모습이 언뜻 보였다.산더미처럼 쌓인 시체와 피바다를 보았을 때 적지 않은 칠수방의 제자들이 겁을 먹고 비명을 질렀다.“자운각 서울 분문은 끝장났어요.”“은용위가 나섰으니 살아남은 사람은 없을 거예요.”칠수방은 비록 다른 종문들과 줄곧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자운각의 결말을 보니 조금 안타까웠다.바로 이때, 차들이 줄지어 도착했고 사람들이 차에서 줄줄이 내려왔다. 그중 한 명은 차비연이 아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암부의 3대 지휘사 중 한 명인 늑대 천현수! 저들이 왜 이곳에 온 거지?”차비연이 의아해하고 있을 때 종문 사람들의 피를 뒤집어쓴 은용위가 밖으로 나와 천현수를 향해 예를 갖추었다.차비연은 그 순간 이건 왕실의 뜻이 아니라 구주왕이 종문과 전면전을 벌이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천현수는 구주왕을 대표하여
예전에 은용위는 윤구주의 휘하가 아니었고 국주의 사람이었기에 윤구주는 국주의 체면을 살려줘야 했다.그러나 은용위의 군권이 윤구주의 손에 들어왔고 이제 그들은 구주왕의 부하가 되었으니 반드시 윤구주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앞으로도 당연히 규칙을 지켜야 했고 예전에 저질렀던 짓들의 벌까지 받아야 했다.‘세상에!’옆에 있던 육도진은 깜짝 놀랐다. 은용위가 했던 짓들을 그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들에게 벌을 준다면 목을 베는 것으로는 부족했다.은용위는 이제 막 윤구주의 휘하가 되었는데 윤구주는 바로 은용위를 처벌하려고 했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저하, 그건...”“내가 내 사람을 교육하는 건데 우상은 끼어들지 마.”‘윽.’육도진은 입을 다물었다. 윤구주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말을 더 보탰다가는 그에게 불똥이 튈지도 몰랐다.“견배영, 기회를 줄게. 앞으로 잘해 봐. 만약 너희들이 사람들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면 가볍게 처벌해 줄 수도 있어.”윤구주가 입을 열었다.견배영은 감히 대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윤구주를 향해 무릎을 꿇으면서 감사 인사를 했다.육도진은 어이가 없었다. 죄가 있는지 없는지는 윤구주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 윤구주는 단지 은용위를 이용하여 위상을 세우는 것뿐이었다.생각해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금은 다른 때와 달랐고 대전을 코앞에 두고 있었기에 절대 방심할 수가 없었다.갑자기 국방부를 손에 넣게 되었으니 누군가는 다른 마음을 품을지도 몰랐다.국주의 사람까지 전부 윤구주 앞에 납작 엎드리는데 다른 사람들이 어찌 감히 다른 생각을 하겠는가?윤구주는 사람들을 쭉 둘러보다가 손을 움직여 그들이 일어나게끔 했다.“그대들 중에는 우리가 왜 종문 동맹과 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 거야. 심지어 종문 동맹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리 화진의 국방부가 무도를 홀로 이끌어가려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오늘 똑똑히 설명할 테니
진동왕의 기세도 엄청났지만 눈앞의 사람에게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구주는 정말 놀라울 정도로 강해. 나로서는 꿈도 꿀 수 없는 정도야.”진동왕이 감탄했다.“임성진 아저씨.”윤구주는 진동왕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진동왕과 곤륜에서 알게 되었고 그와의 인연 덕분에 죽음의 바다에서 살아남은 뒤에도 여전히 국주를 신뢰했다.그렇지 않으면 당시 그 사건 때문에 윤구주는 국주까지 적으로 돌렸을 것이다.“진동왕을 뵙습니다.”윤구주의 부하들이 일제히 예를 갖추었다. 그들은 열정 가득한 눈빛으로 진동왕을 바라보았다. 진동왕을 향한 그들의 선망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였다.구주왕 휘하의 장군들은 모두 흥분했다.그들의 왕이 드디어 돌아왔고 또다시 그와 함께 싸울 수 있었다.착, 착.국방부의 다른 장수들은 서둘러 예를 갖추었다. 구주왕 휘하의 흥분한 장수들과 달리 그들은 두려움만 가득했다.그들이 무슨 짓을 했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문아름이 새로운 왕으로 등극하면서 그들은 문씨 일가에 잘 보이려고 애를 썼었다.켕기는 게 많아서 감히 구주왕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었던 그들은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감히 숨조차 크게 쉬지 못했다.윤구주의 옆에 있던 육도진이 말했다.“문벌, 세가, 종문, 국방부가 화진의 무도를 이루었죠. 문벌은 쇠퇴하고 세가도 물러나고 종문도 세력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현재 진국왕 군대가 대권을 움켜쥐고 있기에 우리 화진의 질서를 다시 바로잡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육도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비단함을 열어 용부를 꺼냈다.“진국왕, 국주님의 명령입니다. 종문 동맹은 우리 화진을 삼천 년 동안 혼란스럽게 했어요. 종문 동맹 때문에 그동안 백성들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진국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고 민심을 보살폈기에 국주님께서는 진국왕께 용부를 하사했습니다. 진국왕께서는 이 용부로 세상을 어지럽히는 자들에 대항하고 종문 동맹을 처단하여 우리 화진의 평화를 이루도록 하세요.”“헉!”장수들은 모두 넋이 나갔다. 심지어
세 사람의 모습이 진동왕의 눈에 담겼다. 하지만 후배들이니 굳이 따지고 싶지 않았다.이때 진동왕이 말했다.“음, 두 가지 이유가 있어. 계획에 따르면 나는 종문 동맹과의 전쟁을 책임져야 했지만 당시 윤신우가 날 위해서 시간을 마련해 주었지. 그리고 내가 더 높은 경지로 나아가는 중요한 시기에 구주왕이 나타났어. 덕분에 나는 더 높은 경지에 다다를 수 있었지. 윤씨 일가가 아니라면 나는 구오 지존이 될 수 없었을 거야.”진동왕의 말에는 큰 의의가 있었다. 한 나라의 우상인 육도진은 곤륜에 관한 소문을 조금 알고 있었다.소문에 따르면 진동왕은 윤구주 덕분에 곤륜에서 진정한 강자의 가르침을 받게 되었고 그 덕분에 경지를 돌파할 수 있었다고 한다.육도진은 민규현 등 세 사람을 힐끗 바라보면서 말했다.“구주왕의 부하가 된 것은 여러분들에게 복입니다.”“당연한 말을 쓸데없이 하시네요.”정태웅은 입을 비죽이면서 말했다.진동왕은 선배라서 존경했지만 육도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예전에 그는 암부를 상대로 적지 않은 일을 했었고 그 때문에 정태웅은 그를 아니꼽게 여겼다.육도진은 고개를 저었다. 소양 없는 사람을 상대할 땐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육도진은 비단함을 들고 계속해 앞으로 걸어갔다. 진동왕을 지나치고 윤씨 일가 조당 계단을 올라 조당 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는 멈춰 섰다. 곧이어 그는 몸을 돌려 장수들을 마주 보고 섰다.그곳에 있는 사람들 중 아무리 멍청한 사람이라도 그가 국주 대신 왔다는 걸 알았다.다들 비단함 안에 대체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해했다.바로 이때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정원에 도착했다.그들은 전 사람들과 달리 날아서 들어왔다.십여 명의 사람들 모두 검은색 갑옷에 검은색 가면을 쓰고 있었고 눈빛이 섬뜩했으며 허리춤에 황제가 하사한 금패를 차고 있었다.그들이 도착하자마자 사람들은 미간을 찌푸렸다. 수많은 이들이 그들에게 엄청난 적대감을 지니고 있었고 적지 않은 장수들이 욕지거리를 했다.그곳에 도착한 사람들은 왕실을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