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웅에게는 당연히 증거가 없었다.그는 윤구주의 명령을 받자마자 곧바로 남궁 가문으로 향했기에 화진 군주의 명령이라는 증거가 있을 리가 없었다.조금 전에 두 보초병을 속인 이유는 괜히 남궁 가문의 어르신들을 마주쳐서 성가신 일을 겪고 싶지 않아서였다.그래서 두 보초병을 속인 것이었다.그리고 이젠 검옥에 도착했다.검옥에 들어가서 남궁서준을 데리고 나오면 곧장 남릉 고씨 일가로 가서 윤구주를 만날 수 있었다.그래서 다른 건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남궁 가문의 보초병 두 명을 기절시킨 뒤 정태웅은 눈알을 굴려 눈앞의 검옥 문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꼬맹아, 태웅이 형이 왔다.”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검옥으로 걸음을 내디뎠다.쿠궁!천천히 검옥의 문을 열자 엄청나게 싸늘한 검기가 문 안쪽에서부터 흘러나왔다.검옥은 남궁 세가의 검총만큼이나 유명한 곳이었다.그곳에 있는 검기는 보통의 신급 경지 고수라고 해도 얕볼 수 없었다.정태웅은 당연히 멍청하지 않았다.검옥 안으로 첫걸음을 내디뎠을 때, 정태웅은 순간 몸이 긴장으로 뻣뻣이 굳었다. 동시에 그의 주변으로 검붉은색의 강기가 퍼졌다. 강기로 인해 그의 옷소매가 펄럭거리면서 소리를 냈다.이것은 정태웅의 가장 유명한 칠살공이었다.정태웅은 칠살공을 시전하면서 조심스럽게 검옥 안으로 들어갔다.커다란 검옥은 원형 모양이었다.안으로 들어가자 아래로 향하는 돌계단이 굽이굽이 있었다.차갑고 캄캄한 돌벽에 반짝이는 야명주가 박혀 있었다. 그 야명주들은 하나하나가 가격이 엄청났고 아주 환했다.벽에 박힌 야명주는 마치 조명 같았다.엄청난 검기가 검옥 안에서 휘몰아치고 있었다.게다가 아래로 내려가면 갈수록 검기가 더욱 짙었다.심지어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였다. 미친 듯이 날뛰는 검기는 단단한 화강암에 깊은 흔적들을 남겼다.정태웅은 감히 방심하지 못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은 검옥 밑부분을 바라보면서 눈살을 찌푸렸다.“제기랄, 남궁 가문은 왜 이런 괴상한 곳을 지었지? 휴, 저하를 위해서 오늘 이
정태웅이 5층에 들어서자마자 그의 주변에 있는 검붉은색의 강기 보호막이 검기를 견디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다.보호막 중간에는 무시무시한 검기로 인해 균열이 생기기도 했는데, 정태웅은 울며 겨자 먹기로 계속해 내려갔다.아래로 내려갈수록 검기가 더욱 짙었다.틱. 틱.잠시 뒤, 그의 보호막은 완전히 부서져 버렸다.하지만 다행히도 정태웅은 5층에 도착할 수 있었다.이제 마지막 한 층만 남았다.정태웅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헐떡대고 있었으며 입고 있는 옷도 전부 다 젖었다.그는 마지막 층을 힐끗 본 뒤 계단에 털썩 주저앉아서 욕을 해댔다.“젠장, 안 해! 더 내려갔다가는 이 검기 때문에 죽고 말 거야!”그렇게 정태웅은 큰 목청으로 욕하다가 아래층을 향해 외쳤다.“꼬맹아! 꼬맹아! 태웅이 형이 왔으니까 얼른 나와 봐!”6층에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는 마치 바닷속에 가라앉은 바위처럼 이내 고요해졌고, 아무런 기척도 들리지 않았다.마치 검옥 안에 살아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제기랄, 꼬맹아. 형 말이 안 들리는 거야? 미리 말해두는데 난 급한 일로 널 찾아온 거야. 그러니까 얼른 나와!”정태웅은 계속해 소리를 질렀다.그러나 6층에서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검옥 안에서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정태웅은 화가 났다.“꼬맹아, 귀가 먹었어? 내 말이 들리지 않는 거야? 난 오늘 너한테 아주 중요한 일을 얘기해주려고 온 거야. 이거 안 들으면 후회할걸?”여전히 잠잠했다.쥐 죽은 듯 고요한 적막이었다.마치 정태웅이 아무리 소리쳐도 아래에 산 사람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단단히 화가 난 정태웅은 당장 6층으로 뛰어 내려가고 싶었다. 그러나 무시무시한 검기를 떠올린 그는 끝내 참았다.정태웅은 눈알을 굴리면서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그래!”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른 정태웅은 6층을 향해 크게 소리쳤다.“꼬맹아! 화진에 검도 고수가 또 한 명 생겼다. 게다가 너보다 더 강하다고 하더라. 너 계속 이 검옥에 숨어서 지낼 거야? 얘기 들어
“조금 전에 얘기했잖아. 너보다 검도가 뛰어난 사람이 있다고. 그리고 너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말이야.”정태웅은 거짓말을 했다.쇠사슬에 묶여 있던 남궁서준은 시선조차 들지 않고 코웃음 쳤다.“왜? 내 말을 믿지 않는 거야? 난 그 검도 고수를 내 두 눈으로 직접 본 적이 있어. 난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을 본 적이 없어. 정말 대단했다고!”정태웅은 남궁서준의 반응을 보고 서둘러 거짓말을 보탰다.정태웅이 계속해 호들갑을 떨 때 남궁서준이 갑자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화진에는 돌아가신 구주 형을 제외하고는 검도에서 절 이길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까 제 화를 돋우려고 거짓말할 필요는 없어요.”“얘 좀 봐라? 너 큰소리치는 거야? 이 세상에 검도에서 널 이길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야?”정태웅이 눈을 가늘게 뜨면서 말했다.“쓸데없는 얘기는 그만해요. 한번 해보고 싶다면 제 검을 막아보든가요!”흰옷을 입은 소년은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곧 엄청난 검의를 내뿜으며 정태웅을 향해 달려들었다.정태웅은 남궁서준이 화를 내자 덜컥 겁이 났다.“아니, 아니. 서준아, 우리 말로 하자. 왜 싸우려고 그래? 내가 싸움을 잘 못한다는 걸 알면서 왜 나랑 싸우려는 거야?”정태웅이 뻔뻔하게 말했다.흰옷을 입은 소년은 정태웅의 뻔뻔한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듣고 차갑게 코웃음 치면서 검기를 거두어들였다. 더는 그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말이다.남궁서준이 검기를 거두어들이자 정태웅은 웃으며 말했다.“서준아, 아까는 형이 장난친 거야. 마음에 두지 마. 내 마음속에서 화진의 검도 일인자는 너니까. 다른 사람들은 내 눈에 아무것도 아니야.”정태웅이 비위를 맞추려고 하자 남궁서준은 아예 그를 무시했다.“서준아, 우리 대화도 좀 했으니까 이젠 본론을 얘기할게. 형이랑 같이 남릉에 가자.”정태웅이 엉덩이를 털면서 6층에 있는, 네 개의 쇠사슬에 손발이 묶인 남궁서준을 향해 말했다.“안 가요.”남궁서준이 대답했다.“젠장, 안 갈 거라고? 너
“너도 참 멍청하구나. 내가 남릉에 가자는 건 저하를 위해서야!”정태웅은 남궁서준이 고집을 부리자 욕을 하기 시작했다.“지금 날 욕하는 거예요?”남궁서준은 정태웅이 욕을 하자 표정이 굳어졌다.정태웅도 화가 났다.“널 욕하는 게 뭐 어때서? 너 이 자식, 저하 곁에 있을 때 내가 줄곧 널 돌봤어. 그런데 나한테 고마워하지도 않고 말이야!”정태웅에게 혼난 화진의 소년후는 눈동자에서 살기를 내뿜으며 정태웅을 죽어라 노려보았다.정태웅이 한 마디라도 더 하면 그를 죽일 듯했다.하지만 정태웅이 누구인가?정태웅은 두려운 게 없었다.그는 계속해 화가 나서 몸까지 떨고 있는 소년후를 욕했다.“뭘 그렇게 노려봐? 내가 뭐 틀린 말 했어? 괴물 같은 놈, 빌어먹을 꼬맹이. 형이 널 데리고 저하를 만나러 가겠다는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네가 그렇게 잘났어? 그러면 어디 한번 날 공격해 봐. 내가 널 두려워할 것 같아?”정태웅은 두 손을 펼치면서 남궁서준과 싸울 듯이 굴었다.그러나 남궁서준은 그를 공격하지 않았다.당연한 일이었다.그들은 형제였기 때문이다.그는 그저 차가운 표정으로 눈앞의 정태웅을 바라보았다.“조금 전에... 저하를 만나러 간다고 한 거예요?”“그래! 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이 빌어먹을 남궁 일가에 왔겠어? 암부에서 편히 지냈겠지.”정태웅이 노기 등등하게 말했다.“말도 안 돼요! 거짓말하지 말아요! 구주 형은 죽음의 바다에서 죽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구주 형을 만나러 간단 말이에요?”남궁서준은 화가 난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면서 온몸에서 검기를 뿜어댔다.“멍청하긴, 내가 왜 널 속이겠어? 솔직히 얘기할게. 우리 저하는 죽지 않았어!”정태웅은 마침내 사실을 얘기했다.그 말에 손발이 전부 쇠사슬로 묶인 소년후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덜덜 떨면서 정태웅을 바라보았다.“절... 절 속일 생각은 하지 말아요. 구주 형이 정말 죽지 않았다고요?”“그래! 생각해 봐. 겨우 10국 따위가 어떻게 우리 저하를
“진짜 형의 목소리네요. 진짜 구주 형이에요!”쇠사슬에 사지가 묶인 소년후는 갑자기 아이처럼 울먹이기 시작했다.“하하, 서준아. 형은 널 속이지 않았다니까!”정태웅은 녹음펜을 거두어들인 뒤 기쁜 얼굴로 말했다.“얘기해줘요. 구주 형 지금 어디 있어요?”남궁서준은 갑자기 고개를 들면서 흥분한 얼굴로 눈앞에 있는 정태웅을 향해 물었다.“얘기했잖아. 나랑 같이 남릉 고씨 일가로 향하면 저하를 볼 수 있다고. 하지만 넌 지금 검옥에 갇혀 있고 너희 집안 어르신들이 쇠사슬로 네 사지를 묶어놓았지. 이걸 어떡하지?”정태웅은 중얼거리면서 아래쪽에 있는, 쇠사슬에 사지가 묶인 흰옷을 입은 소년을 바라보았다.남궁서준은 차갑게 웃었다.“겨우 쇠사슬일 뿐이에요. 절 묶어둘 순 없죠.”남궁서준은 그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엄청난 검기를 뿜어댔다.그 검기는 마치 용과 같았다. 그것은 곧바로 검옥 안의 모든 검기를 제압했다.마치 그가 검 중의 왕인 것처럼 말이다.무시무시한 검기가 움직이면서 철컥철컥 소리가 났다.남궁서준은 몸을 흠칫 떨었다. 그의 사지를 묶었던 쇠사슬이 순식간에 부서졌다.“세상에! 서준아, 너 그사이 실력이 또 는 거야?”그 광경에 정태웅의 눈이 빛났다.“역시 괴물답네! 이 정도 재능이면 곧 저하를 따라잡을 수 있겠는데?”흰옷을 입은 소년은 자신의 사지를 묶었던 쇠사슬을 부순 뒤 오른손을 들면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리 와!”챙 소리와 함께 금빛의 검이 지면을 뚫고 지하에서 올라왔다.금빛의 검은 그 길이가 아주 길었고 검날은 보통 검보다 조금 더 넓었다.칼자루에는 빛나는 야명주들이 박혀 있었다. 그 검은 남궁 가문의 명검 유용검으로 남궁서준의 독특한 무기였다.유용검을 손에 넣게 되자 화진 소년후의 기세가 다시금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마치 그와 그가 들고 있는 금빛의 검이 한 몸이 된 듯 말이다.금빛의 검을 든 흰옷을 입은 소년은 위로 올라가서 정태웅의 앞에 섰다.엄청난 검기가 그의 몸에서 폭발적으로 뿜어져 나왔다. 그는 정
두 사람은 검옥 위쪽으로 향한 뒤 문 앞에 정태웅이 기절시킨 두 명의 부하를 보게 되었다.그들은 싸늘한 시선으로 두 사람을 힐끗 바라보았다.정태웅이 말했다.“우선 이 둘에게 물어볼까?”남궁서준은 짧게 그러자고 대답했다.정태웅은 손가락을 들었고, 곧 현기 두 줄기가 기절한 두 명의 남궁 제자의 몸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두 사람은 정신을 차렸다.“헤헤, 일어났네요!”정태웅은 두 사람이 정신을 차리자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넸다.“정 지휘사님, 정말 너무하시네요! 어떻게 저희를 기습할 수 있죠? 지휘사님...”두 사람이 검을 뽑으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두 사람은 멈칫하며 고개를 돌렸고 곧 옆에 서 있는 흰옷을 입은 소년을 보았다.‘응?’“도련님...”“도련님을 뵙습니다!”두 사람은 남궁서준을 보자 두 다리가 후들거려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남궁서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말없이 두 제자를 힐끗 보았다.“도련님, 어... 어... 어떻게 나오신 겁니까?”한 제자가 전전긍긍해서 남궁서준에게 물었다.“내가 나오고 싶으면 나오는 거지. 누가 날 막을 수 있겠어?”남궁서준이 말했다.그 말에 두 제자는 말문이 턱 막혔다.확실히 남궁 가문의 천재이자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귀재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너희에게 물어볼 것이 있어. 반드시 솔직히 대답해야 해. 알겠어?”남궁서준이 갑자기 말했다.“네, 네. 물으세요!”두 사람이 말했다.“남궁 가문의 젊은 세대 중 절름발이가 있어?”남궁서준은 정태웅이 했던 질문을 똑같이 했다.‘뭐라고?’“절름발이요?”두 제자는 그 말을 듣고 당황했다.“맞아. 그 절름발이가 남릉 고씨 일가 딸과 약혼했다던데, 알고 있어?”정태웅이 말을 더 보탰다.그 말을 들은 두 제자는 한참을 생각했다.그런데 바로 그때 얼굴이 긴 편이 제자가 갑자기 이마를 ‘탁’ 치면서 말했다.“혹시 남궁 가문의 방계인 남궁혁 말씀이세요?”“남궁혁?”남궁서준은 그 이름이 낯선 듯했다.
남릉 고씨 일가.윤구주가 고씨 일가의 장원을 점령한 뒤로 고씨 일가는 아주 초라했다.특히 대문 쪽은 윤구주의 검에 의해 30m에 달하는 길이의 흔적이 남겨졌다. 그로 인해 한때 휘황찬란했던 고씨 일가는 아주 황폐해졌다.현재 고씨 일가 사람들은 전부 장원을 떠났다.누가 감히 그곳에 남아있겠는가?고씨 일가 가주인 고준형도 사람들을 데리고 고씨 일가 장원을 떠났다.현재 고씨 일가 장원에는 윤구주와 시괴 거인 동산을 제외하면 다른 이는 없었다.널따란 고씨 일가 대전 안, 윤구주는 휴대전화를 들고 정태웅이 보낸 문자를 보고 있었다.정태웅은 남궁서준을 데리고 남릉으로 오고 있고, 남궁혁의 신분도 알아냈다고 했다.고씨 일가는 남궁 일가 쪽에 줄 서기 위해 자기 딸을 남궁 일가 방계에 시집 보내려고 했다. 윤구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어쩐지 남궁 일가의 젊은 세대 중에서 남궁혁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없다 싶었는데 방계에 불과한 쓰레기였군.”윤구주는 문자를 다 본 뒤 별로 신경 쓰지 않고 휴대전화를 넣어두고 계속해 수련했다.이제 그는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고씨 일가 어르신이 돌아오기를 말이다.천년초 하나와 엇비슷한 수준의 봉안보리구슬 팔찌가 그에게 있었다.윤구주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조용히 수련하고 있을 때 끼익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고, 곧 아름다운 여자가 차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그녀는 고씨 일가 셋째 딸 고시연이었다.레이스가 달린 긴 치마를 입은 고시연은 종처럼 차를 들고 와서 내려놓은 뒤 묵묵히 윤구주의 뒤에 고개를 숙이고 서 있었다.마치 정말로 윤구주의 종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네 몸에 남겼던 화련금안은 이미 풀었는데 왜 가지 않는 거야?”윤구주는 갑자기 눈을 살짝 떴다. 횃불과도 같은 시선이 고시연에게 닿았다.고시연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침묵했다가 대답했다.“전... 당신이 저희 할아버지와 싸우기를 바라지 않아요.”“하! 날 걱정하는 거야? 아니면 네 할아버지를 걱정하는 거야?”윤구주가 물었다.고시연은
그러나 그녀는 멍청하지 않았다. 그녀는 눈앞의 카리스마 넘치는 남자에게 정복당했다. 심지어 저도 모르게 눈앞의 마귀 같은 남자가 점점 더 좋아졌다.하지만 그를 좋아해도 될까?아니, 절대 그래서는 안 됐다.그는 고씨 일가의 원수고 고씨 일가를 점령했다. 게다가 이젠 고씨 일가의 보물을 빼앗으려고 하고 있었다.이런 남자를 어떻게 좋아할 수 있단 말인가?게다가 그는 화진의 4대 가문 중 하나인 고씨 일가 아들과 결혼 약속을 했다.그래서 고시연은 이 마귀를 빨리 보내버리고 싶었다.그가 이 남릉에서 떠나길 바랐다.그러나 윤구주가 떠날 리 없었다.화진의 왕이자 과거 10개국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최강자였다. 그의 영예를 따라올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그러니 일개 고씨 일가는 말할 것도 없었다.“어쨌든 호의는 고마워. 하지만 넌 이만 돌아가도록 해. 이제 이곳은 곧 폐허가 될 테니 말이야.”윤구주가 갑자기 고시연을 향해 말했다.고시연은 그 말을 듣고 저도 모르게 온몸을 흠칫 떨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힐끗 말했다.“그래요, 갈게요! 그렇게 죽고 싶다고 하니 저도 어쩔 수가 없네요.”말을 마친 뒤 고시연은 단호히 떠났다.그녀가 방문을 나서려는 순간, 윤구주가 갑자기 말했다.“잠깐!”고시연은 고개를 돌렸다.“또 무슨 일이에요?”“묻는 걸 잊었네. 너랑 남궁 일가의 결혼은 네가 선택한 거야? 아니면 고씨 일가를 위해서야?”윤구주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시연은 흠칫했다.그녀는 그곳에 멍하니 서 있었다.그리고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저랑 남궁 가문의 그 사람은 겨우 한 번 봤어요. 그런데 제가 그 사람이랑 결혼하겠다고 할 리가 있겠어요?”그 말에 윤구주는 짧게 대답했다.“알겠어. 네 가문에서 강요한 건가 보네. 하지만 안타깝게도 너희 가문에서는 몰랐나 봐. 모든 남궁 가문의 사람이 4대 가문의 직계는 아냐.”“그 말 무슨 뜻이에요?”고시연은 의아한 얼굴로 윤구주에게 물었다.윤구주가 말했다.“별 뜻 없어. 그냥 좋은 마음
요염한 여자는 윤구주가 검으로 자신의 주사기법을 파괴할 줄은 몰랐는지 눈에 띄게 당황하면서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단번에 제 주사기법을 파괴하다니, 실력이 정말 엄청나네요! 그러면 이번에도 한 번 막아봐요!”요염한 여자는 두 손을 움직였다. 곧 그녀의 미간에 있는 기호는 점점 더 반짝이기 시작했고 그녀의 몸 주변을 둘러싼 핑크색 기운도 점점 짙어졌다.그녀는 손을 움직였고 그 순간 검은색의 사슬이 나타났다.그 사슬은 아주 강렬한 살기 파동을 뿜어댔는데 나타나자마자 음기가 물씬 느껴졌다.“멋진 오빠, 조심해요!”요염한 여자는 매력적인 미소를 짓더니 손목을 움직였다. 검은색 사슬을 마치 살아있는 뱀처럼 윤구주를 향해 날아들었다.눈보라 속에 서 있는 윤구주는 덤덤한 표정으로 꿈쩍하지 않았다.촤라락!살기가 넘실대는 사슬이 윤구주를 묶었다.“너무 방심한 거 아닌가요? 제 거혼사슬에 묶인다면 3품 절정 강자라고 해도 벗어날 수 없거든요!”요염한 여자는 사슬로 윤구주를 옭아맨 뒤 키득거리며 웃었다.옆에 있던 박천후는 요염한 여자가 사슬로 윤구주를 옭아매는 걸 보고 앞으로 한 걸음 나서며 여자를 공격하려고 했다.“바보야, 뭘 하려는 거야?”염수천이 박천후를 말렸다.“뭘 하긴? 저하를 도와야지!”박천후가 대답했다.염수천은 코를 킁킁거리면서 말했다.“멍청하긴. 넌 가만히 있어. 저하가 어떤 분이신데? 네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하지만...”“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넌 그냥 얌전히 있어!”염수천은 욕을 한 뒤 박천후를 무시했다.다른 한편, 요염한 여자는 거혼사슬로 윤구주를 속박한 뒤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러면 이제 순순히 따라오도록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공격할 거니까요.”거혼사슬에 묶인 윤구주는 엷은 미소를 지었다.“겨우 이딴 걸로 날 잡으려고?”“흥, 말로 해서는 안 되겠네요! 이젠 절 탓하지 말아요!”요염한 여자는 표정이 차가워지더니 손을 움직여 수인을 맺어 거혼사슬을 가리켰다.“금법, 개시!”촤악!
윤구주는 덤덤하게 말했지만 그 내용은 놀라웠다.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칠수방이라니!윤구주가 칠수방을 언급하자 박천후와 염수천의 안색이 순식간에 달라졌다.화진은 무공으로 나라를 세웠다.무도의 3대 서열은 화진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었는데 3대 서열은 각기 문벌, 세가, 가장 강력한 종문이었다. 전에 윤구주는 서울에서 문벌과 세가를 처단했고 종문의 자제는 단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소문에 따르면 종문의 자제들은 아주 엄격한 규칙을 따라야 했기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아주 드물다고 한다.그런데 놀랍게도 이 엄동설한에 종문 출신의 사람이 나타날 줄이야!게다가 다름 아닌 화진의 6대종문 중 하나인 칠수방 출신이라니.윤구주가 단번에 자신의 종문을 알아맞히자 요염한 여자는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는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놀란 표정으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맞아요. 단번에 제 무공을 알아보고 제 신분을 알아맞히다니, 제가 기다리던 사람은 역시 당신이 맞네요!”윤구주는 평온한 표정으로 말했다.“소문에 따르면 칠수방은 아름다운 여자만 제자로 삼는다고 하지. 그리고 종문 중에 삼절칠금채가 있다고 하던데 넌 그중 누구지?”윤구주가 칠수방의 상황을 읊자 요염한 여자는 상당히 놀란 듯 보였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감정을 추스르고 대답했다.“정말 대단하네요! 우리 칠수방에 대해 이렇게나 상세히 알고 있다니, 놀라워요. 저랑 같이 지금 바로 칠수방으로 가는 건 어때요? 그러면 제가 굳이 나설 필요도 없고 당신도 다칠 필요도 없으니까요.”윤구주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날 잡으려고?”요염한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네!”“말해봐. 누가 날 잡으라고 시킨 거야?”윤구주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요염한 여자는 웃는 얼굴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미안하지만 그건 알려줄 수 없어요. 대신 순순히 절 따라온다면 무사할 거라고 장담해요.”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가슴을 툭툭 쳤다.윤구주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칠수방 따위가
지면에 균열이 생겼고 곧 굉음과 함께 땅이 뒤흔들렸다.청색을 띤 무홍의 기운이 엄청난 기세와 함께 하늘로 솟구쳤다. 박천후의 두 주먹은 마치 용과 같았고 그의 주먹에 권의가 모이기 시작했다.“노용권!”마치 푸른 용 같은 권의가 나타나는 순간, 박천후는 마치 하늘까지 부술 듯한 기세로 요염한 여자를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응? 정말로 진심을 다해서 싸우려 하네요? 그렇다면 저도 제대로 놀아주죠!”요염한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그녀의 미간에 붉은색의 룬 문자가 나타났다.그 룬 문자가 빛나기 시작하자 여자의 몸 주변에 옅은 핑크색의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곧이어 그녀는 손을 움직였고 거미줄 같아 보이는 기운으로 이루어진 실이 그녀의 손에 나타났다.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아주 많은 양의 실이 마치 거미줄처럼 박천후를 뒤덮었다.박천후는 비록 권법은 대단했지만 요염한 여자의 기괴한 공법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는 빠르게 몸을 뒤로 물렸지만 무시무시한 실들이 그의 두 팔을 꽁꽁 감쌌다.박천후는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그 실들은 마치 금강석처럼 더없이 단단해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박천후가 여자에게 당하자 검을 빼 드는 소리가 하늘을 갈랐다.“박천후, 조심해!”검을 빼든 사람은 다름 아닌 황성 금위군 통령 염수천이었다.마찬가지로 절정 삼중천의 실력을 갖춘 염수천이 검을 빼 들고 나서면서 박천후의 팔을 묶은 실을 베려고 했다.챙강!실은 염수천에 의해 잘리자 핑크빛 기운이 되어 요염한 여자의 곁으로 돌아갔다.“박천후, 괜찮아?”박천후가 거미줄의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준 염수천은 서둘러 고개를 돌려 박천후를 바라보았다.박천후는 코웃음을 쳤다.“괜찮아. 조금 전에는 내가 적을 얕봤어.”그는 그렇게 말한 뒤 고개를 돌려 요염한 여자를 노려보았다.“거기 너, 다시 한번 붙어 보자!”맨발인 요염한 여자는 염수천이 나서자 싱긋 웃으며 말했다.“쯧쯧, 절정 실력의 두 사내들이 연약한 여자 한 명을 괴롭히려고 했으니, 소문이라도 나면 창피하
귀청을 찢는 듯한 목소리에도 맨발로 서 있는 여자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매혹적인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전 이곳에서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에요. 그것도 안 되나요?”‘뭐?’“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린다고? 이렇게 추운 날씨에?”박천후는 점점 더 이상함을 느꼈다.맨발의 여성은 계속 웃으면서 윤구주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요. 그거 알아요? 제가 기다리고 있는 그 사람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영웅이에요! 게다가 우리 화진의 왕이라고 해요.”그 말에 박천후의 표정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여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람은 누가 봐도 윤구주였기 때문이다.“당신은 대체 누구지? 어떤 저의로 이곳에서 우리 저하를 기다린 거야?”박천후의 목소리는 우레와도 같았다.강한 현기가 음파를 통해 맨발의 여자에게 전해졌다.그러나 여자는 박천후의 음파 앞에서 꿈쩍하지 않고 킥킥 웃으며 말했다.“저의라뇨? 솔직하게 얘기해도 믿지를 않네요. 연약한 제가 인연이 있는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데 무슨 저의가 있겠어요? 전 그저 단순히 얘기를 나누고 싶을 뿐이에요.”“헛소리! 마지막으로 물을게. 당신은 대체 누구야?”박천후는 화가 난 상태였다.요염한 여자가 말했다.“제 이름을 알고 싶은 건가요? 안타깝게도 당신은 그럴 자격이 없어요. 저와 인연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아무도 제 이름을 알 자격이 없죠!”“건방지군! 그렇다면 어디 한 번 시험해 봐야겠어!”박천후는 그렇게 말하자마자 곧바로 움직였다.윤구주가 아끼는 10대 장수 중 한 명이었던 박천후는 절정 강자였다.게다가 그는 무려 절정 삼중천이었다.박천후는 여자를 향해 다가가며 주먹을 쥐었다.무시무시한 권의가 강렬한 강풍을 띤 채 여자를 습격했다.박천후의 권법을 본 요염한 여자는 입꼬리를 올리며 하늘로 훌쩍 날아올랐다.그녀는 아주 빠르게 움직였는데 마치 연기 같았다.“제가 당신을 두려워할 것 같나요?”말하는 사이, 요염한 여자는 빠르게 움직이면서 손을 움직였고 곧 그녀의 부드러워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으로 앞을 가리켰다.“세상에... 정말 여자가 있는데요? 이렇게 추운 곳에 왜 여자가 있는 걸까요?”옆에 있던 염수천은 호기심이 들었다.윤구주는 사실 일찌감치 눈보라 속 그녀를 발견했다. 다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을 뿐이다.그는 덤덤히 고개를 들어 눈보라 속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신경 쓰지 말고 계속 행군해.”“네, 저하!”그렇게 병사들은 계속해 움직였다.대군이 앞에 있는 여자와 점점 가까워지자 드디어 여자의 모습이 똑똑히 보였다.여자는 청색의 긴 치마를 입고 있었는데 예스러운 느낌이 났다.그녀는 폭포수와도 같은 머리를 높이 묶고 있었는데 이목구비는 정교했고 피부는 눈처럼 하얬다. 그녀는 비록 긴 치마를 입고 있었지만 몸 선이 예뻐서 아주 매력적이었다.하지만 이상한 점은 그녀가 눈으로 뒤덮인 이곳에서,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맨발로 서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점이었다.예스러운 느낌의 옷을 입고 있는 미녀가 맨발로 인적 드문 곳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라니, 누가 봐도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대군은 여자의 곁을 지나치면서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박천후, 염수천도 마찬가지였다.얼굴을 보니 화진 사람 같아 보였다.그런데 왜 이 추운 곳에서 이러고 있는 걸까?이곳은 화진과 설국의 접경지역으로 인적이 아주 드문 곳이었다.기괴한 여자는 위풍당당한 대군이 지나가는데도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계속해 눈사람을 높이 쌓으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녀는 마치 화진의 대군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저 여자 정말 너무 이상하지 않아? 이렇게 추운 날에 맨발로 이곳에서 눈사람을 만들다니.”박천후는 궁금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러게. 어디서 온 여자지? 왜 이곳에 잇는 걸까?염수천 또한 궁금했다.오직 윤구주만이 덤덤한 눈빛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여자를 바라보며 말했다.“손님이면 대접해 주고 적이라면 내쫓으면 그만이지.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움직이도록 해.”윤구주의 말에 염수천과 박천후는 더
“저하, 설국 쪽은 처리하실 겁니까? 젠장, 그 빌어먹을 자식들! 당시 낭파산 전투에서 전부 죽여버려야 했어요!”박천후가 사나운 목소리로 말했다.이번에 설국이 저지른 일로 화진인들은 모두 분통을 터뜨렸다.수십만 명에 달하는 북방군들은 언제든 설국을 쳐들어갈 수 있게 이미 만반의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됐어. 설태현의 목도 베었고 설국의 만 명에 달하는 정예군도 전부 죽였거든. 앞으로 설국은 절대 허튼짓을 하지 못할 거야.”윤구주가 천천히 말했다.“하지만 설국과 다른 아홉 나라들은 아주 탐욕스러운 자들입니다. 이번에 완전히 없애버리지 않는다면 그 빌어먹을 놈들이 또 언제 우리 화진을 건드릴지 모르는 일입니다.”박천후는 설국을 아예 없애버릴 생각인 듯했다.“걱정하지 마. 앞으로는 절대 그럴 일이 없을 테니까. 오늘부터 설국은 우리 화진의 속국이거든.”윤구주가 말했다.‘뭐?’그 말에 박천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뿐만 아니라 옆에 있던 염수천 또한 깜짝 놀랐다.“저하, 저하 말씀은 설국이 우리 화진에 굴복했단 말입니까?”박천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한 나라가 다른 나라의 속국이 되는 건 절대 흔한 일이 아니었다.속국이 되었다는 건 앞으로 설국이 화진의 일부라는 것과 같은 의미였다.“그래.”윤구주의 말을 들은 박천후는 순간 흥분했다.“역시 저하는 대단하십니다! 당시 10국도 설국을 점령하지 못했는데 겨우 며칠 사이 저하께서는 설국을 화진의 속국으로 만드셨군요. 하하하하, 그러면 앞으로 화진인들은 설국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겠네요. 여권도 필요가 없겠어요.”박천후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저하, 대단하십니다. 정말 훌륭하세요! 저하께서는 우리 화진인들이 줄곧 바라왔던 일을 현실로 만드셨어요!”염수천 또한 옆에서 감탄했다.그렇게 큰 설국이 화진의 속국이 되다니, 평범한 사람들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심지어 다른 아홉 나라도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윤구주는 겨우 며칠 사이 설국을 화진의 속국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엉엉 우는 박천후를 바라보던 윤구주는 웃으며 말했다.“왜 북방군에 남아있지 않고 이곳으로 온 거야?”“저하, 사실은... 국주님께서 절 보내셨습니다!”박천후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국주가 박천후를 파견했다고 하자 윤구주는 별말 하지 않았다.“저하, 그런데 왜 이곳에 계시는 겁니까? 왜 저하께서 살아계시는데 다들 저하가 돌아가셨다고 한 겁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박천후는 눈물을 흘리면서 물었다.“얘기하자면 길어. 앞으로 천천히 얘기해줄게.”윤구주는 덤덤히 말했다.그러나 박천후는 여전히 울먹거리면서 여자처럼 울었다.“그만해. 총사령관이 그렇게 훌쩍거리면서 울면 보기 안 좋아.”윤구주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한때 자신이 아꼈던 박천후를 바라보며 그를 나무랐다.“하하하하, 이 바보야. 아까는 안 운다면서? 그런데 왜 질질 짜는 거야?”염수천은 박천후의 우는 모습을 보면서 비아냥댔다.박천후는 눈물을 닦으면서 말했다.“넌 꺼져. 이 빌어먹을 자식, 저하께서 살아계신다는 걸 알면서 우리에게 얘기해 주지도 않고. 양심 없는 놈!”박천후가 욕을 하자 염수천이 말했다.“그건 내 잘못이 아니야. 저하께서 비밀로 하라고 하셨다고!”“헛소리하지 마. 네가 얘기 안 한 거잖아!”한때 형제들이었던 두 사람이 싸우는 모습에 윤구주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전우란 무엇인가?생사고락을 함께하는 자, 외적을 물리치고 나라를 지키는 자, 정과 의리를 중시하고 목숨을 걸 수 있는 자들이 전우였다.윤구주가 아끼던 장수들은 하나같이 전쟁의 불길 속에서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며 함께 성장한 형제들이었다.그들의 감정은 이미 모든 걸 초월했다.그래서 윤구주는 그들이 싸우든 말든 상관하지 않았다.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윤구주는 박천후에게 말했다.“남태혁, 주인철, 안경식 그 자식들은?”윤구주가 얘기한 사람들은 화진 군대에서 엄청난 지위를 가진 자들이었다.그들 모두 과거 윤구주가 아꼈던 장수들이었다.남태혁은 서부 부대의 일인자이고 주인철과 안경식
세나미의 말에 윤구주는 웃었다.그것은 그가 항상 기다리던 말이었다.설국을 속국으로 만들려면 반드시 세나미를 설득해야 했다.그렇게 해야만 설국은 영원히 화진의 속국이 될 수 있었다.“약속했으니 난 이만 가볼게. 명심해. 지금 이 순간부터 설국은 우리 화진의 속국이야.”윤구주는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마친 뒤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그는 곧바로 떠났다.빨간 머리카락의 세나미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윤구주의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았다.아쉽게도 윤구주는 아주 빠르게 움직여 눈 깜짝할 사이에 휘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사라졌다.윤구주가 정말로 설국을 떠났다.“저 악마... 드디어 떠났네.”세나미가 중얼거렸다.몰아치는 눈보라 속에서 세나미는 본인이 기쁜 건지, 실망스러운 건지 알지도 못한 채 계속 눈을 맞으며 그곳에 서 있었다.바람은 점점 강하게 불었고 시야도 점점 흐려졌다.온통 흰 눈으로 뒤덮인 곳에서 새로운 설국의 국주는 그렇게 눈보라 속에 서 있었다....낙일성에서 1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화진의 병사들이 질서 있게 주둔하고 있었다.그들은 박천후가 이끄는 북방군과 염수천이 이끄는 10만 금위군이었다.눈보라 속에서 갑자기 누군가 하늘에서 날아왔다.“강자가 다가오고 있다. 다들 경계해!”하늘 위 강자가 가까워지는 순간, 염수천과 박천후 모두 그의 존재를 감지했다.두 사람은 빠르게 기운을 사용하며 싸늘한 두 눈으로 상공을 바라보았다.하늘 위 그 사람은 아주 빠르게 날았다.쿵!그의 두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대지가 뒤흔들리면서 눈이 사방으로 흩날렸다.윤구주가 온 것이다.“어?”“저하께서 돌아오셨어!”염수천은 눈앞의 남자를 본 순간 곧바로 흥분해서 빠르게 그에게로 달려가며 큰 소리로 외쳤다.“저하!”박천후는 윤구주의 모습을 제대로 보았다. 상대가 자신이 늘 그리워하던 구주왕이라는 걸 알았을 때 그의 두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는 목이 메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저하, 드디어 돌아오셨군요!”염수천은 빠르
“당, 당신 언제쯤 떠날 생각이야?”세나미가 갑자기 용기를 내서 물었다.“왜? 벌써 날 쫓아내고 싶은 거야?”윤구주는 고개를 들더니 미소 띤 얼굴로 세나미를 바라보았다.“쫓아내려는 게 아니라... 당신이 여기 있으면 우리 설국인들이 두려워해서 그래.”세나미는 솔직히 말했다.윤구주는 그 말을 듣더니 크게 웃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내 것을 손에 넣었으니 이만 가볼 거야.”손에 넣었다고?세나미는 조금 이해가 가지 않았다.그러나 윤구주의 떠나겠다는 말에 세나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파란 눈동자로 윤구주를 바라보았다.왠지는 모르겠지만 윤구주가 떠나겠다고 하는 순간 그녀는 조금 실망스러우면서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젠장, 나 왜 이러는 거지? 왜 난 이 악마가 이곳에 남아있길 바라는 거야? 저 사람은 악마라고! 우리 설국인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데! 심지어 우리 아버지도 저 사람에게 살해당했다고!’세나미는 서둘러 기분을 다스리면서 끊임없이 자신에게 경고를 했다.“난 떠날 거야. 대신 내게 약속 하나 해줘.”윤구주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면서 별처럼 빛나는 두 눈으로 세나미를 바라보았다.“말해.”세나미도 고개를 들었다.“앞으로 설국은 우리 화진의 속국이고 100년간 그걸 유지해야 해.”윤구주가 충격적인 말을 했다.‘뭐라고?’윤구주가 설국이 화진의 속국이라고 하자마자 세나미는 표정이 굳었다.속국이 된다면 설국은 앞으로 화진에 의해 통제당한다는 걸 의미했다.그것은 한 나라에 있어서 엄청난 치욕이었다.“놀랄 필요 없어. 이건 설국을 위한 결정이니까. 설국은 땅도 작고 자원도 적어. 이 일이 있은 뒤로 나머지 아홉 개의 나라에서 과연 설국을 받아줄 것 같아?”윤구주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고 세나미는 침묵했다.나약한 나라에는 외교가 없었다. 그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였다.게다가 이번 일로 설국은 큰 타격을 받았고 아마 다른 아홉 개의 나라에서는 설국을 깔볼 것이다.그래서 다른 아홉 개의 나라에서 설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