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정훈은 병이 나은 후, 아직 이승우 등 친구들과 모이지 못했다.부승희가 작은 장사를 하다가 문제가 생겨서 그들을 불러 모았다.“승희가 한참 동안 네 얘기만 했어. 한 번 나오면 어디가 덧나니?”전화에서 이승우가 연정훈을 비난했다.연정훈은 식탁에 앉아 안시연이 가져온 밀크티를 마시며 담담하게 말했다.“시간이 없어.”“산후조리라도 해? 벌써 며칠째 나오지 않고 집에만 있는 거야?”연정훈은 모임에 나가기 귀찮아서 한마디 했다.“승희한테 뭘 원하는지 확실하게 말하라고 해. 내가 사람을 시켜서 처리할 테니.”“지금 누구를 무시해? 승희가 네 덕을 보려고 그러는 줄 알아? 네가 오면 투자유치 계획을 들려주겠대. 괜찮은 것 같으면 그때 결정하면 돼.”연정훈이 입꼬리를 올렸다.“사업계획서를 나한테 보내라고 해.”“아무것도 안 먹힌다, 이거지? 쯧쯧! 그런데 네가 집에서 기다려도 소용없어. 승희가 안시연에게 전화했으니 안시연도 올 거야.”연정훈은 컵을 든 채 동작을 멈추었다. 안시연도 간다고? 오늘 저녁에 운전 연습을 하지 않나? 이렇게 하다 말다 하면 합격하는 게 더 이상하다.그는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있다가 컵을 내려놓았다.“주소를 찍어줘.”“아이고, 기다리지 않을 거야?”“...”부승희는 친구들을 모두 초대했고 일도 빈틈없이 처리했다. 그녀는 먹고 마시고 내기하는 등 모든 것을 준비했다.연정훈이 도착했을 때 이승우 등은 포커를 치기 시작했다.부승희가 일어나서 연정훈에게 자리를 내줬다.“승희야.”이승우가 입을 열었다.“왜?”“안시연은 도착했어?”부승희는 휴대폰을 꺼냈다.“내가 2시 넘어서 연락했는데, 초대에 흔쾌히 응했어. 아마 아직 퇴근하지 않았을 거야.”이승우가 장난스러운 눈빛으로 연정훈을 쳐다보며 웃었다.“얼른 안시연 여신님을 모셔 와. 안 그러면 오늘 정훈 오라버니가 네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도 있어.”부승희는 연정훈의 옆에 앉았다.“내가 그걸 모를까 봐?”그녀는 팔꿈치로 연정훈을 쿡 찔렀다.“오빠, 요즘
안시연은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채 부랴부랴 다른 직원들과 함께 출발했다.양주에 도착한 그녀는 업무 관련 인스타를 올린 후 바로 연정훈에게 문자를 보냈다.“짜증 나요. 감사팀 일인데 왜 저희를 보내는 걸까요?”장가희가 옆에서 투덜거렸다. 안시연도 이상하게 느껴졌다.이번 업무는 경인그룹에서 출자한 함풍목재라는 회사와 관련된 것이다. 함풍목재는 몇 년째 계속 적자를 냈고 올해는 심지어 몇 번이나 자금줄이 끊겼었다. 그래서 경인그룹 임원진은 함풍목재 지분을 양도할 의향이 있는데, 함풍목재는 통제권을 잃지 않으려고 경인그룹과 지분 회수에 관해 협상 중이었다.하지만 지분을 양도하기 전에 경인 본사에서 최종 지분 매각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 전문팀을 파견해 함풍목재의 경영 상황을 검토했다.“일손이 부족해서 그런가 봐요.”“그러니까 우리는 막노동하러 온 거예요.”안시연의 말에 장가희가 한숨을 쉬며 소문을 전했다.“그거 알아요? 함풍목재 대표도 연씨 가문의 사람인데, 연명걸이라고 연정훈 대표님과 같은 항렬이래요.”안시연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가희가 말을 이었다.“정말 하늘과 땅 차이네요. 연정훈 대표님은 경인을 훌륭한 기업으로 이끌었는데, 그 형제가 운영하는 회사는 파산 직전이라니.”안시연은 연정훈이 생각났다.능력으로 말하자면, 정말 그를 따를 사람이 없다.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려서 장가희가 문을 열러 갔다. 옆 방의 동료였다.“함풍의 연 대표님이 밥을 사준대요. 늦지 않게 얼른 서둘러요.”“네네.”장가희가 웃으며 달려와 안시연 팔짱을 끼었다.“드디어 좋은 일이 생겼네요.”안시연은 속으로 생각했다.‘뭐가 좋은 일이라는 거지? 우리는 함풍의 장부와 경영 상황을 조사하러 온 건데 대표한테 밥을 얻어먹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경인시.룸에서 한참 동안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사이좋고 감정이 깊다면서 양주에 가는 것도 몰랐어?”머리 회전이 빠른 이승우는 갖은 방법을 다 써서 연정훈을 비꼬았다.“연 대표님은 인터넷이 안 되나?
안시연은 출발 전과 출발 후, 그리고 방금까지 모두 3건의 메시지를 보냈으니 나무랄 데가 없었다.오히려 연정훈이 한 개도 답장하지 않았다.주요 원인은, 그의 개인 휴대폰도 거의 업무와 연관돼 있어 오늘 일찌감치 벚꽃동으로 돌아간 후 휴대폰을 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벚꽃동에서 안시연을 만날 줄 알았는데, 그녀는 휴대폰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연정훈은 감정이 풍부한 부승희의 낭독을 들으면서 불쾌함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은근히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고, 안시연이 그의 답장을 받지 못해 또 잡생각을 할까 봐 걱정됐다.“오빠, 안시연이 오빠를 너무 사랑하네요.”부승희가 결론을 내렸다.연정훈은 말을 잇지 않고 침착하게 안시연에게 답장을 보냈다.“알았어.”“이것 봐!”부승희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말했다.“매력 있는 남자는 당당하고 절대적인 발언권을 가지고 있어.”“...”이승우는 간식을 가져다 먹으면서 카드를 던졌다.“상황을 보니 네가 아직도 안시연을 쌀쌀맞게 대하는 것 같네?”부승희가 말했다.“우리 오빠 조건이면 도도한 것도 정상이지.”한우빈이 연정훈을 바라보며 물었다.“안시연이 없는데, 오늘 밤 어디서 잘 거야?”연정훈이 곁눈질도 하지 않고 말했다.“안시연이 없으면 내가 잘 곳도 없겠어?”“잘 곳이 있다고 잠이 오는 건 아니잖아.”이승우가 느릿느릿 말했다.“나는 너와 달라. 재워줄 필요 없어.”연정훈이 마지막 카드를 던졌다.그가 이긴 것을 보고 이승우는 밑장빼기를 했나 해서 한참 확인했다.결과, 정말 연정훈이 이긴 것이었다.“성공한 남자는 사랑과 도박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는군.”부승희가 계속해서 알랑거렸다.이승우는 하찮게 여기며 일어나더니 부승희더러 대신 놀라고 했다.머리 회전이 빠른 부승희가 연정훈에게 말했다.“오빠, 이번에 내가 이기면 나랑 같이 양주에 갔다 와야 해.”연정훈은 안시연이 생각나서 마음이 흔들렸다.하지만 입이 싼 이승우가 옆에 있어서 그는 얼굴에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양주.안시연 쪽의 식사 자리는 일찍 끝나지 않았다. 연명걸이 직접 참석해 테이블마다 술을 권했다.연명걸은 상상속의 부잣집 도련님과 달리 점잖았고, 누구 앞에서나 웃는 얼굴이었다.“돈을 잘 벌 것 같은 얼굴인데, 왜 회사가 적자일까요?”장가희의 말에 안시연은 피식 웃었다.사람을 그렇게 판단하는 법이 어디 있는가?연명걸이 왔다 간 후 모두가 긴장을 풀고 열심히 먹었다.안시연은 중도에 화장실에 갔다.문을 나설 때, 익숙한 모습이 언뜻 보였는데 임유정이었다.두 사람은 천창을 사이에 두고 복도에 마주 섰다.임유정은 그녀를 보자마자 안색이 어두워졌다.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안시연은 그녀와 마주치기 싫어서 돌아서서 다른 길로 갔다.그녀가 가버리자, 임유정은 돌아서서 룸으로 들어갔다.담배 연기가 자욱한 룸에서 남자 몇 명이 술잔을 주거니 받거니 했고, 연명걸이 상석에 앉아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여자가 냉랭한 표정으로 걸어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그는 부드럽게 그녀를 끌어안았다.“왜? 기분이 안 좋아?”“네.”꽤 예쁘게 생긴 그녀는 화를 내면 도도한 매력이 있었다.연명걸은 그녀의 집안과 예쁜 외모가 마음에 들어 그녀를 추어올리며 참을성 있게 이유를 물었다.옆에서 줄곧 임유정에게 호의를 보였던 이철수도 친절하게 물었다.임유정은 한숨을 쉬며 연명걸을 바라보았다.“정인에서 보낸 감사팀에 안시연이라는 사람이 있죠?”연명걸이 기억을 더듬는 것을 보고, 임유정이 은근히 비꼬며 말했다.“제일 예쁘고, 여우 같은 눈이 특히 매혹적인 여자요.”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연명걸뿐만 아니라 이철수도 즉시 기억해 냈다.“423호실, 흰 치마 입은 여자 말이야?”임유정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역시 그 여우 같은 년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남자는 없다.여자에게 별로 관심이 없는 연명걸이 무심하게 물었다.“둘 사이에 껄끄러운 일이 있었어?”“껄끄러운 일까지는 아니에요.”임유정은 평소와 같은 표정으로 핵심을 콕 집어 말했다.“다만 그
고속도로 입구.연정훈이 뒷좌석에서 쉬고 있고 부승희가 단톡방에서 이승우와 채팅했다.그녀는 이승우를 나무랐다.[하마터면 너 때문에 일을 그르칠 뻔했어.][나쁜 계집애, 너는 양심도 없어? 너만 아니었으면, 오늘 그 자식을 끝까지 감시했을 거야. 답답해 죽게. 그것도 몰라?]부승희는 얼굴이 빨개졌다.“누가 그러래?”그녀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연정훈이 조용히 눈을 떴다.진수빈이 때맞춰 입을 열었다.“대표님, 양주에 도착했어요.”“응.”연정훈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진수빈이 호텔 위치를 미리 알아봤기에 직접 그쪽으로 향했다.“안시연이 오빠를 보면 무척 좋아할 거야.”부승희의 말에 연정훈은 차분한 표정을 지었지만 속으로는 왠지 기대됐다.안시연의 얼굴에서 기쁜 표정을 보지 못한 지 오래됐다.이 시간에 그녀는 자지 않을 것이다.이렇게 생각하니 양주의 장마 날씨도 그리 불편하지 않은 것 같았다.-호텔.안시연이 소파에 앉아 알파카 한 마리를 안고 있고, 그녀의 앞에 또 한 마리가 서 있었다.맞은편 침대에는 양혁수가 누워 있다.그녀는 몇 번째 한숨을 쉬는지 모르겠다.“알파카를 데리고 오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고요?”“방이 이렇게 큰데, 우리를 숨겨줄 수 없어요?”안시연은 어이가 없었다.“다른 직원과 방을 같이 써요.”“제가 사비로 그분 방을 따로 잡아줄게요.”“차라리 제가 돈을 낼 테니 당신이 알파카를 데리고 다른 방으로 가요.”양혁수는 미소를 지었다.“안 가요.”“...”그녀는 이제 겨우 마음 편히 살게 됐는데, 또 무슨 문제가 생기는 것이 싫다.“혁수 씨, 제발 좀 소란을 피우지 마세요. 저는 당신과 이러고 놀 수 없어요. 감당이 안 된다고요.”양혁수는 옆으로 누워 그녀를 바라보았다.“제가 지난번에 약속을 어겨서 화났어요?”안시연은 고개를 저었다.“진짜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요.”양혁수가 피식 웃었다.“처음부터 저를 무시했어요?”“아니요, 제가 자신을 정확히 아는 거죠.”“당신이 나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이번에는 틀림없이 장가희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문을 연 안시연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경찰이었다.여러 명 가운데 맨 앞에 선 경찰이 그녀에게 경찰증을 보여주었다.“경찰입니다. 일상적인 검사이니 협조해 주십시오.”안시연은 이내 상황을 파악했다. 이것은... 성매매를 잡는 것이다.그녀는 방 안의 상황을 생각하니 머리가 쭈뼛 섰다.하지만 경찰은 이미 안으로 들어왔다.연정훈과 양혁수가 거만하게 서 있고, 소파에는 알파카 두 마리가 있었다.중요한 것은, 양혁수가 목욕 가운을 입고 있고 그와 연정훈은 모두 방을 예약한 사람이 아니다.안시연이 설명하려는데, 경찰이 또 서브룸에서 술에 취해 쓰러진 남자를 찾아냈다.이에 양혁수도 놀랐다. 그가 방에 들어왔을 때 서브룸에 사람이 있는 것을 전혀 몰랐다.“안시연 씨, 이 방은 당신과 장가희 씨가 예약한 거 맞죠?”경찰의 질문에 안시연은 혼란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네.”“그럼, 이 세 남자는 어떻게 된 겁니까?”안시연은 말을 못 했다.그녀의 첫 반응은 연정훈의 신분이 특수해서 큰일 날 수 있으니 절대 이 일에 휘말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게다가 양혁수의 옷차림을 보고 그쪽으로 생각하지 않기도 힘들다.그녀는 엉겁결에 연정훈 앞에 서며 말했다.“이분은 방을 잘못 찾아 들어왔습니다. 모르는 사람입니다.”경찰은 어리둥절해했다.양혁수는 헛웃음을 지었다.‘좋아. 차별 대우를 하겠다, 이거지?’화가 잔뜩 났던 연정훈은 안시연의 말을 듣고 화가 거의 다 가라앉았다.‘그래도 누구와 가까운 사이이고 누구와 먼 사이인지는 아는군.’하지만 안시연은 곧바로 양혁수를 가리키며 말했다.“이 사람은 제 남자친구인데, 저를 보러 왔고요.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양혁수는 눈이 번쩍 뜨였고, 연정훈은 어이가 없었다.그는 안시연이 왜 그러는지 안다. 평소라면 이성적으로 잘 대처했다고 그녀를 칭찬했겠지만 지금 이 순간 전혀 기쁘지 않다.그는 낯선 사람이고 양혁수가 남자친구라고 말하다니.생각할수록 화가 났다
경찰서에서 안시연의 왼쪽에는 연정훈이, 오른쪽에는 양혁수가 나란히 앉아 골치 아픈 조사서를 쓰고 있었다.양혁수는 거짓말을 술술 뱉었다.“저와 제 여자 친구가 대화 중이었는데 이 낯선 남성분이 문을 두드렸고 문을 열자마자 강제로 집 안으로 들어와 깜짝 놀랐다고요!”“...”경찰이 바보도 아니고 연정훈과 안시연은 내내 서로를 부축하며 걸어온 걸 지켜봤었다. 서로 모르는 사이라는 말은 뻔한 거짓말이었다.“저기요. 경찰서에서 진실만을 말하세요!”양혁수는 진지한 얼굴로 방금 했던 말을 다시 뱉었다.“...”안시연은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옆에 앉은 연정훈은 내내 침묵을 지켰다.경찰이 연정훈에게 질문하려고 하자 진수빈이 모두 막아섰다.“잠시만 기다려주세요.”‘기다려?’‘대체 뭘 기다리는 거지?’어리둥절해 보이는 경찰에 안시연이 손을 들고 먼저 조사를 받겠다고 했다.“저기 만취한 남성과는 어떤 사이입니까?”“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어떻게 안시연 씨 방으로 들어올 수 있었습니까?”“저는 잘 모릅니다.”“어떻게 저 사람을 발견했습니까?”“제가 발견한 게 아니라 경찰이 먼저 발견하지 않았나요?”“...”양혁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진지한 얼굴의 안시연이 바보 같은 소리를 하는 걸 듣고 있던 연정훈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안시연이 연정훈을 향해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말 몰라요.”“질문에 하나도 답하지 못하면서 왜 손을 든 거야?”말문이 막혀버린 안시연은 몰래 입을 삐죽였다.이동하는 내내 자신의 옆을 지켜준 고마운 마음에 대신 조사를 받겠다고 한 건데 연정훈은 자신의 마음을 몰라줬다.안시연은 한숨을 내쉬었다.조사가 잠시 중단되고 안색이 어두운 경찰을 보며 안시연은 상황 설명을 다시 이어가려고 했다.그때, 연정훈이 안시연의 손을 잡았다.“아무 말도 하지 마.”안시연이 당황해했다.“네.”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는데 다른 한 손이 덥석 안시연을 잡았다.???고개를 돌리자 양혁수가
연정훈의 말 한마디에 양혁수는 가운 차림으로 경찰서에 덩그러니 남겨졌다.양혁수를 남겨두고 떠나려니 안시연은 조금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그래서 연정훈에게 말했다.“알파카를 데리고 날 찾아온 것뿐이에요. 우린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요.”연정훈은 양혁수가 미웠으므로 알파카도 귀찮게 느껴졌다.“그 두 마리 알파카 모두 양혁수에게 넘기고 다시 신경 쓰지 마.”“그런데 양혁수가 경찰서에 있으면 나비와 영준이는 어떡해요?”나비.영준.연정훈은 그 이름에 인상을 절로 찌푸렸다,그래서 안시연의 손을 놓고 두 눈을 질끈 감았다.안시연 역시 어쩔 수가 없었다.그녀는 고개를 살짝 빼 들고 운전기사가 두 사람을 원래 지내던 호텔로 데려다주길 기대했다.진수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안시연 씨, 오해는 풀렸지만 직장 동료들은 아직 진상을 모르지 않나요?”안시연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방금 복도에서 둘러싼 사람들은 대부분 심사팀 직원들이었다.안시연이 떠나고 유언비어는 아마 회사 전체를 떠들썩하게 했을 것이다.여기까지 생각을 마치자 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역시나 대화방은 메시지 상태가 99+가 되어 있었다.장가희가 미친 듯이 메시지를 보내왔다.“시연 씨 대체 무슨 상황이야? 우리 방에 남자 세 명이 나타났다면서? 게다가 경찰이랑 같이 나갔다는 건 또 무슨 일이야?”안시연은 무기력함을 느꼈다.변명조차 하고 싶지 않았으며 대체 어디부터 말을 꺼내면 좋을지도 몰랐다.그때 연정훈이 입을 열었다.“원래 묵던 호텔로 알파카 두 마리 보살피러 가려고?”안시연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연정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안시연은 두 손으로 핸드폰을 꽉 쥔 채로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사람을 시켜 알파카를 보살펴 달라고 하면 안 될까요? 어린아이는 태어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단 말이에요.”“이 새벽에 누가 갈 수 있겠어? 네 알파카는 소중하고 내 사람들은 소중하지 않은 거야?”안시연은 재차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잠시 고민하다
말싸움이라면 양시연도 이제 연정훈에게 밀리지 않았지만 뻔뻔한거로는 연정훈을 당해내지 못했다.결국 양시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인 채로 밥만 입에 넣었다.아침 식사를 마치고 두 사람은 주변 산책길을 같이 걸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데리고 양혁수를 만나러 갈 생각은 없었다. 연정훈이 양혁수를 눈엣가시로 여긴다 하지만 양혁수도 연정훈을 예쁘게 볼 리가 없었다.게다가 양혁수가 연정훈을 못마땅해하는 건 양시연의 문제를 떠나 태어나길 두 사람은 상극인 것 같았다.다시 집으로 돌아온 양시연은 연정훈과 대화를 하다가 누군가 거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하는 걸 발견했다. 이 집에 나타날 사람은 양혁수를 제외하고 또 없었고 양혁수의 옆에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한 여자도 있었다. 그 사람은 바로 변여름이었다.“시연 언니.”변여름이 먼저 양시연을 발견하고 입을 열었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정훈의 손을 살짝 꼬집었다. 그건 연정훈더러 말조심하라는 무언의 경고였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소파로 걸어갔다.소파에 앉아 있던 양혁수는 두 사람의 등장에 잠시 침묵했다.그러다가 등받이 몸을 편히 기대며 양혁수를 비꼬기 시작했다.“뭐예요? 나랑 도망이라도 갈까 봐 지키러 왔어요?”“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두 사람은 만나기만 해도 스파크가 튀었다.변여름은 연정훈의 공격적인 태도에 아이스크림까지 내려두고 연정훈을 살폈다.양혁수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양시연이 한발 빠르게 나섰다.“이제 점심시간이 곧 되는데 여름이는 점심 먹었어?”“아직 안 먹었어요.”양시연이 서둘러 변여름의 어깨를 잡고 말했다.“그럼 그러지 말고 빨리 위층으로 올라가서 엄마한테 같이 밥 먹자고 전해.”양혁수는 입맛을 다시며 못마땅하다는 말투로 말했다.“외부인이 있어서 밥이 넘어갈지 모르겠네.”연정훈도 지지 않았다.“마침 나도 다른 사람과 같이 밥 먹는 게 내키지 않아서.”“...”‘다들 정말 유치하긴.’변여름은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그러자
양시연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연정훈의 품에서 턱을 치켰다.연정훈은 이런 양시연의 콧등에 짧게 키스하고 말했다.“이젠 일어나. 우리 시내 구경이나 가자.”양시연이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빨리 돌아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안 급해.”연정훈은 잠시 표정을 굳힌 채로 말을 이었다.“그러는 넌 양혁수 보러 온 거잖아. 마침 시간도 되겠다 온 김에 나도 양혁수 보러 갈까 봐.”양시연이 눈을 부릅 떴다.‘삐진 거 참 오래도 가네.’“나보고 잘 삐진다고 그러더니, 정훈 씨야말로 삐돌이네요.”에든베타에서 있었던 일이 너무 신경이 쓰인 연정훈은 행여나 두 사람이 따로 만날 까 안절부절못했다. 더 솔직하게 말한다면 연정훈은 오늘 양혁수의 앞에서 깨소금을 볶는 걸 직접 보여주고 싶었다.‘참 속 보이네.’하지만 연정훈은 여전히 무덤덤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양혁수는 네 오빠잖아. 그러니 보러 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양시연은 말문이 막혔다.“참나. 그럼 혁수더러 형님이라고 부르던가요.”연정훈이 한쪽 눈썹을 치켜세웠다.“나쁘지 않은데?”“...”양시연은 어이가 없다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연정훈을 살짝 밀어냈다.“빨리 일어나서 옷 좀 챙겨줘요. 나도 씻어야겠어요.”연정훈은 양시연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줬고 빠르게 옷을 챙겨 돌아왔다. 그리고 그 옆에 꼭 붙어 있는 모습이 직접 옷을 입혀주지 못해 안달인 것 같았다.하지만 양시연은 연정훈을 잘 알았다. 연정훈에게 맡겨버린다면 아마도 또 한바탕 사달이 날 것이다.어젯밤 일이 있은 뒤로 양시연은 많이 뻔뻔해졌고 연정훈의 앞에서 당당하게 옷을 갈아입었다.갈아입고 침대에서 내려오려는데 두 다리가 흐물거리고 허리가 엄청 시큰거렸다.그러자 연정훈이 빠르게 양시연을 부축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힐끗 보다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지금 정훈 씨도 멀쩡한 척하는 거죠? 사실은 엄청 피곤한데 말이에요.”“...”연정훈은 말없이 양시연을 끌어안고 직접 화장실로 데려갔다. 양시연을 내려놓은 연정훈은 또
“거짓말...”“나랑 결혼할 생각도 없었으면서...”“그냥 내 얼굴이랑 몸만 좋았던 거잖아요...”정신은 흐릿해지고 땀으로 온몸이 젖어갔다. 그리고 양시연의 두 볼도 붉게 물들었으며 두 사람은 이따금 대화를 이어갔다.연정훈은 양시연만 보면 이성을 유지하기 힘들었다.양시연이 눈물이라도 흘리는 날이면 정말 미칠 것 같았다.그래서 양시연을 달래며 과거의 상처를 어루만졌다.새벽 세 시가 넘어가고 어느새 방안은 조용해졌다.양시연은 이제 손가락 움직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연정훈의 팔을 베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온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기에 연정훈은 양시연을 안아 들고 샤워를 하러 갔다. 다시 침대로 돌아오고 양시연은 눈을 감은 채로 연정훈의 품에서 벗어나려 발버둥 쳤다.“우리 다시 시작하자. 이제 화해하는 거로 어때?”‘화해?’‘무슨 화해?’양시연이 머리를 굴리다가 연정훈이 과거 연애 시절을 가리킨다는 걸 깨달았다.“풉...”그래서 웃음이 터졌다.“...”연정훈은 양시연이 정신이 흐릿할 때 서둘러 둘 사이의 거리를 좁히려 했다.그렇게 양시연은 서서히 잠이 들었고 어느새 연정훈의 품에 안겨 중얼거렸다.“꿈 깨요...”연정훈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연정훈은 양시연을 꼭 껴안고 고개를 숙여 이마에 키스를 했다.몇 시간 뒤면 해가 뜰 시간이었지만 연정훈은 하나도 졸리지 않았다.에든베타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버리고, 소현주 사건도 말해줬으니 이제 마음이 편했다.그래서 잠에 들지 않고 가만히 양시연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되었다.아침.양시연이 눈을 떴을 때, 연정훈은 이미 침대에서 일어나 맞은편 소파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시선이 마주치고 양시연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어젯밤 고백이 떠오른 양시연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더니 등을 휙 돌려버렸다.그러자 입꼬리를 올린 연정훈이 노트북을 내려 두고 양시연의 등 뒤로 앉았다. 이어 몸을 숙여 양시연의 목에 키스를 했다.입술의 말캉한 촉감이 유난히 선명했다.양시연은 두 눈을
“꼭 그렇게 날 상처 줘야겠어?”연정훈이 고개를 숙여 양시연을 바라봤다.그러자 양시연이 쯧 하고 혀를 찼다.“이건 모두 정훈 씨가 자초한 거예요.”“삼촌이 정말 깨어나지 않았다면 정훈 씨는 평생 아무것도 모르고 바보로 살았을 텐데.”그리고 양시연이 몸을 돌려 연정훈과 시선을 마주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다.“어디 보자. 설마 지금도 바보인가?”“...”연정훈은 양시연에게 속수무책이었고 양시연이 내키는 대로 머리를 쓰다듬게 했다.양시연은 이런 연정훈을 잘 알고 있었기에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고작 이런 말로 내 믿음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 마요. 소현주 씨를 제외하고 정말 다른 사람은 없어요? 난 믿을 수가 없는걸요. 그때 호텔에서...”양시연이 갑자기 얼굴을 붉히더니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아주 익숙해 보였단 말이에요!”연정훈은 이런 양시연을 눈에 담으며 입꼬리를 올렸다.“날 놀리는 거야? 내가 뭐가 익숙해 보였다고 그래.”“...”“네가 멍청한 거지.”‘어쭈? 이렇게 나온다는 거지?’양시연이 눈을 흘기며 말했다.“어쨌든 모두 정훈 씨 탓이에요. 어떻게 교수씩이나 돼서 수업 듣던 학생한테 마음을 품을 수 있어요?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연정훈은 과거에 양시연만 보면 이성을 잃고 달려들었다.그러자 연정훈은 이불을 위로 올리더니 다시 양시연의 위로 올라타고 양손으로 몸을 지탱했다.시선이 얽히고 연정훈은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그리고 고개를 살짝 틀어 양시연의 귓불에 키스하며 말했다.“나한테 다른 사람이 있었는지는 네가 더 잘 알지 않겠어?”양시연은 몸이 달아오르는 걸 느꼈고 연정훈의 손길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래서 양손으로 연정훈의 가슴팍을 살짝 밀어내는데 머릿속에는 그동안 연정훈과 함께 지내던 추억들이 떠오르고 있었다.연정훈은 양시연만 보면 이성을 잃었다. 처음 만남을 이어가던 그 시절 연정훈은 너무 양시연을 몰아붙여 양시연을 힘들게 했었다.양시연이 나른한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알아요? 정훈 씨가
연정훈이 인상을 찌푸리자 양시연이 콧방귀를 뀌었다.“내 말이 맞죠?”“...”양시연의 표정이 점점 굳어가자 연정훈이 입을 열었다.“나랑 소현주는 가벼운 교제였지 그 정도로 깊은 사이는 아니었어.”양시연은 믿지 않았다.“결혼 얘기까지 오갔다면서 해본 적 없다고요?”“없어.”연정훈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양시연은 연정훈을 의심이 가득한 눈길로 훑었다.그러나 진실이 어찌 되었든 이젠 의미가 없었다. 그래서 양시연은 이불을 쭉 당겨 등을 돌려 누웠다.“...”연정훈은 몸을 일으켜 양시연을 품에 넣었고 양시연은 팔꿈치로 연정훈의 복부를 가격했다.“나 건드리지 마요! 입만 열면 거짓말만 하면서!”“...”연정훈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복부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뒤로 하고 다시 양시연을 꼭 껴안았다.하지만 이번만큼은 아무리 뽀뽀하고 달래도 효과가 없었다.그러자 연정훈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소현주와 공휘 사이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지?”양시연이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렸다.“그게 무슨 소리예요?”“더 자세하게 알려줄게.”“...”양시연은 궁금했지만 겉으로는 질색하며 말했다.“누가 듣고 싶대요? 하나도 궁금하지 않아요.”그리고 다시 등을 돌렸다.“말해줄 필요 없어요.”연정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양시연은 드디어 얌전히 품에 안겨 있었고 연정훈은 조금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소현주와 관계를 가지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었다.소현주는 대학에 다니기 전부터 공휘를 만났었다. 사실 이것도 순화해서 한 말이지, 소현주는 아주 많은 남자들과 돈으로 된 만남을 이어갔다.그러니 성폭행으로 몰아간 영상은 진짜와 거짓이 동시에 존재했다.소현주는 연정훈과 같이 지내며 과거가 들킬까 걱정이 많았고 과거의 흔적을 지우려 유학을 변명으로 해외에서 여러 번 회복 수술도 받았다.공휘 주변에는 널린 게 여자였고 소현주에게는 이미 질려버린 터였다. 그러나 연정훈의 여자가 된 소현주를 보며 다시 관심이 생겼다.이 얘기를
양시연이 깜짝 놀라 물었다.“양혁수랑 무슨 일이 있었냐고요?”연정훈이 입을 열었다.“누가 너희 정원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양민아에게 동영상을 넘겼어. 그리고 양민아는 그 영상을 내 할머니에게 보여줬고.”양시연이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할머니가 또 정훈 씨한테 보여줬겠네요?”“그래.”양시연이 길게 심호흡했다.“나랑 혁수는...”연정훈이 말을 잘랐다.“영상 속에서 두 사람은 같이 밥을 먹고 같은 곳에서 잠이 들었어. 길고양이 길 강아지들을 같이 목욕도 시키고 양혁수는 네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널 껴안기도 했어.”연정훈은 머릿속에서 가장 크게 남아 있던 그 영상을 떠올리며 잠시 말을 멈췄다.“정원의 수도가 터진 날, 두 사람은 흠뻑 젖어버렸고 양혁수가 널 끌어안았어.”양시연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대체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졌고 양시연은 생각나는 대로 말을 늘려놨다.“그건... 그건 끌어안은 게 아니라 그냥...”하지만 적합한 단어를 찾을 수가 없었다.그때는 생각이라는 걸 내려놓고 편히 지내다 보니 기억이 제대로 나지 않았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냥 물놀이하려는 본인을 막아서는 양혁수밖에 떠오르지 않았다.양시연은 연정훈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를 잡았다.“지금 나한테 연인 사이였냐고 물어보고 싶은 거잖아요. 혹은 카메라에 담기지 않은 곳에서 우리가 관계를 가지진 않았는지 궁금한 거고요.”이 말을 하는 양시연은 양민아를 떠올리며 이를 갈았다. 애매모호한 영상을 짜집기해서 보낸 양민아는 이런 사단을 만들고자 작정을 한 것 같았다.연정훈이 한숨을 내쉬더니 솔직하게 대답했다.“예전엔 그게 궁금했어.”“그럼 지금은요?”“내가 괜한 생각을 했다고 생각해. 너한테 나밖에 없는데 다른 사람을 품은 것 같지는 않아.”“...”양시연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연정훈을 살짝 노려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그걸 아는 사람이 그동안 숨기고 있었던 거예요? 그동안 내가 다른 사람이랑 어디에서
포장을 뜯는 소리가 귓가에 스치듯 들렸고 양시연은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심장이 마구 뛰기 시작했다.양시연은 몸을 살짝 들어 올려 연정훈의 귀에 대고 대답했다.“딱 조금만 더...”“...”“너 너무 우쭐대지 마.”연정훈의 뜨거운 숨결이 양시연의 귀 끝에 닿았다.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양시연의 손에 무언가를 쥐여주고 단단히 허리를 감싸 안았다.“안 우쭐대면 네가 더 좋아할 만한 거로 보답할게.”양시연은 그의 말뜻을 이해하고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손끝에서부터 힘이 풀려 움직임이 서툴러졌다.연정훈이 양시연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주었고 결국 모든 게 마무리됐다. 잠시 이어진 적막 속 이불 아래에서 부드러운 움직임이 일렁였다.“음...”타국에서의 밤은 그렇게 은밀히 막을 올렸다....새벽 뜨겁고 아찔했던 방 안은 마침내 고요를 되찾았다.양시연은 연정훈의 품에 안겨 숨을 고르며 몽롱한 기운 속에서 허리 아래로 전해지는 묘한 무력감을 느꼈다.감각이 아스라이 흩어지던 그 순간 양시연은 자신이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지는 것을 느꼈다.연정훈이 몸을 떼어내는 부드럽고 세심한 움직임은 양시연의 온몸에 잔잔한 파장을 일으켰고 양시연의 얼굴은 불꽃처럼 붉게 물들었다.그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쓰레기통을 열고 천천히 무언가를 정리했다.양시연은 눈을 감은 채 그의 품에서 안정을 찾았고 연정훈은 조심스레 양시연을 안아 침대로 데려갔다. 연정훈은 그녀를 가슴 위에 편안히 눕히고 단단한 팔로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연정훈은 침대 머리맡의 물을 들어 양시연의 입가에 가져다 두어 모금 먼저 마시게 하고 남은 물을 천천히 마셨다.양시연은 서서히 기운을 되찾으며 천천히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는데 그 순간 막혀있던 사고의 흐름이 갑자기 뚫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정훈 씨, 갑자기 오게 된 이유가 정말로 나 보고 싶어서예요?”연정훈은 그녀를 꼭 안으며 부드럽게 대답했다.“다른 이유가 또 있을까?”양시연은 잠시 멈칫하더니 눈길을 피하며 조심스레 물
남편이라는 단어는 사실 꽤 진지한 단어였지만 연정훈은 그 단어마저 가볍게 만들어버렸다.양시연은 부끄러운 듯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차라리 그에게 다가가 가볍게 입을 맞췄다. 하지만 끝내 연정훈을 ‘남편’이라 부르지는 않았다.연정훈이 다시 무언가 말하려는 순간 양시연은 그의 입을 손으로 막아버렸다. 그녀의 눈빛은 애교와 질책이 섞여 있었다.“당신, 교수잖아요. 제대로 된 지식인이라면서 왜 맨날 이런 이상한 짓만 배워오는 거예요?”연정훈이 그녀의 손을 떼려 하자 양시연은 연정훈을 째려보며 손에 더 힘을 주었다.“멀리까지 와서 나 괴롭히려고 온 거예요?”연정훈은 목젖이 살짝 움직이며 양시연을 바라보았고 연정훈의 눈빛은 점점 깊어져 마치 그녀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양시연은 마음속으로 흐뭇해하며 손을 내려놓고 연정훈의 입술에 상을 주듯 가볍게 입 맞췄다.“말 잘 들어요. 먼저 저녁 먹고 다 먹으면 샤워해요.”연정훈이 무언가 대꾸하려던 순간 양시연이 말을 끊었다.“비행기에서 씻었다고 거짓말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연정훈은 말없이 양시연을 바라보았다.“...”양시연은 살짝 웃으며 한 번 더 연정훈의 입술에 입맞춤하고 그의 귀에 가까이 다가가 장난스레 속삭였다.“씻었으면 조금 있다가 저랑 같이 샤워하지 마세요.”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연정훈의 숨소리가 깊어졌고 곧바로 강렬한 입맞춤이 이어졌다.“알겠어. 밥부터 먹자.”양시연은 미소를 지으며 연정훈의 반응에 흡족해했다.집에서 가져온 음식은 양지원 쪽에 있었지만 양시연은 굳이 가져오지 않고 새로 한 상을 주문했다. 그녀는 옆에 앉아 연정훈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녀가 가리키는 음식마다 그는 더 많이 먹었다.조용한 방 안에는 두 사람의 재회로 인한 설렘이 잦아들고 따스한 온기가 가득 차올랐고 3년이 지난 지금 자신이 연정훈의 아내로서 그의 곁에 앉아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연정훈은 그녀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걸 보고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포크로 감자를 찍어 그녀의 입에 가져다
“내가 보고 싶다고 했잖아?”“보고 싶었죠. 그런데...”양시연이 부드럽게 말을 하던 중 연정훈이 그녀의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려 키스했고 서로의 입술이 맞닿자 양시연은 잠시 놀라 눈을 감고 앓는 소리를 냈다.곧 그녀는 부드럽게 입을 벌려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서두르지 않는 그들의 키스는 부드럽고 길게 이어졌고 키스가 끝나자 양시연은 살짝 헐떡이며 촉촉해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두 볼이 붉게 물든 양시연은 발끝을 들어 연정훈의 목에 팔을 감고 손끝으로는 연정훈의 귀를 장난스럽게 간지럽히며 속삭였다.“이렇게 빨리 온 거 보면 전화 끊자마자 바로 비행기 표 예매한 거 아니에요?”연정훈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여 아주머니가 반찬 준비하시는 걸 기다렸어.”양시연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듯했지만 그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걱정스레 물었다.“저녁은 먹었어요?”“비행기에서 먹었어.”“뭘 먹었는데요?”연정훈은 대답하려다 순간적으로 말을 얼버무리려 했지만 양시연이 그의 귀를 잡으며 말했다.“거짓말하지 마요.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진수빈 씨가 정훈 씨랑 같이 왔는데 방금 막 배달을 시키더라고요.”연정훈은 침묵했다.“...”그가 들킨 후 민망한 듯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하려 하자 양시연은 웃으며 그의 입술을 가볍게 물고 낮게 말했다.“장난치지 말고요. 우선 뭘 좀 먹고 씻고 푹 쉬어야 해요.”“안 피곤한데.”“그러면 정훈 씨...아!”양시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정훈은 그녀를 갑작스럽게 들어 올렸고 그는 몇 걸음 만에 침대로 다가가 양시연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몸을 기울였다.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편히 누웠지만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았다.그녀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며 장난스럽게 입을 내밀었다.“나 보고 싶었다는 게 이런 거였어요?”‘뭐야. 온통 엉큼한 생각뿐이라니.’연정훈은 전화를 받은 뒤 감정이 북받쳐 단숨에 이곳으로 달려왔다.비행기에서도 그녀에 관한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