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연은 찻잔을 내려놓고 그와 같은 잔잔한 눈빛으로 연정훈을 바라보았다.“사람을 시켜 음식을 가져오게 했는데 막상 그들이 무엇을 가져왔는지는 관심이 크게 없었나 봐요?”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점심 메뉴에는 탕수육이 없었어요.”비서는 땀을 뻘뻘 흘리며 당황했지만 연정훈은 여전히 아무 표정 없이 대답했다.“그러면 뭐가 있었는데?”“몰라요.”안시연은 무관심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잊어버렸어요. 그냥 한 번 본 거라.”“그랬더니?”“그랬더니 내가 싫어하는 것들만 가득해서 버렸어요.”비서는 그녀의 거침없는 발언에 숨을 들이켰고 연정훈 역시 아무 말 없었다.안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순진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버리면 안 되나요?”연정훈은 대답 대신 물었다.“그럼, 점심은 뭐 먹었어?”“밖에서 먹었어요.”안시연은 손으로 턱을 살살 문지르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정훈 씨 카드로 200만 넘게 썼어요.”말을 마친 후 그녀는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연 대표님께서 그 돈이 아까우신 건 아니죠?”연정훈은 전혀 신경 쓰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그녀를 칭찬했다.“그럴 리가. 잘 썼어. 돈을 잘 쓰는 것도 능력이야.”비서는 어이가 없었지만 뭐라고 할 수 없었다.안시연은 어깨를 으쓱했다.연정훈은 일어나 그녀를 향해 걸어왔고 비서에게 눈길을 한 번도 주지 않은 채 말했다.“먼저 나가 있어.”비서는 도망치듯 급히 나갔다.소파에 앉아 있던 안시연은 연정훈이 가까이 오자 자리를 내주었고 연정훈은 그녀의 옆에 앉아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당겨 무릎 위에 올렸다.안시연은 본능적으로 불편함을 느꼈지만, 곧 티를 안 내고 감추었고 그에게 살짝 미소를 지었다.연정훈은 소파에 기대어 손으로 그녀의 턱을 살짝 만지며 물었다.“어제 부승희와 재밌게 놀았어?”“네.”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진심으로 기뻐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뭘 좀 많이 샀어요.”“뭘 샀는데?”그가 묻자 안시연은 그에게 구체적으로 말해 주었고, 그녀가
연정훈은 담배를 한 대 꺼내 피우며 뒤에 있는 정교하고 작은 가방을 말없이 바라보았다.안시연은 완전히 변했다. 더 예뻐지고, 더 순해졌으며, 조금 더 교활해졌다.연인의 입장에서 볼 때 그녀는 더욱 완벽해졌다. ‘하지만 뭐, 괜찮아. 어쩌면 우리 둘 사이에는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걸지도 몰라.’ 손에 있는 담배를 다 피웠지만 가슴 속의 답답함이 전혀 가시지 않자 그는 다시 하나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라이터를 무심코 내던지자, 테이블에 부딪히며 큰 소리가 났다. 그 소음에 그는 이마를 찡그리며 잠시 침묵하다가 손에 있던 담배를 재떨이에 꺼버리고는 휴식실로 들어갔다. 안시연은 서둘러 샤워를 하고 몸의 물기를 미처 닦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뒤에서 문이 열리자 그녀는 깜짝 놀랐다. 다음 순간 그녀의 몸은 남자에게서 뒤로 안겼다.그는 조용히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었고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피하려 했지만, 지금 자신의 신분이 떠올라 이를 악물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그는 그녀를 안아 침대 위에 올려놓고 자기 몸으로 그녀를 완전히 덮어버렸다.그녀는 처음으로 그에게 불을 꺼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대신 손을 들어 조심스럽게 눈 위에 덮었다. 시야가 흐려지면 마음도 같이 마비될 거라는 생각이었다.그리고 그녀는 완전히 긴장을 풀고 적극적으로 그의 움직임에 맞추었다.연정훈은 그녀와 이런 일을 할 때 거의 산만해하지 않았고 모든 집중력을 두 사람 몸이 와닿는 부위에 놓곤 했다.매일 밤, 그는 벚꽃동 침실에서 자신을 그녀의 몸속에 깊이 담갔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고 있는 것이 바로 이 몸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의 양옆에 팔을 지탱하고 있을 때, 그는 살며시 그녀의 손을 떼고 몸을 숙여 그녀의 눈에 입을 맞추었다.눈이 마주치는 그 순간, 그녀는 그에게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눈동자엔 여성 특유의 부드럽고 매혹적인 감정이 담겨있었다.이런 시선은 어떤 남자도 견디기 어려웠고 당장 덮쳐들었을 것이다.그런데 연정훈은 멈췄다.그는
안시연은 도대체 어떤 친척이 이렇게 중요한지 몰랐다. 그녀가 여러 번 제시간에 도착하겠다고 보장한 후에야 외할머니는 안심했다. 오후에 해야 할 일은 산더미 같았지만, 그녀는 바쁜 와중에 운전 학원 예약도 하고, 성진대의 각 전업과 수업을 훑어보고 관심 있는 것들을 모두 골랐다. ‘그래, 연애보다는 일이지.’ 연정훈을 머릿속에서 지우니 효율이 세 배는 더 높아졌다. 하지만 퇴근 시간에 주차장에서 그의 차를 보자 그녀는 다시 심리적 준비가 필요했다. 연정훈은 차 안에서 거울로 그녀가 제자리에서 기도 같은 것을 하는 모습을 보고 피식 웃었다. ‘내가 악마야? 기도까지 해야 해?’ 안시연은 마음의 준비를 끝낸 후 차 옆으로 뛰어갔다. 그녀가 문을 열고 차에 앉자마자 그녀만의 향기가 잔잔한 파도처럼 그에게 밀려왔다. 향은 너무 강하지 않았고 은은하게 코를 간지럽힐 정도였으며 연정훈은 오후의 피로가 싹 가셔지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 병원 가려고?” “네!” 안시연은 그를 보지 않고 대답하며 지워진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있었다. “외할머니가 집안 친척이라고 하셔서 아마 오래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녀는 말하며 연정훈을 한번 쳐다보았다.“기다리지 않아도 돼요.” 연정훈은 노트북 화면을 보면서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후, 그는 입을 열었다.“빨리 끝내.”그는 분명히 그녀가 빨리 돌아오길 원하는 것 같았고 안시연은 그가 점심때의 일을 계속 이어서 할 것으로 추측했다. ‘하... 점심에 해주겠다고 할 땐 도망쳐버리고 내 소중한 저녁 시간까지 뺏네.’ 그녀는 한숨을 쉬며 알았다고 대답했다. 연정훈은 그 나지막한 목소리에서 그녀의 언짢은 심정을 눈치채고 거울을 통해 그녀를 쳐다보았다. 역시 여인의 아름다움은 성격과 비례하는 것 같았다. 그는 키보드를 누르며 다시 한번 강조했다.“30분.” 안시연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평소에도 성격이 좋고 그에게 호의도 있었기에 이전에 당한 불쾌한 일들은
안시연은 엄마를 만나는 수많은 상상을 해봤지만 이렇게 뺨을 맞는 당황스러운 시작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녀는 얼굴을 감싸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왜 저를 함부로 때리는 거예요?” 드디어 양지원에게 맞은 그 한 대를 그녀의 딸에게 돌려주었다는 생각에 소현정은 속이 시원했다. 그녀는 친엄마의 가면을 쓰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내가 네 엄마니까! 네가 부끄러움도 모르고 권력 있는 남자에게 몸과 마음을 맡기며 자존심도 없는 거 보니, 이 정도면 때릴 법하지 않아?!” 안시연은 화가 치밀어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녀는 눈앞의 여자가 자신의 엄마일 거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지만, 외할머니가 한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엄마, 엄마...’ 그녀는 눈시울이 한순간에 붉어졌고 허리를 곧게 편 채 말했다. “절 키운 적도 없으면서 저한테 함부로 말할 자격이 없어요!”소현정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이 못된 년, 재수 없는 건 엄마랑 똑 닮았어.’ 그녀는 다시 한 대 더 때리려 했지만 안시연은 빠르게 몸을 피했다. “소현정 씨, 다시 손을 대시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소현정은 조금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녀는 외할머니가 안시연에 대해 말하는 걸 들었을 때 그녀가 매우 착하고 말 잘 듣는 성격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안시연은 요즘 따라 너무 많은 고통을 겪었고 또 연정훈에게 금방 상처를 받았으므로 이미 자신의 원칙과 자존심이 너무 무너져버린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을 낳아 주기만 하고 직접 길러주지도 않은 잔인한 엄마에게 결코 비굴하게 굴 수는 없었다.“나는 네 엄마니까 때리든 말든 내 맘대로 하는 거야!”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신분으로 눌러보려 했지만 안시연은 완전히 화가 나 있었다.“당신은 내 엄마가 아니에요!”“나는 제삼자로 살고, 자식을 버린 엄마는 없어요!”그녀는 마치 그동안의 억울함을 한꺼번에 쏟아내듯이 소리쳤다.그녀는 외할머니의 손에 의해 자랐고, 어릴 때부터 아
안시연은 이전에 주지혁이 자주 외할머니로 자신을 위협하는 바람에 깊은 트라우마가 생겨 소현정의 말을 듣고 즉시 물러서며 되물었다. “외할머니께 말하려고요?” 소현정은 순간 당황했다. 그러자 안시연이 계속 말했다. “외할머니는 방금 심장 수술을 받으셨잖아요!” 소현정은 그녀가 진심으로 외할머니에게 감정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 되면 이 감정을 이용해 안시연을 마음대로 컨트롤할 수 있을 것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은근히 마음이 놓였다.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며 너무 직접적으로 나가지 않기로 했다. “시연아, 오해하지 마. 네 외할머니도 엄마의 엄마인데, 내가 어떻게 친엄마를 해칠 수 있겠니?” 안시연의 긴장된 몸이 조금 풀렸다. ‘그래... 지금 눈앞의 사람은 적어도 외할머니의 친딸인데, 그녀가 자신의 친엄마를 해칠 리가 없어.’ 소현정은 안시연의 태도가 누그러진 것을 보고 눈물까지 짜내며 계속 설득했다. 그러던 중, 말의 방향이 갑자기 바뀌었다. “너와 연정훈은...” 안시연은 한 번에 너무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다른 것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그녀는 눈을 감고 말했다. “내가 알아서 할게요!” 소현정은 내심 초조했다. 안시연이 연정훈 옆에 있는 한, 그녀는 하루 종일 걱정과 불안에 떨며 지낼 수밖에 없었다. 오성호는 M 국에 갔고 이런 일을 전화로 말할 수도 없었기에 그녀는 혼자서 괴로워하고 있었다.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조급해 하지 않기로 했으므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더 강요하지 않을게.”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 있었고, 외할머니는 그녀들이 말이 안 통할지 걱정해서인지 지팡이를 짚고 나왔다. 안시연은 휘청거리는 외할머니를 보더니 심장이 멎는 듯했고 재빨리 어르신을 부축하여 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외할머니를 걱정시키지 않으려고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조용히 듣기만 했다. 외할머니는 그녀의 억울함을 알고 두어 마디 한 후 그녀를 잡고 눈물을 흘
안시연은 얼굴을 붉혔다.‘변태 아니야?’이틀 동안 그녀가 유일하게 진심으로 얼굴을 붉힌 이 순간, 연정훈은 매우 만족했다.그는 테이블 위에 손가락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똑바로 말해.”만약 자신이 끝까지 말하지 않는다면 그는 정말로 이 조명이 밝게 비추는 곳에서 자신의 옷을 벗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그녀는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잠시 생각한 후 그녀는 사실을 절반만 말하기로 결정했다.“엄마가 때렸어요.”연정훈은 이때까지 안시연의 부모님이 전부 돌아가셨다고 생각해 왔기 때문에 이 대답은 그의 예상밖에 있었다.“엄마라고?”안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내리깔았다.별로 행복하지 않았던 가족생활은 그녀를 항상 우울하고 열등하게 만들었다.“엄마는 항상 밖에 나가 있었는데 갑자기 돌아왔어요.”“왜 때렸는데?”안시연은 고개를 들고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당신 때문이에요.”연정훈이 말이 없자 안시연은 계속해서 말했다.“엄마는 제가 당신 차에서 내리는 걸 봤어요. 당신을 알아봤고 제가 당신의 애인을 하고 있다는 것도 물론 알게 되었죠.”그녀는 처음으로 이렇게 공개적으로 그들의 관계를 인정했다.연정훈은 미간을 찡그렸다.“때리고 나서는?”안시연이 대답했다.“저에게 당신과 관계를 끊으라고 했어요.”연정훈은 다시 침묵했다.그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평온한 표정으로 물었다.“그래서, 네 결정은?”안시연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제가 결정할 권리가 있나요?”그녀는 자신의 경지를 비웃는 듯 피식 웃었다.“저는 당신이 산 물건 아닌가요? 끊을지 계속할지, 당신이 정하는 거잖아요.”연정훈은 ‘사다’라는 표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 말 뒤에 숨은 의미는 또 그를 조금 기쁘게 했다.‘그래, 안시연은 내 것이야. 어떻게 하든 그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가 결정하는 거야.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그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든 말든, 그녀는 나를 떠날 수 없어. 다른 생각들은 모두 쓸모없는 걱정뿐이야.’“이리 와.”그가
연정훈의 한 마디 도발에 안시연은 화가 나 몸을 꽉 조였다.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연정훈은 하마터면 참지 못하고 제압당할 뻔했다.항상 말 잘 듣던 집고양이가 날카로운 발톱을 내보냈다. 제대로 교육하지 않으면 정말로 그의 얼굴을 긁어버릴지도 모른다.연정훈은 그녀를 뒤집어 테이블 위에 눕혔다.안시연은 비명이 끊기지 않았고 테이블 전체가 그들의 움직임에 흔들릴 정도였다.그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입을 막았다.“좀 조용히 해, 이웃들이 네 소리에 놀라겠어.”안시연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며 눈은 이미 초점을 잃었고 가끔 숨 막히는 느낌도 들어 정말 미쳐버릴 지경이었다.그녀는 견디지 못하고 그의 팔을 세게 물었다.연정훈은 낮게 신음하며 힘을 약간 줄여 그녀에게 숨 돌릴 틈을 주었지만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안시연은 조금 더 버텨보려 했으나 결국 굴복하고 말았고 그에게 빌었다.연정훈은 가볍게 웃으며 그녀의 얼굴에 입맞춤하고 또 그녀의 얼굴을 돌려 상체가 크게 비틀어진 자세로 그녀와 키스했다.안시연은 이대로 그의 손아귀에서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세상 전체가 흔들리고 있었고 그녀는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는 것을 들었다.“네 엄마 일은 내가 해결할게.”안시연은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녀는 촉촉한 눈을 가까스로 뜨며 테이블 가장자리를 꽉 잡고 애써 고개를 저었다.“안 돼요... 찾지 마세요...”“그럼, 네 엄마 말 듣고 나랑 헤어지려고?”안시연은 그 말속 경고의 뜻을 알아듣고 더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그녀는 숨을 헐떡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연 대표님께서 뭐든 가능하시다면, 다른 일을 도와주시면 좋겠어요.”연정훈은 가볍게 웃었다.‘역시 똑똑해졌어.’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다시 의자에 앉아 몸을 기댔다.안시연은 몸이 굳어 있었고 조금만 움직여도 견디기 어려웠다.“무슨 일을 도와줄까?”안시연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저 조기 승진하고 싶어요.”연정훈은 고민도 안 하고 바로 대답했다.“다
안시연은 일어난 후 한 번도 연정훈에게 좋은 태도로 대한 적이 없었다.어젯밤의 모든 일은 그녀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나쁜 사람...’전에 그를 매너 있는 신사와 연결 지은 자신의 시력에 문제가 있었는지 의심할 정도였다. 그는 정말 꼬리를 감추고 있는 늑대와 다름이 없었다.그녀가 토라져 연정훈과 말을 걸지 않자 그는 오히려 더 안심되었다.적어도 그녀가 애써 괜찮은 척, 화가 없는 척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게다가, 그들이 함께 지내는 동안 그는 한 번도 그녀의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탕! 탕!그녀는 면 두 그릇을 작지 않은 힘으로 테이블 위에 올렸다.연정훈은 신문을 내려놓고 한 번 쳐다보더니 그저 웃고 싶었다.‘화가 단단히 났네.’그녀는 다양한 아침 메뉴 대신 평범해 보이는 면 두 그릇만 만들었고, 자신의 그릇에만 계란후라이를 하나 올렸다.‘화는 내는 방식이 왜 이따위야...’그의 동작이 잠시 멈추자 안시연은 그가 싫어하는 줄 알고 머리도 들지 않고 말했다.“오늘 몸이 안 좋아서 아침을 하고 싶지 않았어요. 드시기 싫으면 회사에서 드세요.”연정훈은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네 몸은 나 때문에 그런 거잖아, 내가 책임져야지. 네가 직접 만든 아침을 트집 잡을 정도로 양심이 없는 건 아니야.”안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이를 악물며 그가 머리를 숙여 면을 먹는 동안 그를 한 눈 노려보았다.그리고 연정훈이 고개를 들자마자 그녀는 재빨리 시선을 깔고 계란후라이를 입에 쑤셔 넣었다.오늘의 계란후라이는 반숙으로 완벽하게 만들어졌고, 노른자가 입에서 톡 터지며 담백한 맛이 입속을 꽉 채우자 기분이 훨씬 좋아졌다.연정훈은 그녀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을 보았다.그때 한 가닥의 머리카락이 그녀의 귀 뒤에서 떨어져 그릇 안에 닿을 것만 같았다.그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이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그러자 안시연은 밥을 먹던 동작을 멈췄다.따스한 아침 햇살은 그녀의 오른쪽 얼굴을 뜨겁게 비
“내가 보고 싶다고 했잖아?”“보고 싶었죠. 그런데...”양시연이 부드럽게 말을 하던 중 연정훈이 그녀의 얼굴을 살짝 옆으로 돌려 키스했고 서로의 입술이 맞닿자 양시연은 잠시 놀라 눈을 감고 앓는 소리를 냈다.곧 그녀는 부드럽게 입을 벌려 그의 키스를 받아들였다.서두르지 않는 그들의 키스는 부드럽고 길게 이어졌고 키스가 끝나자 양시연은 살짝 헐떡이며 촉촉해진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두 볼이 붉게 물든 양시연은 발끝을 들어 연정훈의 목에 팔을 감고 손끝으로는 연정훈의 귀를 장난스럽게 간지럽히며 속삭였다.“이렇게 빨리 온 거 보면 전화 끊자마자 바로 비행기 표 예매한 거 아니에요?”연정훈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다.“여 아주머니가 반찬 준비하시는 걸 기다렸어.”양시연은 가슴이 따뜻해지는 듯했지만 그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왔다는 사실이 떠올라 걱정스레 물었다.“저녁은 먹었어요?”“비행기에서 먹었어.”“뭘 먹었는데요?”연정훈은 대답하려다 순간적으로 말을 얼버무리려 했지만 양시연이 그의 귀를 잡으며 말했다.“거짓말하지 마요.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진수빈 씨가 정훈 씨랑 같이 왔는데 방금 막 배달을 시키더라고요.”연정훈은 침묵했다.“...”그가 들킨 후 민망한 듯 다시 그녀의 입술에 입맞춤하려 하자 양시연은 웃으며 그의 입술을 가볍게 물고 낮게 말했다.“장난치지 말고요. 우선 뭘 좀 먹고 씻고 푹 쉬어야 해요.”“안 피곤한데.”“그러면 정훈 씨...아!”양시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연정훈은 그녀를 갑작스럽게 들어 올렸고 그는 몇 걸음 만에 침대로 다가가 양시연을 조심스레 내려놓고 몸을 기울였다.양시연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편히 누웠지만 손을 들어 그의 얼굴이 가까워지는 것을 막았다.그녀는 손으로 그의 가슴을 밀며 장난스럽게 입을 내밀었다.“나 보고 싶었다는 게 이런 거였어요?”‘뭐야. 온통 엉큼한 생각뿐이라니.’연정훈은 전화를 받은 뒤 감정이 북받쳐 단숨에 이곳으로 달려왔다.비행기에서도 그녀에 관한 생각
양시연의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연정훈 옆에서 갑자기 손 하나가 뻗어와 일곱여덟 개의 포장 음식을 담은 봉투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양시연은 놀랐다.???연정훈은 반 발짝 물러서더니 진수빈에게서 봉투를 받아 들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여 아주머니께서 준비하신 거야. 아마 오리백숙도 있을 거야.”양시연의 눈이 반짝였고 늦은 밤 양지원은 담요를 몸에 두른 채 작은 둥근 테이블에 앉아있었다.갑작스럽게 나타난 사위가 하나씩 음식을 꺼내 그녀 앞에 놓았고 양지원은 가볍게 냄새를 맡았다.‘음. 익숙한 향이야.’마지막 음식 상자가 열리자 양시연이 고개를 쑥 내밀며 확인하더니 감탄했다.“오리백숙이다!”양시연은 얼른 오리백숙을 양지원 앞에 놓았고 양지원은 살짝 헛기침하며 어른으로서의 위엄을 세우려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연정훈에게 물었다.“갑자기 여긴 왜 온 거야?”연정훈은 약과 한 조각을 양시연의 접시에 놓아주며 고개를 들어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양시연이 보고 싶어서요. 그래서 보러 왔습니다.”양지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쳇.’양시연은 민망한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연정훈에게 눈짓을 보냈다.‘그만해.’하지만 연정훈은 태연한 표정으로 한쪽 손으로 양지원에게 차를 따라주면서 말했다.“원래는 더 일찍 도착할 수 있었는데 세운에서 공항으로 가던 길에 양창수 아저씨를 우연히 만나서 잠시 지체됐습니다.”양시연이 고개를 번쩍 들었고 양지원은 오리백숙 다리를 잡던 손을 멈췄다.“양창수가 공항에 갔었다고?”양지원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묻자 연정훈은 차분히 말했다.“양석진 씨께서 병환 중이시라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다시 병원에 들러 안부를 여쭙고 왔습니다.”그 말에 모녀는 동시에 긴장했다.“아직도 회복이 안 됐다는 거야?”양지원은 얼굴을 찌푸렸다.“가벼운 병이라며? 대체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건데?”양시연은 연정훈의 태도를 잘 아는 터라 반신반의하며 음식을 씹으면서 그의 표정을 살폈다.“거의 다 나아지신 상태입니다.”
양시연 자신도 하루하루가 정신없었기에 다른 사람을 설득할 여유는 없었다.결국 그녀는 양지원을 꼭 끌어안으며 말했다.“아빠가 너무 바빠서 병날 정도로 일했는데 엄마는 훌쩍 떠나버렸잖아요. 그것도 해외로 갔으니 쫓아갈 수도 없고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만약 아직도 회복 못 하고 여전히 아프셨다면요? 세운에서 혼자 얼마나 외롭고 불쌍하시겠어요.”양지원은 이미 속으로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차분히 생각해 보니 자신이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다는 것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양석진이 어떤 사람인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다만 이야기가 심혜설로 넘어가면서 질투심이 솟아오른 데다 최근 몇 년간 양석진이 자신에게 지나치게 오냐오냐하며 버릇을 잘못 들인 탓에 젊었을 때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작은 일도 크게 만들어 버린 것이었다.그렇게 생각하니 양지원은 콧방귀를 뀌며 쏘아붙였다.“내가 뭐가 아쉬워서? 난 너처럼 남자한테 마음 약해지지 않아.”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일부러 한숨을 쉬었다.“알겠어요. 엄마는 걱정 안 한다지만 저는 제 아빠니까 걱정돼요.”그러면서 그녀는 양지원 쪽으로 빠르게 몸을 기울이며 말했다.“그러면 제가 지금 아빠한테 전화해 볼까요? 엄마도 듣고 싶으세요?”양지원은 뾰로통한 표정으로 대답했다.“...나가서 통화해.”양시연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장난스레 물었다.“정말요? 진짜예요?”양지원은 침묵했다.“...”양지원이 여전히 아무 대답이 없자 양시연은 정말로 휴대폰을 꺼내 들었지만 양시연이 전화를 걸기도 전에 양지원이 빠르게 손을 뻗어 그녀의 휴대폰을 낚아챘다.“무슨 전화를 걸어. 시간이 몇 시인데 얼른 자.”양지원이 퉁명스럽게 말하자 양시연은 웃음을 참을 수 없었고 양지원을 와락 껴안으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안 걱정한다면서요? 근데 사실은 아빠가 바쁘니까 방해될까 봐 걱정되는 거죠? 거긴 이제 막 오전일 텐데요.”양지원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묵을 지키며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잠든 척했다.양시연은
“쳇. 오글거리고 의지가 연약해.”양지원은 단 세 마디로 양시연을 평가했다.양시연은 양지원이 잠든 줄 알았지만 사실 그는 자는 척하며 양시연과 연정훈의 통화를 끝까지 몰래 엿듣고 있었다.“엄마.”양시연이 살짝 투정을 부리며 말했고 양지원은 슬며시 웃더니 이불 속으로 몸을 말았다가 다시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연정훈 진짜 오는 거야?”양시연은 전화를 끊고 나서 대답했다.“오지 말라고 했어요. 엄마 상태 나아지면 저와 같이 돌아가요.”양지원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의아해하는 양시연을 보고 중얼거렸다.“혹시 정훈 씨가 오길 바라는 거예요?”양지원은 시큰둥하게 대답했다.“오리백숙 먹고 싶어서 잠깐 사위 덕 좀 보려던 거야. 뭐야.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네.”양시연은 그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양지원의 이마에 손을 얹고 말했다.“다행이에요. 열은 내렸어요. 빨리 나아야 같이 돌아가서 먹죠.”“너 자꾸 돌아가자고 하는데 진짜 내가 빨리 나아지길 바라는 거야 아니면 그냥 연정훈 보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양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양지원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다 장난스럽게 말했다.“며칠이나 떨어져 있었다고 그래?”양시연은 눈을 깜빡이며 입술을 살짝 깨물고 양지원의 얼굴 가까이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나도 잘 모르겠어요... 그냥... 갑자기 정훈 씨와... 음...”양시연은 말을 끝맺지 못한 채 얼굴이 붉어졌고 입술을 꼭 다문 채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양지원은 여 아주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로 두 사람의 관계를 속속들이 알고 있었기에 상황을 완벽히 파악하고 있었다.양지원은 양시연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리며 장난스럽게 말했다.“아이고 아주 못났어. 벌써 그 연정훈한테 완전히 잡혀버렸네.”“그런 거 아니에요!”양시연은 억울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오히려 내가 그 사람을 완전히 잡고 있거든요. 지금 정훈 씨는...내 말만 들어요!”양지원은 양시연의 말투를 흉내 내며 대꾸했다.“그래. 다 네 말 듣는다. 아
“아 그럼 말 안 할게요. 오빠가 말하세요.”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양혁수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반대편에서 양시연은 웃으며 양혁수의 건강 상태에 대해 자세히 물었지만 양혁수는 혀를 차며 아는 것이 없다는 듯 대답을 하지 않았다.양시연은 변여름을 바라보았고 변여름은 입술을 다물고 입에 지퍼를 채우는 제스처를 했다.양혁수는 고개를 기울이며 웃다가 어쩔 수 없이 변여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한편 변백호는 휴대폰을 보다가 고개를 들며 말했다.“눈치 좀 챙겨. 우리 집 공주가 언제 사람을 이렇게 친절하게 대했어?”양혁수는 웃으며 변여름에게 과일 주스를 건넸고 변여름은 주스를 받아 들고 고개를 약간 들어 올리며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아직 어렸고 정말 어린 애였기에 모두가 그녀를 귀여워하며 특별히 많이 챙겨주고 있었는데 아무도 그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양혁수는 그저 변여름을 어린 동생처럼 여기며 말하면서도 여전히 양시연을 바라보았다.“신혼인데 기분 어때?”양시연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그럭저럭.”‘그럭저럭?’양혁수는 테이블 위의 분위기 조명을 통해 양시연의 얼굴에 기색이 좋은 것을 알아차렸다.그는 입술을 살짝 벌리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잇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는 듯했다.양혁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고 양시연 역시 무엇을 더 말해야 할지 몰랐다.양시연은 그저 그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러 왔을 뿐이었고 그가 괜찮다는 걸 보고 안심했다.마음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아마 연정훈이 아침 시간이 되었을 거로 생각했고 그녀가 사진을 찍어 보내려고 하던 찰나 마치 서로 통하는 듯 먼저 사진을 보냈다.잔치국수 한 그릇이었다.양시연은 미간을 찌푸리며 빠르게 타자를 했다.[왜 이렇게 간단하게 먹어요?][네가 없으니까 여 아주머니가 귀찮아서 안 해줘.]양시연은 그 말을 믿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사진의 오른쪽 위에 있는 접시 가장자리를 보고 즉시 그가 어린애처럼 장난치는 걸 알았다.[전체 테이블 사진을 찍어
“무사히 도착했어?”“네. 별일 없었어요.”양시연은 침대에 누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잠시 후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올 거예요. 변씨 가문에서 저녁 먹기로 했어요.”그녀가 먼저 일정을 말했다.“그래. 나도 조금 있다가 아침 먹어야겠다.”이제야 양시연은 연정훈과 14시간의 시차가 있다는 걸 떠올렸고 지금 만약 조선시대였다면 둘은 아마 평생 얼굴도 못 봤을 것이다.“내가 밥 먹을 때 저녁 사진 찍어서 보내줄게요.”양시연이 말했다.“알았어.”양시연은 침대에 조금 더 누워 있다가 양지원이 문을 두드리자 자리에서 일어났다.모녀는 만나자마자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나가며 최근의 생활 이야기를 나누었다.양혁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양지원은 길게 말하지 않고 이제 많이 회복됐다고만 했지만 양시연은 그 말속에서 당시 양혁수의 부상이 절대 가볍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변씨 가문은 멕하든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가진 가문으로 부유함이 넘쳐흘렀다.화려한 저택은 최고의 위치에 자리 잡고 있었고 앞뒤로 백 명 이상의 가정부가 있었고 사치와 즐거움이 극한까지 개발된 곳이었다.양시연이 도착했을 때 변백호는 문 앞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아니. 이렇게 선생님이 직접 나와주시다니 영광이네요.”양시연 말을 마치자 변백호는 곁눈질로 그녀를 힐끗 보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양지원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말했다.“꿈 깨요. 저는 큰아씨를 기다리고 있을 뿐이에요.”양시연은 어이없었다.“...”눈치 빠른 가정부가 미소 지으며 양시연을 안으로 안내했다.몇 개의 정원을 지나자 본채가 보였고 넓은 마당 한가운데에는 긴 식탁이 놓여 있었으며 그 위에는 이미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변백호의 형들은 모두 집을 비웠고 부모님도 외출 중이었으며 집에는 그들 남매만 있었다.양시연이 한눈에 본 것은 양혁수가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를 입고 긴 식탁 옆 의자에 기대어 누워 있는 모습이었다.밤이 깊었음에도 그는 얼굴에 큰 선글라스를 쓰고 마치 잠든 듯 보였다.그의 옆
양혁수의 상태가 호전된 후 그는 변씨 가문에서 휴식하게 되었다. 변씨 가문의 본거지는 멕하든에 있었고 최근에는 양지원이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양시연이 방문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들은 양지원은 일부러 전화를 걸어왔다.“연정훈이 너 오는 걸 허락했어?”양시연은 소파에 앉아 맞은편에서 자신이 가져갈 간식을 싸고 있는 연정훈을 바라보며 전화 너머로 은근히 자랑스러워하며 말했다.“그가 허락하든 말든 상관없어요. 내가 결정하는 거니까요.”양지원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좋네. 이제는 꽤 당당해졌구나.”“그럼요. 내가 누구 딸인데.”양시연은 이렇게 말하며 휴대폰을 손으로 살짝 가리고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여 아주머니가 그러시는데 저는 아직 부족하대요. 언젠가 엄마처럼 남편을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절대 서쪽으로 가지 않게 만들 정도가 돼야 진정한 고수가 된대요.”양지원이 웃으며 말했다.“너 정말...”양시연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알겠어요. 이제 끊을게요. 공항으로 가야 하거든요.”양지원은 한 마디 덧붙이고 전화를 끊었다.“조심해서 와.”한편 연정훈은 손목시계를 차며 양시연을 공항까지 데려다줄 준비를 하고 있었다.양시연이 ‘잘해야 한다’는 한 마디에 그는 어젯밤부터 단 한 순간도 질투하는 것을 티 내지 않았다.차 안은 조용했고 두 사람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신혼부부처럼 평범한 분위기를 즐겼다. 한 사람은 집에 남고 다른 한 사람은 출장 가는 느낌으로 말이다.사실 연정훈은 따라가고 싶었지만 온저녁 고민한 끝에 그래도 약간의 도도함을 유지하기로 했고 양시연이 어디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신경 쓰냐 싶었다.그는 양시연이 양혁수를 만나러 가는 게 단순한 질투 때문만은 아니라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양시연이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싫다는 것을 깨달았다.신혼부부답게 달콤한 시간에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은 때였고 그녀와 신혼여행도 못 갔는데 그녀는 먼저 멕하든으로 양혁수를 보러 가겠다고 했다.‘쯧.’양시연 역시 조금 불편
어차피 양시연도 민지연에게 복수한 적이 있었으니까 민지연이 사과하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하지만 양시연은 연정훈의 의도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가 민지연에게 사과를 요구한 것은 가문 안에서 자신의 위상을 확립하려는 전략이었다. 그렇게 해야 앞으로 누군가 양시연을 괴롭히러 오는 일이 없을 것이다.양시연은 연정훈의 계획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고 오히려 표세연을 집에 남겨 식사하라고 권유했다.표세연은 얼빠진 표정으로 그 제안을 거절했다.‘하. 밥은 뭔 밥이야. 안 먹었는데 이미 배불러.’그런데도 신혼 부부의 좋은 관계를 보고 표세연도 기뻐한 듯했으며 집을 나설 때 양시연의 손을 잡고 말했다.“보니까 예전에 그 점쟁이가 정말 맞춘 것 같아. 연정훈이 반지를 끼면 정혼자를 만날 거라고 했잖아. 봐 결국 널 만났네.”양시연은 그 반지를 처음 봤을 때 연정훈이 이미 결혼한 줄 의심했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호텔에서 있었던 일이 떠오르며 귀가 빨갛게 달아올랐다.표세연은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연정훈이 없을 때 양시연에게 몇 마디 중요한 말을 했다.연정훈의 업무는 거의 마무리되었고 연말 전에 임명이 될 것이라고 했으며 양시연의 귀에 어떤 기업의 이름을 귀띔해 주었다.“정인 그룹은...”“그래서 네가 회사에 자주 가서 익숙해지고 빨리 자리를 잡아야 해.”표세연은 말했다.양시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했고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예의 바르게 그녀를 배웅했다.그날 밤 양시연은 이제 본격적인 일이 다가오므로 먼저 개인적인 일들을 처리하려고 했다.“내일 출발해서 양혁수 보러 가려고요.”그 말을 들은 연정훈은 책상 뒤에서 잠시 멈칫했고 잠시 후 연정훈은 고개를 들어 양시연을 평온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며칠 갈 거야?”“바로 돌아올게요. 양혁수가 괜찮은지 보고 올게요.”“응.”양시연은 연정훈을 두 번 쳐다봤고 그가 별다른 불쾌한 표정을 짓지 않자 다시 컴퓨터 화면을 보았다.잠시 후 연정훈이 일어나 물을 마시러 갔을 때 양시연은 연정훈의 뒤에서 그를 안
서재의 소파 옆에는 옷들이 흐트러져 있었다.양시연은 연정훈의 품에 기대어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이마에 맺힌 땀이 흘러내렸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입가에 가볍게 달라붙었다.방금 침대에서 벗어났는데 어느새 다시 그의 품에 안겨 있었다.머릿속이 터질 듯 복잡해서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책상 위 전화가 계속 울렸지만 연정훈은 아랑곳하지 않고 양시연의 흐트러진 머리칼을 다듬는 데만 열중했다.양시연은 눈을 뜨지 않은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전화 좀 받아요. 계속 울리잖아요.”연정훈은 심드렁하게 고개를 들더니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시간 없어.”“뭐예요.”양시연은 연정훈의 어깨를 툭 치며 투덜거렸다.“할 일도 없잖아요...”게으름을 피우는 게 뻔했지만 연정훈은 태연하게 말했다.“좀 쉴래. 하던 거 마저 하자.”양시연은 당황했다!‘연정훈 씨 정말 이렇게까지 목말라 있었단 말이야?’그녀가 믿기지 않는 듯 그를 바라보자 연정훈은 장난스레 웃으며 그녀의 코를 살짝 찔렀다.“힘들어?”양시연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돌렸고 더 이상 그를 노려보는 것도 지쳤다.여전히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녀는 결국 연정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는 투정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전화선 좀 뽑아줄래요? 너무 시끄러워요.”연정훈도 괜찮다고 생각한 듯연정훈은 가볍게 양시연의 허리를 두드리더니 일어나서 전화선을 뽑아버렸다.양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당연히 전화를 받을 줄 알았는데 돌아온 연정훈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를 다시 안았다.“혹시 급한 일일지도 몰라요.”“급한 일이어도 상관없어.”“하지만...”“지금은 네 옆에만 있고 싶어.”양시연의 심장 박동이 조금씩 느려지며 진정되었고 그녀의 입가에는 작게 미소가 번졌다. 무의식적으로 연정훈의 목을 감싸 안았다.사실 그녀도 원하고 있었다.어젯밤 이후 모든 것이 그녀가 예상했던 평범한 일상에서 벗어나 버렸으며 상황이 고요해지자 양시연의 머릿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