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코웃음을 쳤다.“심이준 씨, 내가 지현우한테 납치당한 걸 알았으면서 왜 나 구하러 오지 않았어요?”심이준은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말했다.“어차피 못 이기는 데 구하러 가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잖아요?”게다가 천하의 JS 그룹 대표가 가만히 있을 리도 없고 이런 절호의 기회는 이승하에게 맡기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서유는 이미 할 말을 잃었다.“그래요, 자기 자신을 아주 잘 알고 있네요.”심이준은 여전히 대칭적인 미소를 지으며 경직된 입꼬리를 잡아당겼다.“자각지명은 내 사람됨의 기본 수양이죠!”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맞은편에서 갑자기 한 무리의 동남아 노동자들이 나타나 그가 있는 방향을 가리키며 목청을 돋우어 크게 한번 소리쳤다!“바로 저 사람이야! 계속 우리 월급을 안 주고 있는 자가!”“얘들아, 손에 든 삽 들고 나 따라와. 가서 쳐 죽이자!”곧이어 서유는 저편에서 심이준이 쏜살같이 달리는 소리를 들었다.“서유 씨를 도와 현장 답사를 다니는 지난 반년 동안 난 이 사람들에게 수천 번이나 구타 당했어요!”“잘 기억해요. 내가 돌아간 후에 반드시 내 황금비율에 따라 황금 몸을 만들어줘야 해요!”그리고 뚜뚜 신호가 끊어진 소리가 들렸다. 지금쯤 땅바닥에 짓눌려 마찰을 당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이미 빠져나간 건지 알 수 없었다.서유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생각한 후 그에게 답장을 보냈다.[아직 답사하지 못한 공사장이 얼마나 남았어요?]심이준이 답장을 보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예상 밖으로 1초 만에 메시지를 보냈다.[아직 마지막 하나 남았어요. 그 프로젝트는 서유 씨가 직접 가야 할 것 같아요.]서유는 왜 직접 가야 하냐고 물었지만 답장 대신 깨진 문자만 보내왔다.이에 서유는 심이준이 분명 사람들에게 붙잡혔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서유는 그의 말투를 빌어 메시지를 보냈다.[너무 슬퍼하지 말아요.]이어 서유는 채팅 기록을 뒤적거리다가 한 달 새 8개국의 공사현장을 돌아다닌 심이준의 모습에
서유는 피식 웃으며 연이를 다시 설득하려고 할 때, 조지가 메시지를 보내왔다.[서유 씨, 안심하세요. 제가 연이를 달래서 학교에 보낼게요.]서유도 조지에게 답장했다.[선생님, 만약 연이가 정말 지현우와 더 함께 살고 싶어 한다면 연이가 다치지 않도록 잘 보살펴 주세요. 부탁드릴게요.]조지는 곧 메시지를 보내왔다.[사실 현우는 연이를 아주 아껴요. 안심하세요]서유는 이 짧은 글을 한참 동안 쳐다보다가 [네.]라고 답장했다.지현우는 처음에는 연이에게 잘 대해주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그 어린아이를 받아들인 것 같다.어쩌면 연이가 곁에 있다면 지현우는 언니를 잃은 슬픔에서 서서히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서유는 그런 생각을 하며 책상 앞에 앉아 잠시 멍하니 있다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일어나 정가혜를 찾았다.지난 반년 동안 두 사람은 서로 만나지 못했다. 모처럼 서유가 돌아와서 정가혜도 들떠 있었다.그녀는 서유를 끌고 푹신한 침대 위에 누워 팩을 하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3년 전, 정가혜가 시집가던 날처럼 두 사람은 침대에 누워 과거와 미래에 관해 이야기했다.다만, 그때는 정가혜가 시집갔지만 지금은 서유로 바뀌었다. 그리고......예전에는 이승하와 결혼하지 말라고 설득했던 정가혜는 지금 완전 이승하의 편이 되어 줄곧 좋은 말만 하고 있었다.앞으로도 이승하에게 잘해주어야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오래갈 수 있다고 계속 설득하기도 했다.서유는 정가혜의 수다를 들으면서 천장을 쳐다보며 달콤하게 웃었다.순간 자신이 다시 태어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았다.그녀의 아쉬움을 달래주고 이승하도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정가혜 곁에 돌아와 가족의 배려와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그리고... 포기하고 모습을 감춘 소년까지.정가혜는 서유가 자신의 말을 받아주지 않자 고개를 돌려 물었다.“서유야, 무슨 생각해?”서유는 정신을 차리고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승하 씨가 보낸 꽃이 모두 시들었는데 왜 아직 안 버렸
서유는 이승하의 할아버지를 본 적은 없지만 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있었다.이태석이 집권했을 때 유럽 4대 가문은 모두 물러났다고 한다.그의 막강한 영향력으로 이씨 가문은 아시아 시장, 나아가 세계에서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다.그렇게 막강한 인물이 갑자기 서유를 찾아온 것은 분명 결혼 때문일 것이다.서유는 자신을 찾아온 목적을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긴장하고 두려웠지만 침착한 척하며 계단을 내려갔다.초대받지 않고 들어온 이태석은 잘 짜인 양복에 용머리 지팡이를 짚고 늠름한 모습으로 거실에 서 있었다.노인은 일흔다섯 살이지만 백발홍안이고 정정하며 온몸에 산천을 삼킨 기운과 고상한 선비의 냉담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서유는 그에게 다가가기도 전에 그가 주는 압박감을 느낄 수 있었지만 용기를 내어 손바닥을 꼭 쥐고 그에게 다가갔다.“처음 뵙겠습니다. 어르신.”그녀가 예의 바르게 부르자 이태석은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던 시선을 거두어 그녀에게로 옮겼다.그 온화하고 침착한 눈은 서유를 훑어보기보다는 그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훑어보고 있는 것 같았다.서유는 그의 발바닥에 찬 기운이 도는 것을 보고 가슴이 두근거리고 온몸의 모공 하나하나가 긴장되는 것 같았지만 얼굴에는 조금도 티를 내지 않았다.그녀는 이태석이 줄곧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애써 침착한 척 그에게 앉으라고 청했다.“어르신, 여기 앉아서 얘기 나누시죠.”그녀는 청하는 자세를 취하여 이태석을 소파에 앉히려고 했지만 그는 손을 내흔들었다.“아니네, 몇 마디만 하고 가겠네.”이태석의 목소리는 세월의 변화무쌍함을 담고 있었지만 여전히 웅장하고 힘차 감히 그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기세를 갖고 있었다.서유는 할 수 없이 내민 손을 거두어 키가 매우 큰 노인을 올려다보았다.“어르신께서 분부할 말씀이 무엇인지요?”그녀는 자신에게 무슨 일로 왔는지, 무슨 말을 하려고 왔는지 묻지 않고 분부할 일이 있냐고 물으면서 충분히 존중해 주었다.원래는 서유를 안중에도 두지 않던 이태석은 그 말을 들은 후
서유는 심장이 쫄깃하더니 서서히 눈꺼풀을 늘어뜨렸다. 고아가 어떤 신분 배경이 있단 말인가...이태석은 그녀가 말을 잇지 못하는 것을 보고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조사해보니 자네는 고아로 자랐더군. 후에 언니를 찾았다고는 하지만 한낱 디자이너 출신이 어떻게 내 손자와 어울릴 수 있겠나?”신분을 놓고 본다면 그녀는 확실히 이승하에 어울리지 않았다.“디자이너일 뿐이지만 제 언니는 자신의 분야에서 꽤 뛰어난 성과를 거뒀어요.”그녀의 출신을 뭐라 하는 건 괜찮지만 자신의 언니가 비웃음 받는 건 용납할 수 없었다.이태석은 일개 디자이너를 경멸하지만 서유와 더 이상 다투지 않고 강조했다.“자네도 말했듯이 그건 자네 언니가 일군 성과네. 자네랑 아무 상관 없는.”그의 뜻은 서유 언니의 성과가 곧 서유의 성과가 아니란 뜻이다. 이 점은 그녀도 동의하는 바였다.하지만 이태석은 서유의 뜻을 오해했다. 서유는 그저 자기 언니를 위해 한마디 했을 뿐이다.서유가 입을 열어 설명하려 했지만 이태석은 첫 번째 문제를 뛰어넘어 두 번째 손가락을 들었다.“두 번째 문제, 자네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나?”이 문제는 서유 영혼의 가장 깊은 곳에 직격 되어 그녀의 안색이 더욱 굳어졌다.말문이 막힌 그녀를 본 이태석이 대신 대답했다.“서울대도 못 가고 보통 대학을 졸업했더군. 내 손자는 어린 나이에 하버드대에 입학했어. 그런 자네가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나?”서유의 손톱은 손바닥에 깊이 박혔다. 지금의 그녀는 이태석의 카리스마에 겁을 먹은 것이 아니라 이 두 가지 질문으로 인해 깊은 자괴감에 빠졌기 때문이다.그녀의 묵묵부답에 이태석은 오히려 온화하고 점잖은 표정을 지었다.“서유 양, 우리 집안에 시집오는 여자들은 모두 명문가에서 태어났어. 그런데 자네의 신분은 보통 집안이라고 할 수도 없어.”“내가 보통 집안을 경멸하는 것은 아니네. 만약 자네의 노력으로 높은 학벌을 얻었다면 인정할 수 있어. 적어도 우리 가문의 자손들이 좋은 유전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보장할 수
이승하의 보름이 넘는 보살핌 덕에 겨우 혈색을 되찾은 서유의 얼굴색이 순간 하얗게 질렸다.그녀는 몸을 떨더니 발을 헛디뎌 뒤로 물러섰고 하얀 손가락은 더욱 통제 불능이 되어 아랫배를 어루만졌다.그녀와 이승하는 며칠 동안, 몇 번이나 계속 잠자리를 가졌지만 배에는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정말 그녀는 생육 능력을 잃었을까?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을 때, 이태석이 덤덤하게 귀띔했다.“우리 가문의 권력은 반드시 자손이 물려받아야 하네. 그런데 자네는 아이도 낳을 수 없으면서 어찌 감히 우리 가문에 발을 들이겠다는 건가?”이씨 가문에서 출신과 학력도 보잘것없는 데다 아이까지 못 낳는 여자를 며느리로 들였다는 것이 세상에 알려지면 큰 비웃음을 살 것이다.이태석은 결코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다.그는 말을 마친 뒤 양복 주머니에서 미리 작성한 수표를 꺼내 서유에게 건넸다.“승하가 자네와 결혼하려고 우리 가문 전체 자산을 예물로 가져왔지. 승하가 준 물건은 돌려받지 않을 거네. 그리고 이 수표까지 주겠네. 금액은 자네가 원하는 대로 쓰게. 유일한 조건은 내 손자를 떠나는 것이야.”이태석이 인내심 있게 지금까지 서유와 말한 것은 그녀를 떠나게 하기 위해서였다.서유가 반박할 수 없는 약점 몇 개를 내걸었으니 일이 다 된 것 같아 수표를 주고 이야기를 마치려 했다.그러나 서유는 그 수표를 받은 후 반으로 찢어 돌려주었다.“어르신, 이 수표로 저를 쫓아내시면 손자의 마음을 상하게 할 뿐만 아니라 저 또한 이씨 가문의 전직 권력자를 존경하지 못하게 될 겁니다.”덤덤하게 말을 마친 그녀는 점차 혈색을 되찾았다.“어르신이 말씀하신 출신, 학벌 그리고 아이에 관한 일 때문에 저도 승하 씨를 거절한 적이 있어요. 하지만 승하 씨는 개의치 않았어요. 아이는 필요 없고 저만 원한다고 했어요.”이태석은 총명한 사람이라 그녀의 말 속에 숨은 뜻을 자연스럽게 알아챘다. 이승하가 그녀를 매우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 아니면 안 된다는 뜻이었다.하지만 이
오늘도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검은 코트를 걸치고 금테 안경을 쓴 채 문밖에서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그의 뒤를 따라 비틀거리는 소수빈과 양복 차림의 경호원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을 때, 마치 이승하를 에워싸고 지구가 돌고 있는 것 같았다.남자는 코트도 벗지 못한 채 눈보라를 뒤집어쓰고 곧장 이태석을 넘어 서유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안 다쳤어?”이승하는 이태석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서유의 몸을 위아래로 검사했다. 그녀에게 작은 일이라도 생길까 봐 걱정되었다.서유는 그가 오는 것을 보고 당황하고 불안한 마음을 점점 내려놓았다.“괜찮아요. 단지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니 걱정하지 마세요.”“어떤 말을 했든 절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모든 건 나한테 맡겨.”남자의 매력적인 목소리는 마음을 달래는 힘이 있어 그 사람만 있으면 어떤 장애도, 어려움도 쉽게 풀릴 것 같았다.사실도 그러했다. 이태석은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수표를 쥔 손가락을 천천히 움켜쥐고 안색을 약간 좁히고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만약 일찍이 이 손자를 도와줬다면 지금 그를 대할 때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이승하에게 죄책감을 가진 이태석은 주먹을 쥐고 가볍게 기침을 하며 먼저 입을 열었다.“승하야, 난 단지 이야기하러 온 것뿐이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다.”시선이 시종일관 서유의 몸에 있던 이승하는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제야 이태석을 쳐다보았다.“서유 찾아오지 말라고 이미 경고했어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은 거예요?”서유는 그가 할아버지에게 이렇게 무례하게 말하는 것을 보고 급히 그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그러지 말라고 일깨워주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승하가 줄곧 이태석에게 이렇게 말하는 줄 몰랐다.이승하와 할아버지 관계는 그날 밤 박화영이 처음으로 이승하에게 채찍질했을 때 이미 틀어졌다... 불과 몇 살밖에 되지 않은 이승하는 친어머니에게 맞아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할아버지께 도움을 청했지만 그는 모른 척했다.
“여자 때문에 가문도 마다하는 거냐?”이승하는 아무런 감정도 없이 차갑게 말했다.“고작 이씨 가문이 뭐라고요?”이태석은 그의 또 다른 신분을 모르고 있었다. 단지 이승하가 연씨 가문과 박씨 가문을 인수했다는 것만 알고 그가 이 두 가문을 화젯거리로 삼았다고 생각했다. “연씨 가문과 박씨 가문은 우리 가문에 비하면 보잘것없어. 내가 보기에 잘 생각해봐야 할 사람은 너야!”이승하는 눈썹을 가볍게 치켜올리고 눈 밑에는 서리가 가득했다.“지금 이씨 가문이 당신이 권력을 잡았을 때의 그 이씨 가문이라고 생각하세요?”줄곧 뒤에서 몰래 관찰하던 이태석은 지금의 이씨 가문은 이미 모두 이승하의 손아귀에 있고, 심지어 세계 각지의 주주들도 모두 그의 말을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한들 이승하가 없으면 이씨 가문은 다른 후계자를 찾을 수 없겠는가?이태석이 강하게 나오지만 사실 마음속으로는 이씨 가문의 손자들 중에서 오직 이승하만이 사람의 마음을 다스리고 가문의 판도를 넓힐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다른 손자들은 그와 전혀 비교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약 다른 사람에게 넘겨준다면 이씨 가문은 반드시 빨리 쇠락할 것이다. 마치 그 못난 이연석이 잠시 대표를 맡은 사이에 수많은 프로젝트를 망친 것처럼...이렇게 생각한 이태석은 더 이상 이승하와 권세를 논쟁하지 않고 화제를 바꿨다.“승하야, 난 네 결혼 반대하지 않아. 하지만 이 아가씨는... 출신과 학벌은 그렇다 치고 아이를 낳을 수 없잖니? 이걸 집안 어르신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이태석의 말은 이승하의 정곡을 찔렀고 그의 안색을 더욱 차갑게 만들었다.그는 천천히 서유의 가는 허리를 감은 손을 풀고 이태석 앞으로 걸어갔다. 우뚝 솟은 몸을 가득 감은 서늘한 분위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에 이태석도 덩달아 떨었다...남자는 고개를 약간 숙이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차가운 눈동자와 극도로 나쁜 말투로 입을 열었다.“서유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가 당신들과 무슨
이태석이 돌아간 후 서유는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바라보았다.“나 정말 임신할 수 없는 것 같아요.”이승하의 집안 어른들이 그들의 혼사에 동의하지 않는 것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서유를 더 힘들게 했다.이승하는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품에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서유야, 난 아이 필요 없어.”이번 생에는 그녀만 있으면 충분했다. 아이들과 함께 서유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서유는 이승하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태석의 말이 맞았다. 이씨 가문의 권력자가 어떻게 아이를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손바닥만 한 뺨을 남자의 빳빳한 가슴에 가볍게 기댄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승하 씨, 일단 결혼을 미룰까요?”비록 이승하가 권력을 잡고 있어 집안 어르신들도 그의 말을 따르지만 어른들은 그녀를 눈에 차지 않아했다. 그리고 서유는 확실히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신분도 맞지 않고, 아이도 낳지 못하고, 어른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이렇게 많은 문제는 결국 서유를 움츠러들게 할 것이다.그녀를 안은 남자는 그 말에 몸이 굳어지며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별이 총총하고 반짝이던 복숭아꽃 눈동자도 점차 어두워졌다.그는 서유를 놓아주고 그녀의 희고 깨끗한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랑 결혼하기로 약속했잖아. 외부인이 몇 마디 부추긴다고 나를 포기할 생각이야?”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눈가도 선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녀의 후퇴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이렇게 무력한 이승하를 보고 서유는 미안한 마음에 두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미안해요. 당신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나만의 성과를 거두면 당신한테 시집가고 싶어요.”그녀의 말에 불안하던 이승하의 마음은 천천히 내려놓았다.이승하는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그녀를 자신의 피와 살에 가두듯 꼭 끌어안았다.“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난 신경 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