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이 돌아간 후 서유는 넋이 나간 듯 고개를 들어 이승하를 바라보았다.“나 정말 임신할 수 없는 것 같아요.”이승하의 집안 어른들이 그들의 혼사에 동의하지 않는 것보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서유를 더 힘들게 했다.이승하는 뼈마디가 뚜렷한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품에 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위로했다.“서유야, 난 아이 필요 없어.”이번 생에는 그녀만 있으면 충분했다. 아이들과 함께 서유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서유는 이승하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태석의 말이 맞았다. 이씨 가문의 권력자가 어떻게 아이를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손바닥만 한 뺨을 남자의 빳빳한 가슴에 가볍게 기댄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승하 씨, 일단 결혼을 미룰까요?”비록 이승하가 권력을 잡고 있어 집안 어르신들도 그의 말을 따르지만 어른들은 그녀를 눈에 차지 않아했다. 그리고 서유는 확실히 그와 어울리지 않았다.신분도 맞지 않고, 아이도 낳지 못하고, 어른의 축복도 받지 못하고. 이렇게 많은 문제는 결국 서유를 움츠러들게 할 것이다.그녀를 안은 남자는 그 말에 몸이 굳어지며 순식간에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별이 총총하고 반짝이던 복숭아꽃 눈동자도 점차 어두워졌다.그는 서유를 놓아주고 그녀의 희고 깨끗한 얼굴을 한참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나랑 결혼하기로 약속했잖아. 외부인이 몇 마디 부추긴다고 나를 포기할 생각이야?”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눈가도 선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는데 그녀의 후퇴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이렇게 무력한 이승하를 보고 서유는 미안한 마음에 두 손을 뻗어 그의 허리를 꼭 껴안았다.“미안해요. 당신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나만의 성과를 거두면 당신한테 시집가고 싶어요.”그녀의 말에 불안하던 이승하의 마음은 천천히 내려놓았다.이승하는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그녀를 자신의 피와 살에 가두듯 꼭 끌어안았다.“내가 여러 번 말했잖아. 난 신경 안
그녀는 위층에서 내려와 일부러 기침하며 지긋지긋하게 껴안고 놓지 못하는 두 사람을 끊었다.“저기... 아이를 낳는 일은 주 선생한테 다시 가보세요. 서희 씨가 아직 아이를 낳을 수 없다는 진단을 내리지 않았으니 아직 희망이 있다는 뜻이니까.”정가혜는 아이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앞으로 두 사람을 위해 현명하게 고려해야 했다.그들이 나이가 들면 분명 아이를 갖고 싶을 것이다. 귀여운 아이가 있으면 인생이 너무 외롭지 않을 것입니다.게다가 늙어서 두 명의 외로운 노인이 자신의 집으로 달려가 그녀의 아이를 빼앗아 노는 것을 절대 원하지 않았다.‘응? 이상하네? 내가 아이를 낳는다고?’정가혜는 자기 생각에 소스라치게 놀라 얼른 머릿속의 화면을 접고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서유를 바라보았다.“서유야, 빨리 가서 준비해. 서희 씨한테 가는 김에 네 몸도 좀 봐달라고 하자. 빨리 아이를 가져야지.”정가혜의 아이 소리에 낯가죽이 얇은 서유는 쑥스러워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서유는 눈짓으로 정가혜에게 이승하 앞에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부끄럽다고 했다.그러나 정가혜는 알아듣지 못하고 이승하에게 다가가 귀띔했다.“승하 씨도 병원에 가서 검사받는 거 어때요?”아이를 낳을 수 있는지 없는지는 두 사람의 일이다. 모든 걸 여자의 탓으로 돌릴 수 없었다. 어쩌면 남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이승하는 짙은 눈썹을 살짝 고르더니 날카로운 눈매로 정가혜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연석이가 이런 여자를 좋아한다고? 아주 잘 어울리네.’옆에 있던 소수빈은 마음속으로 정가혜에게 엄지를 내밀고는 침을 삼키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가혜 씨, 저희 대표님은 이미 검사 해보셨어요.”서유는 정가혜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짐작이 가는 듯 얼른 그녀를 붙잡고 말했다.“가혜야, 이 사람... 문제없어. 그만 물어봐...”정가혜는 그제야 ‘정자는 정상입니까’라는 말 대신 ‘문제없으면 됐어요’라고 대답하고는 서유를 끌고 위층으로 올라갔다.두 사람이 위층에서 준비하고 있을
주서희는 자기 때문에 모든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것이 싫어 얼른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밖이 차요. 얼른 안으로 들어가요.”그녀가 두 사람을 별장으로 안내하려고 하자 링컨 차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거의 1m 90㎝의 남자가 차에서 내렸다.주서희는 이승하가 두 사람을 데려다주고 바로 떠날 줄 알았는데 그가 차에서 내려 그녀 앞으로 다가와 차갑게 분부했다.“서희야, 서유 몸부터 검사해줘.”주서희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멀쩡한 서유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요? 어디 불편해요?”서유의 얼굴이 빨개지기도 전에 옆에 있던 정가혜가 바로 대신 입을 열었다.“서유 난임이잖아요. 다시 검사해줘요.”주서희는 그제야 알아채고 급히 세 사람을 거실로 안내해 소파에 앉힌 후, 진맥 쿠션을 챙기러 갔다.그녀는 서유에게 손을 내밀게 한 후 손가락을 들어 손목 맥박에 걸치고 고개를 숙인 채 맥을 짚었다.이때 탕비실 문이 열리고 회색 정장을 입은 깨끗하고 온화한 모습의 윤주원이 커피를 들고 나왔다.그가 주서희의 집에 나타난 것을 본 순간 서유와 정가혜는 서로 눈이 마주쳤고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들의 놀라움에 비해 윤주원은 태연했고 탁자 위에 커피를 내려놓고는 그들을 올려다보며 말했다.“커피 드세요.”손님 접대하듯 예의 바르면서도 주인공의 기세가 있는 말투였다. 설마 그와 주서희가?주서희는 설명하지 않고 고개를 들어 이승하에게 공손히 말했다. “대표님, 서유 씨 몸 상태는 전에 말씀드린 것과 같습니다. 제가 처방한 한약을 먹고 조금 나아지긴 했으니 계속 한약으로 조절하고 장기간 복용하는 것이 좋아요.”전에 약을 복용한 시간이 너무 짧았으니 곧바로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게다가 반년 넘게 약을 끊었으니 어떻게 임신할 수 있을까?하지만 주서희는 서유의 건강 상태에 따라 제때 약을 조절하면 아이를 가질 가능성이 크다고 굳게 믿었다.주서희의 말은 이승하에게 일말의 희망을 주었고 서유도 마음이 놓였다.“그럼 약을 얼마나 먹어야
주서희는 창밖을 내다보며 눈보라에 비친 흰빛을 받으며 덤덤하게 말했다.“주원이도 내가 왜 자기 프러포즈 받아줬냐고 물어봤었어요. 그래서 난 사랑받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고 싶다고 대답했고요...”주서희의 말에 서유는 그녀의 심정이 이해가 가는 듯 덩달아 가슴이 아팠다.옆에 있던 정가혜는 비교적 이성적이고 냉정하게 물었다.“윤 선생 사랑해요?”주서희는 태연자약하게 대답했다.“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앞으로 많잖아요. 혹시 알아요?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사랑하게 될지...”그녀는 지금 윤주원을 바로 사랑할 수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과거를 내려놓고 그와 잘살아 보려고 노력할 것이다.사랑하든 말든 중요하지 않았다.그녀에게는 누군가를 사랑하면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거나 마찬가지였으니...사랑하지 않으면 오히려 상대방의 행동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자신도 해치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이로써 소준섭에 대한 복수도 성공하는 것이다.그녀가 뛰어내렸을 때, 소준섭은 놀라서 온몸을 떨었고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창백해졌다. 심지어 무서워서 그녀를 더 이상 쳐다볼 용기조차 없었다.그녀를 잃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면 절대 소수빈이 그녀를 데려가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소준섭은 그녀에게 죽으려면 함께 죽어야 한다며 절대 자신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하지만 이번에는 그녀가 피밭에 누워 있는 것을 보고 결국 손을 놓기로 했다.주서희도 소준섭이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한때 그녀가 그를 사랑했던 것처럼. 하지만 그 사랑은 지옥으로 가는 문이었다.주서희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다. 소준섭이 앞으로 어떤 고통을 당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녀는 단지 자신의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오픈 키친에서 주서희가 앞으로 자신을 사랑하게 될 거라는 말을 들은 윤주원은 천천히 입꼬리를 올리며 맑은 미소를 지었다.지금 주서희가 당장 자신을 사랑하는 건 바라지 않았다. 그녀가 다시 시작할 마음만 있다면 윤주원은 최선을 다해 그녀를 사랑하고 보호할 것
이씨 가문의 본가, 고급 차들이 줄을 지어 정원 입구에 멈춰 섰다. 고급 차에 타고 있던 남자가 차에서 내리더니 양복 차림의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대리석 계단을 밟으며 정원 안으로 들어갔다. 기나긴 복도를 돌고 돌아 아치형 모양의 문과 거대한 돌들을 지나서 화려하고 현관과 마루를 넘어 거실로 향했다. 별장 안은 으리으리하고 웅장했으며 각양각색의 나무 탁자와 의자, 소파 그리고 장식품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 엄청 럭셔리해 보였다. 이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이미 거실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승하가 이번 회의를 연 목적에 대해 수군거리고 있었다. “아마도 청혼식에 가지 않았다고 우리한테 따지려 하는 것 같아.”“어떤 어른이 후배의 청혼식에 참가하겠는가? 이건 경우가 아니야. 그리고 서유라는 그 여자가 뭐 그리 대단한 여자라고 우리까지 거들어?”“그러게나 말이야. 평범한 집안의 여자보다 더 못한 사람인데 우리까지 굳이 갈 필요가 있겠어?”“맞아. 아무리 이 집안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라고는 하지만 우리가 비굴하게 허리를 굽힐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 청혼식은 물론 결혼식도 다들 참석하지 마.”“그래. 결혼식도 참석하지 말자고. 참석 안 한다고 해서 자기가 뭐 어쩔 건데?”거실에는 집안 어른들도 있었지만 후배들도 자리에 있었다. 수군대는 소리를 들으며 그들은 얼굴이 굳어졌다.그러나 다들 화를 참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바로 그때, 그중에서 가장 나이가 어린 이지민이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차갑게 웃었다. “둘째 오빠가 어르신들 예뻐서 부른 줄 알아요?”“서유 씨한테 잊지 못할 프러포즈를 해주기 위해서였다고요. 그렇지 않으면 어르신들은 초대장도 받지 못했을 거예요.”“결혼식에도 참석하지 않겠다니, 어디 한번 둘째 오빠 앞에서도 그런 말 해보시죠? 오빠가 어르신들 초대 하나 안 하나?”가장 어린 후배의 쓴소리에 집안 어르신들은 불같이 화를 냈고 이지민의 부모를 가리키며 욕설을 퍼부었다.“이것 봐, 자네들이 길러낸 수재가
그의 말에 사람들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이씨 가문의 권력자인 그가 이런 추악한 거래까지도 속속들이 알고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한 것 같다.“그런 일을 했다고는 하지만 그게 우리를 모두 그룹에서 쫓아낼 정도란 말인가?”그들은 이씨 가문의 다른 사람들도 이런 짓을 했을 거라고 믿고 있었다. 이씨 집안의 직계 자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이리 처리하는 건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형님, 말씀 좀 해보세요. 우리가 가진 주식은 얼마 안 됩니다. 이제 와서 그것까지 돌려받겠다고 하니 우리더러 어떻게 살라는 겁니까?”그들이 말하는 형님이라는 사람은 바로 이씨 가문의 큰 어르신 이태석이었다. 이 사람들은 모두 이태석의 동생들이다. 그중에는 가까운 친척도 있었고 먼 친척도 있었고 그들은 모두 이태석과 같은 동년배였다. 이태석은 비록 권력을 내려놓았지만 아직까지는 그의 말에 힘이 있었다. 이승하의 권력이 아무리 세다고는 하나 이태석의 말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태석이 나서기만 한다면 이승하가 내린 결정은 바로 없던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들은 이태석이 뒤를 봐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리 제멋대로 나쁜 짓을 저지르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태석은 누구보다도 JS 그룹의 이익을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JS 그룹의 이익을 손상시키는 일들과 사람들에 대해서는 가차 없었다. 이승하가 한 여자 때문에 사람들을 불러 모은 것은 마땅치가 않지만 회사의 일만큼은 이승하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이승하의 편이었다. 그들이 JS 그룹을 앞세워 제멋대로 한 짓에 대해서 이승하가 이미 낱낱이 밝혀내고 그들을 처리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상 그도 당연히 이승하를 지지할 것이다. 하지만 집안 사람들끼리 아무리 마음속으로는 이가 갈릴 정도로 미워도 체면은 세워줘야 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이태석은 크게 분노하는 척하며 용머리 지팡이로 바닥을 내리쳤다.“승하야, 한집안 식구들끼리 너무 그리 야박하게 굴지 말거라. 혼만 좀 내줘.”이승하는 담담하게 그를
이동하의 말에 자식들까지 물에 빠뜨린 이들은 후회막심이었다.JS 그룹에 계속 있게 되면 나중에 공을 세워 다시 주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스스로 제 발등을 찍고 자식들의 앞길까지 망친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은 사람들은 다행히 자손들에게까지 화가 미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이 먼저 나서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원치 않은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인내심이 바닥난 이승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1분 다 됐습니다.” 그 싸늘한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경호원들은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고 놀란 사람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입장을 표명했다. “난 돈 받을게.”“나도.”“그리고 나도.”잠시 후,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자리를 뜨려 하는데 가운데 앉아 있던 남자가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은 듯 그들을 불러세웠다.“잠깐만요.”회사에서 쫓겨난 마당에 또 무슨 일인데? 남아서 저녁이라도 먹으라는 거야?이승하는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차갑게 입을 열었다.“사과하셔야죠.”그중 선두에 선 한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사과라니?”그가 고개를 들고 그 남자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제 와이프한테 사과하셔야죠.”그 말에 남자는 흠칫했다. 사석에서 몇 마디 한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한 가문의 권력자로서 여자를 위해 이러는 건 크나큰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가운데 앉아 있던 이승하는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다시 한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 와이프에 대해 뭔가 꿍꿍이가 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그 말에 그 남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앞의 이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까지도 직접 감옥에 보낼 정도로 가차 없고 냉혈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약점이 있더라도 그걸 날카로운 검으로 만들어 자신의 것을 함부로 건드리는 자들을 찌를 것이다. 그를 멀리하고 그를 건드리지 않고 그가 신경 쓰는 사람을 쉽게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
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이태석은 이승하의 말을 듣고 평소에 자신이 지켜주었던 동생들이 자신에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자신이 돌봤던 동생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고 문득 낯선 느낌이 들었다. 다들 각자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점점 사이가 소홀해졌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이들은 일이 생기거나 프로젝트를 따낼 때만이 그를 찾아오곤 했었다. 아무리 그들에게 잘해줘도 그들한테 이태석은 그저 이용 가치가 있는 큰 형님, 큰 오빠일 뿐이었다. 깊이 반성하던 이태석은 아무 말이 없었고 모든 상황을 이승하에게 맡기기로 했다. 남자가 긴 손가락을 들어 명을 내리려고 할 때, 사람들 중 누군가가 이지민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안하다. 아까는 내가 말이 너무 과격했어. 마음에 두지 말거라.”항상 거만하고 오만하던 어른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것을 보고 이지민은 깜짝 놀랐다.다행히 어릴 때부터 자신의 기분을 쉽게 들어내지 말라는 교육을 받아왔던 터라 그녀는 차분하고도 태연하게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과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제가 낙태를 했다고 함부로 소문 퍼뜨리지 마세요. 몸이 아파서 산부인과에 검사를 받으러 간 것뿐이니까요.”그녀는 여세를 몰아 낙태 사건에 대해 해명했지만 단이수와 사귀었던 일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다.어찌 됐든 지난날 사람을 잘못 사귄 건 사실이니 마땅히 질책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앞장서서 먼저 사과를 하니 다른 사람들도 잇따라 사과를 했다. 가문에서 쫓겨나는 거에 비하면 사과 따위는 별문제 아니었다. 아무리 이 집안의 권력자가 이승하라고 해도 친척들을 다 쫓아낼 권리는 없었다. 그러나 이태석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었다. 이태석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한 것이었다. 누구의 미움을 사더라도 뒤에서 그들을 지켜주었던 형님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앞으로 정말 JS 그룹에서 이 집안에서 사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