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문난 바람둥이인 이연석이 조만간 안희연과 헤어질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헤어질 줄은 몰랐다. 그녀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요?”‘내가 실연당하게 한 것도 아닌데 왜 날 찾아온 거야? 어이가 없네.’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비틀거리며 그녀의 앞으로 다가왔다. 짙은 술 냄새가 코끝을 자극하자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코를 꼬집었다.“가까이 오지 말아요. 어우 술 냄새.”그러나 그는 기어이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 위에 받치고는 그녀를 자신의 품에 가두었다. 그는 아이처럼 그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칭얼댔다.“당신 때문에 안희연과 헤어지게 된 거예요.”그 말에 정가혜는 눈을 흘겼다.“도대체 술을 얼마나 마신 거예요? 토할 데가 없으니까 일부러 나한테 온 거죠?”그녀는 뾰족한 손톱을 들어 그의 관자놀이에 대고 세게 찔렀고 이내 그의 머리가 그녀의 어깨에서 미끄러졌다. 그 기회를 틈타 그녀는 그를 밀어냈고 인사불성이 된 이연석은 그녀의 손길에 몸을 휘청거리더니 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다.‘펑’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뒤통수가 별장 입구의 화분 가장자리에 부딪혔다.곧이어 도자기 조각이 깨지는 소리가 나더니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광경에 정가혜는 그 자리에서 멍해졌다. 그러나 그는 전혀 아픔을 느끼지 못하였고 맑고 깨끗한 두 눈으로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나 좀 일으켜줘요. 더러워...”아무 일도 없는 듯한 그의 모습에 그녀는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혼자 일어나요. 그리고 빨리 돌아가요. 나한테서 이러지 말고.”늦게 전해진 고통에 그는 한참 동안 머뭇거렸고 그 고통이 점차 뇌신경으로 전달되자 그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뒤통수를 만졌다. 미지근한 액체가 손에 닿자 그는 손바닥을 펴고는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피가 나는지 좀 봐줘요.”손에 가득 찬 피를 보고 그녀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고 서둘러 그를 부축하면서도 그에게 재수 없는 인간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지금까지 살면서 이렇게 큰
그녀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3일 동안 당신이 날 어떻게 모욕했는데요. 난 절대 잊을 수 없어요. 그만 돌아가요.”그 말을 마친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위층으로 향했고 그에 대해 아무 미련이 없는 듯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쿨하게 떠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가슴이 아팠다. 술기운을 빌미로 상처를 빌미로 그녀의 집에 있으면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미안하다고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말을 그는 끝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였다. 이씨 가문의 별장, 저녁을 먹은 후 이승하는 서유의 손을 잡고 뒷마당으로 향했다. 각양각색의 꽃들로 만발했던 정원은 이제 핑크 장미만 남게 되었고 코를 찌르는 장미의 향기가 가슴속에 스며들고 콧방울을 파고들었다.그녀는 꽃향기를 맡으며 끝없이 펼쳐진 핑크빛 꽃바다와 별빛 가로등으로 둘러싸인 정원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찡해졌다.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한 남자가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었다.“문자보다 여기가 더 좋지?”그의 말에 로맨틱했던 분위기가 와장창 깨져버렸다.“방금은 일부러 날 놀린 거죠?”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는 손가락을 들어 뒤에 있는 하인에게 손짓했다.“가위 좀.”하인은 재빨리 가위를 가져왔고 가위를 건네받은 남자는 꽃밭으로 들어가 장미 열한 송이를 잘랐다.그는 세심하게 가시를 제거한 후 그녀에게 꽃을 건네주었다.“오늘은 아직 당신한테 꽃을 선물하지 않아서...”그녀가 손을 뻗어 꽃다발을 건네받자 그가 말을 이어갔다.“열한 송이 꽃, 한평생이라는 뜻이야.”그녀는 허리를 굽히고 꽃밭에서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는 남자를 향해 가까이 다가갔다.“이런 건 또 어디서 배운 거예요?”옅은 미소를 짓던 그는 그녀의 말에 아무 대답도 없이 손만 뻗어 계단에 서 있던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 그는 그녀를 안고 꽃밭을 가로질러 정원 한가운데 있는 작은 정원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그는 흔들 의자에 그녀를 올려놓은 뒤 한쪽 무릎을 꿇고
그녀는 치맛자락을 잡고 있던 손을 떼며 입을 열었다.“생각 좀 해볼게요.”그의 눈빛에 당혹감이 가득 차 있었다.“얼마나?”그녀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고 자신의 아랫배를 쳐다보았다. 그녀가 이혼 도장을 찍었던 것도 상관이 없었고 신분 차이가 나는 것 또한 상관이 없었다. 노력하면 두 사람 사이의 거리를 좁힐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만큼은...거대한 명문 가문의 권력자로서 어떻게 아이를 갖지 않을 수 있겠는가?세상 사람들이 수군대는 건 신경 쓰지 않더라 하더라도 집안 어르신들의 반대가 엄청 심할 것이다. 깊은 생각에 잠긴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보름 정도만 시간을 줘요.”몸조리를 하는 약을 먹고 나면 시도해 볼 수 있다고 주서희가 그랬었다. 요 며칠 동안 여러 번의 잠자리가 있었으니 보름이 지나서 아이가 생겼는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시간이 오래되면 변수가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그녀의 턱을 잡고 단호하게 말했다.“안 돼, 보름은 너무 길어.”애틋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그를 보며 그녀는 차마 거절할 수가 없어서 한발 물러섰다.“그럼 열흘만요.”이승하는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밤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예쁘장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며 마음이 설렜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빤히 쳐다보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아이를 가질 수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확인한 후 그에게 답을 주려고 했던 그녀의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그녀의 마음을 알아차린 그는 턱을 치켜들고 단호하게 말했다. “당신이 아이를 가질 수 있든 없는 난 꼭 당신이랑 결혼해야겠어.”말을 마친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깍지를 끼고는 막무가내로 말했다.“당신이 동의하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결혼할 생각이야.”그 말을 들은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결국은 당신 멋대로 할 건데, 열흘 정도 기다려주는 건 괜찮잖아요?”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몇
한편, 서유가 프랑스어책을 들고 학원을 나오자 양복에 넥타이를 맨 사람들이 그녀에게로 다가왔다. 수업이 끝나면 경호원을 보내겠다고 했었기에 그녀는 자신을 데리러 온 이승하의 사람들인 줄 알았다. 그 자리에 서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자 앞장서 있던 흉터남이 그녀의 앞으로 다가와 흉악한 표정을 지었다.“서유 씨, 혹시 김씨라는 사람 알아요?”김씨라는 말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은 그녀는 책을 안고 몸을 떨었다. 예전에 이승하는 김씨의 정체가 노출되면 목숨이 위험해질 수 있다고 했었다. 근데 이 남자가 어찌 김씨를 알고 있는 걸까? 그녀는 손바닥을 움켜쥐고는 마음을 가라앉힌 뒤, 일부러 경계에 찬 표정을 지었다.“당신 누구예요?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아요?”남자는 당연히 그녀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신분인지 알려주지 않았고 그저 차갑게 대답했다.“그 사람을 알고 있는지 없는지만 대답해요.”마음속으로는 몹시 당황했지만 그녀는 겉으로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그쪽은 내 질문에 대답도 안 하는데 내가 왜 당신의 질문에 대답하는 거예요?”그녀가 귀찮았던지 남자는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전에 경찰서에 신고한 적이 있었죠? 그때 경찰서에 남긴 이름이 김씨, 내 말 맞죠?”그 말에 그녀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전에 내가 경찰에 신고해서 김씨의 정체가 들통난 건가?’그녀는 책을 움켜쥐고 당황하지 말자고 마음속으로 거듭 자신을 타일렀다.“생각났어요.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난 이미 김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과 합의를 봤고 돈도 받았어요. 더 이상 따지지 않겠다고 했는데 경찰에서는 왜 사건을 취소하지 않는 거죠?”흉터남은 반쯤 깎인 눈썹을 찡그리더니 수상쩍게 물었다.“김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이요? 어두운 밤의 김씨가 아니고요?”서유는 흉터남이 경찰서에서 자세한 자료는 받지 못한 채 김씨의 이름만 알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녀는 순진한 얼굴로 흉터남을 쳐다보며 아무 말이나 뱉어냈다. “그래요. 유씨 가문
한편, 부산에 있는 남자는 이 뉴스를 보고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사진 속에서 그녀의 앞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뒷모습만 보아도 그가 평생 뼛속 깊이 새겨둔 여자라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어쩌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곧 그녀의 결혼 소식이 들려올지도 모르겠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는 담장 밖의 푸른 하늘과 흰구름을 올려다보았다. 그토록 따뜻하고 화창한 햇빛이 쏟아지지만 그는 왜 항상 춥기만 한 것인지...그 추위가 넝쿨처럼 그의 몸을 휘감고 있어 밤새도록 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뒤에 있던 김태진과 김민정은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담요를 가져와 그의 다리를 덮어주었다.“대표님, 서유 씨를 찾아갈까요?”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두 사람을 바라보았고 깨끗한 소년의 향기가 풍겨왔다.“누구도 그녀를 방해해서는 안 돼.”이번 생에서 그가 죽든 살든 그녀한테 알리는 걸 원치 않았다. 그저 그녀가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잠에서 깨어난 서유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고개를 돌려 이승하를 쳐다보았다. 마침 그는 침대 끝에 기대어 앉아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주무르고 있었다.정신이 든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매일 약 챙겨 먹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왜 아직도 그렇게 아픈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에 그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잠깐씩 아픈 거야. 별거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얼굴이 하얗게 질릴 정도로 아파하는 그를 보고 그녀는 얼른 몸을 곧게 펴고는 손을 뻗어 부드럽게 그의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눈앞의 여인을 쳐다보며 그는 간신히 아픔을 참았다.“워싱턴에 며칠 출장 가야 해. 열흘 뒤에 다녀와서 나랑 같이 F국으로 가.” 그가 F국으로 가서 프러포즈를 할 거라는 걸 눈치챈 그녀는 내심 기뻤다. 그러나...그녀가 이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을 이어갔다.“NASA 프로젝트는 이미 이윤재 씨한테 맡기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왜 또 당신이 출장 가는 거예요?”그녀의 말에 흠칫하던 그
그녀는 얼굴을 가린 채 주서희의 뒤를 따라 산부인과로 가서 검사를 받은 후 다시 원장실로 돌아와 검사 결과를 기다렸다.워싱턴에 있는 이승하는 그녀들보다 마음이 더 급해 계속해서 전화를 걸어왔고 주서희는 아예 전화를 끊지 않고 스피커폰을 눌렀다. 한편, 서유는 소파에 앉아 쿠션을 안고 머리를 파묻은 채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주서희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다행히 간호사가 곧 보고서를 가져왔고 주서희는 재빨리 보고서를 건네받아 한 번 훑어보았다. 그런데 들떠있던 그녀의 표정이 점차 사그라들었다. 그녀의 표정을 보고 서유는 임신이 안 되었다는 것을 눈치챘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였다.‘정말 아이를 가지는 게 힘든 거구나...’주서희는 보고서를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의 앞으로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서유 씨, 시간이 너무 짧아서 아직 검사에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어요. 혹은 몸조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조급해하지도 말고 낙심하지도 말고 우리 조금 더 기다려봐요.”그 말을 듣고 있던 이승하는 심장을 쥐어짜듯 숨을 쉴 수조차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팠다. 서유가 이렇게 된 건 다 그 때문이었다. 그가 핸드폰을 꽉 쥔 채 아픔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내가 원하는 건 당신뿐이야. 아이는 필요 없어.”서유는 억지로 웃음을 지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알아요.”그가 터질 듯이 아픈 관자놀이를 누르며 조급하게 말을 이어갔다.“어찌 됐든 난 당신과 결혼할 거야.”이토록 불안해하는 그의 모습에 그녀는 재빨리 감정을 추스르고 그를 위로했다.“알았어요. 걱정하지 말아요.”붉게 물든 눈으로 전화를 끊으라는 원장을 쳐다보며 그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서유 순순히 ‘네'라고 대답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주서희가 핸드폰을 내려놓고 다시 그녀를 위로하려는 찰나 문밖에서 갑자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정갈한 양복 차림의 윤주원이 빨간 장미 한 다발을 들고 간호사와 의사들의 환호
땅바닥에서 일어난 윤주원은 주서희를 강요하는 소준섭을 보고 주먹을 불끈 쥔 채 그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나 그의 주먹이 소준섭의 얼굴에 닿기도 전에 태권도 9단의 실력을 갖추고 있던 소준섭이 그를 발로 걷어찼다. 소준섭은 높은 곳에서 그를 내려다 보며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감히 윤 선생 따위가 내 여자를 빼앗으려 한 거야?”말을 마친 그가 그녀의 손을 잡으면서 발을 들어 윤주원을 세게 걷어찼다. “감히 내 여자한테 고백을 하다니. 이런 빌어먹을.”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간호사들과 의사들은 ‘천재 의사’로 불리는 소준섭이 병원에서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막아서려 했지만 그가 데리고 온 경호원들이 그들을 겹겹이 에워쌌다. 소준섭은 두꺼운 가죽 장화를 신은 채 윤주원이 일어날 수 없게 발로 세게 걷어찼다. 피를 토하는 윤주원의 모습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오른 그녀는 온몸을 떨었고 입을 벌려 소준섭의 팔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온 힘을 다해 꽉 깨물었더니 그제야 통증을 느낀 그가 발길을 멈추었다. 소준섭은 빨갛게 물든 눈을 들어 주서희를 한참 쳐다보다가 허리를 굽혀 그녀를 번쩍 안아 올렸다.주서희는 자신을 강제로 데려가려고 하는 그의 모습에 이를 악물고 저항했다.“이거 놔요. 그렇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당신이랑 같이 죽을 거예요.”이미 이성을 잃어버린 소준섭은 그녀를 놓아주기는커녕 고개를 숙이고 그녀에게 입맞춤을 했다.“같이 죽자? 그래. 네가 다른 남자랑 같이 있는 것보다는 낫지.”그녀는 소준섭을 악착같이 밀어낸 뒤 내려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그가 그녀를 자신의 어깨 위로 올렸다. 그의 어깨에 엎드린 채 꼼짝도 할 수 없었던 주서희는 고개를 들고 사무실 쪽을 천천히 바라보았다.눈물을 참으며 도움의 눈빛을 보내오는 주서희를 보고 서유는 용기를 내어 앞으로 다가가 소준섭을 막았다. “소 선생님, 이렇게 막무가내로 서희 씨를 데리고 간다면 서희 씨가 당신을 더 미워하게 될 거예요.”주서희에게 엄청난 상처를 주었던 그가 이런 방식으로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는 서유의 손이 미친 듯이 떨렸고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경멸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소준섭을 쳐다보았다.“무슨 일인데요?”소준섭은 미친 듯이 자신에게 주먹을 휘두르는 주서희의 손목을 잡고는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당신은 알 자격이 없어요.”그는 자신을 꽉 붙잡고 있던 서유의 손을 걷어차고는 주서희를 어깨에 메고 엘리베이터로 성큼성큼 걸어갔다.힘없이 바닥에 엎드려 있는 서유의 모습에 주서희는 너무 미안했다.더 두려웠던 건 서유가 소준섭의 몇 마디 말 때문에 또다시 이승하와 헤어지는 것이었다. 두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자신 때문에 두 사람이 헤어지는 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생각을 하던 주서희가 원망이 가득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며 소리쳤다.“소준섭 씨, 나 당신 평생 후회하게 만들 거예요.” 그 말에 그녀의 등을 누르고 있던 그의 손이 갑자기 떨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녀를 힘껏 껴안았다. ‘주서희, 난 널 데리고 집에 돌아가고 싶을 뿐이야. 널 데리고 부산으로 돌아가 널 내 곁에 두고 싶을 뿐이라고. 네가 돌아오기만 한다면 평생을 후회해도 난 상관없어.’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는 순간, 몸을 겨우 가누고 있던 서유가 바닥에서 일어나더니 다시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주서희는 갑자기 가슴이 따뜻해졌고 눈물을 왈칵 쏟았다. “걱정하지 말아요. 무사히 돌아올 테니까.”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마자 경호원들은 재빨리 자리를 떴고 윤주원은 응급실로 옮겨졌고 마음씨가 착한 간호사 한 명이 다가와 서유의 안부를 물었다. 서유는 고개를 흔든 뒤 가슴의 통증을 참으며 복도 난간을 붙잡고 비틀거리며 한 발짝 한 발짝 창가로 다가갔다. 병원 아래층에서 소준섭은 주서희를 차에 태웠다. 주서희에게 뺨을 세게 맞으면서도 그는 화를 참으며 그녀에게 안전벨트를 매주었다. 이를 본 서유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끊으려 해도 끊어지지 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