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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서유는 임태진이 이승하와 아주 친한 사이인 줄 알았다. 이연석의 소개로 만났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임태진은 서유에게 자기 친구 몇 명을 소개해 주려는 이런 간단한 목적이 아니라 이승하로부터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 이 자리를 만든 것이었다.

하지만 서유는 아무렴 상관없었다. 프로젝트에 관해 얘기를 나누려면 분명 시간이 꽤 걸릴 것이다. 덕분에 그녀에겐 임태진에게서 벗어날 핑곗거리를 찾을 시간이 주어졌다.

그렇게 생각하자 계속 긴장한 상태로 있던 서유는 조금 긴장이 풀렸다.

그녀가 안동의 한숨을 쉬며 화장실에 가려는데 갑자기 임태진이 그녀를 향해 턱을 치켜들며 말했다.

“마셔.”

이제 더는 바보처럼 못 알아들은 척할 수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술잔을 들고 원샸했다.

그녀는 이승하가 술 냄새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았다. 마시더라도 그저 입만 대는 정도였다.

이렇게 갑자기 독한 와인을 원샷하니 그녀는 사레가 들려 눈물까지 맺혔다.

임태진은 그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그녀를 껴안으며 등을 두드렸다.

이승하의 싸늘한 시선이 서유의 몸에 닿은 임태진 손으로 향했다.

눈물이 맺혀 흐릿해진 시야 사이로 서유는 이승하의 살기 어린 눈빛을 보았다.

그러나 다시 시야가 똑똑히 보이자 그의 눈빛에는 무관심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유는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이승하는 그녀를 대용품으로 여겼고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도대체 무엇을 기대한 것일까?

서유가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자 임태진은 그녀를 껴안은 채 이연석에게 말했다.

“서유가 밖에서 놀아본 적이 없어서 술을 잘못 마셔요. 이해해 주십쇼.”

이연석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옆에 앉은 여자가 갑자기 화를 냈다.

“임태진 씨, 그게 무슨 뜻이에요?”

임태진은 눈썹을 추켜세우며 미적지근한 태도로 말했다.

“누님, 제가 누님에게 말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흥분하세요?”

누님이라고 불린 여자는 순간 폭발했다.

“내가 당신보다 어린데 왜 날 누님이라고 부르는 거예요?”

“나도다 나이는 어려도 얼굴이 나보다 늙어 보여서요. 누님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설마 동생이라고 불러드릴까요?”

“이런...”

누님은 말문이 막혀 발을 구르더니 몸을 돌려 이연석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애교를 부렸다.

“연석 오빠, 저 사람 좀 봐요. 나한테 말이 너무 심하잖아요. 우리 저런 사람과 함께 놀지 말고 그냥 가요.”

이연석은 성격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손을 토닥였다.

“희연아 임태진 씨 성격 알잖아. 진심이 아니야.”

안희연은 그저 넘어갈 수 없었다. 비록 그녀는 밤에 화려하게 놀았었지만 이연석을 만난 뒤로는 더 이상 ‘놀아 봤던 여자’라는 말은 듣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임태진을 이길 수는 없었지만 그의 여자를 상대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다.

“됐어요, 더 이상 따지지 않을게요. 이렇게 모였는데 재밌게 놀아야죠.”

“근데 이렇게 앉아서 얘기만 하는 건 재미없으니까 게임이라도 할까요?”

게임이라는 말에 자리에 있던 사람들 모두 흥미를 느꼈다.

“무슨 게임인데요?”

안희연은 카드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팀을 나눠 카드 게임을 한 뒤 진 사람이 옷을 하나씩 벗는 거예요.”

“재밌겠네요.”

임태진은 이런 섹시한 게임을 거절할 리가 없었기에 당연히 동의했고 다른 사람들도 거부하지 않았다.

이연석은 이승하가 불편해할까 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형, 이 친구들 게임하면 미친 듯이 해요 형 놀고 싶지 않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승하는 안희연이 건네는 카드를 받았다.

“어떻게 하는 건데?”

이연석은 충격을 받았다. 그의 사촌 형 이승하는 이런 자리에 오는 것도 질색하는 사람이었다. 오늘 임태진이 연지유와 닮은 여자를 데려오겠다고 해서 참석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참석한 것도 모자라서 함께 게임까지 하겠다니 평소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안희연도 소문에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던 이승하가 게임까지 하겠다고 하니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아주 간단해요. 내가 알려줄게요.”

안희연은 게임 룰을 설명한 뒤 제비뽑기로 팀을 나누려고 했다.

서유는 당황해하며 소파에 뻣뻣하게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어떻게 거절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고 있었다. 안희연은 서유의 생각을 읽고 먼저 그녀에게 말했다.

“이 자리에 온 사람은 다 참여해요. 서유 씨 설마 이렇게까지 사람 체면을 무시려는 건 아니죠?”

그 한마디에 모두의 시선이 서유에게로 향했다.

서유는 마치 자기가 게임을 하지 않으면 분위기를 망칠 거라는 듯한 그 시선들이 너무 불편했다.

여기 있는 누구에게도 그녀는 불만을 표현할 수 없었기에 게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눈치 있게 행동하는 서유를 본 안희연은 그제야 그녀를 놓아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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