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리는 입을 굳게 다물고 아무 대답도 없었다.당연히 그녀는 억울했지만 그걸로 이 남자의 동정이나 부드러움을 얻을 수는 없었다.“김주한이 집적거릴 때 못 봤던 거야, 아니면 딱히 신경 쓰지 않았던 거야?” 구승훈은 강하리의 목덜미를 잡고 강제로 고개를 들도록 했다.하지만 강하리는 여전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김 대표님에게 도움을 부탁하는 거 외엔 다른 방법이 없었어요. 송유라는 협조하지 않고, 매니저는 전화도 받지 않는 상황에 구 대표님은 송유라를 모델로 고집하는데 제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구승훈은 바로 그녀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일을 제대로 못 하겠으면 사람을 바꿀 거야!”“대표님, 업무에 협조하지 않은 건 송유라라는 걸 분명히 해 주세요!”구승훈은 코웃음을 쳤다. “유라가 왜 협조를 안 하겠어? 강하리, 내가 유라의 심기를 건드리지 말라고 경고하지 않았어? 네가 어떤 태도로 유라를 대했는지 생각해 봐!”강하리는 숨 막힐 듯 가슴이 아파 눈을 내리깔았다.송유라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문제였을까? 처음부터 자신을 괴롭힌 건 송유라가 아닌가?강하리는 지금껏 참아온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남자의 눈엔 그녀의 잘못만 보이고 송유라가 그녀를 괴롭히는 건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잠시 뒤 강하리는 웃으며 구승훈을 바라보았다.“그럼 대표님은 모든 게 저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구승훈은 소파에 몸을 기대었고, 무표정한 얼굴엔 조금의 의심도 없어 보였다.“내가 말했듯이 누가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강하리, 네가 송유라와 맞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해?”강하리는 심장이 바늘에 찔리듯 아팠고 안색도 약간 하얗게 변했다.확실히 그녀에게 그럴 자격이 없었다. 송유라의 뒤에는 송씨 가문이 있었고 곁에는 구승훈이 있었다. 게다가 연예계에서 떠오르는 스타인데 뭘 갖고 그녀와 맞선단 말인가?강하리는 구승훈의 말이 맞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그는 처음부터 송유라를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고 냉정하게 그녀에
“오늘 안 하면 안 돼요?”구승훈은 잠시 멈칫했다. “강 부장, 내가 너한테 그 많은 돈을 들인 이유가 나한테 반항하라는 게 아니라는 걸 잊지 마!”그 말을 들은 강하리는 심장이 쿵 했다.그렇다, 그녀는 구승훈이 욕망을 분출하기 위해 찾은 존재였다. 어떻게 그걸 잊고 있었을까?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않고 그의 요구에 협조했다.구승훈은 그녀를 처벌하듯 아주 잔인하고 격렬하게 움직였다. 마치 그녀를 산 채로 잡아먹고 싶은 것 같았다.강하리는 그에게 협조하면서도 너무 세게 하지 않도록 부탁했다.새벽 두 시까지 뒤척이고 나서야 구승훈은 마침내 멈췄고, 강하리는 지쳐서 얼굴에 흐르는 땀이 쇄골에 떨어졌는데 약간 아파서 보니 거기에는 구승훈이 남긴 이빨 자국이 있었다.김주한이 남긴 붉은 자국은 모두 이빨 자국으로 덮여 있었다.뜨거운 샤워 물을 틀어놓은 구승훈에게서 조금의 온화함도 찾아볼 수 없었다.그는 그 이빨 자국을 내려다보며 강하리에게 물었다.“안 아파?”강하리가 고개를 젓자 구승훈은 큰 손으로 그 부위를 꽉 눌렀다.“이제 아파?”강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지만 구승훈은 조금도 손을 놓을 생각이 없었다.“그래, 그렇게 아파야지. 강 부장, 네 주제를 파악하고 오늘처럼 다시는 자신을 더럽히지 마.”강하리는 자신을 위해 해명하고 싶었다.“난 더럽지 않아요!”구승훈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조금만 늦었으면 더럽혀지지 않을 거라고 감히 말할 수 있어?”그 말에 강하리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그의 말대로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그런 상황에서 구승훈이 오지 않았더라면 곤경에 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김주한은 손에 다 넣은 고기를 놓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원래는 야외 자리로 예약했는데 그 사람이 장소를 안으로 바꿀 줄은 몰랐어요.”“그래서?”구승훈의 표정은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해명이 아니었다.“앞으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강하리는 겨우 말을 꺼냈다.그제야 구승훈은 만족한 표정으로
강하리는 자기가 이른 사실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어젯밤에 자신의 입으로 구승훈에게 송유라가 잘 협조하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김주한을 찾아간 거라고 말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구승훈이 진짜로 송유라에게 경고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송유라는 그의 첫사랑이고, 구승훈은 한 번도 그녀에게 심한 말을 한 적이 없었을 것이다.아마도 일을 빨리 진행해야 해서 그렇게 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강하리의 마음은 살짝 흔들렸다.심장이 벌렁벌렁해서 침착할 수가 없었다.그런데 생각해 보니 스스로 너무 불쌍해 보였다. 구승훈이 조금만 잘해줘도 그녀는 남몰래 한참 동안 기뻐했기 때문이다.강하리는 장 매니저와 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쓸데없는 생각을 멈추고 촬영 준비를 했다.사진작가와 얘기를 마친 뒤 또 현장 스태프와도 의논했다.모든 준비를 마치자 송유라도 메이크업을 끝냈다.송유라는 강하리의 앞으로 와서 웃으며 말했다.“승훈 오빠가 나를 위해 환영회를 열어준다고 했으니 너도 와서 같이 놀아.”강하리는 단칼에 거절했다.“싫어. 내가 가면 다들 불편할 텐데.”말을 마친 뒤 그녀는 돌아서서 옆으로 걸어갔다.“하지만 송유라는 기뻐서 활짝 웃었다.“겁나? 아니면 승훈 오빠가 나한테 너무 잘해줄까 봐 질투 나?”강하리는 가슴이 저릿저릿했다.확실히 구승훈과 송유라가 같이 있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강하리는 아주 오랫동안 노력해야 어쩌다 한번 구승훈이 그녀에게 잘해주는데, 송유라는 언제든지 그의 마음속에서 중요한 자리를 잡고 있는 듯했다.구승훈은 마음을 아끼지도 않고 숨기지 않으며 송유라에게 잘해주었다.그것에 비하면 강하리는 자신이 너무 불쌍해 보였다.강하리는 송유라를 바라보며 말했다.“유라 씨, 곧 촬영 들어가요.”송유라는 그녀를 조롱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촬영은 잘 진행되지 않았다.기획안 자체는 육가현을 겨냥한 것이었지만 송유라는 육가현과 스타일이 매우 달랐다.사진작가가 불만족스러워하자 강하리는 그 자리에서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강하리는 이런 점에서 송유라에게 감탄했다. 그녀를 괴롭히기 위해서라면 별의별 짓도 할 수 있었다.만약 오늘 가지 않는다면 송유라와 대립한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지도 모른다.그녀는 마음속의 번뇌를 억누르고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갈게요.”송유라는 순간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강 부장님, 너무 좋아요.”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안예서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으며 송유라가 떠나자, 강하리의 귀가에 대고 한마디 속삭였다.“우리 대표님 눈이 멀었나 봐요. 어떻게 이딴 걸 좋아할 수 있어요!”강하리는 웃었다. 그렇다. 그녀 또한 이해할 수 없었다.구승훈의 주변에는 온갖 종류의 여자들이 차고 넘쳐났는데 그중에는 청순한 여자, 섹시한 여자, 화사한 여자, 대범한 여자, 어떤 여자든 있었지만 왜 하필 송유라에게 반했을까?그녀가 송유라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얼굴만 빼면 봐줄 만한 데가 정말 하나도 없었지만 그래도 구승훈은 송유라가 좋다는데 무슨 방법이 있을까?“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걸 어쩌겠어.”안예서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그들은 함께 차를 타고 히비스커스로 향했다. 송유라가 입구에서부터 구승훈의 이름을 대자 모든 사람의 부러움을 샀다.강하리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척 묵묵히 뒤따랐다....구승훈은 마침내 와서 송유라의 체면을 크게 살려줬다.강하리는 구석진 곳에 앉아 조용히 식사하며 상석에 앉은 송유라가 다른 사람들과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니 물 만난 고기처럼 즐거워하고 있었다.구승훈은 옆에서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녀를 지켜보며 가끔 그녀 때문에 웃음을 터트리곤 했다.이때 강하리는 문득 어릴 적 기억이 떠올랐다. 생활이 어려워 정서원을 따라 여기저기 전전하며 살았지만, 정서원은 그녀를 끔찍이 아꼈다. 정서원은 예전의 기억을 잃었지만, 본능적으로 노래와 춤에 소질을 보였고 강하리는 어릴 때부터 그런 정서원을 따라 춤을 배웠다. 비록 시골이지만 어린 공주님처럼 살았다.나중에 강하리는 구승훈을 만
송유라는 손에 술 두 잔을 들고 강하리에게 다가왔다.강하리는 그녀가 술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을 할지 예상이 가서 순간 머리가 아파 났다.과연 곧바로 송유라는 술 한 잔을 강하리에게 들이밀며 말했다.“강 부장님, 죄송해요. 저 때문에 일이 계속 밀렸죠. 그리고 또 저 때문에 불필요한 오해도 받고요. 지금 사과할게요.”강하리는 눈앞에 있는 술을 보고 고개를 들어 송유라와 눈을 마주쳤다.“사과는 안 해도 돼요. 같이 일하는데 당연히 안 맞는 부분도 있을 수 있죠. 그건 대화를 통해 잘 풀면 되고요. 술도 사양할게요. 제가 요즘에 몸이 좀 안 좋아서.”강하리는 송유라가 건네는 술을 받지 않고 말을 마친 후 바로 밖으로 걸어 나갔다.그런데 그때 송유라가 그녀의 앞으로 가로막았다.“강 부장님, 설마 절 용서 안 하겠다는 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왜 술을 안 마시는 거예요?”강하리는 웃어 보이며 말했다.“송유라 씨, 제가 말씀드렸잖아요. 우리는 같이 일하다가 안 맞는 부분을 발견한 거니까 용서하고 안 하고 할 게 없어요. 그리고 저 정말 몸이 안 좋다니까요.”하지만 송유라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얼마 안 되는데도요? 제가 듣기론 강 부장님 예전에 술 잘 마셨다고 하던데요.”강하리는 예전에 확실히 주량이 강했다.회사에 금방 들어와서 구승훈의 비서로 일했는데, 그때는 회사가 설립된 지 얼마 안 되어 구승훈과 함께 밖에서 계약을 많이 따내야 했다. 그래서 주저하지도 않고 술을 거침없이 마셨었다.하지만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어제 삼킨 소량의 술 때문에 이미 마음속에 죄책감이 가득했던 터라 오늘은 절대 마시면 안 된다.“송유라 씨, 정말 미안한데 이제 제가 몸이 좋아지면 단둘이 술자리를 가져도 될까요?”송유라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그 말은 확실히 날 용서하지 않겠다는 뜻이군요.”강하리는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미안해요. 그냥 정말 술을 마시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지금 몸 상태가 허락 안 해요.”“어디가 아픈데요? 보기엔 멀쩡한데요?
송유라는 여전히 불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다른 뜻은 없어요. 강 부장님, 화내지 마세요.”“송유라 씨는 쓸데없는 걱정을 하네요.”강하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곧장 몸을 돌려 룸을 나갔다.룸 문이 닫히는 순간, 그녀는 구승훈이 휴지 한 장을 송유라에게 건네는 것을 보았다.송유라가 안 받자 그는 할 수 없이 휴지를 들고 그녀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나이가 몇인데 자꾸 울어?”“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요.”“못생겼네.”못생겼다고 하면서도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강하리는 룸의 문고리를 꽉 잡아 손가락 마디마디가 하얗게 질렸다.바로 어제, 구승훈은 그녀에게 매우 모질게 말했다. 울어봐야 소용없다고. 우는 것으로 그의 마음이 약해지기를 기대하지 말라고.강하리는 늘 이 남자의 마음이 돌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했다.요 몇 년 동안 그녀 앞에서 그는 확실히 돌같이 냉정하고 무정했다고 할 수 있다.구승훈은 그녀의 눈물 때문에 마음이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녀의 간청에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송유라 앞에 있는 구승훈은 다른 사람들 앞에 있는 구승훈과 꼭 서로 다른 두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는 다른 사람의 것이다.진작 알았어도 마음이 좀 아팠다.가슴에 찔린 듯이 그녀는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손가락을 약간 떨면서 문고리를 놓았다.문을 닫는 순간 그녀는 주체할 수 없이 구역질이 나기 시작했다.화장실로 뛰어들어가서 아까 마신 술과 오늘 저녁 먹은 것까지 다 토해냈다.모든 걸 다 토하고 나서 그녀는 거울을 보며 낭패해 보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했다.그리고는 억지로 몸을 가누며 레스토랑을 나섰다.택시를 잡지 않았다. 근처에 크기가 어중간한 야시장이 있었는데, 그녀는 그렇게 인파를 따라 야시장에 들어섰다.야시장의 길거리에서 양말 두 켤레를 사고 앞의 포장마차에 가서 물만두 한 그릇을 먹었다.배불리 먹고 나서 위가 그다지 불편하지 않자 그녀는 비로소 마음도 좀 편해진 것을 느꼈다.마침내 그녀는 버스킹하는 가수 앞에 앉아 한
강하리는 가방을 옷걸이에 걸어놓고 신발을 갈아신었다.“전통시장에 다녀왔어요.”“누구랑?”강하리는 멈칫하긴 했지만, 굳이 숨기지 않으려고 했다.구승훈은 이미 무언가 알고 있는 듯싶었다.“혼자요. 오는 길에 우연히 정원 씨를 만나 정원 씨가 집까지 데려다줬어요.”구승훈은 소파에 앉아 그녀를 쳐다보았다.“우연히?”“네. 우연히요.”“이런 우연이.”구승훈은 피식 웃더니 옆자리를 두드렸다.“자, 와서 앉아서 말해. 어떻게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지.”강하리는 느껴지는 그의 분노에 등골이 오싹해 나더니 우물쭈물하면서 말했다.“길가에서 택시를 기다리고 있는데 마침 정원 씨가 지나가면서 저를 발견하고 집까지 데려다줬어요. 대표님, 저는 누구한테 전화하면 바로 달려올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인 사람이 아니에요.”구승훈은 어두운 표정으로 피식 웃더니 말했다.“강 부장, 내가 전에 했던 말을 기억해 두고 있는 것이 좋을 거야. 다른 남자들이랑 그만 어울려. 몸을 더럽혔다간 가치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이 말이 가슴에 비수가 꽂힌 듯 아팠지만, 그의 앞에서 굳이 내색하지 않으려고 웃으면서 말했다.“기억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표님.”구승훈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물었다.“전통시장에서 뭐 샀어?”강하리는 매번 전통시장에서 산 자잘한 물건들을 그에게 보여주곤 했지만, 오늘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구승훈처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가 없었다.“아무것도 안 사고 그냥 돌아다녔어요.”구승훈은 딱딱한 그녀의 말투에 만족스럽지 않은지 그저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강하리는 멈칫하더니 결국 두 쌍의 양말을 꺼냈다.“양말을 좀 샀어요.”구승훈의 것 한 쌍, 강하리의 것 한 쌍, 총 두 쌍이었다.구승훈은 이 두 쌍의 양말을 보더니 표정이 풀리기 시작했다.“씻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욕실로 향했다.그녀가 욕실에 들어가기 전, 구승훈이 물었다.“밥은 먹었어? 전에 먹었던 거 다 토했다며.”강하리는 그대로 제자리에 굳어버리고 말았
구승훈은 그녀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강하리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키스로 인해 온몸이 나른해졌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입을 열어 그의 혀를 맞이했다.어둠 속에서 그렇게 이 둘은 여느 커플과도 같이 가까이 붙어있었다.구승훈은 어젯밤보다도 더 거칠었다.벌칙인지 불만을 털어놓는 것인지 몰랐지만, 유독 사랑의 감정만은 느껴지지 않았다.늘 강압적으로 다른 사람을 리드하기 좋아하던 그는 이 방면에서도 그랬지만, 오늘 저녁은 그녀의 허리를 잡더니 자신의 몸에 올라타게 했다.그녀의 허리를 쓰다듬더니 몸을 일으켜 그녀의 귓불을 깨물었다.강하리도 무의식적으로 그를 꽉 끌어안았다.이때, 강하리의 핸드폰이 울렸다.강하리가 아직 정신을 차리지 않은 틈을 타 구승훈이 대신 전화를 받아 스피커를 켰다.전화기 너머에서는 임정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리 씨, 내일 시간 있으세요? 자료 좀 부탁하고 싶은데.”나른해져 있던 강하리는 마치 몸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바로 정신을 차리더니 표정이 창백해졌다.구승훈은 억지로 핸드폰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었다.“자기야, 전화 받아.”강하리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를 끊고 싶었지만 구승훈이 그러지 못하게 그녀의 손을 꽉 잡고 있었다.구승훈은 그녀의 목에 키스를 퍼붓더니 말했다.“받아. 임 변호사님 난처해지는 꼴을 보고 싶어?”강하리는 난처함을 무릅쓰고 결국 전화를 받았다.“죄송해요... 변호사님... 저... 내일 시간 없어요.”강하리는 최대한 호흡을 가다듬고 대답하더니 바로 전화를 끊었다.구승훈은 막무가내로 또 그녀에게 키스했다.갑작스러운 키스에 강하리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비겁한 자식.’구승훈은 그녀의 처지가 얼마나 난처한지는 생각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그대로 그녀를 안고 욕실로 들어가 욕조에 앉혔다.그렇게 달아올랐던 욕정이 식어버리고, 강하리는 구승훈을 바라보면서 설명을 시도했다.“대표님, 임 변호사님이 이번에 국제 사건을 맡았는데 제가 번역해 드리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갑자기 진태형에게 친딸이 하나 더 생기고 그게 심씨 가문의 손녀일 줄 누가 알았겠나.이제 진시연의 처지가 어색해진 건 당연했고 사람들은 진시연을 보고 웃으며 인사를 나눈 뒤 곧바로 흩어졌다.진시연은 짙은 보라색 드레스를 입고 샴페인 잔을 손에 들고 있었다.그녀는 사람들의 의미심장한 시선을 못 본 척 걸음을 옮겨 구승훈에게 다가갔다.“구승훈 씨, 오랜만이네요.”구승훈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와인 잔을 들고 와인을 한 모금 더 마셨다.대답하지도 않았고 그녀와 대화를 나눌 생각도 없어 보이자 진시연은 그의 옆에 서서 우울한 표정으로 낮은 웃음을 터뜨렸다.“구승훈 씨, 내가 F 대륙에서 야생동물에게 공격당했을 때 날 구해주고 밤새 업고 병원으로 가 치료받게 해준 거 기억나요?”구승훈이 피식 웃었다.“그땐 개나 소나 다 구해줬을 겁니다.”진시연의 얼굴이 다소 일그러졌다.그녀는 오랜 세월 기억하고 있던 것이 구승훈의 입에서 개나 소나가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우울한 눈빛을 감춘 채 말을 이어갔다.“그래도 저한텐 생명을 구해준 은인이에요. 구승훈 씨, 우리 앞으로 잘 지내봐요, 네? 전 정말 그쪽이랑 잘 지내고 싶어요.”구승훈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진시연 씨, 진심으로 살려줘서 고마우면 나한테서 멀리 떨어져요. 내 아내가 날 오해하는 건 싫으니까.”진시연은 당황했다.“아내요? 두 사람 결혼해요?”구승훈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진시연 씨, 멀리하라고요. 못 알아들어요?”구승훈이 그렇게 말한 뒤 걸음을 옮겨 강하리에게 다가가는데 진시연이 다소 격앙된 목소리로 그의 뒤에서 소리쳤다.“구승훈 씨, 강하리가 정말 좋은 여자라고 생각해요? 그쪽 잡고 놓아주지 않으면서 주해찬이랑 알콩달콩 지내는데 정말 하나도 신경 안 쓰여요?”구승훈은 걸음을 멈추고 얼음같이 싸늘한 얼굴로 돌아보았다.“진시연 씨, 멀쩡히 진씨 가문에 남고 싶으면 얌전히 있어요. 아니면 심씨 가문도, 나도 그쪽 무사히 B시에 남겨두지 않을 테니까.”진시연의 얼
강하리는 결국 구승훈이 보내준 드레스를 입었다.파란 드레스에 네크라인과 치맛단에 다이아몬드가 촘촘히 박혀있어 여성스러우면서도 고상하고 품위 있는 분위기를 자아냈다.오픈 숄더는 쇄골을 모두 드러냈고 새하얀 쇄골에는 투명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달려 있었다.강하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진태형의 딸, 심씨 가문의 손녀라는 대단한 신분을 가진 사람이 B시에 몇이나 되겠나.게다가...허리를 굽혀 강하리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는 구승훈에게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구씨 가문이 어떤 배경을 가졌는지 모두가 안다.비록 구승훈이 구씨 가문을 처참히 무너뜨렸지만 그의 손에는 구씨 가문의 재산 90%와 B시 문씨 가문의 모든 재산이 있으니 기존 구씨 가문보다 그 세력이 더 대단했다.모두의 시선이 여기로 쏠렸지만 구승훈의 눈에는 눈앞에 있는 여자만 보였다.몸을 살짝 굽혀 강하리에게 손을 내밀자 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미소를 지으며 그의 손에 자기 손을 얹었다.심준호가 선물한 드레스를 아무 말 없이 찢어버린 구승훈에게 조금 화가 났지만 개자식의 소유욕이 발동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었다.오히려 그런 그의 반응에 다시 예전 구승훈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그동안 그녀의 마음을 가로막고 있던 장벽이 옅어지는 느낌이었다.구승훈의 눈가에 미소가 번지며 강하리가 밖으로 나오자마자 팔을 뻗었다.강하리는 그의 팔짱을 낀 채 사람들의 시선 아래 진씨 가문 저택으로 따라 들어갔다.“이게 우리 결혼식이면 얼마나 좋을까. 왠지 정말 결혼식 같지 않아?”구승훈이 강하리의 귀에 속삭이자 강하리는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보았다.“나도 이게 우리 결혼식이었으면 좋겠어.”구승훈이 걸음을 멈칫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서두르지 마, 결혼식 할 거니까.”강하리는 쓴웃음을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진태형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강하리를 보자 눈을 반짝이며 이쪽으로 걸어왔다.“아빠.”강하리가 낮은 소리로 부르고 곧이어 구승훈도 그를
“언제 왔어?” 강하리가 구승훈을 바라보며 그의 빨갛게 충혈된 눈동자에 시선이 향했다.지난 며칠 동안 구승훈은 이곳에 머물지 않았다.회사를 옮긴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요 며칠 구승훈은 많이 바빴고 모임이 끊이질 않아 근처에 미리 준비해 둔 별장으로 갔다.강하리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를 바라봤다.“지난 며칠 동안 잠은 잤어?”구승훈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 안으며 품에 안았다.“잠을 못 자. 강 대표님이 와서 재워주면 안 돼?”강하리가 웃었다.“그래, 오늘 짐 챙겨서 그쪽으로 갈게.”구승훈은 멈칫하다가 이내 입꼬리를 피식 올렸다.쉽게 승낙하니 다소 허탈한 느낌이 들었다.원래 상처들은 거의 다 나았지만 그가 요즘 매일 복싱장으로 가서 속에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풀었기에 몸에 새로운 상처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강하리가 정말 오면 그는 괴롭기만 할 거다.아내가 옆에 있는 데도 안지 못하는 그 기분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다.“정말 올 거야?”강하리가 웃었다.“왜, 내가 가는 게 싫어? 아니면 다른 여자가 있는 거야?”구승훈은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그럴 배짱이 있는 것 같아?”강하리는 그의 넥타이를 잡고 끌어당겨 허리를 굽히게 한 뒤 시선을 마주 보았다.“그러면 방 청소나 하고 나랑 연정이가 갈 테니까 기다려.”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의 넥타이를 놓아주고 드레스룸으로 들어갔다.구승훈은 문에 기댄 채 웃음을 터뜨리며 적극적으로 다가오는 강하리를 거절할 수가 없다는 걸 인정했다.잠시 후 드레스룸에서 나온 강하리는 심플한 드레스를 입었는데도 유난히 아름다워 보였다.하지만 구승훈은 그녀가 나오는 순간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보낸 드레스는 어딨어?”강하리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무심하게 대꾸했다.“너무 더워서 시원한 걸로 바꿨어.”구승훈은 강하리의 등 뒤로 훤히 뚫린 구멍을 바라봤다.길고 검은 머리카락을 위로 끌어올리자 뒤쪽의 아름다운 나비 모양의 뼈가 드러났다.허리까지 훤히 뚫린 디자인의 옷을 바라보는 구승훈의 눈빛이 어두
강하리의 입꼬리가 움찔했다.건너편 사옥에 새로 회사가 들어왔다는 건 아는데 에비뉴와 정안 그룹일 줄은 몰랐다.하지만 생각해 보니 이해가 됐다.그렇지 않고서야 구승훈이 왜 회사 근처 식당에 나타났겠는가.강하리는 잠시 침묵했다.“연성으로 안 돌아가?”구승훈의 눈동자는 온통 그녀로 가득 찼다.“너랑 아이가 어디 있으면 나도 함께 할 거야.”강하리가 구승훈의 시선을 마주했다.“나도 꼭 B시에 있을 필요는 없어. JM의 업무는 어디서든 할 수 있으니까.”어쨌든 연성은 구씨 가문의 영역이었고 연성에 깊게 뿌리 박은 구씨 가문은 B시에서 그다지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구승훈이 시선을 내려 그녀를 바라보았다.“하지만 네가 다시는 가족과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난 네가 연인이든 가족이든 둘 다 가졌으면 좋겠어, 자기야.”두 사람 중에 적어도 한쪽은 가족의 사랑을 받아야 하니까.강하리의 코끝이 갑자기 시큰해지며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예물도 도착했는데 그러면 결혼할래, 구승훈?”멈칫한 구승훈은 씁쓸함이 가슴에 밀려왔지만 그래도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강 대표님, 그렇게 급한가?”강하리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나랑 결혼할 거야?”구승훈의 눈에 머금었던 미소가 점점 사라지더니 손가락이 강하리의 눈가에 닿았다.“자기야, 준비할 시간 좀 줘.” 강하리는 쓴웃음을 내뱉었다.“알았어, 기다릴게.”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곧장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구승훈은 복잡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가득한 눈빛으로 회사 앞에 서서 얼굴을 찡그렸다.그가 돌아서서 길 건너편으로 걸어가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렸는지 모른다.구승재는 진작 위에서 구승훈과 강하리가 함께 서 있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두 사람이 화해했는지 확인하려고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왔다.하지만 아래에 내려오자 형이 찌푸린 얼굴로 걸어올 줄이야.‘쯧... 아직 화해 못 했네.’“형, 하리 씨가 아직 용서 안 해준대?”구승훈은 넥타이를 잡아당기며 눈가에 억눌린 짜증을 내비
하지만 구승훈의 숨김과 솔직하지 못한 태도는 강하리의 마음을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다.구승훈은 강하리가 화가 났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뒤 강하리를 품에 안고 입을 열었다.“제 아내, 강하리에요.”강하리가 얼굴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려 구승훈을 바라보자 구승훈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내 체면 좀 살려주면 안 돼, 여보?”강하리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여자의 시선이 반짝이더니 강하리를 향해 손을 뻗었다.“안녕하세요, 사모님. 전 구승훈 씨 담당 정신과 의사, 여나경이라고 해요.”강하리는 멈칫하다가 구승훈의 불면증이 떠올라 그를 슬쩍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이 사람 상태 어때요?”구승훈의 눈동자가 살짝 어두워지고 여자는 눈치껏 웃으며 말했다.“복잡한 경우라 치료 과정도 번거로울 수 있지만 제가 최선을 다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사모님.”강하리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여자가 먼저 웃으며 말했다.“죄송하지만 전 일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그러고는 이내 자리를 떴다.여자가 가고 구승훈은 힘껏 강하리의 허리를 꼬집었다.“정주현이랑 밥 맛있게 먹었어?”강하리는 곧장 그의 손을 떼어냈다.“다른 여자랑 밥 맛있게 먹었어?”구승훈이 웃었다.“그래도 강 대표님이랑 먹는 게 맛있지.”강하리는 능글맞게 웃는 남자를 보며 문득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어젯밤 혼자 발코니에 서 있을 때처럼 왠지 이 남자가 홀로 버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구승훈, 당신 몸...”구승훈은 속으로 흠칫하며 조용히 강하리를 품에 안고 만족스러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강 대표님 걱정하는 눈빛을 보니 다 나은 것 같네.”강하리는 아무 말 없이 구승훈의 품에 기대어 안겼고 구승훈의 눈동자는 한층 어두워졌다.강하리가 걱정한다는 걸 잘 안다.예전 같았으면 걱정해 주는 그녀의 모습에 날 듯이 기뻐했을 텐데 지금 상황에서는 강하리가 알까 봐 두려웠다.그래서 지금은 감히 프러포즈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그 약은 그에게 시한폭탄과
강하리는 구승훈을 여기서 볼 줄은 몰랐다.더군다나 맞은편에는 처음 보는 여자가 앉아 있자 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시선을 돌렸다.구승훈의 정상적인 사교 활동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다가가 묻지도, 방해하지도 않았다.그런데 정주현이 그녀의 표정이 이상함을 감지하고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리다가 눈썹을 살짝 치켜들고 강하리를 돌아보았다.“바람피우는 현장 목격한 건가요?”강하리는 다시 구승훈을 바라보았다.“아니요.”이런 면에서 강하리는 구승훈을 믿었다.다만 구승훈이 저 여성과 밥을 먹는 것이 그녀에게 숨기는 일과 관련이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을 뿐이었다.강하리는 사실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다른 사람들은 알아도 자신은 알면 안 되는 게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연정이 사건 때도 구승훈은 노진우를 믿을지언정 그녀를 믿지는 않았다.강하리는 눈가의 상실감을 감추려 고개를 숙였고 정주현은 보기 드문 미소를 지었다.“여전히 저 사람에게 잘해주네요.”정주현의 말투에는 무의식적으로 약간의 서운함이 묻어났지만 그 역시 자신과 강하리 사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강하리는 입술을 다물고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어가지 않고 되물었다.“어떻게 지냈어요?”정주현의 얼굴에 번지던 미소가 갑자기 사라졌다.요즘 어떻게 지냈냐고? 굳이 한 단어로 설명하자면 엉망이다.사실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그조차 모르겠다.정양철과 줄곧 사이가 돈독했던 그였고 정양철이 업무상 아무리 엄격하게 요구해도 그에겐 좋은 아버지였다.그래서 정양철이 그런 짓을 했다는 게 믿을 수가 없었지만 증거까지 나온 이상 믿을 수밖에 없었다.정주현은 애써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냥 그렇죠. 산 사람은 계속 살아야 하니까. 그냥... 하리 씨 볼 면목이 없네요.”강하리는 잠시 정주현을 바라보다가 말했다.“그쪽이랑 상관없어요.”정주현이 웃었다.“그럼 뻔뻔하게 친구 해도 돼요?”강하리도 웃었다.“당연하죠.”정주현의 표정이 눈에 띄게 풀렸고 두 사람은 이
“당신 원하면 해.”구승훈은 심장이 툭 떨어지는 것 같았다.“자기야, 내일 침대에서 못 일어날까 봐 걱정되지 않아?”강하리가 웃었다.“할 거야?”숨이 멎은 구승훈이 허리를 굽혀 그녀를 안았다.“아니, 우선은 강 대표님이 재워주는 걸 누리고 싶어.”말을 마친 그가 강하리를 안아 침대에 눕혔고 강하리는 그의 입술에 키스했다.“잘 자, 구승훈.”구승훈은 웃었다.“잘 자, 자기야.”강하리는 구승훈의 품에 몸을 밀착했고 구승훈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녀를 꽉 안았다.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한 침실에서 강하리의 귀에는 구승훈의 심장 박동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두 사람은 더 말하지 않았다.고요한 방 안에서 구승훈이 고개를 숙여 강하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사랑해.”강하리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리며 눈을 떠 구승훈의 시선을 마주했다.“나도 사랑해.”언제 잠이 들었는지 잠에서 깨어났을 때 구승훈은 곁에 없었고 연정이도 누군가 안고 간 뒤였다.강하리는 침대에 앉아 구승훈이 누웠던 곳을 바라봤다.다소 구겨진 이불을 만지던 그녀의 손가락에 살짝 힘이 들어갔다.“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릴게. 하지만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진 마, 구승훈.”구승훈은 바쁜지 강하리가 아래층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미 자리를 떠난 뒤였다.강하리도 굳이 묻지 않고 평소처럼 연정이에게 밥을 먹인 뒤 사무실로 갔다.회사에 도착했을 때 사무실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리시안셔스 꽃다발이 있었고 그녀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데 안예서가 뒤에서 은근하게 웃으며 말을 붙여왔다.“대표님, 곧 좋은 일 생길 것 같은데요?”강하리의 입꼬리가 살짝 굳어졌다. 구승훈은 그녀에게 프러포즈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그래도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물었다.“오늘 일정은 뭐야?”안예서는 서둘러 강하리에게 하루 일정을 알렸고 고개를 끄덕인 강하리는 꽃을 옆으로 치웠다.안예서가 그녀를 따라 들어왔다.“대표님, 지난번에 제가 말씀드린 임명우 씨 기억하시죠?”강하리는
구승훈은 강하리의 입술을 깨물며 샤워기 아래로 그녀를 안고 갔다.머리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물은 달아오른 불을 끄기는커녕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들게 만들었다.“원해? 자기야, 말해봐.”구승훈이 턱을 잡으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지만 머릿속이 윙윙거리던 강하리는 마침내 참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깨물었다.그녀가 깨물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구승훈이 강하리를 들어 올려 벽에 밀쳤다.구승훈이 얼마나 그녀를 탐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모든 게 끝났을 때 강하리는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구승훈은 강하리를 안아 침대에 눕혔고 강하리는 몸을 뒤척이며 잠이 들었다.잠든 강하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구승훈은 입술에 뽀뽀한 뒤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구승훈은 이미 흠뻑 젖어 있는 자기 셔츠 단추를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풀었다.단추가 풀리면서 그의 몸에 난 상처가 드러났다.최면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고 그는 점점 더 마음속의 난폭함을 참기 힘들어졌다.마치 잠깐의 고통만이 마음속 짜증을 잠시나마 잊게 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구승훈은 무표정하게 웃옷을 벗고 샤워했다.차가운 물이 몸을 적시자 구승훈은 쓴웃음을 내뱉으며 자신의 욕망을 내려다보았다.그는 강하리를 원했다.하지만 지금 당장은 강하리가 기꺼이 응한다고 해도 그녀 앞에서 감히 옷을 벗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욕실에서 나온 구승훈은 침대에서 단잠을 자는 강하리를 바라보다가 휴대폰을 들고 뒤돌아 발코니로 갔다.휴대폰에는 노민준과 구승재에게 걸려 온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있었고 구승훈은 담배에 불을 붙인 뒤 노민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왜 또 갔어?”구승훈은 개의치 않는 어투로 대꾸했다.“효과 없잖아.”노민준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묻어났다.“효과가 없으면 치료 안 할 거야? 승훈아, 포기하지 마. 나도 포기하지 않을 거야.”구승훈은 담배를 한 모금 머금더니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이렇게 물었다.“형, 확실하게 대답해 줘. 이 약으로 고칠 수 있어?”희망이 없다면 그도 더 발
“그래, 우리 연정이에게 완전한 가정을 만들어주자.”강하리는 구승훈의 어깨에 이마를 기댄 채 눈시울이 시큰거렸다.더 이상 주저하고 싶지 않았다.평생 이 남자와 얽혀야 할 운명이라면 차라리 빨리 서로를 곁에 붙잡아 두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삼촌이 말한 것처럼 서로 좋아하는 관계는 소중한 거니까.구승훈이 고개를 돌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별장으로 갈까? 콘돔 한 박스 샀는데 써보지 않을래, 강 대표님?”강하리는 깜짝 놀라서 재빨리 뻔뻔한 남자를 밀어내려는데 구승훈이 순순히 물러날 리 없었다.“한 번만 하고 돌아가는 건 어때?”강하리의 얼굴이 순식간에 뜨거워졌고 구승훈은 직접 그녀의 손을 잡아 그곳에 갖다 댔다.“느껴져? 널 본 순간부터 원했어.”강하리는 단번에 손에 닿은 물건을 알아차리고 화가 나서 물건을 콱 잡았다.“참아!”며칠 동안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와서는 그런 생각만 하다니, 어림도 없지!구승훈은 그녀의 귓불을 살며시 깨물며 옷 속으로 손이 파고들었다.“그러면 오늘은 내가 강 대표님을 모실게, 어때?”말을 마친 뒤 강하리에게 반응할 시간을 주지 않고 바로 입술을 막았다.남자의 민첩한 손놀림이 그녀의 몸 곳곳에 불을 지폈고 그가 그녀의 허리를 쓸어내릴 때쯤 강하리가 갑자기 그를 밀어냈다.“일단 먼저 돌아가.”구승훈은 웃었다.“알았어, 그러면 오늘 밤에 강 대표님 제대로 모실게.”그녀가 원한다는 듯이 말하는 상대에 강하리는 얼굴이 타는 듯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구승훈은 미소를 지으며 강하리의 얼굴이 붉어진 것을 보았다.“젖었어? 어디 봐.”강하리의 얼굴에 또 한 번 홍조가 올라왔다.“닥쳐!”개자식!구승훈은 더 이상 그녀를 건드리지 않고 시동을 걸어 차를 몰고 나갔다.별장으로 돌아오자 걸음마를 배우고 있는 연정이가 보행기를 탄 채 달려왔고 구승훈의 곁에 도착하자 연정이는 작고 뚱뚱한 두 손을 쭉 뻗으며 구승훈을 향해 웅얼거렸다.누가 봐도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조르는 모습이라 구승훈은 연정이를 안아 볼에 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