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그녀의 환생, 섭정왕의 후회: Chapter 21 - Chapter 30

40 Chapters

제21화

말 위에 엎드려 있던 운청서는 온몸이 떨렸다.아파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몸에 밴 두려움 때문이었다.전생의 그녀는 왕부에서 칠 개월 된 배를 하고도 매일 마구간을 청소하며 살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하루는 몸이 무거워 청소하는 시간이 늦어졌는데 마침 현익이 말을 데리고 와서 더러운 마구간을 보곤 마부에게 몇 마디 했었다.현익이 간 뒤, 마부들은 그 분노를 운청서에게 풀었다. 그들은 그녀의 사지를 말에 묶어놓고 말이 그녀를 데리고 마장을 뛰어다니게 했다.왕부의 말은 모두 군에서 자란 사나운 말이었다. 달리는 말 위에 있던 운청서는 정신을 잃을 것 같았다. 그녀는 울면서 사과하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그 누구도 운청서를 봐주지 않았다.그저 불쌍하고 처량한 그녀를 비웃으며 얼마나 버틸 수 있을지 내기했다.결국 운청서를 묶고 있던 밧줄이 풀렸고 그녀의 등이 땅에 닿았다. 그녀는 언제든지 말 위에서 떨어질 수도 있었다. 두려움에 운청서는 말의 배를 꼭 잡은 채 등이 바닥에 쓸리게 할 수밖에 없었다.운청서의 뱃속에 있던 아이는 격렬한 움직임을 이기지 못하고 일찍이 발동했고 그녀의 피는 말을 더욱 난폭하게 만들어 말이 마부들을 향해 돌진하고 나서야 운청서는 내려올 수 있었다.그렇게 연이는 일찍 태어났고 운청서는 병근을 남겼다.그 뒤로 그녀는 말을 타는 것을 극도로 무서워했다.말 등 위에 앉기만 해도 숨 막힐 것 같은 두려움이 느껴졌다."내려주십시오."운청서는 말 등 위에 엎드려 강서백에게 애원했다."제발, 저를 내려주십시오."강서백은 운청서의 두려움을 알지 못했기에 그저 그녀가 자신과 닿기 싫어하는 거라고 생각하곤 말을 다루며 그녀를 위로했다."고집 그만 부리십시오. 몸에 난 상처를 그대로 두면 큰일 납니다. 일단 의관에 가서 봅시다."운청서는 연신 고개를 저으며 헛구역질을 해댔다. 그녀는 심지어 다시 전생의 마장으로 돌아간 것 같은 환각을 느끼곤 빨개진 두 눈으로 소리를 지르며 갑자기 말의 목을 물어버렸다."히힝-"아래에 있던 밤색 말이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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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인사를 건넨 운청서는 현익의 팔을 뿌리치고 힘겹게 여지항으로 걸어갔다.현익은 그런 운청서의 등을 보며 잠시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방금 네 오라버니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봤다. 그런 꼴로 돌아가면 분명 또 걱정할 것이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익의 예상대로 운청서가 걸음을 멈췄다."궁에서 물러난 어의가 있는데 외과에 능하다. 그 어의에게 치료받고 옷을 갈아입고 돌아가면 네 오라버니를 속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구나."현익은 옆 골목을 가리키며 일부러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현익은 운청서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운청서는 어두워진 하늘을 보다 다시 더러워진 자신의 옷을 바라봤다. 그리고 거위구이를 사느라 텅 비어버린 쌈지가 생각났다.이렇게 돌아갔다간 또 운청천을 화나게 할 게 뻔했다.결국 운청서는 어쩔 수 없이 현익을 따라 어두운 골목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강서백도 두 사람을 따라가려고 하며 미안한 기색으로 말했다."오늘 일은 제 소홀함으로 일어난 것이니..."하지만 현익은 그를 막으며 싸늘하게 말했다."조 태의는 모르는 이를 만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전쟁터를 누비는 이들을 제일 싫어하니 장군은 가지 않는 게 좋을 듯합니다. 그리고 폐하께서 아직 궁에서 장군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그 말을 들은 강서백은 깜빡했다는 듯 이마를 쳤다.그는 이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오늘 급히 경성으로 들어온 것도 모두 폐하의 부름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주군 군영은 경성 성남에서 이십 여리 떨어져 있었기에 술시에 황궁에 도착하기 위해 강서백은 급히 달렸던 것이다.그런데 이런 사고가 나고 운청서를 급히 의관으로 데려갈 생각에 하마터면 중요한 일을 까먹을 뻔한 것이다.강서백은 얼른 다시 말 등 위로 올라타더니 현익을 보며 말했다."낭자를 잘 돌봐주십시오. 저는 일단 궁으로 가서 폐하를 뵙겠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강서백은 골목을 떠났다.먼지를 날리며 사라지는 강서백을 바라보던 현익은 운청서를 데리고 조 태의의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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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잠깐."현익이 운청서를 불러세웠다.그 목소리를 들은 운청서의 눈 밑으로 화가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그가 이렇게 쉽게 자신을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내 줄 것이 있다.""필요 없습니다."운청서가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녀는 그와 엮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현익은 운청서의 거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옆에 있던 식합과 상자를 들어 그녀에게 다가갔다.현익은 키도 크고 어깨도 넓어서 골목의 모든 월광을 가려버렸다. 운청서는 그의 옆모습과 뚜렷한 턱밖에 보이지 않았다.현익은 그녀의 앞을 막아선 채 물건을 건네줬다."보거라."운청서는 정말이지 너무나도 싫었지만 두 사람의 힘의 차이를 따져봤을 때,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얼른 돌아가야 했다. 더 이상 이곳에서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대충 상자를 열어본 운청서는 익숙한 냄새를 맡게 됐다. 매실과 고기의 향이 뒤섞인 그 냄새.운청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식합에 들어 있는 거위구이를 바라보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이는 동춘루의 거위구이였다!금방 만든 거위구이에서는 아직 열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바삭한 껍질과 야들야들한 고기는 보기만 해도 군침이 돌았다.운청서는 상자를 덮어버리곤 복잡한 눈빛으로 현익을 바라봤다."무슨 뜻입니까?"현익이 어떻게 운청서의 거위구이가 박살 났다는 걸 알고 있을까?"강 장군이 깨진 네 식합이 신경 쓰인다면서 특별히 본 왕에게 사라고 한 것이다."현익이 조금 어두워진 눈빛으로 대답했다.'강서백이었구나, 그래도 양심 있는 사람이네.'운청서는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이것은 네 오라버니에게 주는 것이다."현익이 다른 상자를 보며 말했다.운청서는 현익이 무엇을 하려는 건지 알 수 없어 미간을 찌푸리곤 다른 상자를 열어봤다. 그 안에는 서책이 있었다.운청서도 글을 알고 있었기에 책의 제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주자(朱子)... 강집. 이건... 주 대가의 강의집이 아닙니까?"운청서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운청서는 주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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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현익의 냉정함은 사람을 얕잡아보기 좋아하는 왕부의 하인들이 운청서를 모욕하고 죽기보다 못한 삶을 살게 했다.이제야 전생의 비참한 생활을 끝냈는데, 이제야 연이를 잃은 고통스러운 사실을 받아들였는데.운청서는 이번 생에 현익과 다시는 엮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현익은 왜 태도를 바꿔서 운청서에게 다가오려고 하는 건지.현익은 운청서의 눈에서 복잡한 감정을 읽어냈다.그는 한숨을 쉬더니 두 사람의 그림자가 겹친 곳을 바라봤다.사격장에서 띄엄띄엄 본 장면은 그저 시작일 뿐이었다.반 달 사이, 현익이 매번 꿈을 꿀때마다 다른 복잡한 장면도 함께 이어져 완정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다른 세계에서 있었던 일들이 그의 눈앞에서 생생하게 재생됐다.그 세계에서 그의 냉정함과 잔인함은 운청서를 찌르는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그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었다.그리고 두 사람의 아이는 어린 나이에 병에 걸려 처참하게 죽고 말았다.운청서가 바로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생명의 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 매번 그 장면을 볼 때마다 현익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후회해야 했다.그리고 전생뿐만 아니라 이번 생에도 그는 그녀에게 수많은 상처를 안겨줬다.현익은 운청서에게 보상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그저...현익은 복잡한 감정을 억누르며 목소리를 낮췄다."그날, 사격장에 있었던 일에 대한 배상이라고 치지."그는 그녀에게 빚진 것이 많았다. 한 번이 아니었고 하나의 목숨뿐만이 아니었다.......현익의 말을 들은 운청서는 그를 비꼬았다."왕야는 은혜와 원한을 똑똑히 가르는 좋은 분이시네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서책이 얼마입니까? 제가 돈을 모아서 갚아드리겠습니다. 밤이 늦었으니 왕야께서도 얼른 돌아가십시오."운청서는 그 말을 끝으로 두 상자를 들고 빠르게 골목을 벗어났다.집에서 오래 기다렸을 오라버니가 걱정됐다.......조 집사는 운청서가 가고 나서야 현익에게 다가가 공경하게 물었다."왕야, 왕부로 돌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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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운청서가 거위구이를 들고 집으로 들어섰을 때, 운청천은 마당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대문이 열리자 찬 바람에 촛불이 흔들렸다.운청천의 옆에는 그녀가 떠나기 전, 끓여뒀던 보리차가 있었다. 보리차는 이미 식었지만 운청천은 개의치 않았다.책을 보면서 차를 마시고 운청서를 기다리고.운청서는 일부러 가벼운 발걸음으로 운청천에게 다가가 거위구이를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오라버니, 제가 오라버니를 위해 뭘 가져왔는지 한 번 보십시오!"운청서가 거위구이를 꺼내자 마당에 향긋한 냄새가 퍼졌다.하지만 운청천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목소리도 조금 차가웠다."어디 간 게야?""그냥 나가서 조금 걸었습니다."운청서가 손을 등 뒤로 가져가며 대답했다."지금 시각이 어떻게 됐는지는 아느냐?"운청서가 입을 열기도 전, 야경꾼이 골목을 다니며 타경했다."해시 삼각이니 어서들 들어가시오. 날씨가 건조하니 불조심하십시오."운청서는 할 말이 없어졌다."내 나가기 전에 내게 일러두지 않았느냐? 유시에 들어오지 않으면 한 달간 금족시키겠다고.""오라버니, 어찌 그리 제멋대로입니까!"그 말을 들은 운청서가 화가 나 소리쳤다.전에 그녀가 산과 들을 돌아다니면서 자시에 집에 와도 운청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고작 두 시진 늦게 돌아왔다고 금족을 시키겠다고 하다니...운청서는 기분이 언짢아져서 들고 있던 서책도 그에게 주고 싶지 않았다."내가 제멋대로 구는 것이 아니다."운청천의 눈 밑으로 안타까운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보던 서책을 덮곤 진지한 얼굴로 운청서를 보며 말했다."청서야, 나는 네가 더 이상 그 어떤 상처도 받지 않았으면 해서 이러는 것이다."교훈은 그 한 번으로 충분했다.운청천은 수중에 돈이 없어 운청서에게 호위 하나 붙여주지 못하고 이런 우둔하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그녀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자신이 미웠다.운청서는 운청천의 말에 담긴 안타까움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에게는 무척 고통스러운 그 일이 운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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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밥을 먹은 뒤, 문을 연 운청서는 옆집 황 아주머니께서 허리를 짚은 채 밖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됐다. 아주머니는 잔뜩 신이 나서 인부들을 지휘해 얼마 없는 짐을 나르고 있었다.아주머니는 운청서를 보자마자 그녀가 묻기도 전에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청서야, 좋은 소식 하나 알려줄게. 이제 옆집에 강남 부자 하나가 이사 올 거야. 우리 아들이 동춘루에 가서 일하게 된 거 알지? 여기가 북성이랑 멀어서 아들이 왔다 갔다 하기 불편할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어제 한 상인이 우리 집이 마음에 든다면서 풍수가 좋다고 하는 거야. 그리고 우리 장궤한테 시가보다 세 배나 더 쳐서 주면서 이 집을 사겠다고 했어. 돈 많은 사람은 역시 달라. 시원시원하고 풍수도 알고 있잖아. 그 돈이면 우리도 동춘루 근처에 작은 집 하나를 살 수 있을 것 같아. 작긴 해도 경성에 있는 거잖아. 금싸라기 땅에서..."아주머니가 점점 더 신이 나서 운청서에게 집을 산 상인 얘기를 하려던 찰나, 아주머니의 부군이 마당에서 소리쳤다."그만해! 돈으로도 그 방정맞은 입을 막을 수 없으니 원. 얼른 와서 당신 물건이나 정리해. 당신 물건이 제일 많으니까!"집에만 있는 황 아주머니보다 그녀의 부군은 아는 것이 더 많았다.그 상인은 말을 할 때마다 강남에서 왔다고 했지만 그가 내뱉는 말은 북방 말투였다.이 허름한 곳에 풍수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저 집을 살 구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아주머니의 부군은 잘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 상인은 집을 살 때, 돈을 더 얹어주면서 입단속을 단단히 시켰다.'하여간 여자들은 저 입이 문제라니까!'......운청서는 이사 가는 이웃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적어도 경성 토박이인 그들은 자신의 집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집을 팔고도 다른 새집까지 마련할 수 있지만 운청서 남매는 달랐다.지금 살고 있는 곳도 세를 낸 거였다.운청서는 더 이상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 한번 살게 됐는데 결국 자신의 집도 하나 가지지 못하는 건 말이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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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이튿날 아침, 운청서가 깼을 때, 운청천은 또 나가고 없었다.운청서는 주자 강집을 보며 고뇌했다.어젯밤 그녀는 하루 종일 바빴던 터라 일찍이 잠에 들었고 운청천은 늦게 돌아왔다. 결국 운청서는 강집을 전해주는 걸 또 잊고 말았다.같은 지붕 아래에 살고 있는 두 사람이 이렇게 얼굴 한 번 보기 힘들 줄이야.고개를 저은 운청서는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을 보다 얼른 침상에서 일어났다.오늘, 그녀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어제 하루 종일 바삐 돌아친 운청서는 서른 개의 탄필(炭筆)을 만들었다.제일 검은 목탄을 가루로 갈아 송진과 섞어 긴 모양으로 만든 뒤, 종이로 감쌌다. 풀이 마른 뒤, 필 끝을 깎아 종이에 써보니 막힘이 없고 편리했다.탄필은 붓처럼 시원스러운 글을 쓸 수는 없었지만 먹을 갈지 않아도 됐기에 편리했다.그리고 제일 싼 붓이라고 해도 육십 문했다. 그리고 백 문의 묵석까지 사야 했지만 운청서의 탄필은 삼십 문이었기에 살 사람이 많을 것이다.운청서는 간단하게 전을 하나 먹은 뒤, 탄필을 바구니 안에 넣고 점심에 먹을 계란 두 개를 챙겼다.집을 나서기 전, 갑자기 걸음을 멈춘 운청서는 무언가 생각난 듯 다시 방으로 들어가 운청천의 탁자에서 종이 두 장을 꺼내 바구니에 넣었다.탄필을 팔 때, 손님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운청서는 집을 나서자마자 밖에 세워진 새까만 마차를 보곤 놀랐다.여지항은 골목이 좁고 집마다 문도 작아 마차가 들어올 수 없었다.그리고 일반적인 집안은 마차를 가질 수 없었다.마차를 사려면 적어도 몇십 냥이 있어야 했고 말이 먹을 것과 그것을 관리하는 돈만 해도 한 달에 십 냥을 써야 했다.마차가 있으면 마부도 있어야 했다. 마부는 한 달에 이, 삼십 냥을 받았다. 이렇게 따진다면 마차를 타는 것이 아니라 돈을 태우는 것이나 다름없었다.운청서는 역시나 황 아주머니의 말대로 옆집에 이사 온 사람이 돈 많은 집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정말 이곳의 풍수가 좋은 건가? 그럼 오라버니께서 올해 꼭 과거에 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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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쉰이 넘은 어르신은 이를 당해내기 어려웠다.다행히 운청서가 대충 훑어보다 떠나서 조 집사는 살 수 있었다.그는 가슴을 잡고 숨을 고르다가 다시 말했다."어제 폐하께서 강 장군님을 궁으로 불러들여서 장군님께 황궁의 수령 자리를 겸임하고 삼 일에 한 번씩 궁에 들러 폐하께 무술을 가르치라고 했답니다. 왕야, 폐하께서 다른 생각이 있는 것 같습니다.""왜, 정말 그 아이가 열두 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는 게냐?"현익이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관리 집안에서는 열둘이면 수재에 합격할 수 있는 나이다. 그러니 궁은 더 말할 것도 없지. 태부 선생들이 매일 가르치고 본 왕도 그 아이를 억압하지 않았으니 지금 생각을 열몇 살짜리 소년과 비길 수는 없을 것이다.""그럼 저희는 앞으로..."조 집사가 조금 망설이며 물었다.그러자 현익이 차갑게 웃었다."그 아이가 일어설 수 있다면 본 왕도 걱정거리가 줄어들게 되겠지. 일어서지 못하고 늙은이들한테 휘둘려서 조정을 어지럽힐까 봐 걱정이지. 무술을 배우겠다고 했으니 무술 실력이 좋은 선생들을 찾아서 함께 궁으로 보내거라. 강서백은 무술 실력이 좋지만 좋은 선생은 아니다. 괜히 폐하를 이상한 길로 들어서게 하면 안 되니까.""네."조 집사는 현익의 말에 대답하더니 다시 한숨을 쉬었다."왕야께서 전심전력을 다하는 이유가 천하를 위한 것이라는 것을 폐하께서 알지 못할까 봐 걱정입니다.""알면 어떻고 모르면 어떠하냐? 본 왕이 하는 일에 그 누구도 인정할 필요는 없다. 입 밖에 놀릴 줄 모르는 나약한 인간을 본 왕이 신경 쓸 필요는 없다. 칭송받으면 어떻고 욕을 먹으면 어떠하냐? 세상에 어두운 구석도 있고 밝은 구석도 있다. 다들 밝은 쪽이 되려고 하지만 본 왕은 어두운 쪽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조 집사는 머리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정말 다른 이의 생각을 신경 쓰지 않았다면 왜 섭정왕부에서 지내지 않고 신분을 감춘 채 이 허름한 집으로 이사 왔겠습니까? 까치발을 들면 대들보에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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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오의항(烏衣巷) 내에서 청색 장삼을 입은 서생들이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운청서는 오의항 밖에서 공터를 찾아 천을 깔고 자신이 만든 탄필을 쭉 펼쳐놓았다.왼쪽에는 음식을 파는 아주머니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종이를 파는 아저씨가 있었다.두 사람은 운청서가 이곳에 왔을 때, 그녀의 외모 때문에 눈길을 더 돌렸었다. 하지만 곧 자신의 일에 집중했다.오의항은 경성에서 책 읽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각종 서점과 차관, 서화 점포도 수요에 따라 많았다. 그래서 낮에는 인산인해를 이루어 시끌벅적했다.하지만 집세가 높아 점포가 아니라 길옆에서 장사하는 이들도 하루에 백 문의 돈을 내야 했다. 이는 운청서처럼 자그마한 장사를 하는 이에게는 적합하지 않았기에 그녀는 오의항 밖에서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의 가격은 조금 낮아서 하루에 이십 문만 내면 됐다.하지만 운청서는 처음 장사를 하는 거였기에 호객행위를 할 줄 몰라 반 시진이 지나서야 첫 손님을 맞이했다.마흔이 넘어 보이는 중년 사내는 흐리멍덩한 눈빛에 하얘진 머리를 하고 있었다. 장삼의 소매도 닳아서 색이 조금 바랬다.사내는 운청서가 바닥에 펼쳐둔 탄필을 가리키며 물었다."이 물건은 어디에 쓰는 것이오?"그 말을 들은 운청서는 얼른 그에게 설명해 줬다."글을 쓸 때 쓰는 필입니다. 탄필이라고 하는 건데 글이 선명하고 쓰기도 편리합니다. 하나에 삼십 문이라 붓보다 훨씬 좋습니다."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들고 온 종이에 글을 써 보였다.그 모습을 본 중년 사내의 무력한 얼굴에 호기심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운청서가 건넨 필과 종이를 받아 들어 몇 번 긋더니 시원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두 개 주시오."운청서는 그 말을 듣자마자 신이 나서 잘 만들어진 두 탄필을 사내에게 건네주곤 주동적으로 말했다."제 첫 손님이니 두 개에 오십 문만 받겠습니다."중년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탄필을 검사하고 주머니에서 오십 문을 꺼내 운청서에게 건네주곤 떠났다.손에서 느껴지는 묵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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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뭐 이런 뻔뻔한 게 다 있어."소녀가 퉤하고 침을 뱉더니 운청서를 욕했다.운청서는 화가 나서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녀를 보며 말했다."서로 얼굴로 모르는 사람끼리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하지만 분홍색 치마를 입은 소녀는 콧방귀를 뀌더니 운청서를 비웃었다."이 탄필은 어제 우리 임씨 점포에서 팔기 시작한 건데 오늘 네가 위조해서 팔고 있잖아. 우리 둘 중에 뻔뻔한 게 도대체 누군데? 내가 이런 너한테 어떻게 좋은 소리를 하냐고!"소녀가 임씨 점포 얘기를 꺼내자 운청서의 안색이 순식간에 바뀌었다.'임씨 점포에서 벌써 탄필을 팔기 시작했다고? 전생에는 분명 일 년 뒤에 팔기 시작해서 내가 이런 생각을 했던 건데...'"소저! 여기 뻔뻔한 것이 있습니다!"소녀는 아는 사람을 보자마자 서화를 안아 들고 뒤늦게 다가온 여인에게 다가가 불평을 늘어놓았다."소저께서 이 탄필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심혈과 시간을 쏟아부었는지 노비가 다 봤습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경성이 언제 이 모양이 된 건지. 어떻게 저렇게 뻔뻔한 사람이 있는 거죠? 바로 이튿날에 거리에서 이걸 팔다니! 제가 자기 점포를 밟아버렸다고 언짢아했습니다. 퉷! 저는 저이의 가짜 물건을 다 밟아버릴 뿐만 아니라 저이를 궁에 데리고 갈 겁니다!"두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온 소저는 머리에 비녀를 꽂고 비취색의 비단 치마를 입고 있었다. 금실로 된 연꽃이 수놓아진 신발을 신고 허리에는 도화 향낭까지 하고 있어 걸을 때마다 향긋한 향기가 났다.얼굴도 무척 아름다웠다."홍수(紅袖)야, 밖에서 무례하게 굴지 말거라."여인은 먼저 시녀를 꾸짖었다.그리곤 난처한 꼴을 한 운청서를 바라봤다."이봐요, 먹고 살기 힘든 건 알겠지만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니 하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그 여인은 바로 장춘호부의 일곱째 소저, 임씨 점포의 주인장인 임완여였다.자신을 질책하는 목소리와 얕잡아보는 듯한 임완여의 눈빛을 받아내던 운청서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그녀는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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