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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전부 되찾을 거야: Chapter 1 - Chapter 10

40 Chapters

제1화

“하린아, 기증자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어. 주민재한테 가서 방법 좀 생각해 달라고 해. 네 눈은 더 이상 미루면 안 돼.”친구 고지안의 전화를 받은 강하린은 병원에 갈 짐을 챙기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닥친 나쁜 소식에 망치를 세게 얻어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졌다.정신을 차린 후 강하린은 전화기를 움켜잡고 다급하게 물었다.“왜 마음을 바꿨대? 다시 잘 얘기할 수 없을까? 나, 난...”몇 번이고 머뭇거리던 강하린은 손으로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며 머릿속엔 주민재의 냉담한 눈매가 떠올라 마음이 철렁했다.그가 도와줄 리가 없었다.과거 일로 주민재는 강하린을 극도로 혐오했고 결혼한 지 3년이 넘도록 강하린은 투명 인간 취급을 당했는데 도와줄 리가 있나.“하린아, 난 그쪽에 연락할 수 없어.” 고지안이 난감한 듯 말했다.“기증자 개인정보는 비밀이야... 너 지금 빨리 주민재한테 가서 도와달라고 해. 네 눈은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 수술해야 해.”전화는 어느새 끊어졌고, 고지안의 말이 계속해서 강하린의 머릿속에서 울려 퍼지며 그녀의 긴장된 신경을 계속 자극했다.그때 문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키가 큰 남자가 현관에 나타났고, 어둠 속에서 무섭도록 차갑게 번뜩이는 남자의 눈동자에 강하린은 두려움을 느꼈다.“민재 씨.” 강하린이 정신을 차리고 그를 향해 다가가자 짙은 술 냄새가 확 풍겼다.고개를 숙인 주민재가 그녀를 흘깃 쳐다보더니 곧장 벽에 밀어붙였고, 뜨겁고 거친 그의 손이 다가오자 그 열기에 온몸이 떨렸다.“당신...”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주민재는 강하린을 갑자기 안고서 방으로 향했다.문을 발로 차서 연 그는 거칠게 강하린을 침대에 던지고 곧장 몸을 덮쳐오며 분풀이하듯 강하린의 쇄골을 콱 깨물었다. 고통이 밀려오자 강하린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남자의 아무 감정도 없는 차가운 눈빛이 위에서 내리꽂히자 괜스레 겁이 났다.“민재 씨, 무슨 일 있어요?”주민재는 말없이 더욱더 거칠게 밀어붙였고 강하린은 고통에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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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주민재는 무슨 농담이라도 들은 듯 차갑게 대꾸했다.“이혼? 그걸로 날 협박하는 거야? 갖은 수작 다 부려서 주씨 가문에 들어왔는데 이젠 나갈 마음이 생겼어? 강하린, 내 인내심을 시험하려 들지 마.”그 말만을 남긴 채 그는 문을 박차고 나갔다.가슴에서 눈까지 시큰거림이 밀려와 강하린은 입술을 깨물며 연약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짓이기듯 고통으로 가득했다.첫눈에 반한 주민재를 줄곧 사랑하고 있었다.하지만 그 사건 이후로 강하린이 어떻게 해도 그는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흐르고 눈에서 은근히 느껴지던 찌릿한 통증이 점점 더 날카롭게 찔러왔다.강하린은 통증으로 식은땀을 흘리며 희미한 시야로 옷을 갈아입고 병원으로 향했다.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시력을 완전히 잃은 뒤였다.강하린은 비틀거리며 병원 안으로 걸어 들어가다가 지나가는 사람과 몇 번이나 부딪힐 뻔했고 나중에 간호사가 그녀를 고지안의 진료실로 데려갔다.“하린아, 무슨 일이야?” 고지안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달려왔고 강하린은 그녀의 손목을 잡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지안아, 나 눈이 너무 아파.”고지안이 잔뜩 긴장하며 말했다.“겁내지 마. 내가 검사해 볼게.”강하린의 주치의였던 고지안은 그녀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고, 몇 가지 검사를 해보던 그녀는 급격히 침울해졌다.“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가 보네.” 강하린이 힘겹게 입꼬리를 끌어올리자 고지안은 그녀의 손을 잡고 다급하게 말했다.“괜찮아, 그냥 각막일 뿐이잖아. 정 안 되면 내 각막 이식해 줄게.”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그녀의 말에 강하린은 마음이 무거워지며 다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각막 기증자가 마음을 바꾼 게 아니야.” 강하린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빼앗긴 거야.”“뭐?” 고지안이 언성을 높였다.“난 모르는 일인데?”강하린은 주민재의 부드럽고 다정한 모습을 떠올리며 중얼거렸다.“내 앞에서 전화를 받지만 않았어도 나도 몰랐을 거야.”재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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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주민재는 빠르게 차를 몰았고 20분이나 걸리는 거리를 쏜살같이 달려 시간이 확 줄어들었다.강하린은 떠밀려 차에 올라 안전벨트를 맬 틈도 없이 오뚜기 인형처럼 차 조수석에서 앞뒤로 흔들리며 여기저기 부딪혔다.차가 멈췄을 때쯤에는 온몸이 쑤시는 느낌이 들었다.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괴롭힌 것에 대해 한유나 대신 화풀이를 하는 거다.“내려.” 주민재의 말투는 차가웠다.강하린은 똑바로 앉아서 잠시 진정하고 나서야 문을 열고 나갔다.밤은 짙었고 클럽 앞의 네온사인은 형형색색으로 번뜩이며 앞에 있는 계단을 비췄다.강하린은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눈을 가늘게 뜨고 보려고 애썼지만 그래도 발을 헛디딜 뻔했다.그녀는 비틀거리며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어 주민재의 코트 모서리를 잡아당겼고, 남자는 잠시 멈칫하며 손을 바라보다가 이내 툭 뿌리치며 말했다.“강하린,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경고했잖아.”손이 허공에 툭 떨어지자 강하린의 마음도 텅 빈 것처럼 찬 바람이 쌩쌩 몰아쳐 몸이 떨렸다.그녀는 입술을 벙긋했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지난 몇 년 동안 이러한 오해가 수도 없이 있었기에 강하린은 더 이상 해명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옆에서 그가 계속 걸어 들어가기를 기다렸다.그러다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고 주민재는 전화기를 보며 그녀에게 말했다.“먼저 들어가. 금방 갈 테니까.”강하린은 과거에 겪었던 수모들이 떠올라 잠시 망설였지만 주민재가 재촉하는 눈빛을 보내자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안으로 들어갔다.블루 클럽은 주민재와 친한 친구들이 자주 모이는 곳으로,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데다 부스 방음까지 잘 되어 있었다.안으로 들어가니 가끔 웨이터들이 돌아다니는 것 말고는 아무런 잡음도 들리지 않았다.기억을 더듬어 강하린은 이내 그들이 자주 모이는 룸을 찾아냈고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다소 거슬리는 소음이 흘러나왔다.강하린은 가만히 문을 발로 찼고 문이 열리는 순간 대야가 허공에 떨어지며 끈적이는 액체가 쏟아져 내렸다.과거 경험으로 봤을 때 이건 접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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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룸 안엔 잠시 침묵이 흐르더니 곧이어 격렬한 야유가 터져 나왔다.“강하린, 아무리 동정심을 얻고 싶어도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각막이라니, 정말 눈이 멀었어도 그건 네가 치러야 할 대가야.”“이런, 소설을 너무 많이 봤네.”주변의 조롱이 끊이지 않았지만 강하린은 못 들은 척 주민재만 올곧게 바라보았다.사랑은 무슨, 개나 줘버리라지.그녀는 그저 눈을 치료하고 아버지가 누명을 썼다는 증거를 찾은 뒤 조용히 정착할 곳을 찾고 싶을 뿐이었다.주민재의 얼굴이 극도로 일그러지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고함을 질렀다.“전부 닥쳐.”그가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나가.”짤막한 한 마디에 룸 안에 있던 사람들은 덜덜 떨며 감히 반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서둘러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신현수는 여전히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 있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끌려 나갔다.룸 안은 금세 비워졌고 주민재는 휴대폰을 꺼내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강하린의 병원 기록을 확인하라고 시킨 뒤 그녀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강하린, 나한테 거짓말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강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병원 기록이 다 있으니 거짓말인지 아닌지 보면 알겠지.그녀의 눈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다시 빼앗아 온다고 해도 주민재가 알아챈 뒤 중간에 다시 뺏어갈 수도 있었다.강하린은 그녀의 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주민재가 그래도 부부였던 정을 생각해 각막을 돌려주기를 바랄 뿐이었다.주민재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약 10분 후 다시 전화가 걸려 왔다.전화를 받은 주민재는 몇 초 후 평온하던 얼굴이 폭풍우가 몰아칠 듯 위험하게 일그러지더니 홱 시선을 돌려 강하린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강하린, 거짓말하는 게 재밌어?”그의 짙은 눈매가 눈앞에 바싹 다가오며 그녀가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남자가 목을 움켜쥔 뒤였다.숨 막히는 느낌이 덮쳐오며 원래도 혼란스럽던 머릿속이 점점 흐릿해졌고 강하린이 반항하기 전에 주민재가 문득 힘을 푼 채 잡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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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주민재는 강하린을 클럽에 버려두고 곧장 전화를 받은 뒤 회사로 가서 서류 몇 개를 처리했다.집에 돌아왔을 때 평소처럼 소파에서 기다리던 강하린이 보이지 않자 왠지 모르게 짜증이 치밀었다.반성도 없이 오히려 유나의 상황을 알고 같은 수작으로 그를 속이려 했으면서 되레 제 쪽에서 심술을 부리다니.주민재는 넥타이를 거칠게 끌어당기며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강하린이 이번 기회로 그를 협박해 유나를 상대하려는 건 헛된 생각이다. 이건 전부 강씨 가문이 유나에게 빚진 것이기에 그녀는 소란을 피울 자격이 없었다.이런 생각에 주민재는 강하린의 행방에 대해 알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금세 잠이 들었다.하지만 다음 날 눈을 떠도 여전히 강하린이 보이지 않자 또다시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도우미에게 물어보자 강하린이 어젯밤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에 표정은 먹물처럼 잔뜩 어둡게 변했다. 그래, 이젠 외박까지 하시겠다.도우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도련님, 사모님 찾아볼까요?”“됐어요.”주민재가 거절했다.“계속 소란 피우게 놔둬요.”하지만...사흘이 될 때까지 강하린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고, 주민재의 억눌린 분노는 완전히 최고조로 치솟았다.그래, 좋아. 이젠 가출까지 한다는 거지....“하린아, 오랫동안 보러 오지도 않고 이 할아버지를 잊은 게야?”전화기 너머 주상철의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들리자 강하린은 서둘러 부인했다.“아니에요, 할아버지. 요즘 좀 바빴어요.”주상철은 콧방귀를 뀌었다.“무정한 놈, 내가 볼 땐 넌 보러 올 생각도 없는 것 같구나.”강하린은 어쩔 줄 몰라 했다.“그럴 리가요. 시간 나면 뵈러 갈게요. 알겠죠?”눈병이 잦아진 뒤로 할아버지가 혹시라도 이상 징후를 발견하면 걱정할까 봐 저택에 가는 횟수도 줄였다.“정말 내가 보고 싶으면 다른 날 말고 오늘, 지금 와. 안 그러면 이 늙은이를 싫어한다고 생각할 거야.”나이가 얼마인데 아직도 생떼를 쓰는 건지.강하린은 어이가 없었지만 저택에 다녀온 지 오래되었기에 결국 동의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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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한유나는 강하린의 마음을 아프게 난도질하는 방법을 잘 알았다.강하린도 각막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각막을 빼앗아 가고 일부러 앞에서 자랑하며 주민재의 애정을 독차지한다는 걸 과시했다.피곤함이 해일처럼 그녀를 휩쓸었다.강하린은 갑자기 모든 게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사랑 하나로 얽힌 이 삼각관계에서 그녀는 아무런 명분도 가질 자격이 없는 사람이었다.그런데 굳이 애쓸 필요가 있을까?“상관없어요.”이미 익숙한 일인데 무슨 신경이 쓰이겠나.“잘 놀아요. 난 굳이 분위기 망치지 않을게요.”차가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한 후 강하린은 고개를 돌려 자리를 떠났다.매번 주상철이 그녀와 주민재가 단둘이 만날 자리를 마련해줄 때마다 주민재는 한유나를 불렀고, 그 끝엔 매번 한유나의 여우 같은 발언에 발끈한 그녀가 주민재와 얼굴을 붉히곤 했다.이젠 더 이상 소란을 피우는 것도 지쳐 자리를 비켜주며 그들에게 기회를 줄 생각이었다.그런데 한 발짝도 못 가 손목이 잡혔고 그녀는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돌아섰다.주민재의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강하린, 할아버지 말대로 너 데리고 놀러 나왔는데 또 왜 소란을 피우는 거야?”“내가 무슨 소란을 피운다고 그래요?”강하린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터져 나왔다.“일부러 한유나 씨까지 불렀으니까 두 사람 시간 보낼 수 있게 자리 비켜주겠다는데 내가 뭐 잘못했어요?”한유나가 다급하게 해명했다.“강하린 씨, 오해에요. 나랑 오빠는 그쪽이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에요. 오빠는 단지 내가 영원히 앞을 못 볼 수도 있으니까 불쌍해서 그러는 거예요. 오빠, 나 그냥 갈게요. 나 때문에 강하린 씨랑 싸우지 마요.”“어딜 가.”주민재가 그녀를 잡으며 지켜주려는 듯 뒤로 보냈다.“강하린, 내가 네 속셈 모를 것 같아? 외박해서 내 관심 끌고 할아버지가 나보고 널 데리고 나오라고 했는데 도중에 가버려서 할아버지 이용해 유나 건드리려는 거잖아. 강하린, 넌 참 한결같이 독하다.”강하린은 그의 생각에 어이가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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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연약하고 창백한 얼굴이 겁에 질려 있고 물에 빠진 사람이 마지막 동아줄을 붙잡는 것처럼 주민재의 손을 꼭 잡았다.주민재는 서둘러 그녀의 손을 맞잡았다.“무서워하지 마. 내가 바로 병원에 데려다줄게.”말하며 그는 돌아서 곧장 한유나를 안아 들었고 나가면서 저도 모르게 사람들 사이로 돌아봤지만 여전히 강하린은 보이지 않았다.방금 유나가 나가는 걸 봤다고 했으니 알아서 먼저 떠났겠지.품에 안긴 한유나의 낮게 흐느끼는 소리가 점점 다급하게 들리자 더욱 인내심이 바닥난 주민재는 다른 걸 신경 쓸 겨를도 없이 한유나를 품에 안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그들이 떠난 후에야 강하린은 밀치고 밀려드는 사람들 속에서 힘겹게 일어났다.조금 전 관람차에 사고가 났을 때 기다리던 사람들이 뿔뿔이 도망치자 어수선한 와중에 이리저리 떠밀려 강하린은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그러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이쪽으로 밀려들자 다행히 옆에 보이던 판넬로 몸을 막았다.그렇지 않았다면 몰려온 사람들에게 짓밟혀 죽지 않으면 심하게 다쳤을 거다.발에 밟혀 아픈 곳을 문지르며 땅에서 일어나 주민재와 한유나를 찾기 위해 뒤를 돌아봤지만 텅 빈 관람차만 보였고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그 순간 강하린은 끝없는 심연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위험한 상황에서 주민재는 한유나를 데리고 떠나느라 그녀를 잊어버린 거다.강하린은 마치 자신이 그들 사이에 있는 광대가 된 것 같아 고개를 숙인 채 피식 입꼬리를 끌어올렸다.강하린, 그만하자.무려 5년이다. 5년 동안 노력해서도 얻지 못한 마음인데 더 이상 뭘 더 바라겠나.그냥 놓자.그 남자도, 자신도....놀이공원에서 집으로 돌아온 강하린은 오래전부터 준비해 둔 이혼 서류에 서명하고 주민재의 회사로 택배를 보냈다.이번에는 정말로 그를 놓아줄 준비가 되었다.주민재는 다음 날 오후 강하린으로부터 이혼 서류를 받았다.막 병원에서 한유나 곁을 지키다가 업무가 밀려 어쩔 수 없이 회사로 온 그는 비서가 가져온 걸 받았을 때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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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주상철은 자리에서 일어나 제자리에서 두 번이나 돌다가 마침내 주민재 앞에 섰다.“됐다. 결국엔 다 내 탓이다.”주상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너한테 결혼하라고 강요해서 네가 원망하는 거 다 안다. 생각해 보면 너한테 하린이가 아까운 것도 맞지. 네가 한유나 그 아이를 좋아한다면 하린이와 이혼해라. 마침 나도 너같이 한심한 손자는 필요 없으니 이혼하고 일찌감치 나랑 인연도 끊고 주씨 가문에서 나가. 앞으로 하린이는 내 손녀고 나는 다정하고 아껴주는 사위를 찾아줄 거다.”“...”‘친할아버지가 맞나?’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어림도 없어요!”강하린과 이혼하는 걸 말하는 건지, 주상철과 관계를 끊는다는 걸 말하는 건지.설마 강하린에게 새 남편을 찾아주는 걸 반대하는 건 아니겠지?이에 대해 강하린은 전혀 모르고 있었고 물어볼 생각도 없이 각막 기증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조사하느라 바빴다.눈의 발작은 점점 더 잦아지고 실명하는 시간은 더 길어지고 있다.강하린은 더 이상 지체하면 기증자를 기다리더라도 수술을 받을 기회가 없을까 봐 정말 두려웠다.다행히 세상에 돈 없이 안 되는 일은 없었고 거금을 들여 그는 마침내 각막 기증자가 9살 남아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그의 어머니는 웨이트리스로 저녁에 파티에서 일할 예정이었다.강하린은 파티에 가서 그의 어머니를 만나 왜 말을 바꿨는지 그 이유를 물어보고 그녀에게 각막을 기증하도록 설득해 볼 참이었다.가능성이 희박하긴 해도 강하린은 시도하고 싶었다.저녁 8시, 강하린은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파티장에 나타났지만 안타깝게도 그녀가 찾기도 전에 남자아이의 어머니는 한유나와 임지혜를 먼저 만났다.임지혜는 임씨 가문의 아가씨로 과거 강씨 가문이 몰락하기 전에는 늘 강하린과 비교 대상이 됐던 인물이다.하지만 외모나 교양, 재능, 상식 뭐로 보나 강하린에게 뒤처졌고 이로 인해 강하린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임지혜는 만날 때마다 그녀를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었다.강씨 가문이 몰락한 후 강하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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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강하린은 아이의 강하린을 찾다가 우연히 이곳까지 왔고 이런 장면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공교롭게도 괴롭힘을 당한 종업원이 자신이 찾던 기증자의 어머니, 박연화였다.주민재가 여기서 그토록 여리고 착하며 부드럽다고 생각하는 후배의 본성이 어떤지 봤어야 하는데.웨이트리스는 상대에게 밀려 비틀거리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한유나는 쳐다보지도 않고 하이힐을 신은 채 당당히 걸어가는 공작새처럼 그 여종업원을 밟고 지나갔다.종업원은 굴욕감에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온몸이 떨렸지만 주먹을 꽉 쥔 채 참으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강하린이 다가가 위로하며 이 틈에 접근하려는데 갑자기 눈에서 통증이 밀려와 눈앞이 캄캄해져 쓰러질 뻔했지만 다행히 위급한 순간에 벽을 붙잡고 버텨냈다.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땐 눈앞에 상대가 보이지 않았다.이 복도는 정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였고 강하린은 그녀가 정원 구석으로 가서 추스르고 있다고 생각했다.눈이 따끔거리는 것을 참으며 서둘러 정원으로 쫓아갔지만 거기에 찾는 사람은 없었고 삼삼오오 한가한 사람들이 모여 술잔을 든 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강하린이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까 봤던 종업원은 보이지 않았다.그러다 꽃밭으로 가려는데 수영장을 지날 때 다시 한번 눈에 통증이 거세지며 눈앞이 캄캄해지자 그녀는 어둠이 완전히 덮치기 전에 옆의 가로등 기둥을 잡고 증상이 지나가길 기다렸다.그때 갑자기 뒤에서 거대한 힘이 강하린을 밀치며 앞으로 떠밀렸고 수영장에 빠지기 전 그녀는 강한 향수 냄새를 맡았다.바로 조금 전에도 맡았던 임지혜 냄새였다.차가운 물이 순식간에 덮쳐오자 강하린은 물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몸부림쳤다.“도, 도와줘요... 나, 나 수영 못해요...”눈이 아프고 눈앞이 캄캄한 와중에 두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 할수록 더더욱 깊게 빠져들었다.절망이 늪처럼 그녀를 조금씩 삼켜가고 있었다.정말 오늘 여기서 죽는 걸까?강하린이 죽는다고 단정 지을 때 귓가에 철썩이는 소리가 들렸다.누군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소리였다.곧바로 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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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조용한 복도에 ‘쿵'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강하린은 부딪힌 부위를 문지르며 아파서 무의식적으로 몸을 웅크렸다.뒤에서 아무런 기척이 들리지 않는 걸 보아 주도현은 이미 간 것 같다.그녀는 더듬거리며 엘리베이터 버튼을 열었고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갔다.강하린은 주도현이 아파트 건물 앞에 서서 이 모든 것을 목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커다란 쓰레기통에 부딪힌 그녀의 모습을 본 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지더니 그녀가 엘리베이터에 오기를 기다리던 그는 곧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강하린 눈에 이상이 있는 건 아닌지 당장 알아봐.”저렇게 거대한 장애물은 눈이 멀쩡한 사람이라면 절대 부딪히지 않는데 강하린은 아무것도 몰랐다.집에 돌아온 그녀는 서둘러 약을 한 알 더 먹었고 눈의 따끔거리는 통증은 점차 사라졌다.강하린은 축축한 옷을 벗고 들어가 샤워를 한 뒤 깔끔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몸을 던졌다.오늘 파티에서 박연화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내일은 직접 찾아가 봐야겠다.말이 방문이지 그동안 그녀는 줄곧 병원에 머물고 있었다.각막을 기증한 소년이 희소병을 앓고 있어 2년 가까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강하린은 병원에 가서 어느 병동에 있는지 알아보고 곧장 찾아갔지만 병실 앞에서 상황을 살펴본 그녀는 굳어버렸다.여자가 중환자실에서 돌보는 사람이 아이일 줄 알았는데 온몸에 호스를 꽂고 산소 호흡기를 쓴 채 병상에 누워 있는 사람은 중년 남성이었다.강하린이 찾아갔을 때 여자는 그의 손을 닦아주는 중이었고 모습을 보아하니 남편인 것 같았다.순간 강하린은 그들이 왜 마음을 바꿨는지 알 것 같았다. 주민재의 돈을 받은 거다.말할지 말지 망설이고 있을 때 박연화가 이미 그녀를 발견했다.“누구 찾으세요?”여기까지 왔으니 강하린은 그래도 노력은 해보고 싶었다.돈 때문이라면 그녀도 줄 수 있으니까.“안녕하세요. 저는 강하린이라고 하는데요. 원래 아이 각막을 기증받으려던 사람이에요.”강하린의 이름을 듣는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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