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눈밭에 남겨진 그녀의 모든 챕터: 챕터 11 - 챕터 20

23 챕터

제11화

나는 미련 가득한 얼굴로 먼 곳의 작업실을 쳐다보았다.‘너무 빨리 죽었어. 작업실에 아직 채 완성하지 못한 작품도 있는데. 근데 됐어. 이제 더는 중요하지 않아.’진성준이 다급하게 병원으로 가보니 정채은이 눈물범벅인 채로 엉엉 울고 있었다.“오빠, 나 몸이 안 좋아. 혹시 신장에 무슨 문제 생긴 거 아니야? 아무튼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어.”진성준은 그녀를 꼼꼼하게 검사했다. 아무 문제 없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다정하게 위로를 건넸다.“채은아, 걱정하지 마. 그냥 심적 작용일 뿐이야. 신장 하나 바꿨다고 큰일 나지 않아. 날 봐봐. 이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멀쩡하잖아.”“그래?”정채은이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그럼. 그나저나 우린 참 닮았어. 너도 신장 이식했고 나도 했고. 그리고... 우리 다 드문 혈액형이잖아. 그때 내 신장만 멀쩡했더라면 내 신장을 주려고 했었어...”진성준은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눈치 빠른 정채은이 바로 알아챘다.“오빠, 왜 그래?”진성준은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내저었다.“아니야. 우연이겠지...”나는 다정한 두 사람을 보면서 마음이 차갑게 식어버렸다.‘이 바보야. 아이큐는 높으면서 그 생각은 왜 못해? 이 세상에 뭔 우연이 그렇게 많다고. 엄청 드문 혈액형인데 신장을 그리 빨리 찾았다는 게 말이 돼? 게다가 그때 오빠는 아무것도 없었어. 나한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더라도 알 텐데. 오빠가 수술받을 때 내가 옆에 없었던 건 삐져서 오빠를 보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라 오빠 옆방 병실에 누워있었어. 오빠 몸속에 있는 그 신장 사실 내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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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어찌 된 건지 진성준은 정채은의 병실에 그리 오래 머물지 않았다. 병실을 나온 그는 선배 신민혁에게 전화를 걸었다.“선배, 그때 나한테 신장을 줬던 사람이 누구인지 진짜 알아낼 수 없어요?”“성준아, 우릴 곤란하게 하지 마.”신민혁은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너랑 별이 곧 결혼한다고 했지? 별이 좋은 여자야. 그러니까 앞으로 잘해줘.”진성준의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나에게 화풀이했었다.사실 나는 그가 무척이나 자책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날 우리 집에 오려고 했던 사람이 그였기 때문이었다.진성준이 짜증을 낸 바람에 그의 어머니가 나에게 케이크를 가져다준 것이었다.그렇게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진성준은 늘 어머니에게 죄책감이 있었다. 사실 그는 참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그때 그가 신장이 필요했을 때 나는 신민혁에게 무릎까지 꿇고 부탁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가 이식받은 신장이 내 것이라는 걸 절대 알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나는 그가 나에 대한 죄책감까지 안고 살아가는 게 싫었다. 하여 신민혁도 지금까지 그 비밀을 지켜주었다.진성준의 표정이 말이 아니게 어두워지더니 미친 듯이 집으로 달려갔다.수년간 숨겼지만 아무래도 들킨 듯싶었다.하지만 집 안에는 아무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진성준은 미친 듯이 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화기가 꺼졌다는 기계음만 들려왔다.그는 손으로 얼굴을 부여잡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잠시 후 눈물이 두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별아, 제발 말해줘. 너지? 맞지?”‘아니야, 오빠. 오빠만 원한다면 수천수만 개의 거짓말을 할 수 있어. 오빠만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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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진성준이 갑자기 다급해지기 시작하더니 뭔가를 확인하려는 듯 집안을 뒤졌다. 그러다가 내 옷이 그대로 있는 걸 확인하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잠시 후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진성준은 환하게 웃으며 바로 받았지만 웨딩 컨설팅 회사의 전화였다.“안녕하세요. 강샛별 씨 가족분 되시나요? 저희는 행복 웨딩 컨설팅입니다. 며칠 동안 강샛별 씨한테 카톡으로 연락했는데 답장이 없어서 여기로 전화했습니다. 무슨 일이냐면 강샛별 씨가 우리 회사에서 예약한 웨딩 세트를 취소하겠다고 했거든요. 근데 회사 규정에 따라 계약금의 30%밖에 돌려드릴 수 없어요...”“웨딩 컨설팅이요?”진성준의 얼굴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근데 왜 취소해요?”“그게 강샛별 씨가 남자 친구와 결혼할 수 없게 돼서 취소하겠다고 했어요.”툭.진성준이 휴대전화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허둥지둥 다시 주우려는데 두 손이 벌벌 떨려 말을 듣지 않았다.“강샛별, 진짜... 날 버리려고?”내가 결혼식을 취소해서 기분이 별로인 듯싶었다. 그런데 기뻐해야 하는 거 아닌가?사실 진성준이 나에게 결혼 얘기를 꺼내기 전에 내가 먼저 프러포즈를 했었다. 왜냐하면 그때 내가 임신한 걸 알았고 아이를 아무 명분 없는 사생아로 만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다만 프러포즈했을 때 진성준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었다.“별아, 우리 그냥 이렇게 평생 살면 안 돼? 나한테 결혼은 딱히 중요하지 않아. 내가 평생 챙겨주고 지켜주고 옆에 있어 줄게.”그렇게 나는 프러포즈를 거절당했고 나중에는 정채은이 아픈 바람에 결혼하자고 했다. 그러다가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면서 나는 진성준이 평생 나와 결혼할 리가 없다는 걸 확신했다. 하여 이 결혼식을 취소해버렸다.나는 이 소식을 그의 생일선물로 전하고 싶었지만 이젠 그럴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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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진성준은 드디어 나의 작업실로 갔다. 그런데 그를 맞이한 건 정경호였다.“별이 아직도 삐졌어? 작업실 직원이 그러는데 별이 벌써 일주일이나 출근 안 했대.”“뭐? 근데 왜 아무도 나한테 얘기 안 했어?”“왜냐고? 네 마음은 온통 내 동생 채은이한테 가 있잖아. 별이를 아예 신경도 쓰지 않는 줄 알았지. 그리고 별이 귀도 먹고 말도 못 하긴 하지만 그래도 성인이야. 화 풀리면 돌아올 거야...”퍽.진성준이 정경호의 얼굴을 가차 없이 후려갈겼다.“걔가 귀도 안 들리고 말도 못 하는 거 알긴 아네? 밖에서 누구한테 괴롭힘이라도 당하면 어떡해?”“괴롭힘? 성준아, 이 세상에서 별이를 가장 괴롭힌 사람이 너 아니었어?”정경호는 진성준을 밀어내고 주름진 옷깃을 정리했다.“성준아, 내가 너였더라면 다른 여자한테 한눈팔지 않아. 그리고 지금 당장 경찰에 신고했을 거야. 물론 별이가 자포자기하고 돌아오길 기다려도 되고. 어쩌면 별이 계속 네 옆에 있을지도 모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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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진성준은 그제야 경찰에 신고했다.경찰이 CCTV를 확인한 결과 내가 마지막으로 실종된 곳이 폐공장 근처라는 걸 알아냈다.폐공장이긴 했지만 눈이 내릴 때면 커플들이 가끔 와서 사진을 찍는 로맨틱한 명소이기도 했다.진성준은 곧장 그곳으로 달려와 비틀거리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뭔가 떠올랐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멀지 않은 곳의 폐공장을 쳐다보았다.드디어 알아챈 걸까?이곳은 이름도 모르는 여자 시신을 해부했던 곳과 아주 가까웠다.“진성준 씨, 우리 경찰견이 눈밭에서 이걸 찾았습니다.”피가 묻은 보청기였다.지금 이 순간 진성준의 표정은 말로 형용할 수가 없었다. 충격에 빠진 듯했고 또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그는 나에게 맞춤 제작해줬던 비싼 보청기를 들여다보았다.“아니에요... 별이 것일 리가 없어요... 이 세상에 보청기가 얼마나 많은데. 별이 거 아니에요. 내가 밥 먹으러 집으로 돌아가길 기다리고 있을 거예요. 먼저... 가볼게요... 별이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어요. 집에... 가서 밥 먹어야 해요.”진성준은 정신이라도 놓은 듯 경찰을 밀어내고 집으로 향했다.“별이 그냥 삐졌을 뿐이야. 그래. 어릴 적부터 그랬어. 삐지면 나랑 숨바꼭질했잖아. 아무 일 없을 거야. 숨어있다가 곧 나오겠지.”진성준은 집으로 가는 길에 해바라기 꽃도 구매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꽃이었다.그는 다시 마음을 진정하고 텅 빈 집을 향해 불렀다.“별아, 나 왔어. 오늘 저녁 뭐 먹어? 갈비찜? 별이가 해준 갈비찜이 제일 맛있어. 별아, 요즘 바쁜 일이 끝나면 우리 결혼식 올릴까? 신혼여행 어디로 가고 싶어? 국내 아니면 해외? 보자, 내 휴가가 며칠 있는지. 그동안 휴가 쓰지 않았으니까 아마 한 달 정도 쉴 수 있을 거야. 신혼여행 한 달이면 충분하겠지? 아이 좋아해? 우리 아이 가질까?”모든 것이 싸우기 전으로 돌아간 듯했다.그땐 나에게 말도 걸곤 했었다. 이렇게까지 말이 많진 않았지만.말해봤자 차가운 말투로 대충 두어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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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그 후 며칠 동안 진성준은 출근하지 않았고 누구의 전화도 받지 않았다.매일 앞치마를 두른 채 집을 깨끗하게 청소할 뿐만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만들었다. 심지어 나에게 밥도 떠주었고 비계까지 떼서 집어주었다.“비계에 붙은 살코기만 좋아하지? 대체 누가 이런 버릇을 들였는지, 참. 얼른 먹어. 앞으론 오냐오냐하지 않을 거야.”“강샛별, 많이 컸다 너? 이것도 다 못 먹어? 그러니까 이렇게 야위었지. 됐어. 나머지 밥은 내가 먹을게. 다음부턴 낭비하지 마. 낭비하면 못 써. 알았지?”그렇게 그는 허공에 대고 끊임없이 말했고 나의 접시에 담긴 음식도 모두 먹어버렸다.우리가 함께 썼던 안방으로 돌아온 진성준은 평소 나를 안던 것처럼 내 베개를 안았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살살 어루만졌다.“별아, 나 너무 힘들어. 조금만, 조금만 안고 있을게.”진성준이 뭔가 잘못됐음을 나는 알고 있었다.그가 나중에 진실을 알게 되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한 적이 있었다. 후회하고 날 영원히 기억하길 바랐지만 이렇게 자신을 괴롭히는 건 바라지 않았다.그렇게 3일이 지났고 진성준의 앞으로 택배 하나가 도착했다.아직 채 완성하지 못한 조각 작품이었는데 그에게 주려 했던 생일선물 중 하나였다.아주 크고 무거운 예쁜 인형이었다.진성준은 인형을 거실에 내려놓더니 뭔가 생각났는지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인형이 너랑 닮았어. 마음에 들어. 예전에는 네가 이것도 못 하고 저것도 못 하고 조각에도 재능이 없다고 했던 건 다 거짓말이었어. 우리 별이는 뭐든지 다 잘해. 조각도 제일 잘해.”진성준은 다정하게 웃었지만 나는 눈물을 떨구었다.‘오빠, 내가 살아있을 때 이런 얘기 좀 해주지. 이젠 늦었어.’그날 이후 진성준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것 같았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계속 경찰과 나의 행방을 찾으면서 정상적으로 출근했다. 다만 더는 정채은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성준 오빠, 샛별 씨 일은 우리도 참 안 됐다고 생각해. 근데 사람은 앞을 봐야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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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헛소리하지 마.”진성준은 핏발이 선 두 눈으로 정채은을 노려보며 목을 졸랐다.“말도 안 돼. 걔 얼마나 연약한데. 길 걸을 때도 자주 넘어진다고. 그런 걔가 그 낭떠러지에서 날 업고 나왔다는 게 말이 돼?”“콜록콜록... 이 미친놈아, 이거 놔.”정채은은 그를 힘껏 밀어버렸다.“하나만 더 알려줄게. 그때 오빠가 이식받은 신장도 샛별 씨 신장이야. 샛별 씨가 신민혁 씨한테 부탁했다고 들었어. 오빠가 죄책감 가질까 봐 평생 비밀로 해달라고 했대. 참 어리석은 여자야. 자기 인생을 남자한테 바치기나 하고. 그러니까 죽었지. 하하. 죽어도 싸.”“그 입 다물지 못해?”그날 진성준은 그야말로 미치광이가 따로 없었다. 경찰이 와서야 그의 손에 잡힌 정채은을 겨우 구해주었다.그리고 진성준은 경찰서에서 나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강샛별 씨 시신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현장에서 발견된 대량의 핏자국을 보면 시신을 토막 냈을 가능성이 있어요.”“토막요?”“네. 눈밭에서 끊어진 손을 발견했거든요. 근데 아직 몸과 머리를 찾지 못했어요.”“말도... 안 돼요... 샛별일 리가 없어요. 절대 아니에요... 뭔가 잘못 안 거 아니에요?”“진성준 씨, 이젠 진성준 씨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강샛별 씨 일은 안타깝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범인을 찾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샛별 씨와 연락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요? 뭔가 이상한 점이 없던가요?”“이상한 점이요?”진성준은 덜덜 떨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카톡을 확인하지 않고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그러다가 잠시 후 그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졌다.“별아, 오빠 바빠. 수업할 때랑 출근할 때 네 전화 못 받아.”“그럼 오빠가 보고 싶으면 어떡해?”“그럼 이렇게 하자. 한 번 전화하면 오빠가 보고 싶다는 뜻이고 두 번 하면 오빠더러 밥 먹으러 오라는 뜻으로 하자.”“그럼... 세 번째는?”“세 번째는 구조 신호. 우리 별이한테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 하는 거야. 근데 걱정하지 마. 오빠가 잘 지켜줄게.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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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무서웠던 별이는 약속대로 세 번 전화했다.진성준이 전화를 받았을 때 얼마나 기뻤을까?몸이 아무리 아파도, 뒤에 있는 사람들이 무서워도 오빠가 꼭 구하러 올 거라고 믿었다.하지만 오빠는 오지 않았고 돌아오는 건 이 말이었다.“강샛별, 적당히 해. 채은이 지금 위험한 상태라고 했지? 도와줄 생각이 없으면 귀찮게 하지 마.”진성준은 그렇게 별이를 포기했다.사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나는 너무도 아팠었다. 그런데 진성준의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상하리만큼 모든 고통이 사라졌다.마지막에 머리와 사지가 잘려나갈 때도 거의 고통이 없었다. 심지어 처음부터 끝까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진성준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아마 지금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조차 모를 것이다.“내가 왜 울어? 이건 가짜야. 내가 울 리가 없지.”마지막 눈물 한 방울을 닦던 그때 병원에서 전화가 걸려왔다.“강샛별 씨 가족분 되시나요? 여기 성주 병원입니다. 오늘 강샛별 씨 산부인과 진료 날이라서요. 산모와 아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으니까 꼭 제때 병원에 와서 검사받으세요.”멈췄던 눈물이 또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진성준은 머리를 움켜쥐고 중얼거렸다.“별아, 들었어? 나 아빠 된대.”‘그래. 오빠. 아빠가 될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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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그때 뒤에서 경찰 한 명이 헐레벌떡 뛰어왔다.“진성준 씨, 일주일 전에 성준 씨네 집에서 강샛별 씨를 데려간 사람을 찾았어요. 정경호 씨라고 알아요?”정경호는 경찰에 잡혔을 때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맞아요. 내가 그랬어요. 내가 샛별이 불러내서 사람 시켜 죽였어요. 딱히 이유는 없고 그냥 진성준이 눈에 거슬려서 그랬어요.”정경호는 씩 웃으면서 옛 친구를 보듯 진성준을 쳐다보았다.“샛별이 지금 어디 있어?”“성준아, 무슨 소리야, 그게?”“샛별이 어디 있냐고 물었어.”정경호는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았다.“내가 말했잖아. 별이는 계속 네 옆에 있었다고. 그렇게 똑똑하다는 애가 설마 이 세상에 그렇게 많은 우연이 있다고 믿은 거야? 마침 암시장에 여자 시신이 나왔고 또 마침 채은이한테 딱 맞는 신장을 가지고 있었어. 그리고 이미 신장 이식을 한 번 해서 신장이 하나만 남았고. 또 마침 임신까지 한 생태였어.”“너... 이 X자식아. 걔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그리고 네 후배이기도 하잖아.”“화났어? 내가 물었었잖아. 임신까지 했는데 토막 내는 건 불쌍하다고 신고하지 않겠냐고. 근데 네가 싫다면서 그냥 황산에 던져버리라고 했잖아. 그리고 어쩜 샛별이한테 전화 한 통도 안 할 수 있어? 연약한 여자가 혼자 밖에서 떠도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몰라? 어휴... 그날 저녁에 샛별이한테 전화 한 통만 더 했어도 걔 휴대전화가 트렁크에 있었다는 거 알았을 텐데. 그때 네가 직접 옮겼던 그 시신이 바로 샛별이야. 봐봐, 난 진작 돌려줬어.”“X발, 나쁜 자식, 죽여버릴 거야. 절대 가만 안 둬.”진성준이 이를 꽉 깨물고 정경호에게 달려들자 경찰이 말렸다. 그러자 정경호가 싸늘하게 웃었다.“진성준, 샛별이가 왜 날 따라 그 눈밭에 갔는지 알아? 네가 그 눈밭에서 걔한테 프러포즈할 거라고 했거든. 그때 얼마나 좋아하던지. 눈빛이 아주 반짝였어. 나중에 내가 죽이려고 하니까 임신했다고 하더라고. 다신 널 두고 채은이랑 싸우지 않겠다면서 떠나겠다고 했어. 마지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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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쾅.진성준은 집으로 돌아와 크고 무거운 조각 작품을 깨뜨렸다. 그 안에 화학 약품으로 완벽하게 보관한 사람 머리 하나가 들어있었다.그녀는 아주 차분한 표정으로 두 눈을 뜨고 있었다. 마치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듯 잠이 든 것만 같았다.진성준은 귀한 보물이라도 찾은 것처럼 머리를 쓸어넘기면서 가볍게 어루만졌다.“별아, 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지켜줄게. 오빠가 우리 별이 영원히 지켜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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