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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엔 못 놔줘의 모든 챕터: 챕터 1591 - 챕터 1600

1603 챕터

제1591화

이것이 바로 방성원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성의였다.설인하는 믿기지 않는 듯 물었다. “뭐라고?”방씨 집안의 절반 자산이라니, 한때 파산했던 설씨 집안의 가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막대한 금액이었다.방성원은 그녀의 손을 꼭 쥐며 말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믿기지 않는다면 더는 방법이 없어.”그리고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어차피 자신이 죽고 나면 모든 재산은 두 사람의 아이들 이름으로 넘어갈 텐데, 장인 장모를 상대로 무슨 짓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설인하는 여전히 의심스러워했다. “날 속이려는 거지? 난 어린애가 아니야.”그녀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곧바로 변호사에게 서류를 작성하라고 할게.” 방성원은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서류를 작성한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설인하는 그가 더 이상 집요하게 굴까 봐 서둘러 자리를 떴다.한편, 신부 대기실에는 화려하게 꾸민 민수아가 있었고 박민정과 진서연도 메이크업을 끝낸 상태였다.그리고 들러리 중 한 명은 바로 정민기였다.정민기는 처음엔 들러리가 되는 걸 꺼렸지만 진서연이 들러리를 맡았다는 말을 듣고 마지못해 수락했다.서다희는 다부진 체격의 정민기를 보며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왜 제 주변엔 이렇게 평범한 사람이 없는 거예요?”정민기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싫어요?”서다희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가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럴 리가요. 다만 잠시 후에는 저한테 너무 가까이 오지 마세요.”정민기는 무심하게 대답했다.“그럼 꽃다발은 제 쪽으로 던져요.”그는 그 꽃다발을 진서연에게 주고 싶었다.서다희는 OK 사인을 보내며 말했다. “걱정 마세요, 우리 수아가 알아서 잘 던질 거예요.”결혼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여러 절차가 끝난 후 신부가 부케를 던졌고 정민기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것을 받아냈다.그가 망설임 없이 진서연에게 꽃다발을 건네자 진서연은 놀란 듯 물었다.“저한테요?”“네.”정민기는 신랑 신부의 스포트라이트를 빼앗고 싶지 않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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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2화

정수미는 박민정과 접촉할수록 자신이 그녀에게서 멀어질 수 없다는 걸 느꼈다.그러나 박민정은 다소 곤란하다는 듯 말했다. “죄송해요, 가고 싶지 않아요.”정수미는 눈에 띄게 실망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그럼 내일은 어때? 주말이잖아.”박민정이 대답하기도 전에 정수미가 재촉했다. “우리 회사에 잠깐 들를 수 있을까? 너한테 줄 게 있어.”“그게...” 박민정은 망설이며 물었다. “뭔데요?”“오면 알게 될 거야. 꼭 와.”아침 바람은 제법 쌀쌀했다.정수미는 참지 못하고 가볍게 기침을 했고 서둘러 손수건을 꺼내 입을 가렸다.박민정은 그녀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대답했다. “알겠어요.”“그럼 약속한 거야.”“네.” 박민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수미는 박민정이 떠나는 모습을 바라본 뒤에야 차에 올랐다.차에 앉은 그녀는 꽉 쥐고 있던 손수건을 펼쳤다. 그 위에는 선명한 붉은 피가 번져 있었다.“피까지 토하신 거예요?” 비서가 깜짝 놀라 묻자 정수미는 씁쓸하게 웃었다. “예전부터 그랬어. 별일 아니야.”“대표님, 이러시면 안 돼요. 병원에 가야 해요.” 비서가 걱정스레 말했으나 정수미는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어. 이 몸으로 병원에 간다고 몇 년 더 살 수 있겠어?”비서의 눈에는 연민이 가득했다.“그래도...”“장 변이 유언장을 거의 다 작성했을 거야. 내일, 그걸 가져오라고 해.”비서는 고개를 끄덕인 후 조심스럽게 물었다.“큰 아가씨에게도 연락할까요?”정수미는 잠시 망설였다.“됐어. 소현이는 너무 이기적이니까 유언장을 알게 되면 난리를 칠 거야. 내가 죽은 후에나 알게 해.”“알겠습니다.”...박민정은 집에 돌아온 후 내내 악몽에 시달렸다. 하지만 막상 깨어나면 꿈의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이제 민수아가 따로 나가 살게 되면서 집에는 박민정과 설인하, 진서연, 그리고 유남준, 정민기, 박윤우가 함께 지내고 있었다.아침 일찍 박윤우가 방문을 두드렸다. “엄마,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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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3화

모든 것이 안배되었다.유남준은 박민정과 박윤우를 데리고 직접 차를 몰아 정씨 그룹 지사로 향했다.정수미는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 곁에는 한 눈에 봐도 세련된 중년 여성이 함께 있었다.“언니, 아이를 찾았으면 집으로 데려가 친자 확인을 해야 하지 않아?” 정수미의 동생인 정보주는 묻는다. 그녀는 과거 인터넷에서 윤소현을 도왔던 이모였다.정수미는 차 한 모금 마시고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너 아직도 모르니? 그때 소현이가 너더러 괴롭히라 했던 사람이 바로 내 친딸이자, 네 조카야.”“뭐라고?” 정보주는 깜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그럼 어쩌지? 나 정말 몰랐어!”“알아. 나도 그땐 몰랐으니까. 그래서 아이에게 상처를 줬고 내 친외손자에게도 그랬지.” 정수미는 씁쓸히 답했다.정보주는 조카를 만나기 위해 온 것이었지만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앉아 있기에도, 그렇다고 일어서기에도 불편한 자리였다.“이따가 어떻게 사과하지?”“걱정 마. 민정이는 착한 아이라 말 잘 들을 거야. 지금 몸이 좀 안 좋아서 많은 걸 기억하지 못하거든.” 정수미가 말했다.“어디가 안 좋은 건데? 병원엔 가봤어? 내가 아는 전문가들이 많은데 소개해줄까?” 정보주는 걱정스럽게 물었다.정수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비서가 다가왔다. “입구 경비가 작은 아가씨께서 오셨답니다.”정수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정보주의 손을 잡았다. “가자. 민정이를 맞이하러 가야지.”“그래.”정보주는 기대에 찬 표정이었다. 그녀는 비록 정씨 성을 가졌지만 정수미의 사촌일 뿐 친여동생은 아니었다. 늘 정씨 가문의 후계 문제로 고민해왔던 그녀는 이제 박민정의 존재로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거라 생각했다.둘은 서둘러 내려갔고 그들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바로 윤소현이었다. 그녀는 주먹을 꼭 쥔 채 차가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정말 편애가 심각하군.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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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4화

정보주는 말투가 직설적이었다.정수미는 다소 난처한 표정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보주야, 그만해. 민정이가 놀랐잖아.”그제야 정신이 든 정보주는 여유를 되찾고 여전히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작은 소년, 박윤우를 바라보았다.그러자 박윤우는 재빠르게 한 걸음 물러섰다. 할머니, 절대 저 안아주지 마세요.”정보주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내가 무슨 할머니냐. 난 네 이모할머니란다.”“저에겐 외할머니 같은 사람 없어요.” 박윤우는 고개를 홱 돌렸다.정보주는 전혀 개의치 않고 오히려 더욱 즐거워하며 몸을 낮췄다. “그래도 난 네 이모할머니야. 네가 인정하든 말든 상관없단다. 자, 안아보자꾸나.”“싫어요.” 박윤우는 다시 한 걸음 물러났다.정수미는 가족 모두를 놀라게 할까 봐 정보주의 팔을 붙잡았다. “됐어, 그만해. 애가 낯을 가리잖아.”박윤우은 속으로 생각했다. ‘전 낯가림 같은 거 안 하거든요. 전 엄마를 지키러 온 거라고요. 안 그랬으면 애초에 따라오지도 않았어요.’정보주는 비로소 물러섰고 이번에는 시선을 돌려 유남준을 바라보며 말투를 다소 점잖게 바꿨다. “유 대표, 소문으로만 듣던 분을 뵙네요.”육남침은 가벼운 인사로 화답했다.“우리 민정이를 잘 부탁드려요. 절대 상처 주지 말아야 해요.” 정보주는 화제를 돌렸다.“물론입니다.” 유남준은 단호히 대답했다.이때 정수미가 나서며 말했다. “자, 이제 올라가서 이야기하자.”이들은 함께 위층으로 향했고 로비에 남은 직원들은 어리둥절했다. 역시 취업 면접을 보러 온 것이 아니라 정 대표의 친척들이었다.“아까 아이가 그분을 이모할머니라고 불렀으니, 저 여자가 대표님의 딸인 게 틀림없잖아?”“잃어버린 지 오래된 딸이라는 그 사람? 정말 예쁘고 기품 있어 보인다.”“그러게. 성격은 어떨지 모르겠네.”“윤소현보다는 낫기만 하면 돼. 만약 회사 경영권을 윤소현이 물려받으면 우린 큰일이거든.”직원들은 윤소현의 행동을 탐탁지 않아 했기에 박민정이 회사에 나타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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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5화

정수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말했다. “민정아, 이건 네가 받아야 해.”정보주는 곧바로 덧붙였다. “그래, 넌 언니의 친딸이잖아. 언니가 너한테 안 주면 누구한테 주겠어?”한편, 장 변호사는 감탄했다. 이렇게 막대한 재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걸 보면 연기를 하는 게 아니면 돈에 별 관심이 없는 게 분명했다.박민정은 속눈썹을 살짝 내리깔며 조용히 말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요. 제 어머니가 따로 있다는 게요. 모든 게 꿈같아요.”한수민이 비록 잘해주진 않았지만 그녀의 기억 속에서는 엄연히 ‘엄마'였다. 갑자기 새로운 사람이 어머니라고 하니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게다가 정수미가 건네는 막대한 재산은 오히려 큰 부담이었다.정수미의 눈가가 붉어졌다. “박민정, 아직도 엄마를 원망하니? 아니면 내가 소현이에게도 재산을 나눠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거야?”박민정이 당황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자 정수미는 급히 덧붙였다. “소현이는 내가 직접 키운 아이야. 널 사랑하듯 소현이도 사랑한단다.”박민정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이때, 유남준이 박민정의 마음속 억울함을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 “정 대표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세요. 제 재산은 곧 제 아내의 것이니 민정이는 돈이 부족하지 않습니다.”돈을 윤소현에게 나눠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다니.그는 박민정의 성격을 잘 알기에 그녀가 이런 걸로 절대 신경 쓰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현재 유남준의 자산은 정씨 가문보다 훨씬 많았다.정수미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그런 뜻이 아니야.”“그럼 무슨 뜻입니까?” 유남준이 날카롭게 되물었다. “오늘 이런 이야기를 하시려고 저희를 부르셨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 없습니다.민정이는 대표님 재산 따위에 관심 없습니다. 모두 다 윤소현에게 주셔도 상관없어요.”정수미는 이제서야 자신이 얼마나 엉뚱한 말을 했는지 깨달았다.“민정아, 난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그녀는 해명하려 했지만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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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6화

방관자는 오히려 더 잘 보게 되기 마련이다. 그녀들은 모두 여인으로서 정씨 가문에서 너무나 많은 일을 겪어왔다.정보주는 윤소현을 키운 적이 없었기에 보다 이성적으로 사태를 바라볼 수 있었다.“정말로 그런 일이라면 난 절대 소현이를 용서하지 않을 거야!” 정수미의 목이 마치 무언가에 찔린 듯 아릿하게 아파왔다. 그녀는 참을 수 없이 격렬하게 기침을 쏟아냈다. “콜록, 콜록...”“언니, 괜찮아?” 정보주가 걱정스레 묻자 정수미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이젠 익숙해.”그녀는 마음속의 불편함을 억누르며 다시 물었다. “넌 언제 돌아갈 생각이야?”정보주는 원래 박민정을 보고 난 후 바로 돌아가려 했었다. 저쪽에도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정수미의 모습을 보니 며칠 더 머물기로 결심했다.“나 요즘 특별히 급한 일도 없으니까, 진주시에서 언니랑 좀 더 시간을 보내려고.”“그래, 잘 됐네. 다음번엔 우리 같이 민정이를 찾아가서 확실히 이야기해 보자.”“응, 그러자.”...박민정은 유남준과 함께 차에 올라 돌아가는 길에서 차창 너머로 풍경을 바라보며 멍하니 생각에 잠겼다.그때, 박윤우가 조그마한 손을 뻗어 박민정의 손을 꼭 잡았다.“엄마.”박민정이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며 부드럽게 물었다. “왜 그러니?”“엄마, 속상해요?” 박윤우는 박민정의 감정을 예민하게 느꼈다.박민정이 고개를 저으며 거짓말했다. “아니야, 윤우야. 왜 그렇게 생각해?”박윤우가 한숨을 쉬었다. “엄마, 무슨 일이든 꼭 말해야 해요. 혼자 마음속에 담아두면 안 돼요. 알겠죠? 저랑 아빠는 엄마를 사랑해요. 오직 엄마만 사랑해요.”‘오직 엄마만.’그 다섯 글자가 박민정의 가슴을 따뜻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박윤우가 이렇게 어린 나이에 자신의 거짓말을 꿰뚫어 볼 줄은 몰랐다.박민정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미안해, 엄마가 거짓말하면 안 되는 건데. 사실 좀 속상하긴 했어. 하지만 지금은 괜찮아.”박윤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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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7화

고영란은 그 말을 듣고 얼굴빛이 약간 변했다.“두 아이가 이렇게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는데, 너희가 데려가겠다고? 안 돼, 난 절대 보낼 수 없어!” 그녀는 이제 나이가 들어 더욱 정이 많아졌다. 하지만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것도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렇게 하자, 너희 둘이 함께 이곳으로 이사 오는 게 어때? 그러면 우리 모두 한집에서 지낼 수 있잖니.” 고영란이 제안했다.유남준은 박민정이 이곳으로 이사 오는 것을 원치 않으리란 걸 알기에 단호히 거절했다.“안 돼요. 지금 민정이는 아직 기억을 되찾지 못해서 이곳에 오는 게 적절하지 않아요.”“왜? 넌 꼭 아이들을 데려가야만 속이 시원하겠니? 이 엄마가 속상해 죽는 꼴을 보고 싶은 거야?” 고영란은 얼굴 가득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내가 두 아이를 잘 보살피지 못했어?”유남준은 아이들이 있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거기엔 박민정이 아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조금만 더 기다리죠. 민정이가 기억을 되찾고 아이와 함께 살기를 원하면 데려가야 합니다.” 유남준이 단호하게 말했다.고영란은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반박할 수 없었다. “그래.”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결혼하고 나더니 엄마는 뒷전이네. 예전에야 두 아이를 잘 돌봐달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다시 데려가겠다고?”박민정은 저 멀리서 두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알 길이 없었다.그녀는 아이들과 친밀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두 아이는 그녀의 팔을 꼭 안고 서로 더 많이 놀아달라고 보채며 장난을 쳤다.시간이 흘러 어느덧 오후 여섯 시가 되니 유남우가 이곳으로 찾아왔다.그는 단번에 아이들과 함께 있는 박민정을 발견했다.아이들 틈에서 활짝 웃는 그녀를 보며 유남우는 순간 멍해졌다. 그렇게 환하게 웃는 박민정은 정말 오랜만이었다.“형은 어디 있어?” 그는 하인을 향해 물었다.“큰 도련님께서는 어르신 댁에 가셨습니다.” 하인의 대답에 유남우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후 박민정 쪽으로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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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8화

박민정은 두 아이가 졸린 기색을 보이자 즉시 보모를 불러 아이들을 재웠다.그녀는 박윤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윤우야, 우리 아빠가 돌아왔는지 보러 가볼까?”“좋아요!”드디어 유남우를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박윤우는 기뻐하며 대답했다.박민정과 아이가 자신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유남우의 표정은 복잡했고 속마음을 알 길이 없었다.이때 고영란이 2층에서 내려와 둘째 아들이 와 있는 것을 보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남우야, 어쩐 일이니? 다혜에 대한 소식은 들었니? 아이가 아직 중환자실에 있어. 시간 되면 한 번 가보렴.”고영란은 다혜가 자신의 친손녀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함께한 정이 있어 너무 매정하게 행동하고 싶지 않았다.유남우는 정신을 차리고 냉정하게 말했다. “어머니, 이제부터 저희는 윤소현과 그 아이와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저는 가볼 생각이 없습니다.”고영란은 순간 멈칫했다. “하지만...”“어머니, 언제부터 이렇게 마음이 약해지셨습니까? 예전 같으면 저보고 사생아를 보러 가라고 하셨을 리 없잖아요?”‘사생아’라는 단어가 고영란의 마음을 서늘하게 했다.그렇다. 젊었을 때의 그녀라면 이런 일을 알게 되자마자 윤소현을 집에서 내쫓고 그 대가를 치르게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고 그녀의 시선과 마음도 달라졌다.“됐어. 네가 가기 싫다면 그만두렴. 그런데 오늘 여기에 온 이유가 뭐니?”“별일 아닙니다. 그냥 밥 한 끼 먹으러 왔어요. 어머니, 설마 그것도 허락하지 않으실 건가요?” 유남우의 날이 선 말에 고영란은 심정이 착잡했다. 언제부터 착하고 순했던 둘째 아들이 이렇게 변한 걸까?예전에는 유남준이 반항적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유남우가 훨씬 더 반항적이었다.“무슨 소리니, 네가 밥 먹으러 온 걸 내가 왜 반기지 않겠니?”고영란은 웃으며 다가가 말했다.“이리 와서 엄마한테 안겨 보렴.”그러나 유남우는 한 발짝 물러섰다. “어머니, 전 이제 다 컸어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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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99화

“형수님, 오랜만에 집에 온 김에 좀 더 머물다 가세요. 어머니께서 늘 형수님을 그리워하십니다.” 유남우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는 이제 박민정을 ‘형수님’이라 불렀다. 마치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했으며 그가 박민정을 해외로 데리고 나갔던 일년의 시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박민정이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던 사이, 유남준이 대신 답했다. “오늘 밤 바로 돌아갈 거야.”유남우가 있는 이곳을 그는 결코 안심할 수 없었다.유남우는 한 입 음식을 먹으며 태연하게 물었다. “그렇게 서둘러 돌아가야 해? 아이들도 데려갈 거야?”언뜻 보면 그저 평범한 대화 같았다.“아이들은 당분간 내게 맡겨. 시간에게는 몸을 회복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 고영란이 자연스럽게 화제를 넘겼다.“그렇겠네요.” 유남우는 고개를 숙인 채 식사를 이어갔고 더 이상 묻지 않았으나 시선이 가끔씩 박민정을 향했다.이에 박민정은 불편함을 느꼈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배가 불러서 먼저 들어갈게요. 천천히 드세요.”“이렇게 조금만 먹고 가려고?” 고영란은 걱정스럽게 물었다. “음식이 입에 안 맞는 거야, 아니면 몸이 좋지 않은 거니?”“아니에요, 정말 배가 불러서 그래요.”박민정은 짧게 대답한 뒤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유남우도 곧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유남준은 금방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고 그 역시 식사를 멈추고 젓가락을 내려놓은 뒤, 빠르게 유남우를 뒤쫓았다.고영란은 가족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모습을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어쩐지 오늘따라 다들 식욕이 없네.”박민정과 유남우가 사라진 자리에서 유일하게 남은 사람은 그녀와 박윤우뿐이었다.박윤우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할머니, 어른들 신경 쓰지 마세요.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잖아요. 저희라도 잘 먹고 건강해야죠.”“이 녀석, 하하하.”고영란은 그의 말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문득 궁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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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00화

유남우는 밖으로 나와 차에 올랐다.차 안에는 이미 홍주영이 타고 있었고 유남우를 보자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빨리 돌아오신 겁니까?”원래 유남우가 오늘 돌아온 이유는 고영란을 만나 고씨 집안과의 협력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그는 미간을 손으로 눌러 지그시 마사지하며 말했다. “굳이 어머니와 이야기할 필요 없어. 어머니는 항상 우리 형만 편들었어. 차라리 고현문을 찾아가는 게 낫겠지.”홍주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알겠습니다.”그녀의 기억 속에서 고영란은 유남우에게도 유남준과 다르지 않은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럼에도 유남우가 이렇게까지 생각하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홍주영은 운전사에게 차를 고씨 집안으로 몰라고 지시했다.고현문은 성격이 괴팍하고 폭력적이기로 유명했다. 과연 그가 유남우의 제안을 받아들일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그러나 유남우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이미 고현문의 약점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는 눈을 감고 잠시 쉬려 했지만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고 머릿속에서는 자꾸만 박민정과 그녀의 가족이 떠올랐다.본래 그 따뜻하고 화목한 풍경은 자신의 것이어야 했는데 이제는 유남준에게 그 모든 것이 돌아갔다.유남준은 이미 모든 것을 가졌는데 왜 굳이 자신의 여자까지 빼앗으려 하는가?그는 손을 꽉 쥐었고 관절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힘이 들어갔다.마침 그때, 홍주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그녀는 유남우가 자는 줄 알고 전화를 받지 않았지만 곧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유남우는 눈도 뜨지 않은 채 낮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받아. 괜찮으니까.”“네.”홍주영은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세요, 할머니?”“민재가 이미 잘못을 뉘우쳤어. 주영아, 너도 이제 어린애처럼 굴지 말고 그 애를 다시 받아 줘야지.” 노인의 목소리는 엄격한 듯했지만 속뜻은 애원에 가까웠다.홍주영은 피곤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답했다. “할머니, 저와 그 사람은 정말 맞지 않아요. 이제 그만 이으세요.”“너는 매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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