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조은혁은 끝까지 듣지 못했다.그는 마음속에 진시아를 품고 바쁘게 걸어 나갔다. 자신이 오랫동안 기대했던 아기가 이미 어머니의 뱃속에서 요절했다는 것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그렇게 조은혁은 노기를 띠고 떠났다.한편, 박연희는 홀로 유산의 아픔을 겪고 있었다. 그녀는 휘청거리는 몸을 애써 바로잡으며 아랫배를 감싸 안은 채 땅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지는 피가 서서히 짙은 카펫을 붉게 물들이는 것을 묵묵히 바라보았다.아이러니하게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은혁은 그녀를 껴안고 말했었다.“연희야, 우리 앞으로 잘 지내자.”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조은혁은 진시아 때문에 그녀의 뺨을 때렸다.그의 약속은 사실 줄곧 이토록 저렴했다.아이는 여전히 그녀의 몸을 벗어나고 있다.박연희는 고통을 참기 힘들어 몸을 움츠리고 벽을 짚으며 조금씩 계단 어귀로 몸을 옮기며 나지막이 장씨 아주머니를 불렀다.“아주머니... 아주머니...”마침 아래층에 있던 장씨 아주머니가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보니 2층에 서 있는 박연희는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녀의 치마는 온통 피투성이였다.그 장면을 본 장씨 아주머니는 당장이라도 혼이 다 날아갈 것만 같았다.그녀는 다급히 올라가 박연희를 부축하며 안달복달 울음을 터뜨렸다.“사모님, 사모님... 왜 그러세요!”그러자 박연희는 참담하게 웃으며 마지막 힘을 다해 입을 열었다.“기사 불러서 병원에 데려다줘요. 아이가 유산됐어요.”...같은 시각, 조은혁은 차를 몰고 진시아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향했다.수수한 병실 안, 생기가 없는 듯 누워있는 진시아는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자궁을 적출하여 아랫배도 텅 비어 있었다.그녀는 더 이상 완전한 여자가 아니다.조은혁이 병실에 들어서자 진시아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예전의 그 아리따운 눈에는 강한 원한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온 힘을 다하여 다 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박연희, 어쩜 그렇게 독할 수 있어요?”“은혁 씨... 저 대신 복수해 줘요. 당신은 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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