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온 내 남편의 그녀의 모든 챕터: 챕터 81 - 챕터 90

1206 챕터

제81화

윤아는 침묵했다.그녀 맞은쪽에 앉은 소영은 가슴이 쿵쾅거리면서도 겉으론 태연자약한 척했다. 실은 소영도 잘 몰랐다. 아까 한 말들이 윤아를 겁먹게 할지 말이다.그녀는 윤아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잘 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윤아의 자부심이 대단히 높다는 점이다.그래서 소영은 이쪽으로 손을 대어 도박할 수밖에 없었다.계속 침묵하고 있는 윤아를 보는 사이, 탁자 아래에 있는 손은 이미 땀으로 가득했다. 소영은 간신히 입을 열어 말했다.“왜요? 설마 거절하겠다는 건 아니죠?”이 말을 듣자, 윤아는 덤덤하게 소영을 한눈 훑어보고는 물었다.“소영 씨 지금 많이 긴장한 것 같아요.”“내가 언제 긴장했다고. 난 그냥...”윤아에게 정곡을 찔린 소영은 도둑이 제 발 저린 것처럼 버럭 성질을 낼 뻔했다. 그녀는 할 수 없어 간신히 브레이크를 밟으면서 말을 끊었다. 잠시 후, 진정된 소영은 침착하게 말했다.“그래요. 천천히 고민해 봐요.”이때가 되어서야 소영은 아까 윤아가 말한 것처럼 빨리 끝내기를 원했다. 하지만 윤아는 아직도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사실 이 합의서를 체결하든 아니면 체결하지 않든 그녀에겐 별 차이가 없었다. 이 합의서를 체결하지 않아도 첫 번째 조항인 출국 및 오 년간 귀국하지 말 것 외, 모두 그녀가 원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첫 번째 조항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어디에 정착할지를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수현과 멀리 떨어질수록 좋다는 점이다.“어때요?”비록 소영이 제 입으로 천천히 고민하라고 했지만, 윤아가 너무 오래 생각하는 바람에 소영은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어 뜻을 물었다.윤아도 일부로 소영의 심기를 건드리고 싶었는지, 참지 못하고 한마디 했다.“긴장하지 않는다면서요. 왜 이렇게 서둘러요? 이 합의서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윤아가 사인하기 전까지 소영은 그저 최선을 다해 입꼬리를 올려야 했다.“그럴 리가요. 윤아 씨 그냥 천천히 읽어봐요. 내가 조금 마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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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이 말을 듣자, 윤아는 오히려 웃었다.“그래요? 그런데 지금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건데요.”“두려워한다니요!”소영은 윤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수현 씨 생명의 은인이라면서요. 그런데 수현 씨에 대한 믿음이 얼마나 없으면 나더러 이런 합의서에 사인하라고 하겠어요.”순간, 소영의 얼굴엔 독기가 스쳤다. 윤아가 생명의 은인이고 뭐고를 직접 입에 담을 때면 소영은 피가 말라 드는 것 같았다. 윤아가 그 말을 하면서 잃어버린 기억이라도 되찾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화를 억누르고 있어서 그런지 평소에 평온하면서도 아름다운 이목구비는 살짝 일그러져 있었다.“윤아 씨가 기어코 이 아이를 낳겠다 하지만 않았어도 내가 왜 이걸 준비했겠어요.”이 말을 마친 소영은 또 다시 부드러운 표정을 지으며 윤아에게 말했다.“아무튼 나 믿어봐요. 절대 윤아 씨 엿 먹이는 일을 없을 거니까.”윤아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오늘 얼굴이 바뀌는 ‘공연’을 보게 될 줄은 말이다.전에는 몰랐으니 망정이지 오늘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나니 정말 감탄을 금할 길이 없었다. 소영의 얼굴이 바뀌는 속도가 가히 마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이렇게 생각한 윤아는 입꼬리를 끌어당기며 말했다.“그럼 소영 씨도 나 믿어봐요. 합의서에 사인하지 않더라도 소영 씨가 말한 일들, 내가 다 해낼 테니까.”“윤아 씨!”소영은 윤아가 정말 단호하게 사인하지 않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만약 윤아 씨가 사인하지 않으면 나중에 이 조항들을 지킬지 말지를 누가 알겠어요?”“사인해도 꼭 지킬 거란 보장은 없어요. 내가 정말 뭘 하려고 한다면 합의서에 적힌 위약금쯤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소영은 윤아를 쏘아보며 물었다.“도대체 뭘 하겠다는 거예요? 아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도 난 허락했어요. 그러니까 윤아 씨도 사인이라도 해서 날 안심시켜 주면 안 돼요?”윤아는 이 말을 듣자, 눈썹을 찡그렸다.“강소영 씨, 알아둬야 할 게 있어요. 아이 일은 소영 씨가 허락해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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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이 말을 마친 윤아는 더는 소영과 시간을 낭비하기 싫어 물건을 챙기곤 빠르게 카페를 떠났다.윤아가 떠난 후, 주원이라는 남자는 소영의 맞은 쪽에 앉은 채, 윤아에 관한 것을 시시콜콜 캐어묻기 시작했다. 윤아는 당연히 이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윤아는 카페에서 나온 뒤, 집에 돌아가는 대신 길옆에 서서 오고 가는 차들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가슴을 짓누르고 있던 커다란 돌멩이가 드디어 사라진 느낌이었다.윤아는 참지 못하고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시라도 빨리 소영에게 진 신세를 갚았다고 알려드리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전화는 계속 울리고 있었지만, 받는 사람이 없었다.시간을 한눈 본 후, 아버지가 아마 일 하느라 바쁘실 거라고 짐작하고는 다시 전화하지 않았다.남은 시간 동안, 윤아는 요양원에 있는 김선월을 보러 갔다. 소영과 얘기를 나누느라 시간이 지체된 바람에 평소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요양원에 도착하게 되었다.윤아가 도착한 것을 보자, 간병인은 말을 걸어왔다.“사모님, 오늘은 평소보다 반 시간 늦으셨네요. 어르신께서 오래 기다리셨어요.”이 말을 들은 윤아는 살짝 죄책감이 들었다.“약속이 있어서 조금 늦었어요.”“빨리 들어가 보세요.”“네.”윤아는 빠른 걸음으로 병실에 도착했다.간병인들은 마침 다 밖에 나갔고 병실엔 선월과 윤아만 남았다. 윤아가 병실에 들어가려던 순간, 그녀는 발걸음을 우뚝 멈췄다. 선월이 사진 한 장을 손에 들고는 넋을 잃은 채 뚫어져라 보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비록 거리를 두고 있어 선월의 옆모습만 간간이 보였지만 윤아는 선월에게서 전해져오는 무거운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할머님...”윤아는 나지막하게 부르며 들어갔다. 이 소리를 듣고 문득 정신을 차린 선월은 윤아에게로 시선을 돌렸는데, 얼굴에 담겨있던 슬픔은 이미 사라져있었다.“어머, 윤아 왔구나.”윤아는 선월 앞에 걸어가서 죄책감 담긴 목소리로 말했다.“죄송해요, 할머님. 오늘 약속이 잡히는 바람에 이제야 뵈러 왔어요. 오래 기다리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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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답장을 보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수현이 그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점심에 들를게.」이걸 본 윤아는 살짝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안 바빠?」수현: 「바빠. 지금도 회의 중이고. 시간 내서 갈게.」수현의 답장을 보고 윤아는 더는 묻지 않고 알겠다고 했다.수현이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내서 선월을 보러 오겠다는데, 윤아가 더 할 말이 없었다.-회의가 드디어 끝났다.회의실에서 거의 몇 시간 동안 수현의 무시무시한 아우라와 날카로운 말투에 시달린 회사 고위층 직원들은 사색이 되어 밖으로 걸어나가 서로를 바라보며 동정의 눈길을 건넸다. 그러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멋쩍게 한숨을 내쉬고는 자리를 떴다.수현은 넥타이를 정리하고는 손을 들어 손목시계를 한눈 보았다. 지금쯤 떠나면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이 적당할 거라 생각했다.수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회의실에서 걸어 나가는데,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찰랑거리는 여자가 그를 불렀다.“수현 씨.”여자의 목소리가 어찌나 부드럽고 맑은지, 지나가던 직원들마저 가던 길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강소영이었다.수현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는 소영이 도시락을 손에 든 채 그에게로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그러자 원래 한없이 차가웠던 수현의 눈동자엔 부드러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는 발걸음을 옮겨 소영에게로 다가갔다.“무슨 일로 여기에 왔어?”기타 고위층 직원들도 아직 있었는지라 소영은 조금 쑥스러워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수현 씨 요즘 되게 바쁘잖아. 그래서 잘 챙겨 먹지 않는 것 같아서 내가 오늘 특별히 수현 씨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만들어왔어.”주위에서 작은 감탄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소영의 하얀 두 볼엔 핑크빛이 물들었다. 그녀는 수줍다는 듯 고개를 푹 숙였다.주위의 사람들도 참지 못하고 멈춰서서 이 장면을 구경했다.“어휴, 대표님. 오늘 점심 맛있는 거 드시겠네요.”“그러게요. 역시 우리 대표님, 인기 되게 많아요.”수현의 비위를 맞추려고 했지만 그런데 웬걸,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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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어, 어?”소영은 자기의 귀를 의심했다.이건, 그녀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소영은 수현을 위해 점심을 만들려다가 다친 손가락을 그에게 보여주면서 그가 감동하고 자신을 안쓰러워하는 그런 장면을 상상했다. 그러면서 둘은 사무실에서 자연스레 더 친밀한 관계로 되는 것이었다.지금처럼 이런 상황이 아니라...소영은 이대로 포기하기 싫어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수현 씨, 무슨 약속인 거야? 만약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지 않는다면 나 사무실에서 수현 씨 기다리고 있을게.”“소영아, 미안해. 오래 걸릴 것 같아. 그러니까 먼저 돌아가.”“나...”소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조수는 그녀의 앞에 다가가 말했다.“소영 아가씨, 갑시다.”“...”소영은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는 듯 아랫입술을 꼭 깨물고는 붉어진 눈시울로 고개를 돌려 수현을 바라보았다.‘이러면 어때? 설마 모른 척하겠어?’하지만 소영의 예상과는 반대로 수현은 아예 그녀의 붉어진 눈가를 보지 못한 듯했다. 조수가 다가왔을 때, 그는 이미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급한 일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소영은 제자리에 서서 점점 멀어지다가 사라지는 수현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그러던 중, 조수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아가씨, 가실까요?”소영은 수현의 조수를 힐끔 보았는데, 그는 지금 아무 표정 없는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눈빛이나 말투는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았다. 그녀를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았다.그녀의 느낌은 정확했다. 수현의 이 조수는 확실히 소영을 좋아하지 않았다.필경 모든 회사 사람이 수현과 윤아의 관계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소영이 하필 이때 도시락을 들고 회의실 앞에 와서 수현을 기다렸다.정말이지 무슨 속셈인지 뻔히 알렸다.조수는 오랜 시간 동안 윤아와 지내면서 윤아에 대한 호감이 대단했다. 그는 윤아가 업무처리 능력도 뛰어나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친절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소영이 이러는 것을 보기만 해도 짜증이 났다.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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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아무 이유 없는 대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아악! 화 나서 죽겠어!’결국 조수는 소영을 집까지 데려다줬다.-요양원.수현이 도착했을 때, 시간은 예상했던 것과 비슷했다.여기까지 올 때 답답했던 심정은 요양원에 들어서서부터 윤아가 선월의 다리에 엎드린 모습을 본 후, 신기하리만치 싹 풀리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발걸음 소리를 들은 선월은 수현을 향해 시선을 돌리면서 수현과 허공에서 눈을 맞췄다.선월은 수현에게 조용하라는 손짓을 했다. 이걸 본 수현은 그제야 윤아가 선월의 다리에 기대어 잠든 것을 발견했다.선월의 다리가 불편할까 봐 수현은 앞으로 다가가서 허리를 굽혀 부드럽게 윤아를 들어서 안고는 옆의 작은 침대에 눕혔다.깊은 잠에 빠져서 그런지 윤아는 이렇게 안기고도 전혀 깰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비비기까지 했다. 그러고는 품속의 이불을 끌어안고는 다시 꿈나라로 향했다.수현은 이런 윤아를 보며 결국은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부드러운 볼을 살짝 꼬집었다.‘자는 모습도 진짜 귀여워.’탱탱한 촉감에 홀린 수현은 또 한 번 참지 못하고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 저쪽 손을 내밀어 계속 꼬집으려고 할 때 선월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그만 해. 꼬집어서 깨울 작정이냐.”이 말을 듣자, 수현은 동작을 멈추면서 민망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할머니, 그럴 리가요.”선월은 수현더러 자신의 휠체어를 밀고 나가라고 했고, 수현도 그대로 따랐다.방을 나가서야 선월은 평소 목소리로 수현에게 말했다.“윤아가 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하더니 절반도 못 듣고 잠들었지 뭐니. 내가 너무 지루하게 들려줘서 그런지 아니면 요즘 잘 자지 못해서 그런지 아주 피곤해 보이더구나.”“요즘 제대로 쉬지 못해서 그랬을 거예요.”수현은 말했다.“다크서클이 심하더군요.”아까 윤아의 볼을 꼬집을 때 발견했다. 윤아의 다크서클이 평소보다 더 심하다는 것을. 피부가 원래 하얗기 때문에 다크서클이 조금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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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이야기...‘아... 그러네.’윤아는 생각이 났다. 그녀는 선월이 젊었을 적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사실 되게 재밌게 듣고 있었는데 나중엔 이상하게도 졸음이 밀려왔었다. 하지만 선월에게 말하기는 조금 미안해서 점점 내려오는 눈꺼풀과 흐릿해지는 정신을 간신히 지탱하며 계속 들었다.언제 잠든 건지는 그녀 자신도 잘 몰랐다.여기까지 생각한 윤아는 자책에 빠졌다.“나 일부러 잔 거 아니야. 할머님께서 날 나무라지는 않으셨어?”“할머니가 널 얼마나 아끼시는데. 그럴 것 같아?”수현은 윤아에게 요양원에 왔을 때부터 선월이 윤아를 깨우지 말라고 한 것까지 전부 알려주었다. 수현의 말을 들은 윤아는 눈을 내리깔며 옅게 웃었다.“하긴.”금방 깨서 그런지 윤아는 지금 살짝 순진해 보였다. 이런 윤아의 모습을 본 수현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두드렸다.“하루 종일 무슨 생각하고 다니는 거야.”윤아는 잠시 멈칫했다. 아까는 금방 잠에서 깼는지라 살짝 흐리멍텅했는데 지금은 순간 정신이 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이마를 가볍게 만지면서 수현을 어리둥절하게 바라보았다.사실 가끔 수현의 어떤 특정적인 행동은 윤아를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심지어 수현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좋아하지 않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이런 착각은 이 년간 종종 나타났지만 이럴 때마다 윤아는 금방 현실을 알아차리곤 했다.하지만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몸이 하나로 된 후로부터 윤아는 점점 이 감정 속에 푹 빠지면서 영원히 수현과 함께 할 거라는 믿음이 들었다.그러나 현실은 항상 참혹했고 그녀에게 고된 매를 주었다.강소영이 돌아오기만 하면 수현의 선택지는 언제나 그녀 뿐이었다. 더는 윤아의 자리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없었을 수도 있다.여기까지 생각한 윤아의 마음과 눈빛은 순간 차가워졌다. 그녀는 손을 내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런 윤아를 본 수현의 웃음도 조금 옅어졌다. 비록 윤아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수현은 그녀 주위의 기류가 순간 서늘해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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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모든 것을 정리할 때 선월이 평정심으로 받아들이기를 바랄 뿐이다.시간이 지나 선월이 검진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수현에 관해 물어보았는데 윤아가 회사에 돌아갔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후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고는 이렇게 말했다.“윤아 네가 여기 있지만 않았어도 저 녀석 점심시간에 오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들은 윤아는 잠시 멍해 있었다.‘나 때문에 특별히 들른 거라고?’하지만 금세 이 생각을 버렸다. 수현이 자신을 위해 들리든 말든 이젠 중요하지가 않았다. 어차피 이혼으로 끝날 텐데, 그 과정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수현은 불쾌하다는 기색이 역력한 채 회사에 돌아왔다.길에서 너무 화를 억누른 나머지 가슴이 답답해 난 수현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검은색 슈트 외투를 벗어 소파에 힘껏 던졌다.수현의 뒤를 따라 들어온 조수는 깜짝 놀랐다. 그가 들어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을 때 문득 뭔가를 떠올리고는 원래 자리에 서 있기로 결심했다.오랜 시간이 들어서야 평정심을 되찾은 수현이 머리를 돌렸을 때 사무실 옆에 서 있는 조수를 보고 불쾌하다는 듯 물었다.“여기서 뭐 합니까?”조수는 두려움에 떨며 머리를 한껏 움츠린 채 손에 들고 있던 도시락을 탁자에 올려놓았다.수현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이게 뭡니까?”짜증이 날 대로 나 있었다.“강소영 아가씨께서 대표님을 위해 만들어 주신 사랑의 도시락입니다. 집까지 모실 때 제가 부주의한 틈을 타서 손에 쥐어주셨습니다. 대표님께 드리라고 하셨어요.”이 말을 할 때, 조수는 상당히 불쾌했다.소영을 집까지 데려다주고 떠나려던 참, 차에서 내린 소영이 갑자기 도시락을 그의 손에 쥐여주면서 먹으라고 말한 뒤 바로 도망갔다. 그래서 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이미 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준 바람에 버릴 수도 없고 해서 조수는 결국 다시 회사에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사랑의 도시락?수현은 화가 난 나머지 점심도 먹지 않았다. 원래 요양원에서 선월에게 점심을 대접한 후, 윤아가 깨어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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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엄청 한가한가 봅니다. 아니면 업무가 배달로 바뀌기라도 했습니까? 바꿔...”계속 말하려다가 수현은 멈칫했다. 조수가 한 말 중 포인트를 잡았기 때문이다. 바로 심 비서 세글자였다.“아까 뭐라고 했습니까? 심 비서요?”조수는 어리둥절하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끄덕였다.“네. 배달하는 사람이 그렇게 말했습니다.”조수가 이 말을 마치자마자 수현은 윤아가 보낸 메시지를 받았다.「할머님께서 수현 씨 아직 점심 먹지 않았다고 하시더라. 그래서 방금 회사로 수현 씨 좋아하는 거 시켰어. 레스토랑 쪽은 이미 배달했다고 하던데, 받았어?」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던 수현은 이 메시지를 보고 나서 얼굴빛이 그나마 나아졌다. 하지만 여전히 퉁명스럽게 중얼거렸다.“날 피할 땐 언제고... 마음에도 없는 행동 하네.”말을 마친 수현은 조수에게 눈짓했다.“이리 줘요.”“네.”조수는 손에 들도 있던 봉지를 탁자에 놓았는데 그 옆엔 마침 소영이 만든 사랑의 도시락이 놓여있었다. 이 장면이 약간 거슬렸던 조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수현에게 말했다.“대표님, 아까 강소영 아가씨가 만든 도시락을 저에게 준다고 하셨죠?”“네.”수현은 점잖게 대답했다.조수는 속셈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하지만 제가 혼자 먹기엔 무리인 것 같습니다. 그러니 사무실 기타 사람들과 나눠 먹어도 될까요? 음식 낭비는 되도록 면하는 게 좋을지 싶습니다.”이 말을 듣자, 수현은 눈썹을 치켜올렸다.이런 수현의 모습을 본 조수는 수현이 거절할 거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로 이때 그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미 해결하라는 권한을 줬으면 알아서 할 것이지, 이 작은 일도 물어봅니까?”“알겠습니다.”수현이 후회라도 할까 봐 조수는 당장 도시락을 들고 밖에 나갔다.-거의 퇴근할 때쯤, 소영은 또다시 회사에 왔다. 집으로 돌아간 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였다.점심을 먹을 시간에 무슨 약속이 있단 말인가.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현이 자신을 홀대했다는 점이 내내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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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여기까지 말한 성민은 잠시 회상하다가 말을 이었다.“다들 맛있다고 했습니다.”“뭐라고요...”성민의 이 얘기를 들은 소영은 더는 웃음을 유지하기 힘들었다.그녀는 원래 이 도시락을 성민에게 주려고 했었다. 수현이 바쁠 거라 생각되어 조수에게라도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싶었다.하지만 점심때 수현이 돌아왔다. 심지어 그녀가 만든 음식을 먹지 않고 조수와 사무실 직원들에게 나눠 주었다.소영은 순간 자신의 성의가 짓밟혔다고 느껴졌다.“아가씨, 왜 그러십니까?”성민은 앞에 서 있는 소영을 보며 물었다.“괜찮으십니까?”이 말을 듣자, 소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간신히 웃으며 머리를 흔들었다.“괜찮아요. 그러면 전 먼저 수현 씨 보러 갈게요.”“네.”소영이 사무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성민은 얼굴의 웃음기를 사악 지웠다.똑똑--“들어오세요.”사무실에서 들려오는 차가운 소리.문을 열고 들어가니 서늘한 얼굴로 사무실 책상에 앉아 있는 수현이 눈에 안겨 왔다.일하고 있는 수현은 특별한 아우라를 풍기며 더 잘생겨 보였다. 검은색 셔츠 깃이 살짝 흐트러졌고 넥타이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으며 단추도 두 개 풀려 매끈한 목선을 드러냈다.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그의 눈동자는 매우 짙었고 아무 감정도 엿볼 수 없었던 평소와는 달리, 지금의 그는 더 날카로웠고 매력적이었다.소영은 늘 알고 있었다. 수현의 외모는 탁월했고 흠잡을 곳이 없었다. 그리고 완벽한 몸매에 어마어마한 집안까지 더했으니, 그야말로 완벽했다.이런 남자야말로 소영의 마음에 꼭 들 수 있었다.소영은 저도 모르게 제자리에 서서 넋을 잃은 채 수현을 바라보았다. 들어온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눈치챈 수현이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었다. 소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그를 향해 걸어갔다.“소영아.”일 처리를 하면서 찡그러졌던 눈썹은 소영을 보자 많이 펴졌다.“웬일이야?”이 말을 할 때, 수현의 주위에서 맴돌고 있던 차가운 공기는 점점 누그러졌다.소영은 옅게 웃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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