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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선 이혼, 후 집착: Chapter 1561 - Chapter 1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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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1화

“정말 예상도 못 했어. 분명히 조치를 다 했는데 말이야.”차설아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하지만 이미 찾아온 생명이니 기왕 이렇게 된 거 잘 키울 생각이었다.“이건 운명이야! 아무리 막아도 올 아이는 오게 돼 있다니까! 하하하! 그런데 말이야, 성 대표, 또 아빠가 된다는 걸 알면 얼마나 좋아할까?”배경윤이 진심으로 차설아를 축하하며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좋아할 게 뭐가 있어... 사실, 지금 우리 상황은 아이를 가질 때가 아니야.”차설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며 깊은 고민에 빠졌다.지금은 그녀와 성도윤에게 가장 큰 압박이 몰려오는 시기였다.정확히 말하면, 성도윤에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밖으로는 성대그룹 대표 자리를 확고히 다져야 했고 안으로는 앞을 보지 못하는 그녀를 돌봐야 했다.그런 상황에서 아이까지 생긴다면 그는 혼자서 네 사람의 책임을 짊어져야 했다.이 부담은 단순히 경제적인 문제가 아니었으며 감정적인 부담이 더 컸다.사랑하는 사람이 늘어날수록 적들에게 잡힐 약점도 많아지는 법이었고 지금의 그들에게는 너무도 위험한 일이었다.“너무 깊게 생각하지 마. 이미 온 생명인데, 어쩌겠어? 애초에 달이랑 원이 가졌을 때도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니었잖아? 그런데 지금 얼마나 사랑스럽니? 후회해?”“당연히 후회 안 해.”“그럼 됐잖아!”배경윤이 단호하게 말했다.“게다가 이번에 태어날 아기가 달이랑 원이 장점만 쏙 빼닮았다고 생각해 봐! 완벽하지 않겠어?”“그러게... 그러면 정말 좋겠다.”차설아는 두 아이를 떠올리며 배 위에 손을 얹었다. 이제야 이 갑작스러운 생명이 조금씩 기대되기 시작했다.“임신 초기에 필요한 게 뭐가 있을까? 칼슘 보충해야 하나? 엽산도 챙겨야 하고, DHA도 먹어야 하지?”배경윤이 이미 휴대폰을 꺼내 온라인 쇼핑몰에서 폭풍 주문을 하기 시작했다.마치 자신의 아이처럼 뱃속 아이를 챙기며 태어나기도 전에 애지중지하는 모습이었다.“근데 이번 아기는 아들일까, 딸일까? 아니면 또 쌍둥이일 수도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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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2화

“아무것도 아니야.”차설아는 배경윤의 성격을 잘 알기에 당장은 이 이상한 점을 그녀에게 알리지 않기로 했다.현이는 최근 차설아를 돌보기 위해 고용된 가정부였다.성실하고 부지런한 성격에 차설아는 그녀의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함께 지내며 그녀가 꽤 선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렇다면 도대체 왜 거짓말을 한 걸까?’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결국 배경윤을 적당한 이유로 돌려보낸 후, 현이를 방으로 불렀다.“부르셨나요?”현이는 부엌일을 마치고 손을 깨끗이 닦은 뒤 서둘러 방으로 올라왔다.일할 때만큼은 누구보다 꼼꼼하고 성실한 그녀였기에 차설아도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오늘 제 커피에 설탕을 넣었다고 하던데요?”차설아는 빙빙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을 꺼냈다.“아, 그거요? 제가 착각했어요. 그건 설탕이 아니라 프림 같은 거예요.”현이는 이미 배경윤이 그 일을 차설아에게 전할 거란 걸 예상하고 있었다.그래서 부엌에서 일하면서도 미리 변명할 내용을 준비해 두었고 심지어 실제로 ‘커피 첨가제’라고 할 만한 것까지 마련해 두었다.“그래요? 그렇다면 다행이고요.”차설아는 현이의 태연한 반응을 보고 오늘은 더 캐물어 봐야 소용없겠다고 판단했다.그래서 더 깊이 파고들지 않고 대화를 마무리했다.“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없으면 저는 이만 가볼게요. 오늘 할 일이 많아서요.”현이는 서둘러 방을 나가려 했다.예전에는 차설아와 대화할 때 항상 친근하게 수다를 떨기도 했지만 오늘따라 그녀의 태도는 어딘가 달랐다.마치 빨리 이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그 반응이 차설아에게는 더 의심스러웠다.차설아는 천천히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맛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은 예전과 달랐고 이제 더 이상 그녀를 완전히 믿을 수 없을 것 같았다.“우리가 현이 씨한테 그래도 잘해줬다고 생각했어요.”차설아가 커피잔을 내려놓고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네? 아, 네! 설아 씨도 대표님도 그리고 민이 이모도 저한테 정말 잘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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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3화

차설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단호했다.의심이 가는 사람을 쓰지 않는다는 게 그녀의 원칙이었다.현이가 어떤 사정을 가지고 있든, 최소한 지금 그녀를 계속 곁에 둘 수는 없었다.“설아 씨, 제발 절 내쫓지 말아 주세요! 제 월급을 안 주셔도 괜찮아요. 하지만 제발, 제발 저를 쫓아내지만 말아 주세요. 만약 제가 쫓겨나면... 저희 엄마의 목숨이 위험해져요!”현이는 털썩 바닥에 무릎을 꿇더니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그 여자는 계획이 실패하면 평생 다시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라고 협박했었다.그렇기에 현이는 절대 이 집에서 쫓겨날 수 없었다.“그래서 누군가 현이 씨 어머님을 인질로 잡고 나를 해치라고 협박한 건가요?”차설아는 중요한 포인트를 짚으며 예리하게 물었다.“그게...”“다시 말하지만, 지금 말해 주면 제가 도울 방법이 있을 수도 있어요.”차설아의 차분한 말에 현이는 한참 망설이다가 조심스럽게 집 밖을 살폈다. 그 여자가 근처에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이를 악물며 말했다.“며칠 전, 한 여자가 저를 협박했어요. 그 여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얼굴도 몰라요. 항상 가면을 쓰고 있었고 굉장히 신비롭고 무서운 사람이었어요.”“매일 설아 씨가 마시는 음료에 약을 한 봉지씩 넣으라고 했어요. 총 열 봉지를 넣어야 하는데 오늘이 다섯 번째였어요. 만약 계획이 실패하면 그 여자가 저희 엄마를 죽이겠다고 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설아 씨, 정말 죄송해요!”“역시나 그랬군요.”차설아는 주먹을 살짝 쥐며 생각에 잠겼다.‘이런 짓을 할 사람이 누구일까? 여자라면... 설마 서은아?’하지만 서은아는 오히려 정면으로 공격하는 스타일이었고 이렇게 몰래 음모를 꾸미는 수법은 그녀답지 않았다.‘그렇다면... 대체 나와 어떤 깊은 원한이 있는 여자가 이런 수고를 들여 날 해치려 하는 걸까?’“설아 씨, 저를 신고하세요. 제가 이런 짓을 한 건 범죄라는 걸 알아요. 저도 죄책감에 너무 괴로워요!”현이는 완전히 무너진 듯 흐느끼며 말했다.차설아에 대한 죄책감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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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4화

성씨 가문 대저택.성주혁의 건강은 이미 심각하게 악화된 상태였다.그는 하루 종일 병상에 누워 지내야 했고 영양 수액 없이는 버틸 수조차 없었다.그날 밤, 그는 성도윤과 성진을 자신의 병상 앞으로 불렀다.“도윤아.”성주혁이 쇠약한 목소리로 오랜만에 만난 손자를 보며 손짓했다.“이리 와, 할아버지한테 가까이 오너라.”“할아버지!”병약한 모습의 할아버지를 보며 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졌다.“네 어머니한테 들었다. 요즘 설아 곁에 붙어 있다고 하더구나. 이제야 내 손자가 사람 구실 좀 하는구나...”성주혁이 힘없이 손을 뻗어 손자의 손을 꼭 잡고 이미 노쇠해진 눈빛에도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그는 그동안 마음속에 가장 걸렸던 사람이 차설아였고 가장 미안해했던 사람도 그녀였다.“예전에 말이다, 내 평생 전우이자 가장 친한 형님이 자신의 손녀를 내게 맡기면서 반드시 손녀를 행복하게 해줘야 한다고 부탁했었지.”“난 굳게 약속했지만 넌 내 기대를 저버렸고 그 애한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줬는지 아느냐? 도대체 몇 번을 울렸는지,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이제 와서 그 형님을 볼 면목이 있을지...”노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한평생 강직하고 떳떳하게 살아온 그였지만 차설아에게만큼은 크나큰 빚을 졌다고 생각했다.이제라도 두 사람이 다시 함께한다는 소식을 들으니 마음속 깊이 안도감이 들었다.“걱정 마세요, 할아버지. 이전엔 제가 철이 없었고 설아를 제대로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요. 제 남은 인생은 설아와 아이들을 지키는 데 바칠 겁니다.”성도윤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러자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성진은 피식 비웃음을 터뜨렸다.그는 지루한 듯 문가에 기대어서 있었다. 애초에 왜 노인이 자신을 부른 건지도 모르겠는데 성도윤의 고해성사를 들으니 더욱 어이가 없었다.“뭐가 그렇게 웃긴데?”성도윤이 뒤돌아보며 성진을 차갑게 노려봤다.평소라면 굳이 마찰을 빚고 싶지 않아 피했을 것이었다.그는 지금 더 중요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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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5화

그는 오직 두 사람이 화해했다는 것만 알았을 뿐, 차설아가 실명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했다.“할아버지, 아무 일도 아니에요. 성진의 그 입에서 좋은 말 나올 리 없다는 거 잘 아시잖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성도윤은 성주혁이 걱정할까 봐 모호하게 말하며 사실을 숨겼다.성진은 병상 앞까지 걸어가면서 비웃듯 말했다.“할아버지, 솔직히 말해서 형수님을 도윤이 형에게 맡긴 건 할아버지 인생에서 가장 큰 실수였어요. 예전엔 형수님의 마음만 다쳤지만 지금은 몸까지 상했습니다. 이 사실을 형수님의 할아버지가 알면 분명 눈도 감지 못하겠죠.”“닥쳐!”성도윤이 주먹을 꽉 쥐고 성진에게 명령했다.“그렇게 할 일 없으면 나가. 어르신 앞에서 그런 잔인한 말을 하지 말고.”“내가 잔인하다고?”성진은 콧방귀를 뀌며 비웃었다.“잔인한 짓을 한 건 내가 아니라 형이지. 난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뭐가 잔인하다는 거지?”두 사람은 팽팽히 맞섰고 한 치도 양보가 없었다.성진은 성도윤의 위선을 혐오했고 성도윤은 성진의 비열함을 역겨워했다. 사실 그들은 모두 차설아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었기에 더욱 날카롭게 맞섰다.“둘 다 조용히 해! 나는 아직 죽지 않았다!”성주혁이 깊이 숨을 들이마신 후 침대 머리에 기대어 안경을 더듬어 찾아 쓰고는 성진을 가리키며 물었다.“말해 봐라. 네 형수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냐? 왜 몸까지 다쳤다고 하는 거지?”“형수님은...”성진이 막 입을 열려는 순간, 성도윤의 날카로운 시선이 마치 칼날처럼 그를 향해 스치고 지나갔다.성진은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얼버무리듯 말했다.“형수님은 몇 년 동안 너무 도윤이 형을 그리워한 나머지 건강이 점점 안 좋아졌어요. 시동생인 저조차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라니까요. 그러니까 할아버지께서 형한테 좀 뭐라 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아내는 남편이 지켜줘야 하잖아요. 그가 지켜주지 않아도 형수를 쫓아다니는 남자들도 많다고요.”“그 말은 그나마 들을 만하구나. 도윤아, 너도 들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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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6화

성도윤은 할아버지의 말에 기분이 살짝 상했다.“할아버지, 도대체 성진이랑 무슨 이야기를 하시려고요? 저랑은 따로 얘기하신 적 없으시잖아요 그런데 성진이랑 얘기할 때 오히려 제가 나가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최근 며칠 동안, 성주혁은 유독 성진을 따로 남겨두고 은밀한 대화를 나누곤 했다. 성도윤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점점 소외되는 느낌이 들었다.‘나야말로 할아버지의 친손자인데, 어째서 할아버지는 마치 나를 경계하는 듯할까? 혹시 착각하신 게 아닐까?’“할아버지, 다시 봐보세요. 제가 친손자 성도윤이에요. 성진은 할아버지 동생분의 손자일 뿐이에요. 정말 성진이랑 단둘이 이야기해야 하려고 하시는 건가요?”그 순간 성도윤의 모습은 마치 어른에게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어린아이 같았다.“성진을 부른 게 맞아. 쓸데없는 말 그만하고 어서 나가거라.”성주혁은 성도윤을 재촉하며 방을 나가라고 손짓했다.결국, 성도윤은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고 방을 나섰다.성진은 태연하게 노인의 병상 앞으로 다가와 의자를 하나 끌어당겨 앉았다. 그리고 반쯤 웃는 표정으로 초췌해진 노인을 바라보았다.“큰할아버지, 저를 따로 부르신 게... 설마 그 일 때문인가요?”최근 며칠 동안, 성주혁과 성진이 나눈 대화의 주제는 항상 성대 그룹을 에워쌌다.노인은 성대 그룹이 지금 심각한 내부 갈등과 외부 위협에 직면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한순간의 실수로 회사는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는 위기 상황이었다.그리고 그 내부 갈등의 핵심은 바로 성진이었다.성주혁은 성대 그룹에 대한 절대적인 권력을 쥐고 있었지만 지난 몇 년간 그 권한을 성도윤에게 넘겨주었다.그 때문에 성진은 여전히 성도윤의 아래에 있을 뿐, 실질적인 권력에는 닿지 못했다.하지만 현재 그의 세력은 점점 커지고 있었다. 그의 영향력이 커지는 만큼, 성대 그룹을 장악하려면 결국 할아버지의 승인이 필요했다.노인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성진아, 너는 똑똑하고 수완도 좋아. 결정도 빠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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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7화

성주혁의 눈가에 슬픈 기색이 스쳤고 성진은 흥미로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큰할아버지 말씀은, 제가 반드시 이긴다는 말로 들리는데요?”“그래, 넌 이길 거다. 하지만 내 승인이 없으면 너는 절대 ‘진짜 승자’가 될 수 없다.”노인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졌다.비록 그는 이제 한 발을 무덤에 들여놓은 몸이었지만 여전히 타고난 위엄으로 손자를 압도할 힘이 있었다.성진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차갑게 말했다.“어릴 때부터 저는 늘 도윤이 형을 이길 수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반드시 전력을 다할 거고 온 해안시 사람들이 제가 성도윤보다 강하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이제 더 이상 형의 그늘에서 살지 않겠어요. 그리고 할아버지께서도...”그는 눈앞의 노인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숨을 내쉬었다.“언젠가는 이 세상을 떠나시겠죠. 그때가 되면 도윤이 형도 더 이상 할아버지 뒤에 숨어 권위에 기대지 못할 겁니다.”그러나 성주혁은 천천히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 네가 진짜로 이기고 싶다면 내가 죽을 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요즘 오래 고민해 본 끝에 깨달았지. 도윤이는 본래 돈이나 명예에는 큰 뜻이 없는 아이야.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단다. 너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성진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결정이라뇨?”그는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성주혁이 조용히 말했다.“우선 내게 약속해 다오. 무슨 일이 있어도 도윤이를 해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네 형수를 넘보는 마음도 가져선 안 된다. 설령 네가 성대 그룹의 경영권을 손에 넣더라도, 성도윤과 그의 자손들은 그룹의 3분의 1의 지분과 배당금을 보장받아야 한다.”“3분의 1이요?!”성진은 그 말을 듣자마자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할아버지, 정말 친손자를 위해 철저히 계획해 두셨네요. 그럼 저는 매일 죽어라 일하면서 회사를 운영해야 하고 도윤이 형은 가만히 앉아서 배당금만 받아 가면 되는 겁니까?”성주혁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네가 그렇게 생각해도 좋아. 하지만 이게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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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8화

성진은 계약서를 바라보며 한 글자 한 글자 꼼꼼히 읽었다.넓은 침실은 갑자기 죽은 듯한 정적에 휩싸였고 오직 의료 기기의 삐, 삐 소리만이 유난히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한참 후, 그는 계약서 가장자리를 쥐고 있던 손을 툭 하고 힘없이 떨어뜨렸다.“너무 우습네요. 정말이지, 터무니없다는 생각이...”성진은 손에 들고 있던 계약서를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배를 감싸 쥔 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예상치 못한 그 모습에 성주혁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자신이 알기로, 이렇게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한 계약서를 성진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그런데 그는 아무런 답도 하지 않은 채, 마치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웃고 있었다.그 웃음소리에 성주혁은 마치 자신이 뭔가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 것만 같은 불안감을 불러일으켰다.“도대체 뭐가 그렇게 웃기냐?”성주혁이 얼굴을 굳힌 채 언짢게 물었다.“큰할아버지도 웃기고, 나 자신도 우스워서요.”한바탕 웃음을 마친 성진은 감정을 추스르고 난 후, 차갑고 위험한 기색이 서린 눈빛으로 말했다.“큰할아버지가 내거신 조건은 분명 매력적입니다. 어쩌면 큰할아버지 눈엔, 아니 모든 사람들의 눈엔 제가 단순히 돈을 쫓는 간사하고 교활한 인간으로 보이겠죠. 그러니 오직 회사를 손에 넣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거라 생각했겠죠. 맞나요?”“그게 사실 아니더냐?”노인의 시선 또한 싸늘하게 변했다. 그는 손자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네가 이 계약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면 강요하지 않겠다. 어차피 내 유언장에 회사 80% 지분을 명확히 명시해 두면 넌 영원히 회사를 손에 넣을 수 없을 테니까.”그가 이렇게까지 양보하며 성진에게 회사를 넘겨주려 했던 이유는 간단했다.자신의 손자인 성도윤보다 성진은 더 강하고 냉철한 인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진은 회사를 더 신경 쓰고 개인적인 감정에 얽매이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두 형제가 각자 원하는 것을 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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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69화

성주혁이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에 약간의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설마... 진심으로 네 형수를 사랑한다는 건 아니겠지?”얼마 전 성진이 차설에게 관심이 있다는 소문이 온 집안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심지어 뉴스를 잘 보지 않는 자신조차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얘기를 통해 알 정도였다.하지만 평생을 권력과 명예가 얽힌 세상에서 살아온 성주혁은 성진이 차설아를 진심으로 사랑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그저 남이 가진 것을 탐내고 그것을 빼앗아야만 만족하는 성격 때문일 뿐, 결국 형보다 우월하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심리에서 비롯된 집착이라고 여겼다.“넌 어릴 때부터 줄곧 네 형과 경쟁해 왔어. 늘 형과 비교당하며 살았고 부모님의 기대는 네게 엄청난 부담이었지.”“네 형이 하버드 석사를 마치면 너는 MIT 석사를 따라갔고 네 형이 그룹의 대표가 되자 너는 부대표 자리에서 그를 밀어내려 했어...”“형이 인공지능 사업으로 방향을 바꾸자 너는 그보다 먼저 뉴욕에 AI 연구센터를 세웠지. 이제야 네 형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삶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을 만났는데 너는 또다시 빼앗으려 하고 있어. 자세히 생각해 봐라. 정말로 차설아를 사랑하는 거냐? 아니면, 단순히 네 형을 이기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는 거냐?”노인은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물었다.그의 말은 단순한 추궁이 아니라 성진 스스로가 알기를 바라는 질문이었다.잠시 정적이 흘렀다.“4년 전이었다면 주저 없이 대답했을 겁니다. 차설아를 빼앗는 건 오직 형을 이기기 위한 수단이었다고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이제 저는 확실히 알아요. 차설아를 향한 감정은 단순한 ‘승부욕’이 아니란 걸.”언제나 가볍고 장난기 어린 태도를 보였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그의 눈빛은 한없이 진지했고 단호했다.“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은 오직 설아를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만약 설아를 얻는 대가로 회사를 포기해야 한다면 나는 개의치 않아요. 어차피 손에 넣지 못한다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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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70화

성진이 방을 나서자 성도윤이 거실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고 표정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우리 도윤이 형, 아직 안 갔네?”성진은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장난스럽게 그를 바라봤다.“이 늦은 밤까지 남아서 뭐 하는 거야? 스스로 좋은 남편에 좋은 아빠라고 자부했잖아. 아내랑 아이를 내버려두고 집에 안 가도 돼?”성도윤이 그 말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리고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널 기다리고 있었어.”“날?”성진이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이 몸이 뭐라고, 일부러 기다릴 만큼 대단한 사람이라도 된다는 거야? 그런 과분한 대접이라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헛소리 그만해.”성도윤의 얼굴엔 전혀 온기가 없었다.“할아버지랑 무슨 얘기를 나눴지? 굳이 그분을 통하지 않아도 돼. 나랑 직접 이야기하는 게 더 바를 거야. 그분도 결국 모든 걸 결정할 순 없어.”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할아버지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성진이와 어떤 식으로든 협상을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할아버지의 그런 마음을 이해했지만 그는 그런 보호 따윈 필요 없었다.“형은 똑똑하니까 내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대충 다 짐작하고 있겠지?”성진은 그의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가더니 거대한 통유리 창밖을 가리켰다.“오늘 밤 달이 참 예쁘네. 우리 형제끼리 오랜만에 정원이나 한 바퀴 돌면서 이야기 좀 해볼까?”“...”성도윤이 말없이 주먹을 살짝 쥐었다.솔직히, 성도윤은 그와 단둘이 이야기할 이유가 없었고 이 자리에서 그를 당장 죽이지 않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자제력을 발휘하고 있는 셈이었다.“어차피 아직 집에 못 갔으니, 이왕 이렇게 된 거, 더 늦는다고 문제 될 거 없지 않나?”성진이 태연한 얼굴로 앞장서 걸었다.성도윤은 저도 모르게 인상을 깊이 찌푸렸다.이 상황이 썩 달갑지 않았지만 결국 한숨을 내쉬면서 그를 따라갔다.저택의 정원은 넓고도 아름다웠다.정자와 작은 다리를 지나 졸졸 흐르는 개울은 마치 한 폭의 동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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